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대화법
은혜의 단비 2012. 2. 9. 12:13
소크라테스의 대화법
스펙이 지배하는 사회에 교훈을 주는 사람으로 소크라테스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소크라테스(기원전 469~기원전 399)는 철학사 전체를 '소크라테스 이전'과 그 이후로 나눌 정도로 일종의 분기점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키케로는 소크라테스를 두고 "철학을 하늘에서 땅으로 끌어내린 사상가"라고 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서구 철학의 기초를 형성한 사람으로서 플라톤과 그 이후 그리스철학자들뿐 아니라 서양 사상사 전체에 절대적 영향을 끼쳤습니다.
소크라테스가 35~40세 정도 였을 때 그의 친구 하나가 "아테네에서 제일가는 현자는 소크라테스이다"라는 델포이 신전의 신탁을 소크라테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 말을 이해할 수 없어서 당시 아테네에 사는 유명 인사들을 만나보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도 역시 무지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자기는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아테네의 다른 이들은 자신들이 무지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고 하는 것이 차이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렇게 자기의 무지를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가 아테네에서 제일가는 현자로 칭해짐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내가 아는 것은 오로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뿐"이라는 식으로 자기의 무지를 아는 것을 중세철학자 쿠자누스는 '박학한 무지'(docta igrantia)라 했습니다.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을 그의 철학적 삶을 이끄는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이 말은 사실 소크라테스 자신의 말이 아니라 델포이 신전의 신탁으로 그 신전의 비명이었습니다. 그는 이 말처럼 아테네 사람들이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고 무지와 편견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런 목적을 위해 소크라테스가 취한 방법 중 하나는 '대화'였습니다. 아테네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하기를 좋아했지만 특히 소크라테스는 대화야말로 진리를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이라 생각했습니다. 대화할 때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이론이나 논리를 전개해서 상대방을 가르치거나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질문하고 상대방의 대답 자체에 모순이 있음을 보여주어 상대방이 스스로 자기의 무지를 깨닫고 앎에 이르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입니다. 산파는 아기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아기가 산모의 몸 밖으로 나오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인 것처럼, 서로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 속에 있는 진리의 씨앗을 이끌어내는 방식을 취한다는 뜻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스스로를 아테네 사람들을 괴롭히는 '쇠파리'라 했습니다. 안이한 생각과 지적 자만에 빠진 아테네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여 아테네 사람들이 진정으로 자기들의 참나를 발견하도록 애썼다는 뜻입니다. 소크라테스도 소크라테스이지만 귀찮은 '쇠파리'를 쫓거나 죽이지 않았던 아테네 사람들 역시 존경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소크라테스이지만 그는 정규 교육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또한 책 한 권 쓰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상은 그의 제자였던 플라톤에 의해 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참된 삶이었고, 그러한 삶은 결코 책을 통해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은 그런 자기의 스승을 가리켜 "당대의 모든 사람 중 가장 사려 깊고 정의로운 사람이었다"라고 칭송하고 있습니다.
이 위대한 소크라테스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살았다면 과연 그런 칭송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스펙을 추구하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배부른 돼지'로 살면서 '가난한 소크라테스'의 칭송도 함께 받으려는 모순된 길을 걷고 있다는 자각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 퍼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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