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가르침의 본질

기독론 2018. 6. 24. 00:34

부활 가르침의 본질

  

본문: 딤후 2:16-18

요절: 18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17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18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14절에서 사도는, 교회의 교사는 교회에서 거짓 가르침을 전파하는 사람과 절대 논쟁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했습니다. 이들과 논쟁에 들어가면 옆에서 듣는 사람도 영향을 받아 망하게됩니다. , 교인과 교회가 큰 피해를 입습니다. 그 대신 교사는 진리 말씀을 열심히 연구하여 이것을 먼저 자기가 실행하면서 가르치고, 또 성도들이 실행하도록 애써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계속해서 사도는 교회에 들어온 거짓 교리에 대해 경고합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이들이 부활 가르침을 왜곡하는 것을 지적합니다. 부활 가르침은 기독교의 핵심 가르침이며, 이것 없이는 우리 믿음도, 기독교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므로(고전 15:14), 우리가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복습하고자 합니다.

 

지금 주목받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는 이들이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부활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대부분 오늘날 교인의 문제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대체로 부활을 믿습니다. 교회를 상당히 파괴한 루돌프 불트만과 몰트만과 같은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와 부활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가르치고 믿는 부활은 성경이 가르치는 부활과는 전혀 다릅니다. 독일 일반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신자도 이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분명 부활 신앙은 가졌는데, 무슨 부활을 믿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부활은 초대교회에서부터 이단 가르침이 있었으므로, 오늘날과 같은 포스트모던 사회, 후기 사실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는 부활 가르침이 교회에서도조차 올바로 선포되지 않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부활 신앙은 우리가 죽은 후 영원의 문제를 결정하는, 정말로 중요한 가르침이므로 우리는 성경의 부활 가르침을 정확하게 알고, 믿고, 믿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부활을 믿는 성도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삶이 전혀 달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죽으면 영원한 심판으로 눈을 뜨는가, 아니면 영원한 구원으로 눈을 뜨는가를 결정합니다. 오늘 확실하게 부활 가르침을 배워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사도는 망령되고 빈말을 피하라고 합니다. 이러한 말이 나오면 대화에 응하지 말라고 합니다. 망령되다는 말은 거룩한 성도에 걸맞지 않은 사고방식이나 행동방식을 말합니다. 그 말이 매우 영적으로들릴지라도 그것은 빈말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게 되며 우쭐하게 되어 더욱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불경건으로부터 벗어나지 않고 이것이 오히려 진전됩니다. 그리고 그만큼 교회는 망가집니다.

 

그러므로 디모데는 토론을 그치고 이들에게 말씀을 쓰인 그대로, 복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들이 복음을 듣고 순종하면 그들은 영생을 얻을 것이고, 이들이 자기를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상처받고 교회를 떠나면 영생을 완전히 놓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오랫동안 교회에 출석할지라도 회개하지 않고 그들의 영향력이 점점 커진다면, 교회는 이들을 축출(권징)해야 합니다. 그 전에 참을 수 있는 대로 참는 것이 중요합니다. 계속 복음을 가르치면서 다른 사람이 이들의 영향을 받지 않는지 잘 살펴야 합니다. 그러나 주의를 게을리해서 때가 너무 늦으면, 이들이 사람을 선동하여 오히려 목사, 장로가 쫓겨나고 교회는 완전히 이단 교회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을 여러 명을 둔 교회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현대 교회에는 다른 영의 지배를 받으며 사는 신자가 대부분이므로, 오늘날 목회를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17절이 이들의 문제를 말합니다:

 

17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악성 종양을 적시에 잘라내지 않으면 결국 몸이 죽습니다. 예수님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이 교인은 그리스도와 끊임없이 교제하면서 삽니다. 그러나 다른 가르침, 다른 복음, 다른 말이나 생각은, 악성 종양이 퍼지는 것처럼 교회에 영향을 줍니다. 갈수록 교회 지체가 그곳에 빠지고 하나님을 적대하는 영에 감염된다면, 이때는 너무 늦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체 일부분인 팔이나 다리를 잘라내는 일은 없도록 미리 조처해야 합니다.

