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엔도 슈사쿠)
-하나님, 왜입니까-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는가?”

엔도 슈사쿠의 <침묵>은 이런 명제를 가지고 쓴 소설이다. 단순히 소설이라기보다 일본 역사의 실존인물인 포르투갈 신부, 오카다 산에몬(岡田三右衡門, 로드리고)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창조하여 각색한 역사소설이다.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1923년 3월 27일-1996년 9월 29일)는 침묵 외에도 <여자의 일생> <위대한 몰락(사무라이)> 등의 작품을 통해 일본의 기독교 박해사를 그의 정밀한 문학적 감수성으로 표현하여 예술작품으로까지 끌어올린 작가이다.

그중에서도 <침묵>은 이 시기 동안 일본의 어느 마을에 잠입했던 포르투갈의 한 신심 깊은 사제 이야기를 다룬다. 로드리고로 알려진 그는 가난한 농민들이 처참한 박해가운데서 신음하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침묵만 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끝없는 질문을 퍼붓는다. 이 책은 이 신부의 내면의 질문들을 응집해 놓은 작품이다. 그러나 작가는 하나님은 끝까지 침묵으로만 일관하지 않으신다는 결말을 이끌어낸다. 작품을 읽어나가는 동안 계속 마음 조리며 기다리던 하나님의 말씀이 책의 말미에 가서 드디어 로드리고의 심령에 속삭여지는 것이다. 로드리고 신부는 하나님의 그 응답으로 새로운 차원의 신앙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하나님의 침묵- 그것은 결코 침묵이 아니었던 것이다.

침묵의 역사적 배경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집권했던 16-17세기경이다. 이 시기는 ‘기리시탄사’라고 하며 1549년 프란체스코 하비에르와 그의 동료들이 가고시마에 상륙하여 가톨릭을 전했던 때부터 메이지(明治) 정부가 기독교 선교금지를 폐지한 1879년 사이에 일어났던 시기이다. 그 중 1614년 에도막부(江戶幕府)가 금교령을 선포한 후 259년간은 대단히 혹독한 박해 시대가 이어졌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627년부터 수많은 기리시탄(기독교인)들을 지금은 관광지가 된 운젠(雲仙) 유황물의 고문으로 죽였다. 발가벗기고 칼로 베인 상처에 뜨거운 유황물을 10-20일씩 붓고 돌을 달아 뜨거운 온천 아래 가라앉혀 죽이기도 했다. <침묵>에서만 아니라 엔도의 <여자의 일생>에는 이렇게 죽어가는 순교자들의 모습들이 작가의 세밀한 눈으로 처절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박해의 시대에 로마 교황청에 포르투갈의 예수회에서 일본에 파견한 페레이라 크리스트반 신부가 나가사키(長崎)에서 ‘구멍 매달기’ 고문을 받고 배교(背敎)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페레이라 신부는 일본에 체류한지 33년이나 되고 주교(主敎)라는 중요한 직책에 있으면서 사제들과 신도들을 통솔해온 인물이다. 그는 박해를 받으면서도 불굴의 신념을 가지고 계속해서 선교를 해왔는데 그런 그가 배교를 했다는 것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는 잠복선교를 하면서도 교황청에 무서운 운젠 유황물과 또 다른 고문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은총으로 끝까지 신앙을 지켜 순교한 사제들과 신도들의 용기를 보고했던 신부였다.

