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신학 근원들
좐 칼빈 2013. 9. 14. 01:38칼빈의 신학 근원들
지난 2011년 10월 30일(주일)에 열린교회 성도들을 대상으로 전달된 Richard Muller 교수님의 열린교회 특강 전문이다.
1 칼빈의 초기 저작들: 1532-1538
근원들 혹은 출발점을 규명하는 것은 언제나 중요한 일이면서 다소 난해한 일이기도 하다. 칼빈의 신학적 발전에 있어서 근원에 대한 문제는 그의 일반학문, 언어들 및 철학에 대한 교육 그리고 법학에 대한 심화된 연구라는 문헌으로 입증되는 근원들을 고려하고, ‘예기치 못한’ 개혁주의 진영으로 전환하여 제네바 교회의 개혁을 위하여 막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수다한 주석들과 설교들과 논문들 및 기독교 강요까지 서술하게 된 사실을 고려할 때에 대단히 흥미로운 분야라 하겠다. 칼빈의 신학 근원들은 특별한 관심을 유발한다.
칼빈이 회심한 시점에 대해서는, 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칼빈 자신이 ‘교황적 미신들(papal superstitions)’로 여겼던 것을 버리고 ‘경건하고 배우고자 하는’ 마음의 상태로 돌이키게 된 시점에 대하여는 지속적인 논쟁이 있었으며 다양한 해석들이 등장했다. 칼빈 자신의 설명과 베자(Beza) 및 콜라돈(Colladon)이 저술한 초기 전기들의 면밀한 숙독에 기초할 때 칼빈의 회심은 그가 빠리에서 학부를 공부하기 시작한 이후로 법률공부 끝마치기 전까지, 즉 1529년과 1530년 사이 부르쥬(Bourges)에서 공부하는 동안에 일어났을 가능성이 분명히 선호된다. 이러한 회심시기 추정은 세네카의 『관용론(De Clementia)』 주석을 포함한 칼빈의 모든 초기 저작들이 회심 이후에 저술된 것이라는 중요한 결과를 산출하며 카톨릭을 떠난 그의 초기 신학의 재구성이 그의 모든 초기 저작들의 근본적인 테제, 즉 교황적인 미신에서 경건으로 그리고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태도로의 전환을 확립해 주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 저작들을 중요한 소스로 간주하게 한다.
칼빈의 세네카 주석
칼빈은 법학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1532년 2월에는 공인된 변호사가 되었다. 세네카 주석이 출판된 것은 그로부터 2개월이 지난 4월의 일이었다. 그러므로 그 주석은 그의 회심 이후에 처음으로 완성한 작품이며, 그것이 다루고 있는 핵심적인 주제가 그의 인문주의 훈련과 법학의 한 측면인 관용에 대한 그의 관심사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에 회심 직후에 대한 그의 나중 설명에서 비록 다른 학문들에 대한 ‘열정은 식었지만’ ‘그것들을 한꺼번에 내던진 것은 아니라’는 그의 생각도 그 주석은 증거하고 있다. 그 주석의 주제인 관용, 특별히 백성들을 용서하고 아끼는 지혜로운 통치자의 성향인 관용은 한 인문주의 법조인의 직업세계 속으로 포섭될 수 있으며, 또한 주석에서 발견되는 종교적 함의들과 교회의 개혁에 가담한 프랑스 인문주의 학자들의 기소와 핍박이 고조되는 분위기를 고려해 보건대, 그 관용은 새롭게 종교개혁 운동에 가담한 젊은 프랑스 인문주의 학자의 개시적인 화두로 이해함이 좋을 것이다. 주제와 논조 면에서 세네카 주석 자체는 법학을 마감하는 칼빈 자신의 전환기를 보여주는 것이며 또한 우리가 칼빈 당시의 전기 작가들의 설명에 따른다면 성경과 기독교 교리를 브르쥬와 그 근처에 있는 리니에르 안에 있는 종교개혁 추종하는 무리에게 설교하고 가르치기 시작한 전환점도 예시하고 있다.
고대 스토아 철학자란 세네카의 신분과 텍스트에 대한 인문주의 주석의 특징에서 충분히 기대되는 것으로서, 칼빈의 글은 미신들과 설화들을 포함한 그리스-로마의 고전적인 문헌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최소한 칼빈이 사례들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세네카의 글을 분석하고 있다는 점만 보더라도 고전 철학을 중요하게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보다 신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칼빈은 자신이 세네카의 글 안에서 발견한 진리와 지혜를 수용하고 있다. 어떤 개념이 이방인적 근원을 가졌다고 해서 거부하는 일은 없었으며 하나님에 대한 스토아적 이해와 기독교적 이해가 나란히 대비되는 경우들도 이따금씩 있었다. 고대 철학자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칼빈이 초기에 하나님과 우주 및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본성에 관한 진리들이 자연적 질서에 내장되어 있는 계시와 인간의 마음과 양심에 새겨져 있는 신의식 안에 있다고 한 이해와 일치한다.
게다가 우리가 칼빈의 회심 시기를 아마도 부르쥬에서 그가 세네카 주석을 저술하고 있었을 1529년과 1530년 사이로 잡는다면, 그 주석 안에는 회심에 대한 칼빈 자신의 진술들을 보여주는 일부 본문들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겠다. 특별히 아우구스투스(Augustus)가 자신을 대신관 통할하는 최고의 신관(pontifex maximus)으로 승급시킨 일에 대한 세네카의 설명을 주석하며, 칼빈은 세네카 안에서는 명확하게 발견되지 않는 논점, 즉 로마교회 주교들과 자기 시대의 종교개혁 옹호자들 사이에 문제시된 논점을 발전시킨다.
대주교는 주교단에 의해 선출되곤 하였다. 그러나 도미티우스(Domitius) 집정정치 하에서는 선거권이 백성에게 양도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제사장의 직분은 최고 수준의 영광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주교들이 공적이든 사적이든 그들이 그 도시에서 가장 높은 권위를 가졌다는 미신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중독시킨 탓이다. 대주교는 주교들 중에서도 더 주목을 받고 두드러진 자였었다.
‘종교는 신들에게 영광을 돌리지만 미신은 그들에게 잘못을 행한다’는 세네카의 언급을 설명하며, 칼빈은 퀸틸리안(Quintilian) 및 키케로(Cicero)의 유력한 논증을 덧붙이며 다음과 같이 상세히 설명한다.
