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가(2)

 

 

 

 박일민  칼빈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성경은 창조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창조로 시작하여, 재창조(구원)의 과정으로 이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로 끝을 맺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기독교 교리의 핵심 골자 중 하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창조와 관련하여서 많은 오해된 주장들이 있다. 그 좋은 예가 진화론의 주장으로 인한 타협적인 자세나, 천사의 창조와 관련한 귀신론의  경우이다. 그 내용과 문제점을 살펴보기로 하자.

1. 창조와 진화

얼마 전 "쥬라기 공원"이라는 영화가 세간의 대단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 일이 있다. 그 영화에는 수백만 년 전에 살았다는 공룡들이 등장한다. 현대인들은 이런 식의 분위기에 익숙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인류의 시조가 유인원이었다든가, 지구는 수백만 년 전에 우주의 대폭발로 말미암아 생겨났다든가, 고대 유적지를 발굴하고는 몇 만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유적이라는 말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진화론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쇠뇌를 받은 영향일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없던 무의 상태에서 오직 말씀만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각기 그 종류대로 창조를 하셨다고 한다.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맺는 과목을 내라"(창 1:11).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창 1:21). 각기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음이 여러 차례 반복해서 강조되어 있다. 진화론이 일어날 것을 미리 내다보신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진화론자들은 인류의 기원을 45억 년 정도로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인류의 역사를 그렇게 오래된 것으로 계산해 내기가 어렵다. 성경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아무리 오래 되었다고 하더라도 일 만 년이나 일 만 오천 년을 넘게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성경을 진화론의 계산과 서로 조화되게 설명하기 위하여 몇 가지 해석들을 시도한다.

그 주장들을 살펴보기 전에, 우리는 과학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부터 먼저 정리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첫째, 우리는 성경을 과학적 근거에 맞추어서 해석하려 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을 소개하는 책이다. 그러므로 과학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려는 것은 잘못이다. 오히려 과학이 성경에 맞추어 해석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성경이 과학적 기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성경은 과학을 무시하지 않는다. 성경은 과학과 상반되지도 않는다. 성경은 과학과 잘 조화가 된다. 성경은 과학의 발전에 많은 도전을 제시한다. 그리고 과학의 나아갈 방향을 인도해 준다.

과학은 지금까지 많은 발전을 거듭해왔다. 앞으로는 그 발전 속도가 과거보다 더 빠를 것이다. 그래서 미래의 과학적 성과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을 만한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발전 속에서 과학은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많이 밝혀냈다. 그리고 전에 잘못 알고 있던 것들을 많이 수정했다. 현재의 과학적 결과들도 마찬가지이다. 장래에는 현재 알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많이 밝혀내게 될 것이다. 현재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은 바로잡을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과학 수준에 맞춘 가설에 따라서만 성경을 해석하려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시도는 현재의 과학으로는 밝혀내지 못했던 사실들이 밝혀질 경우에, 또다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발전이나 시행착오에 따른 수정이 있을 수 없다. 성경은 불변하시고 무오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수천 년이 지나도록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천지는 변한다 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마 24:35).

둘째, 과학적 방법에 의한 연대측정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또 오차가 너무 크다. 그러므로 그 수치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무리일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보자. 과학에서는 무생물의 경우, 우라늄(U236)이 납(P)으로 변감하는 반감기를 토대로 그 연대를 측정하는 경우가 많다. 생물체의 경우에는 주로 탄소 동위원소(C14)가 탄소(C)로 변하는 반감기를 토대로 연대를 측정한다. 또 지층의 경우에는 퇴적층이 쌓이는 기간을 토대로 연대를 측정한다. 이 측정방법들은 일정한 조건을 전제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우주에는 너무나 많은 이변들이 발생하고 있다.

