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성장이 어느 때부터인가 정지, 또는 하락하고 있다고 한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안타까운 보고다. 이와 함께 그 원인과 대책에 대해서 이런저런 의견도 많다. 숭실대 한국기독교 문화연구소(소장 김영한)는 그 원인에 대해서 '목회철학의 빈곤'을 손꼽았다. 그리고 그의 근본적 대책으로 '하나님 중심의 목회로 돌아가는 것'이라 지적했다. 이번 제 4회 전국 목회자 신학세미나는 지난 2월 26일부터 5일간 숭실대학교에서 '하나님 중심의 목회와 한국교회의 갱신'이란 주제로 열렸다.

'하나님 중심의 목회'란 하나님이 목회의 중심에 계시고 목회자는 그 하나님의 사역에 보조한다는 뜻이며, '한국교회의 갱신'이란 목회자의 갱신, 교인들의 자기 갱신, 종교 왕국이 아닌 하나님의 왕국 지향, 세속 한 가운데 서있는 하나님의 집의 역할, 말씀과 성령의 충만 속에서 날마다 새롭게 되는 교회로의 지향을 뜻한다는 것이다. 본 세미나는 점차 높아져 가는 교육 수준에 부응하기 위한 목회자에게, 그리고 문화가 있는 교회, 사회의식이 있는 교회로의 발돋움을 갈구하는 성도들에게 유익할 것으로 기대한다< 편집자 주>

  Ⅰ. 서 언 
 
   말은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인품을 그대로 반영한다. 우리는 말을 통하여 그 사람의 지식 정도, 교양, 품성 등을 알 수 있다. 즉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 자신이 그대로 노출되는 말에 대하여 비상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함부로 아무렇게나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항상 바른 말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말은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인품을 반영하는 것과 동시에 말을 통해서 우리의 인품이, 인격이 형성된다. 바른 말, 선한 말만 하려고 애쓸 때 우리의 성품은 바르고 선하게 되며 비속하고 악한 말을 즐겨 쓸 때 우리의 인격은 고상해 질 수 없게 된다.  우리가 항상 바른 말을 하려고 애써야 하는 이유가 또한 여기에 있다.

  교회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이며 그 말씀을 준행하려는 성도들이 모이는 곳이다. 말씀이 중심이 되는 교회 안에서의 성도들의 언어는 보다 바르고 선하고 깨끗해야 한다. 성도들의 언어는 보다 고상해야 하며 경망스럽거나 비속해서는 안된다. 성도들은 바르고 선하고 깨끗하고 고상한 말을 통하여 자신의 인격과 신앙을 향상시켜야 하며 또 다른 사람에게도 덕을 끼쳐야 한다. 행여 바르지 못한, 경망스럽고 비속한 말을 함으로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까지 덕이 되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로 선교하는 사람이다. 설교자는 교회 안의 누구보다도 더욱 바르고 선하고 깨끗하고 고상한 말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힘있게 전할 수 있으며 아울러 성도들의 언어도 바로 지도할 수가 있다.

  오늘날 설교자를 비롯하여 교회 안에서 많은 성도들이 바람직하지 못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를 몇 가지로 나누어 간략하게 살펴 보고자 한다.

   Ⅱ. 본  론

   1. 술어의 오용 
   
  많은 술어들이 본래의 의미와는 달리 쓰이거나 아예 잘못 쓰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중 일례로 '예배보다'라는 술어에 대하여 생각해 보련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아직도 '예배보다'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예배(禮拜)의 본 의미는 글자 그대로 '절'이다.  그 의미를 확대하여 교회에서는 지금 우리가 아는 대로 여러 가지 순서를 진행하면서 하나님께 우리의 몸과 마음을 드리는 행위 그 자체를 예배라 부르고 있다. 순서가 좀 다채롭기는 하지만 이 예배의 근본 정신은 웃어른에게 머리를 숙이는 '절' 바로 그것이다.

