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김기동의 마귀론이 한국교회에 일으킨 문제점은 무엇인가?

Ⅰ. 김기동은 누구이며 베뢰아 아카데미는 무엇인가?

이단연구에는 두 가지 자세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현상학적 연구요, 또 다른 하나는 신학적 연구 내지 성경해석학적 연구이다. 신학적 성경해석학적 연구가 이단논쟁의 핵심이지만 현상학적 연구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현상과 사상은 밀접한 관계를 갖기 때문이다. 김기동 씨가 누구인지 살피려는 것은 그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가 목적이 아니요, 그의 신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영등포 소재 성락침례교회의 담임목사요, 베뢰아 아카데미 원장인 김기동 씨를 귀신 쫓는 목사로 비교적 잘 알고 있다. 그는 1938년 6월 25일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64년 봄에 서울로 오기까지 주로 예산에서 살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교회에 다니지 않았고 1957년 10월에 예산 감리교회에 처음 등록하였다고 한다. 그의 학력은 1970년 명지대학을 졸업하고, 1972년 대한신학교를 졸업했고, 1979년에 대한신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가 말하는 자신의 신앙경력은 다음과 같다.
 교회에 등록한 다음 날, 이웃 장로교회 부흥회에 참석하여 개구리 소리 같은 방언을 했으며, 처음으로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그는 독특한 귀신체험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1981년 충남 예산군 광시면에 사는 최병묵 씨의 부인이 심장병으로 죽었을 때 염을 마친 시신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때려 살렸던 것을 시작으로 수십 명의 죽은 자를 살렸다고 하며(1979년 6월 1일까지 10명을 살렸다고 함), 또한 수십 만 명의 귀신을 쫓아 질병을 고쳤다고 하며(85년 당시 40만 명이었음), 현재 성락교회의 교세는 4만 명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베뢰아 아카데미란 무엇인지 살펴보자.

 그가 1979년에 12명을 중심으로 자신이 깨달은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한 모임이 베뢰아 아카데미가 되었는데(베뢰아란 이름은 사도행전 17:11에서 따온 이름임) 현재는 수십기의 졸업생까지 배출시켰다고 한다. 베뢰아 아카데미는 주 1회 2시간씩 2년간 공부를 하는데 김씨의 말에 의하면 통일교인들도 더러 와서 배운다고 자랑하고 있으며 한국 복음화와 세계 복음화는 이 베뢰아 운동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자랑하였는데(85, 11) 그가 속했던 기독교 한국 침례회 총회에서 1987년 11월 16일에 이단으로 규정받고 자기를 지지하던 자들을 중심으로, 미국 남침례회 총회와는 관계가 없는 기독교 남침례회란 이름으로 새로운 교단을 만들게 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베뢰아 아카데미 학생들은 생각밖에 많다. 문제는 그 교단에 속한자 뿐만 아니라 기성교회에 속한 자들이다. 김씨의 마귀론에 근거하여 기성교회에 목회하는 목회자들도 반드시 경계되어야 한다. 그들이 스스로 돌이키기를 촉구하며, 참고로 그와 같은 사상의 사람들 몇과 단체를 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우선 신사동 소재 그레이스 아카데미의 서울대 국악과 교수인 한만영 씨를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김씨와 내용상 아무런 차이가 없는 다른 단체이다. 또한 인천 소재의 한국 예루살렘교회 이초석(본명 이춘석)씨와, 마산 소재의 산해원 부활의교회 이태화 씨,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재 벧엘교회 김요한 씨, 은혜한인교회의 김광신 씨도 똑같이 경계해야 할 사람들임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Ⅱ. 본 글의 취지와 방향

 이단을 정죄하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의 감정이 개입되어서는 안되며, 자료는 분명하고도 객관적이어야 하며, 비판기준은 반드시 역사적이요 정통적인 교리에서 나와야 한다.