화산폭발, 지진, 홍수, 화재 등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래서 일정한 조건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과학적 측정의 신뢰도를 근거부터 흔들어 놓는다. 록키산 중턱에서 발견되는 조개껍질 화석, 여러 지층을 동시에 관통하고 있는 나무화석, 전남 해안 지방에서 발견된 공룡의 발자국 등은 모두 이변들이 낳은 결과이지 않는가. 뿐만 아니라 진화론은 아직도 유인원과 사람의 중간자인 '빠진 고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셋째, 최근에는 지구의 나이가 젊다는 많은 증거들이 확인되고 있다. 창조과학회의 과학자들이 제시한 증거들은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지구의 자기 능력의 붕괴속도, 대기 중의 헬륨량, 지구 회전속도의 느려짐, 우주진의 유입량, 태양계 안에 존재하고 있는 혜성의 수, 포인팅 로벗슨(Poynting-Robertson) 효과와 태양 주변의 많은 운석, 짧은 반감기를 가진 달의 동위원소 등등. 여기서 그 내용들을 일일히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증거들은 지구의 나이가 수천 년에서 일 만 년 내외를 크게 벗어날 수가 없음을 보여준다.

넷째, 하나님의 창조의 상태는 미완성이 아니고 완성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완벽한 산과 나무와 짐승들을 창조하시고 보시면서 좋아하셨다. 또 완벽한 사람을 창조하시고는 보시면서 심히 좋아하셨다(창 1:31). 갖 지음받은 아담의 경우, 그는 한국식 헤는 나이로 계산한다면 한 살이었다. 그러나 그의 상태는 지금의 한 살짜리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아담은 완전한 사람이었다. 또 그 때의 에덴 동산과 각종 동·식물들도 한 살이었다. 그러나 에덴동산의 모습은 티끌이 모여 쌓이기 시작하는 상태가 아니라 완전한 동산이었다.

과학적 계산에 의하면 수십 억 년이나 수백 만 년으로 측정될 수 있는 상태의 동산이었다. 동물과 식물들도 다 자라서 보기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갖 지음받은 나무의 껍질이나 거북이의 등가죽을 탄소 측정방법으로 실험해 보면 수천 년이나 수만 년 전의 것으로 계산되었을런지도 모른다. 지금도 실험실에서는 이와 비슷한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 살아 있는 달팽이의 껍질이 수천 년 전의 것으로 계산되고, 살아 있는 나무 껍질이 수만 년 전의 것으로 계산되는 일이 없지 않다. 하나님의 창조의 관점에서 보면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도 쉽게 얻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닭을 창조하시고, 그 닭이 알을 낳는 방법으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셨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창조를 인간의 진화론 가설에 조화되도록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그 한 예로 창조의 날의 길이에 관한 주장들을 살펴보자.

2. 창조와 날의 길이

창조를 사람이나 지구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진화론과 조화되게 설명하려는 시도에는 간격설이나 시대설이라는 것이 있다.

1) 간격설(또는 重造說)

어떤 사람들은 지구의 나이가 오래 되었음을 인정하고, 그 근거를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서 찾는다. 1절과 2절 사이에는 무한히 긴 시간적 간격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이유는 이렇다. 1절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했다. 그러나 2절에는 땅이 공허하고 혼돈했다고 한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공허하고 혼돈한 천지를 만드실 리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땅에 공허와 혼돈이 생겨난 것은 천사의 타락 때문에 생겨난 결과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리고 천사를 중심으로 했던 창조가 천사의 타락으로 혼돈에 이르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포기하시고, 사람을 중심으로 천지를 다시 창조하셨다고 추측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실패를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의 창조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추측은 있을 수 없다. 또 성경은 사람을 타락한 천사의 자리나 메꾸기 위해서 만들어진 대용품으로 보지 않는다. 지혜나 능력에서만 본다면, 사람이 천사보다 뛰떨어질런지도 모른다(시 8:5). 하지만 사람은 천사들이 흠모하는 존재이다. 그 신분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천사는 하나님을 수종드는 종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기업을 이을 자녀이다(히 1:14).

