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미국방문으로 보는 카톨릭에 대해 알아야 할 10가지
천주교의 모든 것 2015. 9. 21. 04:10교황의 미국방문으로 보는 카톨릭에 대해 알아야 할 10가지
교황의 미국방문을 앞두고 개신교인들에게 카톨릭과 교황의 실체를 알기기위해 필라 목회연구원은 9월 17일(목) 오전 10시 새한교회에서 "교황과 천주교의 실체"라는 제목의 세미나를 열었다. 발제자는 필라교협 회장을 역임하고 필라이대위 위원으로 있는 김선훈 목사.
김선훈 목사는 "교황은 기독교의 근거인 성경의 가르침을 가장 심각하게 파괴하는 유사 기독교 즉 기독교와는 사실상은 무관한 다른 종교의 대표자임을 알아야 한다. 교황과 가톨릭이 가르치고 주장하는 중요한 내용들은 성경에 상반된다"고 강조했다.
김선훈 목사는 ①교황 제도의 문제점 ②사제에 대한 잘못된 주장 ③고해 성사의 문제점 ④잘못된 마리아에 대한 사상 ⑤가톨릭의 잘못된 구원론 ⑥가톨릭의 잘못된 예배론 ⑦가톨릭의 잘못된 기도론 ⑧가톨릭의 잘못된 성도론 ⑨십자가 숭배 사상 ⑩교황 제복의 문제점 등 10가지 소주제로 카톨릭과 교황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강사 김선훈 목사
로마 가톨릭의 교황 프란치스코 1세의 미국의 뉴욕과 필라델피아에 9월 22일부터 28일까지 방문한다니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일이 되었다. 이미 2014년도에 한국 방문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 개신교의 부정적인 반응에 대해 한국 개신교 신도수가 감소하고 있지만 그에 반해 가톨릭 교세는 커지고 있기에 개신교는 교황의 방한으로 교세가 더욱 위축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원인을 분석하기도 했다. 비슷한 상황을 맞이하여 교황의 미국 방문을 비판하면 일반인은 물론이고 심지어 개신교회 성도들 가운데도 가톨릭의 교황의 엄청난 인기를 시샘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렇다고 교황과 로마 가톨릭가 가르치는 거짓된 교리들을 용납하고 수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프란치스코 1세 교황이 미국을 방문함에 있어서 너도 나도 칭송하고, 심지어 그가 온 세상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평화의 왕이라고 추앙하고 환영하는 분위기는 정말 괴롭다. 단언컨대 교황은 기독교의 근거인 성경의 가르침을 가장 심각하게 파괴하는 유사 기독교, 즉 기독교와는 사실상은 무관한 다른 종교의 대표자임을 알아야 한다. 누구는 가톨릭(Catholic)를 개신교의 장자교회로 생각을 하며 구교(Old Church)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기독교의 옷을 입고 있으나 가톨릭은 사실상 기독교가 아니다. 교황과 가톨릭이 가르치고 주장하는 중요한 내용들은 성경에 상반된다.
특별히 미국에 방문하는 교황 프란치스코 1세도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입지 않으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고,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수밖에 없는 죄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은 교황을 ‘그리스도의 대리자’, ‘거룩한 아버지’, ‘최고의 제사장’이라고 공식적으로 호칭한다. 어떻게 죄인이 우리들의 아버지가 되고, 부패하고 타락한 인격과 영혼을 가진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리할 수 있으며, 또한 감히 은혜를 구해야 할 죄인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만이 십자가의 피 흘리심을 통해 감당하시는 최고의 제사장 직분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교황에게 이러한 호칭을 사용한다는 것은 성경이 존재하는 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자 이제 가톨릭의 실체를 파헤쳐 보고자 한다.
1. 교황 제도의 문제점
로마 가톨릭의 가장 중심에 있는 인물인 교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지만 다 거짓이다.