 이단자들은 정통교회로부터 이단으로 완전히 정죄되기까지는 정통교회와 다른 교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통교회와 교리상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여 표면적으로는 정통교회 속에 있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이단으로 정죄되면 교리적인 면이 아닌 자신들의 부흥을 시기하여 생긴 감정적인 조치였다는 주장을 하면서 그 화살을 피할 수 있는 한 피하려 하는 것이 상례이다. 예컨데 구원파란 이단(기독교복음침례회)의 교주 권신찬 씨의 경우 초기에는 정통교회와 교리적인 차이가 없는데 감정적인 문제로 인해 이단으로 정죄된 것으로 주장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지금까지 김기동 씨가 내적으로는 기성교회나 기성신학자나 기성교회 목회자들을 공격한 흔적은 수도 없이 많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내 놓고 베뢰아의 마귀론을 정통교회 교리와는 다른 복음임을 천명하며 가르치지는 않았다. 이 점은 현재 김씨를 이단이 아니라고 옹호하고 있는 자들도 그 교리의 기준을 어느 정도는 정통교리에 의존하고 있는 점을 보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어떤 형태로 나올지 그 귀추를 지켜보아야 한다. 김기동 씨의 교리체계로 보면 정통교회가 오히려 이단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단을 정죄할 수 있는가? 어떤 권위로 이단을 규정할 수 있는가? 혹자는 교단만이 이단을 정죄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교단적으로 이단을 정죄하는 것은 개인적인 감정이 배제될 수 있고 권위가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고 옳은 일이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종교회의를 통해 이단을 정죄한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교단도 얼마든지 감정적으로 이단을 정죄했음을 알아야 한다. 단체의 감정도 개인의 감정범위를 못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종교회의에서 이단을 규정하기 전에 개인적인 이단논쟁이 앞선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개인이냐 단체냐라기 보다는 그 비판기준이 성경적이냐 또는 역사적인 기독교에 근거하고 있느냐 아니냐가 그 권위가 핵심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필자가 개인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한 것을 총회적으로 연구보고한 내용과 일치시켰다. 가능한 한 필자 개인의 주관적인 입장을 피하려 하나 피할 수 없을 때는 그 점을 명시하여 글의 객관성을 유지토록 하겠다.

 비판의 기준만 객관적이어도 안 된다. 비판의 근거도 객관적이어야 한다. 아니 객관적이어야 한다기 보다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때로 사실이지만 객관적인 증거가 약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필자는 객관적으로 확실한 증거만 사용하겠다. 왜냐하면 그를 옹호하고 싶은 사람 누구에게도 불필요한 논쟁거리를 주지 않기 위해서 이다.

 우선 일차적인 자료는 책이다. 김기동 씨가 쓴 책들이 무려 스물 다섯 권 정도된다. 그 중에서 그의 마귀론을 분명히 알 수 있는 책 네 가지가 있는데 마귀론 상, 중, 하와 '성령을 알자'이다. 그는 마귀론 상권을 '마귀론'이라 칭하고, 중권에는 '미혹의 영이란' 부제를 붙였으며, 하권에는 '귀신이란' 부제를 붙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중권발행연도가 85년 10월 15일로 제일 먼저요, 상권은 85년 11월 27일 발행되었으며, 하권은 86년 9월 25일에 발행되었다. 발행처는 모두 도서출판 베뢰아로 되어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피할 수 없는 결정적인 자료가 하나 더 잇다. 그가 가르친 베뢰아 강의 테이프이다. 물론 테이프는 말로 했다는 점에서 글만큼의 책임성이 없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단들은 이단성을 교묘하게 숨기는 명수들이기에 글보다 테이프는 더욱 더 정직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예컨데 후론하겠지만 김기동 씨의 삼위일체론은 이단으로 정죄된 완벽한 양태론이다. 그런데 그 점이 책보다 테이프에 더 분명하고 확실하다는 점이다. 본인이 입수한 벽여 개가 넘는 테이프는 83년 봄부터 85년 봄까지 2년간 강의한 베뢰아 아카데미 9기생 테이프이다(앞으로 테이프의 고유번호와 함께 T.P.라는 약자를 사용하겠다). 필자는 먼저 가능한 일차적 자료인 책에 의존하고 그리고 보충적인 자료로 테이프를 사용하도록 하겠다.

