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구팀, 태양관측 SOHO 위성의 13년치 관측자료 분석
자기 흐름의 ‘거대 컨베이어 벨트’, 흑점 생성 좌우하는 새로운 힘으로 주목
다음 태양주기와 우주날씨 예측에 중요한 ‘선행지표’로 활용 기대
태양의 자기력 요동으로 태양 표면에서는 흑점, 폭발(플레어) 같은 여러 현상들이 늘 나타난다. 자외선 촬영. 출처: 미국항공우주국(NASA)
강력한 자기력의 요동과 거대한 핵융합으로 에너지를 발산하는 태양의 활동에도 여러 주기들이 나타나며, 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게 ‘11년 주기’다. 강한 자기력 다발이 모여 검게 비치는 태양 흑점은 지구 자기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데, 그런 태양흑점의 수는 대체로 11년마다 극대·극소기를 거듭하며 나타나기에 ‘11년 주기’는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난번 태양 주기에선 과학자들의 애초 예측보다 15개월이나 늘어난 기나긴 극소기가 나타났다.
이런 태양 활동의 침체는 학계에서도 여러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11년 주기의 말미에는 태양흑점 수가 크게 줄어드는 극소기가 나타나는데, 지난번 주기(제23주기)에선 극소기가 너무 길어지면서 새로운 24주기의 시작도 예상보다 훨씬 늦춰졌지요. 23주기의 극소기가 왜 이리 길었는지, 극소기를 마치고 새로운 24주기가 시작되긴 한 것인지 한동안 이 분야에서도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한국천문연구원 태양우주환경연구그룹의 조경석 박사는 “대중매체에서도 관심사가 됐지만 학계에서도 궁금증은 컸다”며 이렇게 말했다.
적도에서 극지로 자기력 실어나르는 ‘거대 컨베이어 벨트’
‘무엇이 태양 흑점의 주기를 좌우했는가’라는 궁금증을 어느 정도 풀어줄 만한 연구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과학저널 <사이언스>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미국항공우주국(NASA) 마샬우주비행센터의 데이비드 해서웨이 박사와 테네스주 멤피스대학의 리사 라이트마이어 박사는 태양 표면에서 흘러가는 이온화 가스(’플라스마’)의 속도는 변화하며 그 속도가 매우 빨라질 때 이런 흐름은 태양 흑점의 생성을 저지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을 제시했다.
이온화 가스의 흐름은 자기를 극 지역으로 실어날라 태양흑점 생성에 기여하는 '컨베이어벨트'의 구실을 한다. 출처: 미국항공우주국(NASA)
이런 결론은 미국항공우주국과 유럽우주국(ESA)이 함께 쏘아올린 태양 관측위성 ‘소호’(SOHO)가 지난 13년(1996~2009) 동안태양 표면에서 일어난 이온화 가스의 흐름을 추적한 대량의 관측 데이터를 분석한 데에서 나왔다.
연구자들의 분석을 보면, 태양 표면에서는 적도에서 극 쪽으로 이온화 가스들이 흘러갔다가 다시 표면 아래로 내려가 되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식의 자기 흐름이 나타나는데, 특이하게도 태양 흑점의 수가 적은 시기에 앞서 그 표면의 흐름이 빨라지는 ’상관성’을 보여주었다. 나사가 낸 보도자료에서, 해서웨이 박사는 “이런 현상이 지난 태양 주기 때 보았던 이례적으로 저조한 극소기를 설명해줄 수 있다고 본다”며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태양 순환 모델에 도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태양 표면에서 일어나는 자기 흐름의 평균 속도는 태양 흑점의 수가 정점에 이른 2000~2001년에 시속 30㎞가량이었던 것이 태양 흑점의 극소기인 2008~2009년에는 시속 47㎞로 크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태양 활동 활발·침체 가늠하는 ’징후’로 활용될까?
