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Liberalism)

 

1. 칸트와 헤겔

 

18세기는 칸트(I. Kant)를 중심으로 한 계몽주의의 시대였다. 칸트는 흄의 회의론적인 지식론을 바탕으로 플라톤이 이데아와 감각의 세계를 구분한 것처럼 세계를 현상계와 예지계(혹은 본체계. 오성으로 인식되는 체계)로 구분하고, 이성의 한계에서 종교의 가능성을 논함으로서 초자연의 세계를 부정하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종교의 초자연적이며 영적인 주제들을 도덕의 영역으로 격하시킴으로서 자유주의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한편, 자유주의(Liberalism)란 18세기의 이성과 자유를 강조한 계몽주의와 이후 프랑스혁명으로 대표되는 정신적 자극에 의해 출현했다. 이로 인해 인간의 자율성이 강조되면서 인간은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는 의식이 팽배해졌다.

 

헤겔(Hegel)은 대표적인 관념론자이다. 슐라이어마허가 감정을 강조했다면 헤겔은 이성의 관념을 확대하여 정신의 모든 측면과 이성을 동일시하는 사상을 전개했다. 두 사람은 개인적으로는 같은 대학을 다니면서도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신학적으로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에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헤겔의 철학적 동기가 슐라이어마허와 같이 원래는 기독교신앙을 사람들이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의 철학은 가장 포괄적인 체계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문제의식은 절대적 진리의 주장들이 어떻게 역사와 관계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그는 생각하기를 역사 전체를 하나의 합리적인 체계로 나타내 보여줄 수 있는 시각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절대적 진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여기서 그의 변증법이 출현했다. 즉, “상대의 세계는 자기에 대해 존재하는 세계이며, 모순을 지닌 채 운동과 생성하는 세계이다. 그런데 생성은 이 자기 모순을 지양하고 보다 높은 단계에 이르러 자기 안전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운동은 무한한 진행은 아니고 일체의 상대적 관계가 경과함에 따라 절대정신이 개현된다고 본다. 절대자는 정적 실체자일 수 없고 일체의 상대를 그 안에 포괄하고 있는 살아 있는 주체이다. 이 운동은 이성과 실체에 통하고 그 이성의 법은 변증법이다”라고 하였다. 헤겔의 이 변증법을 성경과 기독교의 본질연구에 적용한 대표적인 신학자로 스트라우스와 바우어가 있다. 그들은 역사적 예수와 이상적 예수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풀어보고자 노력했다.

 

2. 슐라이어마허와 자유주의 신학

 

칸트의 영향을 받아 자유주의가 발현했고, 자유주의는 개인주의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세상의 풍조들은 신학자들에게도 많은 도전을 주었다. 그런데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종교를 멸시하는 풍조가 일어났다. 사람들은 더 이상 기독교가 말하는 진리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풍조에 휩쓸렸다.

 

이 때 슐라이어마허는 이런 풍조 앞에 종교의 본질을 논함으로서 도전받는 기독교를 방어하고자 했다. 그는 종교는 형이상학도 아니고 도덕도 아니며 또 그것들에 종속되지도 않은 종교라는 독특한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시도는 당시로서는 매우 독창적이고 신선한 것이었다. 그는 종교에 대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철학을 가지고 세상의 그릇된 사조에 반기를 든 것은 높이 평가받을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잘못된 신학과 사상은 훗날 자유주의신학을 태동시킴으로서 그는 자유주의신학의 아버지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그는 종교를 우선 직관과 감정의 영역으로 설명하면서 새로운 자유주의신학의 체계를 완성시켰다. 그는 전통적인 신학의 방법을 버리고, 경건주의와 계몽주의, 그리고 낭만주의에 심히 고무되어 인간의 이성, 직관, 감정, 기타 체험을 이용하여 성경과 신학을 자유롭게, 역사비평에 근거하여 재해석하는 신학을 출현시켰다. 이후 대부분의 유럽의 신학자들은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심지어 현대신학의 아버지라 불리우며 슐라이어마허를 혹독하게 비판했던 칼 바르트마저 슐라이어마허의 영향을 벗어난 자는 아무도 없다고 할 만큼 그의 영향력은 강력한 것이었다.

 

한편, 칸트의 영향으로 자유주의신학자들은 인간의 윤리를 강조하게 되었다. 리츨과 그의 학파들이 대표적으로 이런 경향을 가졌다. 슐라이어마허가 감정을 신학의 주제로 삼고, 헤겔이 정신에 역점을 두었다면 리츨은 윤리에 신학의 중심을 두었다. 그는 예수를 인간이 따를 위대한 윤리의 모범자로 보았으며,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예수와 함께 발전하고 성숙되어진 도덕적인 나라라고 했다. 그는 죄에 대해서도 말하기를 죄는 무지의 결과로서 도덕적 양육과 교육에 의해 교정될 수 있다고 하였다. 결국 리츨과 그의 추종자들은 칸트에서 나타나는 현세적이며 세속적인 왕국의 영역으로 종교의 수준을 끌어들인 결과를 낳으며 자유주의 신학의 종점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확실히 보여주는 결과를 낳았다.