미신은 동정이 관용에 대하여 가지는 것과 동일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잔인함이 관용에 대하여 가지는 관계성을 불경함이 종교에 대하여 동일하게 가지고 있음과 일반이다. 미신이 명예를 해치는 것처럼 동정도 그러하다. 퀴틸리안은 이렇게 말한다. ‘남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과 성실한 사람이 다른 것처럼 미신도 종교와 다르다.’ 키케로도 말한다. ‘철학자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조상들도 미신과 종교를 구분했다.’
칼빈의 회심은 그로 하여금 곧장 미신과 종교를 분리하게 만들었다.
프랑스어 성경 서문 (1534/35)
성경 전체에 대하여 라틴어로 쓰여진 서문과 불어로 신약의 서문처럼 쓰여진 ‘그리스도 예수를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칼빈이 가장 이른 시기에 출판한 신학적 글들이다. 1) 교황적인 미신에서 ‘참된 경건’으로 돌이킨 것과 2) 빠리에서 도망쳐 대학에서 전달된 니콜라스 콥(Nicholas Cop)의 종교개혁 강연을 들으러 간 경험과 3) 1534년 미사에 반대하는 벽보를 붙였다고 핍박을 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등에 너무도 분명하게 고무된 칼빈은 확고한 종교개혁 지지를 표명한다. 첫번째 서문은 칼빈이 고대 이방인의 풍요제에 비견되는 것으로서 ‘로마 교황(지금은 로마교회 교황)’과 그 후손들이 자신들의 욕망과 신비를 영속적인 것으로 만들되 동시에 일반 백성들을 실제로 성장시킬 수 있는 문헌들의 출판은 금하려는 수작들을 비난하고 있다. 두번째 서문에서 칼빈은 그리스도 언약을 더럽히고 은닉하고 부패시킨 자들을 논박했고 그들을 소경이 소경 인도하는 자들로 규정했고 이러한 사실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따라 ‘생명과 구원’에 이르는 길을 추구하는 모든 자들에게 가르쳐야 할 필요성도 역설했다.
1536년판 『기독교 강요』
칼빈 자신이 기술하고 있듯이 1536년판 『기독교 강요』는 대체로 교리문답 안에 포함되어 있는 믿음의 조항들, 즉 율법, 사도신경, 주기도문, 성례, 기독인의 자유, 교회의 권세 및 국가통치 조항에 대하여 ‘가벼운’ 혹은 심지어 ‘피상적인’ 방식으로 제시한 ‘간결한 편람’이다. 이 책은 간결하나 심지어 그런 형태 속에서도 저자의 신중한 약속과 당시 종교 개혁자들이 강조했던 기본적인 믿음의 조항들을 잘 간파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중요한 종교개혁 운동의 경과를 도표처럼 명료하게 보여줄 정도는 아니지만 1536년판 『기독교 강요』는 초기에 제네바의 교회개혁 가동시킨 기욤 파렐(Guillaume Farel)의 확신, 즉 젊은 칼빈이 제네바의 교회개혁 운동을 위해 발굴해야 하고 협력해야 할 가치가 있는 동료요 교리 편찬자요 조직가란 그의 확신을 종결시킬 정도로 충분한 것이었다.
1536년판 『기독교 강요』의 몇 가지 특별한 점들을 다음과 같이 언급할 수 있겠다. 첫째, 칼빈은 책의 서문을 프랑스 왕 프란시스 1세에게 드리는 헌사로 대신한다. 그 헌사에서 칼빈은 재세례파 비방을 반박하고 프랑스 종교 개혁자들의 교회를 위하는 성향과 평화적인 의도를 설파했고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와의 일치성을 근거로 종교개혁 운동의 정통성과 적법성을 논증했다.
둘째, 1536년판 『기독교 강요』가 길이에 있어서는 루터의 대요리 문답에 가깝지만1536년판 『기독교 강요』의 유력한 모델은 루터의 소요리 문답이다. 특별히 기독인의 자유, 교회의 권세, 국가통치 주제들은 루터가 소요리 문답에 부록으로 첨가하고 대요리 문답에선 사라진 ‘가정의 의무들에 대한 도표(tabula oeconomica)’를 반영하고 있다. 1536년판 『기독교 강요』의 교리문답 구조는 루터의 소요리 문답의 구조와 유사하며, 율법과 믿음과 칭의에 대한 칼빈의 교리들은 쯔빙글리 교리보다 루터 가르침의 흔적을 보여준다. 성례론에 대한 칼빈의 접근법도 비록 루터 자신보다 멜랑톤 입장에서 도출된 것이라 할지라도 강한 루터적 강조점을 가지고 있다.
칼빈의 저작과 루터의 저작 사이의 관계성 때문인지, 1536년판 『기독교 강요』는 율법(1장, 십계명)에서 믿음과 복음과 교회로 (2장, 사도신경) 그리고 기도와 성례로(3-5장), 나아가 교회와 국가 안에서의 기독교적 삶(6장)으로 전개되는 모델을 가지고 기초적인 기독교 교리를 제시한다. 율법과 믿음과 복음과 교회와 국가라는 기본적인 순서는 『기독교 강요』의 이어지는 모든 판본들 안에 그대로 보존되는 구조이다. 칼빈은 5가지 거짓 성례들을 비난하는 대목에서 루터의 교리문답, 아우그스부르그 고백서 및 멜랑톤의 초기 『신학통론(Loci communes)』를 현저하게 극복한다. 그 대목에서 칼빈은 두 개의 진정한 성례들을 고수하고 나머지 견진성사 및 혼인과 참회는 배제하는 입장을 보인 『참종교와 거짓종교 해설(De vera et falsa religione, 1525)』에서 보인 쯔빙글리 모델을 분명히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칼빈의 참성례와 거짓성례 구분은 성례의 실행에 있어서 쯔빙글리 입장보다 훨씬 변증적인 입장을 보여준다. 『기독교 강요』의 성례론 부분은 교황적인 미신을 제거하고 경건에 이르는 뚜렷한 경로를 제시하려는 칼빈의 바램에 의존하고 있으며, 파리대학 재학시 발발하고 회심 이후에는 더 격렬해진 프랑스 안에서 이루어진 종교개혁 시도들의 억압에 대한 반발을 증거하는 의분에 찬 변론적 어조로 진술된다.
