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임
은혜의 단비 2013. 6. 6. 00:41망 설 임
2월의 어느 날 오후에 우리 부부는 칠전마을에 전도를 하러 갔다. 칠전마을을 순 토박이말로 옻밭골이라고 한다. 그 마을이름의 발음이 너무 어려워서 처음에 쉬 알아듣는 사람이 드물다. 시골사람들이야 그러려니 하고 정확한 뜻을 모르고도 잘사는데 도시에서 이사 온 지식인인 어느 성도는 그 동네 이름의 뜻이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어느 날 봉고차를 타고 그 동네를 지나면서 말했다.
“오빠꿀이 무슨 뜻입니까? 꿀이 많이 난다는 뜻입니까? 옛날에 어느 오빠와 여동생 사이에 관련된 무슨 이야기가 있습니까? 강원도의 달래강처럼요.”
설명 잘하는 내가 말했다. “아~, 오빠꿀이 아니고요, 정확히 말하자면 한자로 칠이라는 뜻의 옻, 터라는 뜻의 밭, 고을이 줄어서 골이 된 것들이 합쳐진 것인데 모음의 발음법칙에 의해 골이 굴로 발음되어 그런 거예요. 정확히 옻밭골이죠. 그리하여 한자어로 칠전마을인 거죠. 그래서 행정구역상으로 이 마을을 칠전마을이라 한답니다. 마을이 커서 둘로 나누어 큰 동네를 대칠, 작은 동네를 소칠이라고 하지요.”그제서야 그 집사님은 껄껄껄 웃으면서 “오빠꿀, 옻밭골”이라고 되뇌었다.
그 마을은 대칠, 소칠이라고 나뉘어 이장님도 두 분이 계시지만 외부 사람들의 눈에는 사실은 경계가 모호하여 한동네로 보인다. 우리는 그 동네를 갈 때마다 구분 없이 동네를 빙 돌며 전도를 한다. 마을회관도 하나 있다. 누군가는 그 마을이 전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요 가장 살고 싶은 마을이라고 했다.
그 동네에는 우리가 부임하던 즈음에는 성도의 가정이 한 가정이었다. 그 동네에 남묘호렌게쿄를 외우는 종교에 심취한 할머니가 있어서 마을의 많은 할머니들에게 포교를 하여 기독교가 힘을 잃고 있었던 탓이다. 시골의 할머니들은 자식들이 잘되는 것이 최고의 삶의 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종교는 그것을 간파하여 할머니들의 마음에 호소해서 남묘호렌게쿄라고 수없이 외우면 자식들이 잘된다고 하여 상당히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믿는 사람들이나 마을의 그 어느 누구도 남묘호렌게쿄가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실은 발음조차도 제대로 되지 않아 사람들은 남묘호랑개교라고 하다가 그것도 어려워 호랭이교라고 부른다. 그리하여 나는 인터넷에서 그 말의 뜻을 찾아보았다.
남묘호렌게쿄는 종교 이름이 아니고 그들이 외우는 주문이다. 여기서 남묘(南無)는 우리가 흔히 듣는 나무아미타불이라 할 때의 나무와 같은 말로 어디에 귀의한다는 불교용어이다. 호렌게쿄(妙法蓮華經)는 우리말로 묘법연화경으로, 일명 법화경이라고 많이 쓰인다. 법화경은 화엄경과 더불어 불교의 최고 경전으로 가장 넓은 지역과 많은 민족들에 의해서 애호되는 대승경전 중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한 마디로 법화경에 귀의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주문을 외우는 종교는 바로 일본에 본부를 둔 SGI(Soka Gakkai International/국제창가학회)이다. 국제창가학회는 1279년 일본의 니치렌 쇼슈[日蓮正宗]의 가르침을 따르는 신도들에 의하여 시작된 신흥불교의 한 파로서 1931년 다이세키사[大石寺:일련종의 총본산]에서 하계강습회를 갖는 등,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에 2대 회장 도다 조세이[戶田城聖]는 명칭을 창가학회로 개칭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하였다. 한국에는 8‧15 광복 후 일본에 살던 교포들의 귀국과 함께 전파되어 대구 출신 최규항(崔圭恒)이 일련정종 한국신도회(日蓮正宗韓國信徒會)라는 이름으로 포교를 시작하였다.