2) 시대설 또는 반시대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던 6일 동안의 하루는 지금의 하루와 동일한 하루가 아니라 긴 시대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 근거를 히브리어의 '날'이라는 말의 용법에서 찾는다. 히브리어의 '날'은 많은 경우에 긴 기간을 의미하는 말로 씌어졌기 때문이다. 또 하나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으시다는 것도 그 근거가 된다. 따라서 창조의 하루는 얼마든지 긴 시대를 의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만일 하루를 백만 년 정도의 기간으로 본다면 지구의 나이는 수백 만 년이 될 수 있다. 하루가 십 억 년 정도의 기간이었다면 인류의 역사는 수십 억 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하루가 긴 시대이었다면 저녁부터 아침까지는 빛과 열이 없어서 모든 것이 얼어죽는 긴 기간이었을 수 있다. 이는 지구에 몇 차례의 빙하기가 있었다는 가설과도 잘 어울린다.

또 6일 전체가 긴 시대는 아니었을지라도 적어도 첫 3일은 긴 시대이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루는 해의 뜨고 지는 것으로 결정이 된다. 그런데 해, 달, 별은 4째날에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최소한 첫 3일은 긴 시대로 보아도 무방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안식일 계명과 어울리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제 4계명으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킬 것을 명령하셨다. 이 명령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를 하신 후, 이레되는 날에는 쉬셨다는 것을 근거로 주어졌다(출 20:11). 여기서 일곱째 날은 다른 여섯 날들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만일 일곱째 날이 긴 기간이라면 다른 6일도 긴 기간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안식일은 긴 기간이 아니라 하루 24시간 동안 지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6일도 동일하게 하루로 보아야 한다. 6일이 동일한 하루이라면, 첫 3일을 예외로 보는 것도 옳지 못하다.

우리는 성경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우리가 성경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 과학도 성경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과학이 성경을 지배하려 해서는 안 된다. 진화론에 근거를 두고 있는 과학과의 조화를 위해 성경을 해석하려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만일 이 사실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과학이 발전하는 날, 미숙한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했던 성급한 해석들이 당할 수밖에 없는 부끄러움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천동설에만 집착하여 갈릴레오를 정죄했던 지난 날의 잘못을 또 다시 저질러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성경이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의 말씀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창조의 주인공으로서 당당하게 천지와 만물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려야 한다. 원숭이를 비롯한 포유류, 양서류, 수중동물, 단세포 동물 등은 우리의 시조가 아니다. 천지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우리가 다스리고 길들여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활용해야 할 도구들에 불과하다.

3. 천사의 창조

우리 주변에는 진화론으로 인한 인간성의 포기 이외에도, 마귀론에 메어서 두려움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것은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심각하게 왜곡시키는 것이다. 이 문제를 바르게 하기 위해, 천사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부터 살펴보자.

1) 천사의 존재

천사는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피조물이다(시 148:5; 골 1:16). 그러나 사람과는 달리 육체를 가지지 않은 순수한 영적 존재이다. 그래서 천사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육체가 없기 때문에 음식을 먹지도 않는다. 결혼을 하거나 생육하고 번성하는 일도 없다(마 22:30). 죽지도 않는다(눅 20:36). 좁은 장소에서 집단적으로 거할 수도 있다(막 5:9). 이러한 존재인 천사는 능히 셀 수 없는 많은 무리를 이루고 있다. 천사들은 생육하고 번성함이 없기에, 모든 천사들은 일시에 지음을 받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창조하신 것은 수종드는 일꾼을 삼으시기 위함이었다. 천사들이 하는 일이란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수호하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회를 보호하는 것 등이다. 이런 일들은 각각 질서에 따라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룹이라는 천사들은 하나님의 위엄을 수호하는 일을 맡고 있다. 그래서 낙원의 입구를 지키고(창 3:24), 속죄소를 덮고 (출 25:18), 지상에 임하시는 주님을 모시는 천사들로 묘사된다(삼하 22:11). 스랍이라는 천사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일을 한다(사 6:2~7). 가브리엘 천사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해석하는 일을 한다. 선지자 다니엘, 세례 요한의 부친 사가랴,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하나님의 전하시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미가엘은 하나님의 군대를 지휘한다(단 10:13, 21).