초기의 교리문답 및 신앙고백 (1537-1538)
칼빈의 사상에 대한 연구의 초점은 주로 『기독교 강요』에 맞추어져 있고, 『기독교 강요』의 최종판이 근대 초기 개혁주의 신학의 발전에 대하여 가지는 중요성 때문에 칼빈의 신학이 형성되던 시기와 밀접하게 결부된 다른 문헌들에 대한 면밀한 탐구에는 소홀함을 보여 왔다. 그러나 신앙을 가르치는 기초적인 모델을 제공하는1536년판 『기독교 강요』에 견줄 수 있는 다른 문헌도 있다. 보다 유명한 『기독교 강요』 외에도 비록 덜 알려지긴 했으나 칼빈의 초기 사상의 중요한 지표를 제공하는 칼빈의 초기 교리문답, 『제네바 교회에서 사용되는 신앙의 가르침과 고백(Instruction et confession de foy, dont on use en l’Eglise de Geneve, 1537)』 및1538년에 출판된 그것의 라틴어 번역본(Catechismus seu christianae religionis institutio ecclesiae Genevensis)이 있다. 『신앙의 가르침』 부분은 칼빈이 전적으로 저술한 것으로서 기독교의 가르침에 대한 확대된 해설이며 그 교리문답 뒤에 덧붙여진 『신앙고백』 부분은 아마도 칼빈과 파렐의 합작임에 분명하다.
칼빈의 교리문답 서론은 그의 근본적인 종교개혁 관심사와 회심을 거듭 언급하고 있다. ‘교황주의 및 그것의 미신적인 요소들에 대한 협오’가 제거되고 ‘그 도시의 종교’가 ‘복음의 순수성’과 화목하게 되었기 때문에 교리문답 및 첨부된 신앙고백 목적은 믿음을 견고히 구축하고 공적으로 고백하는 방식으로 제네바의 종교개혁 토대를 확고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논지는 신앙 고백서에 분명하게 반영하되 성만찬의 개혁파적 실행은 ‘교황주의 미사’의 ‘끔찍한 불경건 및 미신적 요소들과 대조를 이루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효하고 무용한 것으로 느끼게 만든 말씀의 로마 카톨릭적 남용과도 대조를 이루게 하였다. 그 고백서 안에는 미신이 제거되고 배우고자 하는 마음과 경건이 고양된다.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칼빈의 1536년판 『기독교 강요』의 6개의 장들은 특정한 교리문답 모델에 의존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인 것으로 칼빈의 1537 및 1538년 교리문답은 33개의 장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율법으로 시작하지 않고 종교와 하나님 지식에 대한 서론적인 논의로 시작하여 인간의 본성, 자유선택, 죄, 삶으로의 회복으로 논의가 전개되며 이 모든 주제들은 율법에 대한 논의보다 선행하고 있다. 율법을 논하고 사도신경 논하기 이전에 칼빈은 믿음, 예정, 칭의, 성화, 회심, 중생, 선행 등에 관한 논의를 제공하되 이 논의들은 1536년판 『기독교 강요』나 루터의 교리문답 안에서는 없었던 것들이다. 교리문답 안에서 거론되는 주요 주제들의 절반이 1536년판 『기독교 강요』에는 없었던 것들이며 1537-1538년에 처음으로 칼빈에 의해 충실한 논의로 제시된 것이었다. 1537-1538년에 저술된 두 문헌들의 논의 흐름을 유지한 채 두 문헌을 결합하면 우리는 1539년과 1559년 사이에 증보된 칼빈의 원숙한 『기독교 강요』의 주제들을 거의 동일한 순서대로 얻게 될 것이다. 『기독교 강요』의 1536년 초판과 그 이듬해에 나온 교리문답 두 문헌을 일괄해서 생각할 때 그것들은 칼빈 신학의 개요를 간략한 형태로 제공하고 있으며 비록 이후에 추가될 정밀한 부분들은 생략되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 사상의 범위 혹은 윤곽을 묘사하고 있다.
2. 칼빈의 초기 신학에 있어서의 이슈들과 테제들
종교의 중요성과 하나님을 아는 문제
『기독교 강요』 최종판에 종교와 하나님 지식으로 곧장 돌입하는 대목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칼빈은 1537년 교리문답을 ‘아무리 잔인하고 야만적인 자라도 종교심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여기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칼빈이 고전학 교육을 받았다는 증거를 제공한다. 즉 그 언어는 키케로의 논문 『신들의 본성에 대하여(De natura deorum, 45 BC)』를 투영하고 있다. 그러나 칼빈은 창조의 고유한 목적이 그 창조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위대함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피조물인 인간과 창조자인 하나님 사이의 바른 관계성은 인간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고 경배하는 관계라는 논의로 이동한다. 이후 작품에서 주로 언급되는 주요 주제들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칼빈은 너무도 불경해서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 지식을 부러 잊으려 하는 자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인생의 덧없는 본질을 깨달아야 하고 ‘불멸에 대한 깊은 사색’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사람들은 종교성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마음에 각인된 하나님 지식, 즉 그들로 하여금 세상적인 가치에서 천상적인 것으로 주의를 돌리게 하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
칼빈이 첫장에서 예리하게 언급하고 지나간 불경건 혹은 무종교성 문제가 현저한 주목을 받으며 등장하게 된다. 교리문답 첫장에서 칼빈의 관심을 장악했던 것으로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각인된 지식을 가졌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종교를 위해 태어난 것이다’는 논거는 ‘참종교와 거짓종교’ 구분으로 규정되는 인간의 문제로 곧장 연결된다. 모든 사람들은 종교의 필요성과 종교가 없는 삶의 극단적인 비참을 인정하고 있다. 누구도 자신을 하나님과 분리하려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경건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신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으며, 그것을 전혀 무익한 방법으로 달래려고 노력하며 동시에 죄악된 삶으로 이끌린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을 계신 그대로의 ‘무한한 위대함’을 따라 경배하지 않고 자신에게 맞추어진 다른 하나님을 만든다. 그들은 하나님의 그릇된 형상을 숭배하고 부정한 두려움 속에 스스로가 상실될 것을 발견하며 신적인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참된 경건’은 하나님을 주님으로 ‘두려워 할 줄 알고 경외하며’ 동시에 진심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사랑한다. 이것은 인간에 의해 고안된 경건이나 종교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를 어떠한 자라고 보이신 대로 알며 신자에게 자신을 제시하신 대로 아는 하나님 지식에 의존하고 있다. 칼빈이 ‘제시하다(present)’ 혹은 ‘제공하다(exhibit)’ 단어를 사용할 때에 그것은 하나님의 참된 본성에 대하여 하나님 자신이 선포하신 것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제시하고 제공하신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정확히 이런 의미로 사용된 ‘제공하다’ 단어는 칼빈의 초기 성찬론 신학 안에서도 발견된다. 거기에서 그 단어는 그리스도 예수가 성찬에 임재하는 방식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된다. 그것은 단순히 보인다는 것 혹은 전시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제시하는 것 혹은 제공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는 특별히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받을 수 있도록 그 무언가를 그 사람 앞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 말씀에 제시되어 있는 하나님의 약속은 유효한 것으로서 신자들 앞에 제시되어 있는 것이다.