심지어 그는 “…….마침내 우네메는 아무래도 자기가 이길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이런 사실로 우리의 성스러운 교의가 오히려 대중의 칭송을 받게 되고 신도들이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폭군이 기대했던 것과는 반대로, 굳은 신앙심으로 버티어 폭군이 오히려 당하게 된 싸움의 혁혁한 결말입니다.”라고 써 보내기까지 했었다. 이런 편지를 쓴 페레이라 신부가 아무리 고문을 받았다고 해도 하나님과 교회를 버리고 이교도에 굴복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여러 명의 사제들이 사실을 규명하기 위하여 일본으로 가겠노라고 자청하고 나섰다. 그 중에 세 명의 포르투갈 사제들이 있었다. 그들은 신학교에서 교수였던 페레이라의 열강(熱講)에 깊이 감동했던 제자들로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일본에 들어가 자신들의 스승인 페레이라의 불명예를 설욕하려는 열망으로 불타올랐다. 그들은 페레이라 신부가 눈부신 순교를 했다면 몰라도 이교도 앞에서 개처럼 굴종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맑고 푸른 눈과 온화하고 부드러운 빛을 얼굴 가득 담고 있던 페레이라 신부의 인자한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토록 인자한 신부의 얼굴 위에 굴욕으로 일그러진 또 다른 표정을 상상한다는 것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세 사람은 세바스티앙 로드리고와 호안테 산타 마르타, 그리고 프랜시스 가르페였다. 1638년 3월 25일, 드디어 이 세 사람의 젊은 사제들은 요한 다세코 사제의 축복을 받으며 사령관이 타는 인도 함대, ‘산타 이사벨’호에 승선했다. 함선이 황색의 하구를 떠나 점점 멀어질 때 그들은 갑판에 기대어 황금색으로 빛나는 육지의 산을 언제까지나 바라보았다. 그들은 항해가운데 여러 번의 폭풍우에 시달리면서 아프리카를 돌아 마닐라와 고아, 마카오 등지에서 정박하며 1년이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와중에 몹시 몸이 약했던 호안테 산타 마르타가 말라리아에 걸려 죽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 진행하였다. 중간에 그들은 일본에서 3만 5천명의 가톨릭 신도들이 무서운 박해 속에서 학살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또한 마카오 선교회로부터는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들을 일본에 보내는 것은 도저히 찬성할 수 없다는 통보도 받는다.

이후 이 책의 절반은 세베스티앙 로드리고의 편지를 통해서 사건들이 알려진다. 그들은 비록 일본의 선교 상황이 최악이라 해도 그러한 박해가운데 있는 일본 그리스도인들의 가련한 운명을 그저 손 놓고 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로드리고와 가르페는 마카오에서 일본으로 가는 중국 밀항선인 정크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간다.

일본에 도착한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박해의 현장을 목도하며 고통가운데서 하나님께 질문한다.
“하나님, 왜입니까?”
인간은 고난을 당할 때, 고난 그 자체보다 그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 절망하게 된다. 왜 내가 이런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이유를 알기만 한다면 그 고난도 견딜 만하다. 하지만 이유를 모른 채 당하는 고난은 인간을 아득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다.

한때는 기리시탄에 호의적인 정부 덕분에 선교사들로부터 복음을 듣고 개종했던 사람들이 어느 날부터 갑자기 불어 닥친 박해의 칼날에 낙엽처럼 쓰러진다. 그중의 얼마는 다시 불신자의 생활로 돌아가지만 신앙을 지키기로 결단한 사람들은 무서운 박해가운데서 무수히 죽어간다. 이런 모든 것을 보고 들으며 신앙에 불타던 로드리고의 마음은 끊임없이 흔들린다. 신앙을 잃은 것은 아니지만 이 무서움 속에서 침묵만 지키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로드리고와 가르페가 묵고 있던 마을의 모키치와 이치소우가 바다에서 수장(십자가를 바다에 세우고 그 위에 사람을 매어달아 죽게 하는)으로 죽어간 뒤에도 파도는 아무 일이 없었던 듯 철석이고 바다 새는 자유롭게 그 위를 날아다닌다. 이것이 순교라는 말인가?

“무엇을 위한 순교일까요? 저는…….순교를, 이를테면 그 사람들의 영혼이 하늘나라에 돌아갈 때 공중에는 영광의 빛이 가득하고 천사가 나팔을 부는 그런 빛나고 화려한 순교를 지나치게 꿈꿔 왔습니다…….아아, 바다에는 비가 쉴 새 없이 계속 내립니다. 그리고 그들을 죽인 바다는 더욱 무서우리만치 굳게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로드리고는 감옥에 갇힌 후, 바다에 빠져 죽는 신도들을 따라가다가 함께 바다에 빠져 죽은 동료 가르페를 생각하며 또다시 하나님께 질문한다.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갑자기 이 소리가 모키치와 이치소우가 죽어가던 바다, 거적을 두른 배에서 잇따라 떨어지던 신도들을 좇아가던 가르페가 떠있던 바다에서도 완강하게 침묵하고 계신 하나님에 대한 생각과 더불어 가슴을 후벼 팠다. 하나님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만약 하나님이 없다면 수없이 바다를 횡단하여 이 작은 불모의 땅에 한 알의 씨를 가져온 자신의 반생은 얼마나 우스꽝스럽단 말인가. 그리고 가르페도, 힘없이 죽어간 신도들도 모두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그리고 이런 로드리고의 의문은 한 애꾸눈의 신도가 감옥 뜰에서 관리에 의해 목이 잘리고 난 후에 더욱 맹렬해진다.

