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속 나비 구하기 - 나는 왜 CCM을 떠났는가?

 

나는 왜 CCM을 떠났는가?

- 예배인도자로 사역했던 한 크리스천의 고백 -

 

Chapter 1. 폭풍 속 나비 구하기(Saving butterflies from the storm)

 

 

 

  하나님께서는 내게 없는 재능 두 가지를 아내인 주디(Judy)에게 주셨다. 그것은 매우 민감한 영적 안테나와 그 안테나에 걸린 상황을 분별할 수 있는 빠른 이해력이다. 결혼생활 21년 동안, 아내는 일견 건전해 보이는 어떤 흐름과 형식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만들어내는 장기적인 부정적 영향들을 잘 분별할 수 있었고, 이런 모습 때문에 나는 끊임없이 놀라며 고마워했다. 그러면서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아내의 통찰력은 교회 안에서 상처를 주거나 받는 영혼들에 대하여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1993, 아내와 나는 미국 미시건(Michigan) 주 머스키건(Muskegon)에서 휴가를 보냈다. 그런데 그때, 그곳 미시건 호수에 맹렬한 파도를 일으키며 사나운 폭풍우가 몰아쳤다. 그 폭풍우가 그친 후 우리가 호숫가를 산책하고 있을 때, 아내는 자기 발 아래에서 모래에 반쯤 묻혀있는 나비들을 발견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그야말로 수백마리 정도 되는 나비들이 호숫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그 나비들이 모두 죽은 것처럼 보였다. 주디가 허리를 굽혀 나비 한 마리를 살짝 건드리자 놀랍게도 그 나비가 움직이듯 싶더니 이내 날아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날개는 젖어 있었고 모래 때문에 몸이 무거워 제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었다. 폭풍우는 나비들을 호숫가에 내동댕이치고는 그 날개를 갈기갈기 찢어버린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은 나비들이 불쌍하여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나비들은 이내 죽고 말 것이었다. 아내는 조심스럽게 나비를 들어 날개의 모래를 정성스럽게 털어내고 햇빛에 말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에 날개가 약간 움직이더니 곧 조금 빨라졌다. 주디는 내게 이 모습을 보여 주었고 우리는 나비들이 살 수 있을 거란 일말의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그 나비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제 힘으로 날개를 펴고 날아야 했다.

거친 폭풍우 후에 찾아오곤 하는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호숫가로 불어왔다. 주디는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나비를 던져 올렸는데 날개짓을 하면서 날아 오르려 했다. 나비는 떨어질 듯 좌우로 흔들리며 날았다. 난 그 모습을 보며 어딘가에 부딪히지나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비는 힘을 내었고 농장 쪽으로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비 구조 작업이 성공한 것이다! 우리는 호숫가 이곳저곳을 오가며 정신없이 가능한 한 많은 나비들을 구조하려 애를 썼다. 주디는 나비들을 모래 속에서 끄집어내 모래를 털어내고, 나는 그것들이 다시 날 수 있도록 도왔다. 하지만 나비들은 너무 빨리 죽어갔고 슬프게도 우리 부부는 아주 적은 수만을 구할 수 있었다. 

 

 

현대기독교 음악운동(The Christian Contemparary Music Movement)

 
  나중에 그 지역 주민 하나가 이 이상한 현상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 사람은 폭풍우가 그 나비들을 위스콘신 주에서 이 호수까지 몰고 와서는 호숫가에 쏟아 부운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나비들은 강한 폭풍 속에 꼼짝없이 휩쓸려 버린 것이다. 나비들은 폭풍이 다가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내 주디는 CCM 운동(Contemparary Christian Music Movement, CCM Movement)을 위에서 이야기한 강한 폭풍우로 비유하곤 했다. 1990년대, 이 운동은 엄청난 힘을 동반하여 교회 예배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마치 나비같은 형편에 처해졌다. CCM 지지자들은 반대자들을 폭풍에 휩쓸려 호숫가로 쫓겨와 갈기갈기 찢기고 결국 죽어버리고 만 나비들 같은 처지로 만들었다. 어떤 이들은 다시 날아오를 수 없었다. 그들의 영혼이 CCM 폭풍으로 인해 갈갈히 찢겨나갔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들은 그 폭풍이 동반하고 있던 부도덕성, 사기성, 분열성에 짓눌린 채 살았다.