 

3. 자유주의 신학의 특징

 

첫째,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에 대한 재해석의 작업으로 출범했다. 자유주의 신학은 신학자와 철학자들의 개인적 사상과 진술에 따라 기독교를 다시 해석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재해석의 작업은 기독교라는 범주를 넘어선 특정한 시대적 산물이 되었을 뿐이다.

 

둘째, 신학의 기초와 방법을 성경에 두지 않고 인간의 이성이나 감정, 경험에 두고 있다. 경건주의가 강조한 개인주의적 성경연구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신학 방법을 벗어버리고 인간의 자율성을 활용하여 성경과 기독교의 근본 교리를 이성, 감정, 그리고 경험을 가지고 자유롭게 재해석하는 작업이다. 즉, 신학을 하나님 중심에서 보지 않고 인간의 경험에서 시작하는 신학의 방법으로 주장하게 되었다. 따라서 인간이 신학의 주체이고 인간의 이성적 노력으로 신학의 요구들을 성취할 수 있다는 인본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은 어거스틴

의 하나님의 은총론에 맞서 인간의 선택의 힘을 강조했던 펠라기우스의 견해와 비슷하다.

 

셋째, 내재적인 신학이다. 유한자와 무한자의 관계성을 파괴시킴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초월성을 강조하지 않고 내재적인 신학으로 빠져 들었다. 슐라이어마허는 초월적인 하나님을 느낌으로 이해했다. 그는 종교를 한 인간이 자기의 한계를 넘어 무한자(the infinite)와 교제하는 것으로 말한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이성의 한계를 넘지 않고 윤리만을 강조하는 칸트보다는 더 종교적이지만 그의 내재주의는 초월주의, 즉 하나님과 인간의 질적 차이(키에르케고르도 헤겔의 관념주의를 비판할 때 이것을 강조했다)를 강조한 칼 바르트에 의해 철저하게 공격을 받았다. 실상 자유주의신학은 칼 바르트에 의해 붕괴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언급이 아니다.

 

넷째, 낙관주의 신학이다. 계몽주의는 인간의 자율성과 인간의 능력을 믿고 다분히 인간이 모든 역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즉, 인간은 충분히 선을 가지고 있기에 영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와 세상을 복된 낙원으로 만들 수 있다는 낙관주의를 생산했다. 그러나 이러한 안일한 생각들은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여지없이 무너졌으며 이후 칼 바르트의 '위기의 신학'이 대세로 자리 잡는다.

 

다섯째, 윤리의 실천을 강조하는 신학이다. 자유주의신학은 성경의 초자연적인 주제들을 버렸다. 그들의 목표는 도덕적인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었다. 따라서 모든 영적인 주제들과 내세적인 소망들을 폐기시키고 오직 인간 이성의 한계 안에서 종교를 윤리적 실천의 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러한 영향으로 라우센부쉬가 주도한 사회복음주의운동이 태동하였고, 최근에는 해방신학, 민중신학, 여성신학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끝으로,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는 신학이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역사적 예수의 연구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것은 성경에 나타난 역사적 예수를 신앙의 차원에서 논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주의적 역사비평학적 입장(종교사학파의 입장)에서 예수를 연구하여 하나의 종교적 모델로서 제시하는 한편, 그런 차원에서 예수의 인간성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연구 등으로 예수의 신성은 사라지고 예수는 그저 타종교의 지도자와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다. 예수가 타종교의 지도자가 되는 순간, 기독교는 참 진리를 가진 구원의 종교가 아니라 여러 종교들 중의 하나로 전락했다. 그러자 등장한 것이 바로 종교다원주의자들이다. 대표적으로 존 힉(John Hick) 같은 자는 성육신 사건을 상대화시킴과 함께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는 각자의 진리적 체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각 종교 간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선 기독교가 주장하는 오직 예수만이 구원이라는 절대적이며 독선적인 주장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의 영향을 받아 WCC, KNCC 등이 중심이 되어 시도하고 있는 운동이 최근의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그 본질은 종교다원주의와 혼합주의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4. 자유주의 신학의 세 가지 흐름

 

첫째 흐름은 슐라이어마허로 대변하는 감정의 신학이다. 네안더, 니이체, 슈바이처, 트베스텐 등이 이에 속한다.

