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닫고 돌이켜야 산다!


대한민국이 왜 재앙의 길로 스스로 걸어가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심판은 정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씀만 제대로 보더라도 알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하나님께서 끔찍히 싫어하시는 죄는 우상숭배라는 것이다.


다윗의 길이 아닌, 여로보암의 길, 산당을 세우고 가증한 것을 섬기며, 금송아지를 보고 출애굽 해준 신이라 섬기며,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배도의 길로 걸어가는 이스라엘에게 심판은 당연한 것이었다.


에스겔, 예레미야, 호세아같은 선지자들이 그렇게 삶으로, 마음으로, 눈물로 전했던 메세지는 심판이었다. '멸망'을 위한 심판이 아닌 '회복'을 위한 심판이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이 선포했던 메세지는 '평화'와 '축복'이었다. 현 시대에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로 아직도 '평화' '정의'가 실현되고 있다고 믿고 있거나, 그렇게 말하고 있는 분들은 제발 눈을 뜨시고 정신 차리길 바란다.


우상정권, 인간이 신이 된 나라, 공산주의, 기독교 박해국가 1위, 예수 믿으면 3대가 멸하는 나라, 적그리스도 체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억압, 박해, 고통 속에서 자유가 없이 70년 넘게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북한 주민들).


그런데 저 북한 정권이 무너지길 바라지 않는다고? 손 잡고 함께 평화? 대화?




90억 가까이 대북지원을 선포한 것은, 왕이 우상을 세우는 것을 도와주는 것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이게 배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국가 지도자가 바알과 손을 잡고 가겠다고 대놓고 선포하고 있는데, 아직도 한국의 기독교인들을 정신 못 차리고 분별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인 희년과 자유를 마땅히 누려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억압 받고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있는데, 멀쩡하게 제사하고 예배하고 있던 남유다는 심판이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천만명에 육박하고 교회들이 이렇게 많은데, 생명력을 잃고, 빛과 소금은 커녕 자살하는 사람 눈 뜨고 구경만 하고 있고, 북한의 우상 정권 아래에서 국민들이 억압받고 있는데 거룩한 '모양'으로 교회에서 예배만 드리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정상인가?


강도 만난 자를 보고 그냥 지나치는 것도 모자라 강도를 도와주고 있는 이 나라가 지금 정상인가?


윌버포스, 링컨 등 마땅히 억압과 박해 속에서 살아가는 흑인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합당한 것이라고 얘기했을 때, 미국의 백인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하게 예배 드리면서 흑인 노예 해방을 반대했다. 왜? 자신들이 피해보기 싫어서. 손해 보기 싫어서.


대한민국이 정신차려야 산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정신 차려야 산다.

대한민국 그리스도인들이 속히 깨닫고 돌이켜야 살 수 있다.



출처: John Kwon 페이스북

엉뚱한 곳에 관심을 쏟지 마라!

‘소득 없는 분주함’을 조심하라!



사탄은 하나님의 자녀를 향해 정면 공격을 퍼붓다가 실패하면 그의 악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좀 더 교묘한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그분께 받은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도록 그의 관심과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기만적인 방법을 동원한다. 그것은 성도가 중요성이 떨어지는 어떤 다른 것에 관심을 쏟도록 유도해서 결국은 자신의 사명에서 멀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종종 자신의 목적을 이룬다.


결국은 자신의 사명에서 멀어지도록 만드는 것


선한 사람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심어주신 비전에 따라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눈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수산을 떠나 그의 사랑하는 성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었다.


그에게는 왕에게서 받은 권세가 있었고, 성의 재건에 필요한 물질이 있었다. 그리고 느헤미야의 목적과 계획이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알려졌을 때 그들은 “일어나 건축하자”(느 2:18)라고 단호히 외쳤다.


예루살렘 성의 재건 추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원수가 보인 첫 번째 반응은 그 모든 계획에 조롱을 퍼붓는 것이었다. 그러나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이 느헤미야와 그를 돕는 사람들을 비웃고 조롱했을 때에도 느헤미야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느 2:20)라고 단호히 응수했고, 재건은 계획에 따라 계속되었다.


성의 재건을 막으려는 다른 모든 방법들이 실패로 돌아가자 음모자들은 느헤미야에게 회담을 제안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그들의 제안이 자신에게 위해(危害)를 가해 그의 기념비적 사업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려는 악한 술수임을 꿰뚫어보고,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중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느 6:3)라고 대답했다. 그의 대답은 아주 지혜로웠다. 이와 같은 대답이 기만적인 제안에 응수하는 상투적인 대답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사용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에게 맡기신 사명이 너무나 중요했기 때문에 그 밖의 다른 것들은 모두 뒷전으로 밀려나야 했다. 우리도 느헤미야처럼 우리 아버지의 일을 이루어드리겠다는 사명감에 압도당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의 숭고함에 감탄하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그 밖의 다른 하찮은 일들에 시간을 투자하라는 악한 자의 모든 속삭임을 뿌리치게 될 것이다.


이미 주전 445년에 느헤미야의 입에서 나온 이 말, 즉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느 6:3)라는 말로 악한 자를 완패시키자! 이 말 외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우리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려는 사탄의 말은 종종 아주 예기치 못한 곳에서 나온다. 마르다는 마리아를 불러 주님의 발 앞에서 떠나게 하려고 했다. 우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때로는 우리의 가장 친한 친구가 우리를 사명의 길에서 벗어나게 만들 수도 있다. 또는 아주 정당한 활동이 그런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야단법석을 떨며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생활 때문에 너무나 자주, 너무나 빨리 예수님의 발 앞에서 떠나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관심을 쓸데없는 곳으로 돌리는 것들은 모두 속히 떨쳐버려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소득 없는 분주함’에 빠지고 말 것이다.


