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기들의 신념과 합리적 원리들에 의존함으로써 자기들에게 거짓 평안을 말한다

 

사람들이 자기 신념과 합리적 원리들에 따라 평안을 측정하는데,이것은 거짓 평안으로 결코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만 설명해봅시다. 어떤 사람이 죄로 인해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는 죄로 인해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복음에 합당한 바른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과 그의 영혼 사이의 관계는 모두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봅니다. 그는 빛을 소유하고 있고,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알고 있습니다. 또 이런 경우 과거에 자기 영혼이 어떻게 고침 받았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고통을 치유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약속이 적용해야 할 외적 수단으로 간주하고, 그는 그곳으로 달려가 약속들을 뒤져서 문자적 표현들이 자신의 상태에 직접 부합되는 말씀들을 몇 가지 골라 냅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하나님은 이 약속을 통해 말씀하신다. 여기서 내 상처를 덮을 만한 크기의 고약을 발라야겠다고 말합니다. 이런 식으로 그는 약속의 말씀을 자신의 상태에 적용시키고 평안을 추구합니다. 이것은 또 다른 산 위에서의 모습입니다. 주님이 가까이는 계시지만 그 안에 계시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오직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우리를 책망하실 수 있는’ ( 16:8)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지성적,이성적 영혼의 단순한 작용에 불과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생명에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생식적인 생명, 감각적인 생명 그리고 이성적 또는 지성적인 생명이 바로 그것입니다. 어떤 존재들은 단지 생식만합니다. 어떤 존재들은 감각도 함께 갖고 있습니다. 또 어떤 존재들은 이 두 가지에 이성을 추가로 구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성적인 생명을 갖고 있는 존재는 이성적 원리에 합당하게 행동할 뿐만 아니라 다른 두 요소의 원리에 대해서도 합당하게 행동합니다. 즉 성장할 뿐만 아니라 감각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일들에 있어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들은 단순히 자연적이고 합리적입니다. 또 어떤 이 들은 계몽을 통해 추가된 깨달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진실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후자에 속한 사람은 전자의 요소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때로는 자연적인 사람의 원리에 따라 행동하기도 하고, 때로는 계몽된 사람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참된 영적 생명의 원리가 모든 행동의 동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항상 영적 생명의 원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행동의 열매가 반드시 이 원리의 뿌리에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방금 제가 언급한 경우의 사람은 단순히 신념과 계몽의 원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고 이로 언해 첫 번째 자연적 요소가 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성령은 이 모든 물줄기를 따라 흐르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재발된 타락으로 인해 영혼이 받고 있는 상처와 불안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타락이 악한 행위든 아니면 미련한 행위든 결코 작은 것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 영혼이 받게 되는 상처보다 더 큰 상처는 없고, 영혼이 갖게 되는 불안 보다 더 큰 불안은 없습니다. 극도로 마음이 혼란한 상황에서 그는 이사야 55 7절의 약속을 찾아냅니다.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리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여기서 그는 하나님이 거듭해서 무조건 용서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또는 호세아 14 4절의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라는 말씀을 찾아 낼 것입니다 이 사람은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신에게 평안 하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든 안 하든, 곧 그 말씀에 생명과 권능을 불어넣으시든 안 넣으시든,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는 주 하나님이 평안 하라고 말씀하시는지 여부는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얼굴을 숨기시고 가련한 피조물이 평안을 빼앗겨 평안으로부터 멀리 달아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를 다시 다루시고 새로운 판단의 자리로 자기를 부르실 때 곧 하나님이 손으로 자기를 끌지 않으시면 발자국을 떼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는 때를 곧 깨닫게 될 것 입니다.

On Mortification of Sin by John Owen (1616~1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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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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