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짐보님의 방 2016. 11. 29. 23:09

24.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데살로니가 교회

신앙이 무엇인가
부르심을 받은 자의 삶의 생활로
믿는 자의 근본인 믿음이 가치관이 되어 인생관 과 세상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세계관이 되어 복음의 의가 생활의 기준이 되면
감사와 기쁨의 원천이 신앙인의 힘임을 성령님께서 알게 하시고 인도하시기에
이 땅에서 불의와 거짓과 탐욕을 멀리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인 하나님의 의를
행하기에 자연히 세상의 정신적인 문화인 정직과 공평 그리고 정의로운 사회와
국가가 세워지고 사회와 국민의 정신문화의 바탕이 되는 복음의 의가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위대한 전통이 이어갈 수 있고, 있었을 텐데
그 기지(基地)가 되는 교회와 공동체가 복음의 공동체라는 공동체(共同體)의식이
깃들기 전에 이미 의미를 잃은
이제는 공동체라 부르기에 턱없고 껍데기만 남아서 소리만 시끄러운
빈 수레처럼 알맹이가 없는 겉모양의 종교의식화 된 한국 교회와 이민 교회는  
거의가 성경의 공동체라 하기에 거리가 먼 공동체의 본질이 파산이 난지 오래
되었기에 이제 많은 교회들은 사라지며
세계 교회사에 유례없이 짧은 시간에 부흥하고 짧은 시간에 사회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었고 그리스도인으로 수치를 망각한 자들이 허세를 부리는
말 뿐이고 종교적인 의식만 남은 종교인들이 되어, 믿는 자들이 세대와 세대가 끊이어
사라지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진정한 신앙인은 남겨 놓겠으나
요란을 떨던 교회는 이미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향하였으니
한국교회의 죄로 인한 부패와 그 고리를 누가 끊겠는가.
후세에
교회사에서 한 장을 장식하다 사라지는 한국교회를 후세에 무어라 평가할까.
어떻게 이렇게 무너질 수 가 있나.
누룩처럼 번진 어그러진 복음의 길...
복음이 위안(慰安)도 못되는 진리로 둔갑한 직통계시와
체험 신앙으로 치우친 신유의 요란한 은사 제일주의
전통적인 유교에 파생된 계급 화 된 교회통치와 관리라는 미명(美名)의 신분의
분리로 분리 자들로 넘치고  지배의 수단이 된 무당적인 샤머니즘
복채(卜債)놓고 복(福) 받기 거래(去來)가 된 믿음  
무분별한 성공으로 변절된 부흥운동
목회자의 개인적인 순종으로 변절된 성경공부
감성적인 설교와 찬양으로 분위기에 흔들리는 믿음을 은혜라 하고
그리스도인의 정의(正義)가 사라진 복음...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변화 당한 세상적인 세속화된 공동체...
의무와 사명으로 허식(虛飾)화 된 열심과 헌신으로 전도, 선교를 외치지만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공의)를 저버린 세속화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어
동력을 잃어버렸고
빛의 자녀같이 못하여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하여
빛이 없는 곳에 곰팡이가 퍼지듯 번진 복음의 어그러진 수많은 현상들
그 원인의 하나는
무조건적으로 분별없이 미국의 부흥운동과 사조를 받아드려서 신앙의 순결과
정체성마저 잃어버린 원인은
미국의 교회사를 알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다.

먼저 이 짧은 글은 충분한 원인 규명의 글이 못되겠으나
지난 교회사를 짧게나마 잠깐 잠깐 제시하여 복음의 길을 가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고 무조건 적인 청교도 찬양을 일삼았던 우리의 윗세대
그리고 오늘날 그런 영향을 받아 숭미 주의 적인  엉터리 청교도 예찬에서 깨어나
지난 미국의 교회사에서 본받을 신앙과 배척할 정교일치의 역사를 알고
메가 처치(대형교회)의 탄생의 배경을 잠시 언급하여
요컨대 오늘날 한국교회의 부패의 원인을 나름 제시하고자 한다.

미국 교회 역사의 시작은
변절된 청교도와 대륙의 개척이라는 잘못된 개척 정신(the frontier spirit)과
진정한 청교도 정신을 이어갈려는 세력의 갈등을 넘어
정교일치를 이른 기득권 세력의 핍박과 박해의 역사로 시작되지만
아메리칸 인디언의 파멸(破滅)은
또 하나의 기독교 역사의 수치가 된다.
물론 처음부터 잘못된 동기인 금을 찾아 대륙 발견을 한 콜럼버스의 욕망이 부른
비극이지만 아직도 그의 대륙 발견을 기념하여 콜럼버스 데이(Columbus day)가
국경일이 되어 퍼레이드를 하고 학교는 공휴일이 된 미국의 학교를 바라보면서
역사란 승리자의 기록과 가진 자의 편인지 회의(懷疑)가 들고
분별없는 청교도 예찬의 설교를 들을 때마다 답답함을 넘어 역사의식을 잃은 자들의 괴변이,
왜 믿음을 외치면서 분별력도 없는 믿음을 믿음이라 하고
역사의식이 실종된 복음은 단지 전하는 소식에 머무르고
복음, 복음을 전한다 하지만 그 복음의 의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는
하나님의 의, 뜻, 공의가 사라진 복음은 어그러진 길이다.