2) 천사의 타락

천사는 영적 존재이기에 자유로운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람처럼 죄를 범할 수가 있었다. 어떤 천사들은 끝까지 자기의 지위를 지켰다. 그러나 어떤 천사들은 자기의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자유로운 의지로 죄를 범했다. 하나님과 같아지고자 하는 교만 때문이었다(유 6). 그리하여 범죄한 어떤 천사들은 지옥에 던져졌다(벧후 2:4). 그러나 범죄한 천사들 중 어떤 천사들은 하나님의 허용하심 속에서 자유롭게 버리운 바 된 채, 악한 일들을 하고 지낸다(계 12:7~9). 하지만 그들은 모두 마지막 날에 영원한 불못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

천사도 사람의 경우처럼 자기의 자유의지로 죄를 범했다. 그러나 천사의 타락에는 사람의 경우와 다른 점들이 있다. 천사의 타락에는 대표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한 천사가 죄를 범함으로 모든 천사가 죄를 범하게 된 것이아니었다. 일부의 천사들만이 개별적으로 타락을 했다. 또 타락한 천사들에게는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회복의 소망이 없이 계속해서 죄만을 반복하며 지낸다.

타락한 천사들이 하나님의 허용하심 속에서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한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한다. 사람을 미혹하고 범죄를 조장한다. 재난을 일으키기도 한다. 때로는 사람에게 정신이상이나 질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또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사단이다. 사단이란 이름은 '대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단은 악한 자, 옛 뱀, 용, 아폴루온, 참소자라고도 불리운다. 사단의 주변에는 타락한 악한 천사들이 함께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어두움의 주관자, 공중의 권세잡은 자, 귀신, 마귀, 악령 등으로 불려진다.

귀신은 과연 있는 것인가? 있다면 어떤 존재인가? 성경에는 귀신이라는 말이 매우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귀신의 존재에 대해서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존재를 입증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귀신은 일부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원한 맺혀 죽은 사람의 혼이 아니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이 변해서 된 것도 아니다. 그들은 본래 하나님께로부터서 선하게 지음을 받았던 천사들이다. 그러나 스스로 범죄하여 타락한 상태에 빠진 천사들이다. 마지막 날에는 영원한 불못에 던져질 것이지만, 그 때까지는 자유로운 활동을 허락받아서 악한 일들을 하고 지내는 악한 영들이다.

3) 귀신과 질병

최근 우리 주변에는 모든 질병을 귀신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귀신은 사람에게 정신이상을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몸에 질병을 일으킬 수도 있다. 거라사 지방에는 귀신으로 정신이상에 걸려 무덤 사이에서 살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쇠사슬이나 사람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도 알았다(막 5:4). 예수님이 변형되시었던 산 아래에는 귀신들려 간질병을 앓던 아이가 있었다(눅 9:37).

그러나 우리 몸에 생겨난 모든 질병이 귀신 때문에 생겨난 것은 아니다. 우리를 괴롭게 하는 질병들은 귀신과 관계없이 대부분 부주의함이나 잘못된 섭생 때문에 생겨난다. 때로는 귀신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있는 질병도 있다. 나면서 소경된 자의 경우가 그러하다. 주님께서는 그의 소경된 이유가 부모의 죄 때문인지 아니면 자기의 죄때문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으셨다. 그 때 주님께서는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대답하셨다(요 9:3). 그리므로 모든 질병을 귀신과 연관시키는 것은 무리이다.

귀신에 의한 정신병이나 질병은 귀신을 쫓아냄으로써 치료되어진다. 그러나 부주의함으로 생겨난 질병은 적절한 치료를 통해서 나아진다. 예수님께서는 간질병에 걸린 아이를 향하여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하시며 귀신을 내쫓아 병을 낳게 하셨다(막 9:25). 그러나 한 소경에게는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서 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심으로 치료하여 주셨다(요 9:7). 그러므로 귀신으로 말미암지 않은 질병은 간절한 믿음의 기도와 함께 적절한 치료가 있어야 한다.

기독교는 창조 신앙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피조물이 창조주를 평가하려는 자세를 버리고 피조물된 위치를 지켜야 한다. 왜곡된 과학이나 귀신론이 위세를 더할수록 더욱 그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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