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직 목사님의 목회 처신 법 두 가지만.

한경직목사 하면 교계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이 거이 없을 만큼 유명한 어른이시다. 미국 프리스톤 신학교에 가면 한 목사님의 두루마기 입으신 영정이 있다. 거기에 모셔진 분들은 장로교회를 가장 빛내고 공헌이 있는 분들에게 수여되는 템플상을 받은 분들이다. 목사님이 템풀 상을 받은 것은 그 당시로서 세계에서 장로교회로는 최고의 영락교회를 만드셨기 때문이다.

필자는 신학교 다닐 때 기회가 되면 늘 영락교회를 갔다. 이유는 설교가 너무 멋이 있고 생명력이 넘쳐 감동을 주었고 갈증나는 심령에 시원한 생수를 먹여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어른의 설교는 3대지 “원” 포인트 설교이다. 1대지, 2대지, 3대지를 구분하여 설교 한 다음 “원” 포인트로 결론을 맺을  때는 그의 몸짓은 적을 쳐부수는 용맹한 장군 갖고  그의 음성은 깊은 산속 호랑이가 큰 소리를 부르짖는 것 갖고 청중들의 가슴에는 그 메아리의 산울림이 가슴을 치는것 같았고 교회를 떠나 집에 올 때까지 가슴은 시원하였고 큰 은혜의 보따리를 안고 오는 것 같았다.

그러기에 청중들은 그의 설교에 빨려 들어갔고 구름떼처럼 몰려 들었다. 그의 설교에는 생명력이 약동 하였고 설교 시간에는 요즈음 목사들 처럼 아멘을 유도 하지도 않았고 방언도 하지 않았고 박수를 치거나 춤도 추지 않았다. 오직 말씀과 성령님의 역사와 감동이었다. 그 어른의 설교시간은  언제나  25-30분 내로 압축하여 액기스를 먹이고 끝낸다.

설교를 잘 못하는 사람은 압축 능력이 없어 언제나 지루하게 질질 끌고가서 교인들을 실증나게 만든다. 필자도 압축 능력이 없어 30분을 넘을 때가 많았는데 한 목사님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 30분이 초과하면 바로 중단하고 결론맺고 끝낸다. 교인들은 잘른줄도 모른다.  간단해서 은혜롭고 좋다고 한다. 길게 한다고 사례도 더 주는것 아니고 교인들은 싫어하는데 왜 길게하나?

필자가 잘 아는 합동측 목사가 그 교회 장로들이 설교를 30분내로 끝내어 달라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에게 짧게하라고 하였으나 필자말도 듣지않고 장로들이 목사권위에 도전한다고 하면서 고집 부리다가 기타 고집과 합하여 쫒겨났다. 미련한 목사는 길게하는 사명감에 취하여 혼자 충만하여 시간은 관계없이 준비한것 다 해야 교인들이 은혜받는 줄로 착각하고 있다.

필자는 지금까지 한경직 목사님 보다 설교를 더 잘 하시는 분을 본 적이 없다. 그런 위대한 세계적인 목회자가 어떻게 처신 했는가 두 가지만 소계하고자 한다.

첫째 : 어느 글에서 읽었다. (이글은 필자가 저술한 "성공적 목회를위한 목사처신법"에도 실려있다)  한번은 당회에서 장로들이 뜻을 모아 한 목사님의 약점을 22가지로 요약하여 정리 한 것을 낭독 한 후 목사님이 이렇게 처신하면 됩니까?  앞으로 고처 주세요 하는 것이었다. 한 목사님은 고개를 숙이시고 22가지를 다 들으신 다음 고개를 드시고 웃는 얼굴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장로님들 제 부족을 잘못 알아습니다. 제 부족을 자세히 조사하여 보면 220가지도 넘슈다. 앞으로 고치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하셨다는 것이다. 그 말씀에 당회원들은 유구무언이 었다고. 한 목사님은 상대에게 정조준의 사격을 받았다. 한 목사님은 상대의 조준을 방어할 무기도있었고 상대를 완전히 제압할 능력과 권위를 갖고계셨다. 그런데도 두손을 높이들고 항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왜 그런 비굴한 항복을 하였을까? 지는 것이 이기는것 과 목사의 승리의 비결과  진리를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 목사님의 목회 처신 법이다.

필자 같은 소인배 였더면 얼굴이 불그락 푸르락 하였을 것이고 얼굴 근육에는 경련이 일어 났을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당신들은 온전하오? 그레도 나는 당신들 보다는 더 났소, 하면서 이것은 아무 장로소리지요, 이것은 아무장로 말이지요. 내가 안 들어도 다 알아요. 당신들은 무엇이 잘났소. 내가 그렇게 싫으면 다른 교회로 가시오. 이 교회는 내가 개척하여 부흥시킨교회요 하며 주먹을 휘젖으며 삿대질을 하며 당신들 같은 사람들이 무슨 장로요, 평신도 보다 헌금도 못하는 주제에 장로라고 행세만 하는 오만 방자한것 같으라고, 하며 고함을 질렀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 다수의 수준 미달 목사들은 이런 함정에  빠저 허우적 거리는것을 많이 볼수 있다.

독자 여러분이 한 목사님 같은 위치에서 그런 수 만명의 수동적 성직자의 권위로서 그 자리에 이셨다면 후배 목사님들은 어떤 얼굴을 하고 어떤 태도를 취했을 것 같습니까?