미국 교회의 역사는
1607년 제임스타운 거주민들과 1620년 필그림스(Pilgrims)로 알려진
거주민 이외 집단으로 이민 온 단체는 회중교회(Congregation Church) 교인 인퓨리탄(Puritan)과 장로교 교인들이었다.
이들은 각자 자신들의 식민지를 개척하고 그들의 종교법을 제정하여
자신들이 유럽에서 핍박을 피해 신대륙에 이주 하였음에도 영국의 식민지인 미국에서
기득권세력이 되어 정교일치를 이루었으며 다른 교파나 종교를 핍박하는 가해자가 되었고
재 침례파(세례파)는 가장 큰 피해자 이었다.

세일럼(Salem)은
히브리어로 평화(shalom)를 뜻하며 그 명칭에 반하여 미국 판 마녀재판이 벌어졌던 곳으로
수십 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악명 높은 곳이며
작가 너새니 얼 호손(Nathaniel Hawthorne, 1804-1864)은 자신의 조상이 마녀사냥의 가해자 인 재판관을 하였기에 역사의 죄를 속죄하듯이 박해를 받아온 약자의 삶을 소설로 쓴 ‘주홍 글씨’를 1850년에 쓴 곳이 세일럼이었고
그 글로 미국문학을 세계문학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이 수치의 역사는 미국 국가와 청교도라는
기독교 뿌리를 흔들어 놓은 곳이며
수산자원이 풍부하여 영국에 까지 알려져 보 스 톤 인근 케이 앤은
작은 정착촌을 이루다 보 스 톤이 되었고 이 도시와 경쟁으로 세일럼은 어업과 무역으로 아시아,
인도 등 까지 배를 보내며 부유하게 된 무역상들이 대저택을 짓는
건축 붐이 로드아일랜드의 뉴포트 뉴스(Newport News)까지 일어나 한 때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택가로 유명하였고
1812년 미, 영 독립전쟁으로 상권을 보 스 톤과 뉴욕에 빼앗기면서
세일럼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작가 너새니 얼 호손은1804년 7월 매사추세츠 세일럼의 청교도 집안에서 선장인 아버지
너새니 얼 호손과 어머니 엘리자베스 메닝 사이에 태어났고 그가 태어난 뉴잉글랜드 지방은
청교도의 전통이 세워진 곳으로 청교도 전통은
그의 가정의 배경과 함께 그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특히 그의 고조부인 존이 세일럼의 마녀사냥 때인 17세기 뉴잉글랜드에서 청교도들이 일부
주민들을 마녀로 몰아 처형하거나 고문으로
죽인 사건 때 가혹한 재판관 노릇을 한 것은 그의 마음을 어둡게 하였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도덕적 사회적 생활에 감추어진 내부의식에
인간 내면의 윤리적 관점에서 탁월한 상징적인 수법으로 분석하여
인간의 공통된 죄를 은폐하려는
사회의 위선과 편협을 증오했고 인간적인 만족과 쾌락을 거부하는 금욕적인 신앙과
종교의 위선과 사회의 거짓에 냉혹한 비판에 앞서 그 죄를 나누어지려 했기에
그 곳의 청교도적인 배경과 사상이랄 수도 없는 맹목적인 정신적인
종교적 기질을 탐구하여 자신에게 이미 배여 있는 청교도 정신에 대한 비판을 했다.

