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 밤
          루디아/최송연 
 
별들이 빛을 잃고
달도 그 얼굴을
가리워야만 했었네 
 
독생하신 하나님
말씀이 육신을 입으신
그분의 마지막 밤
 
새들마저 모두 
캄캄한 어둠 속으로
숨어버린 밤
 
고귀하신 얼굴
피가 땀방울 되어
흘러내리며 아버지의
낯을 구하신 밤
 
아버지의 심장은
더 붉은 피로 얼룩져
가고 

 

차라리 
내가 대신 마신다면 
내 마음이 이토록 
아리지 않으리라
 
 
구속 주
그 분께서는
불쌍한 영혼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셨나
 
어찌하여
그 흉폭한 자들에게
존귀하신 몸을 내어
주셔서 그토록
갈기갈기 찣기셨나
 
그날 그 밤의 기도
피땀으로 지새운 눈물이 없었더라면
 
나 대신 
그 모진 십자가의 형벌을 
받지 않아도 되셨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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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속죄제사>

 

오랜 세월 드려오던 짐승제사는 예수님의 단 한 번의 제사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 단 한 번의 제사는 당시 세계최대, 최강의 로마제국이 통치하던 세계의 중심 예루살렘에서 백주에 벌어진 참혹한 십자가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제사는 순 엉터리로 드려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지었을 때는 소나 양을 사서, 가난한 백성인 경우는 비둘기라도 구해서, 제사장에게 가지고 와 속죄 제사를 드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제사장은 백성이 희생제물을 끌고 오면 먼저 제물을 검사합니다. 병이 들었거나 눈이 멀었거나 비루먹었거나 다리를 절거나 흠이 있는 짐승은 불합격입니다. 짐승이 검사에서 통과하면 제사장은 그 백성에게 죄를 자백하게 하고 짐승에게 안수하여 그 백성의 죄를 짐승에게 전가한 다음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립니다. 죄를 범한 백성대신 애꿎은 짐승이 죽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가룟유다에게 은 삼십을 주고 예수 희생양을 샀습니다.

가야바 대제사장 집으로 끌고 갔습니다.

가야바 대제사장은 예수가 합당한 제물인가 검사합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대답하자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너희가 이 참람한 말을 들었도다.” 하고는 안수를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데 이 보다 더 훌륭한 제물이 어디 있고 무슨 검사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그런데 안수를 아주 고약스럽게 합니다.

손을 머리에 얹고 자신들의 죄를 자백하는 대신 주먹과 손바닥으로 뺨을 치고 침을 뱉고 온갖 거짓고소와 욕설과 모욕을 퍼붓습니다. 참으로 못돼 먹은 안수입니다.

밤새도록 그렇게 예수님에게 악독하게 안수를 한 다음 빌라도에게로 끌고 옵니다.

 

이번에는 로마총독 빌라도가 온 인류를 대표해서 제사장 역할을 합니다.

온 인류를 속죄할 제물에 흠과 티가 있나 없나 검사합니다. 이것저것 물어봅니다.

유대인의 왕이냐 물어보고 네 나라가 어디 있느냐 물어보고 진리가 뭐냐고 물어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 사람은 죽일 죄가 없다.”고 예수 제물에 합격판정을 내립니다.

아무 흠도 점도 없고 죄도 없는 완벽한 제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바라바와 예수를 세워놓고 묻습니다. “누구를 놓아줄까?”

유대인들은 소리칩니다. “바라바를 놓아주시오.”

“그럼 예수는 어떻게 하랴?”

“십자가에 달아 죽이시오.”

제물이 될 염소 두 마리 중 하나는 아사셀 속죄염소로 광야로 보내고 하나는 희생제물로 잡는데 여기에서는 바라바가 아사셀 염소가 되고 예수님은 희생제물이 됩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줄 요량으로 옷을 벗기고 잔혹한 채찍질을 하게 하는데 그 채찍은 끝에 작은 금속 갈고리를 달아 단 한 번의 채찍질에도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이 잔혹한 채찍질은 제사장이 희생제물을 잡아 가죽을 벗기고 칼질을 해 각을 뜨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빌라도는 대야에 물을 담아오게 하여 손을 씻습니다.

성막과 성소에는 번제단이 있고 그 다음에 물을 담아놓은 물두멍이 있지요.

제사장이 거기에다 손을 씻는 것과 똑 같습니다.

빌라도가 멋모르고 하는 짓이 완전히 제사장 짓입니다.

 

 

그런 다음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은 끌고 가서 홍포를 입히고 가시면류관을 씌우고 갈대를 오른손에 쥐어주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조롱을 하면서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는 엉터리 대관식을 치러줍니다.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머리를 때리며 못 된 축하연까지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승리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 만물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하늘보좌 우편에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세우실 것인데 로마군병들이 멋도 모르고 대관식을 하고 축하연을 하는 셈입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에게 십자가를 지워 골고다 언덕 제단으로 끌고 갑니다.

이삭이 번제에 쓸 나뭇짐을 지고 모리아산을 오른 것처럼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그 언덕을 오릅니다.

아브라함은 나무를 쌓고 그 위에 이삭을 올렸는데 그들은 십자가를 세우고 예수님을 못으로 박아 매달았습니다.

불을 피우는 대신 뜨거운 태양 아래 놔두었습니다.

그렇게 속죄제사를 드립니다. 아주 못되고 악독한 제사입니다.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경건은커녕 조롱하고 조소하면서 구경하였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그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고 욕을 했습니다.

십자가 나무 위에서 예수님은 고통으로 불태워졌고 그 연기는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처절한 부르짖음으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숨을 거두자 로마군병은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제물은 미리 죽인 다음 태워야 하는데 태운 다음 죽인 것입니다.

그 참혹한 고통을 다 당하도록 말입니다.

 

 

참으로 못돼 먹고 참으로 악한 제사였습니다. 참으로 못돼 먹은 백성들, 참으로 악한 군사들이었습니다. 제사장도 엉터리요 아사셀 염소도 엉터리요 제사의 순서나 방법도 엉터리, 모조리 엉터리였습니다. 도대체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개판 제사였습니다. 참으로 악하고 참혹한 엉터리 속죄제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엉터리 제사를 받으시고 모든 죄인들,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제사는 순 엉터리였지만 그 제물이 완전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흠 없고 완전한 제물을 하나님께서는 받지 않을 수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앞에 엎드리십시오. 그 제사를 받으신 이상 누구든지 엎드려 그 속죄제사에 참여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용서해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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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방언 통변 은사

                  루디아/최송연

 

 

여호와를 찬양하라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라

모든 만물아 다 일어나라
손뼉을 치며 그분을 찬양하라

그는 구원자이시며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사랑이 아니냐

내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입었음을
찬양하라

하늘의 천군아 천사들아
모두 일어나
그분의 거룩함을 경배하라

그분은 다시 오실 왕
온 세상을 다스리실
임금이시라

이제 네 눈에서 눈물을 
제하리라 슬픔도 이별도
죽음도 모두 너를 괴롭게 할 수 없으리라 

찬양하라 내 영혼아
그분의 아름다움을
영원 영원히


*
저는 방언통변의 은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방언통변인지 저는 모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테힐라 강도사님의
이 방언찬양을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비오듯...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내 영혼에
떠오르는 대로 받아서
적어본 것입니다.

주님께서 영광받으시기를...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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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닮기를
         루디아/최송연
 
 
"예수님 닮기를, 예수님 보기를,
내 평생 소원 예수님 닮기를...
완전하신 나의 예수님."
아멘 아멘!

가녀린 빗줄기 속에
살포시 돋아난 푸른 새싹이 생명의 젖줄,
화사한 햇살을 바라고
소망하듯...

동구밖 바위에 걸터 앉아 장에 가신 엄마 돌아오길
눈이 빠져라 먼 곳을 바라보는
소녀의 그렁그렁 눈물맺힌 눈망울인 듯...

그리운 임을 기다리는 마음이 너무 절절하게
담겨진 가사

그렇죠.
사랑하면 닮고 싶고
사랑하면 보고 싶고
사랑하면 그리웁고

우리 예수님을 향한
테힐라 강도사님의
그 애절한 사랑노래

하늘향기 되어
예수님의 보좌 앞에
즉각 상달될 것같군요

저 또한 예수님을 닮고
싶고, 보고 싶고, 그리워
그리워 먼 하늘을 바라보게 만드는
영감으로 가득찬 곡

그리운 임이시여
언제나 뵈올 수 있을까요.