창조자 하나님에 대한 지식
칼빈을 유명론 지지자로 규정하는 자들 혹은 그의 신학을 20세기의 신 정통주의 렌즈로 이해하는 자들이 직면하는 주요 장애물들 중의 하나는 칼빈이 처음부터 크게 강조하며 그의 신학에 등장한 하나님 지식, 특별히 그가 하나님을 창조자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보내는 서신,’ 1536년판 『기독교 강요』 및 1537년 『교리문답』 같은 칼빈의 초기 저작에 그러한 창조자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나타나는 것은 칼빈에게 있어서 그 지식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칼빈의 사상에 대한 신 정통주의 학자들의 패배를 가리키는1536년판 『기독교 강요』의 주제별 색인은 칼빈의 율법연구 도입부에 있는 주제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 인간의 본성을 아는 지식, 그리고 자연법(lex naturalis) 등임을 보여준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안에서 창조자 하나님에 대한 자연적인 지식과 관련된 긍정적인 설명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에 새겨두신 자연법을 그 지식의 한 국면으로 특화시켜 설명하고 있다.
칼빈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어떻게 아는가’란 주제를 다루는 교리문답적 논의를 시작할 때 알버트 대제(Albert the Great)가 언급하고 중세후기 신학에서 두루 회자된 ‘하나님은 완전히 이해될 수 없고 다만 포착될 뿐이라’는 경구를 떠올리게 하는 신적인 초월성 문제를 가지고 시작한다. ‘하나님의 위엄은 그 자체로 인간의 이해력을 훨씬 초월하여 그 지성에 의해서 완전히 이해될 수 없기 때문에 그 위엄을 탐구하는 것보다 그 위엄의 탁월함을 찬미하는 것이 보다 합당하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출처 문제가 제기된다. 만약 하나님이 완전히 이해될 수 없다면 인간은 어디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숭고한 위엄을 찬미할 수 있는가? 칼빈의 답변은 바로 다음 문장에서 발견된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의 투영’이라 하였고 주님에 대하여 우리가 다른 방식으론 알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탐구하고 그 발자취를 추적해야 한다.’
칼빈은 강조하여 말하기를, 자연의 질서에 대한 이런 경건한 탐구는 신자들의 마음을 신적인 것들에서 계속 구별하는 ‘헛되고 무의미한 사색’의 문제가 아니라 경건에 있어서 중차대한 의미를 가진 연습이라 하였다. 자연적 질서에 대한 깊은 사유는 신자에게 ‘완전한 경건을 일으키며 육성하며 강화한다.’ 요약하면, 그런 사유는 주님에 대한 신앙과 올바른 경외에 유익하다. 칼빈은 자연적 질서에 대한 숙려가 신자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며 신적인 속성들에 대한 묵상은 어떻게 참된 경건에 도움을 주는지를 언급하며 논지를 확장한다.
우리는 이 물질적 우주에서 모든 것들의 토대와 근원이 산출되는 우리 하나님의 불멸을 관조하며, 땅의 물질을 창조하고 지금도 그것을 보존하는 그의 능력을 관조하며, 다양성과 혼돈을 하나의 정연한 질서 속으로 모으시고 영원토록 그것을 통치하는 그의 지혜를 관조하며, 그 자체가 창조된 사물과 그 사물이 지속되는 원인이 되는 그의 선하심을 관조하며, 경이로운 방식으로 경건한 자를 지키시고 악한 자에게 보응함을 통하여 보이시는 그의 의로움을 관조하며,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시고 우리의 불의함을 놀라운 온유로 덮으시는 그의 자비를 관조한다. 우리의 우둔함이 그렇게 눈부신 빛으로 말미암아 더 캄캄해 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우주에서 그것이 제공하는 만큼 하나님이 무엇과 같은 분인지를 풍성하게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죄성과 패역함 때문에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은 일관되게 오독되고 곡해되어 왔으되 심지어 하나님의 지혜가 분명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천상적인 지혜 전체를 뒤집는 극단까지 보인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이 그의 행하신 일들로 말미암아 올바르게 묘사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되 인간의 패역한 기준을 따라서가 아니라 ‘영원한 진리의 규범’을 따라서 돌아가야 한다. 성경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삶과 의로움과 지혜와 능력과 선하심과 자비’의 영원하고 궁극적인 출처 혹은 원천(fons)임을 배운다.
죄에서 구원에 이르는 문제를 논외로 접어둔 채, 칼빈은 하나님에 대한 진리의 두 가지 출처를 밝히고 있다. 죄인된 인간들이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배워야 하지만 그들의 완고함 때문에 배우지 못하는 첫번째 출처로서 세계의 질서이고, 둘번째 출처는 그 동일한 진리들을 권위 있게 가르치는 성경이다. 자연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진리를 재껴두지 않으면서 칼빈은 추가하여 말하기를, ‘이 모든 것들이 하늘과 땅 도처에서 가장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들의 궁극적인 중요성은 오직 ‘우리가 스스로 낮아져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생명과 지혜와 능력을 나타내고 우리를 향하여 당신의 의로움과 선하심과 자비 행하시는 방식을 상고할 때에만 이해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칼빈은 성경적 계시와 자연 안에서의 하나님 계시가 대립되는 것처럼 설정하지 않았다. 그는 죄 문제에도 불구하고 자연적인 계시의 중요성과 유용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연적 계시와 성경적 계시를 나란히 두었으며 그들의 관계성을 강조했고 죄문제와 성경적 계시의 필연성을 알았으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에 대한 진리가 자연적 질서에 나타나 있다는 지점으로 돌아오고 그리고는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내적인 수용과 묵상이 없다면 성경적 진리가 비록 자연적 계시의 보조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무용할 것임을 주장했다.
