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에 노트북 들어다 보고 설교하는 목사
자료실 2014. 4. 7. 00:32강단에 노트북 들어다 보고 설교하는 목사
광야의 소리 ㆍ
강단에 노트북 들어다 보고 설교하는 목사들!!!|
몇년 전에 저희 모친 상을 당하여 모친이 살아 생전 일평생 다니시든 본 교회 50대 후반의 담임목사가 저희 모친 장례식을 맡아 인도하는데 내가 맏 상주가 되어 그 장례식을 지켜보니, 그야말로 가관도 그런 가관이 없다.
모친 상을 당하여 유족들은 슬픔에 잠겨 있는데 그 장례식을 집례하는 목사는 소위 입관예배, 발인예배, 하관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 장례식 다 마칠 때까지 그 넘의 손바닥보다 좀 더 큰 노트 북을 들어다 보고 모든 장례예식
을 다 마치는데, 나도 명색이 목사로 저의 모친이 다니시던 교회 담임목사가 인생 일대 가장 경건하고 엄숙해야 할 장례예식에 솜털보다 더 가볍고 경박스럽게 그 따위 노트북 들어다 보고 성의없이 장례식을 치루는 것을 보고 적잖이 불쾌하고 마음에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속으로 그 목사 참 싸가지 없네,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자기 교회 교인 장례식을 맡아 진행하는 담임목사가 그 장례예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무슨 계산기 두드리듯이 노트북 들어다 보고 어디서 클릭해 주셔온 설교를 하는지 모르지만,연신 노트북 들어다 보고 두드리며 성의없이 건성으로 사무적식 장례예식을 진행하는 것은 고인에 대한 예의도 아닐뿐만 아니라 유족들에게도 하나의 모독이고 치욕에 가까운 일일게다.
교회 담임목사가 한 영혼이 마지막가는 가장 엄숙하고 경건한 예식을 그렇게 쉽게 싸구려 땜질식을 하듯 하는 것을 보니,참 요즈음 목사들 너무 쉽게 목회하는구나!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천국가신 저희 모친에 대한 장례예식에 보여 준 그 목사의 예의 없고 싸가지 없는 행동에 그 때 일을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 한켠에 드리우진 그 목사에 대한 부정적인 그림자는 지울 수가 없다.
저희 모친 장례식을 다 마치고 난 후 나는 내가 담임하는 교회로 돌아와서 그 뒤 목사들이 강단에서 설교하는 것을 t.v나 인터넷을 통해 유심히 보게 되었다.
그 전에는 강단에서 설교하시는 목사님들을 여사로 보았는데, 저희 모친 장례식에 그 목사가 노트북을 들어다 보고 설교하는 것을 보고 마음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뒤로 요즈음 목사님들이 강단에서 조차 노트북을 들어다 보고 설교하는지, 아니면 손수 정성껏 준비한 원고를 들어다 보고 설교하는지 유심히 살펴 보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그걸 지켜 보면서 더 놀라고 까무라치게 경천동지한 일은 오늘날 대형교회로 부터 적은 개척교회 목사들 까지 예배시간 많은 목사님들이 노트북을 갖다 놓고 그걸 들어다 보고 설교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그걸 보고 세상에 우째 이런 일이! 정말 너무 충격적이고 맨붕 상태였다.
대학교수는 학교선생은 자기가 연구한 것을 노트북에 준비해 저장해 놓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 강의해도 그건 무방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저는 여기서 단언하건대 목사는 절대 강단에서 노트북 들어다 보고 설교하면 안된다.
지금 우리가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첨단 디지텔 전자 문명속에 편리한 삶을 살아 간다고 해도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 강단에서 구원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가 교인들이 볼때에 얘들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 들어다 보고 자판 두드리며 장난하며 게임하듯, 불경스럽고 경박하고 천박스럽게 강단에 노트북 올려 놓고 그것 들었다 보고
두드리며 설교하는 목사는 정말 아니다 싶다.
사실 그런 식으로 설교 할려고 하면 노트북엔 인터넷 설교 사이트 같은데 들어가면 손가락으로 몇번 안 두드리리고 클릭만 해도 수십만 수백만 설교가 주루루 쏟아져 나오는데, 목사가 가령 일주일 내내 놀다가 주일 낮 아침에도 그런 사이트에 들어가서 적당한 설교 하나 줏어 설교 한들 하나님이나 아실까, 교인들 누가 알겠는가?
