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과 절제
하나님의 성회(윤영일) 2021. 7. 4. 09:43기독교인은 왜 훈련과 절제의 삶을 사는 것을 그토록 중요하게 강조하는가?
두 번째 질문 -------------------------------------------
우리들은 훈련과 절제의 중요성을 두 가지 면에서 직면합니다. 첫째로는, 성경이 그것을 요구합니다. 둘째로는, 통제 불가능하며, 자유분방하고, 또 이기주의적인 우리 사회의 본질은 바로 잡아 줄 것을 부르짖고 있는데, 그것은 오직 개인의 훈련과 절제를 통하여서만이 성취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매일 보도되는 뉴스와, 기독교에 반대하는 주제를 가진 영화, 그리고 묘하게 도덕을 타락하도록 만드는 텔레비전의 연속 코미디와 같은 것을 보면서 우리들은 “이 세상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라고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이 세상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특별히 우리들이 알고 있는 이 세상의 마지막 날에 있을 도덕적인 현상에
대해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서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모든 것은 결국 내면의 훈련이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통제할 수 없는 사회로 귀결됩니다. 디모데후서 3:1-5 은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라고 말씀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고 다급하게 그 항목들을 급하게 스쳐 지나갔다면, 아마도 당신은 “절제하지 못하며” 라는 말을 놓쳤을런지도 모릅니다.
이 항목들 가운데 있는 다른 모든 악한 행동들은 절제함의 결핍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대한 예(例)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예언을 성취하고 있는 그러한 악(惡)과는 다른 모습으로 굳게서 있어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35).
물론, 사랑은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 가운데 첫 번째 열매입니다 (갈라디아서 5:22, 23). 절제는 그 항목에서 마지막입니다. 그러나 절제는 앞에 있는 모든 다른 성령의 열매 혹은 덕을 통제합니다. 통제함이 없는 사랑은 열정이 됩니다. 과도한 희락은 천박한 것입니다. 자제함이 없는 화평은 나태함이 됩니다. 균형이 없는 오래 참음은 냉담함이 됩니다.
자비는 약점이 되며, 양선은 이기적인 것이 됩니다. 아무런 이유 없는 충성은 맹목적인 미신과 같습니다. 극단적인 온유는 겁쟁이가 됩니다. 세상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만, 그러나 그것의 어두워진 마음은 경건한 삶의 거짓 그림자를 알고 있을 뿐입니다. 기독교인들은, 통제할 수 없는 세상 앞에서, 절제에 대한 본을 보여주어야만 합
니다.
타락하고 악한 세상에서는, 절제는 신앙심이 없는 길에서부터 완전한 절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편 1). 성령의 열매를 나열한 곳 바로 앞에 육체의 일로 기록한 것들 --- “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 (갈라디아서 5:19-21) --– 은, 주님 앞에서 걸어가는 우리들의 삶을 성령께서 순화하시도록 함으로서, 우리들의 삶에서 배제되어야 합니다.
훈련과 절제는 성품을 표시합니다. 기독교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여가와 쾌락이 높은 목표를 성취하는 데 필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기도, 금식, 성경공부, 그리고 고귀한 것들에 대한 명상과 함께 갖어야만 하는 휴식과 그들이 종사하는 직업 사이에 얼마나 더 균형있는 삶을 가져야만 할까요?
자제는, 편리하다고 해서, 기독교인의 다른 덕에 보태는 사치품목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이 충만한 기독교인을 확인시켜주는 표시입니다. 베드로는 그것을 일곱 가지 덕 가운데 나열하였으며, 그것을 무엇보다도 믿음에 포함시켰습니다 (베드로후서 1:5-7).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
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베드로후서 1:8, 9).
관심사: 자제심은 훌륭한 지도력을 위한 근본적인 자질입니다. 영적 지도자는 자제심에 대해 본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자제심을 배우고 또 실천하도록 젊은이들에게 권면해야 합니다. 목회자가 자제심에 대해 본이 되어야할 뿐만 아니라, 주일학교 교사와 학부형들 또한 그들이 영적 책임을 져야하는 사람들에게 자제심을 고취시킬 책임이 있습니다.
지금은 젊은이들의 시대입니다. 엄청난 숫자의 20 세 이하 젊은이들은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지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의 본질 때문에, 그들은 자연적인 경험을 통해서나 혹은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서 별로 자제심을 개발하지 않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자제심에 대해 본이 되는 지도자를 더욱 더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자제심의 본은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의 생활과 일관 되어야만 합니다. 예를 들면, 분명히 먹는 것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이 술을 절제하는 것에 대해 호소를 한다면 그 효과는 상당히 절감될 것입니다. 자신의 성질을 잘 잃어버리는 사람이 욕설이 악한 것이라고 가르친다면 그다지 효력이 없을 것입니다.
자제심이 성령 충만한 삶의 열매 가운데 하나인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입니다.
* 위에 기술한 것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이해에 근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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