 이단의 교주가 회개하고 돌이킨 경우는 한국교회 역사에 없다. 전략적이요, 형식적인 거짓된 회개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 앞에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열어 놓으신 회개의 문이 있다. 김씨가 하나님과 성경과 교회를 참으로 사랑한다면 자신의 잘못이 성경적으로 바르게 지적될 때 회개하고 돌이키리라 믿는다. 그런 점에서 그를 정죄하고 비판하기 위해서만 이글이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원하며 글을 쓴다.

 먼저 밝히고 가야할 점이 있다. 김기동 씨는 사탄이라는 말과 마귀라는 말과 귀신이라는 말을 각각 의미로 사용한다. 타락한 천사가 하나님을 대적할 때 사탄이요,  인간을 대적할 때 마귀라는 것이며, 귀신은 제 명에 죽지 못한 불신자 사후의 영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넓은 의미에서 이를 묶어 마귀론이라 한다는 것을 밝혀둔다.

 본 글의 진행은 다음과 같이 하겠다. 본론에서 김씨의 마귀론을 소개 비판하고 결론에서 성경적으로 마귀가 무엇인지 밝히도록 하겠다. 본론은 네 가지로 나누어 소개 비판하려 하는데 제1장, 계시론에 나타난 베뢰아의 이단사상. 제2장, 신론에 나타난 베뢰아의 이단사상. 제3장, 창조론에 나타난 베뢰아의 이단사상. 제4장, 마귀론에 나타난 베뢰아의 이단사상이다.

Ⅲ. 성경적 마귀론을 자극하는 베뢰아의 마귀론

 진리는 힘과 비례한다고 믿는 자들에게 4만여 명의 교세와, 수천 명의 베뢰아 졸업생과, 축사현상으로 질병을 고쳤다는 수 십만명의 사람들은 김기동 시를 진리의 사람으로 인정하기에 충분한 수치이다. 김기동 씨와 그의 제자들로 인하여 일어난 한국교회의 혼란은 상상보다 큰 것이었으며, 그리하여 오래 전부터 복음적인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성경적 마귀론이 정립되기를 강력히 호소해온 것이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지금도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신다. 그러기에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사용하고 계시는 것이다. 오직 긍정적인 면으로 사용되느냐, 부정적인 면으로 사용되느냐가 다를 뿐이다. 구약의 바로도 하나님께 사용되었고, 신약의 가룟 유다도 사용되었다. 단지 부정적인 면에서 사용되었을 뿐이다. 그렇게 볼 때 하나님께서 김기동 씨를 통해 성서적 마귀론을 연구하도록 자극하게 된 것은 분명 부정적인 면에서의 그의 공로이다. 그동안 교계나 학계에서 마귀론을 정립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으며 이제라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을 다행한 일로 여김이 공통적인 목소리이다.

 교회사를 돌이켜 볼 때 언제나 이단에 대한 변증의 필요가 신학을 낳게 하였다. 그러기에 아리우스의 반삼위일체론이 아다나시우스의 삼위일체론을 낳게 했고, 어거스틴의 신학은 펠라기우스에 의해 자극되었다. 이처럼 이단은 정통교회의 신앙적 교리적 약점을 자극하고 보완 수정하고 견고히 하는데 공헌하게 된다.

