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아내가 언급되었다는 파피루스 조각과
예수 가족묘 발견설, 그리고 예수의 인도 유학설>

이글은 상당히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꽤 길지만, 여러분들이 숙독하시고 왜곡된 사실에 대해 정확히 알고 계시길 바랍니다. 글을 가급적 공유해주시고, 만일 공유가 안되면 퍼가주시길 바랍니다. 더불어 인터넷 공간에 수 많은 잘못된 사실에 근거한 기독교 비판에 대해 제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최근 AD 4세기 경의 파피루스...

한 조각이 해독되어 전 세계적 뉴스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예수가 "나의 아내"라는 말이 기록된 것으로 해독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본에 그런 기록이 나오기는 최초이기에 빅뉴스가 될 만 했죠.

그래서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무려 예수님 이후 400년이나 지난 파피루스 사본, 손바닥보다 작은 한 조각에서 나온 이 증거로 다들 야단입니다.

사실 학문적 입장에서는 사본학계의 이러한 발견, 즉 불과 조그만 하나의 파편에서 나온 단일한 증거라도 결정적일 수 있고 놀라운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AD 400년 짜리 파피루스에 등장하는 단편적인 예수의 모습을 신빙성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연구 결과를 발표한 킹 박사도 물론 인정했지만요.

이것이 또한 안티 기독교의 좋은 공격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기독교의 잘못에 대해 철저히 인정해야 하나, 안티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자체를 궤멸시키려하는 것에 대해서는 강력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어제 언론 보도를 보니 당장에 그 파피루스 조각은 현재 학계에서 진위 여부 논란에 휩싸여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 동안 수 차례 유물 사기범들에 의해 파피루스 조각들이 위조되곤 했습니다. 이 경우도 그 가능성이 일단 의심을 받고 있는 형편인 듯 합니다.

그리고 그게 설사 진본이라 해도 학자들의 야단 법석이 사실 제겐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그들이 문제를 공정하게 다루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 페친인 김요한 목사님이 지적해주신대로, 신약성경 복음서들은 모두 100년 이전에 기록된 것입니다. 마가복음이 주후 65년경, 마태와 누가복음이 주후 70-75년경, 요한복음이 주후 85년경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 이후 400년이 지난 손바닥만한 파피루스 한 조각에서 발견된 "예수 아내" 운운한 한 단어가지고 떠들썩한데, 정작 학자들은 정작 예수 사후 (우리가 믿기에 또한 부활 후) 불과 30년에서 50년 지난 뒤 기록된 복음서 기록은 그리 신빙성있게 다루지 않습니다. 학자들마다 관점이 다르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불만스런 점이지요.

앞서 말한대로 그들도 그 기록이 예수가 아내를 가졌다는 증거는 될 수는 없다고 한 발을 빼긴 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4세기 사본에 대한 열광적 반응은 대단히 공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 사본학계에서는 텍스트의 판독 사실만을 말할 뿐, 해석과 의미의 문제는 다루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의미의 논쟁은 그 다음 과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신빙성이 없는 4세기 사본의 어구 하나를 가지고 안티 기독교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하게 될 엄청난 주장입니다. 즉, 이것을 근거로 예수는 결혼했다는 증거가 또 하나 나타났다는 주장이 난무할 것입니다. 이 글은 일차로 이것을 반박하기 위한 글입니다.

사실 예수의 결혼설은 느닷없는 주장은 아닙니다. 이게 역사가 상당히 오래되었는데, 이미 초기 영지주의 이단 종파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아내였다는 몇 가지 암시들이 있다는 주장이 존재해왔지요. 그것이 기록된 문서로는 최초로 확인되었다고 말하는 겁니다.

