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과 아비후는 이상한 불로 분향하였다.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어떻게 이상한 불을 가져올 수 있는가? 암브로스는 욕망과 탐욕들이 낯선 불이라고 했다. 낯선 불보다 정열과 분노의 낯선 불을 가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여러분의 마음에 뜨거움과 분노가 치솟을 때는 언제든지 이 성경 말씀을 기억하여야 한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에 의하여 소멸되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불로 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낯선 불을 가지고 나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나올 때 격렬한 열정을 가지고 나오신 적이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열정적으로 기도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인하여 우리의 속이 뜨거워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격렬과 분노의 불로 나와서는 안되는 것이다.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라”(딤전2:8). 격렬한 상태에서 여러분의 마음이 뜨거워졌다면 기도의 방에 들어가기 전에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에 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나올 때에도 여러분의 마음이 격렬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면 마음을 차분하게 해야 한다.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1:21).

성찬에 참여할 때에도 악의에 찬 마음으로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이상한 불로 하나님께 나오는 것이 된다. 이것은 말씀을 선포하는 목사들에게 아주 주의해야 할 사항이다. 강단에 낯선 불을 가지고 등단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즉 설교자 자신의 열정을 가지고 나서지 말아야 한다. 저는 설교가 무엇인지 깊이 인식하게 된 이후로 이것에 대하여 깊은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의 진노를 계시하도록 세움을 받은 자들은 자신의 진노를 내색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것은 모든 설교자들에게 필요한 하나의 규범이다. 주님은 일꾼들을 파송하시되 당신의 진노를 죄인들에게 알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더 많이 나타내면 낼수록 설교자 자신들의 격노는 숨겨져야 한다. 그들의 설교는 더욱 잘 받아드려지게 될 것이다.

물론 육적인 인간들은 설교자가 하나님을 향한 참 열정을 말할 때 이 설교는 나를 겨냥하고 있다고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청중들은 이 점을 주의해야 한다. 저는 청중 여러분들이 그런 유혹에 빠진 일이 거의 없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저는 그런 일이 있음을 알고 있다.

하나님의 일꾼들의 임무는 오직 하나님의 성령의 불을 가지고 오는 것이라야 한다. 제단으로부터 나온 불이어야 한다. 설교자들의 입술은 그 제단에서 나온 숯불에 의하여 지져져야 한다. 설교자들은 자신들의 정열적인 불을 가지고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서는 안된다. 그렇다. 인간의 분노는 하나님의 의를 달성하지 못한다.

- 제레미야 버러스, ‘예배의 타겟을 복음에 맞추라’, pp 42-44


출처: 청교도아카데미/강대식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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