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제게 관심 있습니까?

열왕기하 6장 1절 ~ 23절 배경락목사

          

살다 보면 우리 생각처럼 일이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풀리기는 커녕 도리어 엉키고 꼬여서 마음이 괴로울 때도 있다. 전후좌우 사방이 꽉 막혀서 옴짝달싹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우리는 하나님께 불평하기 쉽다.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는 것 맞습니까?”

“하나님 나에게 관심이 있습니까?”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의 고민도 같은 것이었다. 그들이 자랑하던 예루살렘도 무너지고 성전은 훼파 당하였다. 돌아올 가능성이 전혀 없는 먼 나라에 끌려가 종이 된 유대인은 하나님께 불평을 넘어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은 과연 살아계실까? 하나님은 과연 이스라엘을 사랑하실까? 하나님은 과연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실까? 열왕기서를 기록하는 저자는 그 점에 대한 고민을 엘리사 기적 이야기로 풀어가고 있다.


열왕기하 6장에 전래동화 ‘금도끼 은도끼’를 연상시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벧엘, 여리고, 길갈에 흩어져 있는 선지 공동체는 날이 갈수록 학생이 늘어 갔다. 그렇다고 딱히 수업료를 받는 것도 아닌듯하고 선지자의 길이 출셋길도 아닐 터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선지 생도들은 최저 빈곤층이다. 그들은 쇠도끼를 빌려서 요단 강 근처에 집을 짓기로 하였다. 도끼질하다 보면 흔히 그러하듯 도끼 머리가 쑥 빠져서 요단 강에 빠졌다. 2,500여 년 전은 철기 문화가 막 시작하던 때였다. 철은 귀금속만큼이나 가치 있는 것인데 쇠뭉치가 요단 강에 빠졌으니 큰일이 났다. 선지 생도는 울부짖었다.

“아이고, 선생님, 이걸 어쩌지요? 이건 빌려온 도끼입니다.”(왕하 6:5)

살다 보면 이런 일이 때때로 벌어진다. 어찌 보면 흔한 일이고 사소한 일이고 작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너의 문제이니 네가 알아서 하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엘리사는 사소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기적을 보여주었다.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하였다. 이것은 엘리사의 능력이 아니라 명백히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께서는 국가적인 일이나, 하나님 나라를 위한 큰일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작은 일에도 관심을 가지신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139:1-4)

수억만 리 먼 나라 종 생활하는 유대인은 잊혀진 존재라고 생각하였다. 누가 나를 기억하랴? 누가 나를 불쌍히 여기랴? 그러나 열왕기서 저자는 그들에게 말한다.

여인이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49:15)

열왕기서 저자는 사소한 개인적인 문제를 이어 국가적인 큰 문제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기록하고픈 마음은 전혀 없는 듯하다.

그 때에 아람 왕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싸우며 그의 신복들과 의논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아무데 아무데 진을 치리라 하였더니.”(왕하6:8)

그 때에’라고 말하지만, 정확히 언제인지는 전혀 밝히지 않는다. 아람 왕이 누구인지, 이스라엘 왕이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았다. 더욱이 아람 왕이 진을 친 장소를 ‘아무데 아무데 진을 치리라’ 하였다. 장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열왕기 저자는 정확한 사실보다는 기적 이야기를 통하여 말하고 싶은 다른 목적이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아람 왕은 자신이 진을 치기만 하면, 정보가 누설되어 이스라엘 왕이 대비하는 것을 보고 왕궁에 내통하는 자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신하들은 그 일이 간첩 때문이 아니라 엘리사 때문임을 보고하였다.

“이스라엘에는 엘리사라는 예언자가 있어, 임금님께서 침실에서 은밀히 하신 말씀까지도 다 알고 낱낱이 이스라엘 왕에게 고해 바치고 있습니다.”(왕하6:12)

아람 왕은 엘리사를 잡기 위하여 도단 성에 군대를 보냈다. 그저 많은 군대라고만 언급하지 몇 명이 갔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엘리사의 사환이 아침에 일어나 성 밖을 보니 아람 군대가 뺑 둘러 진치고 있음을 보았다. 사환은 호들갑을 떨며 뛰어들어와 엘리사에게 보고하였다.