몇 년전에는 기독교를 당혹케 한 충격적 사건이 있었습니다. 1980년 경에 예루살렘의 어느 건축 현장에서 발견된 가족 묘가 예수 가족 무덤이라는 주장이 제기 된 것입니다. 그것을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디스커버리에서 다큐멘터리 3부작으로 제작해서 전 세계에 방영되었는데,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그 가족묘에서 10개의 유골함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에 <요셉의 아들 예수>,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라고 주장되는 <미리암네>, <마태>, <요세> 그리고 <예수의 아들 유다> 라고 기록된 것들이 있어 세상을 놀라게 한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와 미리암네는 DNA 분석 결과 모계적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왔기에 부부가 확실하며 따라서 예수는 결혼을 해서 <예수의 아들 유다>의 유골함을 근거로 유다라는 아들까지 낳았다고 주장합니다.

제작진들은 엄청나게 그럴듯한 논리과 과학적 데이타와 통계를 사용해서 그것이 예수의 가족묘라고 100% 단정을 짓습니다. 이게 얼마나 교묘한지 그 다큐를 본 사람은 도저히 믿지 않을 수 없게 끔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게 책으로도 나왔는데, 최근 계속 오발탄을 쏘며 일단 사라지셨으나, 한국에서 최고 머리 좋은 사람의 하나라는 강용석 전 의원, 그분의 블러그에서 우연히 본 바, 강용석도 집사로서 신앙심이 나름 깊은데, 도저히 반박할 여지가 없다면서 이게 사실이면 자신의 신앙은 뭐가될까 두려워 하는 걸 봤습니다. 그런데 그의 결론이 "에라 그냥 눈 찔끔 감고 덮어 두고 오늘로 잊어버리자" 이거였습니다.

그리하여 이 소위 예수 가족묘에 대한 다큐멘터리 자료들은 현재 인터넷 상에서 수많은 안티 기독교인들에 의해 기독교 공격 자료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것은 수 많은 고고학자와 성서 학자들의 강력한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단행본 책들도 한 두권 나왔지만, 인터넷을 뒤져보셔도 유용한 자료가 많이 나옵니다.

당장에 요셉, 마리아, 예수는 당시에 가장 흔한 이름들이었습니다. 주변 900기의 묘에서 71개의 "예수" 명패가 발견될 정도로 예수란 이름이 흔했고, 나아가 마리아는 네 명 중 한명의 이름이었을 정도였습니다. 또한 다른 묘에서도 똑같은 <예수의 아들 유다>가 발견되었습니다.

미리암네라는 이름도 의견이 매우 분분합니다. 이 이름이 4세기 경의 또 다른 영지주의 문서인 "빌립행전"에서 막달라 마리아의 다른 이름으로 나오기 때문에 미리암네는 막달라 마리아이며, 결국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서 함께 가족 묘에 안장되었다는 겁니다.

"빌립행전"에서 미리암네가 막달라 마리아를 지칭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빌립행전은 매우 오랜 후대의 문서이고, 또한 학자들은 미리암네란 이름이 마리아의 예명으로 쓰인 것은 예수 어머니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를 구분하기 위한 매우 후대의 관행임을 지적합니다. 실제로 3-4세기 이후의 사본들에서 나타납니다. 이 경우 예수 당대의 미리암네는 막달라 마리아와 상관없는 다른 여인일 가능성이 커집니다.

더불어 <미리암네>의 이름 뒤에는 '마라'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데 이것이 '지도자(Master)'로 해석될 수 있는 일반 단어인지 아니면 미리암네의 다른 이름, 즉 별칭인지 모호한 단어가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하나의 이름인지 한 사람에 대한 두 개의 이름인지 논쟁이 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좀 더 알아봐야 겠지만, 제 생각엔 그 미리암네가 꼭 거기 있는 "요셉의 아들 예수"와 배우자란 법은 어딨습니까? 마태의 배우자일 수도, 요세의 배우자일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이건 완전히 이건 의도적인 표본 선정인 겁니다.