현재 유행하는 대부분의 교회 프로그램의 비본질적 활동들과 계속 증가하는 기독교 단체들은 우리가 방심하는 사이에 우리의 관심을 엉뚱한 곳으로 돌려 우리를 미로 같은 샛길로 끌고 갈 수도 있다. 그 끝은 아무 열매 없는 막다른 골목이다.


우리의 재능을 낭비하지 않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세계복음화의 사명을 성실히 감당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검증된 방법들을 사용함으로, 한편으로는 무기력한 교파주의의 수렁을 피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과열된 비생산적인 활동을 피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우리의 관심을 자꾸 곁길로 끌고 가는 것들을 피하는 기술을 능숙하게 익혀서 늘 열심히 사용해야 한다.



출처: 갓피플 말씀테마 (http://gp.godpeople.com/archives/70700)

한반도를 위협하는 영적문제들 가운데,

특별히 동성애나 이슬람 문제는

그래도 어느 정도 분별하여 대처하려는듯한 모습이,

한국교회 안에서도 보이고 있지만,

유독 북한(한반도) 문제에서만큼은,

아주 견고한 진이 가로막고 있음으로 인해,

'영적분별'을 방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나마 깨어있는 교회들에서도,

예배 때 대표기도를 하는 걸 들어 보면,

이슬람 세력, 동성애 차별금지법, 신천지 이단에 대해선

경계하면서, 무너지게 해달라고까지 기도도 하지만...


유독 북한에 대해서만큼은

직접적으로 저 사악한 독재정권이 무너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교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게 지금 한국교회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는, 어쩔 수 없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정치적 프레임"이라는 거대한 장벽 때문이다.


마지막 때, 사단은

아주 교묘하고 치밀한 계략을 꾸민다.

민감한 문제들을 세상적인 프레임안에 싹 다 가둬버린다.


즉, 이런 문제는 세상적인 정치문제다 라고 여기며

사단이 쳐놓은 그 프레임 안에 영적분별이 필요한 문제들을

다 가둬버렸다.


사단이 교회들을 미혹시키고

이땅을 '지옥화'시키는데 가장 성공한 전략 중 하나다.


교단 내에서도, 교회 내에서도,

같은 교회안의 성도들끼리도,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지고,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이렇게 되니,

이 문제만큼은 유독 분별이 더 어렵고,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들은

교인들의 눈 의식하며 눈치보느라,

강대상에서 제대로 된 선포도 하지 못한다.


이렇게 교회안에서 쉬쉬하고

입다물고 침묵하며 방관하는 사이,

어느새 "좌파, 우파, 진보, 보수"라는

세상의 프레임들이 교회안에도 깊이 뿌리내려지고,

결국 그 프레임 안에서 해석되어질 수밖에 없도록 되버려서,

이로 인한 수많은 오해와 미혹들이 발생한다.


대표적인 예로 한반도(북한) 문제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도 반드시 교회가 나서서

관심갖고 분별하며 나아가야 할 문제들이다.




하지만 현실은...

"보수,진보, 좌파, 우파"라는

세상의 프레임 안에 다 갇혀 버려서

교회가 담대히 말을 꺼낸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그런 구조가 되어 버렸다.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시다.

진리 그 자체이시다.

진리는 말 그대로 진리일뿐이지,

그 진리를 보수다, 진보다 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교회가 말씀에 근거한 오직 진리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이 세상이 말하는 어느 프레임에 속해 있든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그 진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제대로 캐치하고 그 진리에 의해

분별하며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사단은 간교하게도

분별이 필요한 모든 문제들을

그런 프레임 안에 가둬놓았기에

어쩔 수 없이 좌든 우든 어느 한 방향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게 되어져 버렸다.


그래서 그런 프레임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그 프레임에 의해 기준 삼고

그 안에서만 생각하고 판단을 한다.


결국... 그런 프레임 안에 갇혀버리면,

진짜 영적분별이 필요한 문제들을

온전히 진리대로 분별하지 못하게 된다.


북한인권, 종북... 같은 문제들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관심을 가지면

"보수,우파, 극우"라고 하며 그 프레임안에 집어넣는다.


대부분의 교회가 다 이런식이다.


교회는 세상 정치문제에 신경쓰면 안된다...

복음에나 더 신경써라 등등...

이런 프레임들이 교회안에도 가득 퍼져 있기에

교회들이 쉽게 함부로 소리를 낼 수가 없게 되어져 버렸고,


그나마 세상의 프레임 신경쓰지 않고...

정치 문제도 교회가 관심 갖고,

목소리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회들을 보면...


폭압집단에 의해 맞아죽고 굶어죽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은 터부시한 채...


되려 북한정권을 적극 지원해줘서

그들과 함께 평화통일을 이루어

한반도 평화를 이루게 힘쓰자거나,

동성애자들을 사랑으로 품고

그들의 인권을 존중해주고,

그들의 성적취향을 인정해주자는 등,


소위 '좌파적 프레임'안에 갇혀 버려서,

지금 대한민국에서 분별이 필요하고,

우리가 기도하고 행동하며 나아가야 할

이런 시급한 문제들에 대해,

되려 反진리적 행동을 하는 교회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 지금 한국교회의 뼈아픈 현실이다.


아무리 진실이나 팩트를 전한다고 해서

진실이나 팩트, 그 자체가 '절대 진리'가 될 수 없음을 본다.


진리는 반드시

그안에 성령님이 내주하시고 역사하셔야만 가능하다.


그 사람안에 진리가 제대로 역사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팩트나 진실을 알리고 전한다 해도,

그 진실과 팩트 또한 사단이 주는 세상적 프레임,

그 안에서밖에 적용이 되지 않는다.


프레임에 갇혀 있어선 안된다.


진리에 겹치는 부분에 야당이 들어와 있으면

야당이 같은 같은 프레임안에 있는 것처럼 보이고,

여당이 들어와 있으면

여당이 그 프레임 안에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이것이 '우파'라는 프레임에 진리가 겹치는 것이고, '

좌파'라는 프레임에 겹치지 않는 것 뿐이다.


