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3일, 미국 연방의회 의원 취임 선서에서 미국 의회 역사상 최초로 힌두교 경전인 <바가바드기타>에 손을 얹고 선서하는 의원이 나타났다. 첫 번째 불교 신자 상원의원도 등장했다. 미국 연방 하원에서는 이미 두 명의 불교 신자가 있고, 6년 전 이슬람교 신자가 코란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했었다. 이날 의원 선서에 사용된 책은 총 9가지였다. 3종류의 기독교 <성경>(캐톨릭·개신교·동방정교), 유대교 경전인 <토라>, 이슬람교 경전 <코란>, <몰몬경>, 힌두교 <베다>, 불교 경전 <수트라>, 미국 헌법.
이 기사를 보고 사람들은 이제 미국은 "더 이상" 기독교 국가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아니, 틀렸다. 미국은 "더 이상" 기독교 국가가 아닌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기독교 국가가 아니었다.
청교도가 세운 나라?
미국 교회사 첫 수업 시간에 교수님의 첫 질문은 "미국은 크리스찬 국가인가?"였다. 언뜻 당연해 보이는 이 질문에 대해, 흥미롭게도 미국인 신학생들의 답이 거의 반반으로 나눠지는 광경이 연출됐다. 당사자인 미국인들마저도 이런 상황이니, 어릴 적부터 교회에서 늘 '기독교 국가 미국'에 관한 예화를 들어온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 당황스러운 질문일 것이다. '미국은 청교도들이 기독교 정신으로 세운 국가이고, 건국을 주도한 대통령들은 신실한 크리스천들이었고, 링컨은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들었고, 국가 지도자들이 성경에(만) 손을 얹고 취임 선서하는 유일한 나라다. 그래서 하나님은 미국을 축복하신 것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이 내용들이 대부분 잘못된 신화라고 한다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많을까? 아니면 불편해 할 사람이 많을까?
어디부터 실타래를 풀어야 할까? 우선은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매사추세츠 플리머스에 도착한 순례자들이 과연 우리가 아는 그 청교도들과 같은 사람들이었는지에 관한 질문부터 시작해 보자. 본래 청교도들은 영국 국교에 아직 남아 있던 카톨릭의 요소들을 완전히 제거하고,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형태로 국교를 '개혁'하려는 자들이었다. 즉, 그들은 결코 영국 국교를 떠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좀 더 철저한 형태로 국교에 대한 종교개혁을 이루려는 것뿐이었다. 반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왔던 그 순례자들은 그 노력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국교로부터 벗어나 그들만의 독립된 사회를 꿈꾸던 사람들이었다. 물론 이들도 넓은 의미에서는 청교도주의에 속한 사람들이었지만, 교회와 국가 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나중에 보스턴으로 이주해 온 청교도들과는 다른 입장을 취하던 '분리주의자'들이었다.
그럼 국교는 물론이고 영국을 떠날 생각이 없던 청교도들이 신대륙으로 이주를 시작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첫째는 청교도들에 대한 국가의 핍박이 심해졌기 때문이고, 둘째는 당시 영국이 경제적 위기를 경험하면서 식민지 이주를 권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교도들이 신앙적인 이유로 신대륙을 찾은 것은 맞지만, 그들은 많은 다른 이유로 식민지행을 결심한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한 그룹이었을 뿐이다. 실제로 식민지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종교적으로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았다.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그룹 역시 청교도나 성공회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당시 유럽의 종교 상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다양했고, 그들이 모여든 신대륙은 그야말로 종교 시장이 되었다. 당시 식민지에는 개신교의 다양한 종파인 루터교, 장로교, 침례교, 회중 교회, 퀘이커는 물론이고, 카톨릭과 유대교, 원주민들의 종교, 게다가 아프리카 노예들이 믿고 있었던 이슬람까지, 수없이 많은 종교 형태가 공존하고 있었다. 유럽에서 유행하던 민간 신앙이나 마법은 기독교와 이미 너무 친숙하게 혼합되어 있을 정도였다. 아무 것도 없는 깨끗한 신대륙에 오직 청교도들만 신앙의 자유를 찾아 들어와서 기독교 신앙으로 설립한 국가로서의 미국? 그런 나라는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정교분리 원칙 주장한 '건국의 아버지들'
물론 그와 비슷한 세상을 꿈꾸었던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했다. 버지니아가 영국 성공회를 공식 교회로 삼은 반면, 청교도들이 주도하던 뉴잉글랜드는 회중 교회(Congregational Church)를 공식 교회로 삼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버지니아의 성공회는 물론이고 뉴잉글랜드의 회중 교회 역시, 공식 교회를 통한 종교와 정치와의 합일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종교적 이유로 핍박받았던 자신들의 과거는 잊어버리고, 청교도적 신앙에 합하지 않는 모든 종교적 견해와 전통을 강한 법적 힘으로 제거하려 했다. 교회가 세운 규범을 어기는 이들은 교회는 물론이고 정부로부터 처벌을 받았다. 뉴잉글랜드의 청교도 지도자들은 소위 '언덕 위의 도시'를 세우고 신적 계약 공동체로서의 새 이스라엘을 꿈꾸었다.
