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방식

조지 휫필드 2012. 11. 24. 14:20

은혜의 방식(조지 휫필드)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 6:14) 

하나님은 한 민족이나 백성에게 충실하고 성실하며 믿음이 고결한 종들을 주시는 것 이상의 복을 베푸실 수 없듯이, 하나님이 이 세상 어느 백성에게 베푸실 수도 있을 최악의 저주는 눈멀고, 갱생하지 않고, 미지근하며, 섣부른 길잡이를 주시는 것이다.

더욱이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양의 옷을 입은 많은 이리들이, 회칠을 한 많은 자들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보다도 더 부드러운(또는 ‘아첨하는’) 말로 예언하는 것을 우리는 안다. 지난날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며 그 말씀으로 속이는 자들이 많다.

어떤 의미로는, 예레미야 시대에도 마차가지였다. 자기를 불러 쓰신 주 하나님께 충실했던 예레미야는 때때로 그들을 반박하지 않는 법이 없었고 그가 때때로 의지하여 말했던 하나님의 영광에 대하여 반드시 고귀한 증거를 하였다. 그의 예언을 읽어보면 예레미야만큼 세속적인 종들을 비난한 사람도 없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특히 본문이 있는 6장에서 그의 아주 가혹하게 비난을 한다--그는 몇 가지 범죄를 들어 그들을 비난한다. 특히, 그는 탐욕을 들어 그들을 비난한다. 13절을 보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람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리고 이어서, 그는 본문을 통해 보면, 더욱 상세하게 그들이 거짓을 행한 내력을, 그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등쳐먹는 방법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

그는 말한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가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백성들에게 전쟁을 경고해 왔었고 그들의 집이 황폐해질 것이라고 말해왔으며, 주께서 확실히 그 땅을 전쟁으로 심판하시리라고 예언해 왔다.

11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 그것을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으리니 지아비와 지어미와 노인과 늙은이가 다 잡히리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 땅 거민에게 내 손을 펼 것인즉 그들의 집과 전지와 아내가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니.” 예레미야 선지자가 두려운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그들의 두렵고 놀란 나머지 회개할 수 있는 마음과 자세를 갖추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제사장들이 돌아다니면서 백성들의 뉘우치는 마음을 눌러버리고 있었으며, 백성들이 충격을 받거나 두려워하면, 그들은 백성들에게 예레미야는 열광적인 전도자일 뿐이며 전쟁 같은 것을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백성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달랬고, 예레미야가 평강이 없다고 말하는데도 평강하다, 평강하다(‘평안하다, 평안하다’, 또는 ‘괜찮다, 괜찮다’)고 발림 말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말씀은 기본적으로 밖으로 나타난 일들을 지적하고 있으나 나아가서 인간의 심령 상태를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진정 믿는다. 다시 말해서 그 말씀은 백성들이 죄를 뉘우치기 시작하고 하늘을 향해 소망을 돌리기 시작하였을 때, 백성들의 뉘우치는 마음을 억누르고 백성들이 착하기만 했다고 사탕발림을 했던 거짓 교사들을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과연 백성들은 대개 그런 말을 솔깃해하는 법이다.

 

우리 인간의 마음은 너무 속임수에 능하고 지독하게 악하다.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만이 인간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존재인가를 아신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평화가 없는데, 자기 자신에게 ‘평화롭다, 평화로다’라고 말하고 있는가!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흥미를 느낀다고 발림말을 하고 있는가!

 

그들의 일상의 경험을 검토해 보면, 그들이 평화라고 떠벌이는 것은 악마가 만드는 평화일 따름임을 알게 되기 때문에--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가 아니다--그들이 말하는 평화는 사람이 정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평화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마음으로 평화를 말할 수 있느냐를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우리는 다 평화를 갈망한다. 평화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복이다. 평화 없이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에게 평화롭다고 말할 수 있기 전에, 자신이 어디까지 가야 하며, 스스로 무엇을 먼저 해야 할 것인가를 배워야 할 것이다.

내가 지금 뜻하는 바는, 나의 영혼을 구하고 내가 설교하고 있는 자들의 피를 흘릴 염려가 없게 되어 하나님의 온전한 권고를 선포하는데 부족함이 없게 하는 것이다. 나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 여러분에게 스스로 평안하다고 말할 수 있기 전에 무엇을 체험해야 하며, 무슨 일을 행해야 하는가를 보여 주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직접 하기 전에, 한두 가지 주의할 사항을 전제하겠다. 첫째, 나는 여러분이 종교란 내적인 것이라고 믿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여러분은 종교가 마음속에 일어나는 일이며, 하나님의 성령의 권능으로 영혼의 내부에서 행해진 일이라고 믿는다. 만일 여러분이 이것을 믿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성경을 믿지 않는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비록 성경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이것을 믿지 않으면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미워할 것이다. 종교는 성경의 어디를 보거나 사람의 마음속에 행하신 하나의 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표면적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 아니요 이면적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다.”