“온 땅에 어둠이 임하며 성소의 휘장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이것이 그가 오랫동안 생각해온 순교의 이미지였다. 내가 죽임을 당하는 날에도 매미는 여전히 울고 파리는 졸음을 재촉하는 날개 소리를 내면서 날아다닐 것인가. 현실에서 본 농민의 순교는 그들의 오두막이나 남루한 옷처럼 초라하고 가련하기만 했다.

그의 주위에서는 매미소리, 날개를 젓는 파리 소리, 닭 우는 소리들이 윙윙대며 끊임없이 울려 댄다. 그러나 정작 그가 간절히 듣고 싶은 하나님의 음성은 들리지 않았다. 욥이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 던진 질문이 이것이었다.

“…….견딜 수 없는 이 고통을 당하느니 차라리 숨통이라도 막혔으면 좋겠습니다…….제발 좀 내버려 두십시오…….사람이 무엇인데…….어찌하여 아침마다 그를 찾으시고 잠시도 쉬지 않고 그에게 시련을 주십니까?…….침 삼킬 동안도 버려두시지 않으시렵니까?……. 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십니까?…….당신께서 하시는 일이란 이 몸의 허물이나 들추어내고 이 몸의 죄나 찾아내는 것입니까? …….내가 죄를 짓는가 지켜보시다가 그 죄에서 풀어 놓아 주시지도 아니하십니다…….어찌하여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셨습니까?…….좀 내버려 두소서.”(공동번역)

욥은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 비록 죄가 없다고 하여도 그는 나에게 죄가 있다고 하시겠고, 나 비록 흠이 없다고 하여도 그는 나의 마음바탕이 틀렸다고 하실 것일세. 나 비록 흠이 없다고 하지만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겠네. 살아 있다는 것이 구역질 날 뿐…….”(공동번역)

물같이 쏟아지는 욥의 불평과 원망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이런 욥의 불평과 원망을 고스란히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다는 것이다. 천하에 있는 사람은 그 누구라도 다 보라고 말이다. 하나님의 불평등, 공의롭지 못하신 처사, 인간을 괴롭히는 그 분의 심술(?)들을 조금도 거리낌 없이 다 노출시키신다. 하나님 마음의 넓으심은 정말 얼마만큼 큰 것일까.

하나님은 욥의 고난을 보고, 알고 계셨다. 이 사건이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도 다 알고 계셨다. 하나님은 시간의 밖에서 시간 안에 갇혀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신다. 다만 욥이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그가 내 앞을 스쳐 가시건만 보이지 않고, 지나가시건만 알아 볼 수가 없네.”(공동번역)
후에 욥은 자신의 언사들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부질없는 말로 당신의 뜻을 가리운 자, 그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이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는 신비한 일들을 영문도 모르면서 지껄였습니다…….이제 저는 이 눈으로 당신을 뵈었습니다. 그리하여 제 말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티끌과 잿더미에 앉아 뉘우칩니다.”(공동번역)
전에는 그렇게도 그의 옆에 계시는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욥이었건만 고난을 통과하고 나니 하나님이 보였다.

적막하기만 한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로드리고는 이제는 자신을 향하여 이렇게 묻는다.
“그럼 네게 바라는 것은 남모르게 죽는 참된 순교가 아니라 허영을 위한 죽음인가. 신도들에게 칭송받고 기도 받고 ‘저 신부는 성자였다’는 말을 듣고 싶기 때문인가.”
고난을 통과하며 로드리고는 자신의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된 것이다. 과연 나는 내게 닥쳐오는 고난 속에서도 나의 이름이나 물질이나 그 무엇도 다 초월하고 끝까지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이 고난을 견디며 나갈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이 고난을 통과하면서 하나님 또는 사람들로부터 ‘고난을 통과한 영웅’이라는 칭송이라도 듣고 싶은 것은 아닐까?