그 어른은 남이 세워놓은 교회에 부임하지도 않았 습니다. 자신이 영락교회를 개척하여 세계적인 교회를 만들고 세계 일등 목사가 된 분인데도 자존심을 다 내려 놓으시고 종의 자리에 내려 앉았습니다.

요즈음 어떤 목사들은 되지도않은 능동적 권위를 세워 사용하려 하는데 한 목사님은 능동적 권위자가 아니라 수만명이 부여한 수동적 권위자로 국가위에 군림 하였다. 能動的 權威보다 受動的 權威가 훨신 크고 위대하다. 목사의 권위는 受動的 권위여야 한다. 능동적 권위는 세상적 권위이다. 성직자의 能動的 권위는 바리새 권위이다.

그러나 한 목사님은 그 수동적 크고 위대한 권위를 사용하시지 않으셨다. 이것이 세계 제일가는 장로교회를 만드신 한 목사님의 당회에서 목회 처신 법이 었다.

예수께서 “으뜸이 되고자하는자는 낮아지라” 하신 말씀을 실천하신 분이시다. 우리는 입으로는 많이 외치지만 정작 자신은 낮아지지 않은데 문제가있다. 바리새는 바로 그런 자이다. 예수님 당시에예수께서 책망하신 바리새는 바로 그런 자들이 었다.

기독교 역사에 교회를 무력하게 만들고 혼탁하게 만들고 권모술수하고 매관 매직하고 타락시킨 자들은 전부 바리새 들이다. 필자도 한국 교회에 바리새 중 한 사람으로 먹고살기 위하여 목회하지 않았나 반성 하고있다. 

둘째 : 영락교회 장로님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는데 다니로 와서 은퇴 후 남한 산성 영락 동산에 계시는 한 목사님을 찾아가 뵈었더니 한 여름 더위에 에어콘도 없이 부채를 부치고 계시기에 목사님이 부채를 부치고 계시다니요 하면서 에콘을 한대 놓아 드리려 하였으나 나는 부채로서도 족합니다 그돈 있으면 농어촌 교회 가난한 목회자에게 보내주세요 하면서 완강히 반대하는 데도 그 장로님은 설치하여 드리고 가셨는데 그 다음 날 관리 집사를 불러 에어콘을 뜯어다 주고 돈을 받아와서 시골교회 어렵게 사는 목회자에게 보내 주었다는 것이다. 그 장로님이 나중 아시고 기사를 쓴 것을 필자가 보았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그 위대한 목사님, 부자 영락교회  원로 목사님, 내가 원한것도 아니고 상대가 날 위하여 하여 준 것을 고맙다고 하고 그대로 수용 한들 무슨 잘못이 되는가?
그런 생활 처신이 한경직, 한경직, 한경직, 목사님의 "목회 처신 법"이었습니다.

아무리 풍요하여도 교인들의 눈 높이를 벗어나지 않으셨다. 1년전 K 지방교회(타교단) 7백명 교회를 수년 만에 3천여명 교회로 부흥시키셨다. 그는 설교를 아주 잘하고 리더십이 강하였다. 교회부흥과 대 교회건축에 자만심이 생겨 목에 힘을넣고 에쿠스를 사달라고 당회에 청하였으나 그 교회 장로들은 대체로 서민틍이 다수였다. 에쿠스 때문에 도화선에 불아 붙어  갈등을 빚다가 쫓겨난 경우가있다.

필자는 그 교회를 가 보았다. 넓은 대지에 어마 어마한 교회와 교육관을 지어 놓았다. 그는 세상적으로 보면 목회 성공한 젊은 목사의 한 사람이 었다. 그는 거기서 종신토록 목회할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큰 착각을 한 것이다. 그는 아프리카 초원에 메두기때 같이 가득찬 덩치 크고 힘이 넘친 "누우" 때만 보고, 숲속에 숨어 그의 생명을 도사리고 있는 사자와 호랑이는 보지 못하고 능동적 권세를 사용 하였고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였다가 쫓겨나고 말았다. 오늘날 이런 함정에 빠지는 젊은 목회자들이 너무도 많음을 안타갑게 생각한다. 에쿠스 타기 위하여 교회 부흥 시킨것이 아니잖아요.

그러기에 한 목사님은 위대하시고 성자로 호칭을 받으신다.

필자 방에는 에어콘이 있다. 이런 말 할 자격도 없다 하지만 그 어른의 당회 앞에서 비굴한 종의 항복의 자세와 교인들의 눈 높이를 벗어나지 않은 삶은 우리 모두 본 받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한 목사님의 이 두가지 목회 처신법 만 실천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한 목사님의 반열에 들어갈수 있을 것이고  우리가 목회하는 교회에서 존경을 받을 것이고 수동적 권위가 부풀어 오를 것이고 한국교회는 빛나고 부흥할 것이고 땅에 떨어진 불신자들의 교회 이미지가 달라질 것이다. 그러면 3백만 전도운동이 쉽게 될 것이고 5백만 전도 결실도 가능 할 것이다.

위대하신 세계적인 한경직 목사님의 두가지 목회 처신 법. 후배 목사님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말씀 좀 하여 보세요.

 

출처: USA 아멘넷/장달윤 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