여러분 중에 종교를 표면적으로 치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의 마음에 맞는 발림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내가 불쌍한 죄인의 마음을 향해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야기할 때 마치 내가 알지 못하는 방언을 하는 것처럼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한 가지 더 내가 결코 하나님에 대하여, 행위의 한 가지 방법에 한정시켜서 말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전제하고자 한다. 나는 결코, 모든 사람이, 마음의 평화를 누리기 전에, 동일한 수준이 뉘우침을 겪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겠다.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을 돌이키시는 갖가지 방법을 마련하고 계신다. 그의 성령의 바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불어오는지 모르게 불어온다.

그러나 아무튼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언제나 여러분이 마음속으로 평화롭다고 말할 수 있기 전에, 여러분의 뉘우치는 기간이 길건 짧건, 신랄하건, 조용하건, 여러분은 내가 이어서 말하게 될 일을 반드시 겪게 된다는 사실이다.

 

첫째, 여러분이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서 평화롭다고 말할 수 있기 전,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율법을 실제로 거역한 허물들을 보고, 느끼고, 슬퍼하고, 통곡해야 한다. 하나님이 그의 삶을 두고 맹세하신 행위 언약(The Covenrant of Works)에 따르면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고 하셨다. 율법책에 기록한대로 행하지 않는 자는 그가 누구든지 저주를 받는다.

우리는 율법책에 기록된 일 중 어떤 것들을 행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모든 것을 행해야 하며, 언제나 그래야 한다. 그러므로 행위 언약에 의하면, 조금이라도 도덕율을 어기는 것은 생각으로나, 말로나, 행위로나, 하나님의 손에 죽을 수밖에 없게 된다.

만일 한 가지 악한 생각이, 한마디 악한 말이, 한번의 악한 행동이, 영원한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면 인생을 하나님께 거역만 해온 우리 모두에게는 얼마나 많은 지옥이 기다리고 있겠는가! 그러므로, 애당초 마음으로 평화를 말할 수 있기 전에 사시는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를 보아야 하고 믿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는 벗들이여! 마음을 잘 헤아려 살피라. 나는 여러분이 마음을 개선시키기 위하여 이곳을 왔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나는 여러분에게 그 때를 아는가 라고 묻고 싶다.

그리고 만일 여러분이 그 때를 정확히 모른다면 여러분은 언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괴로운 일을 기록하셨으며, 언제 전능자의 살이 여러분의 몸에 박히었는지를 아는가? 여러분의 죄를 기억하고 비통했던 적이 있었는가? 여러분이 실제로 하나님을 거역한 허물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여러분에게 떨어져 마땅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가?

 

여러분의 일생 중 자신의 죄 때문에 슬퍼해 본 적이 있었는가? 여러분은 스스로, ‘내 죄가 너무 무거워 머리를 들 수 없구나’라고 탄식해 본 적이 있었는가? 여러분은 이런 뉘우침을 맛보았던 적이 있었는가? 하나님과 여러분의 영혼이 교감하여, 뉘우치는 여러분의 마음이 그에게 상달된 적이 있었던가?

만일 그런 적이 없다면, 부디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 말라. 여러분은 마음속에 평안하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평화는 없다. 주께서 그의 뜻이라면, 여러분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여러분을 각성시켜 뉘우치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고, 여러분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

 

더욱이, 여러분은 자신의 지은 죄를 깨닫고 놀랄 수가 있다. 그러나 아직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타인일 수가 있으며 여러분의 마음에 진정한 은혜의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항상 여러분이 마음으로 평화를 말할 수 있기 전에 자신의 죄를 깊이 뉘우쳐야 할 것이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나님의 율법을 실제로 거역한 허물을 뉘우쳐야할 뿐 아니라, 여러분의 모든 허물의 바탕까지도 뉘우쳐야 할 것이다. 그러면 허물의 바탕이란 무엇인가? 나는 원죄, 다시 말해서 우리 모두 이 세상에 우리 자신과 더불어 타고난 원죄를 말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자기 자신을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원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꾸며대는 불쌍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담의 죄를 우리에게 전가시킨 것을 부당하다고 비난할 것이다.

