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거 직후 7년환란이 시작될텐데 7년환란은 전3년반과 후3년반 두 파트로 나누어진다

적그리스도(짐승)가 절대권력을 가지고 직접 통치하는 후3년반은 대환란의 정점이다

그러나 전3년반 시대에도 매우 힘든 시대가 될 전망이다


우선 전3년반동안 비가 오지 않아 대기근이 예상된다

두 증인은 전3년반(1260일) 기간에 예언하는데 그들이 예언하는 기간동안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비가 오지 못하게 한다(계11:6)

지구 전체가 3년반동안 비가 전혀 오지 않는다면 지구는 흉년으로 세계적인 식량위기가 찾아올 것이다


셋째인을 떼실 때에 검은 말이 나오는데 밀 한 되 값이 한 데나리온이 된다(계6:6)

밀 한 되가 한 데나리온의 가치로 인플레이션이 되면 도대체 현재보다 얼마나 비싸 지는지 계산을 해 보았다

한 되는 약 1.8kg 정도 된다

현재 시세로 밀가루 1.8kg은 약 2,160원이다


한 데나리온은 아는대로 노동자 하루 품삯이다

포도원에 품꾼을 들여 보낼 때 하루 품삯으로 한 데나리온을 약속했다(마20:13)

작년기준으로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시간당 7,530원이고 하루는 60,240원이다


그러므로 현재 밀가루 1.8kg가 2,160원인데 6만원으로 폭등하는 것이다

물가 상승률이 무려 2800%에 이른다

2800%는 최저임금 기준이고 3000%이상이 될 것이다

현재 물가는 2% 미만이다


인류역사상 세계물가상승률이 2800%에 이른 적이 없으므로 이것은 미래에 일어날 것이다

단일 국가 차원에서는 작년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이 130만%에 이르렀다


​인플레이션이 2800%에 이르면

라면 한 개가 1,000원에서 28,000원으로 오르고 한 사람의 일당으로 라면 2개를 살 수 있다

4인 가족이 라면만 먹는다 해도 하루에 33만 6천원의 식비가 들어간다

한 달이면 1000만원이다


성인이 한끼에 200g의 밀가루를 먹고 가족 3인이 3끼를 해결하려면 1.8kg이 필요한데

일당으로 겨우 하루 양식을 해결할 수 있다

그것도 밀가루만 먹을 경우다


 

화폐가치는 폭락하고 곡물가격은 폭등한다

일부 국가는 전 국민이 굶어죽는 비참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국가간 식량을 무기로 아귀다툼이 일어나고 도시는 폭동과 약탈이 일어날 것이다

세계인구 76억명이 식량위기에 몰리자 제3차세계전쟁이 발발하여 세계인구의 1/3인 25억명이 전쟁으로 사망한다

적그리스도가 짐승의 표인 666 매매시스템을 통해 세계를 통제하려는 계획에 전세계가 따라 올 수 밖에 없는 조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세계 미디어는 3년반동안 비가 오지 않는 원인으로 두 증인을 주목한다

세계는 이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쏟아 놓는데 짐승이 이들을 죽이자 환호하며 심지어 서로 선물까지 보낸다 

그리고 마침내 짐승에게 일심으로 세계를 통치할 권력을 이양한다

만약 들림받지 못하고 남는다면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이 7년 흉년을 대비했던 것처럼 7년치의 식량을 미리 확보하는 것도 지혜로운 행동지침이다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지구전역에서 불러 올릴 것이다

온 맘 다해 사랑합니다


출처: https://blog.naver.com/acoloje/221456686373


마지막 때의 조건 충족 : 지식의 증가와 교통수단의 발달은 포화상태


미래 학자이자 발명가인 풀러(Fuller)는 인류가 AD 원년까지 누적된 지식을 하나의 정보 단위로 취하고 이것을 벤치마크로 사용할 경우 인간 지식의 양은 두 배가 되는 기간을 계산했다
AD 원년의 지식 대비 두배가 되는데 1,500 년이 걸렸다
그후 인쇄기가 도입됨에 따라 인간 지식의 성장 속도는 약 250 년 후에 두 배로 가속화되었고 1900년경에는 약 150 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25년마다 두 배로 증가했다.
1982년경에는 18 개월마다,  21세기초에는 13 개월에 두 배로 증가하였는데 지금은 인터넷과 클라우드, 스마트폰, 유튜브의 등장으로 IBM은 12 시간마다 두 배로 증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AD 원년

지식 2배

지식 2배 

지식 2배 

지식 2배 

지식 2배 

지식 2배 

지식 2배 

 benchmark

 1500년

 250년

 150년

 25년

 18개월

 13개월

 12hr

 

 수기

 인쇄기 도입

 1900년

1945년

1982년 

 21세기초

현재 IBM 추정

 

 

우리 세대의 지식의 증가는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식의 증가를 거론하는 이유는 다니엘의 예언에서 언급한 것 처럼 마지막 때를 진단하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말을 간수하고 이글을 봉함하라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단12:4)


다니엘 12장은 마지막 때와 끝 날에 대한 예언인데

끝날은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는 짐승이 통치하는 3년반의 기간을 의미하며 

마지막 때는 짐승의 때가 시작되는 시점을 의미할 것이다

사람의 빨리 왕래하는 교통수단의 발달은 자동차와 항공기를 예로 들수 있는데

자동차는 1885년 벤츠가 엔진으로 가는 최초의 3륜 자동차를 만들었고 포드는 자동차 대중화에 성공하여 T모델은 1870년부터 1927년까지 1500만대를 팔았다

자동차가 등장한지 133년이 지난 지금 자동차는 필수가 되었다

 (포드 T모델)


항공기는 1903년 라이트형제가 최초 동력 비행기로 비행에 성공하였다

1937년에는 프로펠러형 제트엔진 비행을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빨리 왕래하는 고통수단의 발달은 마지막 때의 조건을 벌써 충족되었다



 

<보잉 747 시리즈는 항속거리 15,000km, 순항속도 950km, 600명이 탑승할 수 있다> 


다니엘 12장에서는 성도의 부활을 예언도 했지만

"땅의 띠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단12:2)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는 한 때 두 때 반 때를 언급한다

다니엘의 70이레가 이것으로 마치기 때문이다


짐승의 통치는 3년반동안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진다

이 말은 성도들이 박해와 환난을 받으며 투옥되고 순교를 당한다는 의미다

일부는 짐승의 우상에 경배하고 환난에서 벗어나려고 할 것이다

우상에 경배를 거부하는 자들은 몇이든지 다 죽인다

이 때 순교한 자들이 계시록 15장에 등장하는데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가에 서서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른다


지금 교회시대에 사는 우리는 성도의 권세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 권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주신 것이다

"내가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16:18~19)


주님은 두 가지 권세를 교회에게 주셨다

①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권세

② 천국 열쇠를 가지고 땅과 하늘을 푸는 권세다


음부는 죽은 자들이 들어가는 장소로 지옥을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신자들은 지옥에 들어가지 않는다

신자들은 반드시 믿음의 열매인 거룩한 삶이 수반되어야 한다

모든 무슬림들이 테러리스트는 아니지만 모든 테러리스트는 무슬림이다

행위로 구원을 받지 못하지만 행위가 거룩하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할 수 있다


천국 열쇠는 우리가 이 땅에서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천국열쇠다

성도의 권세는 기도와 성령의 능력,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로 하늘 보좌를 움직인다

현대교회가 이 성도의 권세를 잃어버린 이유는 마음과 삶이 거룩하지 않으며 위선적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벌거벗은 신자들이며 심각한 착각에 빠져 있다

거룩한 자는 계속 거룩해야 한다

네 생물은 밤낮 쉬지 않고 이른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뵙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 때를 사는 지금 교회의 안팎의 두 부류 다 기독교에 실망했다는 회의적인 소리가 들린다

신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심판대에 서서 심문을 받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그의 제자가 된다는 의미에 대해 자문을 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그의 제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분명한 지침을 주셨고 우리는 그 약속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해 주신 위치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삶의 중심에 주관자가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닫고 겸손히 그와 동행하는 삶을 이루어 내야 한다

마지막 때의 조건이 충족되었고 짐승의 통치가 시작되기 전 우리는 간막에 서있다


출처: https://blog.naver.com/acoloje/221424423472
 

노아의 시대는 날짜가 중요하지 않았을 모른다

정말 모든 것을 쓸어버릴 만한 대홍수가 일어날 것인가?

그것이 더 핵심 관심사였을 것이다

노아가족은 동물들이 방주를 탑승하러 몰려오자 비로소 확신을 가졌을 것이지만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은 했지만 설마 홍수가 실제 일어날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지금 주님이 다시 오셔서 공중으로 끌어 올릴 것을 믿는 신부들은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고 신중하게 믿고 있지만

그 일이 언제 일어날 것인가?

사실 더 중요한 관심사이며 정해지지 않은 약속날짜를 기다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노아가 120년후에 대홍수가 일어날 것이라는 약속날짜를 받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성경은 공중강림에 대한 날짜에 대해 미래의 신자들이 큰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예견한 듯

날짜에 대해 명백하게 선언하였다

너희는 그 날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

이것은 기다리는 기간이 거의 2000년에 수렴할 때 신자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심각하게 경고하는 이유는

끔찍한 환난에 남겨지는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 날을 유일하게 알고 계신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오랜 후의 일이지만 경고를 해야만 했을 것이다

만약 날짜를 주셨다면 오히려 세상은 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날짜가 많이 남아있을 시대에는 <아직 멀었다, 내 생전에는 없을 것이다> 먹고 마시고 취했을 것이다

날짜가 임박한 때에 사는 신자들은 <이제 끝났다, 종말이다> 일상을 포기하고 날짜만 기다렸을 것이다 

두가지 상황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은 아니다


문제는 깨어 준비되어 있지 못하면 정말 남겨지는 것인가?

그 날에 대해 관심은 없지만 신앙이 좋은 신자가 있을텐데 기다리며 준비하는 것과 차이점이 있을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성경은 그 날을 혼인예식에 비유했다는 점이다

혼인날짜에 관심이 없는 신부는 없다

준비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신부는 최고의 웨딩드레스를 준비하고 다이어트를 할 것이다


성경이 지시하는 바는 명확한 것 같다

- 예복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 예복은 어린양의 피로 씻어 희고 정결한 재료를 만들고 옳은 행실로 옷을 짜야 한다

- 죄로 더럽혀진 예복은 혼인예식에 초대받지 못한다

- 심지어 벌거벗은 미지근한 자들도 있는데 쫓겨날 것이다


너희가 그 날에 대해 관심도 없고 깨어 준비하지 않으면

마음은 무디어지고 세상의 방식을 추구하느라 신앙은 미지근해지며 죄에 노출되어 들림받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다

결혼날짜를 받은 신부처럼 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심지어 10처녀가 신랑을 맞으러 나갔음에도 그 중에 다섯은 실패했다면

집에서 아무 생각도 없이 빈둥거린 처녀는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사모하고 집중하며 기다려야 하는 이유다

예복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CHECK LIST

 

중 

하 

 뜨거운 신앙(성령충만)

 O

 

 

예복(기도생활+ 경건한 삶) 

 O

 

 

 주님과 동행, 죄에서 떠남

 O

 

 


 

 


성경이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또 하나는

깨어 예복을 준비하는 것은 웨딩드레스를 상점이나 쿠팡에서 잠깐 사오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려준다

정보를 많이 접한다고 예복이 준비되는 것이 아니라 삶이 변화되는 것이다

그것은 어느 한 시점에 잠깐 준비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에녹은 300년을 동행했고 노아는 120년을 준비했다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눅21:36)

항상은 긴 기간을 의미로 확장된다

하나님은 그리 만만하신 분이 아니며 연막을 치고 속일 수 있는 분도 아니다

신실하고 일편단심 신부들은 오랬동안 인내하고 눈물로 연단을 받아 금같이 정련된 자들이다

수십년을 그렇게 기다려 온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 힘이 아니라 기도와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하다는 사실도 체험으로 아는 자들이다

지금 우리는 2000년동안 신자들이 기다려 왔던 변곡점의 끝에 와 있을 것이다

때를 언급한 무화과나무 비유는 100년 이전에 살았던 신자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 줄 알라​

디아스포라는 고토로 돌아왔고 이방인은 자리를 물러주고 그 길을 의연히 떠나야 한다

순례길 모퉁이의 작은 문들을 지나 왔고 그 먼 길의 끝에서 고단한 여정을 마치고 새로운 삶을 기대해 본다

 

사도바울이 말한 것처럼 사단은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 / 엡 2:2>로서 '자기권세'를 지키기 위해 공중 아래 사는 자들을 유혹하고 협박합니다. 바로 <세상 풍조를 따른 자들>이 되도록 합니다.


