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6:24절에 대한 묵상

김정한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16:24)

왜 주님께서는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자신에 대해서 사람들이 그리고 제자들이 누구인지를 묻고 난 뒤 시몬에게 주님의 교회를 세우겠다는 놀라운 선언을 하셨고 그리고 자신이 그리스도인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시며 16장 24절의 말씀 <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하셨는지? 에 대한 묵상을 해본다.

필자는 예수님께서 그간 제자들을 택하고 부르셔 3년간 숙식을 같이 하며 공생애 사역을 마치실 때가 되었기에 제자들이 예수님이 누군가에 대한 것을 확인케 하신 뒤 삼위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하나님나라에 중추기관이 될 교회를 세울 것을 말씀하셨다고 본다.

그리고 그 교회 구성원이 되려면 베드로처럼 기본적으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라고 고백하는 자들이어야 할 것임을 말씀하시고,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는 말씀은 주님과 더 깊은 관계가 될 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마 16:16은 구원받은 자들이 가져야할 고백인 것이고. 16:24는 제자들 다른 말로 하면 성도들에게 주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 말은 교회구성원들 안에서 주님과의 관계에서 차이가 있다는 말인 것이다. 신앙의 성숙도에서 아이들, 청년들, 아비들이 있음을 요한사도도 말하였고 바울사도 역시 육신에 속한 어린아이와 신령한 자가 있음을 언급하였고 이것을 주님을 부르는 자들과 주의 부르심을 입은 성도라는 구별을 한 것을 볼 수 있다.

계시록을 봐도 예수님께서 핍박과 유혹속에 있는 7교회 사자들에게 이기는 자들에게는 놀라운 대우와 보상이 있을 것임을 말씀하신 것을 보아도 그렇거니와 주님께서 세우실 나라에서 교회에 속한 자들이 영광이 다를 것임이 명백하다고 본다.

그래서 필자는 신자(믿는자)의 수준을 넘어 성도의 수준이 되고 장성한 자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는 것을 경건생활의 훈련이 필연적으로 있어야 하고 훈련에 참여하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 경건생활은 먼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이것을 경외라고 본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창조하신 만물을 그 분의 뜻대로 주관하신다. 바울사도의 말대로 만물이 주님께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께로 돌아간다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크고 깊고 넓고 깊은 말로 할 수 없는 거룩한 분이고 영화로운 분이시다.

그러려면 주를 아는 자들은 주를 경외하여야 하고 경배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며 주 하나님의 말씀에 찬탄하고 순복해야 할 것이다. 주 하나님을 대적하여 일어나는 모든 이론과 사상을 물들지 않고 이런 것들을 대적하여 그리스도앞에 굴복시켜야 할 것이며 실천적으로는 야고보 1:26-27을 행하고 있는지를 점검해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말뿐 아니라 글 쓰는 것에도 자신의 의가 들어나고 자신의 지적인 것을 나타내려 글을 쓰고 있는 지도 생각하여야 봐야 할 것이라고 본다.  모든 것이 가하나 다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란 바울사도의 말을 생각하며 할 수 있는 대로 피차간 힘을 얻고 깨달으며 유쾌한 댓글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