지금은 SGI 한국 불교회로부르고 있으며 약 100만 명 이상의 회원이 있다고 한다. 니치렌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공덕에 대해서 "한 번 ‘남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 라고 봉창하면 일체 중생의 심중의 불성을 오직 한마디로 불러 나타내는 공덕이 무량무변하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 문장의 뜻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본래 갖추어지는 부처의 생명을 불러서 나타내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종교는 불교의 한 종파이다. 그러나 칠전마을의 어느 누구도 그것이 불교의 한 종파인 줄을 알고 믿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나도 지금까지 일본에서 건너 온 사이비 종교인 줄 알았다. 연예인 중에서도 신도들이 여럿 있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열심히 외우면 세 가지 소원이 이루어지는데 자기는 벌써 두 가지 소원은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 마을의 어떤 할머니도 자기는 몸이 아주 안 좋았는데 날마다 그 주문을 외웠더니 몸이 많이 좋아졌다고 자랑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한 기복사상이 때로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거기에 영생은 없으며 죄문제를 해결할 방도 또한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얻을 방도가 없음을 재차 확신한다.
칠전마을에 전도를 나가면 맨 먼저 마을회관을 방문한다. 농한기의 시골에서는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지내므로 그들을 만나려면 마을회관으로 직행해야 한다. 자녀들도 어머니를 찾아 올 때면 마을회관에 가야 만날 수 있다. 자녀들이 올 때 빈손으로 오지 않고 과일이니 과자니 음료수 등을 사오니 마을회관에는 간식이 풍성하다.
그날도 우리는 마을회관에 갔다. 6명의 할머니들이 있었다. 그 중 두 명은 남묘호렌게쿄 신도이고, 한 명은 우리 교회 집사님이고, 한 명은 불가지론자, 즉 절대로 아무 것도 믿지 않겠다고 못을 박는 할머니이고, 다른 두 명의 할머니들은 조금 마음이 부드러워 목사님이 전해주는 복음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 할머니들이었다.
목사님은 전도지를 가지고 복음을 설명했다. 오〇〇 할머니는 5년 전부터 목사님과 인연을 맺은 분이다. 5년 전에 그 마을에 가가호호 방문전도를 나갔을 때 어느 집에서 그 할머니를 처음 만났다. 그 할머니는 마침 일 년 전에 돌아가신 남편이 예수병원에서 마지막 가는 길에 간호사의 전도를 받고 돌아가시기 직전에 영접기도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천국에 갔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하여 할머니도 할아버지를 만나려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했더니 믿고는 싶지만 아직은 교회 나갈 때가 아니라면서 미뤘다. 그 후에도 수차례 방문하여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강권했다. 교회에 나올 듯 나올 듯 하면서 아직까지도 안 나오고 망설이고만 계신다.
그날도 복음을 제시할 때는 “다 맞는 말이지요”하면서도 “그럼 이번 주일부터 교회 나오세요”하고 권하니 “10년만 더 기다려 줘요”라고 한다. 주변에서 다른 할머니들이 “자네가 그때까지 살아있겠어?”라고 핀잔을 한다. 그리하여 목사님이 “제가 지금까지 5년 기다렸습니다. 이제 그만 망설이시고 이번 주일부터 나오세요. 한 번 나오기가 힘들지, 나오고 나면 내가 왜 망설였던고 하고 후회한답니다”라고 권했다. 그때 작년 이맘때 망설이다가 막내아들의 열성적인 강권으로 교회 다니기 시작하여 벌써 집사님이 되신 송 집사님이 말했다.