세상 풍조는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교육 등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채우는 쪽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마치 덫에 올려 놓은 미끼처럼 작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풍조를 따르는 자들을 크게 몇 가지 그룹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가장 첫번째 "1차 그룹"은 <스스로 좋아서 세상풍조>를 따르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자원하는 심령으로 사단을 따르는 자들로서 좋고, 하고 싶고, 뒤지고 싶지 않아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풍조를 따르는 맨" 마지막 그룹"은 <불안과 두려움, 위협>이 있기에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무리의 대다수가 넌크리스챤들이 아니라 교회당을 다니는 기독교인들로 가득할 것이란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공중권세를 포기해야 하기에 사단은 절대적으로 <주님의 재림>을 막습니다. 그래서 신랑되신 주님을 맞이할 <신부>와도 같은 성도들이 준비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 맨 마지막 방법이 바로 불안과 염려, 두려움과 위협을 가하는 것인데 이는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살아가고 있는 모든 영역들(공중 아래 있는 모든 것)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깨어 있어야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가 되면 될수록 "깨어 있음"이란 하나님 나라의 백성됨의 특징이며 진짜 그리스도인, 리얼 크리스챤의 대표적인 증거가 될 것입니다.


이에 세상 풍조를 따르는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 속에서 깨어 있음으로 이를 거역하고 돌파하는 자들, 바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우는 자들로 세상 풍조를 따르지 않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나는 오늘 하루도 "깨어 있는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위해 사는 자"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더욱 힘겨운 세상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 세상 풍조를 거스르기로 작정한 자>라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마 24:6)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 1:9)라는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 예수님 또한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하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것이 내 삶의 이유이기에 신부요 용사된 자로서 깨어 기도하며 오늘도 복음을 살아냅시다. <마지막 시대에 마지막 사랑>으로 일어섭시다. 마라나타!



글: 김영표 목사님

말세의 사람들과 교인들 I

 

본문: 딤후 3:2

요절: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지난주 우리는 이미 말세가 가까웠고 사회에 불법이 가득하고 교회도 그 영향을 받아 고통을 당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바로 전의 상태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때가 가까워 사회에서 살기도 어렵고, 교회 생활도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1절에서 이때를 나쁜”, “고통스러운시기라고 하면서 2-5절에서 이런 시대에 사는 사람의 성품이 어떤지를 묘사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을 떠나 자율의 길을 갔을 때, 그들의 죄가 성숙하면 이러한 현상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2-5절에 열거한 것을 악덕목록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악덕목록은 성경 여러 곳에 나타납니다. 성경은 인간의 악한 행실을 고발하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나타나는 19개 악덕은 모두 불신자의 성품과 태도입니다. ,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대하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진리대로, 친절하고 섬기려는 자세로 살려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살기가 무척 어려워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오게 되고, 이들이 목사가 되었을 때, 교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는 이런 목사들 때문에 지금도 시간과 정신을 낭비하며 상당히 고생하고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너무도 경건해서 함께 일을 시작하면 언젠가는 본색이 드러나서 일이 깨어지고 제가 큰 피해를 보게 됩니다. 여러분도 이런 일을 당하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절망해서 사람 관계를 끊고 교회를 완전히 떠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것을 미리 경고하셨으므로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진짜 말세에는 이러한 사람이 대다수를 차지하므로 교회는 경건의 능력을 잃게 되고 위선으로만 가득 차서 극도로 어려워집니다.

 

오늘 우리는 이 목록을 통해 남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자기를 비판하고자 합니다. 이 설교를 듣는 여러분도 이 목록의 어느 하나라도 자기에게 해당한다면, 구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미 거짓 복음으로 조금은 세뇌되었으므로, 별 생각없이 자기가 구원받았다는 착각 속에서 삽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아무리 말씀을 가르쳐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가르치면 자기를 냉철하게 점검하고 회개해야 하는데, 자기는 잘 지킨다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교회에서 보통 악덕을 세밀하게 가르치지 않아 죄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실정입니다. 설교자가 바로 당신이 이런 사람이다라고 꼭 집어서 지적하면, 감사하지 않고 분노하여 교회가 파탄 나거나 설교자를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영생의 길을 제시하면 돼지가 진주를 밟듯이 공격적으로 나옵니다. 이것이 말세 교회의 한 단면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회개하여 거룩한 그리스도와 한몸이 되시고, 마음속에 늘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감화와 성령님의 능력으로만 이러한 악덕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1. “자기를 사랑하며”(phil-autos)

 

유럽의 일반 기독교는 성경의 모든 가르침을 이웃 사랑이라는 한마디로 규정하고(물론 좀 극단화된 표현입니다만), 이웃 사랑이 무엇인지는 자기가 정의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그들에게 적어도 두 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성경 말씀을 순종하므로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생각을 유지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웃 사랑을 자기가 정의하므로, 자기가 입법자가 되는 휴머니즘-계몽주의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는 계몽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는 계몽된 그리스도인입니다.

 

계몽주의 이후 유럽인에게는 Selbstverwicklichung(자기 계발, 자기완성)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말의 중심에는 자기(그리스어로 아우토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원래 선하므로 누구든지 자기를 잘 개발하면 낙원이 온다는 생각이 근저에 있습니다. 오늘날 독일에는 녹색정당이 이 사상을 실현하고자 그들이 정권을 잡고 있는 곳에서는 이 이념에 따라 법을 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자기를 사랑하며가 오늘날 유럽인 생각과 감정의 기본이 됩니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온 유럽은 낙원이 된 것이 아니라 상당히 타락했습니다. 자기만 알고,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고,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는 청소년들이 늘어났습니다. 결손 가정도 상당히 많아졌습니다. 한국은 공공장소가 갈수록 깨끗해지는데, 유럽은 갈수록 더러워집니다.

 

전 영역에서 모든 것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고 있으므로, 남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자녀를 많이 둔 부부라고 할지라도, 갑자기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나면 이혼하고 그를 사귑니다. 이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의 극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 통해 배우자가 상처받고 아이들이 당하는 고통은 얼마나 클 것인지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가 규정한 이웃 사랑의 결과입니다.

 

물론 유럽인은 막무가내는 아닙니다. 높고 깊은 문화적 전통과 기독교 유산이 있어서 이것이 무너진 것은 아닙니다. 아직은 정직과 성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필-아우토스(“자기를 사랑하고”)가 근저에 있으므로, 좋은 문화적 유산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으며, 사회적 불안이 점차로 증폭되며, 사람 사이가 조금씩 균열해 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생각과 태도가 교회에 침투한 것입니다. 유럽 교회는 한국 교회 상황과 전혀 다르므로, 한국 교회로 넘어가겠습니다. 신앙을 자기완성이나 이익의 도구로 삼는 분이 많이 있습니다. 신앙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거나 지인의 범위를 늘인다든지, 건강, , 행복을 증진한다는 생각입니다. 집사, 권사, 장로, 목사가 되면 사회적 명망도 생깁니다. 목사는 큰 교회를 이루면 그가 받는 영광은 말할 수도 없이 큽니다. 이것이 바로 필-아우토스(“자기를 사랑하고”)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평소에는 매우 친절하고 은혜로운 교우가, 금전이나 명예 문제가 생기면 갑자기 원수로 돌변하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저희 교단에서 이런 일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의 첫 단계는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둘째 단계도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며, 셋째 단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의 정반대인 자기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생 해야 하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모든 죄가 파생됩니다. 앞으로 나올 18개 악덕은 자기 사랑의 결과라고까지 볼 수 있습니다.

 

사람 마음속에서 다음과 같이 솟아나온다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셨습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살인(미워하는 것)간음음란도둑질(탐내는 것)거짓 증언비방(남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것)이니”( 15:19). 그리스도인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이런 일을 하면서도 자기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형제를 미워하고 남에 대해 나쁘게 말하고, 악한 생각을 하면서도 이 사실을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 죄를 너무나 사랑하므로 이것을 놓지 않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를 사랑해서 이 악덕을 키울 것이 아니라 죽여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의 말씀이므로, 우리가 정말로 명심해야 하며, 이러한 일이 없도록 항상 자기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2. “돈을 사랑하며

 

성경은 가난함이 부자보다 낫다는 것을 계속해서 가르칩니다. 부자가 되려고 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더 어렵다고 하면서 부자가 되려는 마음에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에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6:20-21).

 

오늘 본문에서는 주로 돈이 있어도 남에게 나누어주지 않는 사람을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자입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13:16). 주위에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자기 재산을 움켜쥐지 말고 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축복했음을 감사하지 않는 것으로서 심판을 받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위해 돈을 지출하는가에 따라 그가 무엇을 가장 사랑하는지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데에 돈을 아낌없이 사용하고, 구제나 하나님 사업에는 인색합니다. 이것은 돈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선물이며 자기는 청지기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소유욕으로부터 해방하도록 무섭게 훈련하지 않으면, 돈 사랑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을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고 비판하셨습니다. 여기에는 매우 중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들을 경건한 자들이라고 칭찬했으며, 자신도 그렇다고 굳세게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바리새인들은 이 비판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16:14). 혹시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말씀의 고소에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마음을 다 아실 뿐만 아니라, 의식 표면으로 떠오르지도 않은 것까지도 아시고 우리를 판단하십니다. 자기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할지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심판 기준은 하나님이 세우시는 것입니다.

 

 

3. “자랑하며

 

이것도 자기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 자랑스러워서 다른 사람에게 이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자기 돈, 학식, 지식, 지위, 출신을 자랑하므로 기회만 있으면 이것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어느 모임에 가도 이들은 대화의 주도권을 잡고 큰소리를 냅니다. 생각이 항상 자기중심적이 됩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으로서 이런 사람을 교회 일군으로 세우면 큰일 납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자기 영광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유대인의 이러한 경향을 날카롭게 지적하셨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러한 식으로 목회하지 않으면 교회에 사람이 거의 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풍조에 물든 목회자와 교인은, 자기 영광을 마음껏 구해서 영광을 다 받고, 제일 마지막에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립니다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 얼굴에 침을 뱉어야 마땅한데, 대부분 이 말을 듣고 아멘합니다. 이렇게 교인은 세상 사람이 보기에도 유치한 우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를 잘라내야 합니다. 이것이 없어야 자기가 자유로워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이런 사람 때문에 항상 어지럽습니다.

 

 

4. “교만하며

 

이것은, 자랑하는 것과 성질은 같지만, 죄질이 더 악한 것입니다. 교만은 자기 상태(실력)를 잘 모르므로, 자기를 실재보다 훨씬 높게 평가하는 과대망상적인 현상입니다. 게다가 남을 낮게 보는 병적인 현상까지 겹친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남이 하는 것은 우습게 보이고 자기가 하는 일은 항상 옳습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남이 끝까지 말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더이상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이 중간에 말을 끊고 개입합니다.

 

제가 모 대기업체에 근무할 때, 회사의 장이 사원의 개인 생활에까지 간섭했습니다. 모든 것을 자기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식당에 가도 자기가 다 시킵니다. 사원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기가 다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교회에까지 들어와서 목사나 힘이 있는 장로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돈줄을 자기가 쥐고 있습니다. 어떤 선교 단체는 결혼도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합니다. 이혼하라고 명하면 이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목자가 신자의 인생 깊은 곳에까지 간섭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흉내 내는 교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도 이러한 방법으로 일하지 않으십니다. 이렇게 남을 지배하려는 현상이 특히 한국 교회에 심합니다.

 

한국인에게는 이러한 유전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특히 주의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만한 사람은 자랑하는 사람과는 달리 매우 겸손하고 사랑스럽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주로 마음의 죄이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평소에 나타나지 않지만, 결정적일 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위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에 와서도 말씀을 잘 배우지도 않고 영접하지도 않으므로 그 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겸손하므로 아무도 그의 속을 잘 모릅니다.

 

교만에서 벗어나려면 자기 죄를 완전히 자백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도 해야 하지만, 사람에게도 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용서를 구하고 화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교만 죄를 벗을 수 없습니다.

 

  • 4:6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 벧전 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정리하면, 예수님 오실 때가 가까워지면 보통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자랑하며 교만한 것이 눈에 띄게 드러납니다. 그런데 교회도 이와 같이 됩니다. 그러면 교인은 하나님의 거룩한 품성이 어떤 것인지를 모르게 되어, 자기도 이들과 똑같은 생각으로 살므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겉으로는 예배가 활성화되어도, 내적으로는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가 이미 무너져있습니다. 그러므로 각자 경건한 삶을 위해 매우 애써야 하며,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여 실천하도록 애써야 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는 심한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사랑과 그분의 감화로, 성령님의 능력을 받아, 새사람의 본질에 맞게 사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일이 실천하기에 매우 어려운 일이므로, 우리는 믿음의 형제를 찾아 같이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하고 돕고 격려하는 일을 게을리하면 안 됩니다. 사회나 교회 상태를 보고 결코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이것을 예언하셨기 때문입니다.


 http://cafe.daum.net/reformedvillage/MvxA/99



출처: 영적분별력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지금은 마지막 때인 증거

지금은 마지막 때 : 지금이 마지막 때인 증거!

- 어빈 백스터 목사님 (Brad TV) -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마지막 때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지금이 왜 마지막 때인지 

제대로 깨닫고 있는 사람은 적습니다.

왜 지금이 마지막 때인지 

많은 사람들을 깨울 명쾌한 어빈 백스터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두 증인의 사역에 대하여







두 증인이 사역하는 때는 전 3년반 1,260일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왜 전 3년반에 갑자기 나타나서 무슨 사역을 하는 것일까?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베옷을 입고 1,260일을 예언하리라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듣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계 11:3~6)



계시록 11장을 근거로 두 증인의 사역을 보면 

첫째, 휴거 후 혼란에 빠진 남은 자들(교회 일원이지만 미지근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다.