제작자들의 의도적 조작의 예를 한가지만 들면, 그 가족묘에 <요세>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제작자들은 요세가 신약에 나오는 예수의 형제 <요셉>이라고 단정짓고, 예수와 요셉이라는 이름을 가진 형제가 같은 무덤에 묻힐 확률을 계산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한 대중 기만술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만일 요세(요셉)도 요셉의 아들이었다면, 왜 그에게는 "요셉의 아들 요세"라고 하지 않았냐는 겁니다. 예수의 경우 "요셉의 아들 예수"라고 쓰였는데도 말입니다. 예수가 "요셉의 아들 예수"로 기록되었으면, 예수의 형제 유세도 "요셉의 아들 요세"로 기록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그 요세는 바로 아버지 요셉을 지칭하는 것으로 봅니다. 이 경우 그들의 확률 산정 방식에 심각한 의도적인 조작과 과장이 있는 겁니다. 다른 팩트들도 의도적인 결론으로 끌어 가는 것이 학자들에 의해 상세히 지적되었습니다.

또한 어느 날 <야보고의 유골함>이라고 주장된 물건이 예루살렘의 골동품 시장에 나타났는데, 다큐 제작자들은 그<야고보의 유골함>이 원래 가족 묘게 함께 안치되어 있었으나 예수 가족묘로 확증되면 곤란케 될 어떤 기독교인 탐사자가 고의적으로 훔쳐 없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열개의 유골함 중 1개가 보관을 위한 이동 중에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들은 바로 이 사라진 유골함 한 개가 예루살렘 시장거리에 나타난 야보고 유골함이라 주장하며 실제로 방사선 동위원소, 화학분석 등으로 다른 유골함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 골동품 시장에 등장한 야고보의 유골함은 이스라엘 정부가 나서서 과학자들이 조사한 결과 가짜로 판명되었습니다. 이것은 신문에도 기사화되었지요 (연합신문 참조). 당시 이것이 엄청난 고고학적 이슈였기 때문에 2003년 6월 18일 이스라엘 정부가 직접 나서서 공식 발표를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정적으로 예수의 형제 야고보가 가족묘에 없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그들의 주장에 치명타입니다. 그것 뿐 아니라 예수의 형제로 알려진 시몬과 유다도 거기에 없습니다. 최소 두명으로 추측되는 자매들은 시집을 가서 다른 묘에 안치되었다해도 말이죠 (예수의 형제자매는 형제 4명, "그의 자매들"이 복수이므로 자매는 최소 2명으로 추측됨 - 마태 13:55-56).

물론 그들은 시몬과 유다가 사망할 때 즈음에는 가족묘 관행이 없어졌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만들어져 있는 가족묘를 이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이상한 것입니다. 결국 예수 가족과 같은 이름이 함께 묻힐 확률 통계 계산법에 근거한 그들의 주장에 교묘한 인위적 조작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와 미리암네의 DNA 검사도 단 1회 되어진 것이며, 뼈의 미토콘드리아에서 시료를 채취했습니다. 미토콘드리아는 그 특징상 모계만을 판명해줍니다. 그 결과 모계 일치는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으나 사실은 부계 일치 여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이 약점에 대해 함구합니다. 또한 다른 유골함들은 DNA 검사가 시행되지 않았기에 알 수 없습니다.

추가적으로 마태는 성경에서는 예수의 한 식구가 아니라 제자였는데, 거기에 유골함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그들은 별다른 이유를 내놓지 못합니다. 당시 역시 흔한 이름이었고 예수 가족의 일원이 아니었던 마태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예수의 가족묘일 가능성은 0%가 되는 겁니다. 또한 그들은 나머지 세 개의 표본에 대해서도 의도적으로 침묵합니다.

무엇보다 가족묘는 당시에 상당한 재력가들만이 가질 수 있었다는데, 예수 가족이 그만한 집안이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가 회의적인 시각입니다. 게다가 당시 예수는 정치/종교 지도자들에게 반역자였습니다. 반역자와 그의 가족들이 그렇게 좋은 가족묘에 평안히 안치될 수 있었을지요.

어쨌든 2007년 2월에 이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은 기자들 300명을 모아 놓고 지난 3년간 연구한 내용을 발표했는데, 세계적 쇼크를 일으킨 뉴스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해 즉각적으로 3월자 뉴욕타임즈는 그것이 흥미로운 주장이긴 하나 유수한 학자들의 반론을 실어 신빙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터넷에도 이 자료가 나옵니다.

