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타난 좌익과 우익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편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편에 있느니라(전 10:2) 

좌익(左翼)이라 우익(右翼)이라 하는 어원(語原)은 18세기 프랑스 국회에서 과격파는 좌편에 있고, 온건파는 우편에 앉아 의사에 투쟁에 있었던 것이라 한다.

그래서 온건파는 우익이라고 하고 과격파는 좌익이라고 하였던 것이, 지금은 정치적으로 공산주의를 좌익이라 하고 민주주의를 우익이라 한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또는 성경적으로 나타난 좌우익은 어떤가? 본문에 지혜로운 자는 우편에 있고 어리석은 자는 좌편에 있다하였으니, 우익은 지혜로운 자요 좌익은 어리석은 자라 하겠다.

그러면 지혜로운 자는 어떠한 자이며 어리석은 자는 어떠한 자인가? 성경 말씀을 상고하여 보자. 

1. 시편 14편 1절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세상에서 제일 못난이, 바보, 멍텅구리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이다. 그는 어리석은 자요 어리석은 자는 곧 좌익이다. 좌익의 근본 사상은 무신론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만세" 하는 것을 "우리들이 보호하여 우리 나라 만세" 한다. 이 세계의 혼돈과 이 강산의 참담한 상태는 무신론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반역하는 무리들에게 내려지는 채찍이요 징계인 것이다.

하나님이 없다 하는 것은 자기 조상이 없다는 것과 같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국가에서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도 당치 않은 모순이거니와 한심한 일은 "하느님이 보우하사"를 "애국가"로 부르는 이 나라에서 무신론을 말하는 자가 부지기수(不知其數)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소위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한다고 하는 신자 중에도 입으로는 말하면서 실제 생활에서는 무신론자와 동일한 행동을 하는 자들이 있지 않은가? 저들이 입으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으로는 멀리하는도다(막7:6).

그러면 하나님이 계신 줄을 믿고 행하는 자는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 

1. 양심적으로 사는 것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하나님을 보는 것은 우리 육안(肉眼, 육신의 눈)으로 보거나 세상 지식으로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양심적으로 도덕적으로 살아 보려는 사람에게 명명백백(明明白白)하게 하나님의 존귀가 알려지는 것이다.

뿍맨 박사(博士)가 어떤 대학생에게 전도를 하는데, 그 학생은 무신론자라 변론으로는 해결이 나지를 않아 예민(銳敏)한 영감(靈感)으로 그 학생을 주목하여 말하기를 "그대에게 하나님이 있고 없는 문제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무엇이냐? 그대는 유부녀 간통(有夫女 姦通)한 자이라. 그 죄를 회개하여야 하나님의 존재가 확실하게 깨달아지리라" 하였더니 학생은 고개를 숙이고 무엇을 생각하는 듯 하더니 돌아갔다.

그날 밤중에 다시 찾아온 학생은 벌벌 떨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껴 왔노라 하며 기도하여 달라고 했다. 이 학생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존재가 의심 없이 믿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은 빛이시니 털끝만치도 어두움이 없으시니 하나님과 사귀었다고 하면서 어두운 데 행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일 1:5-6)이니 그 속에 진리가 있을 수 없고 진리가 없으니 하나님을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고로 먼저 빛 가운데 양심적으로 회개하고 양심에 순응하여 생활하시라. 

2. 범사에 감사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

주를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일만 가지 일이 합동하여 유익(롬 8:28)함을 믿는 까닭에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한다. 감사는 우리 신앙 생활의 한란계(寒暖計)라고 할 수 있다.

감사가 많으면 신앙이 올라가는 증거요 감사가 적어지면 믿음이 식어지는 표이다. 감사하려면 아니할 것이 없고, 감사 아니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다 불평 불만뿐인 것이다.

이웃집에서 떡국 한 그릇만 가져와도 감사를 골백번이나 하면서 빨간 핏덩이로 생겨난 것을 몇 십년 먹이고 입혀서 길러 주건만 인간들은 제가 잘나서 먹고 입는 듯이 알고 제가 잘나서 사업 성공하고 아들 딸 낳아서 기르고 제가 잘나서 나라도 독립하는 줄 안다.

꿈에라도 한번 감사할 줄을 모르는 인생들아, 정신 차리라. 자식이 되어서는 부모의 은혜를 알아야 하고 제자가 되어서는 선생님의 은공을 알아야 하며 백성이 되어서는 국가의 보호를 아는 것이 마땅하거늘 인생이 되어서 조물주의 은덕을 감사할 줄 모른다면 차라리 그 사람은 세상에 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감사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은 천국이요 하나님의 축복이 풍성할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2. 누가복음 12장 20절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으냐." 어리석은 부자가 돈만 알고 하나님을 부인한다면, 육신만 알고 영혼 문제를 등한히 하는 자요 현실만 알고 내세(來世)를 무시하는 자이며 자기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생각할 줄 모르는 자이다.