그들이 베옷을 입고 예언하는데 베옷은 회개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둘째, 전 3년반동안 하나님을 거부하는 불신자들에게는 

재앙을 보내서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이끌 것이지만

기록된 두 증인의 사역을 보면 오히려 재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두 증인의 사역과 휴거 시기의 연관성


환란전 휴거: 두 증인의 사역전(전 3년반 이전)에 휴거가 일어나는 경우.


환란을 대비하라


신실한 성도들이 휴거되고 난 후

충격에 빠진 지상에 남은 자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불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시키면서

대환란을 앞두고 땅에 사는 자들에게 재앙의 전조를 내린다.

두 증인의 사역의 대상이 성도가 아니라 땅에 사는 자들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이 활동하는 3년반 동안 비가 오지 않아 기근이 심각해질 것이다.


환란중 휴거: 두 증인의 사역중(전 3년반)에 휴거가 일어나는 경우


짐승의 표를 받지 마라​


두 증인의 사역은

짐승의 표를 받지 않도록 경고하고 격려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고는 이미 2000년 동안

교회시대에 충분히 경고해 왔을 뿐 아니라,

두 증인의 사역은 전 3년반이므로

성도를 대환란에 남겨두고 두 증인만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환란후 휴거 : 두 증인이 사역후(후 3년반)에 휴거가 일어나는 경우


순교하라


두 증인의 역할은 대환란을 인내로 통과하도록 순교정신을 불어넣는 것이다.

그러나 참 선지자는 대환란의 현장에서 함께 환란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사역은 복음을 거부하는 땅의 백성들에게는

재앙으로 맞서기 때문에 대부분의 인류는 이들을 증오한다.

 

두 증인은 누구인가?


두 증인의 정체성에 대하여

두 증인을 상징으로 볼 것이나 문자적으로 볼 것이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므로 몇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계시록은 두 증인을 선지자(계 11:10)로

두 촛대로 두 감람나무(슥 4:1~14)로 소개하고 있는데

성경에 기록된 선지자는 모두 유대인이었으므로

두 증인이 이방인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1. 모세와 엘리야다.


두 증인의 입에서 불이 나오고, 비가 오지 않게 하며,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사역은 모세와 엘리야를 연상케 한다.


물을 피로 변하게 한 것은

모세가 에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릴 때의 이적이고,

하늘에서 불이 내리고 비를 오지 않게 한 사역은 엘리야가 행했던 이적이다.


변화산상에도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었다.

그러나 모세는 이미 한번 죽었는데

두 번 죽는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2.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이다.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계 11:4)

계시록의 이 말씀과 똑같은 내용이 스가랴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 등잔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기름 그릇 오른쪽에 있고 하나는 그 왼쪽에 있나이다"

"내가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슥 4:3~4)


"이르되 이는 기름 부은 받은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는 자니라 하더라"

(슥 4:14)


그런데 스가랴 3장에서 대제사장의 상징인 여호수아가 등장하고

스가랴 4장 9절에 스룹바벨이 등장하기 때문에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들을 상징한다고 해석해 왔다.


3. 예수님의 제자 중 2명이다.

이들의 정체성을 증인이라고 기록한데서 힌트를 찾은 해석이다.

증인이란 이미 어떤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제자들이 나타나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다.

가장 유력한 제자 중 한명은 요한이며 증언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하였다.



4. 마지막 때의 사명을 위한 두 사역자다


최근 이런 주장이나 견해를 보이는 사례가 발견되고 있는데

자신이 두 증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두 증인은 유대인일 가능성이 크다.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계 11:10)


5. 불특정 다수의 사역자들이다.

마지막 때에 사명을 위해 선택된 사역자들로 두명이 아니라 다수에 해당한다는 해석이다


6. 이방인교회와 이스라엘 교회를 상징한다.

두 증인을 두 촛대로 기록되었고 촛대와 등잔대는

교회를 상징한다는 이유로 이방인 교회와

이스라엘 교회나 두 교회의 대표자 2명으로 해석하는 경우다.

전세계에서 휴거되지 못하고 뒤늦게 회개한 교회들이 대상일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들이 기름부음으로

구별한 두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사역하고 죽는 장소는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 즉 예루살렘이다.


그 곳은 영적으로 애굽과 소돔인데

애굽은 세상과 박해를 상징하고 소돔은 죄와 심판을 상징한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죽게 한 이후

육적으로는 나라가 회복되었지만 영적으로 타락했으며

동성애 비율은 전세계 3위에 이를 정도다.


휴거 이후 전 3년반 뿐 아니라

후 3년반도 세계와 짐승의 중심부대는 예루살렘이다.

세계단일정부의 수도는 예루살렘일 가능성이 높다.


두 증인의 죽음


두 증인의 죽음 


두 사람은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싸워서 지고 짐승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타락한 고위급 천사라는 해석과 짐승이 두 증인을 죽이고

세계에 인기를 얻어 세계단일정부의 수장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2:1의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겠지만

두 증인은 패하는데 이는 본격적인 짐승의 시대가 도래함을 의미한다.


또다른 해석은 이 전쟁을 영적전쟁으로 해석하여

7년환란의 시작되면 교회가 영적 기갈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이다.


두 증인의 부활


두 증인은 산채로 휴거되는 것이 아니라

죽었다가 부활하는 모습을 취한다.


3일반 후에 두 증인의 시체에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 

다시 살아나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이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세계인들이 목격하게 되는데 아마도 TV로 중계하게 될 것이다.


이미 그들의 시체가 땅에 묻히지 못하고

죽은 모습을 세계방송에서 떠들썩하게 방송하며 기뻐했던 터다.


휴거는 비밀스럽게 진행될 것으로 알지만

두 증인은 모든 사람이 보는 상태에서 구름타고

하늘로 올라가기 때문에 이것이 교회의 휴거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두 증인의 사역과 둘째 화


두 증인이 하늘로 올라가고 것을 구경하는 그 때에 

예루살렘에 매우 큰 지진이 일어나 7,000명이 지진으로 사망한다.


이때 성전산의 황금돔이 무너질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방송으로 구경하는 자들이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1,260일간의 두 증인의 사역과 큰 지진을 둘째 화로 기록되었는데

세계는 이제 짐승의 시대로 인한 세째 화가 준비된다.


짐승의 등장


짐승이 두 증인과의 싸움에서

부상을 당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가 부상을 당해 거의 죽은 상태에서 상처가 기적적으로 치료된다.

세계는 이 상황을 매우 놀랍게 받아 들이고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짐승이 방송에 나와 세계인을 사로잡는 명연설로

더 큰 인기를 얻게 되는데 온 세계가 그를 따르고

단일세계정부의 대통령으로 추대하자는 여론이 급등한다.


그의 연설은 세계평화와 안전을 약속하고

하나님을 신성모독하고 기독교와 이스라엘을 비방하는 내용이다.

마침내 짐승은 3년 6개월 임기의 세계단일정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출처: 카이로스 / ars

성경을 읽다보면 참으로 흥미롭게 반복되는 복음의 패턴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성취될 십자가와 부활과 재림의 복음을 인류의 역사 속에 끊임없이 반복되도록 삽입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라는 거시적인 패턴에서뿐만 아니라 한 개인의 하루의 삶 속에서도 미시적으로 반복되어지고 있습니다. 낮과 밤이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죽음과 부활을 날마다 연습할 수 있도록 우리의 인생을 그렇게 설계해 놓으신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여호수아로 이어지는 고대 역사 속에서도 복음이 어떻게 나타나 반복적으로 예표되고 있는지를 그 패턴들을 살펴보면 참으로 흥미롭고 의미심장한 복음의 흐름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1. 천지창조 (창조)

2. 인간의 범죄 (죄)

3. 여자의 후손으로 오심 (성육신)

4. 가죽옷, 뱀의 머리를 밟으리라 (십자가와 부활)

5. 에녹의 승천 (심판 전 교회의 들림사건)

6. 노아의 홍수 (대심판과 환란성도들의 보호)

7. 무지개 (새하늘과 새땅)


1. 셈 (새로운 시작)

2. 바벨탑 (하나님을 향한 반역)

3. 아브라함의 이삭번제 (십자가 대속의 사랑)

4. 요셉의 감옥생활 및 애굽총리가 됨 (장사되었다가 부활)

5. 7년풍년과 7년흉년 (교회의 성장과 마지막 7년대환란)

6. 형들에게 정체를 밝힌 요셉 (예수님의 재림)

7. 야곱을 애굽으로 데려옴 (영원한 천국)


1. 애굽종살이 (죄와 사망권세 아래 사는 옛생활) 

2. 홍해의 기적과 출애굽 (죄의 형벌로부터의 구원-칭의)

3. 광야생활을 통한 세대교체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는 성화의 과정)

4. 요단강을 건넘 (재림을 바라보며 영화의 단계로 나아감)

5. 라합의 구출 (교회의 들림사건)

6. 여리고성의 무너짐 (세상의 종말)

7. 약속의 땅을 정복하여 거주함 (천년왕국)


이러한 패턴들은 사사기 이후에도 또 다시 반복되어 끊임없이 나타납니다. 억지로 끼워맞추지 않더라도 성경을 쭈욱 읽어내려가다보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러한 복음의 패턴들이 무한반복 되풀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반복되어지는 패턴들마다 약간씩의 관점과 포인트는 다르더라도 동일한 패턴으로 반복되어지는 복음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반복된 패턴들을 보여주시는 이유는 앞으로의 인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어질 것인지에 대한 지혜와 통찰력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 칠 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수 6:4)


오늘 여호수아 7장에 나타난 여리고성 함락사건은 마지막 때의 끝자락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매우 의미심장한 메세지를 전달해 주며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 본문을 읽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나팔 소리만 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여 제사장들로 하여금 양각나팔을 불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이것은 이 마지막 때에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을 알리고 적극적으로 선포하라는 엄중한 총사령관의 명령입니다. 


여리고성을 묵묵히 일곱번 도는 행위는 기도에 깨어 있는 성도의 모습이며, 양각나팔을 부는 행위는 재림하실 예수님을 선포하는 마라나타 신앙입니다. 이렇게 깨어 기도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선포하며 살아가는 것이 오늘날 마땅히 취해야 할 믿는 자들의 태도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 (수 6:16,20)


이 말씀은 (살전 4:16-17) 말씀과 정확하게 오버랩이 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거라는 그 약속을 여리고성 전투를 통하여 이미 수천년전에 하나의 예언적 사건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고전 15:51-52)


사도 바울 역시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되어 부활하게 될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 사건은 추상이 아닌 생생한 실제적 사건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잠들지 말고 깨어 기도하며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지금 이 세상에는 마지막 때의 징조를 알리는 무수히 많은 나팔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1900년 동안 지구상에 흔적없이 사라졌던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났으며(무화과 나무 가지가 연하여져 꽃이 피는 사건),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고 나라간, 민족간의 크고 작은 전쟁이 있으며, 전세계적인 배도의 물결(종교통합의 움직임)이 휘몰아 치고 있습니다.

또한 전세계가 무선인터넷과 최첨단 아이티기술로 빠르게 소통되고 통합되는 세상으로 바뀌어, 다니엘의 예언한 바 사람들간의 왕래가 빨리질 거라는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동성애'라는 가증한 죄악의 흐름이 유럽과 미국을 장악하고 이제 마지막 때의 신부의 나라인 대한민국을 집어삼키기 위해 음흉한 미소를 띄우며 침을 흘리고 있습니다. 무서운 속도로 종말을 향해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는 이 시점입니다. 이렇게 크고 작은 나팔소리가 울려퍼는 이 때에 우리는 마땅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 (눅 21:31-32)

이 세대가 가기 전에 반드시 다 이루리라는 말씀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 (고전 14:8)

지금은 나팔소리를 분명히 내야 할 시기입니다. 마지막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오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더 흔들어 깨우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두려움 없이 주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주님과의 깊은 사랑의 관계 속으로 손을 잡고 함께 들어가야 할 때입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일 4:18)

<적용>
오늘 하루가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겠습니다. 오늘 내게 주어진 하루의 삶 속에서 내가 하는 모든 삶들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며 사는 하루가 되어야겠습니다.

<기도>
사랑하는 주님, 매일의 삶 속에서 좌우로 고개만 돌려도 그 곳에 복음이 있습니다. 새벽에 눈 뜨고 일어나 부활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아침밥 숟가락을 뜨면서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 하셨던 주님의 사랑을 떠올립니다.

걸어가는 길가에 스치는 아스팔트 위의 들풀 한포기에서 돌짝밭 같은 제 마음에 피어나는 말씀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공중에 나는 새 한마리를 보며 참새 한마리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먹이시고 입히시는 주님의 공급하심을 느낍니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뭇가지... 봄이 되면 돋아날 새싹들을 생각하며 재림과 천국을 꿈꾸게 됩니다. 내게 주신 마지막 날...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며 그 사랑이 흘러가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곰팅이의 하늘우체통

 

 

제 3성전 재건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두마에 관한 경고라 사람이 세일에서 나를 부르되 파숫군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파숫군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파숫군이 가로되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 (사 21:11-12)


본문에 나오는 이사야의 예언은 에돔에 주어진 경고로서 앗수르 침략이 끝났을 때 겨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바벨론 침공이 계속해서 임하게되는 사건을 경고한 내용이다.