죄 문제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계시적인 광채를 포함한 계시의 두 출처의 이러한 이해는 칼빈의 ‘그리스도 예수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거기에서 칼빈은 타락 이후에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을 떠남에 대해 언급하고 나서 하나님은 당신의 자비 속에서 ‘자신의 말씀을 바꾸심이 없이’ 인간에게 신령한 것들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그를 추구하고 느끼고 찾고 알아서 그에게 합당한 영광을 돌리도록 하셨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계시는 ‘모든 곳에서와 모든 것에서’ 얻으며 너무도 명백하게 주어져서 ‘어떠한 사람도 무지한 척 할 수 없도록 하셨다.’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과 지혜와 영원함’의 ‘영광’은 우주적 질서의 모든 부분에 새겨져 있다. 사도 바울이 확증하고 있듯이, 하나님은 세상에 결코 증인이 없도록 하지 않으신다. ‘궁창에 있는 것들로 땅의 중심에 있는 것들까지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모든 인간에게 증거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추구하게 하고 그를 발견한 이후에는 그를 묵상하되 주님은 너무도 선하시고 능하시고 지혜로운 분이시기 때문에 그 주님께 그의 권위에 합당한 경의를 표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자연 전체에 있는 하나님의 증언에 대해 다소 열광적인 언설을 지속한 이후에 칼빈은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존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자신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한 하나님을 그렇게 오래동안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렇게 설명함에 있어서 칼빈은 죄에 빠진 인간의 무감각에 대한 언급에서 자신의 논지를 제한함이 없이 ‘하나님은 자신의 무한한 선하심과 인자함을 보다 충만하게 보이시기 위해 땅의 열방들 중에서 특별히 택하신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의 목소리를 듣도록 하셨다’고 덧붙인다. 반대로 이방인은 비록 세계의 질서에서 그들에게 계시된 내용이 있고 ‘은택의 감추어진 궁극적 수여자’가 모든 선의 원천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되신 하나님을 떠나고 자신들을 위해 우상들, 즉 ‘헛됨과 속임수’를 따라 고안된 신들을 만들었다.
칼빈은 어떤 곳에서도 자연적 계시의 가치를 축소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완전히 상실된 가능태로 여기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칼빈이 자연적 계시를 독립적인 자연적 혹은 철학적 신학의 기초로 격상시킨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유의미한 계시가 자연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힌다. 칼빈은 자연적 계시를 유한한 것들의 우주적인 질서의 창조자요 보존자요 통치자인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들에 대한 계시라고 하였다. 칼빈은 이 자연적 계시가 하나님의 구원적 지식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특별히 밝히지는 않았으며, 자연적인 계시와 구원의 지식을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을 구원의 유일한 기초로 이해하는 지식의 근원에 해당되는 것이지만 창조된 질서와 더불어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들을 아는 지식의 근원도 되며, 죄문제를 고려하면 죄가 일관되게 창조된 질서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진리를 우상적인 것으로 수용하게 하고 우상적인 방식으로 반응하게 만들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 모두에 대해서 중요성을 가지는 필연적인 근원이다.
함축적인 의미를 보자면, 성경이 제공하는 창조자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자연 안에서도 계시된 하나님과 그의 속성들에 대한 동일한 진리들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함의는 주제를 다루는 칼빈 자신의 방법론적 접근법에 의해 강화된다. 즉 칼빈은 인간적인 지식의 결함과 자연적 계시의 한계와 우상의 문제를 처음부터 경계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 계시의 범위와 특성에 대한 광범위한 찬양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나아가 칼빈은 앞에서 다룬 참종교와 거짓종교 사이의 차이를 배운 신자에게 전달된 교리문답 안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시작하며, 타락과 죄문제를 규명한 이후에 자연에 있었지만 [죄와 타락으로] 제거되고 만 긍정적인 진리에 관한 충실한 논의를 제공하는 신약성경 서문 경우에도 이런 방식으로 시작한다. 칼빈은 이러한 자연적 계시가 다만 인간으로 하여금 핑계치 못하도록 한다는 사실을 신약성경 서문에선 논하지 않았다. 칼빈은 이방인이 자연적 계시를 비우상적 방식으로 수용할 어떠한 가능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마음에 새겨진 신적인 것들에 대한 인간의 초보적인 이해는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로 보건대, 그는 타락한 인류 전체에게 미친 자연적 계시의 제한적인 영향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인정하되 은혜와 성경의 가르침을 통하여 눈이 열린 신자들에 의해서 지각된 자연의 하나님 계시라고 찬양했다.
성경과 전통
칼빈의 초기 『기독교 강요』와 그의 첫번째 교리문답 중 어떠한 것도 신앙과 신학의 규범들에 대한 충분한 진술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교리문답 ‘영원한 진리의 규범’ 항목을 따라 만들어진 언급으로 성경 혹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하나님 지식의 유일한 소스라는 사실을 이미 살폈다. ‘그리스도 예수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고대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하여진 하나님의 음성에 대해 언급하고 나아가 계시의 역사를 율법과 언약과 그리스도 (메시야) 계시 맥락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그러므로 칼빈은 분명하게 성경을 기독교 가르침의 궁극적인 규범으로 가정하고 있으며 초기 『기독교 강요』에서 그는 일관되게 성경을 인간적인 전통과 의견에 맞서는 건강한 교리의 토대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문헌들 중 어떠한 것에서도 성경을 규범으로 이해하는 온전한 교리적 체계화 혹은 교리적 진술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고백』 서두에서 그러한 진술을 발견한다.
먼저 우리는 우리가 우리의 신앙과 경건의 규범으로 성경만을 따를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인간적인 의견으로 고안된 어떠한 것도 성경과 혼합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바이다. 그리고 우리는 말씀에서 산출된 것 외에는 우리의 영적인 통치권에 대해 다른 어떠한 교리도 용납하지 않음으로 성경에 어떠한 것도 더하거나 감하지 않도록 할 것인데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금령을 따라 배웠기 때문이다.