우리는 짐승의 표와 악마의 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리가 죄 속에 낳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한 자들은 세상을 보고 그 무질서를 생각하며, 할 수 있으면,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여 살게 하신 낙원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아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무질서하다. 나는 밖에 나가 있는 동안, 만일 원죄를 논증할만한 것이 따로 없더라도, 늑대와 호랑이가 사람을 공격하는 일, 아니 개가 사람에게 짖어대는 일이 원죄에 대한 하나의 증거라고 생각하곤 했다. 아담의 타락이 없었더라면 호랑이와 사자가 감히 사람을 공격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짐승이 사람을 공격하면 그것은 너희가 하나님께 범죄 하였다고 말해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편에서 악과 싸워야 한다. 만일 우리가 자기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본다면, 많은 탐욕을 보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기질과 정반대되는 사람의 기질을 보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교만, 악덕, 원한, 시기와 질투가 들어 있다. 이런 기질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될 수가 없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하나님을 닮았던 형상을 벗어버리고 악마가 된, 우리가 조상 아담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이 이 사실을 부인할지라도, 회개하고 뉘우치는 때가 되면, 모든 세속적인 추론들은 곧 무너져 내리고 저 불쌍한 사람들의 심령이 오염된 모든 죄악의 근원을 느끼기 시작하고 보기 시작한다. 죄인이 처음으로 눈을 뜨면, 내가 어떻게 그처럼 악하게 됐을까하며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이 갑자기 간섭하고 본래 그에게 선한 것이 없었음을 보여 주신다. 이윽고 그는 자기가 거의 바른 길을 벗어났으며 거의 지겨울 정도의 비참한 죄인이 되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나서 이 불쌍한 죄인은 하나님의 보좌 아래 꿇어 앉아, 비록 그가 일생에 한 가지 죄도 지은 적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이 자신을 정죄하시고 죽이시더라도 당연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여러분 중에 일찍이 하나님이 여러분 자신을 정죄하시는 것은 정당하다고 인정하고, 여러분이 본래 진노의 자녀였음을 인정하며, 비록 여러분이 일생에 그를 거역한 적이 없는데도 그가 여러분을 죽이실지라도 정당하다고 인정해본 적이 있었는가? 만일 여러분이 진심으로 회개한 적이 있었다면, 만일 여러분이 진심으로 비통한 마음을 가져본 적이 있었다면, 만일 여러분의 자아가 참으로 소멸되었다면, 여러분은 이 사실을 느끼고 깨닫게 되었으리라.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이 원죄의 무게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면 자기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내세우지 말라.

자기 자신이 진심으로 원죄를 깨닫는 것이 진심으로 회개한 자가 져야할 가장 무거운 짐이다. 이것은 항상 갱생한 심령을 괴롭히고 성별된 심령을 비통하게 한다. 마음속에 내재하는 죄가 회개한 사람의 멍에(또는 ‘경고’)가 된다. 그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멍에(‘경고’)이다. 그는 끊임없이 ‘아, 이 죽음의 육신으로부터 누가 나를 구할 것인가’라고 소리친다. 내 마음 속에 살아 있는 이 결함으로부터 누가 나를 구할 것인가? 이것이 불쌍한 사람의 마음을 가장 어지럽히는 문제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이 이 마음의 결함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면,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그 때문에 여러분을 저주해도 당연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다면, 나의 사랑하는 벗들이여, 여러분은 마음속으로 평화롭다고 할 수 있으나 두렵건데 진정한 평화가 없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더욱이 여러분이 마음속으로 평화를 말할 수 있기 전에 여러분은 자신의 삶의 죄 때문에 괴로워하게 될 것은 물론이요 또한 여러분의 최상의 직책과 성취 때문에도 괴로워하게 될 것이다. 어느 불쌍한 사람이 주를 두려워함으로 어느 정도 죄를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행위 언약(The Covenant of Works) 아래 태어난 존재가 된 것인데, 다시 한 행위의 언약을 향해 곧장 달아나 버린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동산 나무들 사이에 숨고 무화과 잎으로 벌거벗은 몸뚱아리를 가린 것 같이, 불쌍한 그 죄인도 자기의 직책과 자기의 성취를 향해 달아나고 하나님을 피해 숨으며 스스로 의를 주워 맞추려고 한다.

그는 말한다. “이제 나는 매우 선해질 거야, 나는 개심할거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거야. 그러면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은혜를 베푸실 거야.” 그러나 여러분은 마음속으로 평화를 말할 수 있기 전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일찍이 올렸던 가장 훌륭한 기도 때문에 여러분을 정죄하실 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여러분의 모든 직책, 모든 의가 예레미야 선지자가 격조 높게 표현하고 있듯이 모두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뽐내기에 너무 부족하고, 여러분의 불쌍한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어떤 동기와 권유가 되기에는 너무 못 미치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러분의 직책과 의를 더러운 걸래 조각, 생리대로 보실 것이며,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호감을 얻기 위하여 여러분의 직책과 의를 그에게 제시하지 않으면 그는 그런 것들을 미워하실 것이며 참을 수 없으시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나의 벗들이여, 우리는 무엇을 성취했다고 하나님께 뽐낼 수 있겠는가? 우리의 인격은 본래 의롭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는 만 번이라도 정죄를 받아 마땅하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여러분은 물질적으로 선을 베풀 수 있다. 그러나 여러분은 어떤 것을 공식적으로 그리고 올바르게 선한 것으로 만들 수 없다. 자연을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회심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는 믿음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고 하셨다. 우리가 갱생을 얻은 뒤로도 우리는 부분적으로만 갱생을 얻었을 뿐이므로 내재하는 죄가 여전히 남아 있고 우리가 행하는 직무에는 결함이 섞여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회심한 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일에 따라서 우리를 영접하실 뿐이라면 그는 우리를 정죄하시게 될 것이다. 왜 그러냐하면 우리는 도덕율이 요구하는 것과는 너무 거리가 먼 기도 밖에 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분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오직 죄를 지을 뿐 기도할 수 없고, 나는 오직 죄를 지을 뿐, 설교를 할 수 없으며, 어떤 사람이 표현하듯이, 나의 회개는 되풀이 되고, 나의 눈물은 나의 구세주의 보배로운 피로 씻겨지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말할 수 있다. 우리의 가장 훌륭한 직분들은 무수히 많고 화려한 죄와 같다.

