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내공이 제법 높은 무당과 댓글로 의견을 나눈적이 있었다

무녀가 자신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높은 신기를 자랑하였다

- 성당에서 찬송가 부르다가 강한 신기가 내려 왼쪽으로 세번 돌면서 /몸으로 신령이 들어오는 경험을 하고 무당이 되었다

- 산에서 밤 11시 30분부터 새벽 3시까지 천신기도를 하는데 신령이 잠을 거의 안재운다

- 신령이 금식기도 시키고 수행을 시키는데 나는 죽은 사람과 통신도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수행을 많이 해서 영이 맑아져야 신기가 강해진다

<신령 : 한국 민속신앙에서 섬기는 미신의 대상으로 천지신령 또는 천지신명이라고 한다>

- 나는 천지신명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하늘님)께서 도와주신다

- 목사도 스님도 매매나 이사할 때 점사(무당이 점을 치는 행위)보러 온다

- 천지신명이 돈을 벌게 해 주신다

- 조상귀신을 잘 섬겨야 복을 받는다


무당과 주로 토론한 내용은

① 무당이 섬기는 신령의 정체가 무엇이냐?

돌아다니는 조상귀신은 없으며 신령은 귀신의 영이다

귀신을 섬기면 그 영혼이 죽어서 어디로 가겠느냐? 질문했고

​→ 무당은 말하기를 "지옥은 인간 마음이나 생각속에 있는 것이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석가모니도 그래서 자아를 깨우치고 스스로 번뇌에서 벗어나라! 한거다
하나님도 인간을 사랑하시니 함부로 지옥으로 보내지 않는다"

② 무당님의 그 열심만은 인정해 주고 싶다

그런데 귀신을 달래고 기도해서 영력을 얻으시는데 그 영이 어둠의 영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 않는가?
당장의 유익이 있다손 치더라도 사람이 어찌 귀신을 섬기겠는가?

우리는 더러운 귀신의 영이 아니라 거룩한 성령을 섬긴다

​→ ​나는 귀신도 보이고 죽은 영혼과 소통도 한다

목사,신부,스님들은 그렇게 못한다, 그들은 위선자이기 때문이다

영이 맑고 영력이 높은 무당은 신령이 잠도 못자게 하고 기도를 많이 시킨다 

 

③ 아무 영이나 믿으면 안된다
죽은 사람의 영혼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우주를 떠다니다가 환생한다고 하는데 그럼 우주가 생기기전에는 어디에 있었느냐?
조상귀신과 접신하는 것은 다 귀신들이 속이는 것이다
무당님은 살아생전에 돈 많이 버는 것이 삶의 목표인듯 한데 하나님을 믿는 것은 오히려 죽은 이후 영생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함이다

돈 좀 벌고 지옥에 들어가면 무슨 유익이냐?

회개하고 그곳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신의 영발을 자랑하는 무당과의 대화를 통해 무당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무당도 신기를 높이기 위해 저렇기 기도를 열심히 하고 맑은 영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구나

소위 수행이라고 하는 것은 무당이나 스님들의 참선, 수도사를 떠오르게 하는데 기독교에서는 수행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자신이 스스로 노력해서 득도하고 공력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은 기독교의 신앙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바울은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4:7~8) 제안하였다

무당도 하루에 3~4시간을 기도하는데 목사님들은?

진짜 무당과 목사님이 대결하면 영적싸움에서 지는 것은 아닐지...

예수님도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제자들이 원인을 묻자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말씀하셨다

무당의 하는 일 중에 천국이나 극락을 안내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사는 현생에서 복 받는 것이며 사후세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그런 말을 하면 짜증을 낸다

만약 지옥이 존재한다면 그 곳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들이 관심을 갖는 분야는 조상신을 잘 섬기는 것이다

다분히 불교적인 속성과 잘 어울리며 불상을 차려 놓기도 하지만 기독교적 요소는 배제된다


그리고 무당들이 기도에 정진하는 이유는 접신이 잘되어 점사가 영험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떤 무당은 하루에 12시간씩 기도하기도 하는데 선호하는 기도장소는 유명한 산들이다

결론적으로 무당은 신령(더러운 귀신,사탄)에게 기도하는 것이고 기독교인은 성령(거룩한 그리스도의 영)안에서 기도하는 것이 다르다

그렇다면 성경에 나오는 귀신들린 사람과 무당의 차이는 무엇일까?

귀신들린 사람이 더러운 귀신의 피해자라면 무당은 귀신의 조력자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귀신의 영을 받은 무당도 저렇게 자랑하는데 우리는 성령을 조롱하는 자들도 있다

신접한 사울의 사례

 성경에도 무당(엔돌의 신접한 여인, 영매자)을 통해 죽은 사무엘을 불러 올라오게 한 적이 있었다(삼상 28장)

무당이 불러 올린 영이 실제 사무엘의 영인지, 강신술에 의한 사탄의 영인지는 불확실하다(그의 영이 땅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하나님은 이전에 율법을 주시면서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고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레19:31)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본문은 이해하기 힘든 난제에 속한다

현대의 신자들 중에도 기도의 응답이 없다는 이유로 만약 무당을 찾아간다면 자신을 더럽히는 가증한 죄를 범하는 것이다

엔돌의 접신 사례처럼 접신한 영의 말이 맞을 가능성도 있다 하더라도 더러운 영과 교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예를 들어 조상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이 다 저주를 받거나 재앙이 임하면 누가 제사를 지내겠는가?

하지만 현생에서는 그들도 복을 받으며 형통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행위에 대해 결과가 갈라지는 것은 사후에 심판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사람이 곤경에 처했을 때 사울처럼 하나님께서 금지시킨 방식을 찾아가는 행위는 결국 비극적 결말을 가져오게 만든다

기독교인이 점을 보는 행위는 제사와 마찬가지로 귀신과 교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출처: https://blog.naver.com/acoloje/221450230761


문명이 발달하고 세상이 살기 좋아질수록 약삭빠르고 강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순박하던 인심은 사라지고, 정직하면 손해보고, 착하면 빼앗기는 살벌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남이 더 가져가면 내 몫이 줄어들거나 없어진다는 제로섬 경제논리 속에, 1등이 되어야만 살아남는다는 무한경쟁체제 속에, 인간사회는 날이 갈수록 약육강식과 생존경쟁의 살벌한 동물세계를 닮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성경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거든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구하는 자에게 주며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고 말씀하십니다. 속도 없고 배알도 없이 바보처럼 주고 빼앗기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고 위하여 기도하라고까지 하시니, 누가 이 말씀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선인과 악인을 가리지 않으시고 그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배알 없고 속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우리도 당연히 그런 속없고 배알 없이 다 베푸시고 다 빼어 주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그런 속없고 배알 없는 성품 그대로 아버지께 순종하여 죄인들을 위하여 그 참혹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보라서 십자가 지셨습니까? 태양이 멍청해서 누구에게나 비취고, 비가 속이 없어서 누구의 밭에나 고루 내립니까? 만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만 사랑하시고, 의인만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고, 예수님이 사람 골라서 피 흘려주셨다면 우리 같은 죄인이 한 사람이라도 구원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속없이 배알 없이 무한히 나누어주셨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한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그 완전한 사랑 때문에 나같은 죄인도 구원 받은 게 아니겠습니까? 

왼편 뺨도 돌려대며 겉옷도 벗어주며 원수를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대로 사십시다. 그렇게 해야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해야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주님이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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