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사모님, 목사님 건강은 좀 어떠세요?” 오랜만에 한국 반찬 가게를 갔다가 그곳에서 우연히 이웃교회 사모님을 만나게 된 필자는 그분의 남편 목사님께서 간암 말기란 소문을 얼마 전에 들었던 터라 안타까운 마음으로 물어 보았던 것이 화근이다. “우리 목사님 다 나았어요. 그럼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데 염려 할 것 있나요?”무슨 그런 믿음 없는 소리를 하느냐? 라는 듯, 질책하는 눈빛으로 짧게 바라보시더니 휭하니 돌아서서 어느새 저만치 가버리신다.

‘아차, 내가 괜한 질문을 한 것인가? 남편 목사님께서 병든 것, 그리고 그 병이 낫지 않는 것과 하나님 살아계신 것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일까? 만약, 저러시다가 남편 목사님의 병이 영영히 낫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죽은 하나님이 되는 걸까?’ 마음이 무척 심란했다. 그후로 그분을 같은 가게에서 두어 번 더 마주칠 기회가 있었지만 나는 차마 그분께 남편 목사님의 건강을 물어볼 수가 없어서 진열장 뒤로 슬그머니 몸을 숨기듯 피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몇 달 후, 안타깝게도 그 목사님은 오 십대 중반의 한참 일할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소(서재생 목사님의 말씀) 하셨다.

어디 그 사모님 뿐이랴. “믿습니다! 믿습니다!” 휘황찬란한 조명등이 현란하게 쏟아져 내리고 꽃장식으로 화려한 (저런 돈 아껴서 선교사들이나 밀어주면 좀 좋을까, 믿음이 없는(?) 나는 궁시렁거리며 둘러보느라 은혜도 안 된다.) 무대처럼 꾸민 강대상 위에서 쇳소리가 섞인 듯한 음성으로 강사 목사님이 땀을 뻘뻘 흘리며 질러대는 괴성, 거기에 맞추어 “믿습니다! 믿습니다”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 성도들, 은사 집회란 곳이나 혹은 무슨무슨 부흥집회란 곳을 한 번 참석해 보면 믿음(faith, belief)이란 단어가 주는 뉘앙스가 자못 희한하기 그지없다. 저렇게 소리를 지르며 주문(?)외우듯 해야 믿음이 생기는 것일까? 믿음이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믿음과 자기 암시 내지 자기 신념을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먼저 믿음(faith)의 정의부터 한 번 생각해 보자.

위키백과 사전에서는 믿음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믿음은 어떠한 가치관, 종교, 사람, 사실 등에 대해 다른 사람의 동의와 관계 없이 확고한 진리로서 받아들이는 개인적인 심리 상태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어떠한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으로 설명되어 있다. 철학, 사회, 정치 등의 분야에서는 일반적으로 신념이라 하며, 종교에서는 신앙, 신심, 신앙심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믿음과 신념의 차이를 명확히 분류해 두지 않았다.

성경은 믿음(faith)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절 말씀)” 즉 다시 말해서 믿음이란 자기가 소원(바라는) 하는 것들이 어느 시간에 실제적인 형태(실상)로 나타나는 것이며, 그리고 믿음이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evidence)라고 말씀하고 있다. 얼핏 들으면 자기 신념과 별반 다를 것 없어보인다. 그러나 믿음과 자기 신념과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는 것을 여러 부분의 성경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믿음(faith, belief)은 자기신념이 결코 아니다.

믿음(faith)의 대상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 믿음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믿음의 대상이 잘못되어 실패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 명철과 지식을 믿고, 어떤 사람은 자기의 권세와 부를 믿는다. 또 어떤 사람은 인생을 믿고 의지하다가 배신을 당해 가슴 아파한다. 우리 아멘넷 토론방에서 한참 치열하게 논의 되는 것도 바로 이런 것이다. 담임 목사의 말을 믿었는데, 어느 한 순간에 그들의 말과 행동이 다르게 나타나더란 것이고,이런 것을 바라보는 성도들은 너무 상처가 되어서 자칫 교회를 등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대상을 잘못 선정한데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말(언어)이란 자기 정당화를 위한 수단으로 거짓 사용될 때가 가끔 있다는 것을 아시기에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하는 말은 듣되 그들이 행하는 행동은 따르지 말라고” 말씀 하신 것일까? 누군가 말했던 것 같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고…, 인생을 살아갈 수록 그말이 더욱 절감되는 현실이다.

