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의 삶에 대한 주요 원리는 바로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곧 영적 예배로 드리는 것이 신자의 의무라는 것이다(12:1).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는 권면의 근거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여기 나타나는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구별된 자로서 하나님께 드려졌으므로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면 생각하거나 말하지도 말고, 계획하거나 행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거룩한 것을 세속적인 용도로 사용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의 생각이나 우리의 뜻이 우리의 계획과 행동을 주장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악된 육체에 편리한 것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대로 우리 자신이나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들을 잊어버려야 할 것이다.

 

반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살고 그를 위하여 죽어야 한다(14:8).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니 그의 뜻과 그의 지혜가 우리의 모든 행동을 다스리게 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고 우리의 삶의 각 부분마다 그를 향하여 나아가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고전6:19). 자기가 자기 것이 아니라는 가르침을 받고서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통치권과 경영권을 자기 자신에게서 취하여 온전히 하나님께 드린 사람이 있다면, 그 얼마나 위대한 전진의 모습이겠는가! 사람을 멸망으로 이끄는 가장 확실한 길이 바로 자기 자신에게 복종하는 것이듯이, 유일한 피난처는 다른 의지와 지혜를 다 버리고 오직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르고자 하는 의지와 지혜를 갖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취하여야 할 것 걸음은, 우리 자신을 버리고 우리의 모든 능력과 정력을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드리는 것이다. 여기서 섬긴다는 것은 말로 순종하는 것뿐만 아니라 육체의 정욕을 버리고 성령의 부르심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마음을 갖는 것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바울은 이를 심령을 새롭게 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4:23)- 야말로 생명에 들어가는 첫 관문인데, 철학자들은 이것을 전혀 몰랐다.

 

그들은 사람을 경영하는 것이 이성에 있다고 보았고, 따라서 이성의 소리만 들으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성만이 사람의 행동을 주장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철학은 이성 대신 성령을 그 자리를 올려 놓고 그에게 완전히 굴복하고 복종할 것을 명령한다. 그리하여 이제는 사람이 스스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그의 안에서 사시며 통치하시는 것이다(2:20).

 

- 존 칼빈, 기독교 강요, 중권(크리스천다이제스트), pp 203-204

가져온 곳 : 
블로그 >청교도의 길
|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