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이응한 목사 2015. 5. 1. 09:44

태초에 하나님이

“브레싯 바라 엘로힘 하 샤마임 브엣 하 에레츠”,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으신 창조주라는 사실은 성경의 서두에 선포되는 첫 말씀이며, 여호와 신앙의 기초가 됩니다.

히브리어 “브레싯”은 “처음에, 시작에”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In the beginning,’ 헬라어로는 “엔 아르케”입니다.
“바라”는 “창조하다. 무에서 유를 짓다”라는 뜻입니다.
“엘로힘”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임’이 끝에 붙어서 복수(複數, plural)입니다.
하나님이 여럿이라는 뜻이 아니라, “여럿이신 한 분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여럿? 여럿이신 한 분 하나님? 이게 말이 돼?” 이런 의문이 들었을 텐데 유일신사상을 가졌던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기록하고 필사할 때 일점일획도 빼거나 더 하지 않고 복수명사인 “엘로힘”을 그대로 기록하고 또 필사한 것입니다.

“엘로힘”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우리”라고 말씀하신 것도 유대인들은 그대로 기록했습니다.
창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 3: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 11: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사 6: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러한 성경구절들은 두 말 할 것 없이 하나님께서 자신이 단순한 유일신이 아니라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암시하시는 것입니다.

“샤마임”도 끝에 ‘임’이 붙은 복수명사 “하늘들”입니다.
영어성경을 보면 the heavens, 복수로 써져 있습니다. 궁창, 하늘, 삼층천을 의미할 수도 있고, 끝없는 우주공간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에레츠”는 땅입니다. 땅은 단수(單數, singular)입니다. 지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여럿이신 한 분 하나님, 곧 삼위일체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다.” 이 말씀이 성경의 기초입니다.
어떤 거대한 빌딩도 기초 없이 세워질 수 없듯, 성경도 하나님이 창조주시라는 사실이 기초가 되지 않으면 성립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믿음이 기초가 되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도 공중누각(空中樓閣; 공중에 지은 집)이 되고 맙니다.
아니,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사기꾼, 도적으로 여기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건물의 기초는 자신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구름이 뒤덮이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눈보라가 쳐도 끄떡없는 건축물이 그 기초를 증거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심과 하나님의 창조주이심을 믿지 않거나 의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잠잠하십니다. 대답이 없으십니다.
그러나 그 분의 창조주이심은 그 지으신 피조세계, 온 우주에 가득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거룩하심과 영광과 엄위가 증거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 창세기 기록을 가지고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시비하고 부정하려 합니다.
말씀으로 6일 동안 만물을 창조하셨다니 터무니없다고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성경기록을 근거로 우주와 지구의 탄생이 6천 년 전이라고 주장하고 어떤 이들은 6천년전이라니 터무니없다고 말합니다.
굳세게 6천년전 6일창조를 주장하는 분들은 성경무오설을 내세우고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로 틀렸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 첫머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님은 그분의 창조사역을 보여주시려고 창세기를 기록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는 1절 다음에 “땅이 혼동하고 공허하며.....”라고 땅이 이미 존재하고 있음이 나타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사역의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보여주고 계시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이들은 1절과 2절 사이에는 기록되지 않은 긴 시간과 엄청난 사건이 생략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간격이론(間隔理論, Gap Theory)"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1절에서 끝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절과 2절 사이에 긴 세월이 흘렀다는 것입니다.
그 기간 중에 루시퍼를 위시한 천사들의 3분의 1이 하나님께 반역을 하였고 하늘에서 무시무시한 전쟁이 벌어지고 전쟁에서 패배한 타락한 천사들이 쫓겨나 마귀가 되었고 그 하늘전쟁의 결과로 땅이 망가져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에 덮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간격이론” 역시 하나의 설(說)일 뿐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밝히지 아니한 사실을 억지로 추리해내거나 상상해서 믿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우리는 창세기를 가지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우주만유를 어떻게 만드셨는가를 알아내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아니하고 비밀에 두신 것을 억지로 풀다가 실족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가면 알게 되겠지요.
그보다 우리는 성경이 창조실황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려고 기록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증거의 기록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한복음 5:39, 예수님의 말씀)

요한복음 1장을 읽어 보십시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창세기와 매우 흡사하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계신 말씀은 예수님입니다. 이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아들 하나님이 아버지 하나님과 우주만유를 함께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이 아들 하나님이 빛으로, 그 안에 생명을 담아가지고 이 땅에 오셨는데 어두움이 깨닫지 못 하더라,’ 하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지 못 하였습니다. 자신들을 살리려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깨닫지 못 하였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마음이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것 같아서 성령의 깨우치심 없이는 눈앞에 오신 그리스도도 알아보지 못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절에서는 그래서 빛이 있기 전에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신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어두움에 갇힌 죄인의 마음 위를 운행하실 성령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성령님이 죄인의 마음을 여시는 것으로 시작되며 창세기에서 창조사역은 성령님이 수면 위를 운행하심으로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창세기는 첫머리부터 예수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신의 마음 위를 성령님이 운행하실 때 마음을 여십시오.
당신에게도 생명의 빛, 예수님의 빛이 비치고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 그 풍성하신 역사, 창세기가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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