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근에 지옥에 관한 교리를 두 번 가르쳤고, 그 두 번을 다 눈물로 끝마쳤다.

 

지금도 두 번째 강의 때 일어난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수업이 끝났을 때, 하나님을 오랫동안 섬겨 온 나이가 많은 한 부인이 침울한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분은 울면서 자기 어머니에 대해 질문했다. 혹시 현재 지옥에 있지는 않은지 알기를 원했던 것이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대답하는 상투적인 대답을 했다. 우리는 개인의 마지막 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결코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그분의 어머니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실제로 나는 몰랐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런데 나는 그녀에게 또 다른 말도 했다. “그러나 내가 아는 것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의 어머니가 지옥에 있다면, 그에 대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만일 하나님이 나와 당신을 지옥에 보내신다면, 그렇게 하시는 하나님이 옳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옥 심판은 죄를 지은 우리에게 마땅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 부인은 내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진지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부둥켜안고 서로의 죄와 지옥의 무게를 느끼며 함께 울었다.

 

지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가 가진 지옥에 대한 견해는 우리가 죄와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깊은 연관이 있다. 지옥에 관해 생각할 때 흔히 저지르는 두 가지 잘못이 있다. 한 가지 잘못은 지옥은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옥을 자신과는 생각이 다르고, 정치적인 견해가 다르고, 삶의 방법이 다른 사람들이 가야 할 장소로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복음의 은혜는 물론 우리와 같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무관심을 가져온다.

 

조나난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이런 문제점을 잘 파악했다. 그는 어떤 사람이 “지옥을 인정하면서도 그곳이 자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장소라고 믿을 때, 오직 나 아닌 타인들만 가게 될 장소라고 확신할 때, 그런 사람은 오히려 지옥을 부정하는 상대에게 강력한 반대 의견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즉, 많은 사람들이 지옥을 믿으면서도 그 장소가 결코 자신들과는 관계없는 곳이라고 여기며 우월감을 느낀다고 한다.  

 

오늘날 계속해서 주장되는 지옥 교리는 대개 이 교리를 반대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신약학자인 데일 알리슨(Dale Allison)은 그가 젊은 시절에 가졌던 지옥 교리에 대한 반감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나는 기독교와 다른 종교에 관한 소책자를 읽은 기억이 있다. 그 소책자는 모든 유대인, 무슬림, 힌두교인이 지옥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로 고통을 당한다는 교리를 분명히 가르친다. 그 소책자의 저자는 성경 본문을 인용해서 자신의 주장을 입증했다. 나는 그때 이런 주장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졌다. 나는 그 글을 읽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아픈 마음으로 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죽은 후에 지옥의 고통을 당해야 한다는 개념은 내가 자유주의 신학을 만나기 오래 전부터 혐오스럽게 다가왔다.”

 

나는 이런 지옥 개념이 혐오스럽다는 견해를 인정한다. 우리는 그와 같은 지옥 개념을 반박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개념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가야 하는 장소로 지옥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옥이 나와 상관없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한 장소라는 개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비추어 판단할 때 거짓된 것으로 드러난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당신과 같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그 누구도 지옥에서 형벌을 받을 수는 없다. 오히려 그들 역시 당신과 똑같다는 이유 때문에 지옥의 형벌을 받을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지옥에 관한 충격적인 진리이다.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진리는 우리도 다른 사람도 모두,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죄 때문에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사실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라고 선언하는 성경의 말씀은 외적인 기준으로 서로를 비교하고 판단하는 우리의 오만을 깨뜨린다.

 

어떤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지옥을 피할 수 없다. 우리가 지옥에 가지 않는 이유는 그리스도가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옥을 피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죄 없는 아들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 우리처럼 되셨기 때문이다(고후 5:21).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우리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

 

어떤 방법으로 지옥을 가르쳐야 하는가?  

 

우리가 지옥에 관한 설교와 교육을 실천할 때, 다음의 세 가지 사항을 유념해야 한다.

 

1. 사랑의 하나님이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시는 이유를 설명할 때, 다른 사람들이 아닌 우리 자신에게서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시는 하나님이 정당하다는 사실을 변증하기 위해 역사 속에 악명 높은 히틀러나 스탈린과 같은 사람을 예로 들려는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사악한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죄악이 우리 속에도 실재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내면에 있는 강력한 증오, 깊게 뿌리박힌 자기중심적 아집, 마음과 뜻과 영혼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순종할 수 없는 전적인 무능을 솔직히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우리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우리 자신에게 우선적으로 지옥 교리를 적용할 때,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성경의 진리가 예수 믿는 우리에게도 해당된다는 사실과 그 결과로 우리가 지옥의 실재를 믿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분명히 보고 알게 될 것이다.

 

2. 지옥을 믿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영원한 형벌을 입술로는 부인하는 태도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옥 형벌을 강하게 믿는다. 하지만 자신들이 믿는 지옥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지옥을 말할 때 진지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자기가 먼저 공적인 대화에서 지옥에 대해 말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에 관해 설교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지옥을 언급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를 원하지 않고, 또 영원한 고통 속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싫어한다. 나도 그런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지옥 형벌의 엄중한 무게를 숨기면, 예수님이 죄로 인해 지옥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자기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복음의 위대한 가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 결국,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한다(눅 7:47). 