다시 말하면 유물주의(唯物主義), 자본주의(資本主義), 인본주의(人本主義)가 다 그 자요 자기중심의 향락자는 누구나 좌익인 것이다. 몇 날이나 살겠다고 썩어질 물질, 썩어질 육체를 위하고 장차 망할 장망성(將亡城)에 뜻을 두면서 영원한 생명을 알지 못하는 자는 참으로 가련한 자이다.

"15분"이라는 연극 각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얌전한 청년이 30세에 대학을 마치고 박사 논문을 제출해 놓고 그만 폐병(肺病)이 들어 죽게 되었다. 의사에게 진찰을 받은즉 15분 후면 죽을 것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째깍째깍 시간은 간다.

병자: "오! 선생님 몇 분이나 남았습니까?"

의사 : "15분이오" (째깍째깍)

"12분이오" (째깍째깍) "11분이오"

배달부 : "편지요 ! "

억만 장자인 부자 삼촌이 죽었다는 부고와 함께 상속할 자가 없으니 와서 재산을 상속하라는 편지였다. 그러나 어찌 이 부자 재산의 상속이 반가울 수 있으랴? (째깍째깍)

병자 . "몇 분이나 남았습니까? "

의사 : "10분이오"

10분 부자. (째깍째깍) 9분 부자. (째깍째깍) 8분 부자. (째깍째깍)

배달부 : "전보요 ! "

박사 논문 합격 통지이다. 성공이로다. 그러나 어찌 박사 학위로서 이 청년을 위로할 수 있으랴? (째깍째깍)

병자 : "몇 분이나 남았습니까? "

의사 : "5분이오"

5분 박사. (째깍째깍) 4분 박사. (째깍째깍)

배달부 : "편지요 ! "

애인에게서 온 결혼 승낙의 편지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반가워야 할 애인의 결혼 승낙 편지도 그를 위로할 수가 없었다. (째깍째깍)

병자 : "몇 분이나 남았습니까?

의사 : "2분이오"

2분 결혼. (째깍째깍) 1분 결혼. (째깍째깍) 픽 ! 운명하였으니 허무한 세상 30세를 일기로 영원한 곳으로 갔다. 

세상 만사 살피니 참으로 헛되구나! 관(棺) 하나 사다가 입관하고 억만 금 상속장, 박사 논문 합격장, 결흔 승낙서 다 넣고 뚜껑 덮어 이튿날 북망산에 메어다 한 무덤 이루니 그날 밤에 부슬부슬 비가 내리니 이것이 인생이 아닌가?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 네 영혼 도로 찾아가면 네가 가진 토지 가옥, 가장집물(家藏什物) 다 누구의 것이 되겠느뇨? 

결론(마 25:31-46) 

양은 우편에 염소는 좌편에서 심판받는 비유의 말씀이니, 양은 우익이요 염소는 좌익이다.

우익(양)더러 하시는 말씀은 "아버지께 복을 받을 너희들은 나아와 이 세상 창조할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하였던 나라를 유업으로 받으라"는 것이다.

"내가 주릴 때에 네가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대접하고 헐벗을 때에 입히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나니라" 하시니, 우익의 의인들이 대답하되 "주여 어느 때에 우리가 주께서 주리시매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시매 마실 것을 드렸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 대접하였으며 벗으셨으매 옷을 드렸으며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가보았나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의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함이라"고 하며 그 자비와 동정심의 풍부한 것을 칭찬하시었다.

그 반면에 좌익(염소)에게는 "저주를 받을 너희여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였던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무자비한 행동은 곧 나에게 행한 것이라"고 책망하여 형벌을 받게 한 것이니, 우익과 좌익의 구별은 자비(慈悲)로 판단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자비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도 자비함을 받으리라. 무자비한 자는 화가 있나니 저희는 무자비함을 받으리라. 지난 인공(괴뢰군) 시대에 그들의 정치 아래서 수개월 겪어 보니 참으로 인간적으로 칭찬할 만한 장점도 많이 보았다.

첫째 혁명적 정신, 둘째 자립 정신, 셋째 미신 타파, 넷째 봉건 타파, 다섯째 근로 정신, 여섯째 고리 대금 박멸, 일곱째 축첩 물리치고, 여덟째 술주정꾼 없이하고, 아흡째 정치 조직, 열째 주의 선전술 등등 그럴 듯했다.

그러나 근본 문제 둘이 있으니, 위로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이고 아래로 무자비한 투쟁이다. 이는 곧 악마의 성질이요 사탄의 역사이다. 그런고로 여기에서 좋다는 모든 것이 허위요 기만정책(欺瞞政策)으로 빵꾸가 나고야 만다.

그 결과는 멸망뿐이로다. 남에게 주는 태도는 주님께 받을 태도이라.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원하시고 제사는 기뻐하지 않으신다.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를 무자비하다고 비난하기 전에 우리들의 성품은 어떤가 살펴볼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롬 8:9).

그리스도의 영은 자비와 긍휼이 충만하신 분이다.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과 자비로 다시 태어나지 아니다면 하나님 나라를 보지도 못하고 들어가지도 못할 것이다.

우익이냐? 좌익이냐?

 

출처: http://www.sgti.kr/data/person/sungbong/revival-sermon/immanuel/26.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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