⑴ 사도 베드로가 제1대 교황이며, 결혼을 안 했다고 주장한다. 가톨릭가 주장하는 교황제도의 근거로 예수님의 12 사도의 대표인 베드로의 직분을 교황이 물려받았다고 주장한다. 베드로 사도가 최초의 로마의 감독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가 로마에서 순교한 이후 후대의 로마 감독들이 그의 직분을 계승했다고 한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제1대 교황으로 세웠다고 하는데 성경에 교황이라는 단어는 없다. 베드로는 결혼을 안 했으며 로마에서 25년 동안 교황으로 있었다고 주장을 하지만 베드로가 교황이 된 적이 없다. 사도로서 평생을 지냈다. 그는 어부요 결혼을 한 사람이다(마 8:14).
그리고 가톨릭은 마태복음 16:18의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는 성경의 내용에서 베드로가 고백한 예수님의 신앙을 교회의 기초라고 여기지 않는다. 대신 베드로라는 인간을 교회의 기초로 여긴다. 또한 영혼을 구원하는 참 복음을 전하는 베드로뿐 아니라 교회와 모든 복음전도자들에게 천국 열쇠가 주어진다고 보지 않고 베드로 개인과 그의 직분을 계승하는 로마의 감독들과 교황에게 주어진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베드로가 전체 교회와 12 사도를 대표한다고 불 수 있는 내용이 성경에 없다. 베드로가 로마에 갔다는 역사적인 증거도 없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보낸 편지에 로마에 있는 많은 성도들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으나 베드로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사도 바울이 생애의 마지막 순간 감옥에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에도 베드로가 로마에 체류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없다.
베드로의 사도직은 구원계시인 성경과 신약의 교회를 설립하기 위한 단회적인 직분이었다. 성경이 완성되고 교회가 설립된 후 사도직은 종결되었다. 최초의 사도들이 사망한 후 사도 직분은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계승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12사도를 대표하였던 베드로의 사도직이 후대의 로마 감독들에게 계승되어 현재의 교황에까지 이른다는 가톨릭의 주장은 엉터리이다.
⑵ 교황은 절대 잘못이 없다는 교황 무오설을 주장한다. 교황 무오설은 1869-70년에 개최된 제1차 바티칸 종교회의에서 로마 가톨릭은 성경을 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교황이며, 교황은 성경을 해석하고 교리를 제정함에 있어서 전혀 오류가 없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교황 피우서 10세는 제 1바티칸 종교회의에서 결의한 교황 무오설을 적극 변호하면서 만일 누구든지 교황의 절대무오성에 도전하면 이단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성경 로마서 3장 9절과 10절, 23절에 보면 “이 세상에는 의인이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다. 모두 다 죄인이라고 했다. 죄의 삯으로 인간은 모두 죽는다고 했다. 그런데 가톨릭에서는 교황은 잘못도 없다고 하는 교황 무오설을 주장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⑶ 교황을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한다. 로마 가톨릭에서 교황을 부를 때에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9개의 호칭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공식 호칭은 ‘그리스도의 볼 수 있는 대리자’, ‘그리스도의 대리자’(Vicarius Christi)라는 호칭이다. 그러나 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리할 수 있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타락하였고, 죄와 허물에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 주어진 정확 무오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말씀 성경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리할 수 있다. 가톨릭에서 교황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리한다고 하는 것은 교황이 성경을 해석하고 교리를 제정하는 활동을 하는데 있어 오류가 없다는 교리를 수립하였기 때문이다.
