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가족을 잃은 슬픔 너무나 크죠. 사랑하는 자녀를 먼저 떠나 보낸 슬픔도 너무나 괴롭고 큽니다. 그러나 그 슬픔이 우리 예수님하고 바꿀 수는 없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그 빈자리에 그리움, 그 사무치도록 그리운 그 그리움, 가슴이 그냥 콱! 막히는 것처럼, 호흡할 수 없는 정도로 그렇게 고통스러운 그리움의 아픔이 있지요? 

여러분, 그 그리움, 그 떠나 보낸,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 그 그리움을 붙들고 그 그리움 때문에 고통하며 이 그리움을 어떻게 해야 하나, 너무나 보고싶은 그리움이 슬픔으로 왔는데 그것을 털어버리고 그것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붙들고 있으면 그 그리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 슬픔에서 온전히 자유를 누리지 못해요.
그 슬픔의 무게, 그 슬픔의 아픔, 그것 때문에 일상의 삶이 무너지고 그것 때문에 헤어나지 못하고 그러면 우리의 신앙생활, 영적인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요.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 슬픔이 크다고 할지라도 그 슬픔과 우리 예수님 하고는 결코 바꿀 수 없습니다. 그 슬픔을 예수님 보다 더 애착을 가지고 그 슬픔을 예수님 보다 더 사랑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 저 처럼 하십시오. 제가 방금 1시간 전에 겪었던 체험을 말씀드립니다. 저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특별합니다. 제가 장남이고 아버님은 너무나 사랑이 많고 정이 많으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아버님 자신, 당신도 상처가 컸던 분이기 때문에 그 아버지가 장남인 저에게 엄청난 상처를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아버지에 대한 어떤 원망보다는 아버님이 제게 그런 상처를 줄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상처에 대해서 더 많이 불쌍하고, 애처럽고 그러 거예요.
저는 아버지를 다 이해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아버지의 모습을 추억으로 떠올리지 않으려 하고 잊어버리려고 일부러 이렇게 저렇게,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이 쑥쑥 들어오면 저는 일부러 피하고 도망다녔는데 오늘은 제가 그것을 방어할 틈도 없이, 아버님 사진을 딱 보는 순간에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나 사무치게 훅! 들어와 버린 거얘요. 그 순간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핑 돌아서 괭장히 힘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주님, 제가 어떻게 합니까? 지금까지 아버지의 기억을 잘 막고 왔는데 이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같은데 이 슬픔이 또 저를 힘들게 할텐데 어떻게 합니까?" 하는데 제 안에서 성령께서 "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을 선포를 하라!"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한 슬픔을 가져다 주는 어둠의 영들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묶임을 받고 떠나가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당장  떠나갈찌어다! 이 사악하고 악한 어둠의 영들아, 천국 가신 아버님의 그리움으로 인해서 내가 내 주님을 보는 눈을 흐리게 하고 가리게 하는 이 악한 어둠의 영들아, 이 미혹의 영들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당장 내 앞에서 떠나가라!" 이렇게 단호하게 제가 선포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여러분, 이 가슴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확 무너져 내렸던 그 순간에 봄눈 녹듯이 그냥 사라져 버린 거예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예, 주님 보다 더 사랑하는 그 어떤 사람, 그 사람이 살아 있던, 이 세상에 함께 존재하던 간에, 우리 예수님 보다, 우리 주님 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여러분, 단호하게 배격하십시오.
가족이라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그 허울 좋은 이름 앞에, 예, 악한 원수 마귀가 그 사람의 혼과 영과 정신을 사로잡아 슬픔에 계속 빠지게 하고, 우울에 계속 빠지게 하고 하나님의 안겨 있는, 떠나간 내 사랑하는 가족들, 또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 슬픔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도록 오늘 이 시간까지 그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었고, 떠나 보낸지도 수 일이 지났고 수 개월이 되고 수 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떠난 사람에 대한 그 슬픔에서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그걸 붙들고 있고 그것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그것 때문에  신앙생활을 똑바로 하지 못하고 그것 때문에 기도의 자리에 들어오지 못하고 그것 때문에 전심을 더해서 주님을 찬양하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제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그것은 사랑도 아닙니다. 그것은 그 가까운 사랑하는 지체들, 지인들, 가족들을 향한 그 그리움을 통해서 미혹의 영이 역사하는 거에요, 여러분. 거기에 속으면 안됩니다. 그럴 때는 단호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십시오. 어떤 때는 꿈에서 그 그리운 사람이 나타납니다. 눈을 뜨면 눈가에 눈물이 적셔저 있어요. 꿈에서 봤기 때문에, 꿈에서건, 현실세계, 정신 차리고 있는 일상 가운데서도 어떤 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알상을 제대로 살어가지 못합니까?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합니까? 너무나 그립고 슬퍼서 기도할 때마다 그 사람이 생각나고, 떠난 남편이, 떠난 아내가, 떠난 사랑하는 딸이, 아들이 생각나서 주님께로 더 깊이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  분명히 명심하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원수 마귀 더러운 귀신이 우리를 미혹하는 것입니다. 속지 마십시오,여러분. 아멘. 
 
 

설교: 정리, 루디아 /최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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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도
        루디아/최송연 
 
내 사랑이여
밤이 늦도록 
당신 곁에서 
하늘 노래를 
들을 순 없겠나요
 
힘들고 지친 내 영혼
찾아갈 곳 없을 때면
당신 발 앞에 엎드립니다
 
세상의 무거운 짐
모두 짊어지신 어깨
우주보다 넓고 깊고 
큰 사랑의 품을 지니신 분
 
삶의 한숨
사랑
아픔
기쁨조차도
모두 당신께 내려 놓습니다
 
때때로 
솟아나는 의심의 안개
올올이 거두어 내시고
 
당신 품에서
온전한 쉼을 누릴 수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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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갇힌 자들을 위하여서 기도합니다. 갇힌 자들이 갇힌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의 장소가 되게 하시고 축복의 시간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저들이 세상 가운데 살다가 잠깐 실수로 감옥에 갇혀 있지만 그 갇힌 곳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그 장소가 참으로 복된 장소가 되고 그 시간이 복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저들의 삶을 주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저들에게 만남의 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 주님, 이 땅의 소년 소녀 가장들과 고아들을 주님 손에 올려드리고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와 나라의 지자제가 이 땅의 고아들과 소년 소녀 가장들을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저들을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정부나 지자제가 실천하게 하시고 정치적으로나 법이 도움을 줄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이 땅의 교회가 고아들과 소년 소녀 가장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줄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주시고 교회가 발벗고 나서서 저들을 지킬 수 있도록 하옵소서. 그리고 보호받아야 할 연로하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어려운 노인 분들도 교회가 섬길 수 있도록, 우리 이웃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우리의 실상을 볼 수 있도록 성령님 가르쳐 주세요. 
주님께서 내가 갇혔을 때에 돌아보았고 너희 나를 찾았느냐? 나를 돌보았느냐. 내가 굶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느냐? 그렇게 책망하시고 주님께서 그렇게 판단하시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너무나 잘 배웠습니다. 하나님, 이웃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시고 한국교회가 나서서 섬길 수 있도록 가난한 우리 이웃을 섬길 수 있도록 하나님 아버지,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 땅의 젊은이들이, 젊은 청년들이 너무나 많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한국만 아니라 전 세계가 마찬가지, 교회에 젊은이들이 너무나 부족합니다. 저 서부는 교회서 예배드릴 때 노인들 밖에 없다고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 한국교회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이 땅의 젊은이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하시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부모세대들이 젊은 세대를 위하여 기도하게 하시고 우리 후세대를 위하여 우리 부모들이 거룩한 두 팔을 들고 주님을 향하여 우리가 도고의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이 땅의 어버지, 어머니들을 기도군대로 불러 세워주시옵소서.
젊은 세대, 자녀 세대를 위하여 이 땅의 어른들, 기성세대들이 눈물로 기도하고 가슴에 품고 기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전부 기도의 군사로 불러주시옵소서. 아버지여, 젊은이들이 돌아올 수 있게 교회가 세상의 빛이되고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 교회를 각성시켜 주시고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우리 자신이 먼저 변화되기 원합니다. 내가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오 주님, 나를 변화시켜 주옵소서. 주님, 이 죄인을 변화시켜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나의 허물과 죄를 씻어 주옵소서. 내 안에 모든 악한 죄악의 쓴뿌리들을 성령의 불로 태워주시고 거룩한 성령의 생수로 씻어 주시고 거룩한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으로 새롭게 빚어주시옵소서.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더 많이 기도하고 더 간절히 기도, 더 깊은 기도의 자리, 임재의 자리, 지성소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어서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서 성령으로 기도하게 하여 주옵소서. 혼으로, 내 욕심으로, 욕망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을 좇아서 간구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는 우리의 구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내 안에서 내주하신 성령님께서 탄식하시면서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성령의 그 간구함이 우리의 영이 성령에 순종하며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기도하게 하여 주옵소서. 영혼을 살리는 기도를 하게 하시고 내 자신을 바라보고 내 자신을 바로 세우는 기도를 하게 하시고 내 자신을 주님 앞에 바로 세우게 하옵소서. 아멘.
 

