제2강 초임목사와 부목사의 성공 비법

장달윤목사

위쪽의 2. 나의 목회 타이틀 방어 철학

목회란 부르심과 사명감에 의해 출발했지만 그 일은 너무도 힘들고 어려운 십자가의 길이다. 그 길은 고통과 분노와 모욕과 인내와 눈물로 점철된 길이며, 교회 평화와 단합과 성장이란 그것의 결정체이다. 이 길을 걷지 않고는 목회는 성립될 수 없다. 예수님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목회에 관한 복잡하고 광범위한 두툼한 책들이 많이 있지만 필자는 다음 10가지로 목회 관을 정리, 압축한 방어 목회철학을 나의 목회에 나침반을 삼는다.

1) 목회는 끓어오르는 격정적(passionate) 분노와 활화산처럼 용솟음치는 폭발도 억제하고 겟세마네 예수님의 눈물에 동참하는 고통의 직업이다.

2) 목회는 원리와 원칙, 정직과 진실의 삶에 미세한 틈도 보이면 안 되는 직업이다.

3) 목회는 사고 미연에 멀리, 넓게 보는 통찰력이 있어야 하고, 유비무환, 육하원칙에 의해 완벽하게 일을 진행하여야 하는 직업이다.

4) 목회는 고지식하고 독단적인 사고를 초월하여 언제나 상황에 따라 적응하고 즉흥적으로 두 마음을 불변의 한 얼굴로 분장하여 거룩한 모습으로 연기할 수 있어야 하는 직업이다.

5) 목회는 신본주의의 신의 얼굴을 하고 사람중심의 인본주의 사람의 얼굴을 하고 목회를 하는 섬기는 종의 직업이다.

6) 목회는 자신을 녹여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이 되어야 하고, 자신을 불태워 빛을 발하는 촛불이여야 하는 직업이다.

7) 목회는 겸손히 썩는 송장이 되어야 장수하고 혈기왕성하고 고고한 목회자는 단명 하는 직업이다.

8) 목회는 10년 동안 들은 고언(苦言)을 한마디로 정리, 분해하여 10분 만에 사과를 받아낼 수 있는 지혜와 능력과 계산을 가진 자의 직업이다.

9) 목회는 많은 펀치를 맞고도 통증이나 비틀거림이나 충혈을 보이지 않고, 한방의 KO 펀치 파워를 간직하고 있어야 하는 직업이다.

10) 목회는 피를 말리는 고통으로 100번을 생각하며 분노를 감내해야 하고 100번을 생각하여 농축한 핵을 고체(solid) 연료로 저장해 두어야 하는 직업이다.


목회는 이상과 같은 직업임을 알고 이상과 같이 대처하는 것이 나의 목회 타이틀 방어 철학이다.


3. 나의 3인칭 목회철학

정치는 강자를 붙잡아야 승산이 있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줄서기를 좋아한다. 유구한 역사를 보라, 강자 편에 서고 강자와 동맹하고 강자의 비위를 잘 맞추는 자가 승리한다. 그리하여 지금도 정치판을 보면 자기의 정치 신조를 접어두고 강자 편에 줄서기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래야 승리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역사의 증거이다. 김영삼은 민정 당을 붙잡고 대권을 쟁취하다.

1000년 역사의 신라는 굴욕과 수모를 무릅쓰고 신라보다 짧은 역사를 가진 고려왕건에게 그냥 나라를 바쳤다. 그것이 죽지 않고 사는 길이고 결국 승자의 길이기에 경순왕은 현명한 단안을 내린 것이다. 지금에 와서 고려가 승자인가? 신라가 승자인가? 패자없는 공동 승자가 아닌가? 김정일도 죽지 않고 현명하게 역사 속에 길이 살아남는 지도자가 되려면 신라의 경순왕처럼 하루빨리 그냥 한국에 바치는 길이 백성을 덜 고생시키고 죽지 않고 공동 승리하는 길인데 저렇게 버티고 승산 없는 몸부림을 치고 있다. 결과는 이미 드러나 있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를 거울삼아 더 훌륭한 역사를 만들려고 하는 데 있다. 정치는 이상이 아니고 현실이다. 미국은 초강대국으로서 부도덕한 나라이다. 그러나 21세기 전반기에 누구도 그의 눈 밖에 나면 덕 될 일이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하는 수 없이 굴욕 외교를 하면서 지금을 살아가는 것이다.

