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셔서

[요한복음 5:9-10]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주님께서 베데스다 못 가에 38년이나 죽치고 누웠던 병자를 고친 일로 분란이 일어납니다.
유대인들이 시비를 건 것입니다.
무슨 시비를 걸었느냐, 병 고침을 받은 자에게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고 시비를 건 겁니다.

만일 이런 시비를 걸어온다면 저라면 그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아니, 뭐라고요? 그럼 제가 멀쩡해졌는데도 거기 계속 자리를 깔고 누워 있었어야 한다는 겁니까?”

그런데 이 친구, 대답하는 거 보세요.
“저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했습니다.”
예수님에게 떠넘깁니다. 비겁합니다.

생각나는 거 없습니까?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남에게 떠넘기는 것, 이게 죄인의 야비하고 비겁한 모습인가 봅니다.

그런데 당당하지 못 하고 비겁하고 야비하면 오히려 더  책 잡힙니다.
유대인들이 다그칩니다. "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이 친구 우물쭈물합니다. “잘 모르겠는데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주님이 그 후에 성전에서 그 비겁한 자에게 나타나셔서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고 자신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병 고치는 것은 구원이 아닙니다.
인간의 진정한 변화 없이 병만 고침 받으면 그것은 더욱 죄를 짓게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38년 동안 중풍병자로 있을 때 못 해 본 짓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면,
고침 받은 건강한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지 못 하고 주님을 위해 쓰지 못 한다면, 그가 하게 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주님은 그에게 그 말씀을 하신 것일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그에게 자신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병을 고쳐 주신 분, 38년 동안 절망 속에 있던 자신을 구원해 주신 분이 주님이신 것을 그 사람이 모른다면
그 사람의 고침 받은 다음의 삶이 어떻게 되겠으며 그 고침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주님은 숨어서, 어두움 속에서 선행이나 베푸시는 분이 아닙니다.
병이나 고치는 것이 주님이 오신 목적이 아니란 말입니다.
주님은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들로 주님을 믿게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지구상에는 가난과 질병으로, 전쟁과 기아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그들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구제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주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오늘 말씀에서 안식일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은 십계명의 제4계명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 20: 8-11)

당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유대인과 바리새인들에게는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고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심으로 유대인들과 정면충돌을 하신 것입니다.
제칠일안식일교는 지금도 안식일을 지키면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우리 정통기독교회에는 구원이 없다고 말합니다.

주님은 왜 하필이면 그 안식일에 양문 곁 베데스다 못가에 오셔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을까요?
다른 날에 오셨어도 될 일을 왜 그렇게 하셔서 유대인들로부터 안식일을 범하였다는 비난을 받고 미움을 사셨을까요?
결국 이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아닙니까?
구태여 그렇게 하셔서 분란을 일으키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신 것 맞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고 완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피조물인 우리 인간에게 함께 안식하자 하신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이 죄악으로 인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이때로부터 하나님은 쉬지 못 하시고 다시 일을 하셔야 했습니다.
그것은 구원사역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원사역은 창조사역보다 더 험악하고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집이 망가져 엉망이 되면 차라리 집을 허물고 새로 짓는 것이 고치는 것이 낫습니다.
하나님께도 싹 쓸어버리고 새로 창조하시는 편이 훨씬 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시 시작하신 일은 원수 된 죄인을 용서하는 일이었습니다.
원수를 용서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습니까?
게다가 그들을 사랑하고 구원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피눈물의 가시밭길이었습니다.
자신의 가슴을 찢어 독생자를 참혹한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유대인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아버지께서 지금 하고 계시는 그 고통스러운 사랑의 일을 주님도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안식일과 명절의 규례를 정해주셨습니다.
안식일에는 아무 것도 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섬기라........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안식일, 안식년, 희년, 그리고 모든 유대인의 명절의 참뜻은
구세주, 메시아, 주님이 오실 때 죄악과 저주와 죽음의 사슬에서 풀려나 해방되는 날을 기다리라는 의미였던 것입니다.
곧 안식일은 장차 오실 주님의 예표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주님이 오시면 폐지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안식이요 안식일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안식일을 깨뜨리셔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전도 무너뜨리셔야 했습니다. 주님이 참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안식일과 성전을 가지고 안식일의 주인이시요 참성전이신 주님을 대적한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이 지켜온 안식일과 성전제사와 율법들이 자신들이 쌓아온 공로요 근거였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들을 버릴 수가 없었고
그것을 허무시는 주님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을 배척한 것입니다.  
그리고 끝내 진짜 안식일과 진짜 성전을 십자가에 달아 죽인 것입니다.

(시2: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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