⑷ 교황을 성스러운 아버지(the Holy Father)라고 한다. 세계 각국의 정치인들이 교황을 알현할 때에 ‘Holy Father’라는 호칭을 주로 사용한다고 한다. 그런데 영어 사전에서 이 단어를 검색하면 로마 가톨릭의 교황을 뜻하는 고유명사로 설명되고 있다. 성경 어디에 사람을 거룩한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기록되어 있는가. 성스러운 아버지라고 불릴 수 있는 분은 성부 하나님뿐이시다. 성경에서 거룩한 아버지로 표현되는 분은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을 부를 때 '아버지'(요 17:1)라고 호칭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인 교황에게 Holy Father라는 호칭을 사용된다는 것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⑸ 교황을 최고의 제사장(Pontifex Maximus)이라고 한다. 원래 이 말은 고대 로마에서 신들에게 제사하는 업무를 관장하는 국가의 사제집단의 수장을 의미하는 호칭, 즉 최고 제사장이라는 뜻이었다. 로마 제국의 기초를 놓은 천재적인 정치인 율리어스 카이사르에게 이 호칭이 사용된 후 모든 로마의 황제들에게 이 호칭이 부여되었다. Pontifex는 다리를 놓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로마인들이 경배하였던 신들과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였던 우상 제사장들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Maximus라는 말은 최고(great)를 뜻하는 단어이다. 즉, 사탄과 사람들 사이를 중매하는 최고의 무당을 뜻하였던 호칭이 지금 로마 가톨릭의 교황에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 호칭을 사용할지라도 용납될 수 없다. 기독교에서 하나님과 죄인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는 분(중보자, 딤전 2:5)은 십자가에서 죄인들을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뿐이기 때문이다.
2. 사제에 대한 잘못된 주장
⑴ 가톨릭에서는 성도와 구별된 직분으로, 즉 특별 계급으로 그리스도 교회를 위하여 사제들의 교직 정치를 설정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에는 복음 전하는 자, 사도, 목사, 집사 제도를 주신 것뿐이다. 사제란 제사장이란 뜻으로 신약시대에는 성도가 만인 제사장이다. 특별히 누구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누구나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 예수님 이름으로 회개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톨릭에서는 사제를 특별한 사람으로 가르치며 권위를 내 세우고 있다.
⑵ 추기경단 조직도 로마의 다신교의 사제단과 대등하다. 추기경(Cardnal)의 어원이 라틴어 Cardo(돌쩌귀)인데, 이는 야누스 신의 사제들의 명칭이기도 하다. 야누스 신은 문지기 신이라 한다.
3. 고해 성사의 문제점
고해 성사는 바벨론 종교에서 행하던 의식이었다. 바벨론 밀교에 입교하기 위해서는 비밀 고해를 해야 입교할 수 있었다. 이 고해를 통하여 사제가 비밀을 폭로한다고 겁을 주어 신도를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만일 고해 성사가 성경적인 것이었다면, 아마 그 제도는 주님이 떠난 후에 바로 초대 교회에서부터 실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해성사 제도는 1215년이 되어서야 이노센트 3세에 의해 (라테란 회의에서) 결정되었다. 사도들이나 초대교회가 1200년 동안 실시해하지 않았던 일을 1200년 후에 갑자기 실시한 것은 아무래도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죄의 자백과 용서에 대한 문제는 사제를 거치지 않고 직접 하나님과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사제에게는 죄를 사하는 권능을 가졌기 때문에 사제에게 죄를 고해야 한다고 하여 사제의 권위를 높이고 있으나 우리는 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직접 하나님께 고백하면 사해 주시고 기억조차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4. 잘못된 마리아에 대한 사상
⑴ 가톨릭은 동정녀 마리아가 죄 없이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마리아는 하늘의 문이요, 신령한 은혜의 조제사요, 새벽별이요, 예수님과 함께 속죄하시는 분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라고 했다. 인간은 모두 죄 가운데서 출생하고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다. 마찬가지로 마리아도 죄인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용서함을 받지 못하며 지옥에 간다. 오직 인간의 죄를 대속할 자는 죄 없이 이 땅에 오신 예수님뿐이시다.
⑵ 마리아는 하늘에서 성도의 기도를 듣는다고 가르친다. 하늘에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요한복음 16장 23- 24절에 하나님께 내 이름으로 구하라고 했다. 요한계시록 5장 8절과 8장 4절에 기도가 향연이 되어 천사의 손에 의해 금 향로에 담겨 하나님 보좌 앞에 올라간다고 했다.
⑶ 마리아는 영, 혼, 육이 죽지 않고 승천했다고 주장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고 했다(요3 :13).