 그렇게 볼 때 정통교회는 마귀론에 있어서 성서적 정립을 하지 못했음을 솔직히 시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2,000년 동안 꾸준히 발전하고 보완되어 온 신학의 진보가 엄청난데 마귀론이나 종말론에 있어서는 아직 어린아이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마귀론에 대한 바른 정립이 안된 것은 한국교회 만이 아니라 세계교회가 동일한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는 성경이 마귀론에 대하여 많은 부분을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요, 둘째는 정통교회는 성경 앞에서 비교적 겸손하고 신중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교회사적으로 볼 때 이 점에 대한 이단의 자극이 정통교회에 없었던지, 있었다면 그 자극을 피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단은 진리를 말하나 진리는 목적이 아니요, 수단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성경이 침묵하고 있는 부분을 오히려 확대하고 적은 가능성을 과장하여 교리체계를 세우는 것이 상례이다. 한마디로 성경 앞에 겸손하지도 신중하지도 않은 자들이 이단이다.

 사실 김씨의 마귀론이 비성경적이라는 생각은 한국교회에 오래전부터 싹터왔다. 72년부터 시작한 베뢰아 아카데미에 대하여 이단으로 규정하기까지 무려 15년이나 걸린데는 정통교회가 성경에 대하여 겸손하고 신중했던 덕을 그가 본 셈이다.

 어쨌든 김씨의 마귀론이 일으킨 한국교회의 피해는 표면적으로 나타난 것보다 내적으로 더 심각하다. 한국교회는 김씨에 의해 자극되어 시작된 마귀연구에 더욱 적극적 관심을 기울여 성경적인 마귀론이 정립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Ⅳ. 김기동 씨의 마귀론에 대한 개괄적 이해

 상상 밖으로 김씨의 마귀론을 중심한 교리체계는 복잡하고 방대하다. 뿐만 아니라 그의 사상은 일관성이 없는 부분이 많아서 그것을 선명하게 캐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그의 방대한 사상을 함축적으로 집약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단이란 그 사상을 정확히 이해하여 분석해 줄 때 구체적인 비판을 하지 않아도 그것 만으로 이단논쟁의 임무를 대부분 완성한다고 본다. 그가 주로 사용하고 있는 몇 가지 언어들의 개념이 개괄적으로 파악되지 않으면 그의 사상을 정확히 알 수 없다. 언어는 같아도 그 언어가 내포하고 있는 사상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본 장에서 김 씨의 마귀론을 먼저 개괄적으로 살피고자 하는 것이다.

 본 장은 김씨의 마귀론을 간결하게 요약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비록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본론에서 구체적으로 소개됨을 기억하여 개괄적 이해에 도움을 얻기 바란다.

 김씨는 자신의 마귀론을 이해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아니 구원에 있어서 절대적인 것으로 여긴다. 마귀를 모르면 예수를 모른다고 한다. 이를 직접 살펴보자. "그러기에 누구든지 예수를 아는 사람은 마귀를 알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를 알려면 마귀를 알아야 되며 그래야만 예수의 하신 일이 어떠한 일인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모른다면 마귀를 모르고 마귀를 모른다면 예수도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는 많이 아는데 마귀를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이는 예수를 모른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목적 없이 혼자 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아는 분량만큼 인간을 알고 마귀를 알며 그리고 죄악이 무엇인가를 잘 알게 될 때 성경을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마귀론 상 pp. 14~15).

 구체적인 비판은 후에 하겠지만 오늘날 예수는 많이 알고 있으나 마귀를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는데 이는 예수를 모른다는 말과 같다는 그들은 누구를 가리키는 말이겠는가? 기성교인을 지칭하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정통교리와 다른가? 김씨의 마귀론이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마치는가? 표면적인 목적과 실질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이단논쟁이 시작되었는가? 왜 이단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었는가? 다음에 이어지는 본론에서 더욱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가며 더욱 세밀한 비판을 가하겠으나 먼저 본장에서 바른 문제의식을 가지도록 하자.