우리가 뉴스를 보아도 금새 알 수 있다. 권력과 명예를 믿고, 돈을 믿고, 자기의 인기를 믿었지만 그 믿음이 자기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으로 이끌어 넣는 것을 보면서 저것이 인생인 것을…, 안타깝다못해 가슴이 저민다.

우리가 진정 믿어야할 대상은 누구일까? 성경은 믿음의 대상이 하나님 한 분이어야 한다고 말씀한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이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사 2:22).”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잠 3:5) 우리가 믿음의 대상을 잘못 선정했을 때, 좌절과 실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결국 멸망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 믿음의 대상은 오직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어야 한다. ( 히 13:8절 참조) 그분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신다!

믿음 (faith)의 근간(根幹)

믿음의 근간(根幹)은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한다. 믿음이란 감정의 변화나 오래 교회에 다닌 역사나 또 막연한 추측이 아니다.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리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바울 사도가 로마로 압송되어가는 도중 유라굴로라고 하는 태풍을 만나 그 배에 탄 모든 사람이 죽게 되었고 모두 크게 두려워서 떨고있을 때, 바울 사도가 그들에게 들려준 말이다.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행 27: 25절) 이것이 바로 우리가 깨달아야 할 바른 믿음의 근간(根幹)이다.

그러니까, 믿음이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믿음이 좋은 사람은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도 아니요, 성경지식이 많은 신학자도 아니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같은 율법주의자도 아니란 것이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란 하나님께서 내게 해주신 약속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확실히 믿는다, 하는 것이고, 따라서 행동에 옮기기 전, 내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로고스(Logos) 혹은 레마(Rhema))을 먼저 받아야 한다.
 
예를 들자면,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가기 이전,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창 12:1절 말씀)."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듣고 길을 떠났던 것이다. 신약 성경에서, 인간으로서는 최초, 최말로 물 위를 걸은 위대한 사람, 베드로 역시 물 속에 혼자서 마음대로 뛰어든 것이 아니다.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주께 먼저 간구했고,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 예수께로 가되." ( 마 14: 28-29절 말씀)  모든 믿음의 근간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라기보다는 자신의 의지와 결단과 선택이라고 말하는 신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의 은혜란 것을 인지하고 그 말씀에 동의해야 한다. 믿음의 주체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너희는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엡 2:8-9)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로마서10:17) 

결론적으로 믿음이란 단어는 추상명사임이 틀림없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은혜로 그분이 허락하시는 때에, 내 앞에 실상(현상)이 되어 나타나게 된다. 우리가 자기 신념과 믿음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다 하여 내 몸에 병이 들지 말라는 법 없다. 그리고 내가 병들었을 때 그 병에서 놓임을 받게 해주시는 은혜를 입게 해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며 그 병에서 놓임 받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불러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한다.
 
그런고로 믿음이 좋은 사람은 치유 은사 사역자도 아니고 “믿습니다! 믿습니다!” 소리질러라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들뜨게 하는 유명 부흥강사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Logos, Rhema) 약속한 바 없음에도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내 병을 낫게해 주실 것이다 라고 하는 막연한 기대도, 강렬한 입술의 선포도 아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자기 암시적이며 자기 신념을 확고히 하려는 시도일 뿐 참 믿음이 아니다.

믿음(faith, belief)이란 세상 모든 것이 그분의 뜻 안에서, 그분의 주권과 섭리하심 아래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신하며, 내가 살던지 죽던지 그분께 영광 돌리고 그분의 선하심을 믿고 의지하며 따르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거(evidence)인 것이다! 고로, 신념은 인간 스스로의 정의이며, 믿음은 전적 하나님의 주권이고 소유이며 은혜라 정의할 수 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 11: 6절 말씀).”  

글/별똥별, 최송연의 목양연가 '영성 훈련'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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