한 해 두 해
세월은 흘러가지만 주님 향한
우리 마음은 날로날로
더 뜨거워지고 있음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찬송시가 강도사님의 마음을 대변해 주고
성령님이 걸맞은 곡을 허락하셨네요.

it's so sweet.
달콤하기 그지없습니다.
할렐루야!
주님 영광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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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양식 아래

루디아/최송연

할렐루야!
오늘 강도사님의 입술을 통해 성령님께서 주신 말씀은
꿀송이처럼 달고 내 영혼에 비수처럼 깊이 박히고...

그래요.
나 자신부터 먼저 점검해야 하는데
늘 남의 부족함을 바라보고

알량한 지식으로
선생이 되어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다른 이를 가르치려고
하는 교만...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내가 의로운 자 되어 남의
부족함을 판단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정죄마저도 서슴치 않는
이 악한 생각은 어디로부터일까요?

망각증 때문일까요. 아니면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나의 자아 때문일까요.

내 이웃
내 형제. 자매들이 짓는 죄보다 더 흉악한
나의 모든 죄가 용서함 받았음을 잊어버리는 것

우리 주 예수님을 그 모진 형틀
십자가에 대못을 박은 자는 다른 이가 아닌
바로 나라는 것도...

오 주님,
당신의 십자가 그 참혹한 고통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
나의 감추어진 죄
영원한 형벌을 면치 못할
나의 수많은 죄 때문이었음을...

다시금 깨닫는 귀한
말씀을 살리는 방망이로
사용하여 주셔서

뼛속 깊이 파고 들고 관절을
찔러쪼개는 능력이 나타나게
하신 성령님의
은총을 감사드리고
회개합니다.

주님의 긍휼하심을
구하오니 다른 이가 아닌, 나,
이 교만한 죄인을 당신의 마음을 닮은
순결한 영혼으로 빚어 새롭게 새롭게 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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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무리들

         루디아/최송연

 
"그때 그 무리들이 예수님 못박았네 녹슨 세 개의 그 못으로
망치 소리 내 맘을 울리면서 들렸네 그 피로 내 죄 씼었네." 아멘아멘.


오 주님,
거룩하시고 존귀하신 성자 하나님,
어찌하여 벌레보다 못한 죄인의 몸을
입으실 결단을 하셨습니까?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을 입을만큼
선하지도 않고 처음 창조 때의
그 깨끗한 양심을 보존하지도 않은 자들,
추악한 죄인일 뿐인 것을요...

어찌하여 참으셨습니까?
벌거벗기운 그 수모를,
손과 발 깊숙이 파고드는 대못의 그 모진 고통을,
부드러운 이마를 마구 후벼파는 그 뾰족한 가시들을...

오 주님,
갈보리 언덕에 십자가가 세워지는
그 순간 하늘에는 열 두영이나
더 되는 막강한 천군과 천사들이
정렬하고 서서
"이제 그만 되었으니 저들을 쳐라!"
성자 하나님의 명령 한 마디만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치를 떨며 서서 눈물을 쏟아내고 있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당신의 귀한 몸을 죽여야 할만큼의 가치도,
존귀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그저 눈만 뜨면 물마시듯 죄와 짝하기를 즐기는
못된 죄인들일 뿐인 것을요.

당신이 지옥불에 던져 버린다고 하여도
한 마디도 항의 할 수조차 없는...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당신의 귀중한 그 보배피를 흘리심은
그 누구도 아닌 오직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그
피로 억만 내 죄를 씼으셨음을...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나를 위해 모두 쏟아 주셨음을...

주님께서 그 귀한 보배 피 흘리신 이유를
테힐라 강도사님이 절절한 영의 음성으로 전해주시니
미련하고 우둔한 우리의 영이 깨어나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그 치욕과
고통의 순간을 뼛속 깊이 느낄 수 있어
이 또한 은혜 중 은혜입니다.

예수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당신이 그 피로 사신 이몸 이제는
당신만을 온전히 사랑하고 당신을 위해
살리라 눈물로 고백하오니
내 주여 받아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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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날개 밑

    루디아/최송연

 

 

"주 날개 밑 내가 평안히 쉬네

밤 깊고 비바람 몰아쳐도

아버지께서 날 지켜주시니

거기서 편안히 쉬리로다." 아멘 아멘!


저 천성을 향해
달려가는 나의 여정
머나먼 이 순례의 길

지금까지
주께서 그 넓고 크신 사랑의 날개로 나를 
품어 주지 않으셨다면

나 지금보다
얼마나 더 많이 힘들었을까

독수리가 무서운 발톱으로

병아리를 낚아채 가려고
공중에서 빙빙돌 때면

암닭이
그 날개 속에 병아리를 품어 보호하듯이

주께서
나를 모든 악에서
건져 보호하여
주지 않으셨더라면

나 지금쯤 어디에
주저앉아 울고 
있을까

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 위에서 피와
물을 다 쏟으신 그
사랑이

넓디 넓은 날개 되어
항상 나를 지켜 보호해 주셨고

내가 힘들 때면
주의 피묻은 손으로
토닥토닥 다독여
새힘을 주셨으며

피곤하여 쓰러질 때면
일으키시사
그 넓은 사랑의 날개로
업고 와 주셨으니

앞으로도
내 인생 여정 끝나는
그날이 오기 전까지

내 가는 길이 비록
험하고 환난 풍파
쉬지 않고 불어대며

매서운 눈보라
휘몰아치는 혹한을 
만난다고 하여도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아요.

주께서 그 넓고 넓은
사랑의 날개로 항상
나를 품어 주시고
보호해 주실 것을
믿고 있으니

나는
영원한 그 나라에서
내 사랑 그분과 함께 영원토록 안식을
누릴 것도 굳게 믿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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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고쳐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나을 것입니다. 저를 살려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살아날 것입니다.
주님은 제가 찬양할 분이십니다. 새번역 예레미야 17장 14절 말씀."

이 말씀을 띄워놓고 여러분, 정말 주님께 내 자신을 다 내어놓고 오픈(open)해서 이 시간은 주님께 나아갑시다. 제가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주님, 주님 앞에서 내가, 내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고 의식하지 못하고 내 자신도 속고 있는 내 안에 있는 이 가라지, 내 안에 있는 이 옛사람, 이 자아의 쓴뿌리 이런 것들
내가 일상가운데서
평안하다 잔잔하다.

그냥 편안한 생활을 할 때는 이런 것들이 마치 종지에 빗물을 담아놓고 있으면 그 빚물이 깨끗한 것같은데 시간이 지나 한참 있으면 그 밑에 많은 오물이 가라앉지 않습니까? 우리 심령의
상태도 평안할 때는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극한 상황이 오고 사람과의 인과관계에서 감정을 건드리고 나를 예민하게 하고 나를 자극시키면 내 안에 있던 흙탕물이 일어나거든요.

제가 여러분에게 주님, 나를 고쳐주십시오. 하는 그 말씀은 여러분 안에 가라앉아 있는 평안할 때는 들어나지 않는, 가라앉아 있는, 내 안의 가라지들, 내 안에 있는 이 옛사람의 자아의 쓴뿌리들, 이런 것들을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을 깊이 만나며 주님의 얼굴을 구하면서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가운데 여러분의 영혼 속에, 심령 속에, 마음 속에 있는 그런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돌아보면서 이 부분, 주님, 내 안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내 안에 교만이 있습니다. 내 안에 시기와 질투가 있습니다. 내 안에 음란이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합니다.

주님, 나는 너무나 나태합니다. 나는 남의 흉을 잘 봅니다. 나는 남을 잘 판단하고 정죄를 잘합니다. 게으릅니다. 기도도 게으르고 모든 것이 제가 게으릅니다. 이것을 드려다 보란 것입니다. 할렐루야!



 말씀: 테힐라   정리: 루디아/최송연

 

날개 접은 종달새
      루디아/최송연
 
새파란 하늘에 
하얀 새털구름 
한 조각 유유히 
흐르는데
 
울창한 대나무 숲 
밑둥 습진 곳에
날개 접고 앉아
 
낯선 환경에
적응하려고 애쓰며 
바둥대는 작은 새
 
그대
이름하여 종달새
 
세상 시름 모두 잊고
밝고 명랑하여 하늘을
날면서 노래하던 새여라
 
어찌하여 대나무 숲 
밑둥 습하고 추운 곳에
혼자 앉아 울고 있는가
 
어서 날개를 펴야지 
창공을 맘껏 
날아올라야지
 
저토록 푸른
하늘이 그대를 향해
손짓하며
부르고 있지 않은가...
 
