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 경계해야 할 1가지 덫
자료실 2009. 8. 6. 04:19 "승리하는 삶 위한 완전무장의 비결"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는 요즈음의 그리스도인이 가장 빠지기 쉬운 죄악들은 무엇일까. 역사상 그 어떤 시대보다도 죄악의 덫에 걸릴 기회가 더 많은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여기에 <히틀러의 십자가>와 <다빈치 코드 깨기> 등의 저자인 어윈 루처 목사(시카고 무디기념교회)가 지적한‘그리스도인이 경계해야 할 7가지 덫’(Seven Snares of Enemy)의 주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생명의 면류관은 순교자와 함께 유혹의 시험을 극복하는 자들에게도 주어진다. 욕망을 다스리는 것이 복음을 위해 순교하는 것만큼이나 어렵기 때문이다.
현대의 그리스도인이 빠지기 쉬운 죄악의 덫은‘탐욕과 도박, 알코올중독, 포르노, 불법섹스, 쾌락, 신비주의’등이다.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기 만해도 갖가지 프로그램과 광고들이 이들 덫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특히 전 세계에 뻗어 있는 인터넷망은 유익하고 좋은 정보를 제공하지만, 사람들에게 타락한 열정을 불어넣기도 한다. 일단 죄악을 선택하면 그것을 더욱 자극하고, 표현하며, 거기에 중독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하기쉽다.
‘더 많이’라 불리는 괴물… “탐욕”
돈을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다. 우리의 의지 대상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로 바뀔 때 우리는 자신과 자신의 소유를 하나님의 위치에 둔다.
우리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못할 때 탐욕의 씨앗이 심어진다. 바울은 탐심이 곧 우상숭배라고 했다. 하와는 하나님처럼 되려는 탐심을 품어 먹어서는 안될 열매를 따 먹었다. 룻의 아내는 소돔을 탐하여 소금 기둥이 되었다. 다윗은 이웃의 아내를 탐하여 심적 고통을 겪었고 가정이 깨지는 아픔을 맛보았다.
탐욕은 단지 부유한 자의 죄가 아니라 자신의 수입을 넘어선 생활을 하는 자의 죄이며, 현재를 위해 자신의 미래를 저당 잡히는 어리석은 선택을 내리는 자의 죄다. 다른 이와 같은 수준의 삶을 살기 위해 신용카드를 이용한 대출은 탐욕이다. 하나님이 돈을 허락하지 않으시는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자신의 요구를 채우는 데 필요한 시간을 그분께 드려야 하며, 그분이 주실 때까지 기꺼이 기다려야 한다. 오늘날에는 신용카드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흔하지만, 차용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조성할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
탐욕을 이기는 방법은 먼저 마음속에 탐욕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탐욕을 간파하기 힘든 이유는 사회에서 그것을 전혀 치욕스럽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괴물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우리 죄를 보여주며 그것을 극복하려는 동기와 힘을 주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가를 자문해야 한다.
하나님이 모든 근원이라는 것을 아는 것과 달리 삶에서 적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식일 뿐이다. 베푸는 것은 많이 소유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오히려 공급함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다. 베푼다는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상호 합의에 의한 도둑질… “도박”
한 연구자료에 의하면, 십대들 중 67% 가량이 도박을 한 적이 있다. 코네티컷에서는 고등학생의 24%가 도박을 하기 위해 수업을 빼먹은 경험이 있었다. 메사추세츠에서는 고등학생 20명 중 한 명 정도가 도박 관련 범죄로 체포된 적이 있다.
도박은 상호 합의에 의한 도둑질이다.
도덕적이지 않은 어떤 일을 하기로 서로동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박은‘부해지려는 갈망’에 기초한다. 도박업계는 도박의 부정적 이미지를 감추기 위해 ‘게임’이라는 명칭을 쓴다.
문명국이라면 착취당하는 자들을(다른 누군가를 희생시켜서라도 한 몫을 잡기위해 돈을 허비하는 자들을) 발판으로 삼아 경제를 일으키려 해서는 안 된다.
도박은 실제로 주 정부의 재원을 확충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재원을 허비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도박에서 비롯되는 다른 범죄들을 처리하기 위해 많은 비용이 지출되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마귀가 도박을 창안했다” 고 말했다. 도박은 노동윤리를 위반한다.