설교: 테힐라 : 정리:루디아/최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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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3. 나도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갈 2:19-21>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앞 뒤, 19절 22절을 함께 적었습니다. 20절만 쏙 뽑아서 읽지 마시라고......)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라고 합니다. “내려놓음”, “더 내려놓음”으로 유명한 이용규 선교사도 자신의 가장 좋아하는 성구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애창하는 복음성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도 이 성경구절로 만든 노래입니다. 크리스천들에게 가장 널리 암송되고 묵상되고 사랑 받는 성구 갈라디아서 2장 20절, 왜 그럴까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그리고 거기에 함께 못 박힌 나의 모습......., 처절하면서도 아름답고, 슬프면서도 위로되고, 고통스러우면서도 치유가 되는, 주님의 지고한 사랑과 나의 부족하고 추악한 모습이 겹쳐져서 함께 투영됨으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성구입니다. 참혹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주님, 그리고 주님과 함께 못 박혀 죽은 나, 그 비통하고 애절하고 처참하며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정경은 우리의 마음에 그려진 한 폭의 그림이요 멜로디요 시(詩)이기도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 말씀에 비추어 아직도 그리스도 안에서 죽지 아니한 자신의 죄성, 예수를 믿고서도 아직도 변화되지 못 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십자가 앞에 자신을 내려놓고, 자신의 정욕과 욕망을 버리고,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하며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우리가 부르는 복음성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는 그래서 더욱 은혜가 되고 사랑받는가 봅니다. 그런데 이 복음성가 가사는 살짝 고쳐져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앞은 같은데 뒷부분이 약간 다릅니다. 끝부분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가 “예수 위해 사는 것이라”로 바뀌어져 있습니다. 하긴 그렇습니다. 믿음 안에서 사는 것 보다야 주를 위해 사는 것이 더 바람직하고 보람 있고 멋지겠지요. 그러나 이 약간의 차이가 우리의 믿음의 차이를 만든다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을 묵상하거나 해석할 때, 그 구절을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뒤 문맥과 전체를 함께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그 구절의 참뜻과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지난 시간에 읽었던 갈라디아서 1, 2장을 전체적으로 다시 봅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 다른 복음은 없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율법을 지켜라, 할례를 받으라 하는 자들은 거짓형제들이라, 너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라.”, “예루살렘 회의의 결과 구원은 율법이 아닌 믿음이라는 데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게바가 안디옥에 왔을 때 일어난 사건을 인하여 내가 게바의 적절치 못 한 행동을 꾸중하노라...”, 사도바울이 무엇을 말합니까? 그것은 율법이 아니라 “오직 믿음”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갈라디아서를 관통하는 핵심입니다.

 

 

사도바울은 15절에서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죄인이 아닌 우리라 할지라도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를 믿나니 율법으로 구원받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이어서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예수 안에서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예수의 죽으심을 헛된 일로 만드는 것이요 예수를 죄인 만드는 자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기껏 구원해 놓았더니 너를 죽이는 율법을 다시 세운단 말이냐?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냐? 여리고성을 무너뜨려 주었더니 다시 세운단 말이냐? “이 여리고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하였더라.”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내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으니 율법과 관계없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다시 살았으니 나는 오직 이 믿음으로 사노라.” 하는 고백이요 선언입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읽으며 크리스천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자신의 의지로’ 또 죽으려 하는 것입니다. “내가” 또다시 죽고, “내가”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려 하는 것입니다.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래야만 그리스도를 따르는 참 신앙인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지로 죽고 못 박힐 수 없습니다. 그럴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새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려면 죽어야 하고 죽은 다음이라야 다시 날 수가 있지만 그러나 인간은, 죄인들은 죽으면 그걸로 끝입니다. 다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대로 심판과 멸망일 뿐입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분은 오직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아들을 우리가 죽어야 할 자리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죽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우리 안에 영접하였고 주님은 우리를 품으셨으며 주님이 죽으실 때 우리는 주님과 함께 죽었고 주님과 함께 다시 살았단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발견한 것이 그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보니, 주와 연합하여 주 안에서 보니, 바울이, 내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어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 안에서 다시 살아나서, 거듭나서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 있더라는 것입니다. 내 안에 지금 있는 생명은 예수 믿는 믿음으로 얻은 새 생명이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어졌다는 것입니다(요 5:24). 바람이 부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바람이 부는 것처럼 내가 죽고 다시 태어나는 그 엄청난 영적사건이 성령님의 역사로 일어난 것입니다(요한복음 3장 3-8절). 그러므로 “내가” 또다시 죽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어리석은 새로운 율법입니다. 당신은 이미 물과 성령으로 죽었고 다시 태어났으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다시금 19절과 20절, 그리고 21절을 함께 읽어 보십시오. 그 뜻이 명확하니 그것은 우리는 이제 율법과 상관이 없다, 아니라면 그리스도께서 헛 죽으신 것이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복음성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의 가사는 사도바울의 고백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를 “예수 위해 사는 것이라”로 고친 것입니다. “주를 위해 살리라,”는 다짐과 결단, 새로운 삶의 목표, 좋습니다. “이제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요 오직 주님 위해 살리라,”는 각오, 좋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새 생명을 얻었다는 사도바울의 벅찬 감동과 환희의 문구를 주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결심의 문구로 바꾸어야 되겠습니까? 그 놀라운 구원의 감격이 무거운 짐, 율법으로 도로 바뀔까 두렵습니다.

 

 

 

(참고: NIV영어성경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The life I live in the body,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제가 ATS 신대원에서 희랍어를 공부할 때 보니 원어를 가장 충실하게, 가장 원문에 가깝게 번역한 번역본이 구약은 NSBA, 신약은 NIV영어성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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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애가 (哀歌, Lamentation)
         루디아/최송연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며(시148:4)
빛과 소금은 자신을 태우고 녹여(마5:13)
십자가의 사랑을 나타내 보여주고 

다윗은 노래 속에 주님의 사랑을, 

바울은 지혜의 신으로 구원의 주님을 선포하네

모든 문학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모든 노래에 그리스도의 영광이,
모든 지식 속에,
모든 학문 속에, 그리스도와 

그의 사랑이 녹아있지 아니하면

그 모든 아름다움과 영광은 썩어질
배설물과 같다고 경고하셨네.

주께서 말씀하셨죠,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않으리(사48:11)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리라 (요9: 24)

말 못하는 미물들도
시시각각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려
애쓰고 있건만

하물며 죄악 가운데서 불러냄을 입은 성도,

너는 나의 종이라 기름 부어 주시고

주인의 양떼를 먹이라고 세워주신
목자들이 세상과 타협하고 주인의 영광과

그 사랑 전하기를 잊은지 오래네

여기 오직 한 사람,
참 목자의
통곡과 절규,
눈물의 기도 소리가 들리지 아니 하는가?

목장이 존폐의 위기에
처했건만 여전히 자기
배만 생각하는 못된 목자들이여,

좋은 꼴 대신 독초를
먹이는 자들이여,
나팔 불기를 잊은채
잠자는  나팔수들이여,

이제 곧 석양은 넘어가고
서까래는 무너져 내리고
집터는 마구 흔들리리니
살륙의 칼이 네 문 앞에 이르렀도다.

오호라!
어그러진 길에서
비틀거리는 자들이여,
너무 늦기 전

어서 속히
돌이켜 구원의 주를 부르라. 그리하면 그가 일어나 너희를 도우시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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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참 걱정입니다. 

선관위가 장악하여 주물럭거리는 정치판, 조작하고 표 쑤셔넣은 부정선거판.......

이런 식이라면 이번 4.10 총선도 결국 이재명당, 조국당이 국회, 아니 나라를 쥐고 흔들게 되고

윤석열 정부는 그대로 식물인간 상태가 되는 결과로 이어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나라가 어찌 되려고 이러는지.......

 

김한길 목사님이 그렇게 철저한 좌파일 줄은.....

페이스북에서 이승만 박정희 비난, 김대중 찬양, 윤석열 비난, 5.18 광주 유공자 주장, 지만원 비난......

저와 극과 극..... 간격이 넓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반대편이었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조금씩 의견충돌이 일어나다가 그렇게 점점 다투다가 결국 결별하였습니다. 

저더러 5.18 광주사태를 제대로 이해한 다음 연락하라는군요.

 

마음이 아프네요.

그래도 주 안에서 믿음으로 연결된 인연이었는데......

 

"어느 사모의 기도" 낭송.... 

다윗의 시편 축소판 같네요. 

핸드폰으로는 댓글이 올라가지 않아 랩탑 컴퓨터로 다시 찾았습니다. 

Ung Lee, 저의 유튜브 채널은 5년 동안 하모니카 몇 곡 밖에 없네요. ㅎㅎ 

 

체력이 딸려 한 주일에 겨우 두어 번 지금까지 주로 밤시간에 운전을 했는데...

다행히 아직 눈도 괜찮고 야간시력도 별 문제가 없어서요.
그래도 밤시간은 아무래도 좀 위험하지요. 갑자기 보행자가 나타나기도 하고 사슴이 나타나기도 하고.....

특히 비오는 밤에는 시야가 좋지 않으니까 비오는 밤에는 아예 안 나갑니다.