그대는 이 땅에 
속하지 않은 
저 하늘에 속한 영혼(魂)
지고지순한 한 마리 종달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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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율례와 계명
      루디아/최송연

주의 율례와 계명은

아침에 돋는 햇살처럼 찬란하며

빛 속에 드러난 보석같이 영롱하고
밤하늘의 별보다 더 반짝이나이다

주의 계명과 법도를 벗어나

사신 우상을 만들어 섬기던

열국과 열왕들의
그 오만함이여

주의 손이 그들을 징계하셨도다
지혜의 神이신 성령님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시고 기름 부으사

내 영혼 속에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이 결코
자리 잡지 못하게 하시고

주의 율례와 계명과 법도를 사랑하며
준행하는 은총 속에

나 항상 거하여
영원한 생명을 거두게 하옵소서


*열왕기상 하
를 읽을 때 주신 감동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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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대재앙을 준비하라>
         루디아/최송연

하늘에는
일곱 천사가 재앙의 나팔을 불기 위해 기립하고
주의 심판의 날을 기다리고 있네

첫째 천사의 나팔소리
울리며 땅을 진동할 때
피 섞인 우박과 불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네

땅 삼분지 일이 타서 사위고 수목과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사위네

둘째 천사의 나팔소리
울리는 때  태산처럼
큰 별이 하늘에서
바다로 떨어지니

바다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생물들
삼분의 일이 죽으며 바다 위를
항해하던 배들 삼분의 일이 깨어지네

세째 천사의 나팔 소리에
횃불같이 타는 큰 별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과 여러 물샘을 덮치니

그별 이름하여 쓴 쑥
그 쓰디쓴 물로
인하여 인간들 삼분의 일이 죽어나가네

네째 천사의 나팔소리
진동하매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 일월성신 삼분의
일이 빛을 잃고

빛을 잃은 해와 별들
때문에 지구의
낮과 밤 삼분의 일이 비췸이 없어 캄캄한
암흑 천지로 변하네

다섯 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손에 무저갱의 열쇠를 쥔 별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졌네

그 별이 손에 쥔 열쇠로 무저갱을 여니
그곳에서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와
지구를 덮치니
남은 해와 공기마저
캄캄해 지고

무저갱에서 올라온 황충들은 각종 수목을
해할 권세는 없으나
오직 인간들을 해할 큰 권세를 받았도다

전갈이 괴롭게 하는 그 괴로움으로 다섯 달 동안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지 않은 자들을 무섭게 공격하니
그날에 사람들이 죽기를 바라나 죽음마저 그들을 피하리라

여섯 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당했던 4천사가
풀려나고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일 권세를 받았음이여

이 재앙은 그 천사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라

이 마지막 재앙에
사람 삼분 지 일이 한날한시에 죽고

남은 자들은 여전히 회개치 않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는도다

일곱 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하나님의 비밀이
그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아멘

마라나 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8장, 9장 중

*주님
우리가 이 무서운
환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7곱 천사들의 재앙을
시 형태로 기록하게 된 동기

말세가 가까워 올수록 각종 이단의 괴수들은
온갖 미혹의 영을 풀어 영혼들을 사냥질하는 이때...

일반 기성교회 목사님들이 요한계시록 강해를 두려워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유는
너무도 어려운 내용이어서 자칫 잘못 해석하다가는
이단으로 내몰리기 쉽기에 그런 것같습니다.

이런 때를 틈타 이단들은 사사로이 풀어 흥미를 가하고

어리석은 영혼들은 그것이 옳은가
하여 그곳으로 몰려들 갑니다.

이런 현상을 안타깝게 여기던 차 그렇다면 내가
먼저 요한계시록을 읽어보자. 그런데 나 또한 어렵다고 느끼기는 매한가지. ..

할 수 없이 이해를 하지 못해도 먼저 읽어나 보자.
성경 신구약 66권 중 이루어지지 않은 예언은 단 한 곳 요한계시록 아니던가

하여 나는 요한계시록을 100독을 목표로
무조건 읽어보리라 결심하고 부지런히 읽기시작...

오랜 세월 끝에
이제 곧 100독을 눈 앞에 두고 있는데...

갑자기 "네가 할 수 있는 대로 쉬운 언어로
알기 쉽게 풀어서 적어 더 많은 사람이 읽도록 전하라.
때가 임박하다."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감동을 주시는 대로
일곱 천사들의 나팔소리를 시편 형식으로 풀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성령님이 감동을 주시는 때만 풀어서 적을 것이며
성령님이 말씀 주시기 전에는 잠잠할 것입니다.

나 루디아/최송연은 요한계시록을 강해하는
사람이 아님을 먼저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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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맡긴 모든 역사 힘을 다해 마친 후

밝고 밝은 그 아침을 당할 때

나의 주를 나의 주를 그분 곁에 서서 뵈오며

나의 주를 나의 주를 손에 못자국을 보아 알겠네."

아멘 할렐루야!


새까맣고 칙칙한
하늘을 반짝이며
깨우는 별빛처럼

어둡고 캄캄한
내 영혼을 깨워
밝은 빛으로 이끄는
강력한 호소력

영롱한 새벽 이슬이
메마른 풀숲을 적셔
소생시켜 주듯

바싹 메마른
내 영혼을 적셔 소생시키시는
성령 임재의 바람

테힐라 강도사님이
주께 바치는
영감 넘치는 찬양들...

듣는 내내 폭포수처럼 콸콸 쏟아져 내리는

은혜로 마음은 뜨겁고
두 눈에서는 감동으로
눈물이 주르륵

오 주님,
살아 있는 날동안
주가 맡긴 모든 역사 힘을 다해

마칠 수 있도록 충성된 마음을
내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나는
무능하고 너무 부족하여 주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그 어느 것도 제대로

해낼 수가 없음을 주께서 아십니다

내게 허락하신 생명도
벌써 황혼을 맞아 캄캄한
밤을 향해 질주하고 있네요

나를 위해 십자가의
그 참혹한 고통을 당하셨고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혔던
내 사랑, 나의 주님

그 사랑의 주님
그 거룩한 성상을 나 또한 만나 뵙고 싶고

나 때문에
못자국 난 내 주님의 손을

한 번만이라도 잡아보고 싶은
마음 간절한데...
주님 뵐 면목이 없는 나는 어찌하나요

잘 한 것이 너무 없는
무익한 여종을 불쌍히 여겨주십사 이 시간
눈물로 고백합니다

영화롭게 시온성에
들어가 흰옷을 입고
천사들과 함께 황금 길을
걸으며 금거문고를
탈 수 있는 그날까지

내게 주어진 생명
남겨진 이 시간들
주께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좇아

오직
주님을 위해
주님을 향해
불꽃처럼 활활 태우고

온전히 불살라 드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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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주 예수
힘주사 큰 권능 얻겠네"
아멘 아멘 할렐루야!


하늘의 향기를
그대 맡아보았는가

심심산골 옹달샘의
맑은 물 그 시원함을
그대 맛보아 아는가

솔솔 불어오는
잣나무 숲의 신선한 바람
그대 느껴 보았는가

상큼한 이슬방울
영롱한 그 빛 그대
바라본 적 있는가

초가지붕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낙수 소리 그대
들어보았는가

꿈속에서라도
천사들의
고운 노래소리를
그대 엿들은 적 있는가

친구여
여기 그 모든
신비의 소리들이
모여 있다네

오 주님
깨끗하고 박력 넘치는
영혼 야성의 보이스
부드럽고 매혹적이며
세련된 영의 보이스

신비한 음색으로
조화를 이룬
환상의 듀엣
온 맘과 정성 다해

십자가의 보혈을
송축합니다.
당신의 크나큰
사랑을 노래합니다

죄악에 찌들어
영 죽을 영혼을
살리신 그 은총을
찬송합니다

기쁘게 받으시고
잠시나마 행복하소서
내 사랑 나의 예수님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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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반가운 한통의 카톡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먼저 나누고 시작하겠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체들을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주사랑 권사님의 남편 이창길 집사님 병원에서 페렴이 악화되어 식사를 코로 관을 꽂아서 식사를 했지 않습니까? 병원에서는 의사가 계속 입원할 것을 권하고 코로 관을 통해서 식사를 해야지 관을 빼버리고 입으로 식사를 하게되면 페에 무리가  가서 페렴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해서 그런 것들이 많이 부담이 되었는데 주사랑 권사님이 정말 믿음으로   주님께 맡기고 집으로 퇴원을 하고 코에 식사하는 관을 빼고 입으로 식사를 했습니다.

기도하는 우리 군사님들이 이창길 집사님을 위해 기도했는데 그렇게 집에서 지내시는 동안에 며칠, 약 일주일 정도 지난 것같은데 그 과정이 우리도 좀 궁금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오늘 오후에 권사님을 통해서 연락을 제가 카톡으로 받았는데 여러분과 함께 나누겠습니다.