 

이곳에서 바울은 해당하는 사람의 이름을 댑니다. 그 이유는 사도가 무엇을 말하고 누구를 문제로 삼는지를 분명히 밝히기 위한 것입니다. 후메네오는 이미 딤전 1:19-20에 언급되었습니다. 그는 진리를 버렸고 바울은 그를 무섭게 징계했습니다(참조: 고전 5:5). 그 후로 그는 이제 교회 밖에서 복음을 위조하여 다른 복음을 만들어 전하는 사람들의 지도자가 된 것 같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결단력이 없었더라면, 에베소 교회는 암이 퍼져서 이단 교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18절에서 사도는 이들의 문제를 분명히 밝힙니다: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18)

 

이들은 잘못된 부활 신앙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러면 먼저 성경이 부활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를 쓰기 한참 전에 이미 고린도전서를 통해 고린도 교회에 부활에 대해 상세하게 가르쳤습니다. 그곳 교회에서도 부활을 두고 심각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부활의 순서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고전 15:23).

 

이에 따르면 먼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그다음에 그분이 다시 오실 때 그분께 속한 자들이 부활합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재림하시기 전에는 아무도 부활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마감하시고자 다시 오실 때 우리는 비로소 부활합니다.

 

그러므로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은 먼저 죽어야 합니다. 시체가 썩어서 흔적도 없어진 사람도 예수님께서 부활시키십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전혀 새로운 몸을 입고 부활합니다: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의 몸도 있느니라”(고전 15:43-44).

 

우리는 지금 땅에 합당한 몸을 가지고 있지만, 부활 시에는 하늘의 영광과 영생에 합당한 몸을 입습니다. 해와 달과 별과 같은 영광된 몸입니다(고전 15:40-41). 모두 똑같은 몸을 입는 것이 아니라, 외관이 서로 구분됩니다.

 

그런데 우리 몸만 부활할 뿐만 아니라, 우리 영혼도 새로워집니다. 우리는 완전히 성화 되어 하나님을 면전에서 뵙게 됩니다. 우리는 새로운 육신을 입고 있으므로, 육신이 우리를 정욕으로 자극하지도 않고, 사단도 불못에 있으므로 우리를 충동질하지 못합니다. 죄는 더이상 간 데가 없고, 우리는 죄를 지을 수도 없게 됩니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하며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가 되어 그분과 영원히 함께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립니다. 내일 복권이 당첨되기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내일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영광된 부활에 참여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지금 에베소 교회에서 문제 되는 사람은 이미 부활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것은 당시 유행하기 시작하던 영지주의 가르침으로서, 이들의 부활론은 기독교 가르침과 겉으로는 매우 비슷하게 보이고, 이들은 일반 교인에게. “우리는 너희와는 다른 고급 신자다라고 자랑하므로, 점차로 이들이 교회를 어지럽히게 됩니다. 이들의 부활 가르침은 신비하게 보입니다. 그 안에 깊은 무엇이 있는 것 같아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사도 바울에 따르면, 이들은 부활이 이미 일어났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이들이 엑스터시 때 부활이 일어나서 완전한 구원이 이미 일어났다는 의미입니다. 영혼이 드디어 육신의 감옥을 빠져나와 구속 받은 것입니다. 지상에 있는 동안에는 이것이 가끔 일어나지만, 죽고 부활한 다음에는 항상 이러한 엑스터시 상태에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들 가르침이 기독교 가르침과 비슷한 것은, 6장에서 그리스도인도 믿을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난다고 하고, 죽어서도 다시 부활한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영지주의자는 엑스터시를 통해 먼저 부활하고, 죽어서 온전히 육으로부터 해방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들의 가르침과 성경을 자세히 비교해보면 양자는 전혀 다릅니다. 이들은 부활을 체험한 이후에도 육을 제어하고자 대단한 금욕생활을 합니다. 혹은 이들은 육은 영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므로 방탕한 생활을 하는 영지주의파도 있었습니다. 1945년에 나그 함마디에서 발견된 영지주의 문서에도 이러한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도울 김용옥이 까불고 다니면서 영지주의를 많이 소개하면서 신약성경이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아 기록되었다고 합니다(“기독교성서의 이해”). 이것은 유명한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의 이야기입니다.