우리는 고난 속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의 영적상태를 세세하게 살펴보게 된다. 나의 신앙은 정말 정금같이 순수하기만 한 것일까? 과연 나의 신앙이란 어떤 것이며 내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 분은 정말 살아계시나? 만약 그분이 정말로 살아 계시며 그 분이 나에게 이런 고난을 허락하신 것이라면 나는 이런 고난 속에서 그분께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로드리고는 이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또 던진다. 이러한 질문들을 통하여 그는 점점 더 하나님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관리들은 자신이 배교하지 않으면 저 신자들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교활한 함정을 파놓고 로드리고에게 대답을 재촉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드리고가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그런 그에게 일찍이 배교한 후 이제는 일본 옷을 입고 일본 여자와 살고 있는 페레이라가 말한다.

“내가 배교한 것은 구덩이에 매달렸기 때문만은 아니야. 사흘간…….나는 오물이 잔뜩 들어있는 구덩이 속에서 거꾸로 매달려 있었어. 그러나 한 마디도 하나님을 배반하는 말은 하지 않았어. 내가 배교한 것은 말이야. 여기 구덩이에 넣어진 뒤 들렸던 저 소리에, 하나님이 무엇 하나 하시지 않았기 때문이야. 나는 필사적으로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아무 것도 하시지 않았기 때문이야…….자네가 배교하겠다고 말하면 저 사람들은 구덩이에서 나올 수가 있어. 그런데도 자네는 배교하려고 하지 않고 있어. 그것이 사랑의 행위란 말인가?…….만약 그리스도께서 여기에 계신다면…….확실히 그리스도는 그들을 위해 배교했을 거야! 그리스도는 배교했을 것이네. 사랑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한때는 조국 포르투갈의 신학교에서 신앙의 영웅으로 존경받던 페레이라가 제자인 로드리고에게 배교를 부추키며 그럴싸한 말로 설득한다. 그런 페리이라의 말을 들으며 로드리고는 자기 앞에 놓인 성화(聖畵)를 바라보고 신음한다.

“아아 아프다. 신부가 몸부림쳤다.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가장 아름답고 맑고 깨끗하다고 믿었던 것, 그것을 지금 밟는 것이었다. 이 발의 아픔……. 그때, 그분이 신부에게 말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그 주님은 자기를 팔아넘긴 유다까지도 용서했다. 아니 용서를 넘어 유다 마음의 아픔까지도 살피고 계셨다.

그때 “밟아도 좋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여 저는 당신이 언제나 침묵하고 계시는 것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었을 뿐.”
“그러나 당신은 유다에게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라, 가서 네가 할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지금 너에게 성화를 밟아도 좋다고 말한 것처럼 유다에게도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이루라고 말했던 것이다. 네 발이 아픈 것처럼 유다의 마음도 아팠을 테니까.”

연약한 인간은 처절한 고난이 몰려오면 그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주님을 배반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인간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어루만지며 그들을 구원으로 이끄신다. 이것은 고난 속에서만이 깨달아지는 신앙의 비밀이다. “밟아라.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나는 너희들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왔노라.”

작가는 주님은 우리가 그분을 밟고 지나갈 때,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말한다. 주님은 침묵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시며 함께 아픔을 나누시는 분이다. 신앙의 여정 속에서 깨닫고 체험되는 이런 신비가 있기에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새 힘을 얻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나의 부모님은 1960년대 후반, 그 당시 한국가정에서는 드물게 별거생활을 시작하셨다. 많이 배우신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무학에다 귀도 잘 안 들리셨다. 아버지와 모든 면에서 너무 차이가 났다. 그런 어머니가 어느 날부터 친척 아주머니를 따라 전도관에 다니기 시작하셨다. 그러자 아버지의 무서운 핍박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요지부동이셨다. 어머니를 핍박하다 지친 아버지는 어머니의 소원에 따라 어머니를 경기도 소사에 있는 신앙촌에 들여보내셨다. 나는 결혼 후 미국에 와 살면서도 살아가는 모든 일에 서투른 어머니가 이단의 본거지인 신앙촌에서 홀로 살고 계신다는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날마다 나의 기도제목은 어머니 문제였다.

어느 날, 그날따라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을 안은 채 금요 예배에 참석했다. 설교가 끝나고 기도시간이 되자, 나는 소리소리 지르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님, 이 세상의 모든 보화를 다 준다고 해도 어머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저는 결코 행복해질 수가 없어요.”