그러나 안티 기독교인들은 그 다큐멘터리만 온 사방에 퍼트려 진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제작자들은 사실 일종의 장사꾼들입니다. 상업적 대빡을 목표로 의도적으로 대단히 흥미로운 결론을 내려놓고 작업을 한 것이고, 기자들을 불러 회견을 함으로써 세계적 흥행을 노린 것으로 의심됩니다. 뭐 3년을 이 일에 매달려 작업했으니, 본전은 뽑아야만 했겠죠.

그리고 우리 입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그 예수라는 이름의 유골에서 결정적으로 십자가 죽음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분명 로마에 의한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역사적인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예수 사후 불과 30-40년 안에 쓰여진 복음서들은 당대에 가짜로 치부되어 예수 제자들과 추종자들은 사기꾼 집단으로 매도되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런 무엄한 조작된 가짜 복음서는 살아 남을 수가 없었겠지요.

만일 복음서가 기독교측의 조작 문서로 의심되어 예수의 죽음을 믿기 어렵다면,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의 기록을 들여다 보면 됩니다. 그는 AD 50년 경에 태어나 110년 경에 죽은 예수 직후의 인물입니다. 그는 기독교에 대해 말합니다. "이 골치아픈 전염병과 같은 기독교는 본디오 빌라도가 극형에 처한 그리스도라는 자에게서 시작되었다."

이 기록은 마치 우리가 일제 말기나 6.25 전쟁에 대해 기술하는 것만큼이나 가까운 역사 기록이니 100% 믿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는 기독교를 말살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진 로마 역사가 였습니다. 거짓을 기록할 이유가 없었지요. 즉, 예수는 십자가에서 처참히 죽은 겁니다. 그러나 그 예수 가족묘의 예수 시체에는 그런 십자가 처형의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또 한 가지, 예전에 예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피에르 프랑타르>란 사람이 나타났는데, 자신이 예수의 26대손이라고 한 겁니다. 신문에 크게 나왔고 역시 반-기독교의 공격의 빌미가 되었습니다. 예수는 살아서 프랑스로 망명해서 그의 후손이 바로 프랑스의 메로빙조 왕조 가문이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계산해보니 한 대에 무려 73년이어야 26대 손이 되는 사기극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이 사기극이 1982년에 세계적 베스트 셀러까지 된 "성혈과 성배"라는 책에 고스란히 실려 사실인 양 전 세계에 퍼졌습니다. 우리나라 주요 신문에도 여러 번 소개될 정도였습니다.

결국 수 많은 사람들이 진실인 것으로 받아들여, 지금까지도 기독교 공격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빈치 코드도 이와 다를 바가 없는 호사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상업 소설일 뿐입니다.

참고로 다빈치 코드의 저자는 자신의 소설이 완전히 픽션에 불과하므로 진위를 따지며 논쟁을 할 필요가 없다고 분명하게 언론에 밝힌 바 있습니다.

심지어 피에르 프랑타르가 진짜 예수 후손이냐는 문제로 영국에서 재판이 열려 3년간이나 심리를 해서 결국 "성혈과 성배" 책 내용이 사실이라고 판결을 내렸다는 이야기도 떠 돌았습니다. 그런데 영국에서 이런 재판 자체가 열린 적이 없다고 합니다. 완전 어떤 사교 집단에서 기독교를 매도하기 위해 조작해 퍼뜨린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결국 예수 자연사설에 두가지가 존재하게 됩니다. 하나는 프랑스로 망명가서 거기서 죽었다.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에서 죽어 가족묘에 매장되었다. 그럼 양쪽이 한번 대판 싸워서 결판을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둘 다 허황된 추리소설 급 주장입니다.

또 한 가지 회자되는 거짓 주장이 있습니다. 이건 예수의 결혼설과는 별개이긴 하지만, 역시 너무 중요한 왜곡입니다. 예수님이 13세때 인도로 가서 불교 수행을 30세까지 하고 유대로 돌아왔다는 주장입니다. 그것을 추적한 다큐멘터리도 또한 존재합니다.