여러분이 마음속으로 평화를 말할 수 있기 전에 여러분은 원죄와 실제적인 죄의 병에 걸려야 하고, 여러분의 모든 직분과 성취의 병에 걸려야 한다. 독선으로부터 벗어나오기 전에 깊은 뉘우침이 있어야 한다. 마음의 교만함을 벗어나지 못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의 앞에 굴복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자기 자신에게 아무 의로운 것이 없었음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면, 만일 여러분이 자기 자신의 의로움에 결함이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올 수 없다. 오늘날 무수한 사람들이 “좋아, 우린 이 모든 것을 믿는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말과 느낌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구세주의 필요성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여러분은 자신의 의의 결함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지금 마음속으로, “주여, 제가 성취한 가장 훌륭한 직분 때문에 저를 정죄하셔도 좋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만일 여러분이 이와 같이 자아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마음속으로 평화를 말할 수는 있으나 평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마음속으로 평화를 말하기 전에 여러분이 크게 괴로움을 당해야 할만할 한 가지 특별한 죄가 있다. 그렇지만 나는 여러분 중에 그것이 무엇일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기독교의 지배적이고 저주 받은 죄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것을 거의, 또는 전혀 생각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이 무엇인지 기도하라. 그것은 여러분 대다수가 자신은 죄가 없다, 다시 말해서 불신하는 죄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그것이다.

 

여러분이 마음속으로 평화를 말하기 전에 자기 자신의 마음의 불신 때문에 괴로움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 중에 누가 스코틀랜드에, 곧 개신교의 땅에 태어나 주일마다 교회를 다니면서, 바로 이 교회 안에서 자기 자신을 불신자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1년에 한차례 성찬을 받고(성찬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 성찬의 징포를 받았으며, 가족 기도회를 지키고 있는 여러분 중에, 누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내가 무자비하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여러분 중에 그리스도를 불신하는 자가 있다고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기를 호소한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이 대부분 자기 자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악마만큼도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는 사실이 두렵다.

 

나는 악마가 대다수의 우리를 보다도 성경을 더 믿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는다. 이 사실은 스스로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많은 사람보다 악마가 성경을 더 잘 믿고 있는 증거다. 아니, 그는 믿고 두려워한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보다 그가 더 확실히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고 있는 증거다.

나의 벗들이여, 우리는 하나의 역사적인 믿음을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마음속에 이룩된 진정한 믿음으로 오해하고 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이 믿고 있다고 상상하고 있다. 왜 그런가 하면 여러분도 성경이라는 책이 있다는 그 사실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여러분은 교회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지는 않는다. 그리스도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믿을 뿐이며, 성경이라는 책이 있다는 사실을 믿을 뿐, 여러분은 시저나 알렉산더 대왕과 같은 사람이 있었음을 믿는 것 이상으로 선을 행하지 않으려 한다. 성경은 신성한 보고(寶庫)다. 우리에게 이 살아있는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무슨 말로 감사를 드려야 할까?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을 소유하고 있을 수는 있어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는 않는다.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사시는 하나님의 성령에 힘입어 마음속에 하나의 원리가 심어져야 한다. 내가 만일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대부분 여러분이 기억하는 한 예수를 믿어 왔다고, 다시 말해서 그릇되게 믿은 적이 없었다고 대답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여러분은 일찍이 모태에서 성별된 것을 제외하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결코 믿지 않았다는 것 이상의 훌륭한 증거를 댈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던 때가 있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한다. 만일 내가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한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기억하는 한, 하나님을 미워했던 기억이 없으며, 하나님을 증오했던 때가 없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아주 일찍이 모태에서 성별된 사실을 제외하고서는 하나님을 일생에 한번도 사랑해본 적이 없으리라.

나의 벗들이여, 나는 이 문제를 특히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가장 거짓된 망상이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이미 믿었던 많은 사람들이 넋을 잃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샬 씨는 자기의 체험을 이야기 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하였다. 곧 그는 일생을 일해 왔고, 자기가 지은 죄를 모두 십계명에 따라 정리를 해가지고, 어느 목사에게 가서 ‘왜 내 자신이 평화를 얻을 수 없는가’고 물었다. 그 목사는 그가 작성해온 죄의 목록을 살펴본 다음, ‘당장 나가시오! 나는 당신의 목록에서 죄라는 낱말은 한마디로 발견하지 못 하겠소’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그(보혜사)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세상을 책망하리라.’ 그리고 그리스도는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제, 나의 벗들이여!

하나님이 일찍이 여러분에게 믿음이 없음을 보여주신 적이 있었는가?

여러분이 완고하게 불신하는 마음을 몹시 슬퍼한 적이 있었는가?

여러분은 일찍이 주여, 믿음을 주소서. 주여, 제가 당신을 꼭 붙들게 하소서!

주여, 제가 당신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게 하소서라고 마음 으로 말한 적이 있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찍이 여러분에게 이같은 말을 할 수 있는 확신을 주신 적이 있었는가?