 

3 지옥에 대한 믿음은 우리의 복음 선포에 필수적이다

 

우리가 지옥을 우리가 마땅히 가야하는 곳으로 여기지 않고 설교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으로 설교하게 된다.

 

이 둘은 필연적으로 서로 묶여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느끼는 지옥에 대한 두려움과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놀라움은 늘 함께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옥과 복음이 어우러질 때 나타나는 엄중함과 절박함, 그리고 경외감을 가지고, 그 둘을 함께 설교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도 바울처럼 이렇게 외치게 될 것이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11:33).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Are We Proclaiming a Hell We Don’t Deserve—and a Christ We Do? by Peter Gurry

번역: 김재덕  

 

2005년 미국에서 시작되어 팀 켈러 목사와 존 파이퍼 목사 등이 이끄는 TGC(The Gospel Coalition; 복음연합)의 한국어 사이트(tgckorea.org)가 지난 11월 오픈되어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주제의 글과 동영상이 매일 새롭게 업로드 되고 있다. TGC코리아는 TGC는 물론 개혁주의 신앙을 전달하는 또 다른 인기 사이트인 Desiring God(존 파이퍼), Ligonier(R.C. 스프로울), 9 Marks(마크 데버), Unlimited Grace(브라이언 채플)의 수준 높은 자료들을 공식적으로 허락받아 한국에 소개하고 있다. 

 

ⓒ TGC코리아(https://tgckorea.org)

하나님의 보좌, 하늘들의 보좌, 만유를 위한 보좌, 우주의 중심, 하나님 통치의 중심, 알파와 오메가의 근원

생각만해도 숨이 탁 멈출 정도로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는 곳이다

하늘과 땅을 통털어 가장 신비하고 영광스럽고 장엄하고 웅대한 장소다

하나님을 보여 주어야 믿겠다는 어리석은 사람들도 많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천상의 보좌를 보여 주셨는데

이는 하나님과 영원히 거주할 천상의 세계가 상상이나 비현실의 세계가 아니라 실제 상황임을 알려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주 건너편에 물리적으로 영적으로 실제 존재하는 장소다 


 

하나님의 보좌와 보좌위에 앉으신 분을 환상으로 목격한 사람은 모두 6명이다

구약시대에는 미가야가 보았고 이사야도 보았고 에스겔도 보았고 다니엘도 보았다

신약시대에는 스데반이 보았고 사도요한도 보았다

구약 : 미가야, 이사야, 에스겔, 다니엘

신약 : 스데반, 사도요한

*스가랴와 욥기에도 나오지만 보좌를 묘사한 것이 아니어서 생략함

 

우리는 흔히 높은 사람이 누군가를 신뢰하면 큰 힘을 받게 된다

인간의 몸으로 신이 거주하는 황홀한 천상의 세계를 목격한 사람은 실로 엄청난 믿음의 진보를 가진다

그 세계에 거주한다는 소망만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

그 세계를 목격한 사람뿐 아니라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세계에 참여하고픈 거룩한 열망이 일어난다​

<6명이 하나님의 보좌와 여호와의 형상을 묘사한 내용>

 NO

 목격자

 시대

기록 

하나님의 보좌 

 1

 이사야

 BC 700년경

사 6장 

하나님의 보좌는 높은 곳에 위치하였고, 여섯개의 날개를 가진 스랍들이 둘러 서 있다

 2

 에스겔

 BC 565년경

 겔 1장

남보석과 불같은 보좌에 불같은 형상과 광채를 뿜어내는 여호와의 형상을 묘사함

보좌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바퀴가 있어 이동이 가능하다

말이 바퀴로 기록되었지 신비한 장치다​ 

 3

 미가야

 BC 550년경

열상 22장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하늘의 만군이 보좌의 오른쪽 왼쪽에 모시고 서 있다

 4

 다니엘

 BC 530년경

단 7장 

불꽃같은 보좌에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옷은 눈 같이 희고,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과 같다 (보좌에 앉으신 분에 대한 묘사)

하나님을 시종드는 천사가 100만명(천천)이고 보좌 앞에서 모셔 선 천사의 수는 1억명(만만)이나 되었다

구약에서는 유일하게 다니엘서에 하나님의 보좌에서 예수님이 등장한다

인자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태초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는데

하나님께서 권세와 영광과 나라의 통치권을 이양하였다(단7:13~14)

 5

스데반

AD 35년경

행 7장

하나님의 보좌와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6

사도

요한

AD 95년경 

계 4장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형상 : 가장 귀한 보석(벽옥,홍보석,녹보석)과 무지개로 표현하였다

하나님의 보좌를 중심으로 네생물과 24장로의 보좌가 있고 보좌에서 번개,음성, 우렛소리가 ​나고 일곱 등불(일곱영)이 켜져 있음

보좌 앞에 유리바다가 있고 보좌 가까이에는 네 생물이 위치한다

어린양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두루마리를 받아 일곱인을 떼신다

6인의 보좌 목격담에서 처음으로 보좌앞에 구원받은 성도들이 등장한다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큰소리로 하늘의 찬양대에 참여한다