"강도사님, 안녕하세요. 할렐루야!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오늘 병원에 가서 폐사진을 찍었는데 거의 정상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폐가 안 좋아서 계속 어려운 가운데 있었는데 오늘 병원에서 정상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의사 말이 재발 확률이 크다고 하니까 잘 하라는 권면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치료해 주신 것을 저는 믿습니다. 솔직히 코에 관을 빼고 나오면서 불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기도하고 베드로전서 2장 24절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입었다." 말씀을 우리가 받을 때 저의 마음에 평안을 받았고 마음이 편안해짐을 경험했습니다. 그런 기도 후에 이렇게 완치가 되어서 너무나 기쁩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저를 위한 말씀은 읽기에 좀 그렇고
테힐라 님과 루디아 님 그리고 중보기도 해주신 모든 기도군사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직 힘이 없어서 잘 걷지를 못합니다. 치매 약 때문에 파킨슨도 왔고 몸이 많이 경직되어 뻣뻣합니다.  몸이 풀리고 근육이 부드러워지고 잘 걸을 수 있도록 기도 계속 기도부탁드립니다. 하는 요지의 간증입니다. 기쁜 소식 감사합니다.

여러분도 계속 기도하시겠지만, 우리가 "주님, 이 병을 고쳐주세요." 하는 기도의 패턴을 바꾸라고 그랬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는 말씀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있으라 하면 있고 없으라 하면 없는 겁니다. 빛이 있으라 하니까 있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채찍에 맞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모든 병에서 깨끗이 나음을 입었다." 할렐루야! 우리는 이 약속의 말씀을 너무나 단순하게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순전하게 믿어야 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믿읍시다. 할렐루야!

저도 어릴 때 너무나 큰 병으로 인해서 거의 죽음직전까지 갔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의 능력으로 깨끗이 고침받고 저는 그 병 이후로 재발되는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건강하게 그렇게 살아오고 있는데, 여러분들, 주님은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그 질고를 담당하시고 질고를 깨끗이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채찍을 맞으셨던 것입니다. 제가 그 채찍이 보통 채찍이 아니라고 얼마나 많이 설명했습니까? 우리의 영혼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우리 모든 억만 죄악을 다 홀로 담당하시고 한 번에, 단번에 화목제물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예,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면 구원을 받습니다.

자, 육신의 구원, 질병의 구원은 어떻게 받습니까? 이것도 주님께서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2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그 채찍을 맞은 것은 십자가 골고다 언덕길을 가기 위한 그 과정이 아니라, 그 과정 속의 하나의 어떤 채찍으로 맞는 하나의 형벌이나 고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신 것은 저와 여러분의 모든 더러운 질병을 깨끗이 탕감하고 다 치유하시기 위하여 그 치유의 댓가를 예수님께서, 그 살벌한 채찍을 맞으심으로 다 댓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여러분,마지막 이 믿음,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셨음으로 내 모든 병, 어떤 병이든지, 불치병이나 암덩어리든, 희귀병이든 모든 병을 깨끗이 나음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단순하게 선포해야 될 줄 믿습니다. 어린아이 같은 믿음으로 너무나 순전하게 받아드려야 될 줄 믿습니다. 

예, 내 병, 내 이 아픈 고질병, 희귀병 나를 괴롭히는 지긋지긋한 이 병 이것은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셨음으로 나는 깨끗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너무나 단순한 이 진리의 말씀을, 예수님의 빽을 믿고 그냥 선포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내 병을 다 치료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이 병에서 놓여 났고 해방을 얻었다. 완전히 치유되었다." 이것을 여러분, 정말 순전한 믿음, 단순한 믿음으로 우리는 선포해야 될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봅시다,  여러분. 끝까지 돌파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나의 왕으로, 나의 하나님으로, 나의 산성으로, 피난처로, 나의 의사, 치료자, 나를 치료하시는 만병의 의사로 우리는 예수님을 모십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치유를 선포하셨고 예수님이 치유를 담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셨다고 하셨으니 우리는 그것으로 다 치유를 받았다고 확실하게 믿으면 됩니다. 할렐루야! 그렇게 믿음으로 선포합시다. 지금 우리가 그렇게 믿음으로 선포해도, 테힐라 님, 내 아픈 몸의 증상은 그대로 있지 않습니까? 내 환부의 이 상처와 이 아픈 증세는 그대로 있는데 어떻게 믿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믿음으로 그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증세는 아직 남아 있다 할지라도 계속 믿음으로 우리가 고백하고 앞으로 달려나가면, 치유를 선포하면서 나가면 반드시 이 병은 깨끗이 사라질 것이고 치유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의 선포를 기도시간에만 할 것이 아니라 기도시간 끝나고 집에 돌아가서도 늘 이 치유의 믿음의 선포를 마음으로 또 입술로 그렇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것이 우리가 그냥 치유의 습관화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두가 치유 사역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 주님,  우리에게 정말 단순한, 어린아이 같은 믿음을 주시옵소서. 아멘.

간증: 테힐라 글: 루디아/최송연

<꽃처름 아름다운 삶이 아니어도>

                   루디아/최송연

 

"주여 꽃처럼 아름다운 삶이 아니어도

나는 당신이 좋을 수 밖에 없어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아멘 아멘 ~

어쩌면 이토록
내 마음을 잘 나타내는 시(詩) 아름다운 찬양이
또 있을까요.

심심산골 깊고깊은
숲속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실바람이련가...

아무도 관심 없는
외로운 들판에
홀로 피어난 한송이 
청초한 들꽃이련가

은은하고 부드러운 향기로

내 영혼을 울리는 소박한 음색의 보이스

또 다른 은혜로 나의 주 당신의 사랑을

노래하는 아침(저녁),

그곳에 주님의 사랑이 흐르고

형제 자매의 사랑이 어우러져

그토록 그리던 저 하늘나라를,
작은 천국을 맛볼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김영수 님의 천국 여행 간증을 들을 때도
신학적 논쟁을 떠나서

어린아이처럼 순수하신 영혼을

느낄 수 있었기에 많이도 부러웠답니다.

얼마나 순수하셨기에 주님과 함께 사자의
등을 타고 푸른 들판을 달릴 수가 있으셨을까...

너희가 어린아이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은 볼 수 없다

단호하게 말씀 하신 주님...

나는 과연
어린아이처럼 순결하고 순수할까요

그렇다고 답하기엔
나의 세마포에 얼룩이
너무 많아요
세상의 때가 너무
많이 묻었나 봐요

나도
주님을 만나 뵙고 싶고 천국도 가고싶은데
 
천국 백성 되기엔
턱없이 모자란 나의
눈을, 마음을 회개하오니
내 주여, 나를 도와주소서

주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으시고 정결하게 해주세요

나 지금껏 꽃처럼 아름다운 삶이 아니어도 내 주 예수님을 사랑할 수 밖에 없사오니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영혼의 눈을, 마음을 내게도 허락하여 주셔서

내 사랑
나의 신랑되신 예수님
당신의 그 귀한 모습을 꼭 만나뵐 수 있도록
나를 도와 주소서

소박함, 순수함, 해맑은
영의 보이스로 김영수 님이

주님께 올려드린 찬양은

내 자신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주님 앞에서 나를
새롭게 발견한 귀하고

복된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실하신 주>

      루디아 /최송연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아멘 아멘!

 
바람도 바다도 꽃들도
모두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하신 모습 그대로
자연에 순응하건만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변질하여
진리와 공의 대신
부조리와 불법이 만연하고
거짓이 진실을 가리고
 
당장 코앞만 바라보고 이득을 떠라
세상 앞이 보이지 않을만큼
캄캄한 세상이 되었네요
 
주의 피와 말씀으로
거듭난 주의 자녀들이
살아나가기에 이 세상은
너무 캄캄하고 거칩니다.
 
이런 때에 이리저리 상처받고
울다가 쓰러지지 말아야 합니다.
힘이 들 때면 더욱 눈을 들어
예수님을 버라보아야 삽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를
지키시는 분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강하신 분이심을 믿습니다.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신다
약속하신 신실한 주님,
그 약속 대로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시며
지켜 주시고 이 생명 다 하는 그
날까지 지켜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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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복지>
        루디아/최송연
 
 
오 주님...
참으로 아름답고 귀한 찬송
소망을 안겨 주는 찬송 감사합니다

무거운 죄짐을 걸머지고
끝없는 광야를 해매고 다니는
인생을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찾아주시고
감겼던 영안을 열어 
주셔서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며
고통당하시는 예수님,

그 모진 고통 속에서 나를 바라보시는
그분의 애잔한 눈빛은 내게 생명의
빛이었습니다

이제
그 찬란하고 아름답고 영원한 나라
그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려고
 
나의 무거운 죄짐을 삽자가 아래
내려놓고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떠라나선 이길 생명의 길

그러나 내 앞에 놓인 이길은
평탄하고 넓은 대로가 아니었고
펼쳐진 푸른 초원도 아니었소

좁고 협착한 길이요
험하고 험한 광야의
길이었습니다

불뱀도 많고 전갈은 또
어찌 그리도 많은지요
잠시만 한눈 팔면 덤벼들어
이리 깨물고 저리 덤비고 ..