그래서 이제 겨우 평화가 시작되나보다 생각하기도 전 바로 그 때에 더 큰 재앙이 임하게되는 말세의 시나리오를 암시하고 있어 마지막 때의 교회는 파숫꾼의 사명을 잘해야 된다는 메세지를 받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 AD 70년 8월 9일에 로마의 베스페시안 황제의 아들인 디도 장군이 이끄는 로마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함락시키는 사명을 기어코 완수하고 말았다. 헤롯 왕에 의하여 건설되었던 영광스러운 성전은 예루살렘 성전 터에 지어졌던 두번째 성스러운 성전이었다.


첫번째 성전은 주전 1000년에 솔로몬 왕에 의해 세워졌다. 그러나 BC 587년에 바벨론에 의해 그만 파괴되고 말았다. 그리고 제 2성전은 BC 536년 바벨론 포로생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수룹바벨과 유대인들에 의해 재건되었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에서는 아주 놀라운 제3성전 재건 계획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제3성전 재건의 사건은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이스라엘을 침공하는 곡과 마곡의 전쟁에 버금가는 중요한 성경 예언의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예수님의 지상재림 전에 예루살렘의 성전터에는 제3성전이 서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제3성전 재건이라는 사건은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가 그만큼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1948년에 독립하여 내년이면 70주년 개국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고토로 돌아와 나라를 세우는 것을 보는 세대는 마지막 세대이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마 24:30-34)


제3성전의 재건은 마지막 세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금 예루살렘에 있는 35에이커의 성전터는 아랍 사람들에게 행정권이 주어져 있다. 1967년 6일전쟁 이후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성전터를 포함하여 예루살렘을 통제해오고 있다. 무슬림이 성전 터를 컨트롤하는 것은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언의 성취이다.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눅 21:24)


제3성전 재건 계획은 여러가지 정치적, 종교적 긴장을 넘어서서 유대주의 안에 오래동안 풀지 못하는 딜레마가 도사리고 있다. 먼저 유대인들의 입법기관에서 가장 최고의 기관인 산헤드린이 소집되기 전에는 제3성전을 재건할 수도없고 성전제사를 드릴 수도 없다. 결국 레위 제사장 제도를 재수립하기 위해서 산헤드린 소집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말씀 가운데 마지막 때에 산헤드린이 그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앞으로 있게 될 적그리스도의 핍박에 대해 경고하였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마 24:20)


이 예언은 지난 15세기 동안 없었던 산헤드린이 이스라엘이 독립할 때의 세대에서 다시 재소집하게 될 것을 암시해주고 있다. 즉 앞으로 다가오는 대환난 기간 중 안식일에는 여행이 1000보 이내로 제한될 것이 암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세대에는 산헤드린이 존재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 유대인 역사학자 요세프스의 기록에 의하면, 감람산 정상에서 성전터까지의 거리가 1000보로서 안식일에 허용된 여행길이라고 말했다.


제3성전 재건의 움직임은 교회의 휴거와 7년 대환란 후에 있게 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재림이 심히 눈앞에 가까이 다가와 있다는 사실을 징조로 보여주고 있다. 


1.성전 없는 이스라엘 


바벨론에 의하여 솔로몬 성전이 파괴된 후 AD 70년 로마에 의하여 또 다시 파괴된 제2 헤롯성전 사이에는 656년의 역사가 흘러갔다. 바로 그날부터 유대인들의 영적 생활의 센터인 성전이 다 사라져버렸다.


제2성전이 훼파된 후 지금 거의 1900여년이 지나는 동안 유대인들은 망명생활을 하면서 늘 예언대로 그들이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려왔다. 그들은 매년 유월절 명절 기간 중 “Next Year in Jerusalem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 명절을 지키자”라는 기도를 드렸다.


이같은 희망과 병행하여 그들은 제3성전 재건과 메시아왕국 건설을 위하여 오래동안 기다려왔었다. 수세기동안 유대인들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제3성전이 재건되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하며 기도해왔다. 그들은 오늘의 세대들이 그들의 염원이었던 제3성전 재건의 꿈이 실현되는 사명을 받게 되었다고 굳게 믿고 있다.


2. 성전 건축을 위한 하나님의 명령


제3성전 재건은 유대인들의 메시아의 오심에 대한 소망의 가장 중심이 되는 핵심신앙이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출 25:8) 이 하나님의 이 명령은 오늘날 제3성전 재건을 위해 있는 유대인들에게 적용된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하늘의 성전을 본 딴 성막을 건축하라고 자세한 패턴을 보여주셨다. 성막에서 쓰던 성물과 제사기구들은 나중에 솔로몬 성전에서도 사용되었는데 특히 언약궤는 영원한 하늘성전의 모형을 모델로 하여 모세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찌니라" (출 25:8-9)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과 솔로몬 왕에게 예루살렘에 있는 모리아산에 성전을 건축하라고 자세한 계획을 계시하셨다. 지금은 솔로몬 성전과 나중에 헤롯에 의하여 건축된 제2성전도 다 파괴되었다. 그러나 아직 예수님이 사역하시던 중에는 성전이 존재해 있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마 24:15-16)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전에 대한 예언은 다니엘이 말한 멸망의 가증한 것이 예루살렘에 서 있는 성전에서 성취될 것이다. 예수님의 예언과 다니엘의 예언은 둘 다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유럽과 지중해를 컨트롤하기 전에 제3성전이 재건될 것임을 암시해주고 있다.


사탄은 마지막 후3년반 중에 성전의 지성소를 더럽힐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파트너인 거짓 선지자는 성전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처럼 예배를 받도록 강요할 것이다.


3. 성전 재건의 쟁점 


지금 중동에서 계속되는 충돌의 비극은 아랍과 이스라엘 모두가 다 예루살렘과 성전터와 성지의 소유권을 주장하고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장차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재림하셔서 그곳에 보좌를 세우고 세상을 다스리게될 곳이기도 하며 또 하나님께서 몇 천년 전에 이미 그의 선지자 를 통하여 그 곳에서 인류의 운명이 결정될 곳이라고 예언하신 곳이기도 하다.


결국 예루살렘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평화의 도성이라는 뜻이다. 여러분과 저는 인류의 운명을 위한 절정에 도달하는 최후의 투쟁을 목격하게 될 세대의 한 부분에 속해 있다. 아마겟돈 최후 전쟁터에서 선악의 세력 대결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세계적인 재난이 발생하면 아마겟돈을 들먹거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쟁을 이끄는 쟁점은 역시 예루살렘,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성전터로 그 초점이 맞추어지게 될 것이다. 이 지상에서 가장 논쟁의 대상이 되는 부동산은 역시 곧 재건될 제3성전이 될 것이다. 이는 성경에 예언된 사실일 뿐 아니라 지금 이스라엘의 랍비들, 성전연구소, 고고학자들이 자세한 건축계획을 세우고 성전제사 때 쓰여질 성물들을 제작하며 옛성전에서 잃어버렸던 보물들을 찾고 있다. 


놀랍게도 앞으로 제3성전 제사 때 사용되어질 모든 성물들이 지금 거의 다 제작되었다고 한다. 정동파 유대교도의 종교지도자들이 제3성전 재건을 위해 준비하는 모든 활동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있는 실정이다.


4. 성전터 템플 마운트를 누가 컨트롤하나?


1967년 6월, 6일전쟁 기간 동안 유대인들이 거의 승리를 거둘 마지막 시기에 이스라엘의 국방장관 모세 다이앤이 무슬림 최고회의에 속한 5명의 지도자들과의 중요한 회동을 위해 알 아크사 이슬람 사원으로 갔다.


그동안 성전터는 1948년부터 1967년 이스라엘 방어군이 점령하기 전까지 20년동안 요르단군이 예루살렘을 통제하고 있는 동안 이슬람 최고회의의 절대적인 통제하에 있었다. 모세 다이얀 장군과 이슬람 지도자들간의 회의에서 템플 마운트에 대한 이스라엘의 종교 및 정치적 정책이 수립되었으며 그 때에 결정된 합의서가 아직 오늘에 이르까지 변동이 없이 지내왔다.


비종교적 유대인인 모세 다이얀 장군은 성전터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랍사람들에게 행정권을 포기하고 말았다. 불행하게도 아랍측은 유대인들의 가장 성스러운 성지를 포기하는 행위를 이스라엘 결의의 취약점의 징후로 해석하고 말았다.


다이얀 장군은 황금사원에 휘날리던 이스라엘 기를 제거하도록 명령하였다. 그후 성전터에 대한 모든 행정권이 요르단이 콘트롤하는 Waqf 무슬림 신탁 최고회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 유대인들에 의한 성전터의 출입은 제한되었으며 유대인이나 크리스챤에 의한 성전봉독도 금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 다이얀 장군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성전터를 공적으로 이스라엘의 가장 성스러운 성지라 부르는 것을 거절했다. 불행하게도 모세 다이얀 장군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정치적, 군사적 지도자들은 성전터의 영적 종교적 가치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오직 역사적 가치만 중요하게 여겼을 뿐이다. 


이같은 유대인들의 양보에도 불구하고, 또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성지인 성전터가 아랍 사람들에 의하여 행정권이 행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제3성전을 재건하도록 그의 백성들을 부르고 계신다.


제3성전 재건의 발전은 성경 예언의 성취에 치명적으로 중요할 뿐 아니라 주님이 지상재림하시기 전에 제 3성전이 재건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예루살렘 제3성전 연구소에서는 레위인 제사장들의 훈련이 실시되고있으며 오랫동안 실종되었던 옛성전의 성물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언약궤가 발견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소문이 꾸준하게 전해지고 있다.


지금 이스라엘에는 새로운 산헤드린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500명의 레위인들이 성전 제사에 필요한 훈련을 받고 있다. 지금 솔로몬 성전 때에 사용되었던 성물이 하나하나 발굴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고 있으며, 성전 터에 하나님의 성전이 재건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지난 1900여년의 오랜 기간동안 그들이 기도하며 기다리고 꿈꿔오던 성전 재건축의 꿈이 예루살렘에서 실현되는 최종적이 사명이 주어져 있는 상태이다.


제3성전 건축 계획은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오늘의 세대들은 예루살렘 모리아 산 성전터에 서 있는 하나님의 성전과 이스라엘의 왕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위에 앉아 왕국을 수립하기 위해 오시는 재림주로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성전이 서기 훨씬 전에 공중으로 들림받아 올라가게 될 것이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살전 4:16-18)



: 시애틀 늦은비교회 전윤근 목사님

미리 메리 마라나타!





세 개의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는 마지막 때의 징조와 재림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친히 예언하신 <감람산 설교> 동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 복음서마다 그 복음서가 쓰여진 대상과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마지막 때에 대한 기술방식과 논점도 다릅니다.


마태복음의 수신자는 유대인이고, 누가복음의 수신자는 이방인이며, 마가복음의 수신자는 로마황제의 극심한 핍박가운데 있었던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의 감람산 설교는 유대인이 수신자이기 때문에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하나님의 언약을 맡은 선민)이 되라는 권면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반면, 누가복음의 감람산 설교는 이방인(데오빌로)이 수신자이기 때문에 이방인의 때가 끝날 것과 대환란을 피하고 주님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에 깨어 있으라는 권면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또한 마가복음의 감람산 설교는 로마의 그리스도인이 수신자이기 때문에 매우 급박한 어조로 핍박 속에서도 낙망치 말고 인내하라는 실제적인 메세지로 마무리가 됩니다. 


누가복음에 나타난 <감람산 설교>의 핵심 메세지를 심플하게 정리하며 마음에 새겨봅니다.



1. 이방인의 때가 끝난다!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눅 21:24)


예루살렘의 멸망과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리라는 내용은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누가복음 자체가 이방인(데오빌로)을 위해, 이방인(누가)에 의해 쓰여진 복음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시대에 대하여 자세히 언급하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롬 11:25)

사도 바울도 계시를 통하여 이스라엘 멸망 이후의 1900년간의 교회시대에 대하여 성령의 조명하심을 받아 로마서에서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는 복음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이방인의 때가 끝나고, 다시 이스라엘로 복음의 바톤터치가 이루어지는 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2. 모두가 잠드는 때이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눅 21:34)

마지막 때는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사망의 깊은 잠에 빠져드는 때입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흘러가는 명확한 시대의 징조를 밝히 보면서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노아의 때와 같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며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미혹의 때입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 24:37~39)

평안하다, 안전하다 생각하며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세상 가치관에 뼛 속까지 물들어 죄악짱아치가 되어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그 날이 덫과 같이 임하여 결단코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살전 5:3)


3.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눅 21:35-36)

이 심판과 형벌의 날은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할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 안에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몸된 '주님의 신부들'은 장차 올 이 모든 환란을 능히 피하고 공중으로 끌어올려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전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면 상대 나라에 거주하는 모든 자국인들을 다 철수시킨 다음에 폭격이 들어가듯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무리들을 심판하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다 철수시키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을 먼저 공중으로 끌어올려 구분하신 후에 하나님의 진노가 온 땅에 퍼부어질 것입니다. (노아의 때도 방주에 의인들을 구분하신 후 심판하심, 소돔과 고모라 때도 롯과 가족들을 소알성에 구분하신 후에 심판하심)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계 3:10)

주님을 진정으로 믿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날은 기쁨과 환희와 축제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 날이 임할 것을 간절히 사모하며 천국에서 부를 새 노래를 이 땅에서 미리 부르며 어린 양께 속한 천국백성임을 매순간 선포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계 14:3-4).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7-8)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모든 자들에게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이 땅에서 그들의 삶은 군사의 삶이요 경기자의 삶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죄와 사망권세와의 영적 전투에 기꺼이 자신을 드리는 자들이며, 주님만 바라보며 보좌를 향하여 전력질주하여 달려가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자들에게는 다시오실 주님의 재림의 날은 기쁨과 축제의 날이 될 것입니다.