하지만, 이들의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새로운 이주민들이 몰려오고, 각종 종교 형태가 유입되고, 종교에 관심 없는 젊은 세대들이 늘어감에 따라 청교도 공동체는 서서히 붕괴되어가기 시작했다. 미국의 독립 직전, 뉴잉글랜드를 제외한 당시 신대륙은 전혀 종교적이지 않거나 청교도 신앙과 전혀 다른 종교를 지닌 사람들로 이미 가득 차 있었다.
그렇다면, 미국의 독립과 건국을 주도했던 소위 '건국의 아버지'들은 어땠을까?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미국은 성경에 기초해서 세워진 나라가 아니라 독립선언서와 헌법에 기초하여 세워진 나라이다. 그리고 그 독립선언서와 헌법의 초안을 만든 이들은 기독교적 가치보다는 세속적(secular) 혹은 계몽주의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미국의 초기 대통령들은 결코 일반적인 개념에서의 기독교인들이 아니었다.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을 비롯해서, 존 애덤스,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은 다 계몽주의적 이신론자들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 독립선언서에 나타나는 – 신(Nature’s God) 혹은 창조자(Creator)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격적 하나님이 아니라 그저 우주 혹은 자연의 법칙(Laws of Nature)일 뿐이었다.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은 신약성경에서 모든 교리나 기적 같은 요소를 가위로 잘라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제퍼슨 바이블>은 그가 전통적인 기독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보여 주는 실례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국가와 종교가 철저히 분리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견지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영적 유익'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로 정교 분리를 주장했던 기독교 지도자들과는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그들은 미국이 기독교를 비롯한 어떤 종교 위에 세워지는 것을 철저히 경계했다. 헌법과 제1조 수정안을 입안한 제임스 매디슨은 특정 종교와 국가 간의 연합이 '정치적 유익'을 위해서도 해가 된다고 보았고, 수정안을 통해 "국가와 교회를 나누는 장벽"을 만들려고 했던 토머스 제퍼슨의 의견에 동의했다.
이렇게 해서 1791년 공포된 미국 헌법 수정안 제1조는 다음과 같은 조항을 명시했다 : "의회는 종교의 설립에 관여하거나 그것의 자유로운 실행을 금지하는 어떠한 법도 만들 수 없다." 이 수정안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요소들 중의 하나는, "유대인과 이방인, 기독교인과 이슬람교인, 힌두교인이나 모든 이교 종교인들"에게 공평하고자 했던 버지니아법(1785)이었다. 또한, 1796년 트리폴리타니아와 수교를 맺고 체결한 '트리폴리 조약'에서는 "미국 정부가 어떤 의미에서도 기독교 위에 세워지지 않았음"을 명시하고 있다(제11조).
신화화의 과정들
자, 이렇게 헌법과 국제조약이 이처럼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는데도, 미국이 기독교 국가라고 흔히 믿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혹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미국의 건국신화 때문이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메이플라워호의 순례자들, 대부흥, 건국의 아버지들, 독립선언서와 헌법, 이 모든 것들이 미국이 신적 선택을 받은 특별한 나라임을 증명하는 요소들로써 신화화 과정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톤에게는 모세의 이미지가 덧붙여졌고, 그 외 다른 대통령들도 성인처럼 기념되어졌다. 가장 세속적인 인문주의 문서였던 독립선언서와 헌법의 원본은 일종의 경전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선택받은 나라로서의 미국'에 대한 이상을 가장 잘 보여 주었던 청교도들의 아이디어는, 정교 분리의 원칙이 고수되는 미국의 국가 정체성에 특별한 종교성을 부여해 주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가진 생각 중에 – 기독교인이 아닐지라도 – 미국을 특별한 나라로 생각하는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에는 이런 배경이 존재한다. 좀 빗나가는 이야기일 수 있으나, 맥스 루케이도의 <넌 특별하단다>라는 동화책을 볼 때마다, 필자는 이런 동화가 굳이 미국인에게 필요할까 의문을 갖는다. 안 그래도 미국의 아이들은 늘 그런 말을 듣고 자라며, 대부분은 스스로도 그런 줄 안다. 이미 그렇게 아는 아이들에게 "넌 특별해"라고 말하는 것은, "넌 예외적이야"라는 말로 들려질 수 있지 않을까?