그러다가 꽃피는 봄날이 되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 아름다운 낮시간을 두고 왜 굳이 밤운전을 하지? 

벌이가 좀 못 하더라도 이젠 낮시간에 운전을 해야겠다,...... 

내일부터는 아침에 나가기로 마음먹고 있습니다. ㅎㅎ

 

아, 갑자기 뜬금없이 갈라디아서를 다시 든 것은.....

사실은 얼마전부터 나이 좀 든(저 보다는 몇 살 아래지만) 부부 세 쌍으로부터 성경공부 인도요청을 받아서 

한 주일에 한 번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아내들이 빤질빤질한(?) 남편들을 좀 신앙교육시켜 달라고 해서........

 

그런데 성경공부 외에도 한 주일에 한 두 번 이메일로 말씀을 보내주고 있는데....

욥기도 보내고, 에스더서도 보내고.....

그러다가 문득 아, 옛날에 내가 빈교회당에서 집사람과 딸래미 앉혀놓고 설교했던 내용들을 다시 들춰보게 되었네요.

제가 아멘넷에 투고하고 사모님의 목양연가에 올라간 글들은 대부분 2011년 이후에 쓴 글들인데
사실 그 전에도 썼던 글들, 비교적 짧게 작성한 설교요약문들이 있거든요.

그걸 다시 끄집어내어 보는데 갈라디아서, 로마서, 열왕기 등이 있네요. 

그래서 한 편 한 편 다시 정리하면서 그 분들에게 이메일로 보내고 있습니다. 

우선 갈라디아서 강해를 11편 보낼 생각입니다. 

 

한 주일에 한 번 저녁시간에 그 분들 집을 찾아가 성경공부를 인도하는데....

돈 생기는 일도 아니고 체력 아꼈다가 우버운전하는 시간도 빼앗기고.....

그 분들이 우리 성도도 아니고, 내가 다시 목회할 것도 아니고........ 

이 분들이 다니는 교회도 있고 목사님도 있고 사역자도 있고 교회성경공부반도 있는데 내가 왜 이래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이 일도 하나님이 맡기신 것이라 생각하고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몇 년씩 할 것은 아니고

한 일년 정도라고 생각하고 이 남편들의 신앙을 세워주는 일에 순종하자 하고 하고 있습니다. 

이 남편들이 나이는 든데다 나름대로 듣고 배운 건 많아서 목들이 곧기도 해서 쉽지 않네요. ㅎ 

그런데 이 성경공부를 계기로 제가 과거에 썼던 글들을 다시 끄집어내고 있으니 여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으신 건지....

 

그리고 그 시절을 돌아보니 그 세월동안 성도도 별로 없고 빈 교회당 같은 곳에서 예배 드리고 말씀을 전했지만......

비록 교회개척도 목회도 성공하지 못 했지만

단 한 번도 설교준비를 허투루 한 적이 없었고, 

지금 다시 읽어보아도 제나름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 했다 싶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에구, 모처럼 쓰다보니 무슨 넋두리를 한 것 같네요. 

 

사모님, 오늘도 좋은 날 되시기 바랍니다. 

 

대장쟁이 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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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열매, 주님의 신부>   
계시록: 14장 중에서


들어가면서:
어제도 평소대로 요한계시록을 읽기 위해 의자에 앉아

순차대로 14장을 읽는 순간 갑자기 강력한 성령의 임재가 나를 터치하셨다.

주신 말씀은 "사랑하는 나의 딸아, 내가 너에게 산을 넘게 하여도

너는 그 산을 넘었고 강을 건너게 하여도 그 강물 속에 뛰어드는구나. 그런
순종이 바로 첫 열매들이 가져야 하는 자세임을 전하여라."아멘.

이 말씀에서 내게 깨달음을 주신 것은
1. 휴거의 날이 임박하다.(날짜와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2. 신부가 되려면 신부수업을 받아야 한다

3. 첫 열매란 어떤 사람을 말씀하는가

내가 댓글로 올리기에는
좀 무거운 주제이나 주님께서 전하라 하시니 나는 순종할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교회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은 다 휴거 받기를 원하며,

모두 휴거된다고 가르치고, 또 그렇게 믿고 있으나 실상 휴거될 사람은 첫 열매들,
그리스도의 신부들만 휴거 될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등에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다섯처녀들처럼 남게 될 것이다.

1.번은 우리 모두 익히 알고 있기에 재론하지 않겠다.

2. 신부수업이란 주님의 보혈로 정결케 된 성도들 중에서

특별히 골라 뽑아 강한 훈련을 시키시고 그 훈련(고난, 질병, 환란과 역경)

이런 것을 너끈히 통과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부수업 받는 자의 자세와 마음가짐 그리고 목적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불에,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같은

그런 어려운 때, 곧 시험이 다가 왔을 때 원망과 불평이 없었던 그들의 자세,

바로 그런 자세를 가지도록

주님께서는 원하시며 강하게 훈련시키시고
이런 환난을 잘 이기고 너끈히 통과케 하는 것이 신부수업의 목적이다.

3. 첫열매들이 휴거 된다. 교회시대가 점점 막을 내리기 시작하는 것은

접붙임 받은 이방인 교회가 끝나가고 원가지인 유대인들을 구

원하실 때가 가까워 오고 있다는 증거다.

인생의 여정 길은 늘 평탄한 곳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때로 험준한 굴곡의 길, 눈물의 길, 가시밭 길을 걸어야 할 때가 있다.

가는 길에, 바싹 메마른 광야를 만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철통같은 여리고 성이 앞을 가로막는 것 같이 답답할 때도 있고,

때로는 넘실거리는 홍해가 앞을 가로 막는 것같은 위기의식을 느낄 때도 있다.

우리에게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편안하다 안전하다 가르치는 자들은

모두 거짓 교사들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복 받고 잘 살자고

꼬드기는 번영신학에 물든 거짓 교사들을 삼가해야 한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다. 앞서 간 믿음의 선진들은 모두 다

불 시험, 물 시험, 사자 굴같은 어려움을 만났지만,

그 모든 어려움을 믿음으로 이기고 승리한 사람들이다.

성도라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달게 받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수 많은 순교자들의 흘린 피로 다져진 터 위에서

신앙생활의 바톤을 이어 받아 뛰고 있는 마지막 세대, 마지막 주자들이다.

우리는 아직 안전한 포구에 이른 것이 아니다.

여전히 거듭되는 난제에 난제를 만나서 끙끙거리기도 하고,

심한 태풍을 거스르며 나아가야 한다. 자신의 눈동자처럼 사랑하며 아끼시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하나님이시다.

이 모든 것을 통과 잘 하는 자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첫 열매, 주님의 신부가 될 것이다.

글: 루디아/최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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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 아멘 아멘.

시편 1편은 성경 이전에

나에게 무척 아름다운 추억이 담겨있는 시이자
작은 소녀에게 별처럼 반짝이는 꿈을 심어준 시였지요.

눈이 동그랗고
유난히 가녀린 소녀가
이 시를 사랑한 것은
복이란 매력적인 단어
때문일 수도...

복이란 세상 복,
뭔가 많이 가질 수 있는 오색찬란한

무지개 같은 것...

하여 달달 외워서
그해 성탄절 이브에
주일 학교 성경암송대회에 출전,

특등상을 획득(?)하여
친구들과 언니 오빠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었죠.

그러나 자라서 다시 읽어보니

세상 복과 정반대인 하늘나라
복인 것을...

복, 히브리어 "바라크" 그 뜻은 무릎을 꿇는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내려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그 모습이 참된 의미의 "바라크"
세상의 것들을 추구하는 자가 곧 교만의 극치 오만한 자...
이런 자와 함께하는
자는 참 성도, "바라크"가 될 수 없다는 진리...

그런 세상적인 복을 추구하는 자들은
생명 시냇가에 심기워진 나무 생명의 과실(영혼)을
결코 맺을 수 없다는...

이런 영적 의미가 담긴 시 중의
시를 세상 유명 작가가 작곡할
수도 없고

또 작곡한다고 하여도
그 노래가
어찌 사람의 영혼을 깊이 터치(touch)할 수 있을까
여기 성령님께서 친히 테힐라 강도사님에게 기름부어 주셔서
큰 울림이 있는 찬양, 호소력이 있는 영혼의 노래로

봄 햇살처럼 부드럽고 따스한 성령의 바람이
우리 영혼을 휘감으면서 깊이 파고 드는 힘

메말랐던 나의
영혼이 촉촉해지는 단비
주님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드는 은혜의 찬양으로 탄생시키신

우리들의 작곡가 테힐라 강도사님, 감사해요.

주님께서 영광받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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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없는 화사한 꽃

         루디아/최송연

 

화사한 꽃은 있으나
그 속에 향기가 없고

잎사귀는 무성하고
푸르른데
열매가 한 톨도 없다면

그 꽃이
그 나무가 어찌 심은 자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겠는가

꽃의 사명은
피곤한 영혼에게
사랑의 향기를 전하는 것

열매의 가치는
땀흘려 수고한 농부에게
기쁨을 안겨 주는 것

죄많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우리 주 예수님을
믿어 구원함을 받은 성도의 사명은

그분의 원하시는 뜻을
깨달아 아는 것

그분의 뜻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그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 또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 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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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1:6-9)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갈라디아서는 영어로 Galatians, 곧 ‘갈라디아인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갈라디아는 에베소나 고린도, 빌립보처럼 도시 이름이 아니고 지금의 터키 수도 앙카라 동쪽의 넓은 나타톨리아 고원지역을 가리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이고니온, 비시디아, 루스드라 등이 갈라디아 남부지역에의 속하는 도시들입니다. 