교회는 '좌파'나 '우파'가 아니라,

오직 '예수파'가 되어야 한다.


NWO, 베리칩, 짐승의 표 등등,

마지막 때의 징조를 분별하고 전하는 것은 분명 귀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에만 집중한 나머지,

정작 이 나라와 민족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바로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성령안에서 바르게 분별하지 못하고,

내 생각, 내 지식, 내 논리에 의해서만

판단하고 나아가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이것은 지금 대한민국의 교회들에게 있어서,

결코 예외일 수가 없는 문제다.


같은 민족, 같은 동포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의 물음에 결코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지금 저 북한땅은

참혹한 그 자체인 지옥의 저주를 받은 땅이 되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성경 어디를 봐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이스라엘의 저주를 보더라도,

60년간 이어져온 저 북녁땅과 같지 않다.


배가 고파서 사람의 인육을 먹는다는 이야기는

저 먼 구약시대의 이야기가 아닌,

불과 10년도 안된 저 북녁땅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충격적인 실제상황이다.


지금부터라도,

교회가 세상의 기준과 프레임에서 벗어나,

오직 하나님만 의식하고 바라보며,

오직 진리에 입각한 행동을 보여야 한다.


우리의 모든 행위를 달아보시고

불꽃같이 보고 계시는 하나님이,


우리가 얼마나 내 일처럼 관심을 갖고,

죽어가는 동포들의 고통의 절규에 귀기울이고,

기도하며 행함으로 나아갔는지...


반드시 우리에게 그 핏값과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글: 엘샤다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선교에 대해 어떤 말을 하는가?

 

Timothy Monsma


번역: 김 상 래 목사

 

 

 

        일반적으로 종교 개혁시대의 신앙고백들과 개혁자들의 저서들 속에서 선교를 강조한 부분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혹시 당신은 선교를 강조하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설교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아마도 들어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지금까지 우리는 요리문답과 선교와의 관련성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오늘날 다시 신앙고백을 작성해야 한다면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고백들보다는 더 분명하고 자세하게 선교와 관련된 주제들을 신앙고백 속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신앙고백서와 선교에 대한 우리의 편견에 이의를 제기하고자 합니다. 기존의 신앙고백들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이미 그 속에는 선교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가 주어졌지만 우리가 그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은 아닌가? 라는 질문을 던져 보고자 합니다. 저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중에서 선교에 대해서 직접적인 메시지를 던져주는 세 문답을 살피면서 우리의 오해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선교적 그리스도인(The Missionary Christian)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32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32: 그런데 당신은 왜 그리스도인이라 불립니까?

 

: 왜냐하면 내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그의 기름 부음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선지자로서

그의 이름의 증인이 되며,

제사장으로서

나 자신을 감사의 산 제물로 그에게 드리고,

또한 왕으로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자유롭고 선한 양심으로

죄와 마귀에 대항하여 싸우고,

이후로는 영원히

그와 함께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것입니다.

 

 

       이 질문과 대답은 31문 바로 다음에 이어서 나옵니다. “왜 그분을 그리스도곧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부릅니까?” 대답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큰 선지자요, 우리의 대제사장 일뿐 아니라 우리의 영원한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다가 32문의 대답은 놀라운 말을 덧붙입니다. “내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그의 기름부음에 참여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곧 모든 신자들이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의 직으로써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든 신자들의 직이라고 부릅니다. 이 직분은 베드로전서 29절을 비롯한 신약 성경 곳곳에서 가르쳐집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32문의 대답은 선교에 대한 부르심으로 직접적인 적용을 할 수 있는 구절로 이어집니다. “나는 그의 이름의 증인이 되도록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들을 귀가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고백하도록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을 행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위임 받은 선지자직의 사명이며, 그리스도 자신에 의해서 행해진 선지자직을 잘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주해하면서 우르시누스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의 선지자직은

1.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아는 것이다.

2. 그분에게 속한 모든 곳의 사람들에게 이러한 지식을 신실함과 담대함을 가지고 계속해서 알려지게 함으로 이들이 우리와 동일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살아 역사하는 힘과 능력이 드러나 하나님이 경배 되어지도록 해야 한다.

(The Commentary of Dr. Zacharias Ursinus on the Heidelberg Catechism, Eerdmans, 1954, p. 179)

 

 

       만약 우리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이 부분을 진지하게 여긴다면, 복음을 듣고 이해할 것이라는 소망으로 사람들을 교회로 초청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고백과 삶으로 복음을 제시해 주어야만 합니다. 사람들은 복음이 자신의 마음과 삶에 강한 인상을 주기 전까지는 결코 교회에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제시함에 있어서 좀 더 능숙한 사람과 서툰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기회가 허락하는 한 이러한 복음의 증인되는 실천을 멈추지 않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베드로가 오순절에 인용한 요엘 선지자의 말씀은 모든 신자들의 선지자 직임과 선교를 위한 요청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2:17,18,21).”

 

        젊은이나 늙은이나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 시대 속에서 여전히 선지자로서 증인이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증인된 삶은 우리가 속한 가정과 교회에서 시작해야 하고, 세상 끝에 이르기까지 결코 쉬지 말아야 합니다.

 

 

 

선교적 교회 (The Missionary Church)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54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54: “거룩한 보편적 교회에 관하여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의 처음부터 마지막 날까지 모든 인류 가운데서

영생을 위하여 선택하신 교회를

참된 믿음으로 하나가 되도록

그의 말씀과 성신으로

자신을 위하여

불러 모으고 보호하고 보존하심을 믿습니다.

나도 지금 이 교회의 살아 있는 지체이며

영원히 그러할 것을 믿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선교 사역은 실제로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진리를 배웁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성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몸인 교회를 확장하는 사역을 지금도 하고 계십니다. 교회의 머리이자 왕이신 그 분께서는 이러한 사역을 성취하심에 있어서 두 가지 수단을 사용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성령으로 하여금 사람들의 마음과 삶 속에 강력하게 역사하게 하시고, 또한 그분의 종들을 통해서 선포되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셔서 이 사역을 성취해 나가십니다.