 

6명의 목격담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의 보좌는 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며 보좌 옆에 예수님의 보좌가 있는데 이곳은 우주를 통치하는 중심이다

보좌에서 첫번째​로 가까운 곳에 여섯날개 가진 스랍 또는 네 생물이 자리 잡고

두번째로 가까운 장소에 24장로들의 보좌가 있는데 ​24장로는 구약의 12명의 장로와 신약의 12제자다

​세번째로 가까운 곳에 천사와 천군이 있는데

100만명의 천사가 시중들고, 보좌 앞에 1억명의 천사가 있으며, 보좌의 오른쪽과 왼쪽에는 무수한 하나님의 군대가 도열하여 있다

네번째 가까운 곳에 각 나라와 방언에서 나온  셀 수 없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장소는 수십억명이 수용 가능한 넓은 장소임에도 가시거리가 좋아 한 눈에 들어오는 신비한 구조로 되어 있다 ​

하나님의 형상은 광채와 신비스러운 빛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목격자들은 그 광경을 글이나 말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단지 무지개와 광채나는 보석으로 묘사하였다 

 

수십억명의 성도와 천사들이 부르는 찬양은 궁극적인 우주적 선율로 벅찬 감동에 빠져들게 하지만 완전한 질서와 최상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보좌에서 번개와 음성, 우렛소리가 나는 광경은 하나님의 무한한 권능과 모든 존재의 근원을 의미하며

일곱개의 등불은 온 우주를 통치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을 표현한다

계시록에는 '보좌위에 앉으신 분'이 12회 기록되어 있는데 그 분이 만유의 근원이 되신다

보좌 앞에는 광활한 유리바다가 펼쳐져 있는데 이는 생명의 근원과 정결함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보좌는 온 우주를 통치하는 중심이며 거룩하심, 전지전능하심, 광활하심, 과거,현재,미래에서 모든 존재의 근원되심을 잘 표현하고 있다

보좌는 영광의 장소, 찬양의 장소, 주권과 거룩함의 장소, 권능과 위엄의 장소, ​정결함의 장소, 생명의 장소, 은혜의 장소, 신성한 장소다

이런 분이 우리의 아버지시요, 우리는 그 분의 자녀다


특히 신약시대에 보좌를 목격한 사람들은 구약시대에 목격자들이 볼 수 없었던 24장로의 보좌와 구원받은 성도들이 추가되었다

이는 예수님께서 구원의 사역을 통해 구원받은 자들이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지성소, 곧 하나님 보좌 앞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을 부여 받은 것으로 이해된다

특별히 하나님의 보좌 가까운 곳에 사람의 대표자로 24장로들의 보좌를 배설한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한 특별한 애정과 배려를 상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앞에 나가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자는 자신을 절제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된다

썩어질 땅의 것을 배설물로 삼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출처: https://blog.naver.com/acoloje/220921848175

 

"오직 영(靈)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요일 4:1)

 

우리는 인터넷상에서 

영계(靈界)를 체험한 분들의

여러 간증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는 진실하고 은혜로운 체험도 있으나

모두가 그렇지는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친히 전해주시는 말씀이 가장 확실하겠지요.

 

먼저 주님께서는 이 땅의 충성에 따라

천국의 상급에 차이가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눅 19:17)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시고"

(눅 19:19)

 

또한 천국은 세상처럼 소멸하는 낮은 몸이 아니요

천사들과 같이 불멸의 영체(靈體)라는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부활 때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마 22:30)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 3:4)

 

이렇게 저는 저 분들처럼

영계를 직접 다녀오는 수고가 없이

날마다 성경 안에서 천국과 지옥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영원한 지옥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치듯 함을 받으리라"

(막 9:48-49)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 (계 8:5-6)

 

이처럼 지옥은 영혼 불멸의 장소이요,

그 중에서도 이단, 거짓 선지자들이

받는 형벌은 더욱 참혹합니다.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계 20:10)

 

이처럼 천국과 지옥도 현세와 같이

오감(五感)의 감각이 뚜렷한 곳이요,

그곳 역시 하나님의 공의와 통치가

이루어지는 세계입니다.

 

세상에서 성화된 '마음의 상태에 따라' 

천국의 부활에 모습도 모두 다를 것입니다.

 

하루 앞의 일도 알 수 없는 인생들에게

천국과 지옥이 그리 먼 곳이 아니며

이 땅은 바로 그 영원한 세계를 들어가는

첫 관문입니다.

 

늘 깨어서 예비하는 사람은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에도 

평안함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 말씀과 기도 안에서

늘 깨어 예비해야 합니다.

 

각자에게 맡겨진 사명 잘 감당하여

하늘의 상급과 영광의 부활로

그날에 주님앞에 나오기를 기원합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계 2:10)

 

 

출처 : 성서 기도원 원문보기   글쓴이 : 전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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