눈물이 빗줄기처럼 쏟아졌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갈등으로 겪어온 아픔들이 밀어 닥치면서 커다란 슬픔이 온 몸과 영혼을 가득 채웠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나의 오른 편에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그분은 어깨에 무거운 십자가를 메고 계셨다. 주님은 그 십자가를 지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고 계셨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기적과도 같이 그토록 나를 짓누르던 커다란 슬픔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홀가분하게 가벼워진 내 마음에 한 가지 깨달음이 찾아왔다. 이 문제는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 지금까지 나는 나 혼자서 이 무거운 문제를 떠안고 슬퍼하고 탄식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문제는 곧 우리 주님의 문제이기도 하였다. 나의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이기 전에 주님의 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주님은 이 십자가를 나와 함께 지고 가신다는 것을, 주님은 나와 함께 어머니의 문제를 풀어가고 싶어서 그 분을 나의 어머니로 세워 주셨다는 것을.

그러자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깊은 평안이 밀려왔다. 그리고 주님이 나와 함께 가신다면 나도 얼마든지 이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다 하는 담대함이 생겼다. 그 후로 나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며 힘을 얻곤 한다.

그렇다, 주님은 침묵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가신다. 로드리고는 이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때 자신의 다섯 개의 발가락이 사랑하는 분의 얼굴 바로 위를 덮었던 것이다. 그는 이 격렬한 기쁨의 감정을 기치지로에게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설명할 수 없는 격렬한 기쁨” 그것은 체험으로만 아는 기쁨이다. 신앙의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기쁨을 체험한 기억을 갖고 있다. 이런 체험이 있기에 그들은 고난을 이길 수 있고 나아가 순교까지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로드리고 역시 이러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비록 그는 외면적으로는 배교했을지라도 진정으로 배교하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주여, 저는 배교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가 결코 배교한 것이 아님을 알고 계십니다. 어째서 배교했느냐고 성직자들을 나를 심문할 것입니다……. 저 기치지로와 제가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무엇보다도 저는 성직자들이 교회에서 가르치는 하나님과 제 주님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로드리고는 자기 스스로에게도 말한다.

“성직자들은 이 모독의 행위를 질책할 테고, 나는 그들을 배반했을지 모르나 결코 그분을 배반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형태로 그분을 사랑하고 있다. 바로 그 사랑을 알기 위해서 오늘까지의 모든 시련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이 나라에서 아직도 최후의 가톨릭 신부이다.”

그래서 그는 배교자라는 비난에도 의연할 수 있었고 일본에 살면서 계속해서 고백성사나 기도 같은 성무(聖務)를 해나갈 수 있었다. 아직도 박해가 계속되는 그 나라에서, 고문처럼 그를 찌르는 배교자의 아픈 마음을 안고 살아가며 주님을 섬기는 그를 향해 과연 누가 비겁한 사람이라고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의 남은 삶은 순교자 못지않게 거룩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기독교 작가인 이상훈 씨는 “엔도 슈사쿠의 <침묵>은 기도하면 금방 이루어진다는 ‘번개응답’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고통의 현실 속에 하나님의 중요한 응답이신, ‘말없음(沈黙)’에 관해서이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침묵 속에서 일하시지만 그분은 그 침묵 속에서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사랑으로 함께 하심을 깨우쳐 주신다. 그가 함께 하심으로 인해 믿는 자들은 기꺼이 순교도 감행할 수 있었다. 스데반은 순교의 자리에서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 보좌 옆에 서계신 예수님”을 뵈었다. 그러했기에 그는 천사와 같은 얼굴로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에서 특이한 인물은 누구보다 기치지로이다. 로드리고는 그를 누더기를 걸친 거지같고 경멸스러우며 교활한 인간으로 묘사한다. 그는 성화를 밟고 배교한 위에 신도들을 고발하고 로드리고를 팔아넘기기까지 했다. 도무지 그 어디에도 사랑스러운 면이나 가치가 있어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큰 약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로드리고를 따라 다닌다. 성화를 밟으며, 배교하고, 동료들에 대한 배신도 서슴지 않지만 계속 로드리고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다. 그는 로드리고의 용서가 없인 살아갈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로드리고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을 알고 신부를 무서워하면서도 그를 떠나지 못한다.

엔도 슈사쿠는 이 인물을 가리켜 “나 자신의 모습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약함을 생각하며 기치지로라는 인물을 설정했다는 것이다.

엔도 슈사쿠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강요에 의해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이 터지자 성당에 편히 다닐 수 없었다. 적의 종교를 믿는다고 비난받아야 했다. 당시 20대였던 엔도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썼다.