  국어에서 '예배'란 절을 의미하는 명사다. 국어 어휘에는 한자(漢字) 두 자로 만들어 진 한자어가 많은데, 이것들은 거의가 명사적 용법으로 쓰이고 있다. 이 '예배'도 그 중의 하나다.

  한자어로 된 명사를 동사로 만드는 방법은 이들 명사에 접사 '-하다'를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공부-하다, 운동-하다, 숙제-하다, 노동-하다, 전쟁-하다, 수영-하다…' 등의 예를 들 수 있는데, 이들 동사는 각각 '-하다'를 붙이기 전의 명사인 공부, 운동, 숙제, 노동, 전쟁, 수영 등의 내용을 행위화한다. 물론 한자어가 아닌 '일, 말, 노름, 살림' 등의 명사도 '-하다'를 붙여 동사로 만들어 이들 내용 자체를 행위화한다.

 '-하다'를 붙이는 것보다는 일반적이 아니지만 '보다'를 명사에 붙여 동사를 만들기도 하는데 그 내용은 '-하다'를 붙이는 경우와 달라진다.  일례로 '축구하다'와 '축구보다'를 들어보면 '축구하다'는 주체(주어)가 축구를 하는 것인데 반하여, '축구보다'는 주체가 축구를 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 즉 제3자가 축구하는 것을 본다는 의미가 된다. '영화보다', '굿보다', '연극보다', '야구보다' 등이 모두 같은 성격을 띠는 동사다.

  이에 비추어 본다면 '예배-하다'는 예배 즉 '절'을 한다는 의미의 동사가 성립되어 교회 안에서 우리가 쓸 수 있는 용어가 되지만 '예배보다'는 남이 예배드리는 것을 구경한다는 의미가 되고 말기 때문에 우리가 쓸 수 있는 적합한 용어가 아니다.

  은유적 표현법이 되고 만 '소변보다', '대변보다', '뒤보다', '장보다'와 같은 어휘들을 감안한다해도 역시 '예배보다'는 안쓰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예배드리는 것을 굳이 은유법으로 표현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 '예배보다'가 처음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예배드리는 것이 볼만한 구경거리로 등장했던 이른 시기에 안 믿는 사람들에게 전도하면서 사용한 것이 그 발단이 된 것 같다. 그러나 초기의 번역 성경들에서는 '예배보다'는 안 쓰였으며 오히려 '절하다'와 '예배하다'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우리 조샹이 이산에 절?였거니와 오직 쥬는 맛당히 절할 곳이 예루살임에 잇다?니(1887. 예수셩교젼셔, 요안 4:20).
  너희가 아밤의게 절?미(1887. 예슈셩교젼셔, 요안 4:21).
  우리 죠샹은 이 산에셔 례?엿거니와 너희 말은 례 곳시 예루살렘에 잇다 ?더이다(1900. 신약젼셔, 요 4:20).   
  아버지 례?지 아니 ?리라(1900. 신약젼셔, 요 4:21).

   예수셩교젼셔 는 1887년 만주에서 선교하던 스코트랜드 선교사 로쓰 목사가 봉천에서 한국인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 김진기, 이성하 등의 도움을 받아 번역해 낸 신약전서인데 이 성경에는 '예배드리다'가 '절하다'(절?다)로 나타난다.

  1900년에 나온  신약젼셔 는 성서번역자회에서 1897년부터 신약의 낱권들을 번역해 내다가 1900년에 가서 이들을 함께 묶어 간행한 성경인데 이 성경에서는 위에 보인 바와 같이 '예배드리다'가 '예배하다'(례?다)로 나타난다. 이  신약젼셔 는 수정을 거듭하여 오늘날 교회에서 가장 널리 읽히고 있는 개역성경의 저본이 되는데 주지하는 바와 같이 개역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예배하다'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개역성경, 요 4:20).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개역성경, 요 4:21).