“주인님.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좋습니까?’

“두려워하지 말아라. 우리와 함께 한 군대가 그들의 군대보다 더 많다.”

그리고 엘리사는 사환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여호와여, 이 사환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소서.”

영적인 눈이 열린 사환이 다시 성 밖을 보니 아람 군대보다 훨씬 많은 불말과 불병거가 엘리사를 지키고 있었다.


사람은 흔히 눈에 보이는 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이스라엘이 바빌론에 끌려오면서 당대 최대 제국이 자랑하는 군사력, 건축, 문화, 사회 기반 시설 등을 똑똑히 보았다. 어마어마하였다. 현실을 보는 상식이 있다면, 판단은 명백하다. 누구도 바빌론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던 예루살렘도 다 무너진 마당에 이스라엘의 독립은 물 건너간 것이다. 누구라도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엘리사는 영적인 눈을 열어 보라고 권면하고 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마19:26)


엘리사가 다시 기도하여 아람 군대의 눈을 가리게 하였다. 하나님께서 눈을 가리면,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보지 못한다. 언론이 말하고, 증거가 말하고, 모든 사람이 말해도 그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 그저 앞에서 이끄는 대로 따라갈 뿐이다. 상식도 없고, 판단도 없다. 그 길이 죽을 길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갈 뿐이다. 엘리사는 아람 군대를 사마리아 성안에 데려갔다. 그때야 눈을 뜨니 적진 한가운데 들어와 있음을 발견했다. 이스라엘 왕은 기뻐 흥분하였다. 그는 엘리사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내 아버지여. 내가 이들을 죽일까요? 내가 이들을 죽일까요?”

그는 아람 군대를 몰살시키고 싶어 안달이 났다. 지금까지 아람 군대가 자신을 해하려고 수도 없이 아무데 아무데 진을 쳤었다. 그런 아람 군대를 생포하였으니 저들을 다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세상 사람은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힘의 논리, 칼의 논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거라 기대한다. 어마어마한 무기를 한반도에 배치하면, 한반도에 평화가 보장될 거라 생각한다. 정권을 잡고 상대편을 블랙리스트에 올려서 엄청난 불이익을 주면, 나라가 평안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26:52)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에게 무력보다는 사랑과 섬김으로 대접하라고 하였다.

“쳐 죽여서는 안 됩니다. 전장에서 사로잡은 포로도 아닌데 죽여서야 되겠습니까? 차라리 음식과 물을 주어서 먹고 마시게 한 다음 자기들 상전에게 돌려보내십시오.”(왕하6:23)

그들을 후히 대접하여 돌려보낸 후 다시는 아람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아람과 이스라엘의 싸움을 칼과 창으로 종식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국가 간의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전쟁이다. 무기다. 공격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방법은 평화다. 외교다. 분명 적이고 원수이고, 수도 없이 우리를 공격한 전과가 있지만, 그래도 서로 대화하고 타협하므로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건 국가 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국내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언제나 그러하듯 비둘기파보다는 매파를 선호하고, 칼과 창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법대로 한다면, 이 세상에 죄인 아닌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조금은 여유를 가질 수 있고, 대화로 문제를 풀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사용하는 방법 - 싸움, 외교 - 보다 더 훌륭한 방법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나라의 흥망성쇠를 쥐고 계신다.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이 너무 쉽게 절망하고 포기해서는 안 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인간의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섭리하신다. 때가 이르면 하나님께서 직접 간섭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시다. 이 사실을 기억하는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역사 앞에서 겸손해 질 수밖에 없다. 오늘도 대한민국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대한민국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이끄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실지 구원하실지 두근거리는 설렘으로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출처: 개혁주의마을/Grace

가져온 것: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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