<적용>
새노래로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함으로 '미리 메리 마라나타'를 외쳐야겠습니다.

<기도>
사랑하는 주님,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이 어찌 그리 사모가 되는지요! 이 땅에는 정말 소망이 없습니다. 이 땅에 발붙이고 몸담고 살아가지만 정작 이 세상은 내 집 아닙니다. 날 데려가시기 위해 다시 오실 주님만이 유일한 소망입니다. 주와 함께 영원토록 거하게 될 천국이 유일한 내 집입니다.

오늘부터 주님 오실 그 날까지 '미리 메리 마라나타'를 외치며 천국에서 부르게 될 새 노래로 주님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날마다 새 노래로 날 향한 주님의 사랑을 노래하며 감사하기 원합니다. 감사와 찬양으로 왕의 오심을 예비하며 소망 가운데 살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이웃 블로그 / ♡곰팅이♡

휴거.. Are you ready?




세상은 성경대로 흘러가고 있으며

마침내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성경의 예언대로 성취되어가고 있는데,
이는 곧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재림"이라고 하며
재림을 두가지로 분류한다면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으로 나뉘어지나
교회에서는 보통 지상재림을 더 강조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지상재림보다 공중재림입니다.


공중재림..

즉 휴거를 그동안 부정적인 일들이 많아서

성도들과 사람들 인식에는

휴거란 말이 웬지 이단스럽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으로 흐름을 비춰볼 때
적그리스도가 등장하여 3년 6개월 평화통치,

후반 3년 6개월은 대환난으로 통치하게 될거라고 합니다.


후반 3년 6개월 시작을 알 수 있는 부분은
이스라엘에 성전이 세워져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가증한 것이 선 것을 본다면
이때부터 대환난이 시작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 마태복음 24:15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 마가복음 13:14


휴거가 대환난 전/중/후 중에 언제 일어날지 모르나
이 구절을 보면 대환난 전에 일어날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 데살로니가전서 5:3


대환난 기간에는 결코 우리는

평안하다 안전하다란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내일 당장 전쟁이 날 수도 있는데

그걸 모르고 일상에 빠져 만족하게 산 것처럼
내일 휴거될지 모르고 지금 이 삶이 너무 좋고

평안하고 안전하다 생각할 찰나
인자가 도적같이, 갑자기 오실 수 있다는 겁니다.


그 날이 언제 몇시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예수님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아십니다.


그러나 지상재림 때는 대충 계산하면 알 수 있습니다.
적그리스도가 대환난을 일으키는 그 시점
즉 후반 3년 6개월 뒤면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하셔서
적그리스도와 따르는 거짓 선지자들 그리고

적그리스도가 제시한 경제방식(666마크)에 동의한 사람들을
잡아 심판하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 3년 6개월 (1,290일/마흔두달/한때 두때 반때)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 다니엘 12:11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 요한계시록 12:6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 요한계시록 13:5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자가 그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생하시는 자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반드시 [한때 두때 반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 다니엘 12:7


대환난기간 3년 6개월 동안은

순교할 각오로 살아야 하는데
성경의 예언대로 보자면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이들을 제외한

거의 대다수가 배반하고 적그리스도에게 굴복당한다고 합니다.


3년 6개월 동안 참고 인내하여 버티는 자는
예수님이 이땅에 내려올 때 데려감을 당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버티는 자는 극히 없다고 합니다.



휴거...
휴거는 대체 누가 될 수 있는가!
그리고 도대체 누가 남겨지는 것인가!


바로 쉽게 말하면
예수님을 목숨보다 더 사랑하고
살아갈 때 예수님을 내 삶의 최우선순위 두는 자..
바로 이들이 휴거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알긴 알지만
두 마음을 품은 자들...
세상에 미련을 두는 자들...

삶의 우선순위가 예수님이 아닌 자기 자신인 자들...
이들은 결코 휴거되지 못할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솔직히 휴거될지 안될지 모르겠습니다.
더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기 위해,
내 삶을 주께 맡기고 동행하려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우리는 항상 내 자신의 신앙을 과대평가 하지 말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 예수님을 사랑하며 믿어야 합니다.

주님...
주님을 만날 준비 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글 출처:
jeja0612
님 유튜브 채널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장차 온 지구상에 임할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 주리라"

(계 3:10)


시험의 때(대환란)를 면하고 들림받는 조건은
× 평안의 말씀이나,
× 평화의 말씀이 아니고,
× 축복의 말씀도 아니라,
○ 인내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면 왜 하필 인내의 말씀일까?


"신랑이 늦게 와서 모두 잠이 들었습니다" (마25:5)


인내가 필요한 이유는 신랑이 더디왔기 때문이다.
신랑이 늦게 오는 이유는 정금같은 신부를 가려내기 위함이다.


예측했던 시간에 오시지 않자 일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갔고,
1년이 지나자 또 떨어져 나갔고 3년이 지나자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았다.


손해본다는 심리 때문일까? 실망감 때문일까?
타이밍에 대한 에러 횟수가 증가할수록

이제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유익할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나올 것이다.



신랑이 오는 타이밍을 알 수 없고

그렇다고 기다리지 않고 방심하다가는 신랑을 맞이할 수 없다. 

깨어 준비되지 않은 신자들은 땅에 남게 될 것이다.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마 25:10)


여기서 준비한다는 의미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촛불신앙을 넘어선 것이다.


대환란이 들이 닦치기 전,

휴거 전초전 기다림의 시간은 신부에게 주어진 시간이다.
신부라면 피할 수 없고 깨어 있어야 하는 숙명의 시간이다.


만약 인내의 시간을 거치지 않는다면, 

대신 대환란을 겪는 시간이 주어질 것이다.


인내의 말씀을 지켰던 빌라델비아 교회는 칭찬을 받았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하늘의 문이 열린 이유는 성도들이 들어가기 위함이다.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나팔소리 같은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휴거가 일어나는 모습이다.


인내의 시간에 신부에게 필요한 덕목은

끝까지 인내하며 배반하지 않는 것이다.


필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


현대교회에서 말씀을 지키며

주님을 배반하지 않는 신자들이 많을까?


예수님께서 가장 강조하신 말씀은

"내 말을 듣고 행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듣는 자는 많되 행하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주님의 방식을 부끄러워하여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는데 급급할 것이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눅 10:28)


인내의 시간에는 말씀을 듣고 행하는 신앙이다.
온전한 행위는 흰옷을 재료가 된다.


행함이 없는 신자는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둔 게으른 종을 상징한다.


끝까지 충성한 종에게는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지어다" 축복을 받을 것이다.
인내의 시간에도 환란,박해,미움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우리를 점점 미워하고 적대감의 정서는 증가할 것이다.
많은 신자들이 세속화되고 미지근해지고 이탈할 것이다.


인내의 시간에는 

불로 연단한 금같은 순전하고 흠없는 믿음을 만들어낸다.


인내의 말씀을 지킨다는 의미는

말씀을 듣고 + 말씀대로 행하고 + 굳게 잡는 것이다.


자칭 그리스도인들은

사탄의 클럽에 가입한 위장꾼들로

그 날에 공력이 드러나고 불로 태워질 것이다. 

"신랑이 몇시에 오든 상관없이 깨어있는 그들은 복되다" (눅 12:38)


​주인이 혹 이경이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이 그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을 것이다.  


로마식 시간계산법에 따르면,

밤은 저녁 6시부터 다음날 6시까지를 4개의 구간으로 나누었다.


× 1경 : pm 6시 ~ pm 9시
× 2경 : pm 9시 ~ pm 12시
○ 3경 : pm 12시 ~ am 3시
× 4경 : am 3시 ~ am 6시


2경은 잠을 자기 시작할 시간이고,

3경은 대부분 잠이 들었을 시간이다.


그 시간은 신자들이

영적인 잠에 빠져 있을 때라는 암시를 받게 된다.


그러나 '속히 오리라'하신 말씀에서

4경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란 위로를 받기도 한다.


지금은 몇시일까?
신자들이 절반쯤 자고 절반은 깨어 있을까?
아니면 대부분의 신자들이 잠을 자고 있을까?


교회가 인내의 말씀을 설교하는 비율을 보면

때를 짐작할 수 있을 지 모른다.  ​



출처: 카이로스 / ars (acoloje)

요한계시록에는 구원받은 무리 중에서 

특별한 두 종류의 계층이 등장한다.


한마디로 천국에서 특수신분을 가진 자들로 

그리스도의 신부와 왕권을 가진 왕족이다.


첫번째 무리는 환란전 휴거자들로 

이들은 가장 고귀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불리는 이들로 

그들의 거주지는 천국에서도 가장 신비한 장소, 예루살렘성이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매우 특별한 신분으로 이들은 환란을 통과하지 않는다.


자고로 아름다운 신부를 환란에 보내는 신랑은 없다.

신부들은 살아서 신령한 부활의 몸으로 변형되며 순교하지 않는다.




두번째 무리는 환란전 순교자들과 환란통과 순교자들로 

이들은 첫째부활에 참여하여 천년왕국에서 왕노릇한다.


이들에 대한 기록은 계시록 20장 4~6절에 소개된다.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환란전 신구약 순교자들)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미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환란통과 순교자들)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동안 왕노릇하니 이는 첫째 부활이라" (순교자들은 부활하여 천년왕국에서 왕노릇한다)


순교자들에게 요구되는 성품은

고문과 순교의 상황에서도 변치않는 불굴의 순교정신이다.




첫번째 무리(휴거자,신부)에 대한 기록도 계시록에 등장한다.


계시록 7장 9절의 '능히 셀수 없는 큰무리'가 그들로 흰옷을 입은 자들이고,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이들이다(7:14).


결혼식의 신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웨딩드레스인 것 처럼 신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예복이며,

이것은 어린양의 피로 세탁된 깨끗한 마음과 거룩한 삶으로 만들어진다.


희고 빛나는 예복을 입은 신부를 환란에 던지지 않는다.


또한 신부는 옳은 행실로 세마포 옷입 입은 자들이고(계 19:8)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다(계 22:14).


깨어 자기 옷을 지키는 자들이며(계 16:15),

기도로 깨어 준비한 자들이다(마 24:42~44).


기름등불인 말씀과 성령이 충만한 슬기로운 처녀들이다(마 25:1~13).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계 21:9)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계 21:10)


이들은 혼인잔치에 신부로 초청장을 받는 자들이다.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계 19:9)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리라" (계 22:17)


이들이 신부로 인정받기 위해 하는 것은 초청에 응하는 일이다.

환란을 통과하며 순교를 당하면서 댓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값없이 와서 생명수를 받을 수 있다.

 

계시록에 세번째 계층도 있다.


이들은 순교자도 아니고 휴거자도 아닌

일반 성도들로 천년왕국이 끝날 때까지 부활에 참여하지 못한다.

일반성도들은 백보좌 심판을 받아서 그의 상급에 따라 거주지가 결정된다.

이들은 신부나 왕족이 아니라 백성신분인 것이다.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계 20:12)


순교자들과 휴거자들은 백보좌 심판을 면제 받는다.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계 20:6)


이들이 백보좌 심판을 면제 받는 이유는

백보좌 심판이 시기적으로 천년왕국 후에

인류 모두가 부활하여 심판을 받는데, 

순교자들과 휴거자들은 이미 천년왕국 전에 부활하였기 때문이다(첫째부활).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계 20:5)

백보좌 심판의 대상은 둘째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이다.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도 모두 육체가 부활하여 심판을 받고

불못에 들어가 영원히 고통 가운데 살 것이다. (둘째사망)


그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들이며

우주와 생명체가 우연히 존재했다고 믿는 무지한 자들이며,

기독교는 여러 종교중의 하나거나 사람이 만든 종교라고 말한다.


그들은 성경안에 계시된 인류의 시작과 끝,

성경의 예언이 역사속에 성취된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며,

건물 하나도 저절로 생기지 않고

설계자와 만든자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보다 더 복잡한 설계도(DNA)가 있는 생명체는 저절로 생겼다고 믿는다.


일상적인 삶에서 성경 가운데, 만물 가운데 숨겨진 보물,

진리의 퍼즐을 발견하는 것은 각자의 역할이다.


하지만 그들은 마음이 완악하여 거절하거나

사실과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비전은 세상의 모든 민족과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하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보물을 발견한 자들은 최고의 반열, 하나님의 꿈,

창조때 계획하셨던 영생의 삶, 하나님의 나라에 거주하게 될 것이다.



글쓴이: 카이로스 / ars (acoloje)

 

 

신부단장 매뉴얼!