노동을 조롱하는 행위다. 도박은 일하지 않고 버는 불로소득이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살후3:10)의 경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
돈을 얻는 성경적인 방법은 첫째는 일이다. 둘째는 유업으로 물려받는 것이다. 셋째는 투자이다. 넷째는 증여이다. 도박은 이 범주들 중 어디에도 들지 않는다. 도박은 부유해지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것을 훔치는 짓이다. 그것은 인간의 약점을 발판으로 삼는다.
도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든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또한 △진리를 통해 자유해지라 △관계를 통해 힘을 얻으라 △회복의 계획을 철저히 세우라 △ 감시받고 통제받으라.
파멸에 이르게 하는 황홀한 도피처…“알코올 중독”
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이 교회에 가져다주는 슬픔과 수치와 궁핍 등의 폐해는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아마 이것은 가장 광범위하게 깔린‘은밀한 덫’ 중 하나이다.
중독자는 자신이 슬픔을 피할 방법을 발견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중독증은 만족감과 생동감을 약속하며, 현실의 심한 고통을 느낄 필요도 없이 도피감을 갖게한다. 알코올로 인한 도취감이 그 고통을 대체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중독문제와 관련하여 자기 의를 내세울 근거는 전혀 없다. 중독은 우리 모두에게 위험한 것이다. 그 덫이 설치되면 우리의 삶은 거기에 걸려들어 파멸될 수도 있다.
중독은 계층이나 남녀의 성이나 직업에 의해 제한받지 않는다. 수많은 남성과 여성, 그리고 십대들도 중독되어 있다. 성직자와 의사, 변호사, 회게사들도 약물에 의존한다. 어느 목회자는 알코올 중독에 빠져 사기를 비롯한 모든 종류의 부정행위를 정당화했다. 성경은 술취함에 대해 여러 차례 경고하고 있다.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단계는 하나님의 손길로 정결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알게 되면서 곧바로 구원을 경험한다.
술에 대한 관심보다 하나님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분께 나아갈 때만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 중독자는 자기 자신을 숨기지 말아야 한다. 중독을 감추면 그것이 더 심하게 곪는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개입하여 그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절실히
요구된다. 성경암송 훈련이나 위업과 더불어 매주 1회 이상 상담 등 관리도 필요하다.
영혼을 죽이는 은밀한 성적 망상…“포르노”
포르노의 70% 가량이 아이들 손에도 들어간다고 한다. 인터넷은 포르노 가게를 각 가정으로 옮겨 놓은 듯하다. 그리스도인 남자들 중 절반 가량이 어떤 형태로든 포르노와 싸우고 있다고 한다.
비기독교 세계에서는 포르노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포르노와의 접촉은 영혼을 죽이는 은밀한 망상으로 끌어들인다. 이것은 마치 몸을 파는 곳을 지날 때 여성이 접근해서 잡아당기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결국은 자신의 영혼을 파멸시키게 된다고 경고한다.
올해 미국에서 태어나는 여아들 네 명중 한 명이 언젠가는 성추행을 당할 것이라는 사실에는 성적 욕구를 이용하는 포르노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다. 휴 헤프너가 본격적으로 포르노 사업을 시작했던 때인 1953년에만 해도 누군가의 아내나 딸이 6분마다 강간당하지는 않았다. 소아성애는 드물었다. 지금은 소아성애가 매일 매시간 범해지고 있다. 포르노에서는 온갖 형태의 성도착이 소개되며, 그런 욕구들이 행동으로 표출되면서 갖가지 성범죄들이 발생한다.
정욕은 집요하게 들러붙기 때문에 끝까지 싸워야 할 싸움이다. 예수님은 죄를 지은 지체를 잘라버리는 것같이 절단하는 것이 해결책 중의 하나라고 했다. 실제로 눈을 뺄 수 없고 손을 잘라버릴 수는 없지만 그런 고통을 동반하는 절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여야 한다.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정결을 위한 싸움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달콤한 독이 들어있는 오아시스…“불법 섹스”
하나님은 서로 헌신하며 언약으로 결속된 남녀에게만 성적 경험을 허용하셨다. 그들은 일생 동안의 헌신을 통해 온전한 상호수용과 조건 없는 사랑을 지켜내야 했다. 남녀간 결혼언약 밖에서의 섹스는‘이질적 결속’즉 다른 사람과의 옳지 않은 결속 관계를 조성한다. 그런 불법적‘영혼의 결속’은 중독증을 유발 하기도 한다.