그가 일찍이 여러분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을 향해 믿음을 주시라고 소리치게 하신 적이 있었는가?

그런 적이 없었다면, 마음 속으로 평화를 말하지 말라. 주께서 여러분을 일깨어 주시고 죽어서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여러분에게 참되고 확실한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

한 번 더 말하겠다. 여러분이 마음속으로 평화를 말하기 전에, 여러분은 실제적인 원리와 자기 자신의 의의 죄와 불신의 죄를 확신해야 함은 물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와 충분한 의를 꼭 붙잡을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대한 믿음을 붙들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평화를 얻게 되리라.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모든 사람을 격려하시는 말씀이다. 그러나 쉬게 하시겠다는 약속은 그들이 그에게 와서 믿고 그를 그들의 하나님이요 모든 것으로 확신한다는 조건에 의해서만 유효하다.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기 전에,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며,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의 표준으로 적용하고, 그리스도를 우리 심령의 중심에 모심으로써, 그의 의가 우리의 의가 되며, 그의 공적이 우리의 영혼에 전가되어야 할 것이다.

나의 벗들이여!

여러분은 일찍이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하였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찍이 자기 자신을 여러분에게 주셨는가?

여러분은 일찍이 산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긴밀한 관계를 이루어 여러분의 영혼에 평화를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은 적이 있는가?

일찍이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에 강처럼 흘러들었는가?

여러분은 일찍이 그리스도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평화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

나는 하나님이 오셔서 여러분에게 평화를 말씀하시기를 기도한다.

이상의 일들을 여러분은 체험해 보아야 한다.

나는 지금 저 세상과 내적인 종교와 불쌍한 죄인의 마음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실상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나는 지금 대단히 중대한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과 모두 관계가 있고, 여러분의 영혼과 깊은 관계가 있고, 여러분의 영원한 구원하고도 관계가 있다.

여러분은 모두 평화로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악마가 여러분을 세속적인 일에 매몰되게 하고 세속적인 안전에 기울어 잠들게 했을 수도 있으며, 여러분을 지옥에 데려다 놓고 거기서 여러분이 깨어나기까지, 여러분을 그렇게 거짓된 잠에 빠져들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기서 깨어나 너무나 두려운 잘못된 상황에 빠진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일 것이다. 그때 여러분과 영원한 세상과는 넘을 수 없는 큰 심연이 있어서, 여러분이 자신의 혀를 식히려고 한 방울의 물을 애타게 호소하여도 여러분은 영원히 그것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몇 부류의 사람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무한한 자비로 나의 애씀이 바르게 이루어지도록 복을 내시기를 기원한다.

여러분 중에 어떤 이들은 은혜를 통해 우리도 너와 함께 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이여 복을 내리소서!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를 확신하였고, 우리의 원죄를 확신하였고, 우리의 독선을 확신하였고, 불신의 쓰라림을 느꼈으며, 은혜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가까이 나아갔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평화를 말할 수 있다. 왜 그런가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평화를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천사들이 그 주일 첫날에(안식 후 첫날) 두 여인에게 말하였듯이 나도 여러분에게 인사를 할 것이다.

모두 큰 소리로 외쳐라! 나의 형제들이여, 두려워 말라. 여러분은 복된 사람들이다. 여러분은 앉아서 평안히 쉬어도 좋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평화를 주셨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섭리의 모든 경륜 아래서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분의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효험은 무엇일까? 여러분은 밖에서 무슨 싸움을 싸우게 될까?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여러분 안에 평화가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긴밀히 사귀었는가?

하나님이 여러분의 친구신가?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친구신가?

그러면 안심하고 위를 바라보라. 모든 것이 여러분의 것이며,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다. 모두가 여러분과 더불어 선을 이룬다. 여러분의 머리카락 한 올까지 헤아린 바 되었다. 무릇 여러분을 범하는 자는 하나님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다(너희를 건드리는 자는 하나님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벗들이여!

여러분의 최초의 회심에 안주하지 말라.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아직 어린 여러분은 한번 숨을 쉴 때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발견하도록 살펴야 할 것이다. 과거의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쌓지 말라. 자신의 안에 행해진 일을 바탕으로 자신을 쌓아 올리지 말라. 오히려 언제나 밖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향하여 자기 자신에서 벗어나라. 여러분은 구원의 샘물을 길으러 나오는 죄인처럼 언제나 나와야 할 것이다. 뒤에 있는 것들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들을 향하여 언제나 짓쳐 나아갈 일이다.

나의 벗들이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정하고 긴밀하게 걸어가기만 하라. 우리들 가운데는 거친 걸음으로 서두르다가 평화를 잃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다른 무엇인가가 끼어들고 우리는 어두움에 떨어진다. 다른 무엇인가가 우리의 마음을 훔쳐 하나님을 등 돌리게 하고, 이 때문에 성령이 비통한 마음으로 우리를 떠나게 된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권고하겠다.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이 평화를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 만일 여러분이 한번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된다면 여러분은 결코 하나님을 떠날 수가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결국 자기 자신을 떠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더럽게 떨어져서 일생동안 절뚝거리고 다닐 것이다.