  성경에 이처럼 '예배보다'는 전연 나타나지 않고 '예배하다'가 전적으로 쓰이고 있음은 결국 '예배보다'는 적합한 용어가 될 수 없음에 비하여 '예배하다'가 적절한 용어임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기본적으로 '절하다'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예배하다'는 의미론적으로나 국어 조어법으로 볼 때 아무런 문제가 없는 용어이다.

  요즈음 우리는 교회 안에서 '예배하다' 대신에 '예배드리다'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이에 관하여 간단히 살펴보겠다.

  '예배드리다'는 '예배하다'의 겸양적 표현이다. '말하다'의 겸양어는 '밀씀드리다'이며 '절하다'는 '절(을)드리다', '청하다'는 '청(을)드리다', '경배하다'는 '경배(를)드리다', '질문하다'는 '질문(을)드리다' 등으로 겸양어를 만들 수 있다. 같은 방법으로 '예배하다'의 겸양어 '예배드리다'가 가능하다.

  또한 이 '예배드리다'는 예배가 나의 몸과 마음 즉 나의 모든 것을 정성껏 하나님께 묶어 바친다는 경건과 봉헌의 의미가 한층 부각되면서 그에 적절한 말 '드리다'가 자연스럽게 쓰이게 된 것이다.  '기도하다'가 '기도드리다'로도 많이 쓰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1977년에 나온  공동 번역성서  나 또 최근에 나왔던  표준새번역 성경전서 에서도 이 '예배드리다'가 '예배하다'와 함께 쓰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너희는 무엇인지도 모르고 예배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예배드리는 분을 잘 알고 있다.…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한다(공동번역성서 요 4:22, 24).  

  너희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을 예배한다.…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표준새번역 성경전서, 요 4:22, 24).

  예배의 대상이 분명히 하나님일 경우에는 '예배드리다'를 쓰고 그 외의 경우에는 '예배하다"를 쓴  공동번역성서 에 더 많은 공감이 간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에 대한 용어로는 '예배보다'는 적합하지 않고 '예배하다'는 어법상으로나 의미론적으로 하자가 없는 말이며, '예배드리다'는 아무런 하자가 없을 뿐 아니라 '예배하다'가 가지고 있는 내용 외에 경건과 봉헌의 의미가 더 포함되어 있으며 아울러 겸양을 표현하는 바람직한 용어다.

  이 '예배보다' 외에 다음과 같은 많은 술어들이 오용되거나 남용되고 있다.
축복
당신
주여, 하나님이시여
아멘
기도하였습니다
대표 기도
형제, 자매
철야 기도
사회자
영혼의 아버지
믿음의 아버지
믿음의 아들
내 양(내 새끼)
주의 종
전야제
목양실
당회장 목사
할렐루야

유태교적 용어(선지 학교, 제사, 제단…)
개(폐)회 찬송
우리 성도님들이
      축원합니다
      …

   2. 불쾌한 어감

  설교자가 서는 강단은 거룩한 곳이다.  이 강단에는 고상하고 깨끗한 것들이 올라가는 곳이다. 몸도 마음도 꺠끗하여야 하고 옷 매무새도 단정해야만 한다. 아울러 강단에서 사용되는 언어도 깨끗하며 고상한 말이어야 한다. 행여 고상하지 못한 말이나 비속어가 마구 쓰여지면 안된다.  이런 것들로는 지엄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힘있게 전파되기 어렵다. 이들은 설교자 자신은 물론 말씀을 듣는 성도들에게도 눈쌀을 찌푸리게 하기 때문이다.  설교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유념하여야 한다.

