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죄와 심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장 27절)

인간은 본능적으로 죄와 심판을 두려워한다. 죽어서 지옥 갈까봐 무서워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인간의 심령 속에 하나님이 두신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죄와 심판에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 

첫째, 인간의 죄를 다스릴 절대자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절대자가 없다면 죄나 벌을 무서워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둘째, 그 절대자는 인간에 대한 소유권과 통치권을 보유해야 한다. 그러자면 절대자는 창조주이어야 한다. 인간을 만들고 생명을 주지 않았다면 소유권이나 통치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창조주도 아니면서 인간을 심판하고 지옥에 보낸다면 그것은 부당한 횡포일 것이다.
“네가 뭔데? 네가 내게 무슨 권리가 있는데? 힘세면 다냐? 너 깡패냐?” 이렇게 되겠다.

셋째, 심판이나 처벌을 할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절대자가 인간에게 이성과 사리판단 능력을 부여하고 죄를 짓지 아니해야 할 이유를 알게 하고, 임무를 부여하고, 명령을 하고.....

넷째, 그 절대자 자신이 죄가 없고 거룩해야 한다. 자신이 거룩하지 않으면서 인간에게 거룩을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미돼지가 새끼돼지더러 목욕하라 하는 거 보았는가? “아가, 우리 함께 뒹굴자꾸나...”

다섯째, 절대자가 인간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고 또 영원히 함께 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할 것이다. 관심이 없고 함께 할 생각이 없다면 인간이 죄의 구렁텅이에 빠져 더러워지든지, 죽든지 말든지, 냄새가 나든지 말든지 무슨 상관이겠는가?

여섯째, 절대자는 전지전능하여 모든 인간의 심령과 폐부를 감찰하고 모든 행위와 죄를 알고, 그 죄인을 빠짐없이 체포, 구금, 재판, 처벌할 수 있는 실제적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절대자에게 그런 능력이 없다면 수십억 인구 속에서 죄를 짓고 시치미를 뚝 떼면 속아서 어물쩍 넘어갈 테고, 혀를 날름 내밀고 도망하는 개구쟁이를 못 따라 잡는 꼬부랑 할머니 꼴이 될 것이다.