 

종이가 없던 그 시대에 편지들은 파피루스나 양피지에 기록되었고 수신자들은 돌려가면서 읽고 또 편지를 여럿 베껴 써서 여러 사람이 읽었습니다. 그래서 신약시대의 복음서나 서신서들은 사본이 많지 않은 구약성경과 달리 많은 사본들로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당시 서신서들은 일종의 형식이 있어서 서두에 발신자와 수신자를 명시하여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에게 보내는 것인지를 적고 인사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간단히 쓴다면 “바울과 형제들이 갈라디아의 교회들에게 편지를 보내며 축복하노라.”인데, ‘사람이 세우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세우신 사도’라고 발신자 바울이 누구인가를 설명하고 또 ‘자신을 드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은 축복을 하노라’고 인사말을 적고 있습니다. 이렇게 길게 적은 서두를 통하여 사도바울은 이미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드리신 것과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는 것, 곧 복음입니다.

 

그리고 본문에 들어가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원문을 보면 “나는 경악했다.”라는 강한 표현입니다. 어찌하여 그렇게 빨리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 곧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복음을 좇아가느냐고 기겁하여서 질책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은 없다. 그것은 다른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혼란시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키려는 것이다. 설사 우리라 할지라도,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 할지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니라.” 복음을 듣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그리스도를 영접했던 사람들이 어째서 그렇게 빨리 복음을 버리고 엉뚱한 이단, 사이비로 기울어지고 따라가는 것인지 어처구니없고 기가 막힌다고 강렬한 어조로 말하고 있습니다. 온갖 이단과 사이비가 들끓는 것은 오늘날 뿐 아니라 복음이 막 전해진 그 당시에도 그랬던 것입니다.사람들은 왜 그렇게도 쉽게 복음을 버리고 다른 복음에 귀를 기울이고 좇아가는 것일까요? 인간이란 그토록 어리석고 악한 존재입니다. 원수들은 복음 위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가라지는 인간의 악한 심성의 바탕에 뿌리를 내리고 창궐합니다. 주님께서도 씨 뿌리는 비유를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가라지 비유를 통하여 가라지들이 추수(심판) 때까지 함께 자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래 바탕이 악한 인간들입니다. 

 

광야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싫어하였고 날마다 내리는 만나를 ‘박한 식물’이라고 싫어했습니다. 애굽의 가마 곁에서 먹던 마늘과 부추, 수박과 외, 생선과 고기를 그리워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루하고 단조롭게 여기고 자기를 즐겁게 하기 위하여 쾌락을 추구하고 자극적인 것을 좇아가고 색다른 것을 찾는 악한 인간심성이 가라지, 이단을 자라게 하는 토양이 되는 것입니다.오늘날 교회들도 그렇습니다. 예배마저 인간을 즐겁게 만들기 위한 것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A. W. Tozer 목사님(1897-1963)은 일찍이 그의 저서 ‘예배인가, 쇼인가.’를 통하여 교회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자신들의 귀와 눈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하는 쇼 같은 예배를 하고 있다고 경고하였습니다. 듣기에 달콤하고 즐거운 말, 보기에 멋있고 화려한 것, 무엇인가 더욱 색다르고 자극적이고 강렬한 것들을 찾아 유행을 찾듯 찾아 헤매는 악한 세대의 악한 취향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라지로 뒤덮이게 하는지도 모릅니다.우리는 사도바울이 로마의 차디찬 감옥에서 쇠사슬에 매인 채 죽음을 앞두고 쓴 디모데후서에서 토해낸 경고의 말씀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3-8).” 이 싸움은 믿는 자이면 누구에게나 주어진 싸움일 것입니다.믿음의 싸움에서 승리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 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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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테힐라 에클레시아
290 회를 축하합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우리의 군주, 왕이신 예수님께서
이곳을 눈동자로 보살피시고
지켜 주셨음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곳에서
당신의 사랑을 노래하고

당신의 그 아픔,
모든 죄인을 위해
고통당하신 십자가를 전하고

그 나라에 가는 길,
생명의 길,
바른 길을 전하게
하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주께서
이곳을 주님의 눈동자로 보살피심은 여기 모인
군사들은 말세를 살아가는 수많은 성도들 중에 골라 뽑아서

앞으로 다가올 대재앙, 영적전투장에서
주님 편에 서서 영적싸움을 싸울 수 있는 강한 군사들,
용맹있는 정예군으로 훈련시켜 다가오는 주님의 나라에서
큰 상급을 주기 위하심인 것을 믿습니다.
 
하오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소욕을 위해 주님께 나아와
구하고 그 뜻이, 자신의 뜻대로,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이루어지지 않자 낙심하고 떠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테힐라 강도사님은
사람을 바라보거나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믿음
위에, 말씀 위에
굳건히 서서 앞으로 앞으로,
진군에 진군을 거듭하도록 종용하며
우리를 주님의 길로 잘 이끌어 나가시니...

주님,
영광을 받으시고 그가 피곤치 않도록
힘을 주시고  외롭지 않도록
위로해 주시옵소서.

아니,  이미 힘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 아들아  너는 아느냐..."
성령의 음성을 들려주셨기에

오늘까지
단 한 번의 펑크를 내지 않고 잘 달려오고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아버지여,
우리의 남은 생이 얼마인지 알 수 없으나

생명의 불꽃이 다 타서 사그러지는 그날까지 각자에게
맡겨진 사명을 있는 자리에서 잘 감당하다가

우리 모두 주 앞에 서는 그날 "잘 했다. 작은 일에 충성했으매
내가 큰 것으로 네게 맡기리라." 하시는
주님의 칭찬과 함께 빛나는 면류관을 받아 쓸 수 있도록

저와 우리 군사님들을 끝까지 지켜 보호하시고
함께 해주실 줄 믿으며 그리하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글: 루디아/최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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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오늘은 화면에 띄워놓은 중보기도를 순서에 따라서 함께 간절하게 주님 앞에 기도로 나아가기 원합니다. 특별히 이 나라와 민족, 대한민국을 위해서 좀 심각하게 생각하시고 간절하게 기도를 올려드리기 원합니다. 우리나라가 지금 너무나 이념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남과 북으로, 동서가 갈라져 있는 이런 어려운 때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더 잘 아시겠지만 우리나라가 이념으로 인해서 갈등이 심합니다. 역사 이래로 지금 대한민국이 이념의 갈등으로 인해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들이 분명히 알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는 그러한 자유민주의 그 토양 위에 하나님의 말씀이 뿌리를 내린 대한민국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념을 우리 아버지 하나님 위에 올려놓고 하나님 아버지 보다도 더 이념에 치우쳐서 우리가 살아간다면 그것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생각이나 철학이 아닙니다. 이념 위에 올라계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이념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반역하는 그러한 세력들과 연합하고 그 세력을 묵인하고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성경적인 사고관이 아닙니다. 

공산당과 하나님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사회주의와 하나님과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고 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 나라의 리더쉽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서 그 나라가 얼마나 축복되고 아니면 멸망의 길로 가느냐, 그 주변국가까지도 힘들게 하는 것이, 지도자 한 사람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지 않습니까? 히틀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도 무수한 인명이 살상이 되고 얼마나 큰 끔찍한 고통 가운데 인구가 전쟁으로 인한 고통가운데 있는 것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만큼 지도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 지도자들을 위해서, 정치인들, 국회의원들을 위해서 정말 간절하게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우리가 영적으로, 성령으로 충만하여서 영적인 지각을 가지고 주님 주시는 능력을 가지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지금 우리나라가 얼마나 이념으로 병들어 있고 사회 전반적으로 곳곳에 사회주의 사상에 물든 자들이 사법부를,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지 방송언론을 보십시오. 얼마나 좌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까? 여러분, 이것을 정말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이 한 시간 정말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간절히 이 테힐라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말쑴: 테힐라 강도사님
정리: 루디아/최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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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굉장한 것인지......

 

 

로마서 8:32 =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하나님이 그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내어 주셨다면 도대체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란 말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시려고 하나님의 후사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셨다면 도대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후사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을 찢어서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 살을, 그 피를, 그 생명을, 그 후사됨을 모두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우주만유의 창조주요 주관자의 후사가 그 후사됨도 찢어서 우리에게 나누어 주었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믿는 우리 속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 생명이, 그 후사됨이 우리 안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믿는 자를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후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후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부질없는 이 세상 부귀영화에 연연하지 마십시오. 그것들은 우리가 이 세상 떠날 때 하나도 가져갈 수 없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떠날 때, 관 두껑이 닫힐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마음에 들어와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 살과 피 한 방울, 겨자씨보다 작은 믿음 하나뿐입니다. 그 믿음 하나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가게 될 것입니다. 그 작은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후사됨입니다.

