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인공기가 될 수 있습니다

사회/정치 2017. 3. 25. 04:36


촛불이 인공기가 될 수 있습니다

조광동 /재미 언론인


저는 27년 전 북한을 방문하고 “더디 가도 사람 생각하지요’라는 책을 썼습니다. 
북한의 의식과 사고와 감정을 전하려 했던 이 책은 친북적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글을 쓰고 강연을 했을 때 
“그 생각은 당신의 희망 사항”이라는 공격을 받으면서 저는 “친북 인사"가 되었고 
북한에서는 저를 “민족의 기자”라고 추켜세웠습니다.

제가 북한을 2번 취재 방문하고 2권의 책을 쓴 뒤 얻은 결론은 북한은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남한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후 미국의 CIA 보고서는 북한의 붕괴를 
예견했고 미국과 남한의 학자와 언론인은 북한 붕괴는 시간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아직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지 않았고, 북한의 핵 개발 가능성을 거의 모든 사람은 
잠꼬대 같은 소리라고 일축할 때였습니다.


그 당시 북한의 모습은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독과 소련의 붕괴로 사회주의가 무너진 뒤 경제가 흔들리고 대기근이 덮쳐서 
수많은 백성이 굶어 죽는 북한 모습을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잣대로 보면 
북한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자유 민주주의 잣대로 
북한을 진단한 것이 큰 결함이었습니다. 북한의 체질과 특질을 간과했습니다.

저는 이번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보면서 수십 년 전에 했던 생각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치명적이고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마저 들면서 남한에 대한 불안감이 제 가슴으로 달음질쳐오고 있습니다.

제가 수십 년 전에 북이 남을 앞지를 수 있다고 말했던 것은 북한의 정신력과 일사불란한 체제와 북한 동포들의 우수한 노동력과 자기 체제에 대한 헌신적인 충성심에 역점을 둔 것이었습니다. 
그때 북한은 미국과 국교 정상화로 갈 가능성이 큰 상황이었습니다. 
북한이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한 뒤 서방 자본이 투입되어 북한의 질 높은 노동력과 집단주의 
문화와 결합될 때 북한은 남한이 이룬 한강의 기적 못지않은 대동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하는 대신 핵과 미사일 개발로 전략을 바꾸었고 그 전략이 성공했습니다. 이제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 성공으로 수십 년 전 북한 스스로가 걱정했던 
“미국 침략”에 대한 걱정을 해소시켰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떤 방법으로 미국과 협상하고 
관계를 정립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보유함으로써 북한은 수십 년 전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에 있습니다. 
막강한 협상 지렛대를 마련했습니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설을 
선제공격하는 시나리오도 거론되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미국은 클린턴과 부시 정부 때 타이밍을 놓쳤습니다. 북한과 협상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협상이 성공해 미국 자본이 북에 들어가면 북은 수십 년 전에 놓쳤던 경제 발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북한은 핵을 보유했지만 사용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용할 수가 없다고 해서 남한 국민이 북한의 핵 보유에 불감증을 느낄 정도로 방심하는 것은 극심한 오만이거나 비애국적입니다. 
대결에서는 물론이고 협상에서도 핵과 미사일을 보유한 것과 빈손은 하늘과 땅입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핵 카드가 있느냐 없느냐는 먹느냐 먹히느냐 하는 운명을 갈라놓습니다.

바늘 끝만큼의 구멍이 있어도 허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 국가 안보일진데 송곳 구멍보다 커서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의 구멍이 나 있는데도 남한 국민은 무사태평이고 최소한의 수비책인 사드까지 반대합니다. 오히려 흡수통일, 통일 대박이라는 허상과 평화 통일, 햇볕 정책이라는 몽상으로 
기고만장하고 있습니다. 흡수 통일은 가당치도 않고 연방제 통일론은 북한에 집문서를 넘기는 행위입니다.

남한의 허술한 안보 의식에 한국의 좌파 이념이 남한 체제의 둑을 허물고 있습니다. 
이번 박근혜 탄핵은 그 전초전일 수 있습니다. 남한이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남한 체제와 의식, 정신력, 애국심이 위기의 바닥으로 가고 좌경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탄핵은 위대한 ‘국민 승리’ ‘시민 혁명’이 아니라 자유 민주주의 발등을 스스로 찍고, 
남한을 분열로 파열시킨 것입니다. 박근혜 탄핵은 절차와 과정을 밟지 않고, 조사를 하지 않은 채 벌부터 주었고, 최순실과 박근혜를 “경제 공동체”라는 개념을 만들어 최순실 죄를 박근혜 죄로 
만들었고, 집행유예로 끝날 수 있는 죄에 정치적 사형을 선고한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정치 수준이나 썩은 풍토로 볼 때 박근혜 대통령에게 예외적이고 무리한 적용을 했습니다. 촛불로 시작된 혁명의 축제는 극단주의자들이 홍위병이 되고, 국민이 부화뇌동하고, 국회가 날뛰고, 언론이 부채질하고, 검찰이 칼질하고, 헌법재판소가 춤을 춘,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거대한 집단 굿판이었습니다.