불법 섹스 중독자는 탄로날까 봐 항상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 특히 가족들과 친밀하게 지내지 않는다. 성관계를 갖되 결혼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가 하면 아무런 주저 없이 상대방을 바꿔 대는 이들도 있다. 어떤 식으로 하든 죄를 혐오하시는 하나님의 눈을 회피할 수는 없다.
난잡한 성관계는 결국 자기 부인과 다른 여자들이 한 침대에 누워 있는 것과 같다. 에이즈 연구가들은 성관계를 맺을 때 결국 전에 상대방과 성관계를 가졌던 다른 사람들 모두와 함께 성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난잡한 섹스를 일삼았던 상대방은 자신의 상대들과 형이상학적으로도 결합되었다. 그들은 서로‘하나’ 가 된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선 △하나님 앞에서 시인하라 △모든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라 △회개 유지를 위해 매일 노력하라 △가족 관계의 치유를 경험하라 등을 실천해야 한다.
결코 채울 수 없는 격렬한 갈증…“쾌락”
우리는 쾌락으로 흠뻑 젖은 문화 속에서, 영원한 가치에 관한 깊은 생각을 멀리하는 쾌락 추구자들의 나라에서 살고 있다. 세상 쾌락에 몰두하는 것을 가리켜‘쾌락주의’라고 지칭한다. 이것은 섹스와 음식, 돈, 여가 그리고 온갖 종류의 소비를 즐기는 삶이다. 이러한 생활방식은‘이 세상’중심의 사고방식을 소중히 여긴다. 모두들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한다고 본다.
실제로 우리의 문제는 쾌락 추구 자체가 아니라 그릇된 곳에서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시험거리다. 그릇된 쾌락은 행복에 대한 환상을 제시하지만, 결국 쓰라림과 공허함과 후회를 가져다준다. 이 세상에서 사는 삶의 목적이 마음껏 즐기고, 좋은 시간을 갖고, 행복해지고, 돈을 벌고, 편안하고 안락하게 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우리는 단호하게 버려야 한다.
그것은 참된 삶이 아니다. 우리가 기진 돈을 하나님께 맡기고 모두 그 분의 것임을 진심으로 인정해야 한다. 또 우리는 시간을 재량껏 하나님께 드려야하며 TV를 끄고‘주님, 제가 무엇을 하기 원하십니까’하고 물어보아야 한다. 하나님께 푹 빠져 있는 것만이 세상에 물들지 않기 위한 유일한 예방접종이다.
매혹과 음모를 지닌 암흑의 세계…“신비주의”
신비주의의 미끼는 TV와 인터넷, 서점, 영화 등 어디에나 있다. 한때 그것은 사회의 언저리에 존재했지만 오늘날에는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덫은 호기심, 은밀한 지식, 성취, 힘 따위의 미끼로 우리를 유혹한다.
신비주의로 들어가는 입구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러나 TV와 영화가 가장 넓은 그물을 드리우고 사람들을 가장 많이 사로잡고 있다. ‘머피와 벰파이어’나‘마법에 걸리다’(Charmed) 같은 TV 프로그램들과‘프랙티컬 매직’이나‘크래프트’같은 영화들이 신비주의를 대중화 시킨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사탄의 나라를 접하거나, 마녀의 집회에 참석하거나, 피 의식에 동참하거나, 마귀에게 우리 영혼을 팔 수도 있다.
점성술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지혜를 추구하기 때문에 가증스러운 행위이다. 점판, 별점 그리고 점 따위는 사탄의 통제를 받는 신비주의에 복종하도록 유혹하는 매력적인 올무들이다.
초자연적인 치유(외적 치유이든 내적치유이든) 능력을 주장하는 것 역시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명상과 마약, 하드 록과 프리 섹스 등도 마찬가지다.
신비주의로 연결된 모든 경로를 배격해야 한다. 점판과 별점 책 또는 격렬한 게임 따위와 같은 것들을 모조리 제거하라. 당신을 신비주의의 죄악 속으로 이끌었던 사람이나 장소로부터 철저히 떠나야 한다.