대부흥에 관한 이야기도 짚고 넘어가자. 흔히 '1차 대각성 운동' 혹은 '대부흥'이라 불리우는 식민지 시대 부흥 운동은 미국에 일어난 매우 중요하고 특별한 종교 현상으로서, 미국의 독립과 건국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실제로, 뉴잉글랜드를 중심으로 일어난 부흥 운동은 조나단 에드워즈라는 위대한 신학자와 조지 휫필드라는 탁월한 설교자를 배출하면서, 미국의 종교와 정치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과연 이 부흥 운동을 종교 현상이 전국가적인 파장을 일으킬 때를 묘사하는 "대부흥 (Great Awakening)"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에서는 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린다. 미국 전역에 종교 정치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실제적인 영향을 끼친 19세기 부흥 운동 (소위 "2차 대각성 운동")에 비해, 식민지 시대 부흥 운동은 지역적으로 영향 범위가 넓지 않았고, 그 영향력이 오래 가지 못했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대부흥 이후 독립전쟁까지 식민지 미국의 기독교는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조나단 에드워즈를 중심으로 한 식민지 시대 부흥 운동이 지금처럼 '대부흥'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19세기에 일어난 대규모 부흥 운동 때부터였다. 특히 동북부에서 부흥 운동을 주도한 찰스 피니와 그 동료들은 조나단 에드워즈와 휫필드가 주도한 '대각성 운동'에서 자신들의 부흥 운동의 신학적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물론, 오늘날에 주로 개혁 전통에 있는 이들은 찰스 피니와 그의 부흥 운동을 비판하기 위해서 조나단 에드워즈의 부흥을 사용하고 있지만 말이다). 식민지 시대 대부흥이 후대 사람들의 '발명품' 혹은 '허구(invention)'라고 말하는 역사가들의 의견에 다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미국의 건국 신화와 더불어 과대 포장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 그랬던 것처럼,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도 '국기에 대한 맹세(Pledge of Allegiance)'를 배운다. 여기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문구가 있다. 미합중국에 대해서 "하나님 (보호) 아래서 한 국가(One nation under God)"라고 표현하는 부분이다. 이 문구를 보며 미국을 기독교 국가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본래 이 문구는 1892년 처음 만들어질 때 없었고, 1954년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 삽입된 것이다. 당시 매카시 열풍이 불면서, 무신론적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싸우는 미국을 신적 보호 하에 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묘사하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다. 1954년 이후로 지금까지 이 문구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포함하는 수정헌법 제 1조를 어긴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논란이 되어오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 국가로서의 미국'이 종교적 혹은 정치적 이유로 후대에 만들어진 아이디어 혹은 하나의 신화 일뿐임을 보여주는 수많은 예들 중 하나이다.
거짓 신화를 깨자
혹자는 미국이 기독교 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물을 지도 모르겠다.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의 역사 속에서 나타난 수많은 비기독교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들마저 '기독교 국가 미국'의 신화 뒤로 밀려나거나 미화된다는 점이다. 자유와 평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던 미국인들은 흑인 노예들에게 대한 억압과 차별을 자행했으며, 특히 식민지 시대에서는 노예들이 자유와 평등을 외칠까 두려워 기독교 신앙을 전달하는 것조차 꺼려했다. 원주민들에게 저지른 악행은 또 어떠한가. 자신들의 땅과 전통을 다 빼앗기고, 지금까지도 술과 도박에 찌들어 희망 없이 살아가고 있는 북미 원주민들에게 '기독교 국가' 미국이 한 일은 무엇인가?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약소국가에 대한 억압과 전쟁도 서슴지 않은 미국은 과연 기독교 국가인가?
미국이 기독교 국가라고 믿는 것은, 교회와 기독교 선교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도 수많은 나라에서 기독교인이 되기를 거절하는 이유는 기독교가 미국의 종교라는 인식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미국이 기독교 신앙으로 세워졌기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지금의 강대국이 되었다는 메시지가 각 교회에서 전해질 때마다, 기독교 복음은 그 본질을 잃고 표류하기 시작했다. 예외적인 한 사람에게 은총이 주어진다는 베데스다연못의 거짓 신화가 수많은 병자들의 마음을 동요시킨 것처럼, 미국이 기독교 국가라는 거짓 신화는 그와 같은 예외적 국가를 꿈꾸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동요시켰다. 기독 정당을 만들고, 시장의 이름으로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고, 기독교인 대통령을 세워서 교회와 정치와의 합일을 꿈꿨다. 그러나 2000년 기독교 역사가 보여 주듯이, 종교와 정치가 합해지면 정치적 타락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타락도 나타난다. 정치에 기생하는 교회의 영적 타락은 자명한 일이다. 그것이, 미국을 신앙적 국가적 표본으로 삼았던 한국교회가 처한 오늘의 현실이다.
손태환 / 미국 뉴저지 세빛교회, 드류대학교대학원에서 미국 종교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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