 

영지주의는 이원론을 극단적으로 주장하여, 영은 선하고 육을 악한 것으로 규정하므로, 이들은 예수님의 성육신과 고난과 죽음을 부인합니다. 그리스도가 악한 육을 입을 수가 없으므로, 단지 육을 입을 것으로 보인 것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인간이 죽었다는 가현설을 주장합니다.

 

이들은 자기들만 알고 있는 영적 비밀을 깨달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리스도는 승천 이후에 그들에게 이 비밀 코드를 알려줍니다. 이것이 영지라는 것입니다. 이 영지는 자기들만 알고 그들만 관리합니다. 이것을 터득하려면 많은 비밀 제식을 거쳐야 합니다. 이단전문가 정동섭 박사에 따르면, 신천지가 바로 이것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사람을 합숙시켜 열심히 가르칩니다. 그는 또한 구원파가 영지주의적 이단임을 밝혔습니다. 박옥수에 따르면, 죄 사함을 깨달으면(영지를 얻으면) 의인이 된다고 합니다. 그는 더이상 죄를 짓지 않는 진짜 의인이 되므로 죄인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의인이 된 후에는 절대 회개를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구원파의 진정한 복음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파격적이고 기쁜 소식입니까? 회개하기를 즐기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를 기쁜소식선교회라고 합니다.

 

한국교회는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가면서 혼합종교 운동이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영지주의 가르침이 이미 교회에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체계적인 사고보다는 직관을 통한 깨달음을 좋아하고, 유럽인들처럼 수년간 조금씩 배워 높은 지식에 도달하기보다는, 순간적인 통찰(영지)을 통해 도를 깨달으려는 한국인의 유전인자가 여기에 많이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독일에서 공부하면서 이러한 경향 때문에 처음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자란 우리는 특별한 깨달음을 좋아하고, 이 깨달음으로 성경을 기발하게 재해석하는 사람이 많고, 이 중에서 뛰어난 사람이 이단의 교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좀 더 기술이 있는 사람은 자기 생각을 교묘하게 성경 가르침의 옷을 입혀 가르쳐, 많은 사람을 모으고 대형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올해 1월에 홍정길 목사는 다음과 같이 실토했습니다: "누가 양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목자라 할 수 있겠나. 그러다 보니 어느새 목회는 사라지고 매니지먼트(관리)만 남게 됐다" "주님이 보시기에 나는 가짜 목사였던 것이다. 그래서 고민이 많았다."

 

많은 사람이 관상기도 찬양자인 홍정길, 이동원과 같은 무리를 가짜 목사로 알고는 있지만, 그가 이것을 실토한 것은 충격적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따르면 가짜 목사는 사람을 물어 찢는 늑대이며, 그가 죽어서 가는 곳은 지옥이며, 일반인보다 더 무서운 형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는 태연히 나는 가짜 목사였다고 한 것으로 보아, 그가 지옥을 믿지 않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아마도 그는 믿음을 통한 구원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하나님은 분명히 다른 하나님입니다. 그가 이것을 지금 실토하는 것은, 그가 누릴 영광은 이미 다 누렸으니, 이제 죽기 전에 마음에 남은 부담을 제거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가르치는 부활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셔서 우리가 받을 죄의 삯(영원한 죽음)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죄가 없으시므로 죽음이 그를 붙잡아 둘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부활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그분은 죄인도 부활에 참여하는 길을 여신 것입니다. 죄인이 부활을 위해서는, 먼저 자기 죄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시인하고 가슴 아파해야 합니다. 이것이 회심입니다. 이것이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죄 고백은 간단한 입 놀림이 아니라 죽는 것과 같은 고통을 수반합니다. 그런데 수십 번 죄 고백을 해야 참다운 고백이 나오므로 수십 번 죽어야 합니다. 특히 한국인, 일본인에게는 진실한 죄 고백이 정말로 어렵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자기 죄를 고백하는 것은, 칼로 자신을 찔러죽이기보다 더 어렵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 고백이 매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죄를 고백하는 자는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진심으로 회개하기까지는 적어도 30년이 걸린 것 같습니다. 그 이후부터 저는 진심으로 아내에게 과거의 제 잘못을 사과할 수 있었습니다. 그전에는 아내에게 사과한 적이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진심으로 사과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앞에서 한 번 진실되게 죄 고백을 한 사람은, 계속 죄 고백을 할 수 있고 회개할 수 있게 됩니다. 자기 죄가 더욱 잘 보여서 계속 회개하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가 부활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새 삶으로 부활했으므로, 자기 죄가 더 많이 보이고, 자기의 추한 모습을 알므로, 이것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가 부활했지만, 아직 옛사람을 지니고 있으므로 계속 공격을 받아 연약해져 죄를 짓는 경우가 있고, 이것을 마음 아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입니다. 또한, 그는 죄인이지만, 사함 받은 의인입니다.