박근혜 탄핵에는 한국의 실상과 의식문화가 극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감정주의, 극단주의, 졸속, 억지, 집단 문화가 있고 분열성과 증오심이 있습니다. 
박근혜가 밉다고 법치주의를 불태웠습니다. 
극단주의 감정이 증오심과 좌파 이념과 결합해서 성취된 ‘촛불 혁명’은 민주주의 근간인 법치주의와 공정성을 정의의 이름으로 유린시켰습니다.

탄핵이 끝난 뒤 분열을 아물리고 화합을 하자고 언론과 지식인들이 말하고 박근혜는 승복해서 
마지막 애국을 하라고 말하고 있지만 역지사지를 모르는 위선과 억지입니다.

탄핵이 기각되면 혁명밖에 없다고 선동했던 사람들이 승복을 외치고, 증오심과 집단 몰매로 
비인격적으로 유린한 뒤 미소 짓는 신사숙녀가 되라 말하고 있습니다. 
승복은 필수적인 민주주의 요체이지만 한국의 승복문화는 이미 고장이 났습니다.

나라의 장래와 국민의 화합을 위해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지 말고 명예롭게 퇴진시키는 지혜를 가졌어야 했습니다. 이제 감옥까지 보내겠다고 합니다. 증오와 분열의 골은 메울 수 없을 만큼 깊어졌습니다. 노무현 자살은 진보와 좌파를 증오심으로 결집시켰고 박근혜 탄핵은 보수의 증오심을 끓어 오르게 했습니다. 정신과 의식의 내전으로 가고 있는 남한의 모습은 왜 한국이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지를 천착하게 합니다.


박근혜 탄핵은 한국의 좌파 역량이 엄청나고 동조 세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남한이 월남이 될 수도 있다는 무서운 환상을 뿌리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석기가 망상했던 남한 내의 자생적 테러 세력이 세를 형성하고, 여기에 외부 테러 세력이 투입되어 사회를 교란시킬 때 남한은 하루아침에 불안과 혼란의 수렁으로 빠져들 것입니다.

이 상황이 되면 또 촛불이 켜질 것입니다. 평화의 촛불, 통일의 촛불이 타오르고, 한 손에는 촛불, 다른 한 손에는 한반도기가 들려질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둘 인공기가 나타날 것이고 언론이 평화 통일의 북을 치면 붉은 깃발이 광장을 압도할 것입니다.

여기에 목숨을 걸고 싸울 국민이 얼마나 될까 하는 질문이 모욕적으로 들리겠지만 
그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태극기를 든 사람들은 너무 늙었고, 부패하고 무력한 보수는 좌파의 치열성 교활성 전술전략을 따라가질 못합니다. 보수를 지지하는 이기적인 가진자들은 미국으로 도피 보따리를 싸기에 급급할 것입니다.


박근혜 탄핵은 민족 재앙의 그림자를 더욱 짙게 만들었습니다. 
망상의 소설을 쓴다고 지탄하겠지만, 한풀이가 증오심의 배설장으로 추락하고 그것이 집단주의 광기로 배합될 때 망상의 소설은 재앙의 미래가 될 수 있습니다. 
미군 탱크에 압사된 효순 미선 사건이 촛불로 선동되어 대통령 선거 판도를 바꾸고, 광우병과 
세월호의 촛불이 이성을 마비시키고 박근혜 탄핵으로 발전했습니다.

박근혜 탄핵은 남한의 월남화 가능성에 물꼬를 텄습니다.

아주 오래전 한국을 방문해서 택시를 탔을 때 택시 기사는 제가 미국서 왔다는 것을 알고 안심하면서 한 말이겠지만 “이놈의 나라 확 망했으면 좋겠어요! 북한이라도 밀고 들어 왔으면 좋겠어요!”하고 내뱉았습니다. 그때 섬뜩했던 분노의 소리가 잊히질 않습니다. 이 택시 기사의 가슴에는 촛불이 이글거리고 여차하면 인공기를 휘날리수도 있을 것입니다.

박근혜를 무덤으로 보내고, 재벌의 초상을 몽둥이질하는 증오에 가득 찬 사람들에게 
인공기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김일성 김정일보다 이승만 박정희를 더 욕하고, 김정은보다 박근혜를 더 증오하고, 
북한 부조리보다 남한 부조리를 더 미워하는 사람들은 어떤 계기가 있으면 촛불을 인공기로 바꿀 가능성이 큽니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자기를 지킬 열망이 없는 사람은 하늘도 지켜줄 수 없습니다.

탄핵이 끝나자 국민 관심이 대통령 선거로 쏠리고 있지만, 국민 의식이 달라지고 나라가 개조되지 않으면 새 정치는 요원합니다. 환골탈태의 자기 개혁 없이는 오늘, 한국이 택하고 있는 운명의 길, 역사의 미래는 어둠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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