천성에 가는 길이 심히 고달프고
힘들지만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께서 나를 지키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시니
저 가나안 복지에 나는 무사히
도착할 것입니다

그곳에는 보좌로부터 
생명 시냇물이 흘러 내리고
1년 12달 달이면 달마다
색다른 생명과실이 열리는 곳

그 요단강을 내가 건넌 후에는
저 생명 시냇가에 들어가 살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되
목숨을 버리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
그분과 함께 살 것입니다 길이길이...

테힐라 강도사님이 영혼으로 주께 바치는 
은혜의 찬송은 그 곡이
어떤 곡이던지

지친 영혼을
소생시키시며 주님께로
향하는 마음이 더욱 뜨거워지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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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의 고백>
           루디아/최송연

오 주님...
한 순진무구한 소녀가
당신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 수많은 시간들...

오만과 자만과
욕망으로 얼룩져
가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자기가 똑똑하고
잘난 사람
자신이 원하면
무엇이건 다 할 수 있다고

착각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소녀 앞에 펼쳐진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도
녹록치도 않았죠

그 꿈많은 소녀에게
무지개빛으로 찬란해
보였던 세상

실상은 거짓과
위선으로 난무하고...

그럼에도 그 소녀
하나님은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는 분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에

기도하지 않고
무엇이건 혼자
힘으로 헤쳐 나가려고
무지 애를 썼죠 

소녀가 자란 교회는
성경 말씀은 잘 가르쳐 주셨지만

기도하면 응답받는다는 것을
전혀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하여
소녀는
어릴적부터
예수님을 믿기는
했지만 예수님
그 분은 저 먼 하늘
어딘가에 계신 분

위대하신 하나님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

소녀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구세주

죽음의 골짜기를
건너는 날
영원한 천국에
데리고 가 주실 분

그렇게
위대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죽어서나 만나
뵐 수 있는 거룩한
신이셨을 뿐이었죠

그렇게
지쳐 갈 때쯤
성령님께서
꽁꽁 닫아건 소녀의
마음 문을 여시고
환한 빛
밝은 사랑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딸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 크신 사랑을 다 감당할 수 없어서 통곡하며 소녀는
그분 앞에 꼬꾸라졌습니다

이제 그 소녀
반백의 머리를 숙이고
주 앞에 눈물로 고백합니다

주 없이 살 수 없고
힘도 없고 부족하며 지혜도 없다고...

예수님은 나의 생명이시며
유일한 나의 소망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가 되신다고...

이런 나의 고백을
주께서 들으시고
기뻐받으시는 듯
날마다 그 사랑의
가슴에 품어 주시며

내가 부르기도 전에
"내가 여기 있다
사랑하는 나의 딸아"
토닥여 주시는
나의 주님...

사랑해요, 예수님.
이 생명 다 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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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콩글리쉬로 말하다. 1.>

여러분,
예수님도 천사도 나같은 한국계 미국인, 특히 이민 1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콩글리쉬를 사용하여 소통을 시도하신다는 것을 아시나요?

저는 이 신기한 체험을 한 적이 몇 번 있고
그 간증을 나누어도 좋다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콩글리쉬?" 그게 무슨 말씀?
궁금하시고 그
뜻을 모르시는 분의 이해를 먼저 돕고 넘어가야 순서겠죠?

이해를 돕기 위해 잠시 설명하자면
한인계 미국인들은 영어를 필수로 사용해야만 하는 미국에서 살기는 하지만 모국어가 훨씬 더 편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떤 용어는 모국어보다 영어가 더 이해도가 높고 또 입에서 쉽게 튀어나오는 단어도 없지않아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주차장' 이라는 말은 자동차를 갖다 대는 장소의 고유명사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그 단어를 'parking lot (파킹 랏)'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미국에 사는 한인1세들은 백이면 백 모두 영어와 한국어를 섞은 특수단어
"parking장( 파킹장)" 이라고 합니다.

Parking lot   도 아니고 주차장도 아닌 두 단어를 섞어 parking 장이죠. 이럴 때 이 섞어서 사용하는 용어를 우리는 "콩글리쉬" 라고 하죠. 그러니까 영어와 한국어 섞어서 사용하는 말이라고 이해하시면 정확합니다.
물론 미국인과 대화할 때는 정확히
Parking lot 이라고 말하죠.

이 말은 "브로큰 잉글리쉬"와는 엄연히 다릅니다. 콩글리쉬는 한국계 이민자만 사용하는 특수 용어라고 한다면 "Broken English" 는 한국계 뿐 아니라 일본계, 중국계  아니 전 세계, 심지어 같은 미국 인이라 할지라도 영어를 하기는 하되 문법도 맞지않게 말하거나 쓰는 것, 즉 쉬운말로 '부러진 영어, 엉터리 영어"를 지칭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먼저 이런 배경을 이해하시면 영의 세계, 예수님과 천사들도 우리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고 배려하심이 큰지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오늘은 간증에 들어가기 전 먼저 이해를 돕는 말을 서론으로 하고
간증은 다음 번에 기회되면 올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몇 분이 예수님께서 콩글리쉬로 제게 하신 간증을 듣고 싶다고 하셔서 우선 오늘은 천사편1 을 올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루디아/최송연.

<천사가 콩글리쉬로 말하다.>

러시아에서 여러가지 병을 얻었고 나의 건강상태가  심각하다는 의사 진단에 의해 우리는
하와이에서 요양하며 치료를 받는 동안 남편은 작은 성경공부반을 시작했습니다.
그 성경공부반을 깃점으로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러시아 떠나기 전 섬기던 교회는 부목사님께 이미 일임을 하고 우리는 러시아로 떠났기에 내가 몸이 극도로 쇠약해진 탓에
하와이에 돌아가기는 했으나 섬길 교회가 마땅히 없었다고 해야 옳겠지요.

아뭏든, 그 성경공부반이 급성장을 하였고 3년 정도 되니까 나의 몸도 점차 회복이 되었고 이제 교회도 경제적으로 자립을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1년에 한 번 1주간의 휴가를 받아 미국 본토에서 사업하는 여동생네에 가서 쉬었다 오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공부반 개척때부터 함께 하시던 분, 남편은 중국계 미국인으로
수쟌 챙(가명) 여자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이 분 남편은 미국에서 태어나 대학을 나온 엘리트로 미정부 청사에서 일을 하시는 분인데 너무나 진실하고 착한 분이지만 교회를 나가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럼에도 아내가 밤운전이 위험하다고 저녁예배 때나 수요성경공부반에나  교회에 언제나 데려다 주고 데리려 오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제 남편이 러시아까지 가서 헌신하고 왔다면서 무척이나 아끼고 존경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 번씩 집에 불러서 식사를 하면서 교제를 나누었고 그럴 때면 남편이 짧은 영어로 복음을 전하면 아주 잘 받아드리던 착한분이셨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시작한지 7년 쯤 되었을 때 였던 것같습니다.

어느날 60도 채 되지 않은   Mr. Chang이 갑자기 몸이 아파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결과는 갑상선암이라고 했습니다. 대개 갑상선 암은 가장 착한 암으로 재발이 잘 안 되는 것으로 의학계에서 말하니까 우리도 안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의 경우는 특이하게 암이 급속도로 다른 장기에 전이되었고 더 이상 의사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을지경까지 갔습니다.

여백 관계로 다음에  계속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루디아/최송연 

 

<천사가 콩글리쉬로 말하다. 3. >

그렇게 온갖 노력을 다해 봤지만 차도가 없고 점점 더 나빠져 갔고 이제는 가망이 없다고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겼습니다.

물론 남편과 나는 틈나는 대로 병동에 찾아가 함께 기도하며
구원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고 최선을 다했지요. 어느날 드디어 그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Mr. Chang 은 당신 아내에게 늘 입버릇처럼 "내가 죽으면 장례예배는 반드시 Pastor Choi가 집례를 하도록 해다오. 나는 다른 사람은 못믿는다." 하고 유언의 말을 했다는 겁니다. 그것도 몇 번씩이나...
그 아내가 그 사실을 우리에게 몇 번에 걸쳐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1년에 한 번뿐인 휴가를 나가기 위해 미리 비행기표를 사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9월초였고 하와이가 1년 12달 더우니까 시원한 가을 바람, 가을 향기도 느낄겸해서 9월 중순 쯤에 나가기로 하고 싼비행기표를 미리 구입해 두고 예약도 마쳤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이란 것이 아무리 아픈 분이라고는 하여도 그가 세상을 떠나는 날짜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휴가를 나갔다 온 후에 떠나주시면 좋지만 만약 우리가 휴가중에 떠나신다면?