나아가 칼빈은 성경의 올리베탄(Olivetan) 불역본의 라틴어 서문에서 왕정이나 교회의 검열관이 부여하는 ‘특권’이 없어도 텍스트의 권위에 의존하여 번역본을 출판할 수 있다는 권리를 주장했다. 성경은 인간에 의해서 새롭게 발명되지 않았으며 그것의 유효성을 얻기 위해 인간적인 증언을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고 칼빈은 기록한다. ‘하늘과 땅과 바다의 주인이며 왕중의 왕이신 분의 예언과 영원한 진리’가 성경의 권위를 보여주고 있다. 초기 『기독교 강요』에서 칼빈은 또한 신성에서 성부와 성자의 하나됨과 구별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적인 지혜’ 사용하는 것을 경계하고 그의 독자들로 하여금 우리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배운 것들 외에는’ 어떠한 것도 생각하지 말고 말하지도 말라고 경고한다. 이와 유사하게 그리스도 예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진리에 관하여 혼란을 느끼는 이들은 ‘성경이 말하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
신학의 다른 원천들과 관련된 성경의 권위 및 사용에 관한 칼빈의 초기 입장은 다소 명확하다. 성경에 대한 그의 진술들은 성경을 종교와 신학에 있어서 필수적인 진리의 유일한 근원으로 간주하고 성경은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를 위하여서 연구되고 해석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 중세적 전통의 큰 줄기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칼빈이 성경의 권위를 교회의 문맥에서 이해한 것은 그로 하여금 교회의 이전 전통들을 존중하고 지원하되 특별히 어거스틴 같은 교부들을 주목하게 하였고 초기의 교회 공의회의 결정들을 주목하게 하였지만 그렇다고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여러 오류들과 이단들을 대적하는 데에 지원을 받는 정도였지 최종적인 권위를 가진 어떤 성명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른 종교 개혁자들 같이 칼빈도 자기 시대에 이루어진 전통의 변화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개혁을 위해 성경을 그러한 오류들과 대립되는 것으로 설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로잔(Lausanne)에서 이루어진 첫번째 강연에서, 칼빈은 자신과 종교개혁 지지자를 묘사할 때 그들이 로마 카톨릭 대적보다 교부들을 더 신중하게 탐독한 자들이며 그러므로 그러한 초기 교회 선생들의 목소리에 올바른 주의를 기울임도 없이 초기교회 권위에 호소하는 로마 카톨릭 학자보다 교부들을 더 존경한 자들로 묘사했다. 비록 교부들은 합당한 관심을 받아야 하지만 ‘우리 주님의 말씀의 권위를 훼손하는’ 그런 차원의 권위를 부여하는 정도까지 높여서는 아니될 것이다. 이사야와 사도 야고보가 명시하고 있는 것처럼 교회에는 오직 한 ‘왕과 입법자’만 있어야 한다고 칼빈은 주장한다. 만약 교황이 ‘악마적인 교만’을 부리며 이 권세를 패하고 그 권세를 자신에게 돌리고자 한다면 그는 적그리스도의 일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부에게 지나치게 높은 권위를 부여하여 ‘적그리스도 기준을 따라’ 그들을 가늠하고 그들로 ‘그리스도 예수의 대적자요 원수’가 되게 해서는 안될 것이며 교부들을 읽되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 인식하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종교 개혁자들은 교회의 초기 인물들과 그들의 사역을 주목하며 그들에게 합당한 경의를 표했으며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교부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진리에 귀를 기울이고 모든 겸손과 경외심을 가지고 그 진리를 찾되 최종적인 권위는 오직 하나님께 두었다.
여기에서 칼빈의 교리적 체계화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는 개혁을 초기의 교회가 신실하게 성경을 읽었던 전통 안에 위치시켜 두었으며 그는 또한 오버만(Heiko Oberman)이 ‘전통 I’이라고 명명한 모델을 고수했다. 교회의 전통은 성경과 동일한 혹은 거의 동일한 지위를 가진 두번째 권위로 여겨서는 안되며 오히려 그것은 성경의 진실한 읽기와 해석에 관계된 문제이다. 게다가 칼빈이 신약성경 서문에서 분명하게 밝힌 것처럼 성경을 읽기 위한 교회적 문맥은 개혁을 반대한 로마 카톨릭 대적들이 규정한 교회적 문맥보다 넓었으며 (더 넓어질 필요가 있으며) 그 문맥이란 교회의 위계질서 및 대학의 신학부 교수진만 해당되는 제한적인 것이 아니라 교육을 받은 일반인도 포함할 정도로 넓었었다.
믿음과 연관된 교리들
구원하는 믿음과 은혜와 칭의에 관한 주제는 칼빈의 1536년판 『기독교 강요』 안에 등장하며 사실 그의 논제식 색인에는 장들 안에 발견되는 주제들 중의 하나로 표기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리에 대해서는 가장 간략한 논의만 있었다. 이 교리가 다른 중요한 교리적 논점들과 다양한 연관성 속에서 보다 명료하게 선언된 것은 교리문답 안에서다. 거기에서 칼빈은 믿음의 정의를 제시하고 믿음을 예정 및 은혜와 먼저 연결하고 그 다음에 칭의 및 성화와 연결하고 그런 다음에 회심과 중생과 선행으로 이동한다. 교리문답 안에서 발견되는 설명의 순서는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순서에 따르면 나중에 개혁주의 인물들에 의해 ‘은혜의 집행’ 혹은 ‘구원의 서정’으로 규정되는 것들에 해당되는 다른 주제들과의 연관성 속에서 로마서 8장 28-30절의 소위 ‘황금사슬’ 주제들을 연결하는 열쇠로서 믿음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칼빈은 일련의 교리들 중 교리문답 첫 장의 제목에서 간단하게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안다’는 언급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자비로운 아버지’ 하나님은 복음 안에 그리스도 예수를 제시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하고’ ‘인정하는’ 것도 복음에서 비롯되는 것인 반면, 불신과 ‘강퍅함’ 때문에 마음이 어두워진 인류의 보다 많은 사람들은 복음을 거절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이 보내신 그를 맞이하고 그의 부르심을 따르는 믿음의 사람들에 의해서만 유효하게 영접된다.