 

두 번째 그룹은 헤겔학파의 신학이다. 칸트 이후 서양철학을 주도한 헤겔철학에 기반을 두고 역사 비평적인 신학을 추구했다. 헤겔은 역사는 변증법적으로 진보적 과정을 통해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스트라우스, 바우르, 비더만(1819-1885)과 구약성서연구에 역사 비평적 방법을 동원한 벨하우젠(Wellhausen,1844-1918) 등이 이에 속한다.

 

세 번째 그룹으로 칸트 철학에 기반을 둔 리츨학파의 신학과 트뢸취의 종교사학파의 신학이다. 슐라이어마허의 탁월한 해석자요 자유주의 개신교의 왕자로 불리우는 리츨(A. Ritschl, 1822-1889)은 칸트의 추종자로 그의 비판철학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현상계와 본체계와의 구분, 하나님에 대한 이론적 지식의 한계성, 도덕과 종교의 일치에 대한 칸트의 입장을 받아들였다. 그는 종교를 본질적으로 실천적이고 도덕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그는 또 경험에 호소한 슐라이어마허로부터 영향을 받아 형이상학적인 신학방법을 거부했다. 이후 헤르만, 하르낙(1852-1930), 카텐부쉬, 숄츠 등이 리츨학파를 이루었다. 한편 19세기 말엽 독일에서 발현한 학파가 종교사학파이다. 이 학파는 모든 종교를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이해하려 했으며 기독교의 발전 과정을 역사적, 지리적 환경에 비추어 보려 했다. 이러한 관점으로 인해 그들은 성경의 초자연적인 요소가 모두 고대 근동지방의 신비종교로부터 들어온 것으로 보고 모두 제거해 버렸다. 궁켈(H. Gunkel, 1862-1932), 부세트(W. Bousset), 바이스(Johanes Weiss, 1863-1918) 등이 이에 속하고 대표적인 인물이 트뢸취(E. Troeltsch, 1865-1923)이다.

 

5. 기타 자유주의(Liberalism) 신학의 발전과 양태

 

1) 리츨학파 - 리츨, 하르낙, 헤르만, 카덴부쉬, 루푸스, 트륄치

2) 후 불트만 학파 - 불트만, 콘젤만, 반 두센, 하롤드 등

3) 급진파 - 본회퍼 등

4) 세속화 신학 - 반 부렌, 하비 콕스 등

5) 신정통주의 - 칼 바르트, 에밀 브룬너, 도드, 니버, 폴 틸리히

6) 독립파 - 몰트만

7) 구속사학파 - 오스카 쿨만, 슈바이처, 알란 리차드슨, 헌터 등

8) 신 자유주의 - 부로우스, 필슨, 조지 라이트, 브라텐, 앤드슨

9) 한국 - 송창근, 김재준, 정경옥, 김경재, 길희성 등

 

6. 비평

 

첫째, 자유주의신학은 신학의 출발점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두지 않고 인간의 주관적인 경험에 주었다. 계시종교를 윤리와 도덕의 종교로 전락시켰다. 말씀중심의 기독교를 인간 중심의 합리적인 종교로 바꿔치기했다. 이런 점에서 자유주의신학은 주관주의적 신학이다. 종교개혁자들의 오직 성경(Sola Scripture) 중심의 신학방법을 따르지 않고 주관주의적이며 신비주의적, 감정적, 경험적인 새로운 방식을 사용함으로서 결과적으로 정통적인 신학의 체계를 허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것은 교회공동체를 약화시키는 주범이 되었다. 자유주의신학으로 인해 초대교회부터 종교개혁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지켜지고 계보를 이어왔던 기독교 신학의 공동체가 약화되고 말았다. 신정통주의자인 폴 틸리히는 “유럽의 개신교는 자유주의로 인해 죽었다”고 까지 진단했다. 이것은 하나의 잘못된 사상이 얼마나 악한 영향을 끼치는 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산 교훈이 된다. 한편 한 개인의 신학의 방법과 내용은 성경과 기존의 건전한 신학적인 전통에 의해 검증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어떤 신학이 새로운 독창성과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고 긍정적인 부분이지만 어떤 방식으로 신학을 형성하였는지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신학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말씀을 벗어나면 그것은 참다운 신학이 될 수 없고 그런 신학을 쫓는 자는 사망과 곤경에 처해질 뿐이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시 107:10-11)

 