 1) 반말투
  설교자가 단 위에서 다음과 같은 반말투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기도를 열심히 하자구."
  "죽기는 왜 죽어?"
  "이래 가지고는 안돼."
  이와 유사한 것으로 다음과 같이 어미가 끊긴 문장을 구사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면 천국에 못 감(니다)"
  "더욱 열심히 해야 함(니다)"

  "이웃을 사랑해야 함(니다)"
  성직자를 지칭하거나 호칭할 때 '-님'을 붙이지 않으면 안된다.
   목사(님)   전도사(님)
   장로(님)   구역장(님)
   권사(님)   권찰(님)
   집사(님)   선생(님)
 
  물론 사람을 지칭하거나 호칭하지 않고 성직 그 자체를 가리킬 경우에는 '-님'을 붙이지 않아도 무방하다.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딤전 3:2-4).
   '집사들은 단정하고…깨끗한 양심에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딤전 3:8-9).
   '장로는 교회의 택함을 받고…당회에 보고한다.'(장로회 헌법 정치 39조)

 2) 비속어, 은어
  비속어나 은어도 강단에 올라갈 것은 못된다. 하나님 말씀과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새 발의 피, 엽전,  쇠푼, 엿 장수 맘대로, 웃기시네, 아구통 돌린다,      초친다, 기름친다, 부티 난다, 끝내준다, 줄탄다, 때빼고 광낸다, 작살낸다, 뿔났다, 쌔빈다
   아더메치유, 골 비었다, 왕초,
   식충이, 도레미탕, 꼬시다,
   김샌다, 눈깔, 토낀다, 놀고 있네,
   악바리, 호박꽃, 밥순이 묵사발 만든다,
   꼽사리 낀다, 초친다, 민주주의, 바가지, 제비,
   대갈통, 눈깔, 뺨때기, 뺨사대기,
   귀싸대기,
   빵깐, 잘났어 정말,

 3) 욕도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설교자의 입에 담아서는 안된다.
   짜식, 놈, 새끼, 이년,
   우라질 년, 염병할 년, 벼락을 맞을 놈,
   육실할 년, 썩을 놈, 빌어먹을 년,
   병신같은 놈, 빙충맞은 놈, 지랄하고 있네, 되질 년

 4) 농담도 거룩한 단상에는 올라가지 말아야 한다.

   3. 지방 방언의 남용

  설교자도 공공 집회에서의 화자(話者)임에 틀림없다.  공공집회의 화자는 가급적 표준어를 구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언어학적으로 방언은 방언대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방언이 특히 표준어와 아주 틀린 방언어휘들이 큰 도시 교회의 설교자 입에서 마구 구사된다면 말씀 전파에 득이 되지 못한다.  우선 어휘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말씀의 의미전달이 그만큼 약화될 수밖에 없다.

  다음과 같은 어휘들을 괄호 안에 들어 있는 방언으로 구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부엌(정지, 부섭…)       여우(여시,여깽이…)
   분침(푼침)              경황없다(경없다)
   갈비(가리)              궁상떨다(궁떨다)
   휴지(수지)              낙인 찍다(낙치다. 낙하다)
   무(무수)                마구잡이(막잡이)

   뱀(배암)                수두룩하다(수둑하다)
   벽돌(벽)                구들장(방돌)
   모이(모)                까막눈(맹눈)
   멸치(메리치, 며루치)     마른 빨래(건 빨래)
   아내(안해)               성냥(화곽)
   고린내(코린내)           잎담배(잎초)
   구린내(쿠린내)            잔돈(잔전)
   망가뜨리다(망그뜨리다)    푼돈(푼전)

   수삼(무삼)                더부룩하다(듬부룩하다)        
   윤달(군달)                귀뜀(귀틤)
   고구마(찰감자)            광주리(광우리)
   국물(멀국)                 솔개(소리개)
   옹골차다(공골하다)         까다롭다(까탈스럽다)
   우두커니(우두머니)         담배꽁초(담배꼬투리)
   잠투정(잠투세, 잠주정)      등나무(등침)
   떡보(떡충이)               똑딱간추(딸꼭단추)
   먼발치(먼발치기)

     4. 외래어의 남용            

  세계 어느 언어든지 외래어가 없는 언어는 없다. 외래어는 문화의 접촉으로 인하여 자연히 발생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느 언어든지 외래어가 존재하지만 그 양상은 같지 않다. 외래어를 신중을 기하면서 받아들이는 나라도 있고 무분별하게 마구 받아들이는 나라도 있다. 전자는 어떤 의미에서 주체성이 강한 나라들이며 후자는 그것이 비교적 약한 나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우리는 자성할 바가 많다.