⑷ 그들은 죽은 부모나 형제, 자녀들을 위하여 미사를 드리고 예물을 많이 바치면 토요일마다 연옥에 있는 영혼들이 천국에 올라간다고 하여 돈을 많이 내도록 한다. 그들이 드리는 미사 중에 하이퍼 둘리아(Hyper Dulia)라는 특수 공경 미사는 마리아에게 드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은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 4:10)고 예수님이 말씀을 하셨다. 이 피조 세계에서 경배를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출 20장). 그런데도 가톨릭은 자기 맘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지키고 있다.
⑸ 가톨릭은 마리아에게 기도해야 한다며 기도 묵주인 로사리오라는 묵주 도구가 있다(염주알). 이것도 이교의 풍속이다. 불교의 염주와 마찬가지이다. 회교도 염주를 사용하고 있다. 완전한 로사리오는 성모 기도 53번, 주기도 6번 등을 반복하는데 주기도보다도 마리아에게 하는 기도가 9배가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만 기도하고,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셨다(마 6:7-13).
(6) 모자 숭배 사상이 있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은 기독교의 산물이 아니다. 바벨론의 유물 가운데는 여신 세미라미스가 아들 탐무스를 안고 있는 신상들을 많이 볼 수가 있다. 그 모습이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 이집트의 태양신 숭배도 니므롯 태양신 숭배와 통하여, 이집트에서도 이시스라는 여신과 아들 호루스의 모자 동상이 우상화되었다. 그리고 독일, 스칸디나비아, 에투루리아, 드루이드, 그리스, 수메르, 영국, 중국, 멕시코 등 여러 나라에서 그러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의 기독교 공인 후 이런 전통이 초대교회 시절에 이교도들이 회심도 없이 그냥 세례만 받고 기독교로 개종하여 이교 풍속이 자연스럽게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 이러한 무리들에게 교회가 타협하고, 이교도들의 모자 숭배와 유사한 점을 모방한 것이 로마 가톨릭의 마리아 숭배(이 교리는 A.D. 431년 에베소 종교 회의에서 채택)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이교도들의 모자숭배를 기독교화 하고 한편 로마 가톨릭회의 양적 부흥과 함께 우상 숭배를 교회제도 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여 올 수 있는 것이었다. 이것이 오늘날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모자 상이다.
그러나 바울은 초기에 에베소에 왔을 때 이방 종교와의 화해를 허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게 되었으며 그들이 섬기던 여신상을 스스로 부수어 버렸던 것이다(행 19: 24~27). 그리고 하나님은 이 우주 어디에도 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가톨릭은 이러한 내용이 십계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알고는 십계명의 2계를 삭제하고 그 대신 아홉째 계명을 둘로 나누어 놓았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정통 기독교 신앙은 어떤 형상에도 절하지 않는 것이다.
5. 가톨릭의 잘못된 구원론
가톨릭은 구원은 공로가 있는 일이나 공덕으로 얻을 수 있고, 혹은 사제들이나 성례나 마리아나 천국에 있는 성도들의 중재의 수단으로 말미암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 주장은 정말 가톨릭의 큰 배도가 아닐 수가 없다. 어디에 인간의 행위나, 물질(돈)이나, 다른 사람을 통하여 구원이 있다고 성경은 말을 하고 있는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가능하다고 갈라디아서 2장 6절과 에베소서 2장 8-10절에 말하고 있다.
또 가톨릭에서는 미사 시에 행하는 것과 미사에 참석하는 것과 어떤 기도를 외우는 것과 염주도(念珠禱)와 연도(連禱)와 9일간의 기도(근행)와 금식과 금요일과 다른 지정한 말에는 생선 외에 다른 고기를 절식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면서 고기를 먹는 사람은 사제에게 돈을 바침으로서 특별 사면을 받기 때문에 그들은 먹어도 된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식물은 선하매 기도하고 먹으면 버릴 것이 없다(마 4:10-11)고 했다.
