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앉아있는 저나 여러분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 끔찍한 박해의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고, 공산치하나 이슬람국가나,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오지나, 옛날 우리 선조시대, 복음이 전하여지지 않은 시대에 태어나지도 않았고, 수많은 순교자들이 피를 흘린 덕분으로 예수 믿고,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자유로운 나라에서 마음 놓고 예수 믿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러나, 한 편 생각해보면 암만 생각해도 그 끔찍한 박해를 받았던 신앙인들과 순교자들이 받을 생명의 면류관이나 상 같은 건 우리에게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냥 이렇게 평온하게 예수 믿다가 조용히 천국에 가서‘아이고, 미안해라,’한 구석에 가만히 찌그러져 있어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고난 받을 자신은 도저히 없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고전 10:13)”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이 연약한 것을 미리 아시고 이 시대에 태어나게 하셨는가 싶어 감사하기도 합니다. 생명의 면류관이나 주님의 칭찬이나 상급이 없어도 편하게 예수 믿다가 천국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놓고 보니 또 공짜로 구원 받는 것이, 다른 이들은 고난을 받는데 혼자 편하게 구원 받는 것이, 또 나 위하여 십자가 지신 주님 뵙는다는 것이 너무 죄송합니다.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로마시대와 같은 무서운 박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와 같은 위협, 공산당이 들이대는 총칼, 전기고문, 물고문, 손톱을 뽑고 눈을 뽑고, 기름가마에 튀기는 그런 박해를 당한다면 이길 수 있겠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려 목사인 저도 자신 없습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죽은 다음에야 어찌 되든지 지금 당하는 이 고통을 견딜 수 없다, 우선 살고 보자고, 그런 무서운 박해를 당한다면 저는 이길 자신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된다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무서운 고문과 박해를 당한다 해도, 바로 눈앞에, 발 앞에 한 쪽은 유황불, 그 속에서 울부짖는 끔찍한 지옥이 있고, 한 쪽에는 아름다운 낙원, 주님이 바로 내 앞에서 두 팔을 벌리고 나를 향하여 오라 하시는 광경이 펼쳐진다면, 내가 만약 주님을 부인한다면 그 끔찍한 고문은 멈추겠지만 바로 그 보다 더 끔찍한 지옥 불에 떨어지게 되고, 만일 내가 그 끔찍한 고통을 받으며 숨을 거둔다면 주님이 나를 안아 주시고 위로하시고 칭찬하시고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며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이 눈앞에 빤히 보인다면, 그렇다면 무슨 끔찍한 고통이라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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