베드로후서 3장은 <신부단장 매뉴얼>입니다. 그래서 특정구절을 묵상하기보다는 전체적으로 꼼꼼히 정리하며 요점정리를 할 필요가 있어서 오늘은 기도하며 한구절도 놓치지 않고 조명해 주시는 성령의 음성을 기록해 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벧후 3:1-2)


베드로전후서 두개의 서신을 쓴 이유는, 우리 속에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과 신약의 사도들의 명령의 가장 중요한 핵심메세지를 전달하여 기억케 하기 위함이라고 베드로는 고백합니다.

신구약에 걸쳐 재림과 마지막 때에 대한 메세지는 무려 1/4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역사서 빼고 예언서 및 신약만 놓고 보면 거의1/2이 재림메세지입니다. 그러기에 재림이 상실된 복음은 복음이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토록 재림신앙은 십자가신앙과 함께 우리의 삶과 심령 가운데 두 커다란 기둥으로 뿌리박혀 있어야 마땅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감사하고 기뻐하는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지 않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벧후 3:3~7)

신부단장을 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밝히 알아야 할 마지막 때에 대한 정보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지막 때가 되면 많은 속이는 자들이 나타나 재림메세지를 가볍게 여기고 조롱한다는 것입니다. 최첨단 과학시대에 구름타고 다시 오신다는 허무맹랑한 소설같은 얘기가 어디 있냐고 비아냥거리며 마치 세상종말이 오지 않을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을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없어지지 않고 있을 거라고 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천지창조가 말씀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믿는다면, 세상종말도 말씀으로 마감되는 것도 믿어야 합니다. 신구약에 수없이 많은 선지자가 세상 종말이 온다고 외치고 있는데, 그러한 메세지를 애써 외면하며 무시하고 소멸하는 교만한 행위로 말미암아 이제 하늘과 땅은 경건치 아니한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실 '소멸하는 불'로 임하실 것을 성경은 단호히 선포합니다.

이런 배경 가운데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신부단장 매뉴얼(베드로판)이 시작됩니다. 신부단장 매뉴얼의 핵심은 한마디로 <사랑하라>인데 이것을 베드로후서에서는 여섯가지 명령어로 풀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회개하라 (사랑의 시작)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8-9)

사랑의 시작은 음란하게 세상과 벗하며 살던 삶에서 돌이켜 신랑을 향해 돌이켜 방향전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제 더 이상 '세상'은 내 남편 아니라고 선언하고, 내가 사랑해야 할 대상은 오직 나의 신랑 주 예수님 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것... 이것이 회개입니다. 

주님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전부 다 회개하여 모든 사람이 구원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이 지금껏 오래참고 기다려주신 것입니다. 회개함으로 참 좋으신 신랑 예수님과의 사랑의 첫단추를 끼워야 합니다.

2. 거룩하라 (순결한 사랑)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벧후 3:10-11)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은 도적같이 올 것입니다. 하늘이 두루마리처럼 말려 없어지고 뜨거운 불에 체질이 녹아지며 지금껏 사람들이 저지른 모든 죄악들과 악의 근원적 뿌리가 드러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완전한 멸망의 날입니다.

이 날을 바로 코 앞에 둔 시점에서 당연히 주님의 신부된 자로서 가져야 할 태도는 거룩과 순결입니다. 이전에 음란하게 세상과 짝하여 히히덕거리며 놀아나던 과거를 청산하고 오직 예수님만 사랑하며 그분을 향한 사랑 때문에 자신의 몸을 더럽히지 아니하는 정결과 지조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진정 신랑으로 인식하는 자는 결코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숨막히고 고리타분한 율법적인 삶으로 치부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삶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랑을 못 견디게 사랑하기 때문에 신랑과의 사랑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들에 관심조차 두지 않고 전부 다 자원함과 기쁨으로 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3. 바라보라 (기다리는 사랑)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벧후 3:12~14상)

주님의 신부된 자들은 신랑이 데리러 오실 하나님의 그 날을 간절히 바라봅니다. 또한 신랑과 함께 영원토록 거하게 될 처소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봅니다. 더 이상 이 세상은 신부가 영원히 거할 곳이 아닙니다.

오직 신랑이 오는 날, 신랑과 함께 살 처소를 바라보며 간절히 간절히 신랑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들은 한사람도 예외없이 반드시 데려가실 것입니다. (딤후 4:7-8)

4. 평안하라 (두려움 없는 사랑)

"...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벧후 3:14하)

주님의 신부들이 매우 자주 빠지게 되는 역경은 두려움입니다.
"혹시나 나를 데려가지 않으시고 대환란 가운데 버리시면 어떻하지?"하는 두려움...

(요일 4:18)에서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 온전히 이루지 못한 자라고 진단해 주십니다. 빛의 부재가 어두움이듯이 사랑의 부재가 두려움입니다. 주를 향한 사랑이 있는 자는 결코 두려움이 엄습하지 못합니다. 내가 아무리 부족하고 넘어지고 실수하고 나도 나를 용납할 수 없을 만큼 신물이 난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이렇게 주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그 사랑의 그늘막 아래 거하는 자들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깊은 평안 가운데 다시 일어나 점없고 흠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나기를 힘씁니다. 두려움을 내어쫓는 주님과의 깊은 사랑의 관계가 평강으로 들어가는 열쇠임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5. 절제하라 (겸손한 사랑)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벧후 3:15~17)

마지막 때는 주를 위해 대단한 일을 성취하고 이루는 것보다는 절제하고 삼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히려 주를 위하여 이것저것 화려하게 사역하고 이루는 것이 스스로를 교만하게 하여 올무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오래 참아주심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임을 겸손히 인정하고, 모든 일에 삼가고 절제하고 들레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 때의 끝자락으로 갈수록 엄청난 미혹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수록 사랑하는 주님의 말씀에 착념하여 말씀에서 경계하시는 모든 죄의 올무들을 미리 알고 겸손히 자신을 먼저 살피고 돌아보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남의 신앙을 세워준다는 미명 하에 부족해 보이는 남의 허물과 잘못을 들춰내고 판단하는 태도가 발견된다면, 즉시 그 자리에서 회개하고 엎드려 철저히 주님 앞에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 합니다. (고전 4:5)

6. 자라가라 (깊어가는 사랑)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벧후 3:18)

멈추지 않는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
그 관계의 깊이가 끝없이 깊어지는 성숙한 신부의 삶... 

주님의 신부들은 결코 현재 주님과 맺고 있는 관계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끊임없이 열어주시는 더 깊은 사랑의 관계 속으로 파고 들어갑니다. 문을 열면 또 문이 있고, 그 문을 열면 또 다른 차원을 열어주시는 주님으로 인해 늘 항상 갈급하게 주님의 사랑을 찾고 앙모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평생의 소원이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주님의 아름다움을 앙모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주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에 올인하는 모든 자들은 지금 주님과의 교제를 통해 누리는 하늘의 영광이 주님 강림하셔서 하늘로 올리워가시는 그 날 이후까지 영원토록 지속될 것입니다. 

신부단장 매뉴얼을 복잡하게 정리한 것 같지만, 
핵심은 단 하나 <사랑>입니다. 

신랑을 사랑하기만 하면 신부단장 매뉴얼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위에 나열한 삶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돌이키고,
사랑하기 때문에 순결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기다리며,
사랑하기 때문에 평안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겸손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자라갑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13)



<기도>
사랑하는 주님, 저는 사랑만 하면 되는군요.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그게 전부이군요. 순종하겠습니다. 날 위해 죽기까지 사랑해 주신 예수님의 사랑만 생각하면... 당연히 기쁨으로 순종해야 할 일임을 고백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날 위해 죽어주셨다는데 무엇인들 못하겠나이까!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며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앞으로 남은 생을 사랑만 하며 살겠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모든 말과 생각과 행동은 저 하늘에 묻어두고 오직 주를 신뢰함으로 온 세상에 주님의 사랑을 알리는 삶에 순종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곰팅이의 하늘우체통

종말의 때를 예상하는 시나리오들!

 

현재의 한국교회는 주님의 오실 날(휴거)에 대한 관심이 지나친 쪽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너무 무관심한 쪽도 있는 것 같아 종말의 때를 가늠해보는 데 다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필자의 생각을 써 본다.

 

물론 이 글은 개인적인 견해기에 얼마든지 다르게 말할 분도 계실 것이다. 필자는 논쟁을 유발하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입장과 비교하여 보라고 쓴 글임을 밝힌다.

 

때를 알게 하는데 필요한 4대 요소

1. 이스라엘, 2. 적그리스도, 3. 교회의 배도, 그리고 4. 666 시스템

 

이 중에서도 가장 주목해야 보아야 할 요소는 바로 이스라엘이며, 적그리스도의 출현은 7년 대환란 기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그가 언제 어떤 식으로 출현하는가를 보아야 할 것이며, 그것과 발맞추어 나타나는 것이 음녀교회이기에 작금의 교회들이 어떻게 배도하여 음녀교회로 가고 있는가를 살펴봐야 하고, 마지막은 666표 혹은 시스템인데 이것이 어떤 세력에 의해 어느 정도 진행되어 가는지를 살펴본다면 주님 오실 때를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글은 이 네 가지 요소의 진행상황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알아보자.

 

 

 

1. 이스라엘

 

주님 재림의 시각에 대한 이스라엘 사건들은 먼저 흩어졌던 자들이 모여 건국하여 독립을 얻어야 하고, 그 다음은 수도였던 시온(예루살렘)을 차지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무너진 성전을 제 3성전을 건축하여 제사를 드리는 것일 것이다.

 

그 년도를 보면 1948년에 이스라엘 독립 , 예루살렘 점령이 1967년이고 성전건축은 아직 준비 중인 상태에 있다.

 

주님의 재림과 직결되어 있는 것은 바로 제 3성전 건축일 것인데

앞으로 어떤 경로로 건축될 것인가를 예상해본다면

 

(1) 적대세력인 이슬람의 완전 무력화가 된 후,

(2) 이슬람의 화해무드에서 묵인하에 되어지는 경우, 

 

(1)의 경우, 이슬람의 완전 무력화가 되려면?

아마도 그것은 아랍권 특히 러시아와 밀접한 이란을 초토화해서

아랍권을 제압해야 하는데 그 시기는?

* 참고로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다는 뉴스는

지난 2005년 이후부터 매년 중동의 중심뉴스였다.

특히 2010년 이후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2) 이슬람과 화해무드에서 아랍권의 묵인 하에

성전이 건축되어진다는 것인데, 그런 평화기가 언제쯤 올 것인가?

* 참고로 아랍권과 평화협정은 일부 이루어졌고 지금도 이루어져가고 있다.

(이집트와 요르단과는 완료, 시리아, 팔레스틴과는 협상중)  

물론 환난전 휴거를 지지하는 자들은 이 성전 건축 이전에 이방인의 때가 차면

휴거 사건이 있다고 믿는다.

 

2. 두 번째 요소, 적그리스도(안티그리스도)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활동은 예수님의 재림 때에 필수 요소다.

그렇다면 적그리스도는 누구이며 단 9장에 나오는

언약(평화협정)을 누구와 굳게 세운다는 말인가?

 

1) 출현 시기

ㄱ, 일반적으로 환란 기를 수습할 위대한 메시야 지도자로 출현

ㄴ,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평화협상의 중재자며 평화의 보증자로 출현

 

그렇다면 지금은 환란 기에 얼마나 근접해 있는 시점인지,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중재자며 보증자가 될 여건인

결정적인 전쟁이 언제 일어날 것인가를 살펴야 할 것이다.

 

* 참고로 어떤 분은

지금 몇 째인의 시기(혹 몇 째나팔의 시기)라고 하는데

그것은 근거가 희박한 것이고 아직 이스라엘과 결정적인 언약을 맺게 할 중재자가 나타날 때는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혹자는 적그리스도가 될 후보군에 대해서 이미 성급하게 말하는 분들도 있는데(교황, 영국왕실, 유럽연합 대통령, 미국 대통령 등)

아직 두고 볼 일이다.

 

3. 세 번째 요소 NWO(세계단일정부)

 

NWO의 세력은 성경적으로 봤을 때

적그리스도의 몸통이 되어 환란기에 세계를 꾸려갈 자들인데,

놀랍게도 NWO 세력들이 등장하여 이미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 종교를

하나로 묶는 일을 시작했고 지금도 열심히 진행해나가고 있다.

 

그래서 환란기 때는 세계를 666 체제로 만들고

저들의 통치를 세계가 따르도록 할 것이다.

그때 활용되는 것이 666표일 것인데

베리칩이 666표인가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NWO 세력들이 하려고 하는 것들

1)정치-UN,

2)경제-WTO,

3)문화-New Age,

4) 종교-WCC(URO)

 

* 참고로 NWO세력은 각계로 침투하여

세계를 하나로 묶는 일을 이제는 드러내놓고 활동하고 있다.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천주교 제수이트 등등)

 

이것들에 대한 것은 시중에 많은 책과 알리는 자들이 있으므로 생략하겠다.

 

4. 네 번째 요소 음녀교회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교회 중에 음녀교회가

적그리스도(짐승)와 연합할 것을 성경이 말하고 있는데

현재 상황은 WCC를 숙주삼고 천주교 제수이트(예수회)와

개신교 지도자 중에 프리메이슨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타종교와도 세계 평화공존을 근거로 하나로 만들어가고 있고,

개신교 또한 그렇게 되고 있다.