 김씨의 예수를 알려면 마귀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말은 비성경적인 것이지만 분명 김씨를 알려면 그의 마귀론을 알아야 함에는 틀림이 없다. 필자가 보기에 비성경적이요 비정통적인 교리를 가지고도 그를 추종하는 사람이 많은 점은 그에게 두가지 주관적 장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틀린 교리체계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주관적인 면에서의 장점은 있는 법이다. 그 첫째는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그 둘째는 그의 축사현상으로부터오는 신비적인 힘 때문이다. 어쩌면 후자가 전자보다 그의 추종자들에게 더욱 영향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김씨의 마귀론은 넓은 의미에서 신비주의 범주에서도 분석 비판해야 한다. 경험을 강조하고 주관적 체험을 강조하는 자들은 전형적인 신비주의자이다. 이 점을 다시 비판하겠으나 또한 그가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예수님마저도 정통교리와는 전혀 다르다. 교회사적으로 가장 많은 이단논쟁을 불러 일으킨 양성(신성과 인성) 문제에 있어서 어느 하나도 정통교회의 교리와 같지 않다.

 그럼 먼저 창조론을 살펴보자.
 김씨의 창조론에 있어서 이단사상을 보여주는 내용은 여러 가지인데 그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절대창조와 선한창조가 무너진다는 점이요, 인간타락의 책임이 하나님께로 돌려진다는 점이다.

 그가 말한 "만물을 창조하시기 이전에 이미 천사가 타락했기 때문에 이 타락한 천사를 멸하기 위해 만든 곳이 바로 이 우주입니다"(김기동의 마귀론 상 p.64)라는 이 말을 살펴보면 창세기의 만물 창조 전에 사탄이 타락했으며 이 우주는 곧 마귀가 지배하는 음부로서 그 마귀를 멸하기 위해 이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

 김씨가 우주라고 할 때는 새가 나는 공중하늘과 별들의 하늘, 즉 궁창을 합한 것으로서 원래 그는 하늘을 지구의 하늘(sky)과 둘째, 우주공간의 하늘, 즉 궁창(space)과 셋째, 하나님의 하늘(heaven)로 나누고 있다. 그런데 마귀가 처음 셋째 하늘에서 쫓겨날 때가 요한계시록 12:7~10이요, 둘째 하늘에 갇힌 때가 창세기 1:8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창조 둘째 날 궁창을 창조하시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이 없는 것은 그곳은 사탄마귀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보아도 이 우주는 마귀를 멸망시키기 위해 창조된 것을 알게 한다고 하는데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이 둘째 날 궁창창조 문제로부터 많은 교인들이 미혹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이 창조론에서 창세기 1:27,28의 인간과 창세기 2:7의 인간이 다르다는 이중아담론은 간과할 수 없는 그의 이단사상이다(이 점은 본론 3장에서 구체적으로 취급했다).

 이제 그의 신론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간단히 살펴보자.

 김씨의 신론은 삼위일체론에서부터 정통교회와 다르다. 한마디로 그가 그토록 강조하는 삼위일체론은 양태론적인 삼위일체론이다. 김씨는 삼위일체를 가리켜 "성부는 하나님의 본질이시오, 성자는 하나님의 본체이시고, 성령은 하나님의 본영이십니다. 그러니까 본질로서는 아버지라 하고 본체는 곧 형상으로서는 아들이라하고 영으로는 성령이라 하는 것입니다."(성락교회 베뢰아 사람 7권, 88년 7월호, p.40)라고 하였는데 본질, 본체, 본영이란 말이 이해되는가?

 또한 후론하겠으나 김씨는 예수님의 신성도 인성도 모두 부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씨는 성경론에서도 완전한 이단이다. 그는 성령충만을 천사충만으로 본다. 그리고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신은 모두 천사로서(마귀론 상 p.62) 창세기 1:2의 "하나님의 신"도 성령이 아니라 천사를 가리킨다고 한다(Ibid., pp.61~62). 그렇기 때문에 구약시대에는 천사에 의해 이끌림을 받았기에 양자의 영이 없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Ibid., p.57).

 사도생전의 오순절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 천사가 임한 것이라 하며(Ibid., p.133), 그러니 우리는 천사를 잘 부릴 줄 알아야 한다(Ibid., p.129)고 한다. 정통교인들에게는 참으로 낯선 이론일 것이다. 김씨에 의하면 성령은 완전히 허수아비 신이 되어버리는데 김씨는 성령론에서도 피할 수 없는 이단자가 되고 만다.

