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마 25:5)


마태복음 15장의 열처녀 비유는

휴거를 기다렸던 신부들과

그 중의 일부가 혼인잔치에 성공적으로 들어간

신부들에 관한 대표적인 이야기다.


이 비유에서 드러난 핵심 사안은,

첫째, 신랑이 더디 왔다는 것이다.

둘째, 더디 오므로 열명의 처녀 모두가 잠이 들었고,

셋째, 그 와중에 슬기로운 처녀들의 등불은 꺼지지 않았으며,

넷째, 마침내 신랑이 왔다는 것이다.




신랑은 왜 더디 왔을까?


준비하는 천사들이 농땡이를 부려서일까?

아니면 준비가 미처 덜된 예비신부가

더디 와달라고 센 기도를 한 이유때문일까?


말씀에는 짝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벧후 3장 9절에 이에 대한 답이 성경에 있다.


어떤 이들은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오래 참으사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단 더디 오시는 이유를

모두 회개하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에 두도록 하자.


지금 상황은 더디 오는 걸까? 속히 오는 걸까?


준비된 신부들에게는 더디 오는 것이겠지만

준비가 덜된 신부들은 속히 오는 상황일 것이다.



준비한 열 명의 처녀들이 모두 잠이 들었다.


어떻게 슬기로운 처녀들까지 잠을 잘 수 있을까?

그들은 잠을 자고도 어떻게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잠을 잤다는 것은 깨어 있다는 것과 반대상황이다.


아무리 건강체질이라 하더라도

1년 내내 24시간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깨어 있다는 것은

영적인 의미로 주님을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잠을 잤다는 것도 영적인 의미로

10처녀 모두 깨어 있지 못하고 영적으로 잠을 잤다는 의미라면,

10처녀 모두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없어야 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잠을 잤다는 의미는

늦은 시간까지 신랑이 오지 않아서

육신적으로 잠을 잤다는 의미가 된다.


우리는 육신적으로 일상의 삶에서

주님만 기다리는 상황을 요청받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상의 삶을 소홀히하고

예상한 시간에 집중했고 예상한 시간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육신적인 일상의 삶과

깨어 있는 영적인 삶의 균형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슬기로운 자들의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등불을 들고 나간 처녀는 10명이었지만,

그 중 5명은 그 날이 지연되자 등불이 꺼져갔고,

5명의 등불은 신랑이 오는 시간까지 꺼지지 않았다.


미련한 자와 슬기로운 자의 차이점은

여기서 확연히 드러난다.


포기하는 미련한 자들과 일편단심 슬기로운 신부들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마음이 변한다면 일편단심이 아니다.


한결같이 주를 신뢰하는 까닭에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켜주신다(사 26:3).

그들의 태도는 한결같고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하나님을 굳게 굳게 의지한다.

바르게 사는 이들의 길을 평탄하다.

하나님께서 그 길을 닦아 주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안달하거나 조급하거나 서두르지 않는다.

주께서 결정하시는 길을 느긋하게 걸어 간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결정하시든지 그 분을 신뢰하며 걸어간다.



결말은 마침내 신랑이 왔다는 것이다.


신랑을 기다린 이 스토리에서

만약 신랑이 끝까지 오지 않았다면,

혼인잔치 이야기는 실패한 신부들의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딘 처녀들과

도중에 포기한 처녀들의 성공담과 실패담이 교훈을 주는 것이다.


비록 더디 올지라도 버텨라.

포기하지 말아라.

끝까지 신뢰하라.

신랑은 반드시 신부들이 기다리는 상황에서

약속대로 오신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소망이고 결말이다.



글쓴이: 카이로스 / 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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