우형건 기자 ⓒ 크리스찬투데이
출처: 아멘넷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는 요즈음의 그리스도인이 가장 빠지기 쉬운 죄악들은 무엇일까. 역사상 그 어떤 시대보다도 죄악의 덫에 걸릴 기회가 더 많은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여기에 <히틀러의 십자가>와 <다빈치 코드 깨기> 등의 저자인 어윈 루처 목사(시카고 무디기념교회)가 지적한‘그리스도인이 경계해야 할 7가지 덫’(Seven Snares of Enemy)의 주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생명의 면류관은 순교자와 함께 유혹의 시험을 극복하는 자들에게도 주어진다. 욕망을 다스리는 것이 복음을 위해 순교하는 것만큼이나 어렵기 때문이다.
현대의 그리스도인이 빠지기 쉬운 죄악의 덫은‘탐욕과 도박, 알코올중독, 포르노, 불법섹스, 쾌락, 신비주의’등이다.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기 만해도 갖가지 프로그램과 광고들이 이들 덫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특히 전 세계에 뻗어 있는 인터넷망은 유익하고 좋은 정보를 제공하지만, 사람들에게 타락한 열정을 불어넣기도 한다. 일단 죄악을 선택하면 그것을 더욱 자극하고, 표현하며, 거기에 중독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하기쉽다.
‘더 많이’라 불리는 괴물… “탐욕”
돈을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다. 우리의 의지 대상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로 바뀔 때 우리는 자신과 자신의 소유를 하나님의 위치에 둔다.
우리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못할 때 탐욕의 씨앗이 심어진다. 바울은 탐심이 곧 우상숭배라고 했다. 하와는 하나님처럼 되려는 탐심을 품어 먹어서는 안될 열매를 따 먹었다. 룻의 아내는 소돔을 탐하여 소금 기둥이 되었다. 다윗은 이웃의 아내를 탐하여 심적 고통을 겪었고 가정이 깨지는 아픔을 맛보았다.
탐욕은 단지 부유한 자의 죄가 아니라 자신의 수입을 넘어선 생활을 하는 자의 죄이며, 현재를 위해 자신의 미래를 저당 잡히는 어리석은 선택을 내리는 자의 죄다. 다른 이와 같은 수준의 삶을 살기 위해 신용카드를 이용한 대출은 탐욕이다. 하나님이 돈을 허락하지 않으시는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자신의 요구를 채우는 데 필요한 시간을 그분께 드려야 하며, 그분이 주실 때까지 기꺼이 기다려야 한다. 오늘날에는 신용카드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흔하지만, 차용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조성할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
탐욕을 이기는 방법은 먼저 마음속에 탐욕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탐욕을 간파하기 힘든 이유는 사회에서 그것을 전혀 치욕스럽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괴물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우리 죄를 보여주며 그것을 극복하려는 동기와 힘을 주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가를 자문해야 한다.
하나님이 모든 근원이라는 것을 아는 것과 달리 삶에서 적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식일 뿐이다. 베푸는 것은 많이 소유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오히려 공급함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다. 베푼다는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상호 합의에 의한 도둑질… “도박”
한 연구자료에 의하면, 십대들 중 67% 가량이 도박을 한 적이 있다. 코네티컷에서는 고등학생의 24%가 도박을 하기 위해 수업을 빼먹은 경험이 있었다. 메사추세츠에서는 고등학생 20명 중 한 명 정도가 도박 관련 범죄로 체포된 적이 있다.
도박은 상호 합의에 의한 도둑질이다.
도덕적이지 않은 어떤 일을 하기로 서로동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박은‘부해지려는 갈망’에 기초한다. 도박업계는 도박의 부정적 이미지를 감추기 위해 ‘게임’이라는 명칭을 쓴다.
문명국이라면 착취당하는 자들을(다른 누군가를 희생시켜서라도 한 몫을 잡기위해 돈을 허비하는 자들을) 발판으로 삼아 경제를 일으키려 해서는 안 된다.
도박은 실제로 주 정부의 재원을 확충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재원을 허비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도박에서 비롯되는 다른 범죄들을 처리하기 위해 많은 비용이 지출되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마귀가 도박을 창안했다” 고 말했다. 도박은 노동윤리를 위반한다.