조경석 박사는 “태양 적도에서 극지로 향해 움직이는 자기의 흐름이 빨라지면 극지의 자기력이 약해지고, 그 영향으로 흑점의 생성과 이동을 저지하는 효과가 나타난다는 게 이번 연구팀의 결론”이라고 말했다. 흑점은 흔히 자기력이 다발로 모이는 극지 부근에서 작은 규모로 생성돼 점차 적도 쪽으로 나아가는 운동의 궤적을 나타내는데, 컨베이어 벨트의 자기 흐름이 빨라지면 태양 흑점을 만들어낼만한 세기의 자기력이 다발로 모이지 못하고 흩어지기 때문에 흑점 생성이 저해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에 발표된 이번 태양활동의 제24주기(2009년 초 이후) 예측. 출처: 미국항공우주국(NASA)
이번 연구결과가 주목받는 이유는 지난 태양 주기 때 모두가 궁금해했던 이례적인 태양활동 침체의 원인을 설명해주는 새로운 분석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기 흐름(이온화 가스의 흐름)의 속도 변화가 뒤이어 나타날 태양 활동의 수준을 미리 가늠해주는 ’선행지표’로 활용될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만일 태양 표면의 자기 흐름이 빨라지는 것으로 관측된다면 태양 흑점의 활동도 저조할 것이며, 극소기의 기간도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태양 흑점 수가 많아질 때에는 하루에도 수십 차례나 자기 요동을 일으키고 고에너지 입자들을 뿜어내는 태양풍을 만들어내어 지상의 민감한 전자기기와 지구 궤도 위성 장치들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도 있기 때문에, 태양 활동의 새로운 예측 기법은 요즘 주목받고 있는 우주 기상 관측 분야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더 근본적 물음: ‘그럼 무엇이 자기 흐름을 빠르게 했나?’
미국 나사는 "올해 2월에 쏘아올린 위성 SDO가 태양 내부(최대 20만km 깊이)에서 일어나는 자기의 컨베이어 벨트 식 흐름을 좀더 자세히 관측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 미국항공우주국
하지만 근본적인 물음은 다 풀리지 않았다. 태양 표면에서 자기 흐름이 빨라졌다면 그 흐름의 속도를 높인 요인은 무엇이냐는 물음은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 있다. 조경석 박사는 “태양 표면의 자기 흐름이 무엇 때문에 빨라지는지 그 근본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지만 이런 새로운 현상이 자세히 관측된 것 자체가 의미를 지닌다”며 “다음번 태양 주기가 얼나마 오래 지속될지, 얼마나 세게 나타날지 보여주는 선행지표로서 이번 새로운 관측 결과가 활용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논문을 실은 <사이언스>는 해설 뉴스에서 “이번 연구성과가 기후 연구자들한테는 더 정밀한 기후 모델을 만드는 데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요즘의 태양 흑점 활동은 어떤지도 궁금해졌다. 이와 관련해 조 박사는 “태양 활동은 이미 바닥을 치고 극소기를 벗어나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며 “최근 관측에서도 태양 흑점들이 여럿 보이고 있으며 태양 표면의 대규모 폭발(플레어)도 관측된 바 있다”고 말했다. 미국 나사 쪽은 새로운 태양 주기(24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에 관해선 극소기가 끝나고 3년가량 지나야 신뢰할 수 있는 예측을 내놓을 수 있다면서, 현재로선 이번 주기의 극대기가 2013년 6월께 나타날 것이며 기간은 지난 주기 때보다 더 짧아질 것으로 보인다는 예측을 내놓았다.
▶ 태양흑점은 고대에도 알려졌으나 처음으로 정밀 관측을 시작한 사람은 17세기 갈릴레오였다. 그는 자신의 천체관측용 망원경에다 아주 어두운 필터를 달아 흑점에 나타나는 변화를 자세히 관측했다. 현대 과학으로 보면, 흑점은 태양 내부에서 바깥으로 뚫고나온 일종의 강한 자기력 덩어리 또는 다발이다. 지구 자기장의 1만 배 정도나 된다. 흑점에는 지구보다 작은 것부터 10배 이상 큰 것도 있다. 이 강력한 자기장 지역의 온도는 다른 표면의 온도인 섭씨 6천도보다 낮은 4천도 정도라, 지상에선 어둡게 보이기에 ‘흑점’이란 이름을 얻었다. 흑점이 나타날 때엔 태양의 활동도 활발해지는데, 태양 폭발은 강력한 자기장의 에너지가 빛이나 운동에너지로 바뀌면서 일어난다. 초대형 폭발은 수소폭탄 100만개가 터지는 것과 맞먹을 정도. 대개 강한 전자와 양성자 같은 무수한 고에너지 입자들을 뿜어낸다. 흑점의 강한 자기장은 20세기 초에 규명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