1) 교회 행정도 강자를 중심하여 진행한다.

위로하고 돕는 것은 약자 편에 서서 약자를 위로하여야 하고 행정은 강자를 중심하여 펼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 안에는 당회가 있다. 당회 안에도 강자와 약자가 있다. 초단 수 목회자는 손에 잘 잡히고 내 품안에 들어오는 약자를 잡고 일하려 하는데 문제가 발생한다. 고단수 목회자는 잘 잡히지 않는 그를 잡고 일을 시작한다. 그를 인정과 사랑의 불에 달구어 녹여 내 손아귀에 맞게 만들어 잡고 교회 행정을 펼쳐야 교회 공동체가 평탄하게 갈 수 있다. 아마추어들은 쉽게 잡히는 그를 잡고 일을 하다가 실패하게 되는데 실패의 원인이 거기에 있음을 실패 후 은퇴 할 때 쯤 되면 알게 되어 후회 한다. 보이지 않게 강자를 중심하여 행정을 집행한다.

2)교회 공동체의 강자는 누구인가?

교회는 자율적으로 회집된 공동체이다. 그런고로 강자들이 여럿이 있을 수 있는데 전부잡고 가야한다. 어떤 교회는 한 사람만 있고 어떤 교회는 둘도 있고 어떤 교회는 셋도 있으나 대체로 한 사람 아니면 두 사람이다. 그들이 강자이고 그 외에는 줄서는 들러리에 불과하다. 강자가 한명이면 그 한명만 잡으면 되고 둘이면 둘만 잡으면 그 외에 인은 전부 따라온다. 나무도 두세 가지로 벌어져 큰 둥치를 이룬 것도 있지 않은가? 그런 나무들에 많은 가지들은 큰 중심가지에 소리 없이 붙어있으며 그 가지들은 모두가 들러리에 불과하다. 동물들도 소리 없이 왕초를 따라 뭉친다. 그렇다면 교회공동체 안에 강자는 누구인가?

(1) 선임 목회자 배척에 전과자 선수 그가 강자이다.

(2)맥이 없는 것같이 보여도 제일 먼저 기득권(장로 된 자)을 획득하고 수석이란 자의식을 가진 그가 강자이다.

(3) 나의 초빙에 주격 역할을 하였고 맨 먼저 식사 대접하는 그가 강자 이다.

(4) 돈을 많이 갖고 많이 내는 그도 강자이다.

(5)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그도 강자이다.

(6) 교만한 건덕 지를 가진 그도 강자이다.

(7) 권모술수를 잘하는 그도 강자이다.

(8) 할 말 다하는 그도 강자이다.

(9) 자기의 안일만을 위한 기회주의자 이완용도 강자이다.

(10) 그 W 중에 그 W도 강자이고, 그 M의 그 W도 강자이다.


3) 강자 그를 어떻게 다를 것인가?

(1) 강자 중 王 中 王 그을 골라 타고 달린다.

(2) 강자 그를 여왕벌을 만든다.

(3) 강자 그를 회장으로 모시고 나는 월급 사장으로 처신한다.

(4)강자 그를 중앙 기둥으로 세우고 밉더라도 건축위원장을 시킨다.

(5)강자 그를 경호 실장으로 임명하고 잘한다고 공로패를 증여한다.

(6)강자 그를 수석 비서로 옆에 두고 중요한 일은 극비 그와 상의한다.

(7) 강자 그의 意思를 설득하다 안 되면 나의생각보다 우선한다.

(8) 강자 그를 근위 대장을 삼고 훈장을 수여한다.

(9)강자 그를 총참모장으로 앉히고 별을 많이 달아주고 치켜세워준다.

(10)강자 그를 소외시키면 역모 자가 되고 반란, 즉 쿠테타를 일으킨다. 고로 항상 보이지 않게 우대하고 주시하여야한다.

강자 그는 끝나는 날까지 경계의 대상이며 그가 돌변하는 날 목회자는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된다. 비굴하게 느껴질 런지 몰라도 그것이 목회인 것을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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