노동을 조롱하는 행위다. 도박은 일하지 않고 버는 불로소득이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살후3:10)의 경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
돈을 얻는 성경적인 방법은 첫째는 일이다. 둘째는 유업으로 물려받는 것이다. 셋째는 투자이다. 넷째는 증여이다. 도박은 이 범주들 중 어디에도 들지 않는다. 도박은 부유해지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것을 훔치는 짓이다. 그것은 인간의 약점을 발판으로 삼는다.
도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든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또한 △진리를 통해 자유해지라 △관계를 통해 힘을 얻으라 △회복의 계획을 철저히 세우라 △ 감시받고 통제받으라.
파멸에 이르게 하는 황홀한 도피처…“알코올 중독”
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이 교회에 가져다주는 슬픔과 수치와 궁핍 등의 폐해는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아마 이것은 가장 광범위하게 깔린‘은밀한 덫’ 중 하나이다.
중독자는 자신이 슬픔을 피할 방법을 발견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중독증은 만족감과 생동감을 약속하며, 현실의 심한 고통을 느낄 필요도 없이 도피감을 갖게한다. 알코올로 인한 도취감이 그 고통을 대체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중독문제와 관련하여 자기 의를 내세울 근거는 전혀 없다. 중독은 우리 모두에게 위험한 것이다. 그 덫이 설치되면 우리의 삶은 거기에 걸려들어 파멸될 수도 있다.
중독은 계층이나 남녀의 성이나 직업에 의해 제한받지 않는다. 수많은 남성과 여성, 그리고 십대들도 중독되어 있다. 성직자와 의사, 변호사, 회게사들도 약물에 의존한다. 어느 목회자는 알코올 중독에 빠져 사기를 비롯한 모든 종류의 부정행위를 정당화했다. 성경은 술취함에 대해 여러 차례 경고하고 있다.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단계는 하나님의 손길로 정결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알게 되면서 곧바로 구원을 경험한다.
술에 대한 관심보다 하나님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분께 나아갈 때만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 중독자는 자기 자신을 숨기지 말아야 한다. 중독을 감추면 그것이 더 심하게 곪는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개입하여 그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절실히
요구된다. 성경암송 훈련이나 위업과 더불어 매주 1회 이상 상담 등 관리도 필요하다.
영혼을 죽이는 은밀한 성적 망상…“포르노”
포르노의 70% 가량이 아이들 손에도 들어간다고 한다. 인터넷은 포르노 가게를 각 가정으로 옮겨 놓은 듯하다. 그리스도인 남자들 중 절반 가량이 어떤 형태로든 포르노와 싸우고 있다고 한다.
비기독교 세계에서는 포르노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포르노와의 접촉은 영혼을 죽이는 은밀한 망상으로 끌어들인다. 이것은 마치 몸을 파는 곳을 지날 때 여성이 접근해서 잡아당기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결국은 자신의 영혼을 파멸시키게 된다고 경고한다.
올해 미국에서 태어나는 여아들 네 명중 한 명이 언젠가는 성추행을 당할 것이라는 사실에는 성적 욕구를 이용하는 포르노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다. 휴 헤프너가 본격적으로 포르노 사업을 시작했던 때인 1953년에만 해도 누군가의 아내나 딸이 6분마다 강간당하지는 않았다. 소아성애는 드물었다. 지금은 소아성애가 매일 매시간 범해지고 있다. 포르노에서는 온갖 형태의 성도착이 소개되며, 그런 욕구들이 행동으로 표출되면서 갖가지 성범죄들이 발생한다.
정욕은 집요하게 들러붙기 때문에 끝까지 싸워야 할 싸움이다. 예수님은 죄를 지은 지체를 잘라버리는 것같이 절단하는 것이 해결책 중의 하나라고 했다. 실제로 눈을 뺄 수 없고 손을 잘라버릴 수는 없지만 그런 고통을 동반하는 절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여야 한다.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정결을 위한 싸움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달콤한 독이 들어있는 오아시스…“불법 섹스”
하나님은 서로 헌신하며 언약으로 결속된 남녀에게만 성적 경험을 허용하셨다. 그들은 일생 동안의 헌신을 통해 온전한 상호수용과 조건 없는 사랑을 지켜내야 했다. 남녀간 결혼언약 밖에서의 섹스는‘이질적 결속’즉 다른 사람과의 옳지 않은 결속 관계를 조성한다. 그런 불법적‘영혼의 결속’은 중독증을 유발 하기도 한다.