 이제 끝으로 그의 사탄, 마귀, 그리고 미혹의 영에 대해 알아보자.
 천사가 타락하여 사탄과 마귀가 되었다는 말은 정통교회와 같다. 그런데 문제는 귀신과 미혹의 영에서 집단적으로 발생한다. 베뢰아의 마귀론은 사실상 그 초점이 이 귀신에 있고 귀신 쫓는 축사현상에 있다. 귀신은 제 명에 죽지 못한 불신자의 사후의 영으로서 제 명의 남은 기간동안 공중에 돌아다니며 인간을 괴롭혀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귀신은 모든 질병의 원인이요, 모든 사고의 원인이요, 모든 중독의 원인이요, 모든 범죄의 원인이요, 모든 자살의 원인이라고 한다(마귀론 하, pp.170~174). 그 중에도 특히 귀신을 질병과 연결시켜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운동으로만 질병이 나을 뿐이지 약으로는 결코 질병을 고치지 못한다는 것이 그의 대표적인 주장이요 교리이다. 그동안 이것이 그의 장점으로 나타났지만 이것이 그의 모든 이단사상이 집약된 보루가 된다.

 그런데 이보다 정통교회 교인들에게 더 생소한 점이 있다. 소위 미혹의 영이란 것이다. 대부분 처음에 이 "미혹의 영" 문제에 개념이 파악되지 않는 것이 상례이다. 이 미혹의 영이란 가변된 천사를 가리키는데, 즉 가변된 천사 미혹의 영의 도움이 없이는 귀신이 단독으로는 우리 몸에 못들어 온다는 것이다(마귀론 하, pp.54~61).

 그런 점에서 미혹의 영은 그의 교리체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우리에게 가변된 천사란 말이 더욱 생소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신자에게 천사를 파송했는데 그 천사들이 자기의 우두머리를 통해 가변되기도 하고 하나님에 의해 가변되기도 한다(마귀론 상, p.137)는 것이다. 이 하나님에 의해 가변된 천사는 성도 가 불의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할 때 가변시켜 미혹의 영이 되게 하는데(Ibid., p.139) 한 번 가변된 천사는 절대 다시 환원되지 않는다고 한다(마귀론 하, p.61). 그런데 마귀론 상권에서는(p.137)하나님에 의해 가변된 천사는 성도의 불의를 따라 가변된다고 했는데(왕상 22:19~23; 사 66:4,5; 겔 14:9,10) 하권에서는(p.61) 하나님께 과잉충성할 때 가변되어 미혹의 영이 된다고도 하였다.

 그렇게 볼 때 필자가 이를 분류해 보자면 천사가 가변되는 경우는 자기 우두머리를 따라 가변되는 경우와 하나님에 의해 가변되는 경우가 있는데 하나님에 의해 가변되는 경우는 하나님께 과잉 충성할 때, 그리고 지키고 있는 인간이 불의할 때(예컨대 신자가 혈기를 자꾸 부리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할 때) 가변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주장하는데는 김씨가 이론을 점차 수정보완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가변된 천사인 미혹의 영은 우리 인격을 지배하는데(마귀론 중, p.70)이를 이기려면 미혹의 영의 숫자보다 돕는 천사의 숫자가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마귀론 상 p.141). 그래서 성락교회 교인들은 천사를 많이 보내 달라고 결사적으로 기도하고 있다.

 끝으로 알고가야 할 것이 있다. "인격"이란 말과 "항구적 존재"란 말의 개념이 파악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마귀론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 부분은 우리에게 너무나 생소하고 자기 주관적인 체계를 복잡하게 세워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무슨 소리인지 알 길이 없다. 이 부분을 모르면 앞의 말과 뒤의 말이 달라지고 모순되더라도 그것을 발견하기가 불가능하게 된다. 필자가 본장을 기록하는 실질적인 목적이 이 사상을 이해시키고자 함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베뢰아 졸업생도 이 부분을 객관적으로 선병하게 이해하는 자가 별로 없었다.

