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은 은혜의 땅 13

신앙간증 2017. 3. 8. 03:57

천주교에는 연옥이라는 교리가 있다. 연옥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고 있는 영혼의 중간 정거장과 같은 곳으로 예수를 영접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영혼들, 또는 일찍 죽은 아기의 영혼들이 천국에 올라가기를 기다리면서 대기하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천주교 신자들은 죽은 자를 위한 중보기도도 하고 가끔씩은 특별 헌금도 한다.  
  
가톨릭교회의 연옥교리가 가장 활성화되고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시기는 중세시대였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 중세 가톨릭교회에서는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천국으로 보낼 수 있다면서면죄부를 대량 판매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빌미가 되어서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에 사람 들은 연옥에 가 있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면죄부를 사들였는지 모른다. 저들의 마음 가운데는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해서든지 천국으로 들어가도록 하기 위한 열망이 가득했다. 그래서 중세 교황들은 이를 교활하게 이용해서 면죄 부 장사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던 것이다. 
  
둘째 누나를 위한 기도를 하다 보면 나도 어느 사이엔가 면죄부 같은 것이 있다면 얼마의 돈을 들여서라도 그것을 구입하고 싶다는 어리석은 충동에 사로잡힐 때가 있었다. 
  
"오,하나님! 저는 연옥의 교리나 면죄부를 통해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다는 사실 하나에 내 생명을 걸고 믿습니다. 하나님,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희생해서 우리 모든 인류의 죄값을 치르셨던 것처럼 자신의 꺼져가는 생명을 동생을 위해 아낌없이 희생했던 우리 둘째 누님의 불쌍한 영혼을 하나님께서 친히 거두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섭리를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감히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하나님의 가장 놀라운 사역, 즉 구원의 사역은 우리 인간들의 이해 영역을 훨씬 넘어서는 신성 불가침의 영역이라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믿는 교회의 교리와 신학적인 해석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구원 방법이 영혼의 세계에 반드시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할 때에야 비로소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 하고 먼저 세상을 떠난 둘째 누님에 대한 풀 수 없는 회한이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을 수 있다. 
  
"사랑하는 둘째 누님,우리 이제 조만간 천국에서 꼭 다시 만납시다. 누님! 정말 사랑하고 많이 감사합니다." 
  
나는 야간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둘째 누님을 마음 깊숙한 곳에 묻어두고 지난 2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투병생활을 했 던 고향집을 떠나 다시 서울로 무작정 상경을 했다. 당시 내 나이 19세였는데 고향에서는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폐병에서는 완전히 회복되어 이제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고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대도시로 나가서 인생을 새롭게 도전하고 싶었다. 서울까지 올라가는 완행열차가 왜 그렇게 느리게 움직이던지 마음만 바쁘게 움직였다. 서울에 도착하면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밤이 새는 줄 도 모르고 기차 구석에서 이런 저런 공상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서울에 도착해서 형님 집을 찾아갔다. 둘째 형님은 그 당시 경찰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었과 형수님은 독일 간호사로 나가 일하고 있어서 그나마 생활이 좀 안정된 편이었지만 살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3명의 자녀와 살림을 거들고 있는 어머니가 단칸방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런 살림에 나 같은 식솔이 한 명 더 추가된다는 것은 아무리 형제지간이라고 해도 힘든 일이 었다. 하지만 달리 갈 곳이 없는 상황이라 직장을 잡을 때까지 만이라도 형님 집에 얹혀 살아보자는 마음을 가지고 형님 집을 찾아갔던 것이다. 
  
어머니는 2년 전 폐병으로 피를 쏟으며 고향으로 쫓겨 내려갔던 내가 아직 좀 여위긴 했어도 건강을 회복한 모습으로 나 타나자 눈물부터 주르륵 흘리셨다. 
  
"그래,이제 다 나은 것이여?" 
  
"예." 
  
"밥은 잘 먹냐?" 
  
"예." 
  
"그런데 어쩌자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어. 형이 알면 불호령이 떨어질 터인데." 
  
"시골에서 뭐 할 것이 없어서요. 그냥 취직할 때까지만이라도 부탁 좀 해보렵니다." 
  
열일곱 살 나이 차이가 나는 둘째 형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내게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 물론 형님의 마음 가운데도 형제들을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워낙 사는 형편이 힘들 때라 8남매나 되는 형제들 사이에서 서로 배려해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둘째 형이 집으로 돌아와서 내가 다시 상경한 것을 알자 한 마디로 난리가 났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나는 당장 거리로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오랫동안 경찰 공직자 생활을 하면서 강직하게 훈련된 둘째 형님에게 며칠만이라도 집에서 신세를 좀 지자는 말은 통하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노숙자가 되었다. 거리에서 하룻밤을 새우면서 온갖 생각이 들었다. 노점상이 버리고 간 불씨 옆에서 몸을 녹이면서 별이 촘촘히 박혀 있는 겨울 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이 나 혼자 버려진 느낌이었다. 그때 폐병이 치유되던 날 새벽이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갔다. 2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투병하던 폐병을 말끔하게 치유해 주셨던 성령의 뜨거운 손길이 다시 기억났던 것이다. 
  
'하나님,사는 것이 정말 힘듭니다. 당신이 나를 치유해 주셨을 때 이렇게 노숙자 신세나 되라고 병든 몸을 낫게 해주셨습니까. 차라리 누님과 함께 저승에 가게 두시지 치료는 무슨 치료입니까. 이제 나는 아무런 소망도 없습니다. 차라리 내 생명을 거둬 주시옵소서.'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향한 온갖 푸념을 하는 동안 어느덧 새벽 하늘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 밤새 추위에 떨고 하루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허기를 붙잡고 잠깐 잠에 빠져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형님이 출근하고 난 이후에 어머니를 찾아갔다. 
  
"그래, 지난 밤에는 어디서 지냈냐." 
  
자식을 눈앞에 빤히 두고 노숙을 시킬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했으랴. 어머니가 부엌에 들어가 찬밥에 간장을 붓고 삶은계란을 하나 들고 들어오셨을 때 나는 그 밥을 불과 몇 초 사이에 다 먹어치웠다. 

출처: 김동욱 500/김태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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