불법 섹스 중독자는 탄로날까 봐 항상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 특히 가족들과 친밀하게 지내지 않는다. 성관계를 갖되 결혼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가 하면 아무런 주저 없이 상대방을 바꿔 대는 이들도 있다. 어떤 식으로 하든 죄를 혐오하시는 하나님의 눈을 회피할 수는 없다.
난잡한 성관계는 결국 자기 부인과 다른 여자들이 한 침대에 누워 있는 것과 같다. 에이즈 연구가들은 성관계를 맺을 때 결국 전에 상대방과 성관계를 가졌던 다른 사람들 모두와 함께 성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난잡한 섹스를 일삼았던 상대방은 자신의 상대들과 형이상학적으로도 결합되었다. 그들은 서로‘하나’ 가 된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선 △하나님 앞에서 시인하라 △모든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라 △회개 유지를 위해 매일 노력하라 △가족 관계의 치유를 경험하라 등을 실천해야 한다.
결코 채울 수 없는 격렬한 갈증…“쾌락”
우리는 쾌락으로 흠뻑 젖은 문화 속에서, 영원한 가치에 관한 깊은 생각을 멀리하는 쾌락 추구자들의 나라에서 살고 있다. 세상 쾌락에 몰두하는 것을 가리켜‘쾌락주의’라고 지칭한다. 이것은 섹스와 음식, 돈, 여가 그리고 온갖 종류의 소비를 즐기는 삶이다. 이러한 생활방식은‘이 세상’중심의 사고방식을 소중히 여긴다. 모두들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한다고 본다.
실제로 우리의 문제는 쾌락 추구 자체가 아니라 그릇된 곳에서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시험거리다. 그릇된 쾌락은 행복에 대한 환상을 제시하지만, 결국 쓰라림과 공허함과 후회를 가져다준다. 이 세상에서 사는 삶의 목적이 마음껏 즐기고, 좋은 시간을 갖고, 행복해지고, 돈을 벌고, 편안하고 안락하게 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우리는 단호하게 버려야 한다.
그것은 참된 삶이 아니다. 우리가 기진 돈을 하나님께 맡기고 모두 그 분의 것임을 진심으로 인정해야 한다. 또 우리는 시간을 재량껏 하나님께 드려야하며 TV를 끄고‘주님, 제가 무엇을 하기 원하십니까’하고 물어보아야 한다. 하나님께 푹 빠져 있는 것만이 세상에 물들지 않기 위한 유일한 예방접종이다.
매혹과 음모를 지닌 암흑의 세계…“신비주의”
신비주의의 미끼는 TV와 인터넷, 서점, 영화 등 어디에나 있다. 한때 그것은 사회의 언저리에 존재했지만 오늘날에는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덫은 호기심, 은밀한 지식, 성취, 힘 따위의 미끼로 우리를 유혹한다.
신비주의로 들어가는 입구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러나 TV와 영화가 가장 넓은 그물을 드리우고 사람들을 가장 많이 사로잡고 있다. ‘머피와 벰파이어’나‘마법에 걸리다’(Charmed) 같은 TV 프로그램들과‘프랙티컬 매직’이나‘크래프트’같은 영화들이 신비주의를 대중화 시킨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사탄의 나라를 접하거나, 마녀의 집회에 참석하거나, 피 의식에 동참하거나, 마귀에게 우리 영혼을 팔 수도 있다.
점성술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지혜를 추구하기 때문에 가증스러운 행위이다. 점판, 별점 그리고 점 따위는 사탄의 통제를 받는 신비주의에 복종하도록 유혹하는 매력적인 올무들이다.
초자연적인 치유(외적 치유이든 내적치유이든) 능력을 주장하는 것 역시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명상과 마약, 하드 록과 프리 섹스 등도 마찬가지다.
신비주의로 연결된 모든 경로를 배격해야 한다. 점판과 별점 책 또는 격렬한 게임 따위와 같은 것들을 모조리 제거하라. 당신을 신비주의의 죄악 속으로 이끌었던 사람이나 장소로부터 철저히 떠나야 한다.
우형건 기자 ⓒ 크리스찬투데이
출처: 아멘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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