1536년 『기독교 강요』는 선택을 사도신경 주제와 연관시켜 언급하고 유기에 대해서는 단지 이 땅에서의 교회에서 어떠한 사람도 택자와 유기자를 분리할 수 없다는 문맥과 관계하여 매우 간략하게 다루었던 반면, 1537-38년 교리문답은 『기독교 강요』의 나중 판본들에 훨씬 가까운 방식으로 그 문제에 접근한다. 즉 칼빈이 선택과 유기에 대한 교리로의 전환점을 발견한 대목은 바로 복음이 ‘모든 자들을 불러 그리스도 안에 참여할 것’을 말하지만 단지 일부만 반응할 뿐이라는 사실에 있다. 일부는 그리스도 부르심을 따르지만 다른 일부는 따르지 않는다는 ‘이 차이’는 ‘신적인 의논의 심오한 비밀’에 대한 숙고로 곧장 이어진다.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은 주님께서 그의 영원한 선택을 따라 자녀로 예정하고 천상적인 왕국의 상속자로 정하신 자들 안에서만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다. 하나님의 동일한 의논을 따라 제외된 나머지 사람들을 위한 진리의 가장 분명한 선언은 죽음에서 죽음에 이른다는 악취에 의해서다.
택자들과 유기자들 사이의 이러한 구분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영원한 의논 이외에 더 소급되는 원인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이러한 개념을 따르면서 칼빈은 신적인 것들의 신비에 대한 인간적인 지식의 한계를 설명하기 위해 교리문답 안에서 가장 긴 장들 중 한 장의 나머지 부분을 할애한다. 왜 하나님은 어떤 자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다른 이들에겐 그렇지 않는지에 대한 물음은 감추어진 상태로 두어야만 한다고 칼빈은 설명한다. 신적인 신비를 관통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며 그렇게 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깊은 근심만 만들어 낼 뿐이라고 하였다. 신자들이 해야 할 모든 것은 바로 신비를 수용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판단에서 언제나 의로우며 거룩하신 분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후에 칼빈은 빠져나올 출구가 없는 작정의 ‘미로’에 대한 [과도한] 탐구를 경계했다.
신자들은 신비를 불평하고 탐구하는 것보다 인류 전체를 당연한 권리에 의해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하심을 경외해야 한다. 로마서 9장 본문을 떠올리며 칼빈은 자신의 독자들로 하여금 택자는 ‘긍휼의 그릇’으로 유기자는 ‘진노의 그릇’으로 인정하되 그것이 전적으로 의롭다는 것을 깨닫길 원하였다. 선택과 유기는 서로 합력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바탕을 제공한다. 칼빈은 선택의 확실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다 하였다. 나중에 『기독교 강요』에서 이 주제들을 발전시킬 것을 내다보며, 칼빈은 그리스도 예수를 신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거울’로 규정한다. 그리스도 예수는 단순히 거울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는 모든 자들에게 선택의 보증이요 증거도 되신다.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소유한 모든 자들은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소유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더 파고들 필요성이 없다고 하겠다.
믿음의 정의를 논한 초기의 『기독교 강요』에서 칼빈은 믿음의 두 의미를 보다 명료하게 구분한다. 두 의미는 모두 고유한 것이지만 오직 하나의 의미만이 은혜와 하나님 앞에서의 칭의와 연결된다. 믿음[의 첫번째 의미]은 단순히 사도신경 안에 발견되는 그런 믿음의 조항들을 뜻한다. 이 믿음은 교회가 공통으로 진리라고 확증하는 교회의 교리이다. 그러나 믿음은 신자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는 내적인 신뢰를 뜻하기도 한다. 그것은 구원과 관계된 믿음의 두번째 의미인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를 내적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을 누구나 언제든지 받아들일 것이다. ‘진정한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를 너무도 확실하여 그것이 행하기로 보증한 것들은 반드시 성취하실 수 있다는 것을 확정하는 마음의 견고한 확신 이외에 다른 어떠한 것도 아니다.’ 교리문답 안에서 발견되는 ‘참믿음의 정의’라는 짧은 장은 칼빈의 원숙한 개념을 지향한다. 즉 [그 원숙한 개념의] 믿음은 ‘뇌리를 맴돌며 가슴에는 아무런 영향도 못미치는’ 앙상한 하나님 지식 혹은 성경의 민밋한 이해가 아니며, 믿음은 또한 이성을 따라 그럴듯한 것이라고 확인되는 견해 문제도 아니다. 오히려 믿음은 ‘마음의 확고하고 견실한 확신이며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복음이 약속한 하나님의 자비 안에 안식하게 되는 그런 것’이다. 1536년과 1537-38년 사이에 일어난 개념의 변화는 개념의 초점과 관련되어 있다. 즉 믿음의 개념이 단순한 지적 동의와 궁극적인 의미에서 마음에 즉 의지의 영역에 있는 구원하는 믿음 사이의 구분을 강조하는 강한 주의주의(voluntarism) 성향으로 선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이 그 안에서 성취되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의 고유한 대상으로 규정한 이후에, 칼빈은 믿음 자체에 대한 언급과 함께 구원의 근원 문제로 돌아간다. 왜 어떤 사람들은 믿고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느냐의 물음이 예정의 문제를 제기하듯, 믿음의 근원에 대한 물음은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이란 문제를 제기한다. 믿음은 인간의 자연적인 능력에 속한 것이 아니다. 칼빈은 믿음이 하나님의 ‘탁월하며 고유한’ 선물임에 틀림이 없으며, 믿음은 하나님이 성경에서 약속하신 것들을 공급해 주신다는 사실을 견고히 확증하며 ‘우리의 마음을 조명하고 영혼의 설득으로 마음을 확고히 세우시는’ 조명적인 성령의 능력 이외에 다른 어떠한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약속하신 것을 행하실 것이라는 논점은 1536년판 『기독교 강요』 언사의 반복이며, 교리문답 앞 부분에서 언급된 지성과 의지의 균형은 칼빈이 나중에 이룰 교리적 체계화를 지향하는 논점이다.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의 원숙한 가르침은 칭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곧장 이어진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는데 이는 그들에게 ‘어떤 종류의 의로움이 스며들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의로움을 취하였고 그들 자신의 ‘불법’은 그들에게 ‘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리스도 의로움의 수용은 죄용서와 동시적인 것이라고 칼빈은 주장한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신자들을 위해 자신의 의로움을 ‘전가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행위의 의’와 그것을 전복하는 혹은 파기하는 ‘믿음의 의’를 구분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칼빈이 비록 그리스도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사이를 중재하는 우리의 보증인이 되신다고 간단히 말하기는 하였지만 그리스도 의로움이 어떻게 신자들의 구원에 공로가 되는지에 대한 보다 상세한 논의는 사도신경 해석에서 할 것이라고 칼빈은 밝힌다.
