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거신앙에는 부정적인 요소와 긍정적인 요소가 있다. 부정적인 요소는 휴거신앙에 빠져서 날짜와 징조만을 따지면서, 일상을 소홀히 하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긍정적 요소는 자신의 행실과 마음을 깨끗히 하고 모든 죄에서 떠나기를 간절히 추구한다.

 

일반적으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겠다.

"주님이 언제 오시든지 그냥 열심히 신앙생활하면 들림 받겠지요?" "휴거에 대해 관심을 갖는 자체가 커트라인이 될 수는 없지 않나요?"

 

우리 주위에는 실제로 휴거나 재림신앙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지만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좋은 사람들이 많다. 그들을 볼 때마다 왜 이렇게 극성스럽게 믿어야 하나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딜레마가 생길 때 가는 곳이 있다. 바로 성경이다. 성경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지? 예수님께서 종말에 대해 언급하신 말씀을 기록한 곳은 4복음서 중 마태, 마가, 누가복음이다.

 

이 말씀들을 종합해 보면

첫째, 그 날과 그 시는 우리가 절대 알 수 없다.

생각지 않은 때에 주님은 오신다.

(마 24:36,42,44,50, 25:3, 막 13:32,33,35, 눅 12:40,46)

 

이 말씀이 무려 10번이나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확실히 <그 날과 그 시는 알 수 없다>는 대명제에 속한다. 그러므로 날짜와 시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집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주님은 도둑처럼 오신다(마 24:43, 눅 12:39, 데전 5:2, 5:4, 베후 3:10, 계 3:3, 16:15)는 말씀도 7번이나 기록되어 있다. 도둑은 절대 예고를 하고 오지 않는다.

 

그 날과 그 시는 모르지만 예수님은 그 때를 분별하라는 말씀은 하셨다. 그 날과 그 시는 한 점에 속한 좁은 개념이지만, 때는 그보다 넓은 개념이다.

 

주님이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에게 주신 힌트들은 다음과 같다.

노아의 때와 같다. 그들은 홍수가 나서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했다. 우리는 깨닫고 있어야 한다.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워라. 천국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다. 재난이 시작될 것이다.

 

정확한 날은 모르지만 그 시기를 깨닫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이런 말씀들을 주셨다. 또 들려오는 뉴스나 서로 격려하는 글들을 통하여 시기를 가늠해볼 수 있다.

 

그 날과 그 시는 어떤 특정한 날을 기다리지만, 때를 기다리는 사람은 오늘이 그날일까를 매일 기대하고 준비하면서 사는 것이다.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그러나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르느니라"

 

둘째, 깨어서 준비하라!

그냥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분은 깨어 준비하는 신앙과는 다른 신앙이다. 열심히 하는 신앙은 목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열심은 주로 사역에 관한 것이다. 교회봉사, 전도, 선교, 각종 섬김, 예배참석, 찬양 등등...

 

이런 것들은 교회의 핵심요소들이고, 그리스도인으로써 지속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맞지만, 이것 자체가 깨어 준비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언급하신 깨어 준비하라는 것은 이런 의미이다.

내가 다시 오는 그 날에 혼인예식이 있을 것인데 그날 깨어서 신랑을 맞이하고 신부로서 필요한 것을 준비하도록 하라.

 

이것은 그져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른 목적의 문제이다. 그것은 사역 지향적 문제가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성의 문제이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결혼식을 앞둔 신부의 마음을 헤아리면 도움이 될 것이다. 신부는 혼인식날 입을 최상의 드레스를 준비하고 날씬하게 보이고 싶어서 대부분 체중조절에 들어가고 모든 일에 절제한다. 또 신랑과 앞으로의 계획을 상의하고 행실도 조심할 것이다.

 

따라서 하늘의 혼인식을 앞둔 우리는 <그냥 열심히>가 아니라 목적에 맞게 열심히 해야 한다.

 

악한 종은 그 날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여 술친구들과 먹고 마시며 살았다. 반면 충성된 종은 주인이 오면 곧 문을 열어줄 것처럼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열심있는 종은 주인이 오는 것에 관심없이 그져 일만 열심히 하였다.

 

계시록에 기록된 혼인예식을 살펴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어린 양의 혼인하는 날이 임했다. 그의 신부가 단장을 마쳤다. 세마포로 만든 신부의 옷이 주어졌으니 이는 그들의 옳은 행실로 만들어진 옷이다.

 

어린양의 혼인식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복되다. 혼인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예복인 것으로 보인다. 넓은 의미로 신부단장이라고 한다.

 

예복은 흰 옷, 세마포 옷, 두루마기 등으로 표현되는데 계시록에만 11번이나 기록되었다.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계 3:4)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계 3:4)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계 3:5)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계 3:18)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계 7:9)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계 7:13)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계 7:14)

보라, 내가 도둑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계 16:15)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계 19:8)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계 19: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계 22:14)

 

그냥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예복을 준비하지 않는다. 내가 신부라는 정체성을 깨닫지 못하면 전혀 관계없는 목록이다. 열심신앙은 평일로 돌아가면 결국 그가 추구하는 것은 성공과 번영이고 그의 중심에는 삶의 목적이 행복이다.

 

그러나 신부단장은 삶의 목적과 중심이 오직 그리스도가 된다. 예복은 혼인식이 임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준비하는 것이다.

 

계시록의 말씀에서 얻은 힌트는 혼인식에 흰 옷을 입고 참석해야 하며, 이 옷은 희고 깨끗해야 한다는 것이다. 깨끗하게 세탁하는 방법은 어린양의 피를 의지하여 회개하는 것이고 이에 못지 않게 옳고 깨끗한 행실을 가지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최상품의 좋은 나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혼인식의 주인공,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로 승화되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매우 쉬운 일인데 왜 어렵게 느껴지는 것일까?

그 이유는 너무 세상에 연결된 죄의 고리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 일상에서 평범하게 일어나는 일들이 그리스도와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 고리들이 무엇인지 자신은 잘 알고 있다. 이 고리들과 싸워서 이겨내고 잘라내야 비로소 바르게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예루살렘 혼인잔치에 참석하느냐, 환란에 남느냐? 자신을 준비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보상이 나타날 것이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카이로스 / acolo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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