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인들이 가장 잘 쓰는 말 중에...

은혜론 2015. 2. 2. 04:08

"은혜 받았습니다." "은혜가 됩니다." "은혜스롭습니다." 등등에 사용하는 "은혜"라는 단어...

 그리고 카페에서의 글이나 크리스마스 카드 등에 마지막으로 언급하는 "샬롬" 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았다. 필자도 가끔 댓글 말미에 사용하는 "카리스"라는 단어가 "은혜"라는 뜻이다.

 

찾아보니 "은혜"라는 단어는 신약에만도 155번이나 나온다. 그래서 그런지 이 단어는 교회에서 대단히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설교에 감흥을 받으면 "은혜 받았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좋은 성도를 볼 때면...

 "집사님만 보면 은혜가 됩니다!" 심지어는 뚱뚱하고 건강미 넘치는 아이를 보면 "너 참 은혜롭게 생겼다."

라고 하는 사람도 보았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은혜"는 "구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대표적인 말씀이 로마서 3장 24절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기서의 "은혜"란 하나님이 베푸신 "호의"를 말함이며 우리가 받은 은혜는 바로 "구원"이다.

 이렇듯 은혜는 구원과 관련이 깊다. 그리고 로마서 5장 20절을 주의깊게 보자...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는 말과 “죄가 왕노릇하던 곳에서 은혜가 왕노릇하게 되었다”라는 

말에서 은혜가 과연 무슨 뜻으로 사용됐을까를 생각해 보라. 먼저 은혜는 죄의 반대어로 사용되고 있다. 


다시말해 은혜는 죄를 이기고 물리치는 것으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그러면 무엇이 죄를 이기는가? 

말할 것도 없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새생명 즉, "구원"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은혜라는 말은 ‘구원’이라는 말과 상통한다. 

그러나 고린도후서 9장28절을 보면 좀 다른 뜻으로 "은혜"를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느낌인가? 은헤가 "모든 일에 넉넉하고...착하고 선한 일에 넉넉한..." 우리의 행실에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착한일을 넘치게 하는 원인을 무어라 했나?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행을 하기전에 먼저 받은 것이

 "은혜"라는 말이다. 그것은 "구원"이다. 원래 "카리스"라는 "은혜"라는 말의 의미는...

어떤 존재로 부터의 "선물" "호의"라는 뜻이다. 

바로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이 그 선물인 것이다. 

어제 송구영신예배를 마치고 한 전도사님이 필자에게 "새헤에도 은혜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다정하게 

말했다. 그 분은 그저 인사로 한 말이겠지만 사실 이 말은 "당신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새해에도 변함없이

늘 임하십시오!" 라는 의미이다. ^^ 


그러므로 성경에 "은혜"라는 말이 나오면 그 말 대신해 "구원"이나 "선물"을 대입하여 읽어보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좀 더 구체적으로 좀 더 은혜스럽게(? ^^)  느낄 수 있다 하겠다. 

그리고 "샬롬"이라 흔히 말하는 "평안""평강""평화""화평"의 의미가 있다. 

우리가 글을 쓸 때 같은 뜻으로 "에이레네" 라고 쓰면 좀 더 있어 보이는데...^^  

샬롬은 히브리말이고 에이레네는 같은 뜻의 헬라말이다. 


그러면 이 단어가 성경에서는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보자. 샬롬은 화평의 의미이지만 "질서"의 의미도 있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고전14:33) 

말 그대로 "어지러움"의 반대어로 "화평"을 말하고 있다. 

이미 창세기 1장에 어지러운 혼돈의 상태로 부터 세상을 조화롭고 질서있게 창조하신 하나님의 다스림이 

"샬롬"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대표적인 구절이 요한복음 14장 27절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여기서의 "평안"이란 어떠한 것일까? 

분명한건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다른 것이라 했다. 그러면 세상이 주는 평안은 무언가? 

그것은 넉넉하고 평탄한 삶이나 삶의 위기가 왔다가 다시 극복했을 때의 휴~ 라고 안도하는 안전감...

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세상것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란 무언가? 정반대라 하겠다. 


평탄한 삶이 세상이 주는 평안이라 한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평탄과는 반대로 극도의 불안과 

풍랑속에서의 "평안"을 말함이다. 그래야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다는 말이 성립이 되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하는 "샬롬"이란 우리 육신의 안정이나 평안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세상도 충분히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이다. 

하나님의 평안은 우리의 궁극적인 평안 즉, 영혼의 평안이다. 다른 말로 "구원이 가져다주는 평안"이다. 

이것은 세상이 알지도 못한다. 성도만이 경험하는 평안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하나님의 평안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우리 인간은 모두 죄인이다. 평안은 고사하고 다 죽어야만 한다. 

저번 게시글에 언급했듯이 "피의 보수자"의 살기등등한 칼날에 우리 모두는 피를 흘리며 죽어가야 

마땅하다. 구약에선 그 피를 짐승들이 대신 흘렸다. 

피비린내나는 짐승살육장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평강을 이룬 것이다. 


더 끔찍한 평강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버지의 진노가운데 놓여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아내어 이룬 

처참한 평강이다. 죄로 인하여 죽어야하는 우리가 희생제물로 대신 피를 쏟아낸 예수로 인하여 얻게된 

평강이 샬롬이다. 우리의 끔직한 죄악이 씻어짐으로 가능케 된 평강이 샬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샬롬"이라고 글의 맺음을 할 때 그 의미는 첫째로 세상이 줄 수 없는 인간 존재의 

영혼의 평안를 말함이요 그 평안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죄로 인한 죽음의 멸망 

가운데 거할 필요가 없음을 말해 주는 "평안"이란 뜻이다. 결국 "샬롬"의 진정한 의미 역시 '구원"이다.


우리가 별 생각없이 많이 사용하는 "은혜"와 "샬롬"... 

모두 하나님이 우리 성도에게 베푸신 "구원"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 많히 받으세요!" 라고 인사하는 것은 단순한 원함이나 기원이 아니다. 

그리고 "샬롬"이라고 끝맺음하는 인사 역시 단지 "평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라는 소망이나 인사치레가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신 그 은혜와 평강이란 구원받은 성도만이 받을 수 있는 특권으로써의 실질적인 

하늘의 "복"을 말 함이다. 

 

성도는 그 복을 반드시 누리는 존재이다. 
실제로 사도바울은 각 서신서에 "은혜와 평강"을 편지의 서두로 시작함을 우리는 쉽게 본다. 
실제로 찾아보니... 고린도전서, 로마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베드로전후서...거의 서신서 전체에서 이와같은 인사로 시작을 하고 있음에 놀라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인사 정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의 원하는 기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원이요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복이다. 

우리는 정말 이러한 의미로써의 "은혜"와 "샬롬"이 넘치는 형제 자매되기를 원하는 바이다.               


 

 

 출처: 물과피와성령/ess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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