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9장)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라고만 간단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간단한 기록 속에 얼마나 많은 아픔이 담겨 있을까요? 피 묻은 채색옷을 보고 요셉이 악한 짐승에게 잡혀 먹힌 줄만 알고 슬퍼하는 아버지 야곱의 통곡이 애굽으로 끌려가는 그의 귀에 들렸을 리 만무합니다. 하필이면 애굽으로 끌려가는 길이 아버지의 집이 저만치 보이는 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형제들에게 배신당하고 은 이십 개에 이스마엘 족속에게 팔려 애굽으로 끌려가던 그의 가슴은 얼마나 멍들었을까요? 아버지의 사랑 속에 애지중지 자라온 열 일곱 살 소년 요셉은 채색옷을 벗기우고 신발을 벗기우고 그 먼 길을 걸어 애굽으로 끌려갔을 것입니다. 중동의 뜨거운 광야길을 끌려가며 그는 얼마나 울었을까요? 그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은 무엇을 나타내기를 원하셨을까요? 하늘영광을 버리고 이 낮은 땅에 오시어 온 세상 죄인의 질고를 지신 주님의 모습입니다. ‘비아돌로로사’, 주님께서 홍포를 벗기우시고 채찍질 당하시며 피투성이 몸으로 십자가를 지고 맨발로 걸어가신 그 길에는 주님의 핏방울이 알알이 떨어졌을 것입니다.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사람 보디발이 요셉을 노예로 샀습니다. 돈을 얼마나 주었는지, 은 몇 개를 주고 샀는지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유다가 죽이지 말고 팔자고 제안하여 형제들이 은 이십 개에 요셉을 이방인의 손에 판 것은 가룟 유다가 은 삼십 개에 주님을 팔고 그들이 로마인의 손에 주님을 넘긴 것과 닮아 있습니다.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 로마의 총독 빌라도...., 빌라도의 아내는 저 죄없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였고,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의 옷을 붙잡고 늘어졌습니다. 주님은 죄 없이 십자가에 넘기워 죽임당하셨고 요셉은 죄 없이 애꿎게 감옥에 갇혔습니다. 주님의 양편에는 두 강도가 달렸고 요셉에게는 바로의 두 관원이 꿈의 해몽을 부탁하였습니다. 한 편은 생명을 잃었고 다른 한 편은 생명을 얻었습니다. 마침내 옥에서 풀려나와 가장 높은 위치에 올라 애굽을 통치하는 총리의 자리에 오르고 형제들을 기근으로부터 구해내는 요셉의 이야기는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시고 온 백성을 구원하시며 모든 무릎이 그 앞에 꿇어질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셉은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모든 일을 보셨고 모든 사정을 아셨고 모든 고통을 나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인하여 요셉은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본 보디발은 요셉을 가정총무로 삼고 자기의 모든 소유를 요셉에게 위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위하여, 그렇습니다,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어떻게 이 모든 일이 가능하였을까요? 어떻게 요셉은 그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여늬 사람 같았으면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럴 수가 있는가, 하나님이 내게 이러실 수가 있는가.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시는가.’라고 원망하고 반항하지 않았을까요? 요셉이 그러한 상황에서도 순종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고 형통케 하셨을까요? 아니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말씀하시고 요셉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확실히 나타내셨기 때문에 요셉이 그렇게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아는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고 요셉은 끝까지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고 붙잡았다는 사실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는 분명한 사실 앞에서 요셉은 행하였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은근하고 비밀스러운 유혹을 단호히 물리칠 수 있었고 어떠한 고통의 순간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도 하나님이 함께 하셨으므로 끝내 십자가의 그 고통을 이기셨을 것입니다. 아, 그러나 주님은 마지막 순간 십자가에서 버림당하셨습니다. "엘리 엘리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버림당하신 것입니다.

  완전함은 무엇이며 완전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아브람의 99세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걸어서) 완전하라.”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걷는 것이 완전함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완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떠한 고난, 어떠한 고통에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완전함입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경은 요셉의 모습, 욥의 모습을 통하여 한 순간이라도, 어떠한 고통 가운데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고 떠나지 않는 완전함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버림당하심으로 그 완전함, 그 의를 우리에게 넘겨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가운데 있습니까? 광야 가운데, 역경 가운데 걷고 있습니까? 아무것도 보이지 아니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아니하는 어두움 속을 걷고 있습니까?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고 이겨내십시오. 우리는 할 수 없어도 주님이 이미 승리하셨으므로, 주님께서 이미 세상을 이기셨으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족하여도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이 완전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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