배교를 조심하라. 부디 성령을 비통하게 하지 말라. 결코 일생동안 위로를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와 긴밀히 사귄 뒤 하나님을 떠나 방랑하지 말라. 나의 벗들이여, 나는 배교를 몹시 안타까워하였다. 우리의 마음은 너무나 약해져서 조심하지 않고 끊임없이 살피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을 속이고, 자기 자신을 속이고, 바른 길을 벗어나게 할 것이다. 욥과 다윗과 성경의 다른 성도들에게 내린 심판이 그것을 증거한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권고한다. 그리스도와 긴밀히 사귀는 삶을 살기 위하여 평화를 얻으라. 나는 그리스도인이면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찾았으면서 해매는 사람들을 슬퍼한다. 그리스도인들이라면서 하나님을 대언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의 흐름을 따라 흘러내려 간다.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세속의 무리와 어울리게 된다면, 그들은 마치 자기가 세상과 한 동아리였던 것처럼, 세상을 말할 것이다.

여러분은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았을 때, 이와같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하지 않았다. 그랬었더라면 그리스도의 사랑의 등불이 여러분의 영혼을 비추었을 때, 그리스도의 사랑을 영원히 증언할 수 있었으리라. 사랑하는 주를 위하여 여러분이 무언인가 말해야 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제 세상과 한 덩아리가 되어 저들이 세상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터놓고 들으면서,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면 남이 비웃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세상에서 가장 나쁜 의미로 영국국교 교도가 되어버렸다. 그들은 마땅히 그렇게 되겠지만, 영국 교회의 의식절차를 비난하고 나설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은 여러분의 행동으로 의식절차들을 대단히 좋아하고 있다. 여러분은 세상의 의식절차에 적응할 것이 새 방식을 가져올 때까지 그대로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에 적응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리스도인들은 한결같이 선하고 주를 위해 담대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이 예수와 동행하고 있음을 알도록 선하고 담대해야 할 것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자리 잡기를 권고할 것이다. 그리하여 여러분 마음속에 항상 하나님이 가시게 하라. 우리는 자기의 믿음에 집착하여 자기를 중심하여 살기 때문에 위안을 잃는다. 그러나 우리는 집착하는 믿음(our faith of adherence)을 버리고 확신하는 믿음(a faith of assurance)을 향해 성장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것임을 알고, 성령의 위로를 받고 살면서 사랑의 품성을 길러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자기 친구들의 집에서 큰 상처를 입고 계신다. 내가 상세하게 밝히는 것을 이해해 달라.

나의 벗들이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적들보다 자기 친구들 때문에 상처를 입어야한다는 사실이 더욱 서글프기 때문이다. 이신론자들(Deists)로부터 기대할 것은 전혀 없다. 오히려 자기 자신의 능력에 자신이 있는 자들은 멀어져 간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이 본디 부름을 받은 직분에 어울리게 행하지 않는다.

이런 일 때문에 우리는 우리 주를 믿는 신앙을 이방인들이 멸시하고 조롱하는 천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부디 그리스도를 안다면 그 곁에 있으라. 하나님이 평화를 말씀하셨다면, 숨 쉴 때 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러르며 그 평화를 지키라. 하나님과 평화를 누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시련을 당하더라도 두려워 말라. 모든 것이 여러분을 위해 선을 이룰 것이다. 시험을 당하더라도 두려워 말라. 그가 여러분d의 마음에 평화를 속삭이셨다면, 이 모든 것들이 여러분에게 유익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리고 이 회중들의 대다수가 그런 상태에 있을 것이다. 그것을 생각만 해도 울고 싶어진다. 여러분은 대부분 자기 마음을 살펴본다면, 하나님이 아직 한번도 자기 마음에 평화를 속삭여주신 적이 없었음을 고백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안 계시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마음에 평화를 속삭여 주시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악마의 자식들이다.

불쌍한 사람이여! 너무나 저주받은 상황에 떨어져 있구나! 나는 천만번 세상에 태어나도 그런 상황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왜? 여러분은 바로 지옥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적일 때, 하나님의 진노가 불쌍한 여러분의 영혼에 머물 때, 무슨 평화를 누릴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깨어나라. 거짓 평화의 잠을 자고 있는 여러분은 깨어나라.

세속적으로 믿음을 고백하고 교회에 나가 성만찬을 받고 성경을 읽으면서 마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느껴본 적이 없는 위선자들은 깨어나라.

입에 발린 고백을 하고 형식에 굳어버린 자들은 깨어나고 세례받은 이방인들은 깨어나라.

그리고 거짓의 밑바탕에 누어 쉬고 있지 말라. 이렇게 전하는 나를 욕하지 말라. 정말, 여러분의 영혼을 사랑해서 하는 말이다.