 

내 안에 아직 옛사람이 살아있고, 이것은 내가 몸으로 부활할 때에 비로소 벗어버릴 수 있으므로,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옛사람의 충동질 때문에 괴로움을 겪어야 합니다. 나는 때로는 피나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자기부인이며 우리가 일생 지고 갈 십자가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부활의 권능을 나누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계속 믿음과 능력을 주셔서 죄에 대항한 투쟁에서 이기게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선취하는 부활의 권능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 권능을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고전 15: 55-57):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이겨야 합니다. 이것이 이미 부활한 자의 표적입니다. 다른 표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교인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설교를 통해 이미 깨달음이 왔으므로(영지를 받아) 나는 거듭났으며(부활했으며),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니(세례도 받고 성찬식에도 참여하고, 교회 생활을 적극 하니), 내가 구원받은 것은 지극히 다양하다. 내 구원의 확신은 아무도 흔들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방언을 구원(영지)를 받은 증표로 생각합니다. 이것을 자기는 고급 신자라는 표시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방언하기를 즐깁니다. 그러나 방언과 구원은 관계가 없을뿐더러, 아무도 자기가 진짜 방언을 하는지 확인할 수도 없습니다.

 

영지주의자는 자기는 고급신자이며, 일반 교인은 하급신자라고 합니다. 한국인은 비교우위를 좋아하므로, 될 수 있으면 고급신자가 되고자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단의 큰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너희와 다르다!”고 합니다. UBF, 한국 Navigator가 이런 무리에 속합니다. 대형교회도 이런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이 의의 열매(성화)을 가르칩니다. 구원은 단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오는 것이며, 우리는 그 은혜로 그분의 뜻이 담긴 계명을 지키면서, 회개하면서 거룩한 삶을 이루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전부 거짓이며 교만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의 시발이 된 루터의 95개 조 제1항이 그리스도인은 매일 옛 아담을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지 않고 관상기도를 한다든지, 방언을 한다면 그는 입신한 영지주의자와 같습니다. 마음이 답답할 때 기도하거나, 말씀을 외우고 읽음으로써 위로를 찾는 것들도 여기에 속합니다. 이들은 이미 의인이 되어 있으므로 진실한 회개를 할 수 없습니다.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한 자에게는, 늘 마음에 그리스도가 살아계시고, 마음이 영원한 부활에 가 있으므로, 하나님이 원치 않는 생각을 하거나 행동을 한다면 마음에 큰 부담이 생겨 회개하여 관계를 새롭게 합니다. 이것이 그가 부활했다는 표시이며, 앞으로 새 몸을 입고 영생으로 부활한다는 보증입니다. 여러분이 이 부활에 참여하기를 원합니다. 모든 것이 죄 문제에 달려있습니다. 죄를 해결하는 길은 회심/ 회개 외에는 없습니다. 회개가 영원한 죽음과 영원한 부활을 가르는 기준입니다.

 

http://cafe.daum.net/reformedvillage/MvxA/97


출처: 영적분별력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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