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리 살 수만 있다면,

조경현



내 그리 살 수만 있다면,

그의 맘 속엔 언제나 빈자들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의 정이 있었다. 이유는 아마도 그의 어린 시절, 가난했던 시절에 기인한 탓 이었을까. 물론 그의 가정은 삼시 세끼를 다 먹었었다. 공부하는데도 어렵진 않았다. 다만 좀 늦게 납입해서 그렇지 공납금을 못내진 않았다. 그렇다고 누구로부터 돈을 빌리지도 않은 듯하다. 그때는 이 도성에 사는 이들이 몇몇의 배뿔뚜기 사장님네를 제외하곤 공평하게도 어렵게 살던 때였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빈자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속에 본래적인 컴패션의 피가 흐르고 있진 않았나 싶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남다르게 빈자들을 위해 큰 자선을 하진 못했다.

우리주위엔 언제나 빈자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이 나라는 그래도 나름 선진국에 진입하고 있다고 하지만, 주변 여러나라에서는, 그리고 저 먼 아프리카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서는 여전히 하루 세 끼니를 챙기지 못해 기근으로 굶주려 빈사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뉴스를 접하기도 한다. 그런 뉴스를 대할 때마다 나의 사치스런 생각과 밥상이 밉고, 또한 자학하게끔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들을 위해 그가 뭔가 크게 기부를 하지도 못하니 그 자신이 더욱 밉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그런 곳에서 자기를 내 던지며 컴패션을 실천하는 이들을 무척이나 존경하고, 그 자신의 초라함을 보게 되기도 한다. 또한, 그의 주변에 그분의 사랑을 전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지만, 어쩌랴. 저들의 몫이 다 다른데, 그렇게 생각하면 그의 정신건강에 문제가 되니 속에서 끓어 오르는 분을 참느라고 시나부랭이를 쓰며 가슴을 다독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는 오늘도 바로 그런 동기의 사진 몇 장을 보면서 또 자신을 학대하였고, 또한 잎만 무성한 당신의 사람들만을 나무랬으니, 그는 오늘도 죄악가운데 빠진 것이다.

바로 이순간, 그의 바람이 있다면 이땅의 모든 사람들이 공평한 삶을 살아가길 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19세기 막시즘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고, 과거의 원시공동체로 회귀하자는 것은 더욱 더 아니다. 만일 그리하여야 한다면 지금의 조직과 공동체를 해체시키지 않으면 안되며, 피의 혁명이 다시 일어나야 하기 때문임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니까. 그는 단지, 아주 소박한 맘이겠지만 가진 자는 자기 것을 좀 남과 나누자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오늘날, 이 사회는 부유하다보니 가진자는 더 가지려고 안달 복달이며, 없는 자는 어떻게 해서든지 가지고자 기본적인 인간성을 망각하며 삶의 욕심과 그로 인한 무너짐이 심하다. 이러한 때에 누가 나설 것인가, 이런 삶의 무질서를 위해 어떤 단체가 기여할 것인가. 답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당신의 사람들이 아니면 누가 그 역할을 감당할 것인가. 당신의 지체가 아니면 어떤 자선단체가 나설 것인가. 자, 이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희망찬 노래만 부르지 말고, 희생의 실천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 시대에 우리가 같은 하늘 아래서 살고 있음을,

14 2 2(주일) 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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