“적의 종교를 믿는 것은 비국민(非國民)의 행위가 아닌가? 이러한 눈초리로 흘겨보는 사람들 때문에 그리스도교는 자연히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나는 그런 경우를 당하면서 살아왔다. 내가 인간적으로 신뢰하고 있던 뮈랑 신부가 스파이 혐의로 연행돼 가는 것을 보고 질려서 전쟁 후에도 필요할 때가 아니면 ‘세례 받은 신자’라고 내놓고 말하기를 꺼려한 것이다.”
-엔도 슈사쿠, ‘그리스도인임을 밝히지 못한 속사정’ <날은 저물고 길은 멀다>(성 바오로 펴냄)

<침묵>은 이러한 엔도의 회감(回感)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런 그였기에 특별히 기치지로의 아픔을 그리도 상세하게 그렸는지도 모른다. 로드리고는 기치지로를 경멸하긴 했지만 그가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에 마음이 찔리는 것을 느낀다.

“저는 성화도 밟았습니다. 네 밟고말고요. 모키치나 이치소우는 강하지요. 나는 그렇게 강하지 못한 걸 어쩝니까? 그렇지만 제게도 할 말이 있어요…….제가 성화를 즐거워서 밟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밟은 이 발은 아픕니다. 아파요. 나를 약한 자로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이 강한 자 흉내를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건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건 억지이고 말고요…….신부님, 저같은 겁쟁이는 어떻게 하면 좋단 말입니까?”

그런 기치지로가 밤에 또 찾아왔다. 그는 고해성사를 하겠다고 했다.
“저는 배교자죠. 그렇지만 10년 전에 태어났다면 선량한 가톨릭 신도로서 천국에 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박해받을 때 태어났기 때문에…….원망스럽습니다. 원망스럽습니다.” 신부는 누더기처럼 더럽고 악취 나는 그를 참아가며 습관에 따라 “평안히 쉬어라.”하고 중얼거렸다.

그를 보내고 나서 신부는 생각한다. “정말 저 기치지로가 평안한 시대에 태어났다면 교회 안에서 좀 익살맞지만 좋은 성도로 살다가 평화롭게 천국에 갔을 것이다.”라고. 그리고 또 생각한다. “주 그리스도는 누더기처럼 더러운 인간들을 찾아 구하셨다.”고. 색 바랜 누더기처럼 되어버린 인간과 인생을 버리지 않는 것이 사랑이다. 그때 그리스도의 맑고 다정한 눈이 조용히 자기를 바라보는 것을 느꼈다. 그 눈길을 받으며 신부는 기치지로를 경멸하고 있는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로드리고 자신이 성화를 밟게 되었을 때, 그때 그는 기치지로가 “내 발도 아픕니다. 아프다고요.”하고 말했던 것의 의미를 비로소 확연히 깨닫게 된다. 그는 울면서 따라오던 기치지로의 아픈 마음을 주님은 아신다고 생각한다. 그때도 주님은 연약한 우리 곁에서 우리의 아픔과 슬픔을 껴안고 계셨다. 마침내 그는 기치지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강한 자도 약한 자도 없는 거요. 강한 자보다 약한 자가 더 고통스럽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소?”
이제야 비로소 그는 기치지로를 아무런 경멸의 마음 없이 껴안을 수 있게 되었다.

기독교 작가인 박유미씨의 <엔도 슈사쿠의 침묵론-로드리고와 기치지로의 ‘인생’을 통한 순교->에는 이 책의 말미에 역사 기록물 형식으로 <기리시탄 저택 관리 일기>가 삽입되어 있다고 써 있다. 이 일기에는 로드리고가 그 저택에서 은밀히 전도를 계속하였고 기치지로는 로드리고의 곁을 끝내 떠나지 않은 채 그의 중간 하인이 되어 함께 그 저택에서 산다고 되어 있다. 기치지로는 나중에 로드리고와 자신과의 관계를 의심하는 관리로부터 심문을 당하나 끝까지 로드리고를 보호하면서 그를 배반하지 않고 자신의 신앙을 지킨 채 처벌을 받는다고 했다.