나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소돔에 머뭇거리며 그곳에 머물고자 하고 있음을 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천사가 롯을 인도했듯이 여러분을 인도하고자 이곳에 왔다. 나의 벗들이여! 떠나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기 위해 달아나라, 달아나라, 달아나라. 피 흘리시는 하나님께 달아나라. 은혜의 보좌로 달아나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완고한 마음을 깨주시라고 애원하라. 하나님께 자기가 지은 죄를 뉘우치게 해주시라고 애원하라. 하나님께 자기의 독선적인 믿음을 뉘우치게 해주시라고 애원하라. 하나님께 믿음을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와 긴밀하게 사귈 수 있게 만들어 주시라고 기도하라.

아, 지존의 바탕 위에서 안전하다고 속고 있는 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우뢰의 아들이 되어야겠다. 하나님, 우레나 폭풍으로라도 저들을 깨우게 하소서. 진정 내가 말하는 것은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는 슬픈 체험을 통해 거짓 평화에 취해 잠들어 있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안다. 나는 오랫동안 잠들어 있으면서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신 있게 생각했다. 그때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 나는 아마 여러분 중의 많은 사람보다 더 열심이었을 것이다. 일주간에 두 번 금식하는 것이 보통이었고, 하루에 9시간씩 기도하곤 했으며, 주일마다 변함없이 성찬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전혀 몰랐다. 나는 자신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나는 내 영혼에 내재하는 내적인 신앙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 여러분 중에 많은 사람들이 불쌍한 나처럼 자신에게 속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는 것은 정말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만일 여러분이 조심하지 않는다면 종교의 형식이 여러분의 영혼을 파멸시킬 것이다. 종교의 형식에 안주하며 예수 그리스도께 전혀 나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런 것들은 방편일 뿐 종교의 완결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판단에 머무는 자들아, 깨어나라.

교회에 출석하며 믿음을 고백하는 자들아, 깨어나라. 이름을 날리는 자들, 부자로서 아무 부족도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 자신이 가난하고, 눈멀고, 헐벗었음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깨어나라.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한다. 와서 불로 연단한 예수 그리스도의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도록 하라.

그러나 나는 상처를 적게 입은 사람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의 설교가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귀한 심령을 일깨우시고 세상의 안일한 상태에서 일으켜 주시기를 바란다. 여러분 중에 그리스도께 나와서 자신이 거짓된 터에 집을 짓고 있었음을 생각하게 되는 사람이 있기를 바란다.

아마 악마가 끼어들어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망하거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여러분에게 말해온 것은 여러분에 대한 사랑의 발로이다. 오직 여러분의 영적인 잠을 깨우고 여러분의 위험한 상황을 보게 하려 함이다. 누구라도 하나님과 화해하고자 한다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그와 화해하시고자 하심을 알라. 그러니까 아직 평화가 없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께 건너오라. 그는 우리의 평화요, 평화롭게 하시는 자며, 하나님과 거역하는 인간을 중재하여 평화를 이룩하셨다.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평화를 자기 몸으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라. 주 예수는 이 일을 위하여 자신의 심장의 피를 흘렸다. 그는 이 일을 위하여 죽으셨고 이 일을 위하여 다시 사셨다. 그는 하늘의 보좌에 올라 하나님의 우편에서 중재하고 계신다. 아마 자신에게는 평화가 없으리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으리라.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죄인이기 때문인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만민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고,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자기 발로 밟았기 때문인가? 이 모든 일이 무엇인가? 하지만 여러분을 위한 평화가 있다. 기도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주간 첫날 제자들에게 오셔서 무슨 말씀을 하셨던가? 그가 하신 첫마디 말씀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였다. 그는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시고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것은 마치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의 제자들아, 무서워하지 말라. 저들이 너희를 위해 어떻게 내 손과 발에 못을 박았는가 보아라. 그러므로 무서워 말아라.

그리스도께서 그 제자들에게 실제로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너는 내 형제들과 특히 마음 상한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고 그가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그의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로부터 살아나신 뒤 평안, 곧 노아의 비둘기와 같이 평안의 감람나무 잎을 가지고 오셔서 평안을 전하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그들이 누구였던가? 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적들이었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한 때 그리스도를 부인했던 자들이었다. 여러분 중에는 배신을 하여 평화를 잃고, 평화를 얻을 가망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여러분은 벌써 평화를 잃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여러분의 배신을 용서하실 것이요, 여러분을 아낌없이 사랑하실 것이다. 상처받은 여러분이 만일 그리스도께 오고 싶다면, 자기 자신을 떠나 이리로 오라. 여러분 중에는 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은 자신의 직분을 내세우며 그것으로 뽐내고자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지 말라. 본디 벌거벗은 자세로 오라. 걸레조각과 같은 신분이나 직분을 버리고 벌거벗은 몸으로 오라.

여러분 중에는, ‘우리는 갈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워낙 완악해버려서’라고 말할 사람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리스도께 나오기 전에는 마음을 유연하게 할 도리가 없다. 그가 돌같이 굳은 마음을 버리실 것이며, 살아 있는 싱싱한 마음을 주실 것이다. 그가 여러분 영혼에 평화를 심으실 것이다. 여러분이 비록 그를 배반하였더라도 그가 여러분의 평화이실 것이다.