 

그 작은 믿음, 그 작은 후사됨 한 조각이 얼마나 굉장한 것인지 아십니까? 구원 받은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우주만유를 다스리는 후사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런 우리가 나타나기를 모든 피조물이 탄식하며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8:18-22)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예수 믿어서 그저 죽어서 좋은 곳에 가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만 우리의 영혼을 좋은 곳으로 데려 가시는 영적세계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적세계 뿐 아니라 동시에 우주만유를 지으신 물적세계의 하나님이십니다. 저 하늘을 보십시오, 끝 간 데 없이 광활한 우주를 보십시오. 은하계 안에만 태양과 같은 항성들이 천억 개가 넘습니다. 우주에는 은하계 같은 성운들이 2천억 개가 넘습니다. 수백억 광년 우주공간에 끝없이 펼쳐진 별들의 수는 지구상의 모든 해변, 모든 사막의 모래 알갱이 보다 훨씬 많다고 합니다. 능력 무한하신 하나님이 지으신 하나님의 끝없는 세계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 후사들에게 얼마나 놀라운 선물을, 상속을 준비하고 계신지, 하나님의 후사가 얼마나 굉장한 것인지 상상이나 해보셨습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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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 밤
          루디아/최송연 
 
별들이 빛을 잃고
달도 그 얼굴을
가리워야만 했었네 
 
독생하신 하나님
말씀이 육신을 입으신
그분의 마지막 밤
 
새들마저 모두 
캄캄한 어둠 속으로
숨어버린 밤
 
고귀하신 얼굴
피가 땀방울 되어
흘러내리며 아버지의
낯을 구하신 밤
 
아버지의 심장은
더 붉은 피로 얼룩져
가고 

 

차라리 
내가 대신 마신다면 
내 마음이 이토록 
아리지 않으리라
 
 
구속 주
그 분께서는
불쌍한 영혼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셨나
 
어찌하여
그 흉폭한 자들에게
존귀하신 몸을 내어
주셔서 그토록
갈기갈기 찣기셨나
 
그날 그 밤의 기도
피땀으로 지새운 눈물이 없었더라면
 
나 대신 
그 모진 십자가의 형벌을 
받지 않아도 되셨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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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속죄제사>

 

오랜 세월 드려오던 짐승제사는 예수님의 단 한 번의 제사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 단 한 번의 제사는 당시 세계최대, 최강의 로마제국이 통치하던 세계의 중심 예루살렘에서 백주에 벌어진 참혹한 십자가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제사는 순 엉터리로 드려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지었을 때는 소나 양을 사서, 가난한 백성인 경우는 비둘기라도 구해서, 제사장에게 가지고 와 속죄 제사를 드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제사장은 백성이 희생제물을 끌고 오면 먼저 제물을 검사합니다. 병이 들었거나 눈이 멀었거나 비루먹었거나 다리를 절거나 흠이 있는 짐승은 불합격입니다. 짐승이 검사에서 통과하면 제사장은 그 백성에게 죄를 자백하게 하고 짐승에게 안수하여 그 백성의 죄를 짐승에게 전가한 다음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립니다. 죄를 범한 백성대신 애꿎은 짐승이 죽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가룟유다에게 은 삼십을 주고 예수 희생양을 샀습니다.

가야바 대제사장 집으로 끌고 갔습니다.

가야바 대제사장은 예수가 합당한 제물인가 검사합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대답하자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너희가 이 참람한 말을 들었도다.” 하고는 안수를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데 이 보다 더 훌륭한 제물이 어디 있고 무슨 검사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그런데 안수를 아주 고약스럽게 합니다.

손을 머리에 얹고 자신들의 죄를 자백하는 대신 주먹과 손바닥으로 뺨을 치고 침을 뱉고 온갖 거짓고소와 욕설과 모욕을 퍼붓습니다. 참으로 못돼 먹은 안수입니다.

밤새도록 그렇게 예수님에게 악독하게 안수를 한 다음 빌라도에게로 끌고 옵니다.

 

이번에는 로마총독 빌라도가 온 인류를 대표해서 제사장 역할을 합니다.

온 인류를 속죄할 제물에 흠과 티가 있나 없나 검사합니다. 이것저것 물어봅니다.

유대인의 왕이냐 물어보고 네 나라가 어디 있느냐 물어보고 진리가 뭐냐고 물어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 사람은 죽일 죄가 없다.”고 예수 제물에 합격판정을 내립니다.

아무 흠도 점도 없고 죄도 없는 완벽한 제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바라바와 예수를 세워놓고 묻습니다. “누구를 놓아줄까?”

유대인들은 소리칩니다. “바라바를 놓아주시오.”

“그럼 예수는 어떻게 하랴?”

“십자가에 달아 죽이시오.”

제물이 될 염소 두 마리 중 하나는 아사셀 속죄염소로 광야로 보내고 하나는 희생제물로 잡는데 여기에서는 바라바가 아사셀 염소가 되고 예수님은 희생제물이 됩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줄 요량으로 옷을 벗기고 잔혹한 채찍질을 하게 하는데 그 채찍은 끝에 작은 금속 갈고리를 달아 단 한 번의 채찍질에도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이 잔혹한 채찍질은 제사장이 희생제물을 잡아 가죽을 벗기고 칼질을 해 각을 뜨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빌라도는 대야에 물을 담아오게 하여 손을 씻습니다.

성막과 성소에는 번제단이 있고 그 다음에 물을 담아놓은 물두멍이 있지요.

제사장이 거기에다 손을 씻는 것과 똑 같습니다.

빌라도가 멋모르고 하는 짓이 완전히 제사장 짓입니다.

 

 

그런 다음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은 끌고 가서 홍포를 입히고 가시면류관을 씌우고 갈대를 오른손에 쥐어주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조롱을 하면서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는 엉터리 대관식을 치러줍니다.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머리를 때리며 못 된 축하연까지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승리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 만물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하늘보좌 우편에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세우실 것인데 로마군병들이 멋도 모르고 대관식을 하고 축하연을 하는 셈입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에게 십자가를 지워 골고다 언덕 제단으로 끌고 갑니다.

이삭이 번제에 쓸 나뭇짐을 지고 모리아산을 오른 것처럼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그 언덕을 오릅니다.

아브라함은 나무를 쌓고 그 위에 이삭을 올렸는데 그들은 십자가를 세우고 예수님을 못으로 박아 매달았습니다.

불을 피우는 대신 뜨거운 태양 아래 놔두었습니다.

그렇게 속죄제사를 드립니다. 아주 못되고 악독한 제사입니다.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경건은커녕 조롱하고 조소하면서 구경하였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그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고 욕을 했습니다.

십자가 나무 위에서 예수님은 고통으로 불태워졌고 그 연기는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처절한 부르짖음으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숨을 거두자 로마군병은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제물은 미리 죽인 다음 태워야 하는데 태운 다음 죽인 것입니다.

그 참혹한 고통을 다 당하도록 말입니다.

 

 

참으로 못돼 먹고 참으로 악한 제사였습니다. 참으로 못돼 먹은 백성들, 참으로 악한 군사들이었습니다. 제사장도 엉터리요 아사셀 염소도 엉터리요 제사의 순서나 방법도 엉터리, 모조리 엉터리였습니다. 도대체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개판 제사였습니다. 참으로 악하고 참혹한 엉터리 속죄제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엉터리 제사를 받으시고 모든 죄인들,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제사는 순 엉터리였지만 그 제물이 완전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흠 없고 완전한 제물을 하나님께서는 받지 않을 수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앞에 엎드리십시오. 그 제사를 받으신 이상 누구든지 엎드려 그 속죄제사에 참여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용서해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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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방언 통변 은사

                  루디아/최송연

 

 

여호와를 찬양하라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라

모든 만물아 다 일어나라
손뼉을 치며 그분을 찬양하라

그는 구원자이시며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사랑이 아니냐

내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입었음을
찬양하라

하늘의 천군아 천사들아
모두 일어나
그분의 거룩함을 경배하라

그분은 다시 오실 왕
온 세상을 다스리실
임금이시라

이제 네 눈에서 눈물을 
제하리라 슬픔도 이별도
죽음도 모두 너를 괴롭게 할 수 없으리라 

찬양하라 내 영혼아
그분의 아름다움을
영원 영원히


*
저는 방언통변의 은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방언통변인지 저는 모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테힐라 강도사님의
이 방언찬양을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비오듯...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내 영혼에
떠오르는 대로 받아서
적어본 것입니다.

주님께서 영광받으시기를...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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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닮기를
         루디아/최송연
 
 
"예수님 닮기를, 예수님 보기를,
내 평생 소원 예수님 닮기를...
완전하신 나의 예수님."
아멘 아멘!

가녀린 빗줄기 속에
살포시 돋아난 푸른 새싹이 생명의 젖줄,
화사한 햇살을 바라고
소망하듯...

동구밖 바위에 걸터 앉아 장에 가신 엄마 돌아오길
눈이 빠져라 먼 곳을 바라보는
소녀의 그렁그렁 눈물맺힌 눈망울인 듯...