성경은 말한다. 아무도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없으며 아무도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그런데 세상 많은 사람들이 죄와 벌을 두려워하면서 창조주 하나님 아닌 다른  존재들, 우상들 앞에 머리를 숙이고 자신에 대한 소유권과 통치권을 맡겨버리니 참 이상한 일이다.
부처? 두려워 마라, 그는 사람이다. 시바신, 크리슈나신? 무서워 마라. 그것들은 세상신, 우상들일 뿐이다. 오직 참신,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불에 멸하실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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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경을 시작하는 첫 단어 ‘태초’라는 말을 생각해 보자.
‘히브리어로 ‘브 레싯’, 헬라어로 ‘엔 아르케’
한글로 ‘태초에’, ‘아주 처음에’라고 번역된 게 좀 그렇다.
영어성경은 “In the beginning', ‘시작’으로 번역하고 있다.
‘태초’와 ‘시작’에는 약간의 차이가 느껴진다.
‘태초’ 보다는 ‘시작’이 좀 더 적절한 단어가 아닐까?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이고 원래부터 있었던 것일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속도에 따라 시간이 달라진다. 우주공간 여기저기의 시간이 다르다. 우주에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웜홀(worm hole)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이론도 있다. ‘인터스텔라’라는 영화는 그런 이야기다. 
시간과 공간은 모든 존재의 전제조건이며 바탕이다. 시간이 없으면 공간도 없고 공간이 없으면 시간도 성립되지 않으며 존재도 없다.
그렇다면 시간과 공간은 무엇일까? 시간과 공간도 피조물은 아닐까?
우리는 시간과 공간 안에 갇힌 존재이므로 시간과 공간이 피조물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내는 것조차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빅뱅이론을 생각해보라. 시간과 공간이 원래 있었다면 우주만유가 한 점에서 폭발하는 빅뱅이 가능할까?
빅뱅은 시간과 공간이 없는 상태이어야 가능하다.
시간과 공간이 원래 있었다면 한 점에서 우주만유가 압축되어 있다가 폭발하는 빅뱅은 불가능하다.
빅뱅이란 시간과 공간이 처음으로 생기는 순간이다. 그리고 모든 물질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 때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 그리고 물질과 존재를 시작시키신 것이다.
도무지 납득이 안 되는 이야기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원래부터 있던 시간과 공간일 것이고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의 피조물일 것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 때에 모든 것이 시작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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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내가 제일 싫은 말은 “기독교가 종교”라는 말이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사실이다.
기독교가 종교라면 원자력발전소 건설하던 놈이 목사가 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인간 중 하나일 것이다. 사실이 아니라면 미쳤다고 기독교를 믿고 목사까지 되냐?
평생을 믿었는데 죽고 보니 하나님도 없고 예수도 없고 천국과 지옥도 없다면 이 보다 억울하고 분하고 기가 막히고 미치고 환장할 노릇 없을 것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실컷 마시고 즐기고 놀기나 할 걸, 속았다고, 잘못 살았다고 가슴을 쳐봐야 소용없는 일일 것이다. 하기야 죽고 난 다음에야 칠 가슴도 없겠지만...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사실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셨고 우리를 만드셨다. 믿고 안 믿고 우리에게 선택권 없다. 하나님 앞에 나오는 자는 살 것이요 하나님을 떠나는 자는 영원히 죽을 뿐이다.
믿지 않는 자는 진노의 심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 속에서 하나님 주신 생명으로 살면서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여겼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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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26~28)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6절을 보니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히브리어 원어는 ‘그들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에 주목을 하고자 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우리’라고 자신을 가리키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세 번이나 반복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27절에 가서는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대로”, 영어로 “His own image”, 단수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을 복수로 말씀하셨다가 단수로 다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토씨하나 안 빼고, 일점일획도 가감하지 않고 다 기록해야 했던 모세나, 또 성경을 필사했던 유대인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라 하셨다가 ‘나’라고 하시느냐 말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라고 하신 것은 여기 뿐 아닙니다. 창세기 3장 22절, 11장 7절, 이사야서 6장 8절에서도 ‘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단수이면서도 복수이시고 복수이시면서도 단수이시라는 사실을,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심을 거듭거듭 암시하고 계시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다음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이라고 하십니다. 영어성경은 '형상'을 “our image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의 모양대로”, 영어성경은 '모양'을 ‘our likeness’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면 하나님은 우리처럼 생기셨을까요?
하나님도 눈, 코, 입, 귀가 있고, 수염이 나고 우리처럼 생기셨을까요?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신다 했는데, 하나님은 영이시라 했는데, 우리와 똑같이 생기셨을까요?
하나님의 형상이 무슨 뜻인가? 학자들 간에는 논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품을 말한다, 그 성품을 말한다, 만물을 통치하시는 위엄을 말한다, 영원불멸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말한다, 등등........

우리는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세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나중에 하나님 앞에 갔을 때 하나님이 전혀 낯설지 아니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분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하나님 자신의 모습,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고 계실 것이란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보실 때마다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스럽게 여기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셋째, 우리의 형상이 하나님과 같다는 증거는 예수님의 성육신입니다. 만일 우리의 형상이 하나님과 달랐다면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실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사람에게로 돌아가 봅시다.
26절에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는 히브리어 원어로는 ‘우리가 아담을 만들고’입니다. 단수,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로 뒤에는 ‘그들로’ 다스리게 하자, 복수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말 성경은 단수 ‘그’로 되어 있음)
왜 금방 단수로 말씀하셨다가 금방 복수로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지금은 하나님은 아담, 한 사람만을 만드시지만 그 아담은 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와는 갈비뼈로 아담 속에 들어있습니다.
즉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고 갈비뼈를 꺼내어 하와를 만드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제야 비로소 아, 여자를 안 만들었네, 생각이 나서 하와가 필요하겠다 싶으셔서 갈비뼈로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아담을 지으시고 그들이라고 부르신 하나님은 이미 그 속에 하와를 하나로, 한 몸으로 만드신 것이고,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하와를 끄집어내신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즉흥적으로 아이디어를 내셔서 행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이미 창세전에 모든 것을 미리 아시고 우리까지도 택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허리 속에는 이미 후손들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입니다. 그리고 다시 그들을 통하여 수가 늘어나 생육하고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미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는 그를 지으시지만 그는 그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모양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이면서 여럿, 즉 한 분이면서 세 분, 세 분이시면서 한 분이신 형상입니다.
유대인이 생각하는 유일신 여호와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닙니다.
이슬람의 알라신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증인이 주장하는 하나 뿐인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닙니다.
혼자 군림하는 유일신의 형상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 없으신 하나님, 성령님 없으신 독불장군 하나님의 형상을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삼위일체, 곧 세 분이면서 한 분, 한 분이면서 세 분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많은 오해와 잘못된 교리들이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이해하지 못 하여 생겨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십니다.
삼위일체 아닌 신(神)은 아무 신이나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위일체는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홀로 있는 독불장군 같은 인간도 하나님 형상이 아닙니다.
독처하는 것이 선하지 못 합니다.
기독교는 수양이나 도 닦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너와 내가 연합하여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혼자서 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누르고 여자가 남자를 밟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닙니다.
저 잘 났다고 혼자 거룩한 사람은 하나님 형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짓지만 그들로 다스리게 하자, 하신 것 같이 그가 그들이 될 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어
제자삼아 복음으로 자녀를 낳고 생육하고 번성해 나갈 때
우리는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가 되어 자기 혼자 중심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하여 찢어지고 갈라지고 부서져서 하나님의 형상을 잃게 된 것입니다.