 

        구원의 말씀이 자동적으로 온 세상에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이 전해지는 것은 연약한 사람들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을 통해서 해석되고 선포됩니다. 그리고 세상은 그들의 삶으로 드러나는 말씀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들이 충실히 이루어지도록,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교회를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불러 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될 때 까지”(24:14) 증거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사도 요한의 환상 중에서 24장로들은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5:9) 대속하신 어린양을 찬양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현재 지구 위에 살고 있는 모든 5000여 족속과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파송 되어야 하고, 모든 민족의 언어로 말씀을 옮기는 성경번역 사역이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사역들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그의 몸인 교회를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불러내는 사역을 쉬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역은 창조 때부터 종말까지계속해서 이어질 것입니다. 구약의 성도들도 신약의 성도들과 본질상 동일한 방식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구원의 메시지는 현재도 전해지고 있고, (비록 맹렬한 반대가 역시 일어날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해서 전해질 것입니다.

 

선교적 기도(The Missionary Prayer)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23문도 역시 선교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합니다.


 

 

123: 둘째 간구는 무엇입니까?

 

: “나라이 임하옵소서,

이러한 간구입니다.

주님의 말씀과 성신으로 우리를 통치 하시사

우리가 점점 더 주님께 순종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교회를 보존하시고

흥왕케 하옵시며,

마귀의 일들과

주님께 대항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모든 세력들,

그리고 주님의 거룩한 말씀에 반대하는

모든 악한 의논들을

멸하여주옵소서.

주님의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져

주께서 만유의 주가 되실 때까지 그리하옵소서.“

 

 

        요리문답 54문이 교회를 확장되는 선교적인 교회로 정의했지만, 123문은 우리의 눈을 들어 더 큰 것을 보게 하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가 설명되는데,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은 교회보다 더 큰 것입니다. 그 분 나라는 천사들과 인간들 모두를, 그리고 기구로서의 교회와 유기체로서의 교회를 포함하며, 하나님의 법칙이 드러나는 모든 곳의 통치를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전능한 법칙에 우리 자신이 먼저 복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이 우리 자신의 마음과 삶 가운데 더욱 충만하게 되기를 열망하지 않은 채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오기를 기도하는 것은 또한 그분의 교회를 보존하고 흥왕케해달라는 기도를 포함합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교회 성장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수적인 성장과 영적인 성장, 그리고 구조적인 성장이 모두 성장에 해당되는 것들입니다. 요리문답을 주해하면서 오토 텔레만(Otto Theleman)도 이것을 지적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성취되는 것은선교적 활동을 통해서이다.”(And Aid to the Heidelberg Catechism, Douma Publications, Grand Rapids, p. 425)

 

        교회와 하나님 나라와의 관계에 대해서 헤르만 리델보스는 말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속한 것은 아니지만 둘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The Coming of the Kingdom, Presbyterian & Reformed, Philadelphia, 1962, p. 355) 교회 성장의 필요성을 외치는 사람들이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 사이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된 비유들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반드시 교회의 성장을 가져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유기적으로 하나님 나라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리문답의 답변은 어두움의 나라와 빛의 나라 사이에 벌어지는 전투를 묘사하는데 까지 나아갑니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쉽게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종들은 어디에서든지 이 세상의 공중 권세 잡은 자로부터 원래대로의 회복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던져 피 흘리기까지 악의 세력들과 전투하는데 헌신하도록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좋은 군사들이 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좋은 군사들은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신뢰가 결코 우리의 게으름의 변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종들은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기위해서 준비하고, 공부하고, 듣고, 전략을 세우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대학과 신학교를 통해서 국내와 해외에서 선교에 헌신할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주님의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지는것입니다. 왕이신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그분의 나라는 이러한 완성의 상태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최고의 방법은 산 위에 초막을 짓고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최고의 방법은 지금 여기서 우리의 모든 힘을 다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명령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하심과 능력 주심 안에서 우리는 능히 할 수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선교의 모든 원리들까지 자세히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선교 사역을 위한 충분한 기반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요리 문답에 제시된 선교의 증언은 고백되고 실천되어야만 합니다.

 

  

       저자 설명: 티모씨 몬스마 박사는 기독교개혁교회(CRC) 파송 선교사로 나이지리아에서 12년 동안 선교사로 사역을 감당했으며, 이후에 카이퍼 칼리지, 미 중서부개혁 신학교에서 선교학을 가르쳤고 이후에 미국 에스콘디도에서 도시선교단체의 디렉터로 헌신했다. 도시: 선교의 새로운 개척지라는 책을 저술했으며, 미국 PCA 교단의 임명을 받아 아프리카의 주요 8대 도시를 돌면서 선교의 전망을 보고했으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 선교와 관련된 강의를 담당했다.

 

출처: 영적 분별력/진실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미혹의 영, 분열의 영, 그리고 식물이 된 한국교회!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야 4:7)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눅 10:19)


제가 깨달은 것을 함께 공유하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으로 올리는 것이니, 부디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시고 마음에 합당하지 않는다 생각되시면 그냥 읽고 잊어 버리셨으면 합니다.


지금 유럽은 기독교가 거의 말살된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세시대의 그 아름다운 교회들은 이슬람 사원이 되든지 아니면 술집으로 팔려나가고 교회 신자들도 나이 드신 어르신들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메리카 쪽을 한번 보겠습니다.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 시절, 동성애를 옹호하고 이슬람세력들이 급속히 퍼진 가운데 지금 트럼프 대통령을 통하여 다시 기독교가 일어서고 있습니다. 남미는 현재 타락한 천주교가 오랫동안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아시아는 인도는 힌두교, 또는 불교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특히 동남아 국가들, 말레이시아나 터키 등은 이슬람이 장악을 하고 있고 필리핀은 천주교가 대세를 이루고, 일본은 여러가지 잡신들을 섬기고 중국은 공산주의 영에 사로잡힌 나라입니다. 아프리카쪽은 오랫동안 토속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물론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통계상으로 본 것입니다.


