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4장) 하나님이 일루 오세요.

 

  야곱이 네 아내와 열 한 아들과 한 딸, 그리고 양, 소 떼를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형 에서가 400인을 거느리고 달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움에 떨며 밤새도록 씨름하던 얍복강,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던 그 브니엘에서 하나님께서는 에서의 마음을 완전히 돌려 주셨고 야곱은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에 이르렀습니다. 벧엘에서 베개 한 돌을 세우고 기름을 붓고 서원한 야곱의 서원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지켜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거기에 머물렀습니다. 가나안 땅에 돌아왔으니 일단 귀향한 것은 맞는데 하나님께 서원했던 벧엘로 가지 않고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가 기다리는 집으로도 가지 않았습니다. 세겜의 아비 하몰의 아들들에게 거금이라고 할 수 있는 은 일백 개를 주고 땅을 사서 거기에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짓고 거기에 눌러앉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거기에서 살았는지는 기록이 없으니 모르겠습니다. 앞서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20년 동안 외삼촌을 섬겼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라헬을 연애하여 7년을 봉사한 다음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얻었고 그 이듬해에 맏아들 르우벤이 태어났다고 보면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 밧단아람을 떠날 때 르우벤은 열 서너 살 쯤이었을 것이고 그 아래로 다섯 오빠가 또 태어나고 그 다음 태어났을 디나는 아주 어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사건은 디나의 나이가 상당히 들었을 때라야 일어날 수 있는 사건입니다. 이로 미루어 짐작한다면, 맞는지 알 수는 없지만, 오늘 사건은 그들이 적지 않은 햇수를 세겜땅에 눌러앉아 산 다음에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평안히 돌아오게 해 주셨는데 야곱은 서원을 지키지 않고 그곳에 주저앉아 버린 것입니다. 은 일백개를 주고 땅을 사고 그곳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고 붙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벧엘에서 한 십일조 서원을 지키기 싫어서였을까요?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에게 얼른 가고 싶지 않아서였을까요? 척박한 고향 땅 보다 세겜이 훨씬 살기 좋고 풍요로운 곳이라서 그랬을까요? ‘뭐, 여기가 더 좋은데 아무 곳이나 단을 쌓으면 되는 거지 꼭 벧엘로 갈 필요가 있나? 온 천지가 하나님 계신 곳인데 어디면 어때.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고 여기 살자. 하나님께서 이곳으로 오시면 되지‘, 하고 생각한 것일까요? "여기가 좋사오니 하나님이 이리로 오십시오.", 그것이 "엘엘로헤이스라엘"의 뜻일까요?  

  남북전쟁을 통하여 흑인노예를 해방하고 미국을 사실상 통일한 미국 16대 링컨 대통령은 기도하는 대통령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런데 링컨 대통령은 하나님께서 자기편이 되어서 자기를 도와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자신이 하나님의 편에 서 있으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길을 가고 있는지를 겸허히 묻는 기도, 그것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내 편인가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뜻을 이루어주시고 내가 가는 길을 도우시고 지켜주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과 함께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디나가 그 땅 여자를 보러 나갔다가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 추장 세겜에게 강간당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은 야곱이 그 땅에 머물지 않고 그 땅을 지나서 하나님께 서원하였던 벧엘로, 그리고 부모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갔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편에 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진행했더라면 결코 없었을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요?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이 사건은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께 가지 않고, 온전히 주님을 따르지 아니하고 ‘이쯤이면 됐다.’ 하고 반쯤 세상에 걸쳐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참된 신앙생활은 나를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을 어디든지 따르며 끝까지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야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나 좋은 곳, 적당한 곳에 주저앉아서 "하나님이 일루 오셔서 나를 도와 주셔야조."가 절대로 참 된 신앙생활일 리 없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나를 부르시고 나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그렇게 자신을 위하여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렇게 세겜인지 세상인지에 주저앉아 '하나님이 일루 오세요' 한다면 어쩌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디나의 사건을 허락하신 것처럼 엄청난 사건으로 나를 깨부수셔야 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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