그리운 임을 기다리는 마음이 너무 절절하게
담겨진 가사

그렇죠.
사랑하면 닮고 싶고
사랑하면 보고 싶고
사랑하면 그리웁고

우리 예수님을 향한
테힐라 강도사님의
그 애절한 사랑노래

하늘향기 되어
예수님의 보좌 앞에
즉각 상달될 것같군요

저 또한 예수님을 닮고
싶고, 보고 싶고, 그리워
그리워 먼 하늘을 바라보게 만드는
영감으로 가득찬 곡

그리운 임이시여
언제나 뵈올 수 있을까요.

한 해 두 해
세월은 흘러가지만 주님 향한
우리 마음은 날로날로
더 뜨거워지고 있음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찬송시가 강도사님의 마음을 대변해 주고
성령님이 걸맞은 곡을 허락하셨네요.

it's so sweet.
달콤하기 그지없습니다.
할렐루야!
주님 영광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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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양식 아래

루디아/최송연

할렐루야!
오늘 강도사님의 입술을 통해 성령님께서 주신 말씀은
꿀송이처럼 달고 내 영혼에 비수처럼 깊이 박히고...

그래요.
나 자신부터 먼저 점검해야 하는데
늘 남의 부족함을 바라보고

알량한 지식으로
선생이 되어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다른 이를 가르치려고
하는 교만...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내가 의로운 자 되어 남의
부족함을 판단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정죄마저도 서슴치 않는
이 악한 생각은 어디로부터일까요?

망각증 때문일까요. 아니면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나의 자아 때문일까요.

내 이웃
내 형제. 자매들이 짓는 죄보다 더 흉악한
나의 모든 죄가 용서함 받았음을 잊어버리는 것

우리 주 예수님을 그 모진 형틀
십자가에 대못을 박은 자는 다른 이가 아닌
바로 나라는 것도...

오 주님,
당신의 십자가 그 참혹한 고통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
나의 감추어진 죄
영원한 형벌을 면치 못할
나의 수많은 죄 때문이었음을...

다시금 깨닫는 귀한
말씀을 살리는 방망이로
사용하여 주셔서

뼛속 깊이 파고 들고 관절을
찔러쪼개는 능력이 나타나게
하신 성령님의
은총을 감사드리고
회개합니다.

주님의 긍휼하심을
구하오니 다른 이가 아닌, 나,
이 교만한 죄인을 당신의 마음을 닮은
순결한 영혼으로 빚어 새롭게 새롭게 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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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무리들

         루디아/최송연

 
"그때 그 무리들이 예수님 못박았네 녹슨 세 개의 그 못으로
망치 소리 내 맘을 울리면서 들렸네 그 피로 내 죄 씼었네." 아멘아멘.


오 주님,
거룩하시고 존귀하신 성자 하나님,
어찌하여 벌레보다 못한 죄인의 몸을
입으실 결단을 하셨습니까?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을 입을만큼
선하지도 않고 처음 창조 때의
그 깨끗한 양심을 보존하지도 않은 자들,
추악한 죄인일 뿐인 것을요...

어찌하여 참으셨습니까?
벌거벗기운 그 수모를,
손과 발 깊숙이 파고드는 대못의 그 모진 고통을,
부드러운 이마를 마구 후벼파는 그 뾰족한 가시들을...

오 주님,
갈보리 언덕에 십자가가 세워지는
그 순간 하늘에는 열 두영이나
더 되는 막강한 천군과 천사들이
정렬하고 서서
"이제 그만 되었으니 저들을 쳐라!"
성자 하나님의 명령 한 마디만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치를 떨며 서서 눈물을 쏟아내고 있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당신의 귀한 몸을 죽여야 할만큼의 가치도,
존귀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그저 눈만 뜨면 물마시듯 죄와 짝하기를 즐기는
못된 죄인들일 뿐인 것을요.

당신이 지옥불에 던져 버린다고 하여도
한 마디도 항의 할 수조차 없는...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당신의 귀중한 그 보배피를 흘리심은
그 누구도 아닌 오직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그
피로 억만 내 죄를 씼으셨음을...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나를 위해 모두 쏟아 주셨음을...

주님께서 그 귀한 보배 피 흘리신 이유를
테힐라 강도사님이 절절한 영의 음성으로 전해주시니
미련하고 우둔한 우리의 영이 깨어나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그 치욕과
고통의 순간을 뼛속 깊이 느낄 수 있어
이 또한 은혜 중 은혜입니다.

예수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당신이 그 피로 사신 이몸 이제는
당신만을 온전히 사랑하고 당신을 위해
살리라 눈물로 고백하오니
내 주여 받아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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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날개 밑

    루디아/최송연

 

 

"주 날개 밑 내가 평안히 쉬네

밤 깊고 비바람 몰아쳐도

아버지께서 날 지켜주시니

거기서 편안히 쉬리로다." 아멘 아멘!


저 천성을 향해
달려가는 나의 여정
머나먼 이 순례의 길

지금까지
주께서 그 넓고 크신 사랑의 날개로 나를 
품어 주지 않으셨다면

나 지금보다
얼마나 더 많이 힘들었을까

독수리가 무서운 발톱으로

병아리를 낚아채 가려고
공중에서 빙빙돌 때면

암닭이
그 날개 속에 병아리를 품어 보호하듯이

주께서
나를 모든 악에서
건져 보호하여
주지 않으셨더라면

나 지금쯤 어디에
주저앉아 울고 
있을까

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 위에서 피와
물을 다 쏟으신 그
사랑이

넓디 넓은 날개 되어
항상 나를 지켜 보호해 주셨고

내가 힘들 때면
주의 피묻은 손으로
토닥토닥 다독여
새힘을 주셨으며

피곤하여 쓰러질 때면
일으키시사
그 넓은 사랑의 날개로
업고 와 주셨으니

앞으로도
내 인생 여정 끝나는
그날이 오기 전까지

내 가는 길이 비록
험하고 환난 풍파
쉬지 않고 불어대며

매서운 눈보라
휘몰아치는 혹한을 
만난다고 하여도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아요.

주께서 그 넓고 넓은
사랑의 날개로 항상
나를 품어 주시고
보호해 주실 것을
믿고 있으니

나는
영원한 그 나라에서
내 사랑 그분과 함께 영원토록 안식을
누릴 것도 굳게 믿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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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고쳐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나을 것입니다. 저를 살려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살아날 것입니다.
주님은 제가 찬양할 분이십니다. 새번역 예레미야 17장 14절 말씀."

이 말씀을 띄워놓고 여러분, 정말 주님께 내 자신을 다 내어놓고 오픈(open)해서 이 시간은 주님께 나아갑시다. 제가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주님, 주님 앞에서 내가, 내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고 의식하지 못하고 내 자신도 속고 있는 내 안에 있는 이 가라지, 내 안에 있는 이 옛사람, 이 자아의 쓴뿌리 이런 것들
내가 일상가운데서
평안하다 잔잔하다.

그냥 편안한 생활을 할 때는 이런 것들이 마치 종지에 빗물을 담아놓고 있으면 그 빚물이 깨끗한 것같은데 시간이 지나 한참 있으면 그 밑에 많은 오물이 가라앉지 않습니까? 우리 심령의
상태도 평안할 때는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극한 상황이 오고 사람과의 인과관계에서 감정을 건드리고 나를 예민하게 하고 나를 자극시키면 내 안에 있던 흙탕물이 일어나거든요.

제가 여러분에게 주님, 나를 고쳐주십시오. 하는 그 말씀은 여러분 안에 가라앉아 있는 평안할 때는 들어나지 않는, 가라앉아 있는, 내 안의 가라지들, 내 안에 있는 이 옛사람의 자아의 쓴뿌리들, 이런 것들을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을 깊이 만나며 주님의 얼굴을 구하면서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가운데 여러분의 영혼 속에, 심령 속에, 마음 속에 있는 그런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돌아보면서 이 부분, 주님, 내 안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내 안에 교만이 있습니다. 내 안에 시기와 질투가 있습니다. 내 안에 음란이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합니다.

주님, 나는 너무나 나태합니다. 나는 남의 흉을 잘 봅니다. 나는 남을 잘 판단하고 정죄를 잘합니다. 게으릅니다. 기도도 게으르고 모든 것이 제가 게으릅니다. 이것을 드려다 보란 것입니다. 할렐루야!



 말씀: 테힐라   정리: 루디아/최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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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접은 종달새
      루디아/최송연
 
새파란 하늘에 
하얀 새털구름 
한 조각 유유히 
흐르는데
 
울창한 대나무 숲 
밑둥 습진 곳에
날개 접고 앉아
 
낯선 환경에
적응하려고 애쓰며 
바둥대는 작은 새
 
그대
이름하여 종달새
 
세상 시름 모두 잊고
밝고 명랑하여 하늘을
날면서 노래하던 새여라
 
어찌하여 대나무 숲 
밑둥 습하고 추운 곳에
혼자 앉아 울고 있는가
 
어서 날개를 펴야지 
창공을 맘껏 
날아올라야지
 
저토록 푸른
하늘이 그대를 향해
손짓하며
부르고 있지 않은가...
 