 김씨는 영은 항구적 존재라고 한다. 그는 영을 항구적 존재라고 함은 영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는 면에서 이런 자기만의 용어를 만들어 쓰는 것이다. 직접 인용해 보자.
 "사람들은 죽음이라 할 때 육체가 없어지기에 아주 없어지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영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영원한 항구적인 존재가 바로 영입니다. 천사를 사는 영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과 같이 항구적으로 살 수 있다는 데에 기인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빛이면 빛으로 살도록 되어있는 것입니다"(마귀론 상, pp.30~31).

 그는 영은 오직 내세가 더 있다는 점만 다를 뿐이라고 한다.
 "몸과 혼 할 때, 여기에 영이 있다고 하여 더 이상의 다른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내세가 더 있다는 것뿐입니다. 영원한 존재라는 것은 항구적 가치가 있다는 것 이상 다른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 영적인 요소를 앎으로 '내가 항구적 가치를 지니고 있구나! 그러면 죽은 후 내세가 있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하여 영생에 들어가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격에 영적인 요소가 더 첨가됨으로 영원한 존재 가치를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Ibid., p.83).

 그러면서 그는 인간의 영 자체가 신이요, 신은 천사를 말하는데 사람의 영은 천사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라고 했다(T.P.35-1). 그는 인간 삼분설을 주장하는데 영은 항구적 존재요, 혼은 인격이요, 몸은 육체인데 사람은 기능적으로 혼이 인격인데 실제로는 몸과 합해져야만 인격이 된다는 것이다(마귀론 상, p.80; 마귀론 하, p.62).

 그러나 사람이 죽을 때 육체가 깨어지면 혼은 영에 잠재되어 버리므로 항구적 존재가 되어 인격이 아닌 것이다. 혼은 몸과 함께 있을 때만 인격이 될 수 있고 몸이 없으면 인격이 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짐승의 경우 인격이 있는가? 라고 할 때 짐승은 혼과 몸이 있지만 그 혼은 각혼을 가졌기 때문에 인격이 못된다고 하는데 독자들은 각혼이란 말에 이해가 잘 안될 것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천사는 인격이 아닌가란 질문이 가능할 것이다. 그는 이 점에 대해 천사는 육체가 없어도 완전한 인격을 나타낼 수 있다고 마귀론 하권에서 말했는데(p.62) 상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모순되는 말을 했다.

 "천사는 몸은 있으나 보이지 않는 형상으로서 인격이며 사람은 몸을 가진 인격입니다"(p.80).
 "천사는 몸은 있으나"란 말은 천사가 몸을 입고 나타나는 경우를 말하는 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 형상으로 인격이며"란 말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천사의 인격이나 사람의 인격은 같으며 또 하나님의 인격도 마찬가지입니다"(마귀론 상, p.80)라 하고 있다. 그리고 귀신, 즉 제 명에 죽지 못한 불신자, 사후의 영은 오직 몸에만 들어와 질병을 일으킬 뿐이지 영에는 절대로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리송한 점을 하나 더 지적해 보자.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으며(요 1:1) 말씀은 영이기 때문에(요 6:63) 예수님의 육체는 곧 영과 같은 존재로 예수님의 육체는 우리의 영과 같은 것으로 예수님의 육체는 인격이 아니라고 한다.

 "내 말이 영이라 할 때 영은 인격이 아닙니다. '영이 육신이 되어 말씀이 육신이 되어'는 똑같은 뜻입니다. 예수님의 육신은 인격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육신은 영으로서 항구적 존재입니다"(T.P.9-2).

 이 얼마나 사탄적이요 기독교의 이름은 가졌으나 기독교가 아닌 반 기독교적인 소리인지 다음에 비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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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삼경 목사가 쓴 <베뢰아 귀신론을 비판한다>(기독교문화협회刊, 1990년 9월10일 발행)를 전재했습니다.

출처: 교회와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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