  고유어와 외래어의 경계가 때로는 불분명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일반적으로 우리 고유어가 있는데도 이를 쓰지 않고 도리어 외래어를 무작정 선호한다면 이것은 큰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설교자는 이에 관하여 결코 무관심해서는 안된다.

1) 고유어
다음과 같은 고유어를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으며 또한 이를 얼마나 활용하고 있는지 자문자답해 볼 필요가 있다.

솔다1: 부레풀이나 콘크리트 등이 말라서 단단히 굳어지다. 
솔다2: 시끄러운 소리나 귀찮은 말을 많이 들어서 귀가 아프게 되다. 
솔다3: 넓이가 좁다. 폭이 좁다. 
숫구멍: 갓난 아이의 정수리가 아직 굳지 아니하여 숨쉴때마다 발딱발딱 뛰는 곳, 숨구멍, 정문
어섯1: 사물의 한 부분에 지나지 못한 정도
어섯2: 완전하게 다 되지 못하는 정도

엄장: 겉모양이 드러나게 어울리는 큰 덩치
엉너리: 남의 호기심을 사기 위하여 어벌쩡하게 서두르는 것
에다: 예리한 연장으로 도려낸다
에움길: 굽은 길
여: 물 속에 잠겨 잇는 바위, 암초
여우볕: 비 오는 날 잠깐 났다가 숨어버리는 볕
열없다: 조금 부끄럽다.  성질이 묽고 째이지 못하다.  담이 크지 못하고 겁이 많다. 
옭다1: 칭칭 잡아 매다.
옭다2: 올가미를 씌우다.
옭다3: 꾀를 써서 남을 걸려들게 하다.

욱이다: 안쪽으로 욱게하다. (욱다: 안쪽으로 우그러지다.)
웃비: 아직 우기에 좍좍 내리다가 그친 비
웃자라다: 식물의 줄기나 잎이 쓸데없이 길고 연약하게 자라다. 
이드거니: 한동안 뜨음하여 분량이 좀 많게
자드락: 나지막한 산기슭의 경사진 땅
자발없다: 참을성이 없고 행동이 경솔하다. 
재빼기: 재의 꼭대기
조살하다: 노인의 얼굴이 깨긋하고 조촐하다. 
좌뜨다: 생각이 남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줄목: 어떤 일에 관계되어 나가는 요긴한 목

진티: 일이 잘못되어 가는 빌미
짝귀: 짝짝이로 생긴 귀
참살: 건강하게 포동포동 찐 살
채발: 볼이 좁고 길쭉하여 맵시있게 생긴 발
태가다: 질그릇이나 놋그릇에 깨진 금이 나다.  
테밖: 한통속에 들지 못한 그 밖.
핫어미: 남편이 있는 여자, 유부녀
허방: 음푹 패어 빠지기 쉬운 땅
희붐하다: 새벽의 밝은 빛이 조금 희다.

2)한자어
한자 외래어는 해방 직후 '우리것'을 아끼려는 국민 의식의 발로로 인하여 그런대로 다소 정리가 되고 있다. 8·15 이후 미군정청 문교부에서 국민학교용 교과서에서 한자어를 고유어로 대친시킨 예를 몇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a. 피부(皮膚)- 살갗
 성대(聲帶)- 목청
 주위(周圍)- 둘레
 육지(陸地)- 뭍
 운모(雲母)- 돌비늘
 견치(犬齒)- 송곳니
 저변(底邊)- 밑변
 도표(圖表)- 그림표