 

결론

주님의 재림 사건은 이처럼 종합적인 상황가운데 일어날 것이라고 본다면,

성경에 기록된 것을 가지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봐야 할 것이라고 본다.

 

개인적인 체험에 근거로 한 말과 성경의 숫자에 대한 풀이 등,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연현상과 국지적인 사건에

너무 큰 비중을 두고 예측하는 것 등은 위험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에 대해 너무 민감하다가는

자칫 미혹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 때의 참된 신앙은 무엇보다도

주님의 나라는 이미(Already) 진행되어지고 있고,

아직(Yet)인 상태라는 것이다.

 

문제는 각자가 자신 안에 예수님으로 인해

거듭난 속사람이 얼마나 주님의 형상으로 건축되어지고 있고,

주님의 사명을 현실 속에서 광염(光鹽)으로 나타나지고 있는 것을

스스로 점검하는 일일 것이다.

 

주님 다시 오실 날(주님 앞에 서는 날)

자신이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하며 사는 것이

가장 귀한 종말의 때에 신앙관이라고 본다.

 

 

출처 : 이웃블로그/ 필그림

너희로 환난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형벌을 받으리라”(살후 1:6-9)

 

참으로 두렵고 비참한 광경이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영원의 골짜기로 분별없이 서둘러 가는 많은 가련한 죄인들을 본다. 그들의 현재의 불경한 태도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건지 생각조차 해보지 않는다. 그러한 죄를 범하는 그들이 반성을 않는다면 그들은 지옥의 심판대 위에서 견디기 어려운 조사를 당하고 끝내는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는 참담과 비애, 가득 찬 시련에 잠기게 될 것이다. 얼마 후에 그들은 숨을 거두게 된다. 반면에 이성적이고 건전한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결코 그들이 존재하는 목적과 그들의 본질의 진가를 결코 망각하지 않고 사라져가는 헛된 것들을 모으는 것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을 보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잠시 동안에 그들은 영원한 존재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하여 게을러지게 되는 것이다.

 

최후의 심판의 결정적인 시간을 아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이렇게 하나님의 가슴속에 묻어둔 비밀로 최후의 심판의 시간을 밝히지 않는 것은 우리의 공포를 깨우치고 우리의 근면을 촉진하고 우리의 인내심을 뒷받침한다는 그러한 이유이다. 우리의 주님의 오실 날을 모르고 있는 이상 우리는 매일 생각을 하고 준비를 해야 하는 되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말하기를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리라.”고 했다. 한밤중에 부르짖는 소리가 날 것이니, “보라 신랑이 오도다. 나가서 그를 맞으라. 노아와 롯의 시대에 있었던 일은 주님의 아들의 날에도 있으리니 그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를 든다.” 무서운 생각 때문에 죄인들은 구원을 청하며 산모의 진통과도 같은 갑작스러운 파괴가 그들에게 닥쳐오며, 지구 위에는 홍수가 쏟아질 것을 생각지 못하고 탐욕에만 빠진 것이다.

 

심판의 장소는 아마도 모든 사람이 심판의 모습과 공정한 심판을 볼 수 있게 하시기 위해 땅 위에 가까운 중간 지점이 될 것 같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에 쓰여 있는바“...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라고 했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의 생명력을 그리스도에 주셔서 그에게 심판을 행할 수 있는 권능을 주셨으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성을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을 하는 인간에게 명확한 인식을 주기 위해서 그리스도라는 한 사람에게 신격과 인격을 동시에 부여하신 것은 참으로 합리적인 일인 것이다. 또한 그것을 행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지식과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최고의 존재인 하나님만이 가지신 권능인 것이다. 어떠한 비밀의 행동도 그 선과 악의 구별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으로는 보실 수가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고유하신 책의 인봉을 떼실 수 있으며 인간과 천사들에게 영원한 대가와 벌을 지우시는 것이다.

 

죄악성은 이에 의심할 여지없이 드러날 것이며 한층 더 악화된 상태로 나타나 지독한 모습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러므로 죄악은 가장 부드러운 동정에 엄격함으로 다스려지게 된다. 그러한 역할은 그를 축복해 주시는 아버지(광명에 찬 영광의 보좌이며 가장 행복한 은혜의 자리인 엄격한 보좌의 중심이신)로부터 이 세상에 보내어진 자비로운 구주가 담당하시게 되었다. 그리하여 겸양에 가득 찬 그리스도는 인간의 본성을 그의 권력으로 다스리고 인간의 영혼을 영원의 파멸로부터 건져내고 영원한 광명과 영광에 찬 생활을 약속하시기 위해 많은 고통과 불행을 견디셨다. 그러한 피로서 겪으신 많은 고통이 지나간 후 그리스도는 구제할 수조차 없은 죄인들은 영원한 죽음으로 내쫓아야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이 죄악에 대한 혐오감을 마음속에 품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주의 심판관이 되셔서 새로운 하나님의 왕궁 체제를 확실히 이루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사랑하고 순종하는 구제주가 최고의 마지막 심판자가 되시는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죽음을 선고하신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 1장 7절에서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라고 밝혔다. 최후의 심판의 권리는 그리스도가 심한 굴욕과 고난의 세월에 대한 대가로서 하나님이 주신 주 예수의 권한임에 틀림없다. 빌립보서 2장 8,9절을 보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라고 했다.

 

이러한 말씀은 온 세상에 엄숙한 영원의 심판대가 마련되면 그날에 하나님이 마련하신 심판관이 나타날 것이다. 그때는 성경책에 있는 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어머어마하고 거대한 권능으로 충만해 있으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면 주 예수는 하늘에서 불꽃을 감은 천사들과 함께 나타나시리니” 지금 그리스도는 천국에 계시지만 때가 되면 천국으로부터 오실 것이다. “모든 눈이 주님을 지켜보리라.”

 

주 예수 그리스도가 내려오실 때는 수많은 천사들에게 호위되어 오실 것이다. 그리고 심판대에서 천국과 지옥의 길로 만인에게 심판할 것이다. 준엄한 상태로 하나님께서 바라시던 경건함을 나타내실 것이다.

 

이러한 거룩한 권세를 가진 천사들은 틀림없이 그 최후의 심판에 정의와 자비의 권력자로 일할 것이다. 그들은 죄인을 심판대로 소환하고 그들에게 곧 판결문을 선언하며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즐거이 그들의 행복에 넘친 안식처로 인도할 것이다. 그리고 성경에 말씀하셨듯이 우리의 주님은 성령의 불꽃 속에서 나타나실 것이다. 시내산에서 모세가 율법을 받았을 때 산은 두려워서 움직이는 것 같았고 불과 연기로 둘려 쌓였었다. 그리고 불꽃 중에서 들려온 말씀은 온 이스라엘을 놀라게 하셨다.

 

성경은 그리스도 재림의 기록은 굉장히 화려하게 묘사되고 있다. 그리스도가 구세주로서 세상에 오셨을 때는 그리스도의 권능과 영광은 그의 인간미로서 감추어졌었다. 종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그리스도는 빈곤과 멸시로 태어나셨으며 인간들의 숙명적인 질병도 겪으셨다. 그러나 다음에 온 만물을 심판하려 오실 때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이 온전하신 모양으로 나타나실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위엄을 드러낼 것이다. 하늘은 뒤흔들리고 땅에선 지진으로 인하여서 용암이 휩쓸고 땅 속 깊이 흔들릴 것이다. 삽시간에 하늘과 땅은 온통 성한 데가 없이 될 것이며 천사장이 부른 나팔소리는 죽은 자를 그들이 묻혀 있는 무덤에서 일어나게 하며 바다에서는 무섭게 파도가 치고 하늘에는 천둥이 몰아치며 땅에서는 소름이 끼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며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는 저주 받은 인간들이 두려운 비명소리를 지르게 된다.

 

이 최후의 심판의 날에 그리스도가 권능과 영광에 휩싸여 천사들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는 광경은 죄 많은 자들에게는 보기조차 두려운 광경일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천사장의 호령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우리의 구주께서 변화산에 오르셨을 때 그의 얼굴은 태양같이 빛났었고 입으신 옷은 희고 빛났다. 그런데 이제 그리스도가 영광과 위엄에 찬 모습으로 나타나신다면 그 화려함은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 화려함에 대해서도 사도 요한이 쓴 성경 가운데 인상적인 구절을 잘 보면 짐작이 갈 것이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맑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계 1:13-16)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그 자신의 영광과 하나님의 영광으로서 동시에 오시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의 빛과 아름다움 장엄함과 권능은 지금 현재의 우리로서는 이해하기도, 말로 표현하기도 힘든 것이다.

 

그리스도의 보좌는 크고 희며 순결하며 권능으로 되어 있다고 하며 거기서 빛과 천둥과 음성이 들려온다고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다. 만일 그리스도가 1900년 전에 이미 권능에 휩싸인 몸으로 계셔 그를 체포하러 왔던 사람이 되돌아가다가 땅에 쓰려져 버렸다면 그의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그리스도가 가장 고귀하고 영광과 권능에 가득하신 모습으로 나타나실 최후의 날을 기다릴 수 잇겠는가?

 

그리스도의 권능을 나타낼 천사장의 나팔소리는 지구의 끝까지 퍼지고 하늘을 울리며 어두컴컴한 동굴을 뒤흔들고 육지와 바다의 구석구석까지 들려가며 죽은 자에게는 그들의 영혼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세상이 창조된 이래의 모든 과거의 사람 중에서 그리스도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공정한 심판을 받고 그때부터 영원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거만했던 독재자, 음흉한 정치가, 주제넘은 영웅들은 모든 지위를 빼앗기고 그들이 가졌던 권력과 힘, 위엄은 모두 잊어버린 채 산을 향해서 보좌에 앉아계시는 구세주에게 도망가게 해달라고 빌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그들이 멸시했던 구세주 앞에 끌려가 꿇어 엎드려 그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엎드려 빌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미 때가 늦은 비참한 애원에는 냉정하실 것이다. 그들이 아직까지 살아있는 몸이라면 그들이 죄에 대해 회개를 하고 자비와 용서를 비는 것도 도움이 됐을 것이나 그들이 죽어진 다음에는 너누 늦은 것이다. 구세주께서는 일어나셔서 회개하지 않는 낮에게는 자비와 구원의 문을 굳게 잠가 버리시는 것이다.

 

우리는 생각해 볼 수가 있다 죄 많은 자의 영혼과 육체가 하나로 결합이 되면 그들의 심장은 죄의식과 두려움과 수치로 찢어지는 것 같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두려운 판결소리가 온 만민 앞에서 들릴 때 공포와 당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노하신 심판관은 이미 옛날에 자기 자신을 구세주라 밝히시고 회개하기를 만일에게 종용하신 분이신 것이다. 그들이 불꽃같은 예수의 눈을 바라보고 물소리 같은 음성을 들을 때는 그들의 가슴은 날카로운 고통으로 찢어지는 것 같을 것이다.

 

궁지 속에 빠져 있는 그들을 동정하거나 도와 줄 사람은 하늘이나 땅 어느 곳에도 없는 것이다. 반면에 크신 하나님과 한때는 사랑을 베푸시고 무한한 노력을 기울이시며 그 사랑을 받아 회개하기를 권유하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는 그들에게 냉정하시며 그들의 참회를 비웃으며 모든 천사의 무리와 영광을 얻은 성자들까지도 그들의 파멸에 기쁨을 나타낼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그러나 무서운 승리를 얻게 될 것이다.

 

모든 산 자와 죽은 자는 불붙는 심판대 위에 놓지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는 물론 구별을 둔다. “염소는 그 왼편에 양은 오른편에”(마 25:33) 이에 악한 자와 선한 자는 쉽게 구별할 수가 있는 것이니 주제넘은 위선자는 가면을 쓰고 경건한 영혼 가운데 섞을 수도 있고 속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그러한 교묘한 거짓은 곧 발견될 수 있으니 곧 선한 자들의 집단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위선자는 한 사람이라도 많은 존귀한 틈으로 침입하게 방임해 두지는 않는다.

 

그리고 큰 죄뿐만 아니라 작은 죄악도 모두 조사를 받고서 이제는 별 악의가 없다고 인정이 되는 죄악도 조사를 받는다. 우리의 구세주께서는 알려주시길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 12:36) 하셨다. 그러나 이 말씀은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두려운 말씀으로 들리겠는가? 많은 죄인들의 죄가 분석되고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선한 자들이 행했던 신앙과 사랑은 자랑스럽게 밝혀질 것이다. 그들이 옳은 일을 위해서 한 숨은 노력과 기도와 눈물과 고통 등 그들의 미덕은 기억되고 경건하게 간주되어 보답을 받을 것이다. “내가 굶주릴 때 너는 음식을 주었고 병들어 감옥에 있을 때 찾아 주었고 헐벗었을 때 그대는 옷을 나에게 주었도다” 그에 대한 작은 사랑의 표시, 심지어 냉수 한 잔마저도 결코 잊지 않고 보답없이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니 이는 하나님에 대한 복종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영광의 보좌로부터 심판하러 오신 왕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 25:34) 이런 말씀을 듣는 자는 얼마나 행복할까? 이보다 더한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이 어디 있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어느 누구가 당신을 비난하더라도 당신은 그때에는 하나님의 축복과 인정을 받을 것이다.