   나는 이전에 현대 경배와 찬양 인도자였다. 그렇지만 유명하지도 않았고 명성을 얻지도 못했으며, 그저 일개 군인처럼, CCM 변혁가 역할을 수행하며 그 운동권 안에서 수년을 보낸 사람일 뿐이다. 말하자면, 전통적인 예배를 현대 경배와 찬양 형식의 예배로 어렵사리 전환시키며 교회를 이끌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몇년 동안 복음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교회의 주일예배에 CCM이 수용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했다. 그것이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2년 전, 나는 하나님께서 내 눈을 열어 주셔서 CCM 운동이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과 기만성을 깨닫고 거기에서 빠져나왔다(그 이야기는 이후 이 책에서 상세히 기술할 것이다). 나는 CCM의 폭풍우 속에서 상처를 받아온 나비들을 구하고 싶어 이렇게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덧붙여 전통적인 예배를 드리는 교회들 중 현대적 예배 형식으로 바꾸기를 고려 중인 교회들에게 경고를 하고 싶다. 그런 변화에 맞서려는 이들에게 내가 용기를 주고 성경적 원리에 기반한 답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들이 CCM 지지자들의 질문에 답을 하고 논박하는데 이 책이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음악의 매력에 빠져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발견한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며 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CCM 운동권 내의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들은 어디에서 도움과 격려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교회에서 CCM를 사용하는 문제들에 대한 많은 책들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저자들은 CCM 지지자들도 아니었고 그 운동의 일원이었던 사람들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현대적 교회음악주의자들(Contemporaries)은 부당한 편견을 갖고 고루하고 죽은 음악적 전통을 부여잡은 이들을 근본주의자’, ‘전통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였고, 그 사람들을 핑계 삼아 CCM의 문제를 지적하는 책들을 읽으려 하지 않는다.

 

CCM과 나(personal involvement)

  반면에 나는
CCM 운동이 갖는 태도와 동기에 대해 참된 참호속 관점(in the tenches' view)’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왜냐하면 최근까지 그 운동에 깊이 관여했기 때문이다. 어떤 현대적 교회음악주의자들은 나이 지긋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비판하면 재빨리 세대 차이를 들어 변명하곤 한다. 그들은 세대가 다르기 때문에 나이 지긋한 그리스도인들이 CCM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1970년대에 나는 시끄럽고 저속한 록음악을 추구했던 경험이 있다. 나는 거침없고 공격적인(in your face)' 음악 스타일에 익숙한 사람이다. 오늘날의 최악의 음악은 그때 당시에 우리가 시작했던 음악 스타일의 확장판일 뿐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바라기는 내가 고리타분한 방식에 천착하는 인 박힌(dyed in the wool)' 전통주의자가 절대 아님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나는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치를 정해보고 싶다. 이것은 성경과 교회 안에 존재하는 음악에 대한 소모적인 신학 논쟁을 하자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우리의 예배행위와 삶의 유형에 대해 계속 최종 권인인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성경적 관점을 공유하지 않는 독자들은 나의 주장에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록 비트와 그것이 인간의 생리기능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논쟁을 다루지 않을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하여 여타의 사람들이 충분한 저술과 설교들을 남겼다. 특별히, 이 책은 개인이 여가시간에 어떤 스타일의 음악을 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경고와 공예배에 관한 원리들에서 많은 유익함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오히려 나는 예배에 현대적 음악 스타일을 혼합하는 것이 좋게 말하면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문젯거리를 제공하는 일일 뿐이며, 나쁘게 말한다면 분열, 자기 탐닉, 부도덕성 등을 일으킬 수 있는 오류들이 있음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이 책 속에서 비판의 대상들은 일반적으로 CCM의 오류들을 이끄는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지 보통의 평범한 예배자들은 그 대상이 아니다.

   다음은 우리가 사용하게 될 특별한 용어들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정의들이다. 

 

CCM(Contemprary Christian Music)

현대적 기독교음악. 특별히 CCM에는 소포트 록, /, 이지 리스닝, 클래식 록 같은 음악 스타일을 포함한다. 록 영향을 받아 당김음이 대단히 많이 사용되는 다른 음악 형 식들도 이에 포함되는데, 이런 음악에는 재즈, , 블루스, 힙합, 펑크, 모던 컨트리 앤 웨스턴 등이 있다.

 

P & W(Praise & Worship Movement)

CCM 영역 중 찬양과 경배 운동. 이 운동의 음악 스타일도 역시 강한 록음악의 영향을 받았다. 호산나, 빈야드, 마라나타 음악 등이 이 영역에서 유명하다.

 

현대적 교회음악주의자(Contempararies)

교회의 예배에서 P & W 음악 스타일의 사용을 선호하는 그리스도인들. 이 말에는 어떤 경멸적인 뜻을 담고 있지 않으며, 단지 그리스도인들을 음악적으로 분류하는데 사 용하는 용어일 뿐이다.

 

전통적 교회음악주의자(The Traditionals)

교회의 예배에서 전통적이거나 보수적인 음악 스타일을 선호하는 그리스도인들. 여기서 보수적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비논쟁적이고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음악을 뜻한다. 우리 가 내린 정의 속에는 찬송가(hymns), 전통적인 노래들, 록음악이나 관능적인 다른 음 악적 영향을 받지 않은 현대적 음악 스타일이 포함된다. ‘전통적 교회음악주의자라는 용어는 일부 CCM 계열에서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용어 가 긍정적인 뜻으로 변하기를 바란다.  