그럼 대한민국은 어떨까요?

오랫동안 샤머니즘 미신과 우상을 섬기는 나라였는데, 100여년 전 한 이방 선교사가 피를 흘리며 전해준 복음을 듣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 하나님을 섬기게 됐으니, 지난 4,500년 역사동안 지금처럼 잘 살아본 적이 없을 정도입니다. 단순한 한강의 기적이 아니고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친히 하늘 문을 여시고 흔들어 채워주신 결과입니다.


가난하고 헐벗은 이 나라를 축복하시어 열방과 어깨를 같이하도록 세워주셨고, 받기만 하던 나라에서 두 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고, 자연 재해로 어려움을 겪는 나라들에 각종 물자를 공급하고 기술자를 파견하는 등 참으로 자랑스런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 모두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럼 이제 사단의 입장에서 한번 보겠습니다.

사단은 유럽을 이슬람과 자유주의 신학으로, 동성애로, 남미도 잡신과 접속한 천주교로 다 잡았고, 중국은 공산주의 사회주의 나라이고, 베트남과 캄보다아도 사회주의 나라이고, 아시아도 거지 반이상 장악한 상태이고, 이제 최종적으로 한국만 접수하면 되는데, 이 골치 아픈 한국이 "동성애 절대 안돼, 이슬람도 안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왕이시고 말씀에 따라 동성애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어"라며 치열한 영적전쟁 중입니다.


이 한국을 하루빨리 처리해야 되는데 한국에 예수 믿는 사람들 때문에 안되서 전략을 바꾸었습니다. 하나님도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역사하시지만 사단도 자기의 사람들을 도구로 써서 자기의 일을 완성해 나갑니다.


거기에 쓰임 받는 사람들이 바로 북한 정권과 이땅의 종북좌파 세력들, 즉 공산주의(주체사상) 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전교조, 민노총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분열의 영과 미혹의 영으로 눈과 마음을 가리워져 버리니 모두가 사단의 도구가 되어 대한민국을 말아먹기로 작정하고 덤빕니다.


저는 지난 8월15일 날 시청 앞 광장에서 벌어진 일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여기가 서울인가 북한인가 제 눈을 의심할 정도로, 공공연하게 북한을 찬양하고 미군 나가라고 외치는 우리 젊은이들을 보고 저들의 배후에 있는 미혹의 영에 의해 이땅이 너무나 많이 점령되었음을 다시 실감했습니다.


<관련영상> 8.15 사드반대집회 “미국놈들 몰아내자”



저들이 지식이 없어서 저렇게 무모한 행동을 합니까? 아닙니다. 저들은 그게 나라를 위한 것이고, 그게 합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런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라를 걱정하는 어르신들의 얘기는 무조건 수구꼴통으로 치부해버리는 등, 오랜 세월동안 전교조로 인한 교육의 폐해가 이제 저런 열매로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8월 20일 서울 지하철 내부에서 죄수복을 입고 "양심수 이석기 석방"을 외치는 저 청년들은 자기가 지금 시대의 양심(?)에 의한 올바른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상의 영, 미혹의 영이 저들을 사로잡아 대한민국을 파멸로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엡 6:12)


세상에는 하나님과 사단의 두 세력만 존재합니다.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자기 재산을 다 팔아 구제에 힘쓰고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했더라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사단에 속해 있는 사람이지, 하나님의 자녀는 아닙니다.


교회의 본질은 영혼 구원에 있고 또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셔서 이 땅을 다스리는 것 말입니다. 그 사명을 위해 주님이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고 음부가 이기지 못하는 권세를 교회에게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사단이 지금 이 땅을 자기의 세력 하에 두기 위하여 우는 사자같이 돌아다니는데 이 땅의 교회들은 그져 자기 교회만 부흥되고 잘되기만을 바라고, 어떻게든 신도수 늘려서 높은 건물 세우기에 혈안이 되어 땅 따먹기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한국을 축복하시고 한국교회를 축복하신 이유는, 한국교회를 통하여 한국만 잘먹고 잘살라고 축복하신게 아니라, 저 북녁땅의 고통받는 동포들을 복음으로 자유케하도록,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들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사명을 위해 이런 축복을 허락해 주셨는데, 현실은 세계는 고사하고 자신의 나라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우는 사자같이 두루다니며 죽이고 도적질하는 사단을 박살내라고 한국교회에게 이런 큰 복과 은혜를 부어주셨는데, 마귀를 대적하여 죽이지 못하고, 깨워 기도하지 못한 결과가 지금의 한국의 암담한 현실입니다.


원인 없는 결과가 어디 있습니까?

사단은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온갖 궤계와 술수로 이 땅을 분열시켜왔고, 국민들을 미혹하였습니다. 기도하고 깨어 있어야 할 교회는 천하에 용서 받지 못할 죄를 지었습니다.


일제시대의 신사참배는 총 칼 앞에 저지른 죄였고, 지금의 WCC는 목숨의 위협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에 스스로 우상숭배의 죄를 지었습니다. 오히려 일제시대 신사참배의 죄보다 더 큰 죄를 지은 우리 세대는 하나님 앞에 베옷을 입고 재위에 앉아 통곡하며 회개하여야 합니다.