내가 오늘 아침 여러분 중의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께 나오도록 설득해야 하는가?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나왔다. 모두가 너무 일찍 죽어서 심판을 받게 된다! 오늘 밤이 어둡기 전이라도, 아니면 내일 밤에, 여러분 중에 이 교회 뜰에 묻힐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지 않고 있다면 어떻게 할 셈인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평화를 말씀하시지 않았다면 어쩔 셈인가? 만일 하나님이 여기서 여러분에게 평화를 말씀하시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이다.

나의 벗들이여, 나는 여러분에게 발림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여러분의 영혼을 성실하게 대할 것이다. 여러분 중에는 내가 문제를 너무 심각하게 이끌고 간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심판을 당할 때, 내가 말한 것이, 여러분에게 영원한 저주이건, 위안이건,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여러분이 그에게 나아오게 되기를 기원하다. 나는 여러분을 설득시키지 않고는 떠나고 싶지 않다. 나는 여러분을 설득할 수 없으나 하나님이 나를 도구로 쓰셔서 여러분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 이끌게 하실 것이다.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 사람들이 누리는 평화만을 느껴본 적이 있었는가! 시편기자는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라고 읊고 있다. 그러나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다. 죄를 지으면서 사는 삶이 무엇인가를 나는 안다. 나는 뉘우침을 억누르기 위하여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이와 같다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세상 사람과 한 덩어리가 되면 뉘우침도 믿음도 팽개쳐버린다. 그러나 곧장 진상을 알아내는 것이 좋다. 그래야 한다. 자신의 심령의 상처를 알아내지 않으면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이 만일 무관심 때문이라면, 나는 한마디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없으면 여러분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나는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잃고 지옥에 가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 어떻게 영원한 불 속에서 견딜 수 있겠는가? 어떻게 악마와 영원히 살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심령으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 저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죄를 받아 지옥에 떨어지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이것이 무엇인가, 그리스도가 안 계신 곳이 아니고 무엇인가? 만일 그 외의 다른 지옥이 있다면 그것은 정말 지옥다운 지옥일 것이다. 악마와 더불어 영원히 고통을 당하는 지옥일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귀고 평화를 누리라.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비천한 사자로서 여러분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이 주일 첫날 아침 내가 할 직분은 그리스도께서 여러분과 화목하시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화목을 누리려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가 여러분의 죄를 다 용서하실 것이며, 여러분의 결점을 다 씻어주실 것이다. 그러나 만일 계속해서 그를 거역하고 날마다 그의 옆구리를 찌른다면, 만일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학대한다면, 하나님의 진노가 떨어지게 될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은 비웃음을 당하실 분이 아니시다. 사람은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둘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여러분과 화목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노하실 때 그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떨어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백성들이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알아보려고 왔다가, 예수께서 ‘내가 그로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모두 땅에 엎드렸다. 그들이 이 세상의 옷을 입으신 그리스도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면 그가 아버지의 보좌 옆에 계시는 모습을 어떻게 바라 볼 수 있겠는가? 나는 불쌍하고 가엾은 사람들이 자기 무덤에서 악마에게 끌려나오는 광경을 생각한다.

나는 그들이 두려워 떨면서 언덕에다 대고 소리치고 바위틈에 몸을 숨기는 모습을 생각한다. 그러나 악마가, ‘오너라, 내가 너희를 데려가겠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두려워 떨면서 서야할 것이다. 그들은 그 앞에 심문을 받으러 한번 설 것이고 돌이킬 수 없는 판결을 받을 것이다.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라.’ 나는 불쌍한 자들이, ‘주여, 우리가 저주를 받아야 한다면 천사를 보내 판결을 하게 하소서’라고 말하는 모습을 생각한다. 아니 그렇지 않다. 사랑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판결을 선포하실 것이다.

이것을 믿기 어려운가? 내가 꾸며서 말한다고 생각지 말라. 나는 진리의 성경에 일치되는 말을 하고 있다. 내가 꾸며서 말한다고 생각지 않는다면, 사람들 앞에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라. 그러면 이 아침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그리스도께 굳게 붙어 있기로 하는 온전한 결단으로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쉬기 까지는 여러분의 심령에 평안이 없을 것이다. 나는 아직 더 말하고 싶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유쾌한 일이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새 육신을 입을 때, 다시 말해서 영원히 썩지 않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처럼 아름다운 몸을 갖게 되는 때를 간절히 바라고 있지 않은가? 그때는 새 몸을 입은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늘 말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분이 돌아가서 각기 예배를 준비해야 할 때일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여러분 중 아무나 방해하지 않으련다. 나의 의도는 불쌍한 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당신에게로 이끄시기를! 주 예수께서 지금 여러분에게 복을 더하여 보내시기를! 그리고 사랑하는 구세주께서 아직 영적으로 잠을 자는 자들을 일깨워 뉘우치게 하시고, 악인들을 제 길에서 돌이키게 하시기를! 그리고 모든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에 가득하기를!

“아버지, 그리스도를 위하여 이것을 허락하소서. 아버지와 복된 성령께 모든 존귀와 영광이 지금으로부터 영원하시기를 비나이다. 아멘.”

 

포도나무선교회/개혁주의마을/Grace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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