정말 난감해집니다. 가족이 우리만 의지하고 바라보다가 갑자기 다른 목사님을 찾으려면 어려울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영어권이니까 미국 목사님들 중에서 쉬는 분을 찾을 수는 있겠지요.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에 여행을 나갔으니
나가고 없는 사이에 돌아가신다고
하여도 우리를 원망하지는 못하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담임 목사의 도리가 아니란 생각에 우리 부부는
갈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말하고 비행기 예약을 취소해 줄 수 있냐고 했더니 마침 비행기가 학생들 개학시즌이어서 성수기인데다 갑자기 여행을 취소하면 한푼도 환불해 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미리 싸게 사둔 티켓이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와이가 섬이어서 미본토에 나가는 비행기 값은 엄청 비쌉니다. 우리는 갈등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떠날 기약이 없는 생명을 두고 신의를 지키려고 수천달러(한화 수백만 원)를 포기하느냐 아니면 예약대로 떠나느냐.

하여 결정을 못하기에 우리는 주님께 묻기로
했고 나는 하루 왼종일 기도로 매달렸습니다. "주님, 여행을 취소할까요? Mr. Chang님을 천국 데려가실 계획을 알아야 됩니다."

에고~ 사람의 죽는 날을 어느 신이 알 수 있으며 또 그 죽을 날이 언제인지 알려달라고 떼를 쓸 수 있는 신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분이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고서야...

암튼, 그날이 금요일, 비행기표를 해약하려면 적어도 금요일 오후까지는 결정이 나야만 하는 것은 그 다음 월요일이 무슨 공휴일이어서 업무 중단하니 여행사와 통화조차 불가능하고 그러다 보면 물어볼 필요도 없이 환불은 커녕 반도 돌려받지 못하기 때문에 꼭 알아야만 했기 때문에 저는 필사적이어죠.

사람이 세상을 떠나실지 말지...( 살다살다 별난 기도도 다 해보네요.ㅋ)

금요일 오후가 다 지나도록 아무런 응답을 주시지 않고 할 수 없이 비행기 표는 다 날라가더라도 화요일에나 가서야 비행기 예약을 취소하던지 하는 수 밖에는...

여백 관계로 다음에 계속됩니다.
죄송합니다.  다음호로 끝납니다
조금만 더 인내로 기다려 주세요.

감사합니다.
루디아/최송연

<천사가 콩글리쉬로 말하다. 마지막 회>

금요일 밤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한 밤중에 눈이 떠져서 화장실에 갔다와 침대에는 올라가지 않고 그대로 침대 아래 무릎을 꿇고 다시 "주님, 어찌하면 좋습니까? 여행을 가도 될까요? 주님...." 기도를 막 시작하는데 갑자기 "따르릉, 따르릉." 하고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이 밤중에 누구지? 하면서 수화기를 얼른 들어 보니까 수화기 너머에서 수잔 챙 집사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여보세요." " 네, 저 수잔 챙이에요. 여기 "피너랄 써비스(Funeral Service, 장례식장을 우리 콩글리쉬들은 이 단어 역시 종종 영어로 말함) 인데요. 안 가는 게 좋을 거예요." "아, 그래요? 네 집사님." 내가 대답하자 곧 전화가 탁! 끊어졌습니다.

아니, 지금 몇 시지? 시계를 보니까 새벽 2시 30분이었습니다. "이 늦은 시각에 수잔 집사님이 전화를? 그런데 남편이 위독하다는 것도 아니고 이 밤중에 장례식장이라니?
도데체 이게 무슨 소리지?

"엥? 그렇다면?
그제야 정신이 화들짝 들었습니다.
"와! 천사다! 천사가 수잔 챙의 음성으로 기도 응답을 정확히 알려주었네..."

너무 놀라서 잠자는 남편을 흔들어 깨워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남편도 놀란 눈치로 "그래, 그런 것같소. 화요일날 비행기 캔슬합시다. 돈은 생각하지 말고."

몇 며칠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하니까 천사가 수잔 챙 집사님의 음성으로 정확히 알려준 것입니다.  천사는 "여행가지 마라 그가 죽을 것이다 장례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장황게 말하지 않고 이곳 한인들이 자주 쓰는 용어 "여기 funeral service다. 안 가는 게 좋을 거다."

정확하고 간단하고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함축된 말.. ."수잔 챙, Funeral service, 안 가는 게 좋을 거다." 그 짧은 문장 안에 모두 함축되어 있는 것이 너무 정확해서 놀라웠습니다. 하여 마음 편안하게 먹고 잘 쉬고 월요일 지난 다음 화요일에 여행사 에이전트에게 전화를 걸었지요.

형편상 비행기 예약된 날짜에 여행을 못가겠는데
언제 갈 수 있을 지 우리도 모르니까 무한정 오픈으로 연기해 주십사 했습니다. 에이전트가 막 짜증섞인 목소리로 이제 예약일이 며칠 남지 않았은데 그럴 수 없다 하고 딱 잘랐습니다.

하기에 "아, 네. 그럼 비행기 캔슬해 주세요. 돈은 뜻대로 처리하시고요." 저는 최대한 부드러운 어투로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사장님께 보고하고 다시 연락주겠다고 하더니 얼마 있지 않아서 곧 다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뭐라고 왔을까요? "원래는 안 되는 것인데 어제가 공휴일이어서 사모님이 전화하실 수 없었음을 감안해서 오픈 티켓으로 연기해드리라고 사장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결과는? 천사가 시키는 대로 휴가를 안 가고 있었더니 며칠 지나지 않아 곧 연락이 왔습니다. 이번에는 낮시간에 진짜 수잔 챙 집사님이 호스피스에 있는 남편에게 심방을 같이 가서 기도해 줄 수 있겠느냐? 하는 전화였습니다. 그래서 셋이 달려갔더니  Mr. Chang이 핼쓱하지만 편안한 얼굴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함께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갑자기 Mr. Chang이 큰 소리로
" Sue, I gotta go." 수잔의 애칭이 Sue 였고 직역하면 "수, 나는 가야만 해." 하시는 겁니다. 와우~그렇게 그분은 천국에 입성하셨고...

우리는 천사의 콩글리쉬 덕분에 장례식 잘 끝내었습니다. 물론, 포기했던 비행기 값은 한 푼도 손해 보지 않았지요. 10월의 어느날 사랑하는 여동생네 집에 무사히 갈 수 있었고 휴가 날짜가 약간 늦어진 덕분에 9월이면 보지 못했을 단풍이 한창 산천을 곱게 물들이기 시작하는 진짜 가을의 향기를 즐기면서 생애 최고 멋진 휴가를 잘 다녀 왔답니다. 할렐루야.  Praise the Lord!

긴 이야기 끝까지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루디아/최송연.

참조. I gotta go 는  proper 영어가 아니고 가족끼리 편하게 사용하는
I have to go의 표현입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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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하고 강하신 주님"
               루디아/최송연
 
 
 
 
"위대하고 강하신 주님
우리 주 하나님 깃발을 높이 들고
흔들며 왕께 찬양해~" 할렐루야!

그대 보이는가
저 웅장하고 화려한
왕의 행렬이...

하늘 문이 열리고
새하얀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은
아름다운 신부들이 쏟아져 나온다

모두 손에손에 승리의 깃발을 들고 흔들며
호산나! 구원이 우리 주 예수님께 있도다!
외치는 저 웅장한 함성소리...

테힐라 강도사님이 영으로 불러
주께 올려드리는 찬송소리에
졸며 잠자던 우리
영혼이 화들짝 깨어 일어나네

하늘의 강한 힘,
폭포수 처럼 쏟아져 내리는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아
모두 하나같이 어깨를 들썩이며 춤추네

그래요
그날이 곧 올 것입니다
우리를 구속하신 왕을 향해 손뼉치며
환호하며 감사와 경배드릴 그 영광의 날이...

오늘
여기 모인 그대들
그리고 나 주의 피로
씻어 깨끗하고
아름답고 순결하게 된 거룩한 신부들이여

죄인 되어 더럽고 추하며 냄새나던
우리를 건져 내어
왕의 신부로 맞이하기 위하여
흘리신 우리 주 예수님,
신랑되신 그분의 사랑이,
수고가 얼마인지 벌써 잊었는가...