가톨릭에서는 십자가를 손으로 그리는 성호를 하는데 이것은 은혜의 방법이요 악마를 쫓아내는 방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악마를 쫓아내며, 은혜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것이라고 하였다(마4:10-11).
6. 가톨릭의 잘못된 예배론
⑴ 미사=예수님과 제자들이 미사라고 말하였다고 하는데 성경 어디에 보아도 미사라고 한 기록이 없다. 그리고 미사 때는 약정한 예물을 내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며 죽을 때에 하늘나라에 간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죄사함을 받고 천국에 가는 것은 믿음으로 가는 것이지(요3:16) 바치는 예물로 간다는 성경 구절은 없다. 또한 미사를 드리면 연옥에서 불타고 있는 죽은 영들이 휴식을 가지게 하는 행위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연옥도 없고 미사를 함으로 불에서 고생하는 자에게 영향이 미친다고 한 것은 전혀 없는 낭설이다. 성경은 지옥에 가 있는 자는 오갈 수 없다고 했다(눅 16:19-31).
미사 때에 사제가 매번 성병이 실제로 예수님의 몸이 된다고 하는 주장은 갈보리 희생의 반복이 되므로 정말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다. 예수님은 단번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원을 완성을 하였으며 이 땅에 심판장으로서 오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콘스탄틴회의(AD 1414)과 트랜트회의(AD 1545)에서 미사교리에 대하여 대대적으로 반대하였다. 기독교의 예배는 성경 말씀과 찬송, 기도, 성찬 예식으로 성립되었다.
⑵ 잘못된 성례론
① 떡과 잔에 대한 주장=사제가 떡과 잔을 가지고 있으면 예수님의 실체의 피와 영과 살이 신성으로 변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고전 11:23-25)고 했다.
그리고 성찬식하고 남은 빵을 보관하는 곳이 구약의 지성소와 같다고 한다. 신부들이 축성하므로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 몸으로 변했기 때문이라고 하며, 남은 빵이 보관되는 곳이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로 현존하는 곳이라고 한다. 가톨릭은 신자들이 남은 빵이 보관되는 곳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로 여기고 경배하도록 가르치는데, 이는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와는 무관한 일이다.
② 세례에 대한 주장=가톨릭에서는 어린이나 어른에게 세례 시에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물을 이마에 찍으며 머리에 뿌림으로서 신자가 되고 원죄를 씻고 그 영혼이 구원받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 3장 3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고 했다. 그럼에도 가톨릭은 세례가 구원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세례가 구원에 필수적임을 주님께서 직접 확증하셨다(카톨릭 교회 교리문답, 1994, 제 1257항)고 가톨릭에서는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말씀은 하신 적이 없다. 오히려 성경은 구원은 값없는 선물이며, 행위로는 결코 얻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 세례에 의한 구원이라는 교리는 카톨릭이 고안해 낸 것이다.
요한복음 1장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했다. 이런 성경 구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톨릭은 세례는 모든 죄들을 정화시켜 줄 뿐만 아니라 개종자를 하나님의 아들인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며 하나님의 성품의 참예자가 되게 한다. 또한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가 되며 성령의 전이 된다(제 1265항)고 주장한다.
이런 교리는 많은 성경 구절들과 상반되고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 1:7) 세례가 구원에 필수적이라면 사도 바울이 이렇게 선언했겠는가? 또 빌립보 간수가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을 때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말했다. "그 후에야 그 밤 그 시간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행 16:30-33)라고 했다. 그렇다. 그들은 먼저 믿고, 그 다음에 세례를 받은 것이다. 세례는 항상 구원 이후에 이어 나온다. 성경은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죄들을 용서할 수 있으며, 세례와 같은 행위를 함으로써 죄들이 용서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전 1:17)고 한 구절은 어떻게 해석할지 궁금하다.