그대는 이 땅에 
속하지 않은 
저 하늘에 속한 영혼(魂)
지고지순한 한 마리 종달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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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율례와 계명
      루디아/최송연

주의 율례와 계명은

아침에 돋는 햇살처럼 찬란하며

빛 속에 드러난 보석같이 영롱하고
밤하늘의 별보다 더 반짝이나이다

주의 계명과 법도를 벗어나

사신 우상을 만들어 섬기던

열국과 열왕들의
그 오만함이여

주의 손이 그들을 징계하셨도다
지혜의 神이신 성령님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시고 기름 부으사

내 영혼 속에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이 결코
자리 잡지 못하게 하시고

주의 율례와 계명과 법도를 사랑하며
준행하는 은총 속에

나 항상 거하여
영원한 생명을 거두게 하옵소서


*열왕기상 하
를 읽을 때 주신 감동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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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대재앙을 준비하라>
         루디아/최송연

하늘에는
일곱 천사가 재앙의 나팔을 불기 위해 기립하고
주의 심판의 날을 기다리고 있네

첫째 천사의 나팔소리
울리며 땅을 진동할 때
피 섞인 우박과 불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네

땅 삼분지 일이 타서 사위고 수목과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사위네

둘째 천사의 나팔소리
울리는 때  태산처럼
큰 별이 하늘에서
바다로 떨어지니

바다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생물들
삼분의 일이 죽으며 바다 위를
항해하던 배들 삼분의 일이 깨어지네

세째 천사의 나팔 소리에
횃불같이 타는 큰 별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과 여러 물샘을 덮치니

그별 이름하여 쓴 쑥
그 쓰디쓴 물로
인하여 인간들 삼분의 일이 죽어나가네

네째 천사의 나팔소리
진동하매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 일월성신 삼분의
일이 빛을 잃고

빛을 잃은 해와 별들
때문에 지구의
낮과 밤 삼분의 일이 비췸이 없어 캄캄한
암흑 천지로 변하네

다섯 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손에 무저갱의 열쇠를 쥔 별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졌네

그 별이 손에 쥔 열쇠로 무저갱을 여니
그곳에서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와
지구를 덮치니
남은 해와 공기마저
캄캄해 지고

무저갱에서 올라온 황충들은 각종 수목을
해할 권세는 없으나
오직 인간들을 해할 큰 권세를 받았도다

전갈이 괴롭게 하는 그 괴로움으로 다섯 달 동안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지 않은 자들을 무섭게 공격하니
그날에 사람들이 죽기를 바라나 죽음마저 그들을 피하리라

여섯 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당했던 4천사가
풀려나고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일 권세를 받았음이여

이 재앙은 그 천사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라

이 마지막 재앙에
사람 삼분 지 일이 한날한시에 죽고

남은 자들은 여전히 회개치 않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는도다

일곱 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하나님의 비밀이
그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아멘

마라나 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8장, 9장 중

*주님
우리가 이 무서운
환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7곱 천사들의 재앙을
시 형태로 기록하게 된 동기

말세가 가까워 올수록 각종 이단의 괴수들은
온갖 미혹의 영을 풀어 영혼들을 사냥질하는 이때...

일반 기성교회 목사님들이 요한계시록 강해를 두려워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유는
너무도 어려운 내용이어서 자칫 잘못 해석하다가는
이단으로 내몰리기 쉽기에 그런 것같습니다.

이런 때를 틈타 이단들은 사사로이 풀어 흥미를 가하고

어리석은 영혼들은 그것이 옳은가
하여 그곳으로 몰려들 갑니다.

이런 현상을 안타깝게 여기던 차 그렇다면 내가
먼저 요한계시록을 읽어보자. 그런데 나 또한 어렵다고 느끼기는 매한가지. ..

할 수 없이 이해를 하지 못해도 먼저 읽어나 보자.
성경 신구약 66권 중 이루어지지 않은 예언은 단 한 곳 요한계시록 아니던가

하여 나는 요한계시록을 100독을 목표로
무조건 읽어보리라 결심하고 부지런히 읽기시작...

오랜 세월 끝에
이제 곧 100독을 눈 앞에 두고 있는데...

갑자기 "네가 할 수 있는 대로 쉬운 언어로
알기 쉽게 풀어서 적어 더 많은 사람이 읽도록 전하라.
때가 임박하다."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감동을 주시는 대로
일곱 천사들의 나팔소리를 시편 형식으로 풀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성령님이 감동을 주시는 때만 풀어서 적을 것이며
성령님이 말씀 주시기 전에는 잠잠할 것입니다.

나 루디아/최송연은 요한계시록을 강해하는
사람이 아님을 먼저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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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맡긴 모든 역사 힘을 다해 마친 후

밝고 밝은 그 아침을 당할 때

나의 주를 나의 주를 그분 곁에 서서 뵈오며

나의 주를 나의 주를 손에 못자국을 보아 알겠네."

아멘 할렐루야!


새까맣고 칙칙한
하늘을 반짝이며
깨우는 별빛처럼

어둡고 캄캄한
내 영혼을 깨워
밝은 빛으로 이끄는
강력한 호소력

영롱한 새벽 이슬이
메마른 풀숲을 적셔
소생시켜 주듯

바싹 메마른
내 영혼을 적셔 소생시키시는
성령 임재의 바람

테힐라 강도사님이
주께 바치는
영감 넘치는 찬양들...

듣는 내내 폭포수처럼 콸콸 쏟아져 내리는

은혜로 마음은 뜨겁고
두 눈에서는 감동으로
눈물이 주르륵

오 주님,
살아 있는 날동안
주가 맡긴 모든 역사 힘을 다해

마칠 수 있도록 충성된 마음을
내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나는
무능하고 너무 부족하여 주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그 어느 것도 제대로

해낼 수가 없음을 주께서 아십니다

내게 허락하신 생명도
벌써 황혼을 맞아 캄캄한
밤을 향해 질주하고 있네요

나를 위해 십자가의
그 참혹한 고통을 당하셨고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혔던
내 사랑, 나의 주님

그 사랑의 주님
그 거룩한 성상을 나 또한 만나 뵙고 싶고

나 때문에
못자국 난 내 주님의 손을

한 번만이라도 잡아보고 싶은
마음 간절한데...
주님 뵐 면목이 없는 나는 어찌하나요

잘 한 것이 너무 없는
무익한 여종을 불쌍히 여겨주십사 이 시간
눈물로 고백합니다

영화롭게 시온성에
들어가 흰옷을 입고
천사들과 함께 황금 길을
걸으며 금거문고를
탈 수 있는 그날까지

내게 주어진 생명
남겨진 이 시간들
주께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좇아

오직
주님을 위해
주님을 향해
불꽃처럼 활활 태우고

온전히 불살라 드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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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주 예수
힘주사 큰 권능 얻겠네"
아멘 아멘 할렐루야!


하늘의 향기를
그대 맡아보았는가

심심산골 옹달샘의
맑은 물 그 시원함을
그대 맛보아 아는가

솔솔 불어오는
잣나무 숲의 신선한 바람
그대 느껴 보았는가

상큼한 이슬방울
영롱한 그 빛 그대
바라본 적 있는가

초가지붕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낙수 소리 그대
들어보았는가

꿈속에서라도
천사들의
고운 노래소리를
그대 엿들은 적 있는가

친구여
여기 그 모든
신비의 소리들이
모여 있다네

오 주님
깨끗하고 박력 넘치는
영혼 야성의 보이스
부드럽고 매혹적이며
세련된 영의 보이스

신비한 음색으로
조화를 이룬
환상의 듀엣
온 맘과 정성 다해

십자가의 보혈을
송축합니다.
당신의 크나큰
사랑을 노래합니다

죄악에 찌들어
영 죽을 영혼을
살리신 그 은총을
찬송합니다

기쁘게 받으시고
잠시나마 행복하소서
내 사랑 나의 예수님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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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의 고백>  (1) 2024.02.12

오늘은 반가운 한통의 카톡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먼저 나누고 시작하겠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체들을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주사랑 권사님의 남편 이창길 집사님 병원에서 페렴이 악화되어 식사를 코로 관을 꽂아서 식사를 했지 않습니까? 병원에서는 의사가 계속 입원할 것을 권하고 코로 관을 통해서 식사를 해야지 관을 빼버리고 입으로 식사를 하게되면 페에 무리가  가서 페렴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해서 그런 것들이 많이 부담이 되었는데 주사랑 권사님이 정말 믿음으로   주님께 맡기고 집으로 퇴원을 하고 코에 식사하는 관을 빼고 입으로 식사를 했습니다.

기도하는 우리 군사님들이 이창길 집사님을 위해 기도했는데 그렇게 집에서 지내시는 동안에 며칠, 약 일주일 정도 지난 것같은데 그 과정이 우리도 좀 궁금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오늘 오후에 권사님을 통해서 연락을 제가 카톡으로 받았는데 여러분과 함께 나누겠습니다.

"강도사님, 안녕하세요. 할렐루야!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오늘 병원에 가서 폐사진을 찍었는데 거의 정상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폐가 안 좋아서 계속 어려운 가운데 있었는데 오늘 병원에서 정상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의사 말이 재발 확률이 크다고 하니까 잘 하라는 권면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치료해 주신 것을 저는 믿습니다. 솔직히 코에 관을 빼고 나오면서 불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기도하고 베드로전서 2장 24절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입었다." 말씀을 우리가 받을 때 저의 마음에 평안을 받았고 마음이 편안해짐을 경험했습니다. 그런 기도 후에 이렇게 완치가 되어서 너무나 기쁩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저를 위한 말씀은 읽기에 좀 그렇고
테힐라 님과 루디아 님 그리고 중보기도 해주신 모든 기도군사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직 힘이 없어서 잘 걷지를 못합니다. 치매 약 때문에 파킨슨도 왔고 몸이 많이 경직되어 뻣뻣합니다.  몸이 풀리고 근육이 부드러워지고 잘 걸을 수 있도록 기도 계속 기도부탁드립니다. 하는 요지의 간증입니다. 기쁜 소식 감사합니다.