세월호 사건이 대통령의 탄핵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원래 사단은 죽이고 도적질하는게 의무이고 할 줄 아는 게 그 것 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깨어서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대적했으면 사단이 계획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나라가 이렇게 풍전등화 같이 위태롭지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욥기서에도 사단이 멀쩡한 욥을 참소하고 공격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이 세월호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을 일으키신 게 아니고 대한민국의 죄가 관영하여 사단이 하나님께 참소하니 공의의 하나님이 허용하신 것 뿐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통해 일하고 있고, 사단도 자기의 일꾼을 통해 이 땅을 도적질하고 있는데, 오늘날 교회가 식물교회가 되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분별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한국과 교회에 복을 주시어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저 북한의 형제들을 해방시키시고 하나님이 친히 왕이 되셔서 이 땅을 통치하시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원하옵기는 하나님,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열명 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지 않는다고 하셨으니 아버지 지금 이 땅에 이 나라를 위해 눈물로 골방에서 기도처소에서 기도하는 이 백성을 보고 이 나라를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또 요나의 외침을 듣고 니느웨 백성이 재옷을 입고 회개하였을 때 그 땅 십이만 명을 아껴 보신 것 같이 지금 이 땅에 당신의 백성이 회개하고 주님의 긍휼을 구하니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다." (시 86:5)


주님! 이 땅을 덮고 있는 분열의 영과 미혹의 영을 제하여 주시옵고, 사단의 도구로 전락되어진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을 뒤덮고 있는 어두움을 거두어 주시사 저들이 빛 가운데로 나오게 하여 주시고 이 땅을 소요케 하는 종북좌파 세력들을 제하여 주소서...


저들의 악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시고 우리가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아도 저들이 흔적조차 없도록 이 땅을 지켜주시옵소서... 이 땅 교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교회에게 맡겨주신 기도의 사명을 감당케 하옵소서...



출처: 이웃 블로그/ 진실함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들을 섬기지 말라.”


성당이나 교회에 가본 사람이라면 교인이나 신도로서 지켜야 할 10계명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는 하늘과 부처를 믿는다고 목사, 신부, 장로, 전도사, 스님 등등의 교직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공공연히 “붉은 마귀”의 우상을 섬기며 그 마귀를 위하여 헌신하는 자들이 적지 않기에 욕을 해본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면서 점집이나 찾아다니고 제사 같은 것이나 주관을 한다면야 미친 자라고 혼자 생각을 하면 될 일이겠는데 이 대한민국에서 이중 생활을 하는 교직자들은 붉은 공산마귀를 섬기면서 하는 짓마다 꼭 대중을 휘동해가지고 나라를 망하게 할 역적질들만 골라서 하기에 욕을 해본다.


그러고 보면 이런 자들은 공산마귀를 섬기면서 나라를 망하게 하는 행동들을 더 크게 하기 위해 또 자기의 정체를 숨기려는 목적으로 목사나 신부, 스님의 가면을 뒤집어썼다는 결론이 나온다.


솔직히 말해, 북한 2천만 백성들만큼 “붉은 공산마귀”를 충성으로 섬긴 사람들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섬기던 수령이라는 “우상님”은 자기에게 충성하면 영생하고 배신하면 쓸모없는 고깃덩이가 된다고 설교를 끊임없이 해댄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은 그 공산 마귀를 대를 이어가며 가정도, 목숨도 다 바쳐서 지키고 믿고 따랐다.


그런데 그 결과는 무엇인가?

영생하기는 고사하고 굶어죽고, 맞아죽고, 얼어죽고, 가족들은 뿔뿔이 갈라지고, 자식들은 되놈들에게 팔려가고, 그래서 나도 고향 떠나 타향살이 한 세월만 10년이 넘었다.


한국의 한심한 사람들아, 믿을 것을 믿고, 섬길 것을 섬겨야 할 것 아닌가?

공산 마귀들 때문에 탈북자들이 3만이 넘게 이 나라에 와 있는데도 그것을 모른척하고 일부 목사라는 자들은 교인들이 하나님께 바친 돈을 긁어모아 가지고는 붉은 마귀를 찾아가서 절하며 바치고 돌아와서는 “북한에도 가정교회가 있더라.”고 종교의 자유가 없는 북한을 감싸주는 헛소리나 하고...


신부라는 자들이 평신도를 휘동해가지고 나라의 군사기지 건설 반대 데모나 다니고.. 주일 예배와 미사에서는 교인들 앞에서는 공산마귀를 찬양하고 자기 나라 정부를 반대하도록 부추기며 나라를 마귀에게 바치려고 별의별 악착한 짓들을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다.


스님이란 자들도 변질되어 마귀를 섬기며 불당을 반국가 범죄자들의 은닉처로 제공하고 있다. 이제는 이렇게 목사, 신부, 스님의 가면을 쓰고 역적 짓을 하는 자들의 세력이 너무 커져서 그들을 막아낼 방법도, 힘도, 교단도 대한민국에는 없다. 한국의 종교계가 중심을 잃고 통째로 흔들린다.


내가 대학 시절에 김일성이 대남담당 김중린 비서에게 내린 교시내용

“... 남조선 젊은이들을 맨날 아스팔트에만 내몰지 말고 똑똑한 애들을 선발하여 공부를 시키라. 그렇게 키워서 교육계는 물론 정계와 법조계, 언론계에 계속 박아 넣으라, 특히 종교계를 장악 하는게 매우 중요해. 교회에는 성경책 하나만 끼고 가면 누구도 의심을 안 해. 그렇게 해서 남조선의 수많은 교인들을 우리 쪽으로 포섭해야 돼. 통일은 가까이 보지 말고 멀리 내다보고 준비를 해야 돼...”를 전달 받았던 생각이 난다.



사실 그 당시에는 “저런 식으로 해서 언제 남조선을 통일한단 말인가?”하는 막연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수십 년 후에 내가 정작 한국에 정착하여 이 나라의 현실을 보니 김일성이 정말 몸서리 칠 정도로 현명한 사람이었음을 매 순간순간 느끼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의 국민들과 정치가들만은 지금 자기들이 죽은 김일성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그 진실을 알려고도, 인정하려고조차 안 한다. 참 안타까울 정도로 어리석은 국민이고 한심한 정치가들이다.


그리고 풀지 못한 숙제가 있다.