 익모(翊毛)- 깃털
 조류(鳥類)- 날짐승
 암염(岩鹽)- 돌소금
 사구(砂丘)- 모래언덕
 석영(石英)- 차돌
 해구(海狗)- 물개
 어류(魚類)- 물고기

b. 회전축(回轉軸)- 돌대
 음색(音色)- 소리맵시
 회전(回轉)- 맴돌이
 화성암(火成岩)- 불에 탄 바위
 암실(暗室)- 굴방
 단체생활(團體生活)- 모듬사리
 범위(範圍)- 얼안
 소화액(消化液)- 삭임물
 생물(生物)- 산 것
 무생물(無生物)- 안 산것

3) 일본어
일본 외래어의 경우도 해방 이후 당시 '우리 것'을 아끼려는 생각으로 인하여 많이 정리가 되고 있다. 1950년 2월 15일 미군정청 문교부에서 '우리말 도로 찾기'에 제시된 고유어로 대치되어 널리 쓰이게 된 용례 몇 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앗사리― 산듯이, 깨끗이, 말끔이
기지― 감
오시이레― 반침
시아게― 마무리, 마무르기, 끝손질

벤또― 도시락
오뎅― 꼬치전골
간즈메― 통조림
사까다찌― 곤두서기, 물구나무서기
덴뿌라― 튀김
스시― 초밥
소바― 모밀국수
스리― 소매치기

4) 서구 외래어 
서구 외래어는 마구 늘어가고 있으며 요즈음에는 특히 상표명, 상품명들이 간판으로, 인쇄물로 정말 미친 듯이 판을 치고 있다. 이들 중 어떤 것은 외래어라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글자 그대로 외국어라 할 만한 것들도 너무 많다. 외래어란 이미 언중에게 일반화된 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엔트리, 아트센터, 인스티튜트, 마담봉줄, 디자이너부띠, 롯데월드, 갤러리아, 그랜드, 메디컬센터, 인터모드, 브랜드, 스튜어갤럭시, 데코프라자, 리즈콜렉션, 마담엘레강스, 뉴코아, 유니보끄, 아로나민골드, 해태마트, 화니, 시뇨라, 카타리나, 선워드, 애시드린, 루이상뜨, 마르조, 셔틀버스, 롯데슈퍼, 인터내셔날, 실린더, 파위, 그래픽, 체인, 뉴미디어, 저널, 코칭스태프, 바겐세일, 스넥코너, 신드롬….

정말 현기증이 날 정도다. 심지어는 한글도 표시하지 않고 영자로만 표기한 상호, 상품명도 부지기수다. 가공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외래어가 남용되는 원인은 외국산이라면 덮어놓고 좋아하는 심리와 관계가 있으며 일차적으로 이중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지식인에 의해 도입되며 상류지향 심리 때문에 일반 서민에게도 쉽게 보급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우리말에 대한 인식부족과 함께 언어사대주의 사상이 잠재해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5) 그릇된 발음
발음이 정확하지 않으면 의미전달은 그만큼 효과적이 아니다.  특히 자음에 있어서 공연히 경음으로 발음하는 단어들이 상당히 있는데 이는 재고를 요한다. 
1) 자음의 경음화
a. 까죽(가죽), 깜다(감다), 깨구리(개구리), 꼬삐(고삐), 꼬소하다(고소하다), 꼬추(고추), 뚜꺼비(두꺼비), 뿌시다(부시다), 쏘나기(소나기), 쏘금(소금), 짠디(잔디), 쪼각달(조각달), 쭐다(줄다),

 교꽈서(교과서), 말또(말도), 맘때로(맘대로), 일뜰이(일들이), 김빱(김밥), 실빠람(실바람), 삧(빛), 삐추다(비추다), 방뻠(방범)
b. 믿씁니다, 예쓔, 불쌍히, 역쌰, 할 쓔 있다.