“나도 이제야 후회가 된다니께. 막내아들이 몇 년 전부터 교회 나가라고 할 때 다녔더라면 지금쯤은 찬송도 잘 부르고 성경도 잘 찾을 텐데, 너무 늦어서 찬송은 이제 겨우 찾겠는데 성경은 도무지 찾질 못하겠다니까. 자네도 그만 망설이고 빨리 나랑 같이 교회 다니자구. 어이, 〇〇떡(댁)! 주일날 나랑 같이 교회 가더라고잉.”
송 집사님은 작년 2월에 막내아들이 교회로 찾아와서 어머니를 부탁했다. 그날 바로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아들과 목사님이 신앙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것을 듣고 나서 그 자리에서 목사님이 강제로 손가락을 걸며 손가락도장을 찍으며 재미있게 약속을 했다. 순진하신 할머니는 그 약속을 어길 수 없어 다음 주일부터 교회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쑥스럽고 어색하여 구석 자리의 안 보이는 곳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말씀을 듣는 건지 안 듣는 건지 존재감 없이 몇 달을 다니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고개를 들고 눈을 반짝이며 말씀을 듣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는 것을 실감했다. 그분은 점점 더 믿음이 자랐다. 세례를 받을 때는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막내아들에게 연락을 했다.
막내아들며느리는 시골 할머니에게는 분에 넘치게 큰 꽃다발을 사 들고 교회를 찾아왔다. 그런데 할머니가 일주일 앞선 날짜를 알려주었던 모양이었다. 꽃다발을 들고 교회를 온 젊은 부부를 보고 나는 감을 잡았다. 내가 예배 전에 며느리에게 조용히 말했다.“집사님, 세례식은 다음 주일인데요. 어머니께서 광고를 잘못 들으셨나보네요.”“아~, 어쩌지? 포항에서 다음 주에 다시 오기도 힘들고…… 사모님, 수고스럽겠지만 다음 주에 우리 어머니 세례 받는 장면을 사진 찍어서 제 메일로 보내주세요.”
그리하여 처음으로 세례식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었다. 그리고 나서 2013년 첫 주일에는 연세도 들고 해서 집사님으로 임명하기로 했더니 그 아들 부부가 매우 좋아하며 전화를 했다.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집사님이 되시다니…… 꿈만 같아요. 너무 고맙습니다, 목사님, 사모님.”
송 집사님도 수년 전부터 막내아들부부가 어머니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면서 전화로 혹은 집에 올 때마다 강권했다고 한다. 확인할 때마다 “곧 나가마”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불교를 믿고 유교식으로 제사를 지내며 살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이 너무 겁도 나고 쑥스러워서 망설이고 망설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번 나가보니 괜히 겁냈구나, 싶고 일 년이 지난 지금은 일찍 나오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는 얘기를 하게 된 것이다.
목사님은 마을회관을 나오면서 오 할머니에게 다시 부탁을 했다.
“빨리 나오세요, 너무 늦기 전에요.”
“목사님, 염려 마시랑게요. 내가 그럼, 5년 넘지 않아서 나가도록 할게요.”
“5년 기다리는 것은 너무 길어요. 할머니 연세가 올해 84세인데 5년까지 살아계실지 장담하세요?”
“장담 못하지. 늙은이가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어찌 알겠누?”
“그것 보세요. 그러니 돌아가시기 전에 예수 믿어야지 예수 안 믿고 돌아가시면 지옥에 갑니다. 그럼 사랑하는 할아버지도 못 만나게 됩니다. 지옥은 성경에서 뜨거운 불못이라고 표현했어요. 그런 데서 영원히 살고 싶으세요?”
“하지만, 이 마음에서 우러나야 가는 거지. 아직은 안 우러나는 걸 어쩌누?”
안타까운 일이다. 믿음은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니 억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사람은 자유의지가 주어졌으니 자기의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예수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불러야 하는 것이다. 마음이 우러나지 않는다는데 어찌하랴. 우리는 기도하며 기다릴 뿐이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양애옥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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