흉악한 로마 군병들의 손에
들린 날카로운 채찍이
휘익!휘익!
바람을 가르고 그분의 살점을 찢으며
깊숙이 깊숙이 파고드네

귀하디 귀하신 분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성자 하나님의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저 붉은 선혈...

두 손과 두 발에 사정없이
박혀 들어가는 대못들...

머리에는 가시관
그 뾰족하고 사나운 가시가
연하디 연한 살점을 찔러대니 얼마나
쓰렸고 얼마나 아프셨을까

이제
그대와 내가 살아난
것이 그분의 고통과 맞바꾼 것임을...
한량없이 넓고 큰 그분의 사랑이요,
은혜임을 깨닫는다면
그대와 나 어찌 이대로 앉아서
침묵만 할 수 있을까

군사들이여,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나팔을 불어라!
왕께서 곧 다시 오시리

위대하고 강하신 주님, 그분은
죽었다 다시 살아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곧 창조주 하나님이시라

깃발을 높이 들어 흔들어라!
왕중의 왕께 경배하라!
곧 다시 오실 왕의
길을 예비하라!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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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여 이 손을
꼭잡고 가소서
        루디아/최송연

오 주님
들리시나요

이 외침
이 고통
이 아픔

나는 너무 피곤하고
약하고 지쳐
쓰러질 것 같아요

폭풍우 흑암속
같은 인생
고난이 겹칠 때
주님여,
날 혼자 두고
어디 계시나이까

내가 앞이
보이지 않아
한 발짝도
더는 갈 수 없노라  
떼쓰며 울고
있을 때

사랑하는 딸아
내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너는 일어나라
눈물을 닦고
나를 바라보려무나
부드러운 음성이
나를 부르네

눈을 들고 바라보니   
거기...
십자가가 서 있네
가시관을 쓰신
주님의 얼굴
피가 눈물 되어 흘러내리네

나의 이 작은
고통을 없애 달라  
울부짖던 나
눈을 뜨고 바라보니

그제야
그분의 고통이
그분의 사랑이
내 고통보다
내 아픔보다
더 크게 다가오네

주께서
피 묻은 손으로
내 손 잡아 주시며    
아버지 집으로
날 이끌어 주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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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아버지

      루디아/최송연

 

아빠 아버지

이 사랑스럽고

복되며 영광스러운

호칭

 

벌레보다 못란 인간

영벌 받아 머땅한 죄인

 

도데체

내가 무엇이기에

 나에게 그 귀한 칭호를

내리기 위하여

 

그토록 영광스러운
하늘보좌를 버리고
천하디 천한 종의
몸을 입으셨나요.

병든 내 마음을 고치시고
깊이깊이 찔려서
눈으로 볼 수도 없는
상처마저 만져주시기 위하여

당신께서
나 대신 채찍에
맞으시고 찢기며
얼마나 모진 고통을
당하시고 견디며

모두 참아내셔야만 했나요.

아빠 아버지
내 영혼을 새롭게
새롭게 하시는 그
크신 은혜를
.내가 깨닫지
못했을 때

나는 얼마나 외롭고
지치고 힘든 길을
울면서 홀로 걸어야
했던지...

존귀하신 당신을
내가 감히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도록

허락하시고

그 아빠 아버지가
이제 임마누엘로
나와 함께 계시며

내가 외로워 울 땐
나를 안아주시고

내가 힘들 땐
능력의 손으로
나를 도우시고

내가 눈물 흘릴 때면
측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시며
토닥토닥...

내가 연약할 때면
하늘의 새힘으로
채워주시는 나의
아빠 아버지

내가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이 생명 다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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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고 감사해서 오늘도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 원하는데 감사의 조건들을 잘 생각해 보시고  모든 범사를 다 들어서 주님께 감사하라고 했는데 실제적으로 우리가 주님 앞에 범사에, 모든 일에 다 감사를 하면서 살아가는지 그것을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기도로 주님 앞에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어제 정리한 말씀의 요지는 우리가 지금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이런저런 여러가지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아니면 모든 일에,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계산할 수 없는 감사, 이런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까? 세상의 관점에서는 늘 계산하고 손실을 따지고 이익을 따지고 계산적으로 그런 감사를 우리가 육신을 입은 인간으로서는 할 수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우리의 계산을 초월하시고 그 계산 위에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일을 만들어 가시는 씨나리오를 쓰시고 반전의 드라마를 쓰시는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계산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비록 우리가 눈 앞에 보이는 손해가 있다 할지라도 믿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내가 믿음으로 주님 앞에 순종해 나갈 때에 믿음으로 이 모든 일을 감사하며 고백하고 주님을 높일 때에 하나님은 그것을 기쁘게 보시고 흐뭇하게 보시고 그 감사의 고백에 실제적으로 우리 삶 가운데서 하나님은 감사의 조건들을 많이 창조하시고 만들어 주시고 우리에게 축복으로 안겨주시는 참으로 좋으신 그 하나님이심을 저와 여러분은 믿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테힐라 형제님, 다시 한 번 묻습니다. 어떻게 감사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를 할 수 있습니까? 도데체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감사하다는 말입니까? 그 감사는 객기가 아닙니까? 그냥 큰소리치는 거품이 아닙니까? 허세가 아닙니까? 아닙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하기 때문에 그 감사는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우리의 고백이고 우리의 산제사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감사의 고백을 받으시고 그대로 우리 입술의 고백대로 우리 믿음의 고백대로 하나님은 갚아주시고 반전의 드라마를 쓰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시는 놀라운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이 감사로 주님 앞에 나아갑시다. 믿음으로 드리는 감사, 그냥 우리의 어떤 구호로 외치는 감사가 아닙니다. 주문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감사 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이런 상황 가운데서 저런 상황 가운데서도 주님을 인정하고 높이는 감사를 하고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그 감사를 하나님이 받으시고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반전의 드라마를 우리 인생 가운데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은 써내려 가십니다. 하나님의 그 스토리를 써내려 가십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속에서 감사할 수 없는 일들을 모두 다 꺼집어 내십시오. 하나님 제가 지금 이런이런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이런 문제로 이렇게 아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내가오늘 이런 소리를 듣고, 이런 억울한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하나님, 내가 이렇게 계획 했는데 이것이 안 되어 있고 오히려 이 문제가 더 망가지고
완전히 억망이 된 지금 이런 사건 앞에 내가 정말 코너에 몰려 있습니다. 내가 완전히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주님, 이러한 것들을 다 주님 앞에 내려놓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모든 것들을 다 주님 앞에 내려놓고 모든 것을 다, 좋은 것, 나쁜 것,
아픈 것 모두 다 가지고 나오십시오. 다 가지고 와서 주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올려드리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
 
설교/테힐라  역: 루디다/ 최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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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첫번째로 역경 중에도 주님 앞에 드리는 감사가 있습니다. 감사의 유형은 대략 3가지 정도를 생각할 수 있는데 첫번째는 감사할 일이 있어서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리는 감사가 있고요. 감사할 조건이 아닐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감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삶, 감사할 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의 조건들을 헤아리고 찾지 않고 너무나 무관심 하게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지요.

하박국 3장 17절 말씀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고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 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선지자는 여러분이 잘 아시다싶이 보이는 물질, 눈에 보이는, 손에 잡히는 그런 물질보다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귀하고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하박국 선지자는 경제적으로 그렇게 풍족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으로 기뻐하는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기뻐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결단하지요. 나는 비록 그리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나는 기뻐하리라. 이렇게 고백하지요.

시편 4편 7절 말씀에 "주님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주님께서 우리 심령 가운데 주신 기쁨은 우리의 곡식이나 새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주님이 내 심령에 주신 그 기쁨이 더 크고 더 놀랍습니다

다니엘서 3장 18절 말씀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그렇게 고백하지요. "왕이여, 우리가 왕들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신상 앞에 절하지도 아니할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풀무불에 들어가서 그냥 흔적도 없이 재로 태워져 사라진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지 아니하고, 배반하지 아니하고 당신의 금신상에게 절대 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가 일상 가운데 믿음의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기뻐할 일이 있고 감사할 일이 있을 때 감사하고 또 힘들고 어려울 때 감사를 못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그러지요?

그러나 우리가 이 감사할 조건이 넘칠 때 하는 감사, 그런 감사는 누구나 다 할 수 있지만 감사할 수 없는 우리의 감정이나 우리의 생각이나 이치적으로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은 그냥 허세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큰소리로 그냥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예요. 