기치지로를 통하여 우리는 신앙인격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점진적으로 자라가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망가지고 경멸받아 마땅한 어그러진 인격의 소유자일지라도 끝까지 주님을 따라 갈 때 마침내 우리는 주님의 제자로 성숙한 신앙의 사람이 될 수 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15: )

어쩌면 기치지로는 로드리고가 없었다면 사람들에게 짓밟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로드리고 신부를 따라감으로 로드리고와 같이 새로운 차원의 신앙의 삶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된다.

박유미 작가는 이 기치지로를 베드로의 성품에 빗댄 논문을 발표했다.

“기치지로는 비록 동료들을 팔아 넘겼지만 그것은 그가 협박을 받고 겁이 나서 한 것이지 그의 진심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연약하지만 끝까지 따라 갈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예수님이 관헌들에게 붙잡혔을 때 ‘다른 제자들은 모두 예수를 버리고 달아났으나(마26:56)’ 비록 멀찌기에서지만 끝까지 주님을 따라갔던 베드로와 닮았다…….기치지로나 베드로, 모두 약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을 대변한다. 그러나 그러한 약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들의 약함을 직면한 후 신을 통해 다른 차원의 구원을 맛본다.”

엔도 역시 자신이 세례 받은 사실을 떳떳이 밝히지 못할 만큼 마음이 여렸으나 끝까지 주님을 떠나지 않고 따라갔으리라 믿는다. 그는 계속해서 <예수님의 생애> <깊은 강> 등을 쓰면서 자신의 죄책감을 씻으려고 했다.

그러나 엔도는 그의 말년에 쓴 <깊은 강>에서 가톨릭 신부인 오오츠를 통해 자신의 종교관이 범신론적이라는 것을 밝힌다. 오오츠는 가톨릭 신부이면서도 가난한 힌두교, 불교신자들을 위해 몸을 던져 일한다. 그는 이런 일로 인해 교단으로부터 이단시 당한다. 오오츠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그가 <마하트마 간디 어록집>에 있는 간디의 말에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디는 자신의 종교관을 이렇게 밝혔다.

“나는 힌두교도로서 본능적으로 모든 종교가 많건 적건 진실이라 생각한다. 모든 종교는 똑같은 신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어느 종교든 불완전하다. 왜냐하면 불완전한 사람에 의해 전해졌기 때문이다.”

엔도 또한 이렇게 주장한 간디의 말에 동의한다. 기독교든 다른 종교든 오오츠같이 진실하게 사람을 사랑하기만 한다면, 거기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었다.

1962년 가톨릭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다른 종교에도 하나님이 계신다”고 공표했다. 엔도는 이 공표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14:6)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런데 2013년 3월에 바티칸에서 선출된 프란체스코 교황은 3월 14일 주교들과 드리는 첫 미사에서 그동안 가톨릭에서 들어보지 못했던 혁신적인 말을 했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라는 영적 신앙의 기본을 지켜야 한다.”라는 제목의 강론에서다.

“우리는 세속적 가치를 앞세워 선한 일을 할 수도 있고 교황이나 주교, 사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예수와 십자가라는 영적 근본이 없다면, 그리고 우리가 십자가 없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른다면 우리는 주 예수의 제자가 아닌 세속적인 존재일 뿐이고 교회는 인정많은 비정부기구(NGO)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톨릭 교회가 정말 예수와 십자가라는 영적 근본으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오랜 기간 가톨릭과 개신교회 사이에 쌓여져 왔던 불신의 담이 무너질 수도 있지 않을까?

엔도 슈사쿠는 평생 인간이 지고 갈 수밖에 없는 슬픔에 천착한 작가이다. 그것은 그가 평생 병약한 몸으로 괴로움을 당했고 어렸을 때 이혼한 부모님,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로 인한 슬픔을 깊이 맛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깊은 강>에서 “신은 사람의 슬픔을 없애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분은 인간의 슬픔을 아신다. 그 슬픔을 안아 주신다. 그러므로 신의 품에 안기는 일은 슬픔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깊은 강으로 들어가는 것이다.”고 말한다. 나는 엔도의 신앙관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말한 엔도는 자신의 슬픔을 그 큰 팔로 안아 주시는 주님의 품에 안겼으리라 믿고 싶다.

그는 1996년 9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묘지에는 “인간이 이토록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도 푸르릅니다.”라는 묘비명이 쓰여 있다고 한다. 슬픔을 가슴 가득히 껴안고 영원의 세계로 돌아가는 한 작가의 살 떨리는 아픔이 느껴지는 비명(碑銘)이다.


출처: USA아멘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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