미국에서 벌어진 마녀사냥도 비슷하게 전개되었다.
169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세일럼에서 마녀사냥이 시작되었다.
유럽에서처럼 마녀는 법에 따라 사형에 처하는 중대한 범죄였다.
세일럼에 살고 있던 티투바(Tituba)라는 이름의 혹인 여자 노예와 친하게 지냈던
백인 소녀 몇 명이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소리를 지르고 발작을 하는가 하면 개처럼 짖기도 했다.
곧 세일럼에 사는 다른 소녀들도 마법에 걸린 양 비슷한 증상을 보였다.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물체가 계속 때리고 찔렀다고 증언했다.
어떤 때는 들리지도 않고 말을 할 수도 없었고 목구멍이 막혀 숨을 제대로 쉴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세일럼일대는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였다.
뭔가 대책이 필요했고 티투바, 세라 굿(Sarah Good),세라오본(Sarah Osborne)이
마녀로 기소됐다.
거의 히스테릭한 지역 분위기에서 특정인을 마녀로 지목하고 연쇄적으로 자백이 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일단 마녀 꼬리표를 단 여자가 다른 여자를 마녀라고 지목하면 그 여자 역시 마녀 협의를 받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마녀 폭풍이 세일럼을 넘어 뉴잉글랜드의 다른 지역으로 번지자 총독이 마녀 문제를 다룰
특별재판소를 구성했고 부 총독이 재판장에 임명되었다.
일반 사건과는 성경이 판이해 형사 절차 및 증거 효력 검증의 상당 부분이 무시되거나
완화되었다.
대신 몸에 특별한 흔적이나 표시가 있는지 꼼꼼히 살피는 한편 지역 주민이 목격한
환영처럼 입증할 수 없는 것들이 증거로 채택되었다.
데이비드 코닉(David Konig)을 비롯한 다수의 학자가 지적한 것처럼
마녀로 지목되어 실제로 사형에 처해진 사람들 대부분 그 지역에서 반항적이고
평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재판 과정에 협조적이고 평판이 좋았던 사람들은 마녀 판정을 받았지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마녀로 지목된 부인을 변호하던 자일즈 코리(Giles Corey)라는 백인 남자도 마녀로 체포되었다.
그는 끝까지 마녀임을 부인하고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다가 자백할 때까지 무거운
돌을 가슴 위에 올려놓는 가혹한 고문을 받다가 죽었다.
총독 부인도 마녀로 지목되다
맨 처음 마녀로 지목된 흑인 노예 티 투 바는 부두교 신자였다.
부두교는 아프리카에서 카리부 해의 아이티로 팔려온 흑인들이 주로 믿던 종교로 북치고,
노래하고, 춤추는 행위를 통해 주술적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었다.
17세기 말 뉴잉글랜드에 카리브 해 출신 흑인 노예가 유입되면서 부두교도가 들어왔다.
철저한 청교도 정신으로 뭉친 뉴잉글랜드에서 부두교 같은 이단 종의 유입과 전파는
상상할 수 없는 범죄였다.
게다가 부두교 신자들이 마약을 태우거나 흡입하면서(당시에는 마약이 불법이 아니었다)
환각 상태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주술적 행위를 일삼았다는 점에서,
백인 소녀들이 티투바와 함께 환각제를 복용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가운데 헛것이
보였을 수 있다.
미국의 마녀사냥 역시 기존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 탓에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백인 이주민에게 미국은 종교적 정치적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들어와 힘들게 개척한
터전이 아니던가.
부두교 같은 이질적 요소가 청교도의 가치를 훼손하고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마녀사냥을 통해 기존의 종교적 정치적 가치를 더욱 강화하고 유대의 끈을 조이고자 했던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또한 마녀로 지목되어 처형된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여자였고, 특히 행실이나 평판이
좋지 않는 이들 이었다는 점을 보아도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마녀사냥을 통해 남성 우월주의를 강화하고 하는 측면도 있었던 것 같다.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마녀사냥이 마무리된 것은 초기 마녀로 지목된
소녀 중 한 명이 급기야 총독 부인을 마녀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자칫 더 이상 끌다가는 부메랑 효과로 자신들이 당할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 서둘러
마녀재판을 끝내게 한 동기로 작용했다.
특히 범죄를 일시적으로 강력하게 처벌하는 데는 정치적 목적과 이유가 있다.

쿠데타 등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잡을 경우 조직폭력배 일제 단속을 벌여 강력하게
처벌하곤 한다.
국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누구도 변호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다.
마녀사냥과 비슷한 맥락인 셈이다.
범죄에 대한 대응 방식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어떤 방식을 취하건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쪽으로 이루어진는 점은 똑같다.  
-Crime Effect 크라임 이펙트 :세계사를 바꾼 결정적 범죄들 중 에서 -

성경을 읽을 때 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각하게 되고
이를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이끄심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공의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며
하나님의 사랑은 ‘공평’ 과 ‘공정’ ‘평등’ 등 이런 정의가 포함된
공의의 하나님의 사랑을 안 수많은 믿음의 앞 세대의 신앙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하나님의 의에 녹아있는 복음의 의, 공평과 평등
그리고 공정 이를 알지 못한다면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벽을 쌓아 하나님의 사랑에 선을 긋는
분리주의자들이 되어 자신이 만든 벽에 갇혀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향했고,
가고 있으면서 열심과 열정이라는 헌신으로 포장한 종교적인 사상인 의식으로
무장하여 자신과 다른 신앙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성경의 몇 구절로 선을 긋고 자신의 신념의 신학에 함몰된 자들...
그런 신앙의 길을 보여주며 위험을 경고한 분을 알고 있다.
로저 윌리엄스(Roger Williams 1603-1683)
영국 국교를 버리고 영국의 식민지인 보스톤에서
신앙의 자유를 외치면서 청교도인 이라면서 기득권자가 된 신앙의  변절된 자들과 함께
하지 아니하고 참 된 신앙을 외치며 아메리칸 인디언을 존중했던
그 당시 소수의 신앙인인 로저 윌리엄스 목사는 침례교를 창시하지 않았지만
창시자로 불러지는 진정한 청교도인 로저 윌리엄스
다음 글에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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