그런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것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믿음으로 드리는 감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립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감사, 여러분, 한 번 묵상해 보십시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아, 정말 너무나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고 사람들이 나를 보고 손가락질 하고 마치 세상에서 버림바 된 것같고 친구들은 다 나를 떠나고 심지어는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부터도 외면당하고 그랬을 때 여러분, 어떻게 감사를 합니까? 우리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습니까? 객기로 감사합니까? 허풍으로 그냥 큰소리로 감사합니까? No! 아닙니다!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그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나가서 드리는 감사이기에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믿음이 아니면 우리가 범사에, 모든 일에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릴 수가 없어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진정한 감사,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거짓없는 감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고 내 삶 속에, 내가 지금은 비록 아둔한 내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수 없지만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영원토록 우리의 모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그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으로 이 되어진 모든 일들을 하나님 앞에 감사로 올려드릴 수가 있는 그 원인, 그 원동력의 힘은 우리의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모든 일에 감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은 감사의 완성으로 가는 열쇠입니다. 믿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감사할 수 있는 것이예요. 이해가 되시지요? 범사에 감사하라. 어떻게 감사합니까, 테힐라 님. 예,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고 믿음으로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글/테힐라 : 역 : 루디아/최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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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아침의 내 기도
       루디아/최송연 
 
주님,
이 새해 아침에
간구하옵기는 
당신의 영을 내게 부어주소서 
 
주의 순백한 영으로
내 삶에 순수성을 잃지 않고
 
날마다 영원을 향해 피어나는
새순(筍)이기 원합니다 
 
흐르는 세월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갉아 병들게 하고
 
숨겨진 죄악은
마음에 느껴지는 모든 것을
시꺼멓게 더럽힐 수 있습니다 
 
미움과 증오는
인생이 가꾸어야 할 초원을 
바싹 마른 검불로 태워 사위고 
 
매서운 역경의 된서리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움츠러들게 할 수 있습니다
 
주님, 
살아가는 날 동안 
쉽게 낙담하는 연약함에서 벗어나
 
조금 더 강해지는 것은 좋으나
 
당신의 도움없이도 잘 할 수 있다
 
스스로 하늘을 향해 자고하지 않게 하시며
 
사람을 사랑하되
그 영혼을 사랑하게 하시고
 
한 점 죄악도 가슴에 숨겨두지 않도록
 
분초마다 내 안과
밖을 살피시사
견인(牽引)해 주시기를
 
그 나라에 들어가기까지 그리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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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오늘 새해 첫날 기도를 준비하면서 주님의 김동에 새로 시작하는 새해 첫날의 말씀을 화면에 올려 놓았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입니다. "내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할렐루야! 

 
주님께서 올 한해 24년 새해에는 주님의 변함없고 세상이 줄 수 없고 알 수 없는 하나님의 평화가 저와 우리 기도의 군사님들, 사랑하는 가족들, 자녀들, 그리고 군사님들의 삶의 공간 위에, 삶의 환경 위에 그리고 일터와 사업장과 교회 위에 주님의 평강이 충만이 넘쳐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선포합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이 악보나 가사 없이도 너무나 잘 아는 찬양을 불러드리기 원합니다.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이 찬양을 주님께 먼저 올려드리겠습니다. 이 시간은 하나님 앞에 새해 첫 기도, 첫 찬양을 올려드리는 귀한 시간입니다. 여러분,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주님 앞에 찬양으로 이 기도의 문을 열기를 바랍니다. 찬송 중에 거하시는 우리 주님을 바라보며 이 찬양을 올려드리기 원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여러분, 말씀 속에는 평화에 대해서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평화, 주님은 우리가 정말 평안하기를 원하십나다. 주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시는 가운데서도 늘 곤비하고 피곤하고 어려운 가운데 있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오셔서 늘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샬롬이 임할지어다. 너희에게 평강이 임할지어다. 내가 주는 평안을 받아라. 할렐루야.  요한복음 14장 27절, 화면의 말씀이지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평안은 세상이 줄 수 있는 그런 일시적인 그런 평화하고는 다르지요.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변하지 않습니다. 지속적입니다. 이 온 세상이 정말 노도 광풍으로 혼란스러울 때도 하나님의 평안은 정말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유명한 미술 작품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미술 전시회에서 대상으로 걸려있는 그림을 가만히 보니까 제목이 "평화 였습니다. 그런데 그 평화란 제목의 그림 내용은 노도 광풍 태풍이 부는 성난 파도와 바다가 휘몰아치는 캄캄한 밤, 폭우가 내리고 바람이 태풍이 몰아치는 바닷가의 암벽, 바위 섬같은 그런 시커먼 암벽에 가만히 보니까 거기 새 한마리가 있는데 그 새의 깃털 속을 가만히 보니까 어린 새끼 새가 엄마의 날개 품안에 딱 품어 있습니다. 
 
바람이 불고 태풍이 몰아치는 그 혼란스러운 가운데서 어린 새가 어미새의 가슴 깃털에 폭 파묻혀 있는 광경을 그림 화폭에 옮겼는데 그 그림의 제목이 평화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도 그와 같습니다. 우리는 그와 같이 주님의 어린 양들이요, 새까들입니다. 주님은 주님의 날개 아래 딱 품고 계시면 이 세상이 정말 노도광풍 태풍이 오고 혼란이 온다고 할지라도 주님의 품 안에 있는 우리는 평화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평안은 아와 같습니다. 시편 18편 2절에 말씀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아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우리가 힘과 보호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반석이자 우리의 요새이고 우리는 압도 당하거나 두려움을 느낄 때거나 환난 가운데서 피할 수 있는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할렐루야! 그 다음에 빌립보서 6장 4절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어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할렐루야! 마태복음 11장 8절~ 29절의 말씀 "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를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할렐루야!
 

메게지 by: 테힐라  정리 :  루디아//최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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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영원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세기 1장 3-4절)
 
 
과학의 발달의 끝은 어디일까요? 1990년부터 30년 동안 머나먼 우주의 사진을 찍어 보내온 허불 망원경 보다 훨씬 정교하고 강력한 제임스 웹 망원경이 2년 전 2021년 12월 25일에 발사되어 지구로부터 약 140만 킬로미터(지구-달 거리의 약 4배 거리) 떨어진 라그랑주 지점에 도착하여 6개월여의 조정작업을 거쳐 활동을 개시한 후 이제 우주과학자들은 더욱 더 깊은 우주의 모습을, 우주의 비밀까지도 파헤칠 듯 한 더욱 뚜렷한 우주의 사진들을 받아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제임스웹을 만들고 쏘아 올려 우주공간에 설치하고 백 수십억 광년 거리에 떨어진 아득한 우주의 사진을 선명하게 찍는 인간의 기술도 놀랍지만 하나님의 작품인 빛은 더욱 더 놀랍고 경이롭습니다. 옹스트롬 단위의 진폭으로 진동하는 고유진동수를 가지는 빛이 1초에 30만 킬로미터를 진행, 백 수십억 년 동안 달려 지구에 도달할 때까지도 희미해지지도 흩어지지도 흐트러지지도 않고 천체의 선명한 모습을 전해주는 빛의 기술은 무엇이며 그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빛의 정체는 과학으로는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밝혀내지 못 할 것입니다. 생명이 무엇인지를 과학이 밝혀내지 못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아득한 우주공간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은 왜 존재하며 빛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요? 빛이 있든 없든 우주공간을 운행하는 별들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빛이 있고 별들은 빛을 발해야 하는 것일까요? 만일 빛이 없다면, 또 빛을 보고 인식하는 존재가 없다면 별들도 의미 없을 것이며 우주가 아무리 광활하든 그 존재도 아무 의미 없을 것입니다. 우주만유는 그 존재를 인식하는 자가 있을 때 비로소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만 생각해도 우주만유에게는 반드시 창조주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주만유를 지으시고, 빛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말씀하신 하나님은 하나님 혼자서 우주만유를 감상하고 좋아하지는 절대로 않으셨을 것입니다. 광활한 우주, 아름다운 세계를 하나님 홀로 보는 것은 오히려 한없는 외로움이며 끝없는 괴로움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빛을 지으시고 그 빛을 인식하는 존재, 생명체들을 지으시고 함께 즐거움과 기쁨을 나누며 사랑할 수밖에 없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존재를 겨우 몇 십 년, 길어야 백년을 살고 죽는 존재로 짓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죽음은, 영원한 이별은 더욱 견딜 수 없는 아픔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하나님과 교감하며 즐거움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우리 인간은 본래 영생하는 존재로 지음 받았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이사야서 43:21)
우주만유를 지으신 하나님, 이 아름다운 세계를 만드시고 나를 지으신 하나님, 나를 다시 영원히 살리시려고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을 영원히 찬송합니다. 할렐루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4년,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사랑과 은혜 안에서 건강하시고 형통하시기 바랍니다. 
2024. 1. 1 아침, 뉴저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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