실제로 티벳 불교계에 오래도록 내려온 전승인 <이사전>에 예수와 비슷한 이름인 "이사"가 나타나고 전래되어 내려온 그의 행적도 예수와 비슷하다는 겁니다.

또한 많은 불교의 가르침이 복음서의 예수님의 가르침과 흡사하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비유도 비슷한 것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이 불제자였다는 주장, 불교 우월론을 주장합니다.

심지어 그들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가 티벳 라마불교의 진언(眞言), "엘리엘리 라마 삼약 삼보리 다라니"(Eli Eli Lama Sammach Sam Bori Daranii, '성자시여 위대한 바른 지혜로 드러내주소서'에서 기원했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면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가 지구상의 그 어떤 언어도 아닌 수수께끼로서 해독이 안되는 언어인데, 그 이유가 바로 그 라마 불교의 진언에서 변형되어 온 것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결국 예수는 마지막 죽음 때 열반에 들어가며 그 불교 주문을 외웠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사전>이라는 경전은 실체가 드러난 적이 없는 완전한 사기극으로 종료되었습니다. 결코 존재하지도 않은 문건이었는데, 러시아의 어떤 사기꾼 학자 두명에 의해 유럽에 널리 퍼졌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완전 이건 황당한 UFO 목격담 수준의 소설을 쓴 겁니다. 아래 사이트에 모든 사실이 적나라하게 밝혀져 있습니다.

http://commsys.tistory.com/entry/예수는-불제자였다-1

이 사이트에보면 복음서가 불경을 베꼈다는 주장도 정말 어처구니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로 너무나 악의적인 조작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네루 수상은 대단히 합리적이고 과학적 사고를 지닌 사람으로 기독교를 증오했지만, 자신이 쓴 "세계사 편력"에서 그런 루머들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는 거짓이라고 명확한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또한 이것이 이토록 중요한 것이라면, 왜 종교, 신학계에서는 거론 조차 안되는 걸까요? 마치 그레이엄 핸콕의 <신의 지문>이란 책이 1권에서 대단히 그럴 듯하게 나가다 2권에서 인류 문명의 화성 기원론으로 황당 SF 소설로 빠지는 것과 똑같습니다. 학계에서는 누구도 그레이엄 핸콕의 저서에 학술적 가치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제 1권의 몇 가지는 그럴 듯 하지만 말이죠.

고래로부터 책 팔아먹기 위해 저런 일을 하는 사람이 존재해왔고, 지금도 대중을 대상으로 혹세무민하는 저런 류의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곤 합니다.

이런 주장들은 몇 가지 기본적 사실만 알고 있으면, 너무나 어처구니 없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우선 히브리어와 셈어를 나름 공부한 입장에서 볼 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두말할 것도 없이 명확한 아람어입니다. 무슨 해독이 안되는 수수께끼가 아니라, 성경에 나온 대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최근 제가 찾아낸 놀라운 사실은 그 티벳 교의 진언(眞言)으로 주장된 "엘리엘리 라마 삼약 삼보리 다라니"(Eli Eli Lama Sammach Sam Bori Daranii)는 "아누타라-삼먁-삼보디 (an-uttara-samyak-sambodhi)" (뜻: 비길데 없는 최고의 바른 깨달음)의 악의적인 조작이라는 것입니다.

증산도 안경전 씨의 "다이제스트 개벽"이라는 책에서 최초로 그 진언이 등장하는데, 그 이전 어디에도 그런 진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건 예수의 마지막 외침을 티벳 불교도의 주문으로 만들어 놓기 위한 악의적인 고의적 조작이었던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최광민 씨라는 블로그를 찾아가보십시오. 그 분은 너무나 정확한 근거로 그 거짓과 조작을 찾아냈습니다. 심지어 그분은 티벳의 승려에게서 직접 사실 확인을 했습니다. 이것이 존재하지도 않은 진언이라는 걸 말이죠. 이분의 검증 작업에 저도 정말 너무 놀랬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1/09/blog-post_14.html

또한 결정적으로 이것이 단번에 거짓말인 이유는 앞서 잠깐 언급한대로 티벳 불교가 주후 600년 경에야 티벳에 도입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티벳 사원의 고문서들이 존재한다면 모두 한참 후대의 것입니다.