인간들이 얼마나 못났으면 아무리 북한의 도움으로 공부를 했다 해도 어찌 일 푼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자기 나라를 배반하는 역적 짓을 서슴없이 하는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아니 그보다도 역적질을 하고도 살아남는 그 제도가 더 풀기 어려운 숙제다.

대한민국은 박정희 정권 이후 자유민주주의라는 연막 속에서 정치, 군사, 사법, 교육, 종교 등 각 분야에서 북한을 추종하는 반역세력들을 매우 빠르게, 매우 많이도 길러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자들이 붉은 마귀를 섬기고도 두렵지도 않은가? 이런 자들 때문이 이 나라가 이제는 하늘의 벌을 면치 못할 것 같다. 역적질을 하겠으면 이제는 교직의 가면 즉 하늘의 가면을 벗으라.


“너희들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10계명 중 제 3계명)


2017.09.06



출처: 김태산님 페이스북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심판, 공의의 심판자이신 하나님, 최후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세상에서는 승자가 역사를 만들고,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며, 따라서 우파든 좌파든 승자가 되고 권력만 잡으면 됩니다. 그것이 땅의 사람들의 궁극적 지향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그것보다 더 중요하고 더 심각한 하나님의 심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과, 도덕과 양심을 떠나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거기에서 실패한 자가 되지 않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과 책망을 받고 영벌에 처해지는 자가 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뜻을 이루고, 부정한 방법으로 승자가 되고, 부정한 방법으로 권력을 잡을 바에야, 지옥 가는 부자가 될 바에야, 천국 가는 거지 나사로가 되는 것이 낫습니다. 결국에는 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될 뿐이며, 다 죽어서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세상의 승자의 논리, 권력의 논리가 아니라, 바로 이것이 기독교인들의 삶과 의식의 중심에, 핵심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식의, 인간의 근본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조차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고, 심지어 세상보다 더 승자 지향적이고 권력 지향적이라서 참담함과 비애를 느낍니다. 그것은 작게 이기는 것이고, 크게 지는 것입니다. 뼈를 주고 살을 취하는 것입니다. 작은 것을 얻고 거의 다를 잃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지금 이 모양 이꼴이 되버린 것도,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성경적 가치를 따라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세속적으로 성공하고 하나님 앞에 실패한 인생이 되기보다, 지옥 가는 부자가 되기보다, 세속적으로 실패할지언정 심판주이신 하나님을 의식하고 사는 비천하고 낮고 겸손한 자, 천국에 가는 거지 나사로가 되고 싶습니다.


주여,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에게 자비와 긍휼, 은총을 베푸소서. 제가 능력 없고 죄인이라 다 잃었지만, 그래도 당신이 주신 선한 양심 하나는 지키려 노력했나이다. 대한민국의 기독교인들도 당신을 진정으로 알고, 진정으로 두려워하며 살게 하소서.


그것이 모든 것의 궁극적 해법입니다.



출처: 노승현님 페이스북

수학적 확률은 연방제 사변을 향한다!

기도하는 당신이 마지막 소망의 끈입니다.


언젠가 북한은 무너진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시간은 핵을 가진 북한 편이다. 7월28일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은 7월4일 발사했던 탄도미사일 보다 진전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탄도미사일로 추정된다.


대통령은 사드의 추가 배치를 지시했으나, 구체적 실천은 따르지 않는다. 이른바 일반 환경영향평가도 예정대로 진행된다. 어영부영 시간을 때우다 사드 배치는 지연되고 북한의 ICBM은 완성될 것이다.


ICBM이 완성되면 다급한 미국은 본토 방위를 위한 독자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손을 털고 북한·중국과 타협하거나 '북폭'하는 수순이다.


만약 미국이 북폭에 나서지 않는다면...

타협, 수년 내 평화체제라는 이름의 연방제 사변(事變)이 벌어진다.


수학적 확률의 시계는 연방제 사변을 향한다. 북한 정권, 중국 정권은 물론 한국 정부와 상당수 국민이 그것을 바라는 탓이다. 타협이건 북폭이건, 연방제건 전쟁이건, 미군과 미국인, 미국 돈은 서서히 한반도를 빠져가고 한국은 북한과 중국에 기울어 갈 것이다. 한민족 전체는 분단된 채 쇠락으로 치닫는다.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북한의 핵인질로 전락 중이다. 그 마지막은 기독교 문명권 이탈 및 미군과 자본의 철수, 온갖 유물론 범람과 동성애 확산이 될 것이다. 여기까지 몰려도 절대 다수의 교회들은 침묵한다.


Holy Remnants, 거룩한 남은 자의 기도가 기적을 만들어 낼 때이다. 기도하는 당신이 마지막 소망의 끈입니다.



- 김성욱 대표 / 리버티헤럴드

혼란한 정세 속에서 이제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바라볼 때입니다.


역사책을 보면 역사가 왕과 사람들의 이야기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이사야서를 읽으면서 느낀 것은 연약한 인간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해 나가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사야 1-35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유다와 이스라엘 그리고 주변 나라들에게 일어날 심판과 회복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데 36장부터 37장에는 앗시리아가 유다를 공격한 역사적인 내용이 나옵니다.


앗시리아의 왕은 산헤립이었고 유다의 왕은 히스기야였습니다. 산헤립이 보낸 야전 사령관 랍사게가 히스기야에게 말합니다. "군사전략을 짜고 전쟁할 힘을 갖는 것이 입만 가지고 되느냐? 너는 누구를 믿고 내게 반역하느냐? 보아라. 네가 이집트를 의지하나, 이집트는 부러진 갈대 지팡이에 지나지 않는다."