2) 모음의 발음(ㅐ:ㅔ, CWV, CJV)
모음가운데 'ㅐ'와 'ㅔ'의 발음이 애매하며 아울러 이중모음도 정확히 발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애수(예수)   내(네)
개(게)       때(떼)          배(베)
재(죄)       해개(회개)      기한(귀한)
달갈(달걀)   빰(뺨)          학고, 핵교(학교)
구칙(규칙)   포(표)          펜지(편지)
배락(벼락)   벵(병)          가자(과자)
대지(돼지)   헌하다(훤하다)  강주리(광주리)
하로(화로)   호자(효자)      오번에(요번에)
가실(과실)   헉탕물(흙탕물)  정거(증거)

3) 장단음
장음과 단음을 명확하게 구별해야 한다. 
a. 산토끼, 발, 벌, 눈
 밤, 병, 장, 섬
 업다(업다, 없다), 공
 
 b. 오(五), 병(病), 공, 범,
   운(運), 명(命), 돈, 섬,
  무기, 교육, 선물, 동물,
  시민, 묘지, 영생, 면접

4) 억양, 강약
어색할 정도의 억양을 고쳐야 한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주시옵소서
계속적으로 억양을 높임

5) 잘못 발음하는 한자어
이것은 부주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아예 한자를 잘못 알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말하는 사람의 국어 실력의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설교자의 국어 실력은 성도들로 하여금 무의식 중에 그의 성경 지식과도 연관을 짓게 되기 때문에 말씀 전파의 효과는 그만큼 반감된다. 
흔히 잘못 발음하는 한자어를 몇개 예로 들어본다. 괄호 안의 것이 맞는 발음이다.

간사지(干潟地, 간석지), 갱장(更張, 경장), 갱질(更迭, 경질), 각란(攪亂, 교란), 구공(口腔, 구강), 구독점(句讀點, 구두점), 동착(撞着, 당착), 동찰(洞察, 통찰), 산포(撒布, 살포), 성략(省略, 생략), 연멸(湮滅, 인멸), 점청(點睛, 점정), 탐익(眈溺, 탐닉), 풍비(風靡, 풍미), 홍문(肛門, 항문), 행오(行伍, 항오), 취각(嗅覺, 후각)

6. 비문법적 문장 
문법적으로 틀린 문장을 구사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게 되어지다.
고맙고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이여
사(赦)하게 하시는 하나님
사랑하시는 하나님

III  결언

하나님의 말씀은 바르게, 힘있게 전파되어야 한다. 설교자는 이 말씀을 말로 전파함에 있어서 말씀이 바르게, 힘있게 전파되기 위해서 말에 신경을 써야만 한다. 보다 말씀이 잘 전파될 수 있도록 보다 말을 잘 구사해야 한다.

말씀을 담을 수 있는 말은 곧 바르고 선하고 깨끗하고 고상한 말이다.  말에는 말씀을 담을 수 없는 잘못된, 비속한 말들도 있다. 설교자가 단상에서 술어의 오용 또는 불쾌한 어감을 자아내는 말을 한다든지, 방언적 색채가 너무 두드러지는 말을 한다든지, 무분별하게 외래어를 마구 남용한다든지, 표준발음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특이한 발음으로 어휘를 구사한다든지, 비문법적 문장을 엮어내리든지 한자의 음을 제대로 읽지 못해서 엉뚱한 단어를 구사한다든지 하는 것들은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설교자들은 말에 대한 관심, 즉 주어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가져야 한다. 자신이 구사하는 말 속에 말씀이 잘 담겨질 수 있도록 우리 말을 연구하며 이를 실천하는 노력을 경주해야만 한다.

설교자가 단상에 오를 때는 몸과 마음, 자세와 옷매무새가 흐트러져서는 안된다. 이들을 잘 다듬고 준비한 후 단상에 올라야 한다. 아울러 그는 말씀을 담는 말을 잘 준비하고 잘 다듬어 최상의 것으로 만들어 가지고 단상에 올라야 한다.  최상의 것으로 준비한 말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은 힘있게 전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태영 교수/ 숭실대 국문과

(월간 <교회와신앙> 1996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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