결정적으로는 예수님 옆 십자가에 달린 강도는 죽기 직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했다. 그가 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는 낙원에 갔다. 왜 그렇는가? 이는 구원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얻는 것이지 세례를 통해서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례가 구원에 필수적인가? 오늘날 세례를 주장하는 개신교인들 중에서도 세례가 구원에 필수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카톨릭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카톨릭 전통과 하나님의 말씀은 서로 반대된다. 카톨릭 교리는 그렇다고 말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누구를 믿어야 하겠는가?
7. 가톨릭의 잘못된 기도론
가톨릭은 삼위일체 하나님 외에도 다른 사람에게도 기도드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태복음 6장 6절과 요한복음 16장 23- 24절에 하나님께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릴 수가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마리아도 천국에 간 성도에게도 기도를 드릴 수가 있다고 주장하나 모두 잘못된 교리이다. 또한 기도는 기계적으로 되풀이 할 수 있다는 것과 염주와 같이 묵주기도를 여러 번 되풀이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나 성경은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중언부언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간절히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다(마6-13).
8. 가톨릭의 잘못된 성도론
가톨릭은 교황들이 인정한 사람으로 죽어 하늘에 있는 자만 성도라고 부른다. 가톨릭인들이 죽기까지는 성도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 고린도후서 1장1절, 빌립보서 1장 1절, 골로새서 1장 2절에 보면 누구나 예수로 구원받은 사람은 성도(거룩한 자 : 구별된 자)라고 부르고 있음을 성경에서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하늘에 있는 성도들은 땅의 사람이 그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듣지 못한다고 했다. 하늘에 있는 성도들은 하나님과 땅에 있는 사람들의 중재자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 요한복음 2장 1절과 데살로니가 전서 2장 5절에 보면 오직 예수님만 중재자이심을 가르치고 있다.
가톨릭은 전 세계적으로 약 11억 9567만 1천명의(2010년 12월 31일 기준) 교인들에게 잘못되게 가르치고 있다. 둘리아(Dulia) 미사는 성도들에게 하여야 하며, 제일(祭日)들은 성도들의 명예를 위하여 잘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으나 어디에 죽은 자를 위하여 예배를 드리라고 했는가?(눅 19장10절을 참조). 이 의식은 우상숭배임을 우리들은 쉽게 알 수가 있다. 사도행전 10장 25절과 26장 8-18절에도 베드로와 바울이 자기들을 숭배하려고 할 때에 나도 사람이라고 하면서 거절한 것을 저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가? 그래서 어느 학자는 가톨릭의 모든 의식의 75%가 이교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9. 십자가 숭배 사상
가톨릭은 예배가 아닌 미사를 드리는데 그 때에 십자가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사제를 본다. 미사 때에 사제는 십자가 표시를 16번, 제단 축복 시에는 30번 정도 한다. 그런데 십자가는 고대 종족들이 무늬숭배로 사용하여 왔다. 부적같이 여기며 사용했는데 가톨릭에서 이것을 예배의식에 사용하고 있다. 성경에서는 상징하기 위한 형상은 아무 것도 아니며 오히려 우상 숭배가 된다고 했다. 가톨릭에서는 십자가를 부적같이 사용하고 있다.
초대교회는 십자가가 없었다.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십자가 형상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기념하는 것 외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개신교는 촛불을 강대상에 켜 놓는 행위나 태극기를 강단에 장식하는 행위, 화려하게 꾸며 놓아 강단을 미화하는 행위는 성경에 위배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화려하게 꾸미면서 설교하신 것도 아니요, 화려한 곳에서 설교한 것도 아니다. 자연미가 있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설교하셨다. 가톨릭에서 제단의 촛대나 화려한 장식 등은 성경에 위배가 되는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사실 십자가를 예배당에 세우기 시작한 것은 주후 586년부터 이다. 그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모습이 새겨진 것을 예배하도록 했다.
그러나 기독교 이전 수세기 전에 십자가는 바벨론 사람들에 의해 숭상되고 있었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바벨론의 신인 담무즈(Tammuz)의 첫 글자 T 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 글자는 바벨론 사람들의 가슴에 다는 호신 패(부적)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사형(死刑)형틀로서의 십자가의 유래는 매우 오래 되었다. 먼저 이교도들이 사용해 왔고, 애굽, 앗시리아, 페르샤, 팔레스틴, 카르타고 등지에서 흉악범에 대한 처형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교도들이 사용하던 십자가의 모양도 여러 가지이다.