둘째, 자유주의신학은 성경 본문을 과학적이고 학문적인 방법으로 상황에 맞게 재해석하면서 정통교리를 무시하고 말살했다. 그들은 주관적인 경험을 하지 못하고 단지 지식만 있는 신앙을 무차별 공격했다. 이 영향으로 신학을 경시하는 풍조가 나타났고 교리무용론이 득세했다. 그들은 기존 교회가 교리에 붙들려 죽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통이 화석화되었다고 선언했다. 그들은 지식이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방식으로 취득하는 지식이 문제이며, 교리가 문제가 아니라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만든 비성경적인 교리가 문제임을 간과했다. 그들은 성경을 절대적인 최종 권위로 두지 않는다. 성경은 단지 좋은 신앙생활을 하기 위한 좋은 교과서요 윤리적인 지침이요 참고서이다. 그리스도는 구속주가 아니라 훌륭한 윤리교사이다. 최고의 신의식을 지닌 인간일 뿐이다. 그들은 성경에 있는 비과학적인 이야기들은 실제로 믿지 않는다. 단지 신앙을 위한 좋은 참고자료라고 여긴다. 성육신과 동정녀탄생, 부활 승천 따위는 실제역사가 아니라 믿음의 역사적 사건이라 치부한다. 그러나 주님은 이 성경에 일점일획이라도 더하거나 빼지 말라고 경고했다. 성경은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9)

 

셋째, 자유주의신학은 하나님의 공의를 삭제하고 사랑의 하나님만 강조했다. 진노의 하나님을 삭제하고 미소 짓는 하나님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그들은 우레 소리와 함께 심판을 단행하시는 하나님을 이야기하면 질겁한다. 하나님은 매우 인자하시고 나와 늘 즐겨 대화하시며, 나의 짓궂은 장난과 개구쟁이 같은 행동에도 머리를 긁적이며 다 받아주시며 나와 농담도 자주 하시며 내가 언제든지 달려가면 만나주시고, 나의 고충을 이야기하고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고 하면 들어주시는 친근하고 재미있는 분으로 각색했다. 여기에 하나님의 내재성 즉,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강조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므로 나는 언제든지 하나님과 대화한다는 것이다. 내재주의로 인해 묵상기도, 관상기도 등이 나타났고 영성훈련을 한다고 법석을 떨게 되었다. 자유주의신학으로 인해 악을 미워하시고 무섭게 진노하시며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사라졌다.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만든 자기 백성을 지옥에 보낼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여기서 지옥이 부정되고 영혼멸절설이 나타났다. 자유주의교회에서 더 이상 회개를 요청하는 설교는 사라졌다. 그들은 신자가 잘못을 해도 권징하지 않는다. 용서가 최고의 미덕이 되었다. 그러나 공의 없는 사랑, 사랑 없는 공의는 절름발이일 뿐이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기에 악을 미워하고 우상숭배를 엄하게 금하시고 다른 신에 대해 질투하시고 백성들의 죄악을 친히 징계하시고 채찍질하신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에게 징계의 채찍질을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징계하지 않는 자마다 사생아에 불과하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장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 12:6, 8, 벧전 5:9, 계 3:19)

 

넷째, 자유주의신학은 낙관적인 인간론을 펼침으로 기복신앙을 낳았다. 그들은 예수만 잘 믿으면 부자 되고 성공한다는 말을 계속 강조하고 반복했다. 낙관론은 아담으로부터 형성된 원죄를 부정하면서 나타난 사상이다. 그들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선한 존재이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지 않고 얼마든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고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을 이룰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진 적극적인 존재이다. 인간의 행, 불행은 인간의 책임이지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예정에 달려 있지 않다고 했다. 칼빈이 주창한 예정론 교리는 그런 의미가 아님에도 그들은 예정론을 한 번 정해진 운명론으로 몰고 갔다. 잘못된 예정론으로 인해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의지로 개척하고 극복하지 않고 주어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불행을 형해 달린다고 했다. 하나님은 절대로 인간을 불행으로 이끄는 분이 아니라 인간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고 말했다. 그들은 주님께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는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물론 자유주의 신학은 현실의 상황을 직시하고 문제의식을 갖는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왜 그들이 특수한 시대의 철학과 새로운 사상을 가지고 새로운 신학의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문제의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유주의신학에 대해 우리가 이러한 자세를 가질 때 그들의 실수를 통해 올바른 신학, 정통적인 개혁주의 신학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자유주의 신학은 우리가 신학을 성경적이며 개혁주의적인 방법으로 다루지 않을 때 얼마나 위험해 질 수 있는 가를 보여준 단적인 실례라고 하겠다. 여기서 말하는 전통이란 로마 카톨릭교회가 만든 인위적이고 비성경적인 전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했던 역사적 교회들의 전통과 신조들, 그리고 개혁적 신학사상을 말한다. 개혁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인문주의자들의 역사적 문법적 해석방법들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들은 인문주의의 수준에 머물지 않고 그러한 방법들을 성경과 연결하여 차원 높은 신앙적 원리로 승화시켰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은 처음부터 성경의 권위를 버리고 인문주의적 방법을 고수했기 때문에 그들의 사상은 철학의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다시 말해 그들은 지나치게 현실과의 조화에 치중하다보니 기독교의 근본진리를 부정하고 세상의 논리와 타협을 하는 결과를 낳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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