교리문답 안에서 이러한 칭의의 전적인 법정적 설명 다음에는 신자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것처럼 그들의 성화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된다는 선언이 뒤따른다. 성령의 조명케 하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선물을 얻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고 간주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에 참여함을 인하여 ‘성화되고 모든 청결함과 순전함에 이른다.’ 성화를 경험함이 없이 자신의 믿음을 자랑하는 사람들은 전적으로 속은 자들이다. 그리스도 ‘의로움은 우리가 성화를 맞이함이 없이도 우리가 믿음으로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인간의 자연적인 능력에 속하지 않았듯이, 율법에 대한 순종도 인간의 어떤 ‘능력’과 대응되지 않는다. 오히려 순종은 율법의 실행을 위한 ‘영적 능력’을 요청하고 있다. 파렐 교리와의 유사성이 여기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즉 율법에 대한 순종은 우리의 능력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있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믿음을 통하여 성취되는 것이라고 파렐은 주장했다.
그러므로 율법은 새로운 기능을 취하게 된다. 즉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의 마음에 새겨졌기 때문에 한 때 인간의 죄를 정죄만 했던 율법이 신자들의 발걸음을 이끌어 의의 길로 인도하는 빛이 되었다는 것이다. 율법은 악의 길을 출입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의로운 ‘훈련’을 제공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율법에 대하여 멜랑톤의 개념에 수정을 가하며 도출한 칼빈의 제3사용 개념의 섬광을 경험한다.
칼빈이 성화를 마음의 정화와 새로운 순종으로 이해한 것은 그로 하여금 다음 장의 주제인 회심과 중생으로 넘어가게 한다. 여기서는 칼빈이 도입한 용어들이 중요하다. 즉 여기에서 참회(poenitentia)와 중생(regeneratione)은 회개와 함께 조정되어 회심(conversio)으로 규정되기 시작하고 중생은 우리의 부패한 자아의 죽임(mortificatio)과 영적인 살림(vivificatio)으로 구분된다. 이 이중적인 중생, 즉 새로운 삶과 결부되어 육체에 맞서 싸우는 지속적인 전쟁 개념은 파렐의 특징이다. 여기서 그 유형 혹은 모델은 『기독교 강요』 후기 판본에도 계속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칼빈의 사상에 중요한 것이라 하겠다. 『기독교 강요』의 문헌형성 과정에서 추가된 방대한 분량의 자료들을 고려할 때 그 모델을 이후의 판본들 안에서 규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여기서는 가장 기초적인 형태를 따라 진술되어 있다.
회개는 ‘언제나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과 결부되어 있으며’ 중생됨 혹은 거듭남이 없이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전제와도 결부되어 있다고 칼빈은 주장한다. 회심으로 정의되는 회개는 중생에 의존하고 있으며 우리의 삶 전체에 관계된 과정이되 한편으론 죄와 부패의 잔재들을 죽이고 다른 한편으론 인간의 ‘본래적인 상태’가 은혜로 회복되게 하는 수단으로 영적인 살림을 경험하는 과정이다. 칼빈은 또한 논의의 순서에서 왜 회개와 중생을 성화 다음에 두었는지 밝히기를, 거듭남 혹은 새로운 ‘피조물’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이생에서 결코 완성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회개는 죽을 때까지 지속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는 삶은 구원의 필연적인 부분이다. 중생에서 비롯되는 선행은 하나님이 그들 안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받음직한’ 것이다. 선행이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나온다는 이러한 강조는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기초를 결단코 제거하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서 행위에 기초한 의로움의 어떤 형태를 구성하는 것도 아니다. 행위로 말미암는 인간적인 의로움은 율법 아래에서 전적인 완전함이 필히 뒤따르지 않으면 안되는데 칼빈은 인간에 의해서 산출된 행위들 중에 전적으로 완전하고 무흠한 행위는 하나도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의는 우리 자신 바깥에서(extra nos), 즉 하나님에 의해 은혜로 우리에게 전가하신 의의 주체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와야만 한다. 이 교리는 선행의 필요성을 결코 제거하지 않으며 오히려 기독교적 삶에서 가지는 그것의 고유한 중요성을 긍정하고 있다. 신자의 불완전한 의가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의로움에 의해 가리워질 때 하나님은 순종하는 인간의 행위를 의롭다고 ‘여기시며 받아들여 주신다.’ 동시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영원한 보상을 약속해 주신다.
결론
칼빈의 초기 신학은 (그가 작가에게 합당한 방식이라 주장하는 글쓰기의 특질로서) 명료성과 간결성 때문에 주목할 만하며, 전 생애를 걸쳐 칼빈의 사상에 중요한 내용으로 보존될 일련의 괄목할 만한 주제들을 제공하고 있다. 칼빈의 초기 신학은 그 근본적인 의도에 있어서 성경적인 동시에 전통적인 입장에서 성경 텍스트를 주목하고 교회에서 분명한 지지의 목소리를 추구할 때에는 특별히 교부들을 주목하되 교회를 괴롭히는 진리의 학대가 창궐하기 이전에 저술된 보다 오래된 전통으로 이해한 신학이다. 요약하면, 칼빈의 초기 신학은 그 의도에 있어서 정통적인 동시에 교회적인 것이었다. 교황적인 미신에서의 해방이란 칼빈의 관념과 독자들과 청중들로 하여금 그 미신에서 경건과 배우고자 하는 성향으로 전환되게 만들려는 그의 의도는 칼빈의 초기 저작들 전반을 관통하고 있으며 그 모든 것들을 포괄되는 하나의 공통된 주제이다.
출처: 한병수 전도사 블로그 Theologia orthodoxa reform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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