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의(Justification) 중생(Regeneration)의 관계/바른 중생 교리 확립이 중요

중생론 2015. 3. 16. 21:34

칭의(Justification) 그리고 중생(Regeneration)은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려고 한다.


칭의는 법정적 의미로서 그리스도가 이루신 의로움이 신자에게 전가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신자들이 가진 의가 아니라 전적으로 그리스도가 가지신 의로움인데

그것이 신자들의 의로움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칭의는 믿음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이신칭의 혹은 이신득의  교리이다.


이러한 칭의 교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택한 자들을 위한 대속적 죽음이라는 

전제를 배경으로 한다.  그리스도가 택한 자들을 위하여 대신 죽으셨다는 것은 

그가 택한 자들을 법적이고 공적으로 대표하여 대신 형벌을 받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택한 자들의 죽음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택한 자들의 부활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칭의교리는 택자들이 아무런 행위를 한 것이 없이 

그리스도의 공로적 행위로 말미암아 획득된 의로움을 값없이 전가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칭의는 값없는 것이지만 반드시 믿음으로 얻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의의 전가는 반드시 믿음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칭의를 얻는 믿음은 무엇이며 어떻게 칭의가 믿음으로 주어지는가?

칭의 교리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와 택자들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그리스도는 택자들을 공적이고 법적으로 대표하는 관계에 있고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이 택자들의 죽음으로 간주되며 

그리스도의 부활이 택자들의 부활로 간주되는 것이다. 

바울은 이점을 가리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고 말하였다. 

그러니까 법적이고 공적인 대표의 관계의 실체는 

그리스도와 택자와의 실제적인 연합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연합이 바로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국 칭의를 얻는 믿음이란 그리스도와 실제적인 연합을 가져오는 믿음인 것이며 

오직 이 믿음으로 택자는 그리스도와 연합되며 그 연합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곧 택자의 죽음과 부활이 되는 것이다.


중생 교리는 이 믿음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중생이란 성령의 역사인데 택한 자에게 새로운 영적 본성이 주어지는 것이다. 

중생은 그리스도가 이루신 모든 유익을  택자들에게 적용시키는 성령의 역사이다. 

중생을 통하여 택자들에게 믿음이 주어지고 

이 믿음은 택자들과 그리스도를 연합시키는 수단이 된다. 

바로 이 믿음을 통하여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이신칭의의 교리이다. 

그러니까 믿음은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인데 바로 이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써 그리스도의 의가 신자들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 곧 거듭남이란 첫번째 아담에서 연합되어 있던 자가 죽고 

두번째 아담인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로 새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첫 아담과 연합되어 있을 때는 필연적으로 그의 죄책과 죄성과도 연합되어 있으므로 

죄책과 죄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죄인이었지만 

새로운 출생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수여받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칭의의 실체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믿음은 중생을 통하여 주어지며 

그 믿음을 통하여 신자는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써 

그리스도의 의로움이 신자들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이 연합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죽음이 신자의 죽음이 되고 

그리스도의 부활이 신자의 부활이 되며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모든 영적 유익이 신자의 유익이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이 없는 믿음은 없으며 믿음없는 칭의가 없을 것이니 

결국 중생없는 칭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칭의를 얻는 믿음은 오직 중생으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칭의 이후에 성화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염려하기 전에 

중생없는 칭의를 먼저 염려해야 한다.  

중생없는 칭의는 헛되고 거짓된 칭의일 뿐이다. 


좋은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가 못된 열매를 맺듯이 

진정한 칭의는 반드시 성화의 열매를 맺을 것이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려면 반드시 먼저 좋은 나무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바르고 선명한 중생교리의 확립은 매우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글/캡투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