또 그 주간 무슨 일로 바빠 설교준비 제대로 못한 목사는 그런 남의설교 줏어 가지고 자기것 마냥 설교하고자 하는 유혹을 떨쳐버릴 목사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우리나라 유명한 대하 장편 소설가들 중에 대부분 작가들이 컴퓨터앞에 앉아 자판 두드리면 원고 작성을 하지 않고 손수 자기 손으로 원고에다가 한글짜 한글짜 각고의 노력으로 소설을 쓴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힘들게 손수 자기 필력으로 원고지에 글을 쓸때 그기에 기상천외한 영감이 떠오르고 또그 글속에 작가의 혼이, 생명이 그 소설속에 묻어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작가는 아무리 힘들어도 자기 손으로 펜을 들고 한자 한자 마치 한폭의 천에 수를 놓듯 정성을 다해, 혼을 다해 원고지에 글을 쓰내려 간다고 한다.
그리곤 또 쓰다가 지우고 또 쓰고 그러면서 그 글 한자, 한자 속에 작가의 혼과 생명을 불어 넣는다고 한다.
영생이 없고 생명이 없는 일반 소설도 오늘날 이렇게 편리한 디지털 문명의 이기를 다 제쳐 놓고 마치 장인이 손으로 일구월심 지극정성을 다해 조각을 다듬어 명작이 되고 걸작 빚어 그렇게 작품을 만들어 간다면 오늘날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들은 얼마나 더 설교 말씀을 준비하는데 혼신을 다해 손수 그 말씀을 쓰고 적고 준비 하면서 마치 산모가 해산의 고통을 통해 새생명을 잉태시키듯 그런 각고의 노력과 심혈을 다 기울려 준비한 설교를 강단에서 전할 때 그 목사의 메세지에 성령님이 크게 역사하시고 그런 설교를 준비한 목사의 설교에 은혜받지 못하고 돌아갈 성도들이 없지 않겠는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순교자 주기철목사님은 그의 전기에서 그 분은 주일 설교 한편을 위해 일주일을 내내 기도하시고 골방에서 씨름하시며 설교준비를 하시고 그리고 주일 날 설교하시고 나면 온 몸에 기운이 진하여 드러누워 일어 날 기력 조차 없었다고 하셨다.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라는 말은 만
고 불변의 진리다.
그래서 우리 목사들은 강단에서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에스겔선지자가 본 환상중에 어느 골짜기에 마른 뼈닥기들 이 천을 이루고 만을 이루는데 그기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에스겔선지자로 통해 대언되어 질때에 그 바짝 마른 뼈닥기들이 살아 여호와의 큰 군대가 되듯 그런 목사의 각고의 힘든 말씀의 준비속에 이루어진 설교가 강단에서 선포될때 많은 성도들의 상하고 병들고 죽어가는 영혼들이 살아 일어나는 역사가 일어 날 줄 믿는다.
그래서 목사에게 제일 우선순위는 교회성장도 부흥도 아니고 철저한 설교 준비다. 그런 설교속에 내 마음과 내 정성과 믿음과 삶이 그 말씀속에 녹아 들어가게 되고 그리고 그런 준비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강단에 서서 전할때 비로소 그 말씀을 준비 할 때에 함께 하시며 도우시던 성령님이 그
말씀을 전하는 강단에서도 함께 하시고 임재하셔서 그 말씀을 통해 좌우에 날선 검보다 더 예리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그 날 그기에 참석한 모든 교우들에게 혼과 영과 골수를 찔러 쪼개고 그들은 그 말씀 앞에 민둥산보다 더 벌거벗은 자신들의 벌거벗고 수치스러운 죄악된 모습들을 발견하고
꼬구려지며, 그날 강단에서 쏟아지는 예배시간 말씀의 폭포수속에 늘 세상을 이길 새힘을 얻고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점점 주님의 뜻가운데 주님을 닮아 가는 거룩산 삶을 살아가게 될것이고 또한 장성한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자라가게 될것이다.
그렇니 목사님 들이여! 제발 강단에 노트북 갖다 놓고 그거 들어다 보고 손쉽게 가볍게 설교하지 말라!
그것은 하나님앞에 심히 불경스럽고, 그기 앉아 예배드리는 교인들을 욕되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우리 목사들의 치명적인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싸구려 극장, 쇼구경하는 것보다 더 수준 낮고 저질스럽게 만드는 일이다.
출처: USA아멘넷 독자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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