이쯤에서 멈추어야 했는데 그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말까지 합니다. "어떤 신도 그들의 백성을 내 손에서 구해내지 못했다. 그러니 여호와도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구해 내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산해립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 앞이라고 네가 감히 나를 욕하고 모독하며, 목소리를 높였느냐? 누구 앞이라고 감히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께 눈을 부릅떴느냐? ... 앗시리아 왕아, 네가 틀림없이 들었을 것이다. 나 여호와가 오래전에 이 일들을 결정했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도 예전에 이미 계획한 일들이다. 그래서 이제 네가 성벽에 있는 저 굳건한 성들을 잿더미로 만들수 있게 된 것이다... 네가 내게 악한 말을 하였고, 너의 떠들썩함이 내 귀에까지 들렸으므로, 네 코에 갈고리를 걸고 네 입에 제갈을 물리겠다. 그리고 네가 왔던 그 길로 다시 돌아가게 하겠다."


하나님께서는 너무 분노하셔서 직접 움직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서 앗시리아 진에서 185,000명을 죽이셨습니다. 그리고 에디오피아의 디르하가 왕이 자기를 치러 온다는 보고를 들었었던 산헤립은 니느웨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신 니스록을 신전에서 예배하고 있을 때 자신의 아들들에 의해 살해당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예언하셨던 일을 성취하는데 쓰임받던 몽둥이가 교만해져서 몽둥이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께 입을 잘못 벌렸다가 완전히 묵사발이 되고만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남북관계에서, 국제정세적으로 매우 복잡한 이 때에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깨우쳐 주십니다.


1. 역사와 네 인생의 주관자는 여호와다. 혼란속에서 네가 시선을 두어야 할 곳은 몽둥이로 쓰이는 강대국이나 북한이 아닌 몽둥이를 들고 계시는 여호와다. 여호와만을 의지해야 한다.


2. 산당들을 없애면서 이스라엘에서 예배를 다시 정결케 했던 히스기야처럼 주님을 순전한 마음으로 섬기시며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역사하신다.


3. 우리가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 하나님께서 앗시리아나 바벨론을 사용하셔서 회개하지 않은 민족들이 심은대로 거두게 하셨다. 우리 민족도 죄의 대한 댓가를 받지 않으려면 회개해야 한다. 의인들이 세워져야 한다.



출처: 박다니엘님 페이스북

“그 분과 1:1로 만나라!”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개인적으로 만나기를 원하신다.


어느 날 오후, 당신이 대문 옆의 우편함을 향해 걸어간다.

아름다운 초대장 하나가 있다. 정확히 당신 앞으로 발송된 개인적인 초대장이다. 왕이 보낸 초대장이다.

여느 왕이 아니라 모든 왕들의 왕이신 그분께서 직접 보내신 것이다. 봉투 자체가 지금까지 만져본 적이 없는 최고급지이다. 봉투는 왕의 위엄이 느껴지는 당당한 찰흙 인장으로 봉인되어 있다. 당신은 설렘에 압도되어 천천히 찰흙 인장을 떼어내고 안에 있는 카드를 꺼낸다.


“나를 만나라고 그대를 초대하노라!”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당신은 초대장을 보며 그것이 세상의 분주함을 떠나라는 초대임을 깨닫는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개인적으로 만나기를 원하신다.


문화의 소음, 절망의 목소리, 전문가의 으르렁거림, 환멸을 느낀 이들의 애처로운 낑낑거림, 신앙심 깊은 사람들이 헐떡거리면서 쏟아내는 말들, 야심 찬 사람들의 고함 등을 모두 떠나 만남의 당사자 두 사람, 당신과 당신의 왕만이 전적으로 중요한 그곳으로 돌아가라는 초대다.


당신의 왕이신 하나님을 직접 만나 친밀하게 교제하라. 교제할 뿐만 아니라 친밀한 상태를 유지하라.

과거에 나는 안내자를 갖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이끌려고 애쓰면서 많은 세월을 보냈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내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경청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려고 애쓰면서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실패자로 걸은 세월이었다.


그러다가 나의 구원자이신 그분과 개인적으로 만났고, 그 결과 지금은 어떤 사람이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면 영원히 변화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공적 예배나 대회나 집회에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시고 나는 그런 장면을 목격하는 것을 언제나 즐거워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또한 하나님의 자녀들과 일대일로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신다. 사실 하나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기쁨으로 충만해진다고 약속한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 16:11).


하나님께서 언제나 두 팔로 당신을 감싸줄 준비를 하고 계심을 알고 있는가? 사실 당신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창조되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창조된 모든 것, 존재하는 모든 것이 주님의 기쁨을 위해서입니다” (계 4:11,《NLT》, 역자 옮김).


영적으로 건강한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교제라는 사실을 꼭 이해하기 바란다. 당신을 영적으로 살아 있게 하는 것은 구원자와의 개인적인 만남이다. 시편 기자가 이것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주목하기 바란다.


이리도 험악한 세상! 나는 하나님께 외쳤다. 도와달라고 부르짖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분의 왕궁에서 들으셨다. 내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나를 당신 앞에 불러주셨다. 나를 독대해주셨다! 시 18:6, 《메시지》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개인적으로 만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나는 사탄이 당신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하지 못하는 경우에 당신을 단지 바쁘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탄이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당신이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할 때 하나님께서 당신 안에서 정말로 많은 일들을 행하실 수 있지만, 당신이 바쁜 생활에 치어 그렇게 하지 못할 때 사탄이 당신에게서 정말로 많은 것들을 앗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교제하는 사람을 내게 데려와라. 그러면 나는 그 사람이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당신에게 입증해 보일 수 있다.



당신 삶의 모든 국면에 평화와 만족이 깃들 때가 언제인가? 예수님과 개인적으로 만날 때이다. 예수님과 개인적으로 교제하는 것이 남은 자로서의 당신의 행보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예수님은 마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 만족하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 너희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모든 것의 당당한 주인이 된다. 마 5:5, 《메시지》


예수님이 당신을 확보하여 변화시키시는 때가 바로 이러한 일대일의 개인적 만남이 일어나는 동안이다.



출처: 갓피플 말씀테마 (http://gp.godpeople.com/archives/44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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