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은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마태복음 13장에 하늘나라에 대한 7가지 비유가 있는데, 어떤 이는 이 세상의 역사를 7세대로 나누어 설명했다. 이런 자는 세대주의자라 불린다. 마지막은 최후의 심판이지만 그 전에 성령의 시대, 즉 은혜의 시대가 온다는 전천년설을 주장하는 자도 있다. 전천년설은 핍박과 어려움에 직면한 자들이 갖는 종말론이다. 이단성 있는 이 사상은 초대교회부터 있었다. 대표적인 이단이 몬타누스파로서, 시한부 종말론자였다. 성령의 직통계시를 받는 자들을 중심으로 하늘나라의 지상 재림을 꿈꾸는 자들이었다.

중세시대에 이르면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종파인 영성파가 등장했다. 이들은 성령의 시대를 강조하여 극단적으로 치우친 신앙생활을 하다가 이단으로 정죄 받았다. 종교개혁시기에도 직통계시를 받는다고 억지 주장하는 급진파와 신비주의자들이 여러 곳에서 일어났다. 영성주의는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오순절운동, 은사운동, 현재에 이르는 음악과 더불어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는 운동으로 형태를 바꾸어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 성령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정통신앙은 어떠한가? <벨지카 신앙고백서>는 10항 ‘성자의 신성’에 이어, 11항 ‘성령의 신성’을 고백한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53~64문까지 성령 하나님에 대해 묻는데, 주로 성화와 관련을 맺고 있다. 특별히 성령의 신성에 대해서는 53문에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서> 11문은 성자와 성령이 성부와 ‘동일본질’임을 묻는다. 성자의 신성에 비해 보다 간략하게 다루는 이유는 성령이 성화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또 성령의 사역에 보다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칼빈은 <기독교강요> 1권 13장에서 간략하게 성령 하나님의 신성을 다룬다. 이후 3권 1장에서만 성령의 신성과 사역을 다루면서 “성령의 주된 사역이 믿음을 강화시키는 것”이라고 밝히고, 성령의 사역인 믿음과 관련된 내용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물론 주로 성화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성령의 신성을 고백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먼저,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데 있다. “성령에 관해 무엇을 믿느냐”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53문의 답변은 그분이 하나님이시라고 한다. 이 고백은 다르게 표현되기도 하는데, 성령이 성부와 성자로부터 영원토록 나오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 고백은 성령이 성부와 ‘동일본질’임을 의미한다(<벨지카 신앙고백서> 11항).

다음으로, 그분은 선택된 자에게 성자 하나님께서 성취하신 구속사역을 적용시키는 분이라는 데 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53문에서는 “그분의 모든 혜택의 참여자가 되고, 그분은 영원토록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다”고 답한다. 그렇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성령이시다.

성령 하나님에 관해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는 요한복음 14~16장에 이르러 자신과 성령 하나님과의 관계를 자세히 밝히셨다. 그리고 사도행전 1장에 약속한 성령의 강림과 아울러 교회에 나타난 성령의 사역을 성경에서 읽을 수 있다. 하나님이 영이시라는 고백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에 관한 가장 중요한 고백임을 밝힌 바 있다. 이 고백은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성령 하나님이심을 밝히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체험할 수 있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부리는 영이거나 환영과 같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성령이시다.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성령이 중생의 저자이시고 바람임을 밝히신다. 이 사역은 “바람이 임의로 불매”(요 3:8)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기뻐하시는 대로’라는 의미를 닮고 있다.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행하시는 이유는 그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인간의 어떤 조언이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우리 지각에 새겨진 말씀을 기억시켜 감동시키는 하나님이시다. 이것을 인간들이 흉내 내어 성령 하나님을 모독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가 노력하거나 환경을 맞추면 그분이 역사한다고 기만하는 거짓된 자들이 허다하다. 성령은 하나님이시기에 스스로 행하시고,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도구로 사용하여 사역하신다.

이런 의미에서 성령 훼방죄를 이해할 수 있다. 성령을 하나님으로 신뢰한다면, 그분의 사역을 임의로 우리가 주도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기록된 말씀을 통하거나 또는 일치하여 사역한다. 9가지 측면을 지닌 열매들이 없는데도 그분의 사역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는 신성모독에 해당된다. 성령의 사역이라 핑계 대면서 성취되지 않는 것은 인간의 사역이지 그분의 사역이 아니다. 이런 면에서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유기된 자나 비중생된 자가 악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끝으로, 칼빈은 <기독교강요> 1권 13장 14~15항에서 ‘성령의 신성’을 다루고 있는데 그분을 “중생의 저자”라고 칭하고, “하나님 안에 있는 휘포스타티체 또는 본체”라고 명한다. 우리는 그분이 거하는 성전이라고 말한다(고전 3:16, 6:19; 고후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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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진실| 원글보기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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