죄는 모든 관계를 갈라버리는 것입니다.
분열시킴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니고 저 여자입니다. 아닙니다, 뱀입니다. 뱀이 그랬습니다.”
혼자가 되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비겁한 죄인의 모습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전쟁과 다툼과 폭력과 추악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다고 저절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다고 믿으십니까?
아닙니다.
예수 믿어도 여전히 이전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순종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살아가는 데는 하나님의 형상보다는 마귀의 형상이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되면 손해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중심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는 힘써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도록 산상수훈으로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 믿기만 하면 저절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다면 뭣 하러 이렇게 가르치셨겠습니까?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입니까? 산상수훈에서 주님은 얼마나 이 말씀을 하시는지 보십시오.
-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다가 형제와 불화한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그대로 두고 가서 그 형제와 먼저 화해하고 돌아와 예물을 드려라.
- 누구든지 네 오른 편 뺨을 때리거든 왼 편도 돌려대며
-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거든 겉옷까지 가지게 하며
-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며
-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나님을 닮는 것은 관계로 이루어집니다.
혼자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과 성품을 닮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악인에게도 불의한 자에게도 골고루 똑같이 해를 비취시고 비를 내리시는 속없는 하나님,
할 줄 아는 게 사랑밖에 없어서 사랑밖에는 하실 수 없는 하나님을 닮아야 하는 것입니다.
원수에게 찾아오셔서 원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시사 생명을 주신 예수님
그 하나님을 닮기 위해, 그 예수님을 닮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습니까?

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에게 축복하시고 모든 것을 다스리도록, 누리도록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만 이러한 축복을 회복할 게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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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한발 코로나 팬데믹이 온 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에 걸려 목숨을 잃었고 또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침체와 실업증가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고, 우리의 삶과 생명은 앞날을 알 수 없고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과연 백신과 치료약이 개발되어 나오고 이 질병이 퇴치될 수 있을지, 이 코로나 팬데믹이 끝날 수 있을지, 언제 끝날지, 우리의 생활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어쩌면 앞으로 영원히 마스크를 쓰고 사람을 피하며 이 죽음의 코로나를 피해 살아야 할지도 알 수 없는 암담한 상황입니다. 과연 이 세상을, 인류를 코로나로부터 구해낼 구세주는 없는 것일까요?

이천년 전 유대인들은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강력하여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로마제국의 지배와 통치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해 줄 유일한 희망, 메시아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 때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가죽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세례요한이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도다.” 사람들은 세례요한에게로 나아와 회개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회개하고 회개의 표로 세례를 받아야 메시아가 로마를 쳐부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때 거기에 속할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그들이 바라고 기대하는 대로 로마를 쳐부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로마군병에 의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세례요한이 외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마저 그것이 온 인류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건져내어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로 구원하는 놀라운 역사였다는 것을 알지 못 하였습니다. 참으로 그들을 누르고 결박한 것은 로마의 통치와 압제가 아니라 그들을 영원한 멸망으로 끌어갈 죄와 사망의 족쇄와 사슬이었다는 것도 그들은 깨닫지 못 했던 것입니다.

당신도 이천년 전 로마통치에 압박 받던 그들처럼 코로나 팬데믹에 짓눌려 있습니까? 당신의 관심은 이 팬데믹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입니까? 코로나 팬데믹은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할 수 있을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영원한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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