앞서 말한대로 티벳 사원에 있지도 않은 <이사전>이 경전이 러시아의 사기꾼 과학자 호사가 노토비치와 그의 제자에 의해 유럽에 책으로 소개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래 전에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그곳을 직접 방문한 동양학 박사 독일 학자들 (Marx Muller와 Archibald Douglas)에 의해 <이사전>의 실체도 <이사>란 존재도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났고 따라서 그 뒤로 노도비치와 그의 제자는 완전한 거짓말쟁이로 비난받으며 대다수 학자들에 의해 거부되었습니다 (위키 백과 사전 참고 - 출처까지 있음).

그리고 설사 그런 것이 있다해도 저는 완전히 다른 해석을 합니다. 만일 그런게 존재한다면, 이미 AD 600년에 유래된 티벳의 라마 불교에 간직되어 있는 것이므로 그것은 오히려 예수 이야기가 전래된 결과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의 복음이 티벳을 비롯 인도 북부에 들어가서 예수의 이야기가 매우 이른 시기부터 전래되어 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마 가장 초기부터 티벳에까지 복음이 들어갔을 것이 분명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예수님의 제자 도마는 인도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고 순교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인도에 가면 도마의 행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고 하더군요. 물론 이것도 다 믿기는 어렵습니다. 상업적 목적으로 유적들이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도마가 인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순교했다는 상당한 증거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일찌기 복음이 들어갔으니, 티벳에서 예수에 대한 전승이 내려오다가 주후 600년 티벳 불교의 태동과 더불어 불교의 가르침과 예수 전승이 뒤섞인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 이야기는 인도의 불교와도 섞인 것으로 보이고, 또한 기독교의 분파인 네스토리우스 기독교가 일찌기 중국에 경교라는 이름으로 전해졌고, 그것이 신라에 까지 전파되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징기스칸의 몽골 민족도 대거 네스토리우스 기독교를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또한 예수의 인도 유학설이 얼마나 황당한지는 결정적으로 유대/히브리 사상과 불교 사상은 세계관의 출발점 부터가 다르다는 점에 있습니다.

당장에 유일신과 무신론의 입장으로 나뉩니다. 또한 불교는 순환적 시간관과 세계관 (윤회)이나, 히브리 사상은 직선적 시간관과 세계관 (태초와 종말)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이렇듯 두 종교는 아예 출발부터 다른 완전히 이질적인 사상입니다.

예수님은 당연히 후자에 속합니다. 즉, 예수의 가르침은 태초를 말하며, 또한 끝날, 곧 준엄한 마지막 날의 심판을 강렬히 가르쳤습니다. 완벽하게 히브리 사상입니다. 18년을 인도에서 불교를 배운 사람이 어떻게 이런 주장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영원한 순환적 시간과 윤회설의 흔적이라도 보여야지요. 대신 예수는 태초와 창조를 이야기하고, 시종일관 마지막 날의 심판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그러니 이 예수를 인도 불교의 수행자였느니, 혹은 정면으로 모순되게 600년 뒤에나 생긴 티벳 불교의 유학파로서 불제자였느니 어쩌느니 하는 주장은 정말 완전히 어거지요 어불성설인 것입니다.

예수는 예수고 석가는 석가였을 뿐입니다. 종교의 특성상 가르침의 공통점은 존재할 수 있으나, 두 분은 전혀 다른 세계관에 의한 전혀 다른 가르침을 설파 했음을 알아야 합니다.

참고로 제 페친들 중에 비그리스도인들도 있어서 말씀드리는데, 저는 타종교를 받아들이지는 않으나 전적으로 존중합니다. 광적이고 공격적인 배타성을 보이는 기독교 신자들에 대해서는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그러나 저는 기독교에 대해 완전히 조작되고 왜곡된 사실을 가지고 공격하고 매도하거나 자신의 종교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일은 중단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토록 비판하는 광적인 패권적 기독교인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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