여러분도 계속 기도하시겠지만, 우리가 "주님, 이 병을 고쳐주세요." 하는 기도의 패턴을 바꾸라고 그랬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는 말씀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있으라 하면 있고 없으라 하면 없는 겁니다. 빛이 있으라 하니까 있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채찍에 맞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모든 병에서 깨끗이 나음을 입었다." 할렐루야! 우리는 이 약속의 말씀을 너무나 단순하게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순전하게 믿어야 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믿읍시다. 할렐루야!

저도 어릴 때 너무나 큰 병으로 인해서 거의 죽음직전까지 갔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의 능력으로 깨끗이 고침받고 저는 그 병 이후로 재발되는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건강하게 그렇게 살아오고 있는데, 여러분들, 주님은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그 질고를 담당하시고 질고를 깨끗이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채찍을 맞으셨던 것입니다. 제가 그 채찍이 보통 채찍이 아니라고 얼마나 많이 설명했습니까? 우리의 영혼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우리 모든 억만 죄악을 다 홀로 담당하시고 한 번에, 단번에 화목제물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예,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면 구원을 받습니다.

자, 육신의 구원, 질병의 구원은 어떻게 받습니까? 이것도 주님께서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2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그 채찍을 맞은 것은 십자가 골고다 언덕길을 가기 위한 그 과정이 아니라, 그 과정 속의 하나의 어떤 채찍으로 맞는 하나의 형벌이나 고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신 것은 저와 여러분의 모든 더러운 질병을 깨끗이 탕감하고 다 치유하시기 위하여 그 치유의 댓가를 예수님께서, 그 살벌한 채찍을 맞으심으로 다 댓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여러분,마지막 이 믿음,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셨음으로 내 모든 병, 어떤 병이든지, 불치병이나 암덩어리든, 희귀병이든 모든 병을 깨끗이 나음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단순하게 선포해야 될 줄 믿습니다. 어린아이 같은 믿음으로 너무나 순전하게 받아드려야 될 줄 믿습니다. 

예, 내 병, 내 이 아픈 고질병, 희귀병 나를 괴롭히는 지긋지긋한 이 병 이것은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셨음으로 나는 깨끗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너무나 단순한 이 진리의 말씀을, 예수님의 빽을 믿고 그냥 선포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내 병을 다 치료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이 병에서 놓여 났고 해방을 얻었다. 완전히 치유되었다." 이것을 여러분, 정말 순전한 믿음, 단순한 믿음으로 우리는 선포해야 될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봅시다,  여러분. 끝까지 돌파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나의 왕으로, 나의 하나님으로, 나의 산성으로, 피난처로, 나의 의사, 치료자, 나를 치료하시는 만병의 의사로 우리는 예수님을 모십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치유를 선포하셨고 예수님이 치유를 담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셨다고 하셨으니 우리는 그것으로 다 치유를 받았다고 확실하게 믿으면 됩니다. 할렐루야! 그렇게 믿음으로 선포합시다. 지금 우리가 그렇게 믿음으로 선포해도, 테힐라 님, 내 아픈 몸의 증상은 그대로 있지 않습니까? 내 환부의 이 상처와 이 아픈 증세는 그대로 있는데 어떻게 믿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믿음으로 그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증세는 아직 남아 있다 할지라도 계속 믿음으로 우리가 고백하고 앞으로 달려나가면, 치유를 선포하면서 나가면 반드시 이 병은 깨끗이 사라질 것이고 치유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의 선포를 기도시간에만 할 것이 아니라 기도시간 끝나고 집에 돌아가서도 늘 이 치유의 믿음의 선포를 마음으로 또 입술로 그렇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것이 우리가 그냥 치유의 습관화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두가 치유 사역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 주님,  우리에게 정말 단순한, 어린아이 같은 믿음을 주시옵소서. 아멘.

간증: 테힐라 글: 루디아/최송연

<꽃처름 아름다운 삶이 아니어도>

                   루디아/최송연

 

"주여 꽃처럼 아름다운 삶이 아니어도

나는 당신이 좋을 수 밖에 없어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아멘 아멘 ~

어쩌면 이토록
내 마음을 잘 나타내는 시(詩) 아름다운 찬양이
또 있을까요.

심심산골 깊고깊은
숲속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실바람이련가...

아무도 관심 없는
외로운 들판에
홀로 피어난 한송이 
청초한 들꽃이련가

은은하고 부드러운 향기로

내 영혼을 울리는 소박한 음색의 보이스

또 다른 은혜로 나의 주 당신의 사랑을

노래하는 아침(저녁),

그곳에 주님의 사랑이 흐르고

형제 자매의 사랑이 어우러져

그토록 그리던 저 하늘나라를,
작은 천국을 맛볼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김영수 님의 천국 여행 간증을 들을 때도
신학적 논쟁을 떠나서

어린아이처럼 순수하신 영혼을

느낄 수 있었기에 많이도 부러웠답니다.

얼마나 순수하셨기에 주님과 함께 사자의
등을 타고 푸른 들판을 달릴 수가 있으셨을까...

너희가 어린아이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은 볼 수 없다

단호하게 말씀 하신 주님...

나는 과연
어린아이처럼 순결하고 순수할까요

그렇다고 답하기엔
나의 세마포에 얼룩이
너무 많아요
세상의 때가 너무
많이 묻었나 봐요

나도
주님을 만나 뵙고 싶고 천국도 가고싶은데
 
천국 백성 되기엔
턱없이 모자란 나의
눈을, 마음을 회개하오니
내 주여, 나를 도와주소서

주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으시고 정결하게 해주세요

나 지금껏 꽃처럼 아름다운 삶이 아니어도 내 주 예수님을 사랑할 수 밖에 없사오니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영혼의 눈을, 마음을 내게도 허락하여 주셔서

내 사랑
나의 신랑되신 예수님
당신의 그 귀한 모습을 꼭 만나뵐 수 있도록
나를 도와 주소서

소박함, 순수함, 해맑은
영의 보이스로 김영수 님이

주님께 올려드린 찬양은

내 자신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주님 앞에서 나를
새롭게 발견한 귀하고

복된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실하신 주>

      루디아 /최송연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아멘 아멘!

 
바람도 바다도 꽃들도
모두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하신 모습 그대로
자연에 순응하건만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변질하여
진리와 공의 대신
부조리와 불법이 만연하고
거짓이 진실을 가리고
 
당장 코앞만 바라보고 이득을 떠라
세상 앞이 보이지 않을만큼
캄캄한 세상이 되었네요
 
주의 피와 말씀으로
거듭난 주의 자녀들이
살아나가기에 이 세상은
너무 캄캄하고 거칩니다.
 
이런 때에 이리저리 상처받고
울다가 쓰러지지 말아야 합니다.
힘이 들 때면 더욱 눈을 들어
예수님을 버라보아야 삽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를
지키시는 분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강하신 분이심을 믿습니다.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신다
약속하신 신실한 주님,
그 약속 대로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시며
지켜 주시고 이 생명 다 하는 그
날까지 지켜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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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복지>
        루디아/최송연
 
 
오 주님...
참으로 아름답고 귀한 찬송
소망을 안겨 주는 찬송 감사합니다

무거운 죄짐을 걸머지고
끝없는 광야를 해매고 다니는
인생을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찾아주시고
감겼던 영안을 열어 
주셔서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며
고통당하시는 예수님,

그 모진 고통 속에서 나를 바라보시는
그분의 애잔한 눈빛은 내게 생명의
빛이었습니다

이제
그 찬란하고 아름답고 영원한 나라
그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려고
 
나의 무거운 죄짐을 삽자가 아래
내려놓고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떠라나선 이길 생명의 길

그러나 내 앞에 놓인 이길은
평탄하고 넓은 대로가 아니었고
펼쳐진 푸른 초원도 아니었소

좁고 협착한 길이요
험하고 험한 광야의
길이었습니다

불뱀도 많고 전갈은 또
어찌 그리도 많은지요
잠시만 한눈 팔면 덤벼들어
이리 깨물고 저리 덤비고 ..

천성에 가는 길이 심히 고달프고
힘들지만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께서 나를 지키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시니
저 가나안 복지에 나는 무사히
도착할 것입니다

그곳에는 보좌로부터 
생명 시냇물이 흘러 내리고
1년 12달 달이면 달마다
색다른 생명과실이 열리는 곳

그 요단강을 내가 건넌 후에는
저 생명 시냇가에 들어가 살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되
목숨을 버리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
그분과 함께 살 것입니다 길이길이...

테힐라 강도사님이 영혼으로 주께 바치는 
은혜의 찬송은 그 곡이
어떤 곡이던지

지친 영혼을
소생시키시며 주님께로
향하는 마음이 더욱 뜨거워지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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