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자랑 좀 하겠습니다.

캠퍼스 성막교회를 개척한지 5년이 넘었습니다. 오늘 교회 홈페이지 개설을 위해, 업체와 계약을 맺는데 교회 고유번호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숨이 막혔습니다. 왜냐면, 아직 노회 가입 인원도 채우지 못해 교회가 노회에 등록이 되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위에서 가족들 명단 끌어다가 노회 가입하면 된다고 했지만 그럴 바에 뭐하러 교회 세우나 싶어, 사람 찰 때까지 기다리다가 여지껏 가입도 못했습니다. 교회 사이즈 이제 어림 아시겠죠?


이곳에 와서 약 서너 달 동안 사택이 없어 아내가 만삭일 때, 지하 교회 강단에서 보냈습니다. 물러날 길이 없어 차라리 죽이시든지 아니면 사용해 달라고 기도원에 올라가지도 않고 교회에서 새벽기도와 주중집회와 주일예배를 인도하며 40일 동안 전일 금식을 했습니다.


40일 금식이 끝나니, 교회가 부흥한 것이 아니라 함께 했던 청년 2명이 떠나갔습니다. 아내가 출산하러 간 사이 장모님과 단 둘이 주일 예배를 드렸는데 그나마 장모님 믿음이 약하셔서 설교가 들어가질 않았어요.


장모님 주무시면 쳐다볼 곳이 없어, 카메라 한 대 사서 카메라 보며 설교했습니다. 아내와 장모님 저, 세 사람이 거의 2년을 넘게 예배드린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쥐 새끼라도 보내달라고 기도했더니, 농담이 아니라 그 이후로 쥐 3마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있자나요...

저의 모든 계획이 실패하고, 제가 비젼이라고 품었던 모든 것이 사치처럼 느껴져 포기하고 넘어졌을 때, 제가 완전히 포기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내가 넘어지고, 내가 포기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니 오히려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첫째, 내 인생에 가장 진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주기적으로 임재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비로소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공급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계좌번호가 든 후원요청 카드를 돌렸습니다. 그런데 해 줄 거라 믿었던 사람 중에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이후로 절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매 달 알지 못하는 곳에서 채우시는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셋째, 나의 계획과 상관없이 나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혼자 카메라에 대고 설교하고 나서 무력감에 빠져, ‘하나님 이제 정말 이 열매 없는 사역 접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린 그날.. 가감없이.. 어디선가 영상설교를 보고 회복되었다는 메세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도 가끔 말합니다. 몇 년 동안 그 인원이면 이제 문 닫아야 한다고요... 그러나 믿어지지 않겠지만, 인원수와 관계없이 매순간 하나님이 저와 이 작은 교회를 얼마나 알차게 사용하시는지.. 우리만 아는 비밀스런 추억들이 계속쌓여가고 있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장황하게 고생한 이야기를 늘어 놓는가 하면,

삶이 너무 힘들다고만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깨닫고 주님께 안기면 좋은데, 그럼에도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고 주님을 외면한 채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저와 아내가 진심으로 고백하는 말이 있습니다. 겪어보니 십자가 확실히 지고 주님 따르는 길이 인생에서 제일 쉽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신 십자가를 확고히 질수록 십자가의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태풍 속에서 초자연적인 평안을 누리고, 내 고집이 아닌, 하나님의 스텝에 발맞추어 가면 가장 행복함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저는 ‘요셉이 형통했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았습니다. 속된 사람들 때문에 ‘형통’이란 단어가 교회 안에서 외면 받게 되었지만, 저는 이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형통이란 단어가 얼마나 복음에 부합한 단어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외면할수록 인생은 버거워집니다. 확실히 매면, 주님이 그 멍에를 함께 져 주십니다.


이 글을 읽고 저를 섣불리 위로하려고 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저는 지금 비참함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동행하는 삶의 달콤함을 어리석도록 자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왜 인생이 고달프기만 하고 삶에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까?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주님께 올인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께 과감히 삶을 드리면 주님이 당신을 안고 걸어가십니다. 어정쩡하게 서 있으면 삶의 무게를 당신 스스로 감당해야 합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출처: 이환희 목사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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