십자가는 가톨릭으로 물밀 듯이 들어온 우상들 중에 하나이다. 로마 카톨릭이 국가 종교적 형태로 발전하게 된 콘스탄틴 황제 때의 일이다. 밀비안 브리지 전투 하루 전날 콘스탄틴은 태양 신에게 기도했을 때 석양 너머로 십자가와 함께 "이 표로 정복하라(In this sign conquer)"는 글씨를 보았다. 그 다음날 십자가를 앞세우고 진군했을 때 전투에서 승리했으며 회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유일한 출처는 유세비우스인데, 그는 “역사의 날조자”로 규탄받은 인물로 신뢰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아는 콘스탄틴 황제는 태양신 미트라의 최고 사제로서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미트라의 생일이 12월 25일 인데 그리스도 탄생을 기념한다는 명목하에 예수님 탄생일로 둔갑시켜 크리스마스라는 축제일로 제정하는 경정적인 제공자이기도 하다.
콘스탄틴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 역시 미신적이어서 유품들을 찾아다녔다. 수세기 동안 교황들이 인정한 유품들은 가지각색이다. 십자가에 박혔던 못, 그리스도께서 입을 댄 해면, 예수님께 입혔던 주홍색 겉옷, 가시 면류관, 최후에 만찬 때 쓰던 잔, 마리아의 머리카락(어떤 것은 갈색, 고수머리, 빨간 머리, 검정색 등 종류가 다양하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탔던 어린 나귀의 뼈들. 이런 것들은 부적으로 팔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성당의 땅과 건물이 거룩하다고 사람들이 믿었기 때문에, 787년 니케아 종교 회의에서는 유물을 제시하지 않으면 어떤 주교도 성당을 짓지 못하도록 금지시켰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십자가는 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의 상징”이었다(갈 3:13). 우리는 분명히 해 둘 것은 그리스도가 달리신 십자가가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또한 아무도 그것을 그리스도인의 상징으로 만든 적이 없다는 것이다.
10. 교황 제복의 문제점
⑴ 교황이 쓰는 모자=가톨릭 교황이 쓰는 물고기 머리 모양의 주교관을 ‘미트라’(mitre:어두관, 입을 벌린 물고기 머리 모양의 모자)라 한다. 이 모자는 물론 교황만 쓰는 것은 아니다. 교황아래 추기경, 주교들도 무슨 행사 때마다 이 모자를 쓰고 나타난다. 그 모자의 모양은 물고기 머리 형태를 띠고 있다. 또 그 모자에는 라틴어로 'Vicarius Filii Dei'(하나님의 대리자)라고 하는데 글자를 풀이하면 666이다. 이 모자는 고대 페르시아의 빛과 진리의 신, 즉 태양신 미트라의 모자에서 기원했다. 그러니까 원래 태양신 미트라교의 사제들이 쓰던 미트라 관을 로마 사제들이 그대로 이어받아 쓰고 있는 것이다. 가톨릭 최고 수장 교황의 어두관은 곧 가톨릭은 성경의 예수님의 교회가 아닌 중세 혼합주의 우상 종교이며 기독교로 가장한 요한계시록의 음녀인 것을 스스로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⑵ 우상이나 동상에 교황이 입을 맞추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 역시 이교의 풍습이다. ⑶ 교황의 부채도 행렬 시에 대형부채를 가지고 있는데, 역시 이집트 이교의 산물이다. ⑷ 자주 빛과 붉은 빛 옷도 고대 이교의 복장이다. 로마 사제들의 복장이 붉은색이었다. ⑸ 사제들의 검은 예복도 원래는 바알 제사장들의 의복이 검은 색이었다. 스바냐 1장 4절의 그마림이 바로 검은 예복을 입은 바알 제사장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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