 

  나는 이 책의 모든 내용이 성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이 되고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정중한 대화로 이어지길 기도하는 바이다. 내가 하는 이 비평의 의도는 CCM을 장려하고 있거나 이러한 사역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하려는데 있지 않다. 내가 그런 대결을 좋아하지 않으며 오히려 평화를 이루며 평화로운 삶을 추구한다는 점은 내 친구들이 증명해 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말은 했지만, 어떤 그리스도인들에게 내가 하는 이야기와 결론이 가시가 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만약 여러분이 교회 내에서 논쟁을 하고 싶다면 그저 음악 스타일에 대한 문제만을 제기하라.

   또한 과거 CCM 사역을 같이 했던 그리스도인 동료들은 내가 CCM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을 보고는 놀라거나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 동료들은 교회에서 CCM 사역을 하고 CCM이 교회 안으로 수용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던 나를 기억하고 있다. 우리들은 함께 멋진 경험을 했고 우리 사역에 신실했다. 그들이 내가 책 속에서 말하는 바를 모두 경청하고 CCM을 장려하는데 있어 자신들의 역할을 점검해 보기를 기도하는 바이다.

 

강력한 요새(Powerful stronghold)

  나는 내가 교회 안에 존재하는 매우 강력한 요새에 도전하고 있음을 안다. CCM은 이제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어서 상당수의 근본주의적 교회들이나 복음주의적 교회들에서조차 지지를 받는 음악 스타일이다. 많은 신자들의 삶 속에 CCM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으며, 이 책을 읽는 어떤 이들은 자신에게 뿌리 깊게 내린 CCM을 흔드는 내용 때문에 몹시 괴로울 것이다. 어떤 목회자들은 CCM 운동을 아주 깊이 받아드린 까닭에 내가 언급하는 내용들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경배와 찬양을 드릴 때 CCM을 사용하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현상이다. 그것은 성경적인 기초가 부족하고 우리에게 알맞은 예배에 관한 하나님의 가르침을 무시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명백히 말해야 한다. 예배에서 CCM을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를 만들어내고 육적인 삶의 유형을 조장하는 것인데, 이 두 가지 결과는 그리스도인의 연합과 유효성에 상처를 입힌다. 또한 나는 자주 언급하였듯이, 경배와 찬양에 CCM을 사용하는 진정한 동기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통해 우리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예배의 정의가 성경적 의미에서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러므로 나는 더 이상 침묵할 수가 없다.

   이러한 점 때문에, 독자들은 이미 내가 CCM에 관한 모든 것이 나쁘다고 믿는 사람이라고 결론내렸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그렇지 않다! 이 책은 현대적 찬양과 경배에서 발견되는 영적인 위험성과 비성경적인 철학에 대한 내 개인적 체험의 기록이다. 나는 현대 찬양과 경배양 운동을 하는 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고,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는데 관심이 많다. 그리고 CCM 안에도 성경적으로 건전한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로 이루어진 훌륭한 음악들이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록 비트와 세상적인 공연 형식에서 분리된 음악이라면 예배 때 충분히 사용 가능하리라 본다.

   나는 여러분들이 현대적 찬양과 경배 운동에 관여하고 있다고 해서, 여러분들을 비난할 생각이 없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는 마태복음 7:1-5과 누가복음 6:42의 예수님의 명령을 늘 명심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우리 눈에 들보를 먼저 뺄 때만이 제대로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문제의 책임을 물으려는 행동을 제어하려 노력하며 살았다.

   비록 내 신념과 충고 등을 자유롭게 나눌 테지만, 나는 책에 나오는 어떤 내용도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의 규정이 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규정을 만드는 것은 율법주의에 상응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사도 바울의 예를 따라) ‘자의적 숭배와 거짓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데에는 지혜의 모양을 가지나 육체의 욕망을 제어하는데에는 무익한(2:23)’ 규정들로 어떤 사람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가족 간의 다툼이요, 형제 자매들 간의 불협화음이다. 나는 내 형제와 자매들에게 비생산적이고 분열적인 운동에 참여하는 것에 아주 조심스럽게 경고하려 한다. 현대적 교회음악주의자들이 CCM 및 찬양과 경배 속에서 자신의 역할이 어떠한지를 생각해 보고 더 나은 길을 제시할 때 이에 관심을 기울여 주었으면 좋겠다. 따라서, 나는 독자들이 이 증언들을 공정하고 완전하게 읽고 난 후에 어떤 판단을 내리기를 바란다.

 

출처: 좁지만 가장 바른 길 위 내가 서 있으니...

 

가져온 곳 : 
카페 >말씀의 교회와 새빛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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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상록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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