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3장) 잃게 되면 잃으리라.

“애증(愛憎)”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과 증오”라는 말이지요. 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에게 견딜 수 없이 불타오르는 사랑과 또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증오의 감정을 동시에 가졌다면, 마음속에 그 서로 다른 두 가지의 감정이 격렬하게 소용돌이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러한 주제를 다룬 소설이나 영화도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막히게 잘 만든 소설이나 영화라도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애증의 스토리, 그 참혹한 십자가의 피로 클라이막스를 이루는 성경에 비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인이 된 인간을 얼마나 미워하셨는지, 그러나 또한 얼마나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셨기에 아들을 내어 주셨는지, 이보다 처절한 애증의 스토리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만일 당신이 요셉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요? 열일곱 살 앳된 나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브엘세바에서 세겜, 그리고 다시 도단까지, 그 먼 길을 형들을 찾아갔는데 그 형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고, 옷을 벗기고 구덩이에 던져 넣고, 그리고는 노예로 팔아버린 그 일을 어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울부짖는 동생에게 잔혹하게 그 일을 해치운 형들, 그리하여 아버지를 영영 다시 볼 수없는 먼 곳에서 비참한 노예생활과 옥살이를 해야 했던 긴 세월, 그렇게 꽃다운 나이를 캄캄한 어둠 속에서 보내야 했던 그 일이 어찌 잊어질 수 있겠습니까?
 
요셉은 그 형들을 다그쳐 정탐일 것이라고 하면서 붙잡아 삼일동안 가두었지만 그 정도로 그 사무친 원한이 풀릴 리는 없었을 것입니다. 시므온을 다시 잡아 결박하여 가둔다고 마음이 가벼워지거나 위로가 될 리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아버지와 동생 베냐민을 향한 불타는 그리움과 사랑이 더욱 회오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원망스럽고 미운 형들이라 할지라도 한 핏줄이요 지금 기근으로 고통 받으며 식량을 구하러 온 그들을 매몰차게 내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혼자 방에 들어가 남모르게 울며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리고 시므온을 남겨두게 하고 나머지 형제들에게는 말째 동생을 데리고 다시 돌아오라 하면서 그 속에 그들이 가지고 온 돈뭉치와 식량을 채운 자루들을 지워 가나안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너희가 말째 동생을 데리고 오지 아니하면 내 얼굴을 보지 못 하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야곱은 베냐민을 결코 보내려고 하지 않고 형들은 식량을 구하러 내려오지를 못 합니다.
 
말째 동생을 데리고 오라는 것, 숨겨놓은 가장 귀한 것, 가장 아끼는 것을 내어놓으라는 요셉의 요구는 요셉이 당한 고통, 요셉이 겪은 배신과 버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지도 모릅니다. 야곱의 베냐민에 대한 집착은 가장 귀한 것은 내어놓지 않으려는 죄인 된 인간의 심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도 가장 귀한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주님의 얼굴을 보지 못 할 것입니다. 주님은 아버지의 품을 떠나 요셉보다 더욱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고 요셉에 비할 바 아닌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장 귀한 것, 가장 아까운 것만은 숨기고 내어놓지 못 하고 포기하지 못 하면서 헛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가장 아까운 것을 포기하지 못 한다면, 주님 앞에 내어놓지 못 한다면 생명을 얻지 못 할 것입니다. 다시 애굽에서 가져온 식량마저 떨어져 갑니다. 그러나 야곱은 베냐민을 포기하지 못 합니다. 보다 못 한 유다가 말합니다. “아버지, 베냐민을 포기하세요, 지체하지 않았더라면 두 번 갔다 왔으리다.” 그렇습니다. 주님 앞에 온전히 포기해야 삽니다. 그 포기와 내려놓음은 일찍 할수록 좋습니다. 미루면 미룰수록 고통만 더 할 뿐입니다.
 
계속되는 기근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지고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결국 야곱은 베냐민을 붙잡고 있는 것을 포기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라. 그리고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준비하라.” 그들은 유향(myrrh), 꿀, 향품, 몰약, 비자(피스타치오 너트), 파단행(아몬드) 같은 가나안 땅의 소산과 귀한 선물을 준비하고 돈(은)도 배나 준비해서 다시 애굽으로 향하게 됩니다. 야곱은 모릅니다, 그 아들들도 모릅니다, 그들이 이렇게 하여 동방박사들이 아기예수님, 곧 구세주에게 드린 예물과 비슷한 예물을 준비하였다는 사실을. 야곱은 베냐민을 데리고 가라 하면서 말합니다, “네 아우도 데리고 가라. 잃게 되면 잃으리라.”

‘잃게 되면 잃으리라’는 야곱의 말은 ‘죽으면 죽으리라’ 하며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았던 에스더의 말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나의 생명을 포기하고 온전히 맡기는 일입니다. 이러한 결단 없이는 아무도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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