 

“오라, 땅 위에서 나를 저버린 자들에게서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고 너의 나쁜 친구들로부터 고난을 당하더라도 나는 너를 버리지 않는다. 오라! 나의 날개 아래 있는 죄악과 비참의 세상에서 나의 가슴 안으로 와서 나의 사랑의 기쁨을 맛보라! 와서 너를 위해서 창세적부터 예비해 둔 영광의 나라를 상속 받으라! 오라 너 죄인들에게서 고난을 받아 약해진 영혼아! 오라, 너를 위해 남겨 준 것을 물려주리라!” 영광을 받은 자들은 가슴깊이 스며든 기쁨과 즐거움은 말로서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제 선한 자들의 영광에 가득 찬 문장이 끝난 뒤에 그들은 천사들에 의해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려 갈 것이다.

다음에는 죄 있는 자들의 재판이 행해질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하나님의 율법을 파괴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경시한 행동이 나타나고 인정이 된 불순하고 속된 이러한 영혼들은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두려운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이니, “너 저주받은 자여! 악마와 그의 무리들을 위해 마련한 영원한 불길 속으로 들어가라! 이 얼마나 무서운 하나님의 말씀인가? 그대는 그대의 재산과 헛된 욕망 속에 쾌락을 즐기며 남에게 아첨을 해왔다. 그러나 결국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됐다. 그대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그대와 떨어져 있기를 원했고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알기를 원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종의 무리를 멸시했다. 이제는 그러한 하나님의 종의 무리와는 영원히 떨어져 있게 될 것이다.

 

심판관이신 그리스도가 판결문을 읽으신 뒤 곧 집행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면 이 불행한 영혼은 심판대에서 끌어내려져 무서운 지옥으로 끌려갈 것이다. 지옥의 불꽃은 불이 붙었다. 하나님에게서 그리고 온화한 성도들과 천사들에게서도 영원히 추방되는 것이다. 또한 빛과 사랑의 행복에 넘친 곳에서 모든 기쁨과 영광에서도 멀어지는 것이다. 언젠가는 그렇게 되리라는 생각은 추호도 가질 수 없었던 어두침침하고 공포에 휩싸인 동굴 속에서 고통을 겪을 것이며 같은 죄인들의 끊임없는 비명소리와 소름이 끼치는 비탄의 소리뿐이다. 하나님의 두렵고 무서운 질책이 그들에게 끊임없이 내릴 것이다. 이 불행한 영혼들의 수치와 당황과 고통, 괴로움은 더 이상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은총의 복음 속에서 하나님의 교훈, 약속, 말씀을 경시할 때는 우리가 이미 수난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라는 것이다(요 3:36). 우리가 참회를 하지 않는 이상 곧 집행이 시작될 것이다. 만일 그대가 계속 죄악을 범한다면 주님의 생전에 소돔과 고모라가 겪었던 그 이상의 벌이 그대를 다스릴 것이다. 지옥은 그 입을 벌리고 그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경건했던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그도 역시 공포와 불안으로 떨었을 것이다.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으나”(히 12:21),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을 얼핏 보기만 했지만 그는 공포에 휩싸여, “하나님은 성스럽고 영광이로다”라고 부르짖고는 “나는 도대체 누구냐! 아직 영광을 받지 못했으니”라고 한탄했다. 여러 가지 죄로 비열한 모습을 한 그대는 어떻게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심판관 앞에 나설 수 있겠는가? 그의 허리는 온갖 금 은으로 둘려 있고 그의 몸은 찬란한 녹주석같이 빛나고 얼굴은 빛 같으며 그의 눈빛은 등불과도 같으며 팔 다리는 청동이 잘 닦여진 것같이 윤기가 나며 그의 음성은 하나님의 음성과도 같은 것이다.

 

붉은 예복을 입으신 심판관들이 심판대 위에 선 죄인들에게 구원의 가능성을 보여 주지 않는다면 얼마나 공포로 두렵겠는가? 지금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의 구름을 헤치고 내려오셔서 그가 심판대에 찬연히 앉아 계시는 것을 보고 후회를 한대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순간에 우리가 하늘의 천둥소리와 요동치는 소리를 듣고 사방에는 갑자기 무서운 불빛이 번득이고 발밑에는 대지가 우리를 삼키려는 듯이 움직이며 갈라지고 열려진 하늘의 문에서는 태양보다 밝은 광채로 천사들로 에워싸인 그리스도 심판관이 내려오시는 것을 보고서 우리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두려움에 질려 불안에 잠기어서 하나님에게 때늦은 자비와 용서를 울며 애원하겠는가?

 

그리스도는 그가 오시는 날을 연기까지 하지지만 어리석은 죄인들은 믿으려고도 하지 않고 심판의 날에 대비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내가 말한 갖가지 죄를 짓고 계속 죄악 속에 머무는 모든 불쌍한 심령들은 그대의 죄악을 다스리러 그리스도가 틀림없이 오심을 믿으시기 바란다. 죄인들은 영원히 은혜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추방되어 무섭고 영원한 파멸과 고난에 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엄하신 정의와 저들의 무섭고 끝없는 파멸에 오히려 영광을 내리실 것이다. 형제들이여! 만일 그대들에게 이러한 벌이 내리지 않는다면 나는 어떠한 벌이 그대들을 다스리게 될지 알 수가 없다. 이교도인 빌립도 이러한 형벌의 말씀을 듣고서 공포에 떨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이름과 자비심을 빌어 그대들에게 빨리 다가올 어쩌면 내일 새벽이 기 전에 다가올지도 모르는 그리스도의 심판에 준비하고 마음을 순결하게 하도록 권한다.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에는 “한밤에 커다란 소리가 있으니, 보라! 신랑이 오도다.”라고 적혀 있다. 나는 이로서 여러분에게 최후의 심판의 날에 다가올 죽음에 대비해 빨리 회개하고 기도와 말씀 공부하기를 바란다. “죄인들이여, 회개하라”

 

나는 우리들이 최후의 심판에 대해 생각하면 우리는 죄악에서 멀어지고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봉사로 향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제 다시금 겸손하게 행하는 모든 행동은 천국에 똑똑히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기록이 될 것이다.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으니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필수 불가결한 준비 작업으로 여러분이 직접 교회의 봉사자가 되어 있어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피의 사함을 받고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죄악으로부터 성스러운 몸이 되시오.

 

죄인들이여!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관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마 5:25,26)

 

형제들이여! 심장을 죄악의 소용돌이에서 깨끗이 닦아내십시오. 우리의 가슴속에는 얼마나 많은 쓸데없는 생각이 있는지, 그대들의 손을 씻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오. 주저하는 자들이여! 괴로워하고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시오. -삶은 짧고 영생은 긴 것, 죽음은 가깝고 심판은 문 앞에 있으니 후회하지 않는다면 잠깐 사이에 구원의 기회는 자나가 버릴 것이다. 그대들 중에 죄악과 위기에 대해 확신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에 대해 생각을 하고 기도를 함으로써 귀중한 보석같이 보존을 하고 그러한 확신을 일깨우시오. - 그대에게는 어떤 희생이 오더라도 겸손하게 하나님에게 봉사를 하시오. 진지한 신앙은 보다 큰 대가가 치러지게 될 것이다. 지금의 이러한 고난은 앞으로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과 축복에 비해 비교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퇴폐하고 그릇된 시대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 거슬리는 것이 되더라도 그대는 그렇게 생각 말라는 것이다. 죄진 자들이여! 내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비를 빌어 바라노니 그대들은 하나님과 우상을 동시에 섬기지 말라. 만일 당신이 선한 행동을 진실된 마음으로 행한다면 그리스도가 오시는 날은 당신에게 축복을 내리는 날이 될 것이며 그대는 그 날이 오기를 바라게 될 것이며 “주 예수여! 속히 오서서.”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아멘.

 

포도나무선교회/개혁주의마을/Grace

갈보리 체플 서울교회 '이요나' 목사님의 강해입니다.

참조하시고 신앙생활에 큰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이스라엘의 시간표 제1부

 

이스라엘의 시간표 제 2부

 

이스라엘의 시간표 제 3부

 

 

이스라엘의 시간표 제 4부

 

이스라엘의 시간표 제5부

지금 한국교회가 필요로 하는 ‘기도의 사람’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지도자는, 설교를 매끈하고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 죄를 무서워하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교회마다 목사님들을 청빙하면, 마치 기업체에서 간부사원을 뽑듯이 뽑는 것을 봅니다. 영의 눈이 감겼습니다. 귀가 닫혔습니다. 무엇이 교회를 교회답게 하고, 주님이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신앙의 본질인지도 모른 채, 교회가 다 세속화의 늪에 빠져버렸습니다.


세상이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이든지 덥석덥석 받아먹어버리는, 그야말로 영적인 암에 걸린 그런 상태에 지금 한국교회가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교회만 생각하면 늘 눈물이 흐릅니다. 해마다 기도원에 올라가면 하나님이 내 기도를 안 시키시고 한국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우리 민족을 살려주십시오. 한국교회의 강단이 회복되게 해 주십시오. 복음이 살아나게 해 주십시오, 정결해 지게 해 주십시오!’라고...


이렇게 끊임없이 조국 교회를 향한 기도를 성령께서 제 마음에 주셨고 제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도 아닌데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드릴 때마다, 제 눈에서는 한없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조국의 운명을 짊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만 조국의 운명을 짊어질 수 있습니다. '교인'이 짊어지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사람, 하늘의 문을 여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사람이 조국의 운명을 짊어질 수 있습니다.


그져 몸만 교회를 왔다갔다 하며, 적당히 종교생활을 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어쩌면 유일하게 인해전술이 통하지 않는 곳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많은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 하나님의 심장을 담은 사람들을 통해서 이 시대의 역사를 바꾸어 가시고 계십니다. 요셉이 이민자였고, 아무 것도 배경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에스더가 그러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요셉을 중심으로 애굽 제국의 역사를 움직이셨고, 에스더를 통해서 페르시아 제국의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여 나가셨습니다.


왜 여러분은 간절히 기도하지 않으십니까?

새벽에도 기도하고, 저녁에도 교회에 나와서, 또는 가정에서 기도하고, 온 민족교회가 여호와께, 기도가 불길이 되어서 타올라가고, 계 5:8절처럼 금대접에 기도가 가득차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한국이 위기를 맞이해서, 온 성도들이 뜨겁게 기도해서 한국 전체가 기도의 불도가니처럼 벌겋게 달아야 되는데, 안타까운 것은 지금 조국 교회가 기도를 뜨겁게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냥 기도도 프로그램처럼 되어서, 그 시간, 그 순서에 따라 대표기도 한 번 하는 것으로 기도를 끝내고 있습니다.


기도 안 해도 교회가 별 탈 없이 잘 굴러가는 것 같고, 목사님들도 적당히 설교해서, 강대상에서 간간히 인기 얻는 우스갯소리나 하고.. 정작 기도에 목숨을 거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목회자가 기도에 목숨을 걸어야, 성도들이 기도의 불을 받고, 성도들이 결사적으로 기도할 터인데, 모든 성도들이 기도의 불을 받아야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리라는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지금은 ‘영적 추수의 계절’입니다. 지금은 주님의 재림을 목전에 둔 'end of ends' 시기입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이, 거의 다 성취되어 가고 있는 시점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한 사건은 ‘종말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21세기는 ‘종말의 끝’의 고통(birth pain)의 시기입니다. (시작과 끝을 유의하세요.)


깨어 기도하는 사람은 그것을 느낄 것입니다. 제가 이번에 인도 미전도 종족에 선교하러 갔다가, 이튿날 밤에 꿈을 꾸었는데, 소스라치며 놀라서 일어나보니 꿈이었습니다. 꿈에 주님이 제게 나타나셨습니다. 주님이 당신의 손을 모으셔서 (귓속말 하듯이) 제 귀에 대시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음성이 아주 또렷이 제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아들아, 내가 곧 간다!”


저는 그 음성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서 일어나보니 꿈이었습니다. 여러분, 저는 신비주의자가 아닙니다. 제가 원해서 꾼 꿈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꿈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주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성령이 오시면 장래 일을 너희에게 말하시리라." (요 16:13)


하나님의 사람들이 날마다 기도하며 기도의 인공위성을 띄워놓고, 말씀 앞으로 나아가 기도하고, 마음을 담아 기도하고 영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소리들이 들려오게 됩니다.


세상 기업들도 10년 앞을 내다보고 준비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을 받은 교회가, 이 시대를 향해서 좌표를 정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언’이라는 것을 요즘 사람들은.. 개인의 사업을 어떻게 해야 되냐.. 집 이사를 어디로 가야 되냐.. 이런 것을 두고 ‘예언’을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예언은,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고, 교회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고, 세상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결국 종말로 향해 갑니다.) 이런 사안에 대해 아버지의 마음을 풀어놓는 것이 예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들은 이런 예언적 메시지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교회는 성공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는데, 지금은 성공 이야기를 논할 때가 아니라고 봅니다. 성경이 말하는 예언을 